'-적' 없애야 말 된다

 본격적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가다 → 바야흐로 협상을 하다 / 비로소 협상을 하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 장마가 바야흐로 찾아오며 / 이제 장마가 되며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날 타이밍 → 바야흐로 여행을 떠날 때

 본격적인 단계로 공부를 한다 → 짜임새를 갖추어 공부를 한다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 이제부터 활동하려고 한다


  ‘본격적(本格的)’은 “제 궤도에 올라 제격에 맞게 적극적인”을 뜻한다고 합니다. ‘궤도(軌道)’는 “1. 수레가 지나간 바큇자국이 난 길 2. 일이 발전하는 본격적인 방향과 단계”를 뜻하고, ‘제격(-格)’은 “그 지닌 바의 정도나 신분에 알맞은 격식”을 뜻하며, ‘적극적(積極的)’은 “대상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이고 능동적인”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한국말사전은 ‘본격적 = 제 본격적인 방향과 단계에 올라 알맞은 격식에 맞게 긍정적이고 능동적인’을 뜻한다고 풀이하는 셈이지요. ‘본격적’을 풀이하면서 ‘본격적’을 들이민 얼개입니다. 이러면서 ‘알맞은’하고 ‘맞게’가 나란히 나오고요.


  이래서야 말뜻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힘껏 나서는”이라든지 “소매를 걷어붙이고”라든지 ‘이제부터’라든지 ‘한창’이라든지 “틀을 갖추어”라든지 “짜임새 있게”라든지 ‘바야흐로’ 같은 말마디로 가다듬어 봅니다. 2016.2.13.흙.ㅅㄴㄹ



본격적인 사진교육을 벌여온 지

→ 바야흐로 사진교육을 벌여온 지

→ 제대로 사진을 가르친 지

→ 짜임새 있게 사진을 가르친 지

→ 틀을 갖추어 사진을 가르친 지

→ 차근차근 사진을 가르친 지

《유경선 외-사진 용어사전》(미진사,1995) 5쪽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었기 때문

→ 아직 한창 여름은 아니었기 때문

→ 아직 무르익은 여름이 아니었기 때문

→ 아직 달아오른 여름이 아니었기 때문

→ 아직 여름이 이르기 때문

《사사키 미쓰오·사사키 아야코/정선이 옮김-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예담,2001) 61쪽


본격적으로 단행본 출판을 하기로 하고

→ 바야흐로 단행본을 펴내기로 하고

→ 이제부터 낱권책을 내기로 하고

→ 앞으로 낱권책을 펴내기로 하고

→ 차근차근 낱권책을 내기로 하고

《지승호-크라잉 넛, 그들이 대신 울부짖다》(아웃사이더,2002) 5쪽


그 제도에 대한 이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 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한 때는

→ 그 제도를 올바르게 받아들인 때는

→ 바야흐로 그 제도를 이해한 때는

《한홍구-대한민국사》(한겨레신문사,2003) 28쪽


우리는 본격적으로 흙 고르기를 시작했다

→ 우리는 곧바로(막바로) 흙을 골랐다

→ 우리는 힘차게 흙을 골랐다

→ 우리는 팔을 걷어붙이고 흙을 골랐다

→ 우리는 바야흐로 흙 고르기를 했다

《이가영-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뜨인돌,2004) 28쪽


슬슬 본격적으로 공격을 익혔으면 하는데

→ 슬슬 공격을 익혔으면 하는데

→ 슬슬 공격을 제대로 익혔으면 하는데

→ 슬슬 공격을 짜임새 있게 익혔으면 하는데

《카와쿠보 카오리/설은미 옮김-해피 투게더 3》(학산문화사,2005) 168쪽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하는 바람에

→ 바야흐로 비가 퍼붓는 바람에

→ 비가 차츰 거세게 퍼붓는 바람에

→ 비가 거침없이 퍼붓는 바람에

→ 비가 세차게 퍼붓는 바람에

《소노다 마사하루/오근영 옮김-교실 일기》(양철북,2006) 152쪽


대학생이 된 저는 새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 대학생이 된 저는 새를 바야흐로 공부하기로 했고

→ 대학생이 된 저는 새를 한결 깊이 배우기로 했고

《김성현·김진한·최순규-새, 풍경이 되다》(자연과생태,2013) 4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누구예요? 생각하는 분홍고래 2
콘스탄케 외르벡 닐센 지음, 정철우 옮김, 아킨 두자킨 그림 / 분홍고래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24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푸는 수수께끼

― 나는 누구예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아킨 두자킨 그림

 정철우 옮김

 분홍고래 펴냄, 2013.9.13. 12000원



  살랑거리는 포근한 바람을 타고서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분홍고래,2013)를 읽습니다.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님이 글을 쓰고, 아킨 두자킨 님이 그림을 그린 이 그림책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어린이가 스스로 푸는 길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성교육 지식으로서 어머니랑 아버지 몸에 있는 두 가지 씨앗이 만나서 태어나는 ‘나’라고 하는 ‘몸’을 넘어서, 이 몸을 다스리면서 움직이는 ‘또 다른 나’라고 하는 ‘넋’이 무엇인가를 찾고 싶은 어린이한테 길찾기를 들려주어요.



윌리엄은 가끔 혼자 있고 싶어요. 친구들과 뛰어 놀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얼마든지 생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생각하고 싶은데 왜 놀아야 하죠? 그리고 생각을 어떻게 멈추죠? 친할머니는 윌리엄이 안 보여도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2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때때로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혼자 생각에 잠기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쏟아지는 생각을 들여다보느라 바쁘니까요. 흐르는 생각을 살펴야 하니까요.


  생각을 하면서 공을 찰 수 없고, 생각을 멈추면서 술래잡기를 할 수 없어요. 나무에 마련한 오두막으로 올라가서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요. 나무가 베푸는 기운을 받고, 숲내음이 흐르는 오두막 기운을 함께 느끼면서 생각에 잠겨요.


  그림책을 보다가 ‘우리 집 나무도 무럭무럭 자라서 이런 오두막을 지을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우리 집을 두 층으로 올려서 다락방을 하나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저마다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어 할 적에 그곳에 깃들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 나무 집에 혼자 있는 윌리엄은 누구일까요? 윌리엄은 엄마의 꿈이 이루어진 거래요. 그렇지만 어떻게 꿈이 아이가 될 수 있죠? 그럼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의 꿈이었다는 거예요? (4쪽)


외할머니는 윌리엄의 질문을 듣지 못했나 봐요. “그럼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대답은 않고 오히려 되물어요. (10쪽)




  ‘나는 누구지?’ 하고 궁금해 하는 아이는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한테 이 수수께끼를 묻습니다. 두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말씀을 여쭈고,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말씀을 여쭙니다. 마을 형이나 누나한테 묻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맞닥뜨리는 삶에 맞추어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을 형들은 “넌 그냥 멍청이야(20쪽).” 하면서 짓궂게 놀립니다. 마을 누나는 아이 이름에 깃든 뜻이 남달리 있으리라고 넌지시 귀띔말을 들려줍니다.


  아이는 여러 사람한테 수수께끼를 묻는 사이에 어렴풋하게 알 듯도 하다고 느끼지만, 도무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실타래가 더 엉킨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느껴요. 더군다나 증조할머니 말씀처럼 “크면 안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아이는 바로 오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뿐, 나이가 마흔 살이나 예순 살이나 여든 살이 되어서야 알기를 바라지 않아요.



증조할머니는 윌리엄이 소중한 선물이래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선물이요. 자기가 어떻게 선물일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한동안 말이 없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얘기하죠. “네가 크면 알게 될 거야.” (18쪽)


“너 이름마다 뜻이 있는 거 아니? 내 이름은 올리케야. 늑대처럼 강하다는 뜻이지. 나한테 딱 맞는 이름이야. 난 포기하지 않거든.” 어쩌면 윌리엄이라는 이름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지 몰라요. 그런데 세상에는 윌리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아요. (23쪽)




  우리는 저마다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알까요? 우리는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얼마나 마음을 기울일까요?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이 없을까요?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에 나오는 아이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빠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아이 할아버지 한 분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취미)에 푹 빠지느라 아이가 묻는 말에 찬찬히 대꾸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꿈’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데, 아이로서는 ‘꿈’이 무엇인지도 아직 잘 몰라요. 어머니가 아이를 꿈꾸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대목이라든지, 어머니한테 어떤 아이가 이 보금자리로 찾아오기를 꿈꾸었는가 하는 대목까지는 잘 모릅니다.


  나무 오두막에서 한참 생각에 잠긴 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은 영차영차 힘을 내어 오두막까지 올라옵니다. 주전부리를 챙겨서 올라오시지요. 그러고는 아이한테 아주 쉬운 실마리를 하나 밝혀 줍니다. 아마 할머니도 할머니 스스로 누구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생각해 보셨겠지요. 나이가 들면 다 알 수 있다는 실마리가 아니라, 나이가 어릴 적에는 어린 숨결대로 어떤 넋이고, 나이를 먹는 동안에는 이때에 새롭게 어떤 넋이며, 나이가 많이 들어 늙은 때에는 이때대로 새롭게 어떤 넋인가를 생각해 보셨구나 싶어요.



한참 뒤 할머니가 말했어요.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너일지도 몰라.”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요?” “그래, 모든 것.” (26쪽)




  기쁨을 마음에 담으면 기쁨이 바로 나예요. 슬픔을 마음에 얹으면 슬픔이 바로 나예요. 웃음을 마음 가득 터뜨리면 웃음이 바로 나예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 눈물이 바로 나예요. 그러니까, 나는 늘 바뀝니다. 나는 늘 거듭나기도 합니다. 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뒷걸음질을 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껑충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신나게 달릴 수 있고, 고단하게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참말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나는 누구예요?》를 읽을 어린이가 이 대목을 어느 만큼 스스로 헤아리거나 깨달을 만한지는 알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을 어머니랑 아버지가 아이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이면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어머니도 오늘 이곳에서 ‘나는 누구일까’ 하고 돌아보고, 아버지도 오늘 이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되새기면서, 아이가 아이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랑을 받아서 어떤 꿈을 가슴에 품고 이곳에 태어난 넋인지 궁금하네’ 하는 수수께끼를 풀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답겠지요.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찾습니다. 아직 어렴풋하더라도, 아직 잘 모르겠더라도,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씩씩하게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2016.2.1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노래 111. 나란히 달리는 들길



  나란히 달리는 들길에서 나는 늘 꽁지에 섭니다. 두 아이는 모두 아버지를 저 뒤에 남기고 얼마나 멀리 달려갈 수 있나 하고 겨루거든요. 앞에 거칠 것이 없고, 뒤에는 기다려 주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앞으로 달려갈 길이 있고, 뒤로 돌아올 자리가 있습니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는 이 들길은 우리가 누리는 놀이터이면서 삶터입니다. 바람을 가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날립니다. 찬바람쯤 거뜬히 넘깁니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또 새삼스레 찾아올 여름에도 이 들길을 두 다리로 힘차게 밟습니다. 2016.2.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말/사진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208] 놀림감


  짓궂은 아이가 여린 아이를 놀려요. 짓궂은 아이는 센 아이를 놀리지 않아요. 센 아이를 잘못 놀렸다가는 그만 큰코를 다칠 테니까요. 여린 아이는 ‘놀림감’이 되어도 좀처럼 맞서지 않아요. 여린 아이는 놀림감이 되면 더 ‘놀림거리’가 되곤 해요. 한 아이가 놀리고 두 아이가 놀리지요. 처음에는 장난이었을 텐데 어느새 거의 모든 아이가 따돌림을 하듯이 놀려요. 나중에는 여린 아이한테 붙인 ‘놀림말’이 이 아이 이름처럼 되고 말아요. 짓궂은 아이는 왜 여린 아이를 놀리려 할까요? 어쩌면 짓궂은 아이도 어디에선가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았기에 이 아픔이나 생채기나 응어리를 다른 아이한테 풀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가 여린 아이를 놀리는 일은 없어요.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는 아이가 여리거나 아프거나 고단하거나 괴롭거나 슬픈 아이를 함부로 놀리거나 따돌려야 할 까닭이 없어요. 사랑을 받기에 여린 동무한테 사랑스러운 손길을 내밀고, 따스한 보살핌이 얼마나 기쁜가를 알기에 여린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려 하겠지요. 짓궂은 아이를 가만히 살피면 다른 짓궂은 아이나 어른한테서 모질게 ‘놀림’을 받은 나머지 놀림쟁이나 놀림꾸러기 짓을 하는구나 싶어요. 2016.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 마법의 힘

이 말이 마법의 힘을 가진 주문처럼 생각되었던 것이지요
→ 이 말을 마법 힘이 있는 주문처럼 생각했던 셈이지요
→ 이 말을 마법이 있는 주문처럼 생각했지요
《마츠오카 쿄오코/송영숙 옮김-워거즐튼무아》(바람의아이들,2013) 35쪽

  “마법 힘이 있는”이나 “마법이 있는”으로 적으면 됩니다. 

이 지역은 차의 통행이 많아
→ 이곳은 차가 많이 통행해
→ 이곳은 차가 많이 드나들어
→ 이곳은 차가 많이 다녀
《김성현·김진한·최순규-새, 풍경이 되다》(자연과생태,2013) 287쪽

  말결을 가다듬어서 “차가 많이 통행해”로 적을 노릇입니다. 이 다음에는 ‘통행(通行)’을 ‘드나들다’나 ‘지나다니다’나 ‘다니다’로 손보고, “이 지역(地域)”은 ‘이곳’으로 손봅니다.

이 강의 동결은 가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 이 강은 가을부터 얼어붙기 때문에
→ 이 강은 가을부터 꽁꽁 얼기 때문에
《고형렬-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2016) 166쪽

  “이 강의 동결(凍結)은 가을부터 시작(始作)되”지 않습니다. “이 강은 가을부터 동결되기 시작”하겠지요. 그리고, “이 강은 가을부터 얼어붙”는다고 해야 알맞습니다.

농지의 규모가 계속 커지는데
→ 농지는 크기가 자꾸 커지는데
→ 논밭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웬델 베리/이승렬 옮김-소농, 문명의 뿌리》(한티재,2016) 333쪽

  ‘규모(規模)’는 ‘크기’로 손보면 되는데, 이 글월에서는 덜어도 됩니다. ‘농지(農地)’는 ‘논밭’으로 손보고, ‘계속(繼續)’은 ‘자꾸’나 ‘꾸준히’로 손봅니다. 2016.2.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