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33



아름다운 삶을 문학에서 읽는 눈

―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글

 이미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2016.1.15. 16000원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아름답게 빚으면 이를 ‘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냥 쓰는 글로는 아름다운 숨결이 되지 않아서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병뚜껑에 적힌 ‘돌리세요’ 같은 글이라든지, 과자 봉지에 적힌 ‘뜯는 곳’ 같은 글은 따로 문학이라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나 선풍기를 새로 장만할 적에 받는 설명서를 놓고도 문학이라 하지 않아요. 지식이나 정보를 들려주기만 하는 글은 그냥 ‘지식 글’이나 ‘정보 글’이에요.


  그렇다고 문학에서 지식이나 정보를 안 다루지는 않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이 붙는 글은 지식이나 정보조차 아름답게 다루는 글이라 할 수 있어요. 정치나 경제 이야기도 아름다움이 흐르는 문학으로 빚을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이 숨쉬는 문학으로 엮을 수 있어요.



텍스트의 해석에 옳은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습니까? 어떤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더 타당하다고 입증할 수 있을까요? (19쪽)


어쩌면 이 시는 여기서 가을을 묘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61쪽)



  2013년에 “How to Read Literature”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고 하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책읽는수요일,2016)을 읽습니다. 영어로 나온 책이름을 곰곰이 헤아린다면 “어떻게 문학을 읽는가”나 “문학을 어떻게 읽는가”라 할 만합니다. 한국말로 나온 책에서는 ‘어떻게’가 빠졌어요. 다시 말하자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라는 책은 ‘독자’라는 눈을 넘어서 ‘비평가’라는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글을 읽을 적에 ‘독자 자리’에 얌전히 머물지 말고,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비평가 자리’에 서서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연극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존재의 환영적 속성에 관한 진실입니다. (97쪽)


많은 사실주의 소설은 독자가 그 인물들과 동일시하기를 요청합니다. 독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떠할지 느끼리라고 예상합니다. (1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은 ‘비평가 눈’은 한 갈래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는 테리 이글턴이라고 하는 분 눈길로 ‘문학을 읽는 길’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테리 이글턴처럼’ 문학을 읽을 수도 있고, ‘테리 이글턴이 안 하듯이’ 문학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교수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중학생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시골지기처럼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청소부로서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의사나 간호사로서 읽을 수 있어요. 시장으로서 읽을 수 있고, 전업주부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러면 가장 나은 눈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가장 훌륭한 길은 있을까요? 문학을 비평하고, 문학을 말하며, 문학을 다루는 가장 놀라운 눈이 따로 있을까요? 문학을 이야기하는 가장 재미나거나 즐거운 길이 참말 따로 꼭 한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사적 경험을 맹목적으로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 내라는 조언을 이따금 받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너머의 그 어떤 경험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록하는 고뇌의 감정은 순전히 허구적일 수도 있지요. (254, 255쪽)



  문학책이 아닌 만화책을 읽을 적에도 ‘한 갈래 눈’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읽기 마련입니다. 나이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고, 살아온 발자국에 따라서 다르게 읽기 마련이에요. 같은 만화책을 놓고도 가시내하고 사내가 다르게 읽겠지요. 군인과 민간인이 다르게 읽을 테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하고 평화를 안 믿는 사람은 또 다르게 읽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가 문학을 어떻게 읽든 문학은 늘 문학입니다. 내가 이 문학을 썩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언제나 이 문학 그대로예요. 내가 이 문학을 몹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학은 늘 이 문학 그대로입니다. 남들이 어느 문학을 손가락질하거나 깎아내린다고 하더라도 늘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 생각’일 뿐입니다.


  문학은 추켜세울 수도 없고 깎아내릴 수도 없습니다.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있다기보다 ‘잘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고, ‘못 썼다고 여기는 눈’이 있을 뿐이에요.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고, ‘안 즐겁게 바라보는 눈’이 있어요. 그리고, 이처럼 사람들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기에 문학은 비로소 문학다우리라 느껴요. 문학을 가리켜 ‘생각과 느낌을 아름답게 빚은 글’이라고 할 적에는 참말 사람들마다 다 다른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픔이나 짜증이나 보람이나 사랑을 문학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가창 독창적이지 못한 비평 양식은 작품의 줄거리를 그저 다른 말로 바꿔 얘기하는 것입니다. (280쪽)


각각의 예술 작품은 기적과 같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것은 신의 세계 창조 행위의 모방이자 반복이지요. (329쪽)


이누이트족의 풍부한 시를 탐구하는 데 몰두한 영국인 독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양쪽 모두 다른 문명의 예술을 즐기려면 자신의 문화 환경 너머로 나아가야 합니다. (345쪽)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쓴 테리 이글턴 님도 이야기하듯이, ‘작품 줄거리’를 읊는 글은 비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은 그저 ‘줄거리 소개글’일 뿐입니다. 줄거리를 늘어놓기만 한다면 ‘줄거리 늘어놓는 글’이에요.


  비평이라는 눈으로 바라보자면, ‘작가 스스로 작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을 읽은 ‘비평가 스스로 비평가 나름대로 품은 생각과 느낌을 담아서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작가 목소리를 내야 ‘창작’이요,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비평가 목소리를 내야 ‘비평’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내가 스스로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 해요. 내 꿈을 내가 손수 밝혀서 드러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지요. 내 사랑을 내가 기쁨으로 나누려고 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문학을 빚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글로 아름답게 빚습니다. 문학을 누리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이녁 삶을 문학이라는 글에 비추어 새롭게 읽습니다. ‘문학쓰기’는 작가 나름대로 펼치는 ‘삶쓰기’라면, ‘문학읽기’는 비평가(또는 독자) 나름대로 즐기는 ‘삶읽기’라고 할까요.


  작가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길을 걸으면서 문학을 빚는다고 봅니다. 비평가(또는 독자) 한 사람은 삶을 아름답게 지으려는 길을 바라보려고 문학을 읽는다고 느낍니다. 작가와 비평가는 서로 아름다움으로 만나고,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기쁘게 마음밥으로 먹으면서 문학책 한 권을 손에 쥡니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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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86. 버스 바닥 앉기



  작은아이가 참으로 ‘작은 아이’일 무렵에는 혼자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읍내마실을 다녀오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작은아이가 차츰 ‘작으면서도 야무진 아이’로 자라는 동안 두 아이를 혼자 건사하는 살림이 아니라 ‘즐겁게 잘 노는 아이랑 함께’ 읍내마실을 하는 나날로 바뀐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는 아직 퍽 어리기에 작은아이 혼자 군내버스에서 자리를 얻어서 앉히면 꼭 작은아이 곁에 붙는다. 큰아이는 이때에 퍽 서운하다. 늘 동생 곁에 아버지가 붙으니까. 그러나 큰아이가 어릴 적에는 늘 큰아이 곁에 붙었지. 이때에는 작은아이를 안거나 업은 채 큰아이 곁에 붙었지. 짐을 많이 들어 고단한 날에는 작은아이가 앉은 옆에 털썩 앉는다. 그냥 버스 바닥에 앉는다. 시골버스에서는 할머니들만 으레 이렇게 앉지만, 나는 시골내기로서 즐겁게 이래 앉는다. 아마 도시에서는 이렇게 하기에 수월하지는 않겠지? 도시로 마실을 가면 전철에서는 내가 먼저 바닥에 앉고는 무릎에 두 아이를 앉히곤 한다. 전철이나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자리를 웬만큼 차지해서 아이들을 감싸지 않으면 아이들이 참으로 고단하다. 내가 볼 곳은 아이들일 뿐,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씩씩하면서 즐겁게 버스 바닥에 잘 앉는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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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6.2.22.

 : 쌀을 싣고 달린다



쌀을 실은 자전거가 달린다. 이웃님한테서 쌀을 퍽 넉넉히 얻었기에 이 쌀을 집에 그대로 두고 먹을 수 없다고 여겨서 쌀을 상자에 알맞게 나누어 담는다. 작은아이가 앉는 수레에는 쌀상자를 15킬로그램 즈음 실으면 꽉 찬다. 작은아이도 이제 많이 자랐으니 쌀상자 무게가 더 나가면 자전거도 벅차다. 20킬로그램 자루에서 5킬로그램을 던다. 오늘은 먼저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부치는 쌀을 싣는다.


쌀을 실으니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운 느낌이다. 자전거가 아주 묵직하다. 그래도 두 아이하고 쌀을 싣는 시골자전거는 나긋나긋 천천히 노래하면서 달린다. 오늘은 이렇게 음성집으로 부칠 쌀을 싣고, 이튿날에는 일산집으로 부칠 쌀을 실어야지. 하루에 다 실어 나르자면 등허리가 휜다. 하루만 이렇게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실어 날라도 저녁이 되면 온몸이 결린다.


이웃님이 나누어 준 쌀에 깃든 손길을 헤아려 본다. 우리 집에서 기쁘게 먹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이 쌀을 반가이 드실 수 있기를 빌어 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고흥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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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케빈 헹크스) 비룡소 펴냄, 2005.6.3. 9500원



  큰아이가 퍽 어릴 적에 ‘영어로 된 책’인 《Kitten's First Full Moon》을 장만한 적 있다. 그림결이 곱고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이 그림책이 한글로도 나온 줄 몰랐고 생각도 안 했는데, 2005년에 일찌감치 한글판이 나온 적 있네. 뒤늦게 깨달았다. 엊그제 큰보름달이 떠올랐기 때문에 문득 이 그림책이 떠올라서 살피다가 이제서야 알아차렸다고 할까. 아기 고양이도 우리 아이들도 달을 먹는다. 어른도 달을 먹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달을 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지구에서 같은 바람을 먹으면서 살림을 짓는다. 2016.2.2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케빈 헹크스 글 그림, 맹주열 옮김 / 비룡소 / 2005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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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en's First Full Moon (Hardcover)- 2011 칼데콧 수상작
케빈 헹크스 지음 / Greenwillow / 2004년 3월
25,000원 → 21,250원(15%할인) / 마일리지 1,0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2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02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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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고민 苦悶


 고민을 털어놓다 → 근심을 털어놓다

 고민을 해결하다 → 걱정을 풀다 / 골칫거리를 풀다

 고민이 많다 → 걱정이 많다 / 온갖 생각을 한다 / 괴롭다


  ‘고민(苦悶)’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말로는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이거나 ‘괴로움’이거나 ‘애태움’이 될 테지요. 이러한 뜻을 헤아린다면,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해”처럼 쓰는 ‘고민’은 영 안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을 뜻하는 ‘고민’이기에 “함께 괴로워 해야 해” 꼴이 되거든요. 2016.2.23.불.ㅅㄴㄹ



아니면 나를 뛰어넘어 내려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 아니면 나를 뛰어넘어 내려갈는지 생각하였다

→ 아니면 나를 뛰어넘어 내려갈는지 망설였다

→ 아니면 나를 뛰어넘어 내려갈는지 머뭇거렸다

→ 아니면 나를 뛰어넘어 내려갈는지 갈팡질팡하였다

《권윤주-to Cats》(바다출판사,2005) 10쪽


고민하던 아빠가

→ 걱정하던 아빠가

→ 생각에 잠겼던 아빠가

→ 골머리를 앓던 아빠가

《이준호-할아버지의 뒤주》(사계절,2007) 11쪽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 어떤 이름을 붙일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해

→ 어떤 이름을 붙일지 함께 헤아려 보아야 해

《이주희·노정임-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철수와영희,2015) 179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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