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렌지 밥



  열 해쯤 앞서였지 싶다. 가스렌지를 장만할 적에 뒤쪽에 ‘밥(건전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기만 할 뿐, 아무한테도 묻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렌지는 따로 밥을 넣지 않아도 불이 오른다. 부엌에서 쓰는 가스렌지는 따로 밥을 넣어야 비로소 불이 붙는다. 왜 그럴까?


  가스렌지를 쓴 지 다섯 해쯤 지날 무렵 가스불이 잘 안 올라왔다. 둘레에서 이 까닭을 알려준 사람이 여태 없다가 며칠 앞서 비로소 알았다. 가스렌지 뒤쪽에 있는 밥을 갈아 주어야 한단다. 밥이 다 닳으면 불이 안 올라온단다. 이리하여 읍내로 마실을 가서 가스렌지 밥(굵은 건전지)을 장만했고, 이 밥을 넣으니 불이 아주 쉽게 올라온다.


  가스렌지가 잘 안 켜져서 걱정하는 이웃이 꽤 많지 않을까? 가스렌지를 장만하는 사람한테 ‘몇 해쯤 쓴 뒤에는 밥을 갈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가게지기는 있을까?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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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위의


 바느질 위의 인생 → 바느질하는 삶 / 바느질로 지은 삶

 풀밭 위의 점심 식사 → 풀밭에서 먹는 점심 / 풀밭 점심

 벼랑 위의 포뇨 → 벼랑에 사는 포뇨 / 벼랑집 포뇨 / 벼랑에 선 포뇨

 언덕 위의 하얀 집 → 언덕에 있는 하얀 집 / 언덕에 선 하얀 집

 나무 위의 고양이 → 나무를 탄 고양이 / 나무에 앉은 고양이


  “도로 위에 서다”라든지 “밥상 위의 반찬”이라든지 “지도 위의 인문학”이라든지 “얼음판 위의 놀이”라든지 “눈 위의 발자국”이라든지 “구름 위의 산책”이라든지 “마루 위의 낮잠”처럼 쓰는 ‘위 + 의’는 얼마나 올바를까요? 영어에서는 ‘on’을 쓸 테고, 이를 일본사람은 ‘上’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옮깁니다. 이러한 말투가 고스란히 한국말에 스며들어서 걸핏하면 “무엇 위”나 “무엇 위 + 의” 같은 일본 번역 말투가 나타납니다.


  한국말은 “길에 서다”이고 “밥상에 올린 반찬”이며 “지도를 걷는 인문학/지도에 그린 인문학/지도로 보는 인문학”입니다. “얼음판 놀이”나 “눈에 찍힌 발자국/눈에 찍은 발자국/눈길에 난 발자국”이나 “구름을 걷는 산책/구름 마실”이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마루에서 자는 낮잠”이나 “마루에서 누리는 낮잠”으로 적어야 알맞아요.


  고양이는 “나무 위”에 있을 수 있을까요? 고양이가 아닌 새라면 “나무 위”를 날지요. 새나 나비라면 “길 위를 날”지요. 영어 ‘on’하고 일본 말투로 쓰는 한자 ‘上’은 한국말 ‘위’하고 쓰임새가 아주 다릅니다. 2016.2.24.물.ㅅㄴㄹ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이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이와 똑같은 일

→ 이때와 똑같은 일

《H.웨이신저·N.롭센즈/임한성 옮김-불완전한 인간》(청하,1986) 20쪽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 보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처럼

→ 이와 같이

《나카네 지에/양현혜 옮김-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1996) 31쪽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마야꼬프스끼/석영중 옮김-광기의 에메랄드》(고려대학교 출판부,2003) 1쪽


무대 위의 상황

→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

→ 무대에서 일어나는 상황

→ 무대에서 펼쳐지는 상황

→ 무대 상황

→ 무대 흐름

《안치운-추송웅, 배우의 말과 몸짓》(나무숲,2004) 28쪽


네 살 위의 여학생

→ 네 살 위 여학생

→ 네 살 위인 여학생

→ 네 살 많은 여학생

《고바야시 데루유키/여영학 옮김-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2008) 52쪽


무명천 위의 노랑 은행들

→ 무명천에 놓은 노랑 은행들

→ 무명천에 놓인 노랑 은행들

→ 무명천에 둔 노랑 은행들

→ 무명천에 올린 노랑 은행들

《황선미-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2010) 9쪽


위의 책들은

→ 이 책들은

→ 이런 책들은

→ 이 같은 책들은

→ 이와 같은 책들은

《김미라-책 여행자》(호미,2013) 23쪽


마침내 위의 내용을 담은 편지가 작성됐고

→ 마침내 이 줄거리를 담은 편지를 썼고

→ 마침내 이러한 얘기를 담은 편지를 썼고

《피터 싱어/김상우 옮김-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오월의봄,2013) 229쪽


위의 표에서

→ 이 표에서

→ 이러한 표에서

→ 앞서 든 표에서

《이수열-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 32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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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6 토성 맨션 6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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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2



한 걸음 내딛기

― 토성 맨션 6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이와오카 히사에 님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5) 여섯째 권을 보면 ‘앞날’ 이야기가 끝없이 나옵니다. 너도 나도 ‘앞날’을 생각하면서 말머리를 열어요. 앞날을 스스로 끝장내려 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앞날을 늘 생각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해요. 앞으로 다가올 날에는 꿈이 가득한 삶을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알겠어? 지금처럼 미래를 정해 놓고 맘대로 포기하는 걸 가게야마 씨나 다마치 앞에서 떠들면 그냥은 안 넘어간다.” (16쪽)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나 자신도 놀랐다. 나는 역시 이 사람을 좋아한다.’ (22쪽)




  그러면, 왜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앞날을 이야기할까요? 이제껏 살며 앞이 늘 캄캄하게 막히거나 닫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앞날 때문에 숨이 막히거나 가슴이 답답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참말 앞날이 막혔기에 숨이 막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 앞날을 새롭게 열려는 마음이 못 되면서 숨이 막힐 수 있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우리 앞날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지을 뿐, 남이 지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레에서 나한테 돈을 주어야 내 앞날이 열리지 않습니다. 옆에서 나한테 손을 내밀어야 내 앞날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내 앞에 빛을 비추어 주어야 내 앞날이 환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걸어가야 비로소 내 앞날이 또렷해요. 내가 스스로 살림을 지으려는 몸짓이 되어야 바야흐로 내 앞날을 즐겁게 엽니다.



‘가장 멋진 건 바로 지금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야.’ (28쪽)


“빛이 들어오지 않는 하층에는 처음부터 몸이 약한 사람도 많아. 이 프로젝트에 자네가 참가해 주면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봐.” (51쪽)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로는 한꺼번에 두세 걸음씩 껑충 건너뛸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뒷걸음도 칠 수 있어요. 주저앉거나 쓰러진 뒤 도무지 못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냥 눌러앉을 수도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한 걸음’씩 걷자는 생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저앉은 내 모습이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숱한 걸음 가운데 하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비록 뒷걸음을 친다지만, 이 뒷걸음은 머잖아 새로운 한 걸음으로 다시 씩씩하게 내딛는 바탕이 되리라 여길 수 있어야지요.



“저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고용됐던 겁니까?” “그야 그렇지. 싫다면 그만두고. 네가 뭘 바꿀 수 있다면 바꿔 봐.” (96∼97쪽)


‘아니, 좋아하는 건 그 장소뿐일까? 사실은 그 장소에 관련된 사람들이 좋아. 그래서 떠날 수 없는 거야.’ (118∼119쪽)



  나는 너한테 빛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러할 수 있어요. 그러나, 누구보다 내가 나한테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나는 너한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너는 나한테 빛이 될 만할까요? 아마 그러할 수 있을 테지요. 다만, 누구보다 네가 너한테 스스로 빛이 될 때에, 너는 나한테 빛이 될 만합니다.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살림을 사랑하려 하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일어서려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다 돼요. 다 좋아요. 다 아름답지요. 다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일어서면 모든 실마리를 기쁘게 풀 수 있습니다.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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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의아 疑訝


 과연 국민들의 잘못인가 하는 의아의 마음을

→ 참말 사람들 잘못인가 하는 알쏭한 마음을

→ 참으로 사람들 잘못인가 하는 아리송한 마음을

 혼자 온 사실이 의아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 혼자 온 대목이 알쏭달쏭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 혼자 온 까닭이 궁금해서 물었다

 의아한 빛이 확연했다

→ 궁금한 빛이 또렷했다

→ 아리송한 빛이 확 드러났다


  ‘의아(疑訝)’는 “의심스럽고 이상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의심(疑心)하다’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할 만한 데가 있다”를 뜻하고, ‘이상(異常)하다’는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이상’은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를 뜻하니 ‘의아 = 의심스럽고 의심스러움’을 가리키는 셈이라 엉뚱합니다. 그러나, ‘의심’은 바로 “알 수 없음”을 가리키는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다”고 하기에 ‘아리송하다’거나 ‘알쏭하다’거나 ‘알쏭달쏭하다’고 말합니다. 알 수 없으니 ‘궁금하다’고 여겨요. 2016.2.24.물.ㅅㄴㄹ



애들이 의아해 할지 모르니

→ 애들이 궁금해 할지 모르니

→ 애들이 알쏭달쏭해 할지 모르니

→ 애들은 알 수 없을지 모르니

→ 애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할 테니

→ 애들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할 테니

→ 애들은 잘 모를 테니

《정재환-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김영사,2005) 80쪽


소피는 의아했다

→ 소피는 알 수 없었다

→ 소피는 궁금했다

→ 소피는 아리송하다고 생각했다

→ 소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케 드브리스/박정화 옮김-두 친구 이야기》(양철북,2005) 67쪽


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의아해졌어

→ 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궁금해졌어

→ 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알쏭했어

→ 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아리송했어

《이주희·노정임-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철수와영희,2015) 33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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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장소 場所


 약속 장소 → 만날 곳 / 만날 데

 장소 사용료 → 쓴 값 / 자리값 / 텃값

 모이는 장소 → 모이는 자리 / 모이는 곳 / 모임자리 / 모임터

 장소를 변경하다 → 자리를 바꾸다 / 터를 바꾸다

 장소를 정하다 → 자리를 잡다 / 터를 잡다


  ‘장소(場所)’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곳’인 셈입니다. ‘곳’은 “공간적인 또는 추상적인 일정한 자리나 지역”을 뜻한다고 합니다. ‘자리’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뜻한다고 하고요. 그러면 ‘곳 = 공간적인 일정한 공간’이란 뜻풀이로군요. 어딘가 말이 안 됩니다.


  이밖에 ‘지역(地域)’은 “1. 일정하게 구획된 어느 범위의 토지 2. 전체 사회를 어떤 특징으로 나눈 일정한 공간 영역”을 뜻한다 하고, ‘영역(領域)’은 “1.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 2. 활동, 기능, 효과, 관심 따위가 미치는 일정한 범위”를 뜻한다 하며, ‘범위(範圍)’는 “1. 테두리가 정하여진 구역 2. 어떤 것이 미치는 한계. ‘테두리’로 순화”를 뜻한다 합니다. ‘토지(土地)’는 “경지나 주거지 따위의 사람의 생활과 활동에 이용하는 땅”을 뜻한다 하고, ‘구역(區域)’은 “갈라놓은 지역”을 뜻한다 하며, ‘공간(空間)’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뜻한다 해요. 한국말사전 뜻풀이를 여러모로 살펴보면, 한자말 ‘장소·지역·공간·영역·범위·토지·구역·공간’ 같은 낱말로 한국말 ‘곳·자리’를 가리키려고 하는구나 싶지만, ‘곳’은 곳으로 쓰고 ‘자리’는 자리로 쓰며 ‘테두리’는 테두리로 쓰고 ‘땅’은 땅으로 쓰면서, 여기에 ‘터’나 ‘데’를 알맞게 쓰면 되리라 느낍니다. 2016.2.24.물.ㅅㄴㄹ



우리들이 놀 만한 장소

→ 우리들이 놀 만한 곳

→ 우리들이 놀 만한 자리

→ 우리들이 놀 만한 빈터

《쿠루사·모니카 도페르트/최성희 옮김-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동쪽나라,2003) 22쪽


번데기가 될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 번데기가 될 아늑한 곳을 찾아서

→ 번데기가 될 좋은 자리를 찾아서

→ 번데기가 될 좋은 데를 찾아서

《권혁도-세밀화로 보는 나비 애벌레》(길벗어린이,2010) 13쪽


그 장소에 관련된 사람들이 좋아

→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

→ 그곳하고 얽힌 사람들이 좋아

→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

《이와오카 히사에/송치민 옮김-토성 맨션 6》(세미콜론,2015) 119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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