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243. 2016.2.29. 뭘 빠뜨렸지?



  밥상을 거의 다 차린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부른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고 이야기한다. 젓가락은 아이들이 놓으면 될 테고, 뭔가 이것저것 더 마련했는데 뭔가 빠졌네? 뭘 빠뜨렸지? 아이들이 방석을 깔고 자리에 앉고 한참 지난 뒤에야 ‘그래, 풀을 무쳐 놓고서 안 올렸구나.’ 하고 깨닫는다. 오늘 아침도 오늘 하루도 고마우면서 맛난 밥으로 몸이며 마음을 살찌울 수 있기를 빌면서 수저를 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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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3-02 21:51   좋아요 0 | URL
엄청난 진수성찬입니다.
정말 군침 돌게하는 사진입니다. ^^
준비하고 차리신 어버이 노고와 맘이 느껴집니다. ^^

파란놀 2016-03-03 20:19   좋아요 1 | URL
그저 날마다 하는 일인데
즐겁게 하려고 생각해요.
조촐하게 차려도
기쁜 마음으로 먹으려고요 ^^
 


 '-적' 없애야 말 된다

 정치적


 정치적 망명 → 정치 망명

 정치적 문제 → 정치 문제

 정치적 인물 → 정치 인물 / 정치꾼 / 정치를 아는 사람 / 정치를 하는 사람

 정치적인 사건 → 정치 사건 / 정치일 / 정치를 보여주는 일

 그는 매우 정치적이다 → 그는 정치에 매우 밝다 / 그는 정치를 매우 따진


  ‘정치적(政治的)’은 “1. 정치와 관련된 2. 정치의 수법으로 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정치(政治)’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고 해요. 이러한 뜻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가리킨다는 ‘정치’라면 그대로 쓸 만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너는 너무 정치적이다”라든지 “정치적인 발언을 하다” 같은 자리에서는 ‘나라 다스리기’하고 동떨어지기도 합니다. 나라 다스리기하고 동떨어진 자리에서 쓰는 ‘정치·정치적’은 ‘내 한몸 살펴서 내 자리 넓히기’하고 잇닿지 싶습니다. 흔히 일컫는 ‘알랑방귀’처럼 ‘알랑대다’라는 뜻으로 쓰기도 하고, 여러 곳에 줄을 댄다는 뜻으로 쓰기도 하거든요. 2016.3.2.물.ㅅㄴㄹ



정치적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영혼의 해방을 되새기고

→ 정치 해방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영혼 해방을 되새기고

→ 정치 사슬에서 풀려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한텐 마음이 풀리도록 되새기고

→ 나라가 해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넋부터 해방되도록 되새기고

→ 나라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한테는 마음을 좋게 가꾸라고 되새기고

→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한테는 마음을 바꾸라고 되새기고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187쪽


정치적으로 옮바른 삶을 살게 하소서

→ 올바르게 살도록 하소서

→ 올바른 길을 걷도록 하소서

→ 올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에드워드 코렌/강현석 옮김-인생, 별 거 있나요?》(이소출판사,2003) 40쪽


정치적 판단은 별개로 하고 성격만은 그렇다는 것이다

→ 정치 판단은 따로 하고 성격만은 그렇다는 것이다

→ 정치는 어떠하든 마음결만은 그렇다는 말이다

→ 정치는 둘째치고 마음결만은 그렇다는 소리이다

→ 정치를 잘하건 못하건 아무튼 마음만은 그렇다는 말이다

→ 정치야 어떠하든 마음만은 그렇다는 소리이다

《남재희-언론·정치 풍속사》(민음사,2004) 143쪽


정치적 상황이 아무리 불안하다 해도

→ 정치 상황이 아무리 불안하다 해도

→ 정치가 돌아가는 모습이 아무리 술렁거린다 해도

→ 정치가 돌아가는 흐름이 아무리 뒤숭숭하다 해도

→ 정치가 아무리 어지럽다 해도

《오드리 설킬드/허진 옮김-레니 리펜슈탈 : 금지된 열정》(마티,2006) 435쪽


당시는 정치적으로 좀 혼란스러웠거든

→ 그무렵은 정치가 좀 어지러웠거든

→ 그때는 정치가 좀 어수선했거든

《윤희진-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책과함께어린이,2009) 61쪽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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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 열린어린이 그림책 16
소르카 닉 리오하스 글, 최순희 옮김, 논니 호그로기안 그림 / 열린어린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33



두 칸 오두막에서 열두 사람이 살림을 짓다가

― 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

 소르카 닉 리오하스 글

 노니 호그로기안 그림

 최순희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 2007.7.13. 8800원



  내가 오늘 곁님이랑 두 아이하고 건사하는 시골집을 돌아봅니다. 이 시골집은 열일곱 평입니다. 마당하고 뒷밭은 백쉰 평 즈음 됩니다. 시골에서는 그리 넓거나 크지 않은 집이라 할 만하지만, 우리가 집에서 누리는 마당이나 뒤꼍을 도시 살림살이로 헤아리면 퍽 넓다고 할 만합니다. 집은 조그맣더라도 마당이 있어서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평상을 놓습니다. 빨랫줄을 드리우고, 이불을 넉넉히 널 만합니다. 마당에는 나무가 자라고, 뒤꼍에는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뒤꼍 한쪽에 흙놀이터를 마련해서 아침저녁으로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면서 놉니다.


  오늘 우리는 네 사람이 이 집에 깃드는데, 우리가 이 집에 깃들기 앞서 옛날에는 열 사람이 넘게 이 집을 보금자리로 삼아서 지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집 바깥에서 일을 하고 놀다가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적에는 집으로 들어왔을 테니까, 열뿐 아니라 열둘이나 열넷도 이 집을 보금자리로 누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작으면서도 얼마든지 너른 집이 될 수 있고, 서로 옹기종기 모여서 보금자리를 이루는 살림집이 모여서 오순도순 이쁜 마을이 이루어진다고 느껴요.




분홍빛 히스 핀 들녘에 작은 집 있었네. 안방과 건넌방 두 칸 오두막이었다네. 라키 맥클라클란과 그 아내, 열 명이나 되는 아들딸 옹기종기 오두막에 모여 살았네. (3쪽)



  1965년에 처음 나온 자그마한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열린어린이,2007)을 읽습니다. 소르카 닉 리오하스 님이 글을 쓰고, 노니 호그로기안 님이 그림을 빚습니다. 이 그림책을 빚은 두 사람은 ‘옛사람(선조)한테 이 책을 바친다’는 말을 책머리에 적어요. 이 말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책을 넘깁니다. 고작 두 칸짜리 자그마한 오두막에 열 아이에다가 어른 둘, 모두 열두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흘러요. 그런데 이 집 아버지는 나그네를 볼 적마다 “여기 방 넓다오” 하고 외쳤대요. “한 사람 더 들어올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외쳤대요.


  이 외침말을 들은 나그네는 하나둘 이 작은 집에 모였고, 그야말로 집안에 들썩들썩 날마다 즐겁고 신나게 이야기잔치와 노래잔치가 벌어졌대요. 바다 건너 저 먼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삶을 누렸구나 싶은데, 우리 겨레도 나그네를 그냥 떠나 보내지 않던 살림이었어요. 작은 집에 작은 밥상이라지만 함께 둘러앉아서 함께 밥술을 들면서 함께 이야기를 지폈어요.



오두막 앞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라키는 소리쳐 불렀네. “여기 방 넓다오. 아, 어서들 와요! 한 사람 더 와도 돼요. 한 사람 더 들어올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오!” (4쪽)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살림살이를 누리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서로 이웃이 되면서 어우러질 만한 살림살이가 될까요? 나그네도 길손도 서로 이웃이 될 수 있을 만한 살림살이가 될까요? 넉넉하고 커다란 집을 누리면서 이웃을 넉넉하고 커다란 마음으로 맞아들이는 살림살이가 될까요? 작고 좁은 집을 누리면서 이웃을 좀처럼 못 사귀는 작고 좁은 살림살이가 될까요? 큰 마음 큰 살림일까요, 작은 마음 작은 살림일까요?


  몸을 누이는 자리는 그리 넓지 않습니다. 살을 맞대고 누우면 한 사람이 더 들어설 만합니다. 여름에는 살을 맞대고 자면 덥겠지만, 겨울에는 살을 맞대고 자면 따뜻할 테고요.


  작은 집에 열이 넘는 사람이 모여서 살면 비좁다고 할 테지만, 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깔깔 하하 이야기꽃을 피울 테고, 서로서로 힘을 모으면 집안일이나 집밖일 모두 한결 훌륭하거나 기운차게 해낼 테지요. 밭을 갈든 논을 일구든 더욱 씩씩하고 멋지게 해낼 만해요.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을 보면, 열두 사람에다가 나그네도 잔뜩 모인 작은 집은 그만 와르르 무너집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작은 집에 모여들어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집이 무너지니 다들 어리벙벙하고 마는데, 이윽고 넋을 차립니다. 자, 이 사람들은 이 ‘무너진 작은 집’에서 무엇을 할까요?



히스 핀 언덕에 주저앉아 한숨만 푹푹, 불평만 투덜투덜. 그러다 일제히 외쳤네. “한숨과 불평은 이제 그만! 라키 맥클라클란과 그의 아내와 아들딸들에게 멋진 새 집을 지어 줍시다.” (19쪽)




  작은 집에 모여서 즐겁게 삶을 누리면서 날마다 잔치 같은 기쁨을 나누던 사람들은 ‘새 집을 짓자’고 뜻을 모읍니다. 무너진 작은 집을 아쉬워하지 말고, 이제 이 모든 사람이 넉넉히 깃들면서 어우러질 만한 ‘크고 아늑한 새 집’을 짓기로 해요. 열두 사람에다가 나그네도 잔뜩 있으니 돌을 나르거나 나무를 베어 옮기기도 수월하겠지요? 한쪽에서는 신나게 집을 짓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나게 밥을 짓겠지요?


  집을 지으면서 새롭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밥을 지으면서 새삼스레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일하면서 노래하고 웃어요. 밥을 먹으면서 노래하고 웃지요. 기쁨과 보람과 자랑과 뿌듯함이 물결칩니다. 사랑스러운 살림살이가 새롭게 퍼집니다. 처음부터 이 보금자리에 깃들던 사람들도, 이 보금자리를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웃음꽃하고 노래잔치를 이루던 사람들도, 새로운 집을 바라보면서 어깨춤을 추어요.


  두레란 아주 쉬운 데에서 실마리를 찾는구나 싶어요. 서로 돕는 살림이란 아주 작은 데에서 비롯하지 싶어요. 함께 짓는 하루이기에 즐거워요. 같이 나누는 살림이기에 기뻐요. 우리 겨레도 이웃 겨레도 지구별 모든 겨레도 예부터 서로 돕고 아끼고 사랑하고 북돋우면서 마을을 짓고 꿈을 가꾸었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온누리에서 가장 넓고 커다라면서 즐거운 집살림을 일구면서 말이지요. 2016.3.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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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연필을 쥐기까지 아직 모른다. 연필을 쥐기 앞서 무언가를 글로 써 보자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나서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고는 연필을 손에 쥐면 그동안 속으로 삭히거나 다스렸던 이야기가 찬찬히 흘러나오곤 한다. 그러니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늘 여느 때에 생각해 놓는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에 글을 쓴다기보다 스스로 짓는 삶결이 글결로 묻어난다고 할 수 있다. 글은 이야기를 말로 옮기면서 적는 일이니까, 말로 옮길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온몸으로 겪는 삶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로 옮길 만한 삶이 없다면 이런 글을 쓰거나 저런 글을 쓰겠다고 아무리 생각해 본들 글을 쓰지 못하기 마련이라고 느낀다. 그저 삶을 누리고, 그저 삶을 즐기며, 그저 삶을 짓다 보면, 글이란 때가 되면 알맞게 술술 풀려나온다고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어떤 삶을 짓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어떤 삶을 누리는가’를 찬찬히 돌아보면 아주 쉽게 수수께끼를 풀 만하리라 본다. 2016.3.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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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 한국사 속 두 사람 이야기 10살부터 읽는 어린이 교양 역사
윤희진 지음, 이강훈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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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38



밥하고 빨래하며 노래하는 아버지

―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윤희진 글

 이강훈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09.10.9. 9500원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쓰던 1980년대를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국민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해마다 ‘장래희망’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장래희망을 종이에 적어서 내야 했는데, 교사가 나누어 주는 종이에는 숫자가 적혀서 1번부터 5번까지 하나하나 적으라 했어요. 1980년대는 2010년대하고 사뭇 다르다 할 테니까 요새 어린이하고 무척 다른 장래희망을 적었을 테지요. 그때에 내가 적은 장래희망 가운데 하나는 ‘가정주부’였습니다. 1번에 가정주부를 적지는 않았지만,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도 2번이나 3번에는 으레 가정주부를 적었어요.


  가시내 아닌 사내가 가정주부를 적는다고 해서 놀린다거나 비웃는 교사나 동무가 제법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내 ‘앞으로 이룰 꿈’ 가운데 하나를 ‘가정주부’로 적었습니다. 이 꿈은 서른 살을 지날 무렵 ‘살림꾼’으로 바꾸었어요. 집일만 하는 돌쇠가 아니라 살림을 가꾸는 슬기로운 어른이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 먹으라고 고추장을 직접 담가서 보내는 아버지는 요즘에도 드물 거야. 겉으로는 엄하게 대해도 자식들을 생각하는 아버지 박지원의 마음이 특별하구나. (16쪽)


봄바람, 달, 술의 즐거움도 놓칠 수 없는데 어떻게 책에만 빠져 있느냐며 책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빠지지는 말라는 뜻이지. 부인의 마음이 웬만한 남자들보다 커 보이지 않니? (27쪽)



  윤희진 님이 글을 쓰고, 이강훈 님이 그림을 그린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책과함께어린이,2009)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린이 역사책입니다. 책이름은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입니다만, 이 책은 조선 무렵 역사를 어린이한테 들려줍니다.


  어느 모로 보면 좀 뜬금없다 싶은 책이름일까요? 틀림없이 뜬금없다고 여길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만하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놓칠 만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사임당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생명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그렸어. 수박밭에서 수박을 갉아먹는 들쥐, 가지 옆을 날아다니는 나비와 방아깨비, 오이 덩굴 옆의 개구리 같은 것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냈지. 그렇게 그린 그림을 친척들이 얻어 가곤 했어. (41쪽)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재산이 넉넉할 리 없었지. 하지만 이익은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오히려 양반입네 하고 일하지 않는 자들을 나무라며 스스로 농사를 지었고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지. (131쪽)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박지원 님이라고 합니다. 박지원 님은 글이나 학문으로 오늘날 우리한테 뜻깊은 옛사람으로 돌아볼 만한 어른이 되지만, 이런 모습뿐 아니라 아이들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하는 몸짓이 대단했다고 해요.


  손수 고추장을 담글 줄 아는 아버지 박지원이라면 틀림없이 밥도 손수 지을 줄 알 테고, 나무를 할 줄도 알 테며, 아궁이에 불을 지필 줄도 알 테지요. 빨래를 할 줄도 알 테고,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거두어 갈무리할 줄도 알 테고요.


  박지원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한테 슬기로운 숨결을 베풀 수 있던 바탕에는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같은 살림넋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기쁨을 아는 몸짓으로 마을과 나라를 살림하는 보람을 헤아리는 이야기를 글과 책으로 여밀 수 있었겠지요.


  이를테면 정치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정치만 잘 하는 정치 전문가가 정치를 얼마나 잘 할는지 생각해 볼 만해요. 전문가가 정치를 해야 정치가 훌륭할까요? 틀림없이 그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치 전문가이지만 집안일을 하나도 모른다거나 서민 삶을 하나도 모른다면? 정치나 행정이나 서류는 잘 만질 줄 알지만, 밥짓기나 옷짓기나 집짓기는 하나도 모른다면? 아이키우기나 집안일은 하나도 모르면서 전문가로 있다면?



고문의 후유증일까. 낯선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정약용은 귀양 온 직후 크게 앓은 적이 있었어. 그는 의학 책을 보고 스스로 약초를 달여 병을 치료했지. 그런 그를 보고 마을 사람이 부탁했어. (88쪽)


정약용은 단순히 유학의 경전들을 읽고 해석한 게 아니라, 현실을 개혁할 방법들을 연구했지. 유배지에서 만난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 고단했거든 … 정약용이 유배 생활 동안 학문에 집중했던 반면, 정약전은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어. 어부들과 술도 마시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살아갔지. (90쪽)



  어린이 인문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는 아주 수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우리 어린이가 인문 지식을 더 많이 갖추기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어린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에 서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훌륭한 역사 인물이 있었다는 지식보다는, 이런 옛사람이 어떤 숨결로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지었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를 읽는 아버지한테 “아버지 그 책 재미있어? 어떤 사람들이 나와?” 하고 묻습니다. 나는 아직 우리 집 아이들한테 ‘역사 인물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습니다. 아홉 살 어린이한테는 좀 먼 이야기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아이들한테 몸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처럼 나는 “김치 담그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함께 노는 아버지”로 지내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마실 다니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함께 나무와 흙을 만지는 아버지”로 지내고, “밥을 아침저녁으로 지어서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수저를 드는 아버지”로 지냅니다.



정도전은 재상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꿨어. 현명한 임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임금도 있을 수 있으니, 임금이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뛰어난 재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122∼123쪽)


천문학에 밝은 사람들을 뽑아 중국 유학을 보내기로 했는데, 거기에 관노 출신 장영실이 들어간 거야. 세종 초기 이미 장영실의 기술은 당대 최고라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관노를 불러 학문에 대해 묻고 유학까지 보내 준 세종 또한 대단한 임금이지? (149쪽)



  오늘 나는 ‘살림꾼’이 되자는 다짐으로 “밥하고 빨래하며 노래하는 아버지”로 하루를 누립니다. 다만, 이 일만 하지는 않습니다. 집안일도 하고 집밖일도 합니다. 이 일 저 일을 몽땅 도맡느라 때때로 등허리가 휩니다. 그런데 등허리가 휠 즈음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멋진 모습을 아버지한테 보여주면서 웃도록 해 줍니다. 누나는 동생을 아끼고, 동생은 누나를 아끼면서 어버이한테 기쁨을 나누어 줍니다. 멋진 소꿉놀이를 아버지한테 보여주고, 고운 글이나 그림을 아이들 나름대로 빚어서 선물로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어린이 인문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옛사람은 저마다 “삶을 노래하는” 어른이었겠구나 싶습니다. 저마다 고단한 일을 겪어야 했든 아픈 일을 맞닥뜨려야 했든 참으로 삶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간 어른이었지 싶어요.


  노비 신분이었어도 과학자로 살림을 꾸린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지요. 모든 권력이 임금한테 쏠리지 않도록 행정을 세우려 했던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지요. 유배지에서 마을 사람들한테 꿈을 보여준 분도 삶을 노래했을 테고요.


  역사책에 이름이 남든 안 남든 우리는 늘 어른이거나 어버이로서 기나긴 삶을 보냅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있든 없든 우리는 언제나 어른이거나 어버이로서 아이들 앞에 서요. 이때에 우리는 어떤 마음이 되거나 어떤 몸짓이 될까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물려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지을까요?


  “된장 담그는 대통령”이나 “간장 담그는 국회의원”이나 “빨래하는 의사”나 “자장노래 부르는 대학교수” 같은 어른이 하나둘 나타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한 가지 일만 잘 하는 전문가이기보다는 아이들하고 삶과 살림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슬기로운 어른이자 살림꾼이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2016.3.2.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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