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읽는다는 것 - 엄마 독서평론가가 천천히 고른 아이의 마음을 읽는 책 40
한미화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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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8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 배우는 살림

― 아이를 읽는다는 것

 한미화 글

 어크로스 펴냄, 2014.8.18. 14000원



  나는 어린이책을 어린이일 적에는 얼마 못 읽었습니다. 내가 어린이였던 1980년대 첫무렵에는 거의 다 전집책이었는데, 전집책은 집에 제법 돈이 있지 않고서야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즈음 내가 다닌 학교에는 학교도서관이 없었고 학급문고도 없었습니다. 내가 살던 인천에서 우리더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라고 알려준 어른도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가고서야 도서관은 ‘시험공부 하러 가는 곳’인 줄 알았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도서관은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여는데, 번호표를 주어요. 번호가 찍힌 표는 ‘책상 번호’이고, 이 종이가 있어야 도서관에 들어가서 ‘내 자리’를 얻어서 그 책상에 틀어박혀 시험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도서관이 많이 달라지지요. 예전처럼 ‘책 없는 도서관’은 자취를 감추지요. 아무튼 나는 어릴 적에 어린이책은 거의 읽지 못한 채 마냥 뛰어놀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땅한 어린이책이 드물었고, 더러 손에 쥔 어린이책은 ‘요즈음 그 책을 다시 들추니 하나같이 일본 어린이책을 몰래 베낀 판’이었습니다.



어린이책을 읽자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소녀가 걸어 나와 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가 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할 때 나는 심부름도 못 갈 만큼 외모를 신경 쓰던 사춘기를 떠올렸다. (9쪽)


똑똑한 척을 하려 들면 사람이 경직되기 마련이라 재미가 없다. 가장 큰 웃음은 자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때 나오는 법이 아닌가. (25쪽)



  책을 비평하는 일을 하는 한미화 님이 평론가 자리에서 살며시 내려와서 ‘어머니 자리’에서 어린이책을 읽은 느낌을 갈무리한 《아이를 읽는다는 것》(어크로스,2014)을 읽습니다. 한미화 님은 어머니(또는 어버이)가 되어 어린이책을 읽는 동안 평론가로서 어린이책을 읽을 때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이책을 손에 쥐면서 ‘삶을 읽는 눈’이 달라지거나 새롭게 트이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린이책을 어린이일 때가 아니라 어른일 때에 읽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린이책을 읽었느냐 하면, 스무 살에 읽고 스물네 살에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 대학교 둘레 책방을 다니다가 만난 어린이책을 읽고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글씨만 빼곡한 ‘어른 인문책’은 온갖 딱딱한 말투로 갖은 어려운 이론이 가득한데, 글씨도 적고 그림이 많은 ‘어린이책’은 퍽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더군요.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이토록 쉽고 부드럽게 들려주는 어린이책으로 ‘토론’을 한다면 훨씬 뜻있고 값있을 뿐 아니라 즐겁게 새 넋을 가꿀 만하겠다고 느꼈어요.



되돌아보니 잔소리는 부모인 내가 마음이 지치고 몸이 힘들 때, 아이를 지나치게 어리게만 취급할 때 더 심해졌던 것 같다. (44쪽)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애정을 쏟지 않는 한,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없다. (67쪽)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에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군대에서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내가 군대에서 볼 수 있던 ‘글’은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내리는 ‘지시사항’이었고, ‘스포츠신문’에다가 ‘ㅈ일보’하고 ‘국방일보’였습니다. 1990년대 군대에 책은 거의 들어올 수 없었지만 ‘재미있게’도 스포츠신문하고 ㅈ일보는 잘 들어왔습니다. 아무튼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첫 날 드디어 손에 쥔 책은 어린이책이었습니다. 스물네 살에 비로소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이때부터 어른 인문책 곁에 어린이책을 나란히 놓으면서 읽었고, 둘레에서 이웃들이 ‘너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면서 왜 어린이책을 읽니?’라든지 ‘너는 장가도 안 간 주제에 왜 어린이책을 읽니?’라든지 ‘너는 혼자 살고 애도 없으면서 어린이책을 왜 읽니?’라든지 ‘너는 대학교도 자퇴해서 앞으로 교사 일도 할 수 없을 텐데 어린이책을 왜 읽니?’ 같은 말을 물을 적마다 몇 가지로 대꾸했습니다. 첫째, “이 어린이책이 참 재미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둘째, “어른책보다 훨씬 훌륭하니까 이 어린이책을 읽어요.” 셋째, “나중에 혼인해서 아이를 낳은 다음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이제부터 바지런히 읽어야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물려줄 어린이책을 제대로 가릴 수 있어요.”



《요술 손가락》을 읽어 보면 어린이들이 얼마나 틀에 박히지 않은 멋진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악당들이 끔찍한 최후를 맞는 걸 얼마나 즐기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79쪽)


그렇다면 톰은 왜 큰어머니나 오빠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고? 왜냐하면 그들은 해티만큼 간절하게 톰을 원하지 않으니까. (129쪽)



  한미화 님은 《아이를 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빌어서 이녁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습니다. 다만, 이 책을 살피면 한미화 님이 살림을 지은 이야기보다는 ‘책 줄거리 소개’가 조금 길어서 이 대목이 아쉬워요. 책 줄거리는 우리가 스스로 읽으면 얼마든지 다 알 수 있으니 ‘줄거리 소개’는 더 짧게 줄이거나 끊은 뒤에, 그 책을 왜 읽었는가를 들려주고, 그 책을 읽으며 받은 기쁨이나 슬픔을 밝히며, 그 책을 읽고 나서 한미화 님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대목을 풀어놓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나는 한미화 님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림을 지으면서 즐겁게 어린이책을 마주하는 이웃을 알았거든요. 평론가로서 추천도서를 소개하려는 책읽기가 아니라,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려는 책읽기를 보여주기에 반갑습니다.



직장에서는 해고와 실직이 아버지를 위협하고, 회사에 매여 가정을 등한시한 탓에 불만과 권태에 찌든 아내는 남편을 주눅 들게 하고, 성공과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돈 못 버는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 할 말이 없다. (208쪽)



  어린이책을 읽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신나는 생각날개’를 가꾸는 기쁨을 누립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은 어른답게 ‘재미난 살림날개’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책에서 생각을 한껏 북돋우는 발판을 얻습니다. 어른은 어린이책에서 살림을 한껏 일으키는 바탕을 얻어요.


  자, 가만히 헤아려 봐요. 아이들은 우리 어른과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바랄까요? 더 많은 돈을 바랄까요?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바랄는지 모르지요. 그래서 아이한테 더 많은 돈을 선물해 줄 수도 있지요. 그러면, 참말로 아이들한테 더 많은 돈을 선물해 보셔요. 그때에 아이들은 또 무엇을 바랄까요? 더 큰 집? 더 빠르고 새까만 자가용? 외국여행? 우주여행?


  아마 이 모두 다 아니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우리 어른과 어버이한테 오직 하나를 바라요. “나랑 같이 놀자!”


  더 많은 돈을 버느라 바쁘기에 아이하고 못 놉니다. 아이하고 못 놀면 아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사랑스레 자라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자라지 못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더 많은 물질만 베풀려고 하다가 그만 물질에만 얽매이고 말아 ‘마음’을 잊고 ‘사랑’을 잃으며 ‘살림’을 놓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마음과 사랑과 살림이 없이 아이를 키운다면, 정작 어른인 우리부터 스스로 안 재미있고 안 보람차고 안 즐거운 하루가 되지는 않을까 궁금합니다.



오로지 어린이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 있다 … 꾸밈없이 순진한 세계를 어린이책에서 만날 수 있다. (249쪽)



  ‘엄마 독서평론가’라고 하는 한미화 님이 책 한 권으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조그맣습니다. 바로 사랑 하나입니다. 사랑으로 어린이책을 읽고, 사랑으로 이녁 아이를 돌보려 합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랑으로 어린이책을 읽을 적에 기쁩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하루가 즐겁습니다. 아이하고 나눌 한 가지는 언제나 ‘즐겁게 어울려 놀듯이 짓는 사랑스러운 살림’이라고 느껴요. 이 대목을 늘 가슴속에 고이 새기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비질을 하고 이부자리를 여미고 집안을 건사하고 텃밭에 씨앗을 심고 나무하고 인사하면서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리라 봅니다. 2016.3.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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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노래 12 - 환한 물결



  한가을은 마을마다 길바닥에 나락을 펼치는 나날. 아침에 나락을 펼치고 저녁에 나락을 거둔다. 이렇게 되풀이하고 되풀이하면서 바싹 말리면 이듬해에 누릴 기쁜 열매를 갈무리할 수 있다. 나락을 펼친 길바닥에는 나락내음이 번지면서 온마을을 휘감는다. 눈부신 볕을 받으면서 나락은 한결 환하고, 따사로운 숨결을 받으면서 마을은 한껏 싱그럽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사진/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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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노래 11 - 풀덩굴 얽힌 고인돌



  풀덩굴 얽힌 고인돌을 본다. 아이들하고 때때로 이 고인돌에 찾아가서 올라타기도 하고, 가만히 귀를 대기도 하며, 이 돌에 올라앉아서 하늘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언제 누가 왜 이 자리에 이 돌을 놓았을까 하고 헤아리다가, 오늘 내가 선 곳에서 두 다리를 어떻게 디디는가를 생각한다. 밭 귀퉁이를 넓게 차지하니 성가실 수 있는 돌이지만, 달리 보면 밭 귀퉁이에 좋은 쉼터가 있는 셈이기도 하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사진/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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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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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7



군사정권은 왜 ‘역사’를 건드렸을까?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박은봉 글

 책과함께 펴냄, 2007.11.24. 16800원



  《한국사편지》를 쓴 박은봉 님이 선보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책과함께,2007)는 책이름처럼 한국사를 놓고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대목을 바로잡으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정작 옳지 않거나 틀릴 수 있다는 대목을 알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주민등록을 해야 하고, 이때에 성하고 이름을 쓰는데요, 이때에 아기한테 붙이는 성을 우리가 널리 쓴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대목을 깨닫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을 할 적에 ‘성’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머니나 아버지 성 가운데 하나를 안 써서는 안 됩니다. 그나마 요즈음은 어머니 성도 처음부터 쓸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만, ‘어머니 성도 아버지 성도 아닌 새로운 성’을 쓸 수는 없어요. 우리는 왜 새로운 성을 쓰면 안 될까요? ‘중국에서 베풀어’ 준 성이 아니라, 한국사람 스스로 새로운 성을 지을 수 없을까요?



고려시대 이전에는 왕족과 극소수의 대귀족만 성을 가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 없이 이름만 있었다. 유력한 호족 집안에서 태어난 왕건조차 성이 없었으니 … 왕실의 체모를 갖추려면 중국처럼 성을 써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는 중국과 신라의 호칭 문화가 다른 데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호칭할 때 신라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성을 불렀으며 이름 부르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겼다. (21, 23쪽)



  ‘성’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 성은 아이가 꼭 물려받아야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집안에 족보가 있다고 여기지만, 우리가 아는 족보 가운데 제대로 된 족보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에서도 성을 쓴 사람은 아주 드물었고, 고려 무렵에도 드물었으며, 조선 무렵이라고 해서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람 누구나 성을 쓰는 일’을 좀 알쏭하게 여길 만하겠지요.


  다시 말해서 ‘아무 성’을 쓴다고 하더라도 족보에 남을 일이 아닐 만하리라 봅니다. 족보가 대수롭지 않다기보다, 족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우리 살림이리라 생각해요. 사내(아버지)로 이어지는 핏줄을 지켜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저마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저마다 기쁨으로 삶을 짓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아버지 핏줄을 잇는다는 ‘성’이란 뜻이나 값이 얼마 없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우리는 아무 성을 잇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답게 삶을 짓고 사랑스레 살림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에도 한국사람은 서로 부를 적에 ‘성을 잘 안 붙여’ 버릇합니다. 성으로 불러야 ‘버릇없지 않다’는 생각은 중국 문화였고, 중국 글이나 말을 쓰던 권력자 문화였다고 합니다. 이런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권력자가 여느 사람한테까지 이 문화를 퍼뜨렸기에 ‘최 영감’이나 ‘박 선생’ 같은 부름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용구 삼촌’이나 ‘순이 이모’나 ‘은봉 선생’처럼 성을 빼고 이름으로만 부르곤 했어요.



사람들은 현모양처 하면 으레 신사임당을 떠올리며 조선시대의 이상적 여성상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실은 현모양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개화기에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여성상이다 … 문제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현모양처가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는 데 있다 … 1970년대 들어 ‘한국적 민족주의’를 외치며 유신체제를 선포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상징 모델로 충무공 이순신과 신사임당을 내세웠다. (79, 87, 90쪽)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다루기도 하는데, 조선 무렵 이 나라 여성한테 바란 모습은 ‘현모양처’가 아닌 ‘열녀’와 ‘효부’입니다. 내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 안팎에서 또래 가시내한테 어른들이 이런 말을 들려주는 모습을 곧잘 보았습니다. 그무렵 또래 가시내들은 왜 저희한테만 ‘열녀·효부’를 바라느냐며 따지곤 했고, 사내더러 너희는 ‘열남’이 될 수 있겠느냐고 따지기도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성한테만 현모양처이든 열녀이든 효부이든 바라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여성은 남성을 사랑하면 될 노릇이고, 남성은 여성을 사랑하면 될 일입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을 키워야지 싶어요.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여성을 열녀나 효부나 현모양처 자리에 두면서 억누르려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아직 ‘평등’이나 ‘민주’나 ‘평화’라는 자리에 서지 못해요. 오늘날에도 남성은 아직 사회평등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제대로 이루려고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정치평등이나 교육평등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사회 얼거리에서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넉넉하고 즐겁게 이루려는 몸짓이 제대로 싹트지 못하기 일쑤예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혼자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지도를 두루 참조하여 종합, 집대성한 지도다. (171쪽)


남방식, 북방식이라는 분류법은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왜냐하면 고인돌 연구가 진점됨에 따라 북방식이라 했던 탁자 모양의 고인돌이 한강 남쪽 전라도에서 발견되고, 반대로 남방식이라 했던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이 한강 북쪽 북한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201쪽)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 나오는 고인돌 이야기를 읽다가, 전남 고흥 곳곳에 수없이 많은 고인돌을 떠올립니다. 학계에 보고된 숫자만 쳐도 남녘에 3만 기를 웃도는 고인돌이 있다는데, 이 가운데 전라남도에 절반 가까이 몰렸다고 해요. 고흥에는 ‘학계에 보고된 고인돌’이 1500기가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 보고가 안 된 고인돌도 많으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흔히 말하는 ‘갑툭튀’ 같은 우람한 돌이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 마당이나 울타리에, 또는 고샅길 한쪽이나 밭 귀퉁이에 버젓이 꽤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갑툭튀’ 돌이 고인돌로 인정을 받거나 보고가 되었다고 하는 얘기는 거의 못 들어요. 웬만한 삽차로는 들어낼 수도 없이 엄청나게 큰 돌인데, 이런 엄청나게 큰 돌이 크기는 거의 다 비슷합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이든 이웃 마을이든 이런 우람한 돌을 볼 적마다 ‘틀림없이 보고 안 된 고인돌’이겠거니 하고 여깁니다.


  그나저나 이 고인돌이란 무엇일까요. 이 고인돌은 어떻게 세웠을까요. 엄청난 무게인 이 돌을 어떤 힘으로 날랐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학설’로 이 고인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가지 학설로 이 고인돌이 어떤 뜻으로 세웠겠거니 하고 여기지만, 아무도 속내를 알 길이 없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고인돌이 처음 선 무렵에 ‘남긴 글(기록)’이 없고, 고인돌이 처음 선 무렵에 왜 이 돌을 날라서 이 자리에 놓았는가를 지켜본 자취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학설을 ‘상식’으로 여기면서 배우지만, 앞으로 ‘먼 옛날 연구’가 제대로 깊이 이루어지면, ‘오늘은 상식으로 여긴 학설’이 뒷날에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가 되리라 느껴요.



거북선 철갑선설이 오늘날까지 위력을 발휘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1960년대 초부터 20년간 계속된 군사정권이 끼친 영향이 크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무인이요 난세의 영웅이었던 이순신을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우상화하면서 기북선 철갑선설은 요지부동의 자리를 굳힌 것이다. (241쪽)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결혼 풍습은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차츰 바뀌어 갔다. 바뀐 건 결혼 풍습만이 아니었다. 아들딸 차별 없이 나눠 주던 균분상속이 딸에게는 적게, 아들에게는 많이 주는 남녀차별 상속으로, 또 여러 아들 중에서도 맏아들에게 많이 주는 장남우대 상속으로 바뀌어 갔다. (400쪽)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학설이란 무엇일까요? 역사 지식이란 또 무어일까요?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거나 가르칠까요?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쓴 박은봉 님은 거북선 상식을 다루는 자리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벌인 일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스스로 올바르지 않은 군사독재를 가리려는 뜻으로 현모양처 그림을 내세웠고 군사영웅 그림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속 제도’도 정치나 사회가 바뀌면서 어느새 ‘차별’이라는 모습으로 달라졌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그림이나 모습은 오늘날 ‘그냥 상식’이라도 되는 듯이 퍼져서 굳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 군대에 짓눌리는 식민지로 살아야 했던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라고 해요. 인도차이나에 있는 여러 나라는 프랑스라는 굴레를 떨치려 했는데, 1950년대 그무렵에 한국군이 그곳에 가서 ‘프랑스를 돕는’ 전쟁을 해야 했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길을 걷는 모습이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무척 아찔한 일이지 싶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짓눌리며 끙끙 앓던 무렵, 한국을 더 짓누르면서 일본 제국주의 손을 거드는 군대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면 됩니다.



1954년 1월 28일, 이승만은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고 주한 유엔군 사령관 존 헐에게 제안했다. 당시 베트남, 라오스를 비롯한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프랑스와 디엔비엔푸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428∼429쪽)



  이제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덮으며 생각을 갈무리합니다. 정치권력이 역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상식’을 뒤집거나 엉뚱하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뭣도 잘 모르는 채 이대로 배워야 합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성적을 좋게 받으려면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대로 달달 외워야 하거든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테러방지법이 불거질 뿐 아니라, 역사 교과서를 정치권력이 함부로 손을 대려고 합니다. ‘상식 아닌 상식’을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상식 아닌 상식을 상식으로 여기면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군국주의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지난날 군사독재 정권이 했듯이 ‘독재 미화’와 ‘군사 영웅’을 드높일 뿐 아니라 ‘여성은 현모양처’라는 그림을 퍼뜨리겠지요. 요즈음은 아기를 여럿 낳으면 ‘애국’이라고까지 말하는 일이 마치 ‘상식’이 되는 마당입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나야 하고, 아이는 어른이 슬기롭게 삶을 짓는 이야기를 기쁨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스스로 어른답게 살림을 아름답게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 입맛에 따라 뒤바꾼 ‘상식 아닌 상식’이 아니라,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가꾸어서 나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건드리더라도 속내를 꿰뚫어보는 눈길을 가꿀 노릇이요, 정치권력이 역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우리 삶과 살림을 지킬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3.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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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해요



버스를 타고 나들이할 적에는

입이 아닌

마음속으로 노래해요.


할아버지가 모는 자동차를

얻어타는 날에는

큰 목소리로 노래하지요.


논둑길을 걸을 적에는

동생하고 사이좋게 달리며

함께 노래해요.


숲길을 걸을 적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기쁘게 노래하지요.


잠자리에 드러누울 적에는

아버지가 가만가만 나긋나긋

보드라이 노래해 주어요.



2015.12.9.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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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3-10 15:55   좋아요 0 | URL
버스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 자동차는 큰 목소리로,
논둑길은 함께,
숲길은 춤까지,
잠자리에서는 아버지의 보드라운 숨결로~~~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행복한 두 아이들의 모습이!^^



Grace 2016-03-10 16:00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의 <몽실언니> 독후감에 질문 댓글 단지 몇일 된 것 같은데,
답이 없으셔요. 혹 보시지 못하셨는가요?^^

파란놀 2016-03-10 17:22   좋아요 0 | URL
아, 이제서야 보았습니다 ^^;
요즈음 하루 내내 아이들하고 지내느라 바빠서
댓글 달려도 미처 못 보거나 놓치기 일쑤예요.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