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폭신걸상 고치기



  아이들이 폭신걸상에 올라서서 콩콩 구르면서 놀다가 폭신걸상 다리 한쪽이 주저앉았다. 바닥판이 부러졌기에 달리 손을 쓰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광에 모셔 두었는데, 봄맞이 청소를 요 한 달 내내 조금씩 하는 동안 이 폭신걸상을 꺼내 보았다. 어떻게든 고쳐서 쓰자고 생각하며 며칠 동안 들여다보았고, 바닥판을 나무로 덧대어 나사못으로 조이면 되살릴 수 있겠다고 느꼈다. 바람이 가라앉은 날 면소재지에 가서 나사못을 몇 장만하고는, 볕이 좋은 날 마당에서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한다. 모든 손질을 마치고 나사못을 조이니 제법 앉을 만하게 된다. 이제 봄볕이 아주 좋은 날 신나게 빨아서 말리면 끝.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직 이 폭신걸상을 빨지 않았어도 둘이 나란히 앉아서 놀고 싶다. 볕이 곱게 드는 아침에 폭신걸상을 마당에 내놓으면 어느새 볕바라기를 하며 폭신걸상에 앉는다. 좋지? 재미있지? 참말 걸상을 마당에 내놓고 볕바라기를 하면 즐거운 날씨로구나. 2016.3.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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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주권이다
윤석원 지음 / 콩나물시루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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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8



미국은 쌀 농가소득에서 70%가 보조금?

― 쌀은 주권이다

 윤석원 글

 콩나물시루 펴냄, 2016.2.22. 13000원



  오늘도 언제나처럼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립니다. 미리 쌀을 씻어서 불려 놓고, 국이랑 밥을 함께 끓이면서 다른 반찬을 마련합니다. 국이 제법 끓었다 싶으면 불을 여리게 맞춘 다음에 뒤꼍으로 가서 쑥을 뜯습니다. 봄에 실컷 누리는 쑥으로 국을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쑥이 더 오르면 밥에도 쑥을 넣어 쑥밥을 짓고, 쑥버무리도 빚으려고 해요.


  밥을 거의 다 지을 즈음 아이들을 부릅니다. 아이들은 방이나 마루나 마당이나 고샅이나 뒤꼍에서 놀다가 “밥 먹을 사람?” 하고 부르는 소리에 “야, 밥이래! 밥 먹으러 가자!” 하고 웃으며 소리칩니다. 나는 이 소리를 들을 적마다 괜히 더 즐겁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맞이할 적에도 기쁘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밥짓는 보람을 물씬 느껴요.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호주와 같은 소위 선진국들은 식량파동을 겪지 않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와 보조정책으로 농업이라는 산업을 유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쌀 농가소득의 약 70%가 보조금이고 EU농가 소득의 약 절반 이상이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33쪽)


쌀 농가 소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야 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러한 논의를 먼저 진행하면서 쌀시장 개방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순서이다. (79쪽)



  중앙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을 두 해 반 남기고 미리 그만둔 뒤에 강원도 양양에서 올해(2016년)부터 ‘농민’으로 바뀐 삶을 누리려 한다는 윤석원 님이 쓴 《쌀은 주권이다》(콩나물시루,2016)를 읽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는 일곱 해 앞서 ‘농업경제학과(산업경제학과)’를 구조조정해서 경제학부로 통합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윤석원 님은 매우 크게 충격을 받았고, 강단에서 물러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때부터 깊이 헤아렸다고 합니다.


  이제 강단에서 물러났으니 ‘교수’ 아닌 ‘농민’이라는 이름이지요. 앞으로는 ‘교수님’ 아닌 ‘시골 아재’나 ‘시골 할배’라는 이름이 익숙한 나날이 될 테고요. 글이나 책이 아닌 온몸으로 흙을 말하는 삶이 될 테며, 목소리나 학문이 아닌 땀방울하고 열매로 시골살이를 말하는 살림이 될 테지요.



현재 쌀 가격 기준으로 쌀 한 가마에 현재의 16만 원에서 3만 2천 원이 떨어져 12만 8천 원이 된다면 수입쌀과 가격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10년 후 쌀 가격이 12만 8천 원이 된다면 그동안 물가는 오를 것이 뻔한데, 그 가격으로 농사나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120쪽)


정부와 국회가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왜 이리 현장농민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55쪽)



  《쌀은 주권이다》를 읽으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대목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는 정부가 농업보조금을 무척 많이 댄다고 하는 대목을 처음으로 배웁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농가수입에서 70%가 농업보조금이라 하니, 한국 농업하고 대면 한국은 도무지 ‘경쟁력’이 생길 수 없구나 싶습니다. 한국 농업에 보조금이라 할 만한 돈을 시골 농사꾼한테 주거나 베풀기나 할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는 있기나 할까요?


  그래도, 한국에서 녹색당은 ‘기본소득’을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 기본소득’을 조금 더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골에서 땅을 부치는 사람도, 앞으로 시골에서 살며 땅을 부치고 싶은 사람도, 농업 기본소득으로 50만 원이나 70만 원을 누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한국 농업은 크게 탈바꿈할 만하리라 생각해요.


  농업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시골사람 누구나 농약을 덜 쓰는 한결 정갈한 농업으로 바뀔 수 있고, 도시에서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시골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살림으로 거듭날 만하리라 봅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도 농업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도시에서만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을 펼치려 하는 젊은이도 시골로 하나둘 찾아가서 시골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새로운 꿈을 지피는 몫을 맡을 수 있을 테고요.



우리 사회는 어찌하여 전 농지의 약 50%, 수도권의 농지는 약 70∼80%가 부재지주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 정작 농지가 필요한 농민은 농지가 없고, 농지가격은 엄청나게 비싸 농민이 소유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190쪽)


2005년에 도입한 쌀 정책은 한마디로 실패다. 실패한 정책을 지속한다는 것은 정책당국의 직무유기 아닌가. 얼마나 더 쌀 농업이 무너져야 깨닫겠다는 것인가 … 쌀 실질소득이 지난 8년여 동안 25%가량 줄었는데도 기껏 2∼3% 인상한다는 것을 쌀농업 포기정책을 넘어 쌀농업 말살정책이라 할 만하다. (222쪽)



  밥을 맛나게 먹은 아이들은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즐겁게 놉니다. “오늘 밥은 무엇이야?” 하고 묻는 아이들한테 “오늘 밥은 맛있는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즐거운 밥.”이라 말하거나 “오늘 밥은 신나는 밥.”이라 말합니다. 밥상맡에서 마지막 밥풀까지 삭삭 훑어먹으면서 “오늘도 고맙게 잘 먹었구나. 이 고마운 기운을 몸에 기쁘게 받아들여서 활짝 웃고 뛰놀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밥심으로 놀고, 밥심으로 일하지요. 고기를 더 먹든 풀을 넉넉히 누리든 모두 밥입니다. 빵을 먹든 떡을 먹든 우리는 언제나 ‘밥을 먹는다’고 말해요. 몸을 살리는 밥이요, 마음을 새롭게 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밥입니다.


  경제발전이라는 틀에서는 논이 아닌 공장이나 관광단지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아파트가 들어서야 돈이 된다고 하지만, 삶과 살림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논을 둘러싸고 조촐한 마을하고 아름드리 짙푸른 숲이 있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돈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돈이 있어도 숲이 없고 냇물이 망가져서 바람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다 아프지요. 돈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고속도로가 있어도,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냇물과 빗물이 있는 터전이 없으면, 삶이 삶답기 어렵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정치와 행정을 맡은 일꾼들이, 그러니까 우리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는 일을 맡은 ‘심부름꾼’들이 《쌀은 주권이다》를 함께 읽으면서 한손에는 호미나 쟁기나 괭이를 쥘 수 있기를 빕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보지 않는다면 흙과 쌀과 풀과 숲과 나무와 냇물과 바람과 햇볕이 우리 삶을 어떻게 북돋우는가를 제대로 알기 어려울 테니까요. 2016.3.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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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03. 마지막 눈 (2016.2.29.)



  2월 끝자락에 지난겨울 마지막 눈이 내렸다. 어떻게 마지막 눈인 줄 아느냐 하면, 벌교만 하더라도 3월에 눈이 내릴 만하지만, 고흥은 3월에 도무지 눈이 못 내리는 포근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지. 3월에도 갑작스레 눈이 내릴 수 있겠지. 아무튼 2월 끝날에 내린 눈을 만나면서 새 겨울이 올 때까지 마지막 눈이 되겠다고 느꼈다. 놀이돌이는 이 마지막 눈을 마음껏 누리면서 장난감 짐차를 눈밭에서 돌돌돌 굴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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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들어 볼게



  살림순이는 즐겁게 짐을 나를 수 있다. 살림돌이도 누나 못지않게 짐을 들 수 있다. 두 아이는 한 번 짐을 맡으면 거의 끝까지 그대로 들려고 한다. 그래 너희는 언제나 씩씩하고 훌륭하단다. 작은 짐꾸러미 하나만 맡더라도 너희 아버지는 어깨가 홀가분하지. 다만, 아직 괜찮으니 조금 더 클 때까지 짐꾸러미는 미루어도 돼.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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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양말이란



  곁님이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선물하려고 양말을 한 켤레 떴다. 이 뜨개양말을 보내는 길에 ‘아기띠’를 찾아서 함께 보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안고 업으면서 쓰던 아기띠를 잘 빨고 말래서 잘 두었는데, 막상 너무 잘 둔 탓에 어디에 두었는지 한참 못 찾았다. 아이들 겨울옷하고 봄옷을 갈무리하다가 드디어 아기띠를 찾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뜨개질이 손에 익고 손놀림이 빠르다면 하루에 여러 켤레를 뜰 수 있을까? 뜨개질을 해 본 사람은 알 텐데 양말 한 켤레를 뜨기까지도 품이 꽤 많이 든다.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손길하고 사랑이 작은 뜨개양말 한 켤레에 깃든다. 이를테면, 이 뜨개양말을 마무리하기까지 예닐곱 시간쯤 걸린다 하더라도 ‘뜨개질을 익히고 마름질을 배우며 실하고 바늘을 장만하기’까지 들인 품하고 겨를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냥 뜰 수 있는 작은 양말이란 없다.


  우리가 손수 살림을 짓는 길을 익힌다면, 무엇 하나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을 테지. 우리가 기쁘게 살림을 가꾸는 길을 걷는다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고운 손길을 담아서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꿀 수 있을 테지. 손수 하는 곳에 사랑이 흐르고, 손수 짓는 곳에 삶이 있다. 2016.3.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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