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216] 룰루랄라



  신나는 일이 있으면 저절로 노래가 나와요. 콧노래도 나오고 입으로도 온갖 가락이랑 말이 기쁘게 흐르지요. 이때에 ‘랄랄라’ 노래하기도 하고, ‘라랄라’나 ‘라라라’ 노래하기도 해요. ‘룰루루’ 노래하거나 ‘루룰루’ 노래하거나 ‘루루루’ 노래하기도 합니다. ‘랑랑랑’ 노래할 수 있고, ‘라리랄라’ 노래할 수 있으면 ‘리리리리’ 노래할 수 있어요. 신나거나 즐겁거나 기쁘면 ‘ㄹ’로 여는 말이 모두 노랫가락이 되어서 재미나게 춤추어요. 그래서 이를 갈무리해서 ‘룰루랄라’처럼 쓰기도 해요. 모두 ‘ㄹ’이 첫머리에 들어간 ‘룰루랄라’인데 ‘루룰라랄’처럼 말해도 재미나고, ‘라랄룰루’라든지 ‘라리랄라’라든지 ‘로리롤로’처럼 꼴을 살짝 바꾸면서 마음껏 놀 수 있어요. 때로는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하면서 노래하고, ‘랑랑랑 랑랑랑’ 노래한다든지 ‘름름름 름름름’ 노래할 만하지요. 자, 또 어떤 ‘ㄹ’ 노래를 부르면 재미있을까요?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들면서 밝게 웃는 낯으로 다 함께 모여서 신나게 ‘ㄹ’을 노래해요. 434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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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이 갈라질 적에



  그제였다. 손톱 밑이 갈라졌다. 나무를 만지다가 갈라졌을까, 풀을 뜯다가 갈라졌을까. 아니면 부엌일을 하다가, 걸레질을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뭘 하다가 갈라졌을까. 어디에 폭 찍힌 듯이 갈라진 손톱 밑 때문에 설거지를 할 적마다 뜨끔거렸다.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서 설거지를 미루다가, 비닐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 보았다. 이런 손으로는 빨래를 할 수 없어서 그제는 비가 온다는 핑계로 빨래도 미루었다. 손톱 밑이 갈라지고서 하루 동안 손을 제대로 못 썼고, 하루는 어느 만큼 아물어서 손을 썼다. 오늘은 손톱 밑이 많이 아물었구나 싶어서 아침부터 신나게 빨래를 했다. 빨래를 마친 뒤에는 쑥하고 갈퀴덩굴을 뜯었고, 밥을 차렸으며, 이제 등허리를 살짝 펴려 한다. 볕이 좋은 봄날에 아이들은 집과 뒤꼍과 고샅을 넘나들면서 논다. 풀내음도 꽃내음도 싱그러운 하루이다. 손톱 밑도 오늘이 지나가면 말끔히 낫겠지.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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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창비시선 367
민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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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3



쑥 캐서 버무리 빚어 고향동무 만나고픈 할배

―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민영 글

 창비 펴냄, 2013.9.20. 8000원



  비가 그친 봄은 한결 맑습니다. 바람도 볕도 더욱 싱그럽습니다. 아침 빨래를 마치고 마당을 내다보니 참새 세 마리가 서까래하고 빨랫줄 사이를 오갑니다. 마루문을 여니 이 참새들은 마당 가장자리 초피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요 며칠 사이 늘 보는 참새입니다. 어쩌면 이 참새는 몇 해 앞서부터 겨울마다 우리 집 서까래에 깃들어 지내던 이웃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서까래에서 참새가 흔히 겨울나기를 하고 새끼를 까거든요.


  쑥이 돋고 매화꽃이 피며 동백꽃이 터지는 새로운 봄날입니다. 참새들은 서까래를 자꾸 드나드는데 어쩌면 또 알을 낳았을 수 있어요. 그리고 머잖아 제비가 이 땅에 돌아오면 처마 밑 둥지에 깃들 테지요. 올해에도 참새하고 제비가 우리 집 처마 밑이나 서까래 언저리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하고 기다립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날아가는가? / 바람은 저 남쪽 쪽빛 바다에서 불어왔다가 / 아스라이 눈 덮인 저 북쪽 높은 산으로 날아가고, / 다시 발길을 돌려 남쪽에 있는 섬나라로 돌아온다. (바람의 길)



  1934년에 철원에서 태어난 뒤 네 살 무렵에 만주 간도성 화룡현으로 가서 살다가 1946년에 두만강을 건넌 뒤 남녘에 깃들어 여든 나이를 훌쩍 넘었다고 하는 시인 민영 님이 선보인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창비,2013)를 조용히 읽습니다. 쑥내음이 물씬 피어나는 곁으로 매화꽃내음도 어우러지는 봄날에 이 작은 시집을 고즈넉하게 읽습니다. 새벽부터 새소리를 반가이 들으면서 시집을 가만히 읽습니다. 오늘은 볕도 바람도 좋아서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즐거이 읽습니다.



땅에서 뽑아든 흙 묻은 손을 / 하늘 높이 들어 보이는 / 농부들의 기쁨을 아시는가? (격양가)


찬바람이 불어도 아이들은 / 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고 있다. (겨울 강에서)



  여든 살이 넘은 할아버지 시인도 노래하지만, 아이들은 찬바람이 불어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놉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 살림이 가난해도 씩씩하게 놉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가 가멸찬 살림이어도 씩씩하게 놉니다. 어떤 자리 어떤 살림 어떤 나날이어도 아이들한테는 놀이가 있어서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그리고 시골지기는 새봄에 새롭게 흙을 만지면서 한 해를 열어요. 나라에서 농업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더라도 그예 살가이 흙을 만집니다. 해마다 시골에서 어린이하고 젊은이가 빠르게 도시로 떠나서 너무 고요하다 싶은 마을이 되어도 꿋꿋하게 흙을 만집니다. 따스한 볕에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이 땅에서 알뜰살뜰 흙을 만집니다.



하모니카가 지나간다. / 야심한 시간 11시 35분 / 손님이라곤 없는 전동차 안에서 / 잘 있거나 나는 간다 / 이별의 말도 없이…… / 하모니카 소리가 지나간다. (소야곡)


여기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 육십년 전에 떠나온 / 고향 마을이 보인다. // 불에 타 허물어진 돌담 곁에 / 접시꽃 한 송이가 / 빨갛게 피어 잇다. // 얘들아, 다 어디 있니, / 밥은 먹었니, / 아프지는 않니? // 보고 싶구나! (비무장지대에서)



  할아버지 시인은 쑥을 캡니다. 할아버지 시인이 쑥을 캐면 이녁 곁님이 쑥버무리를 합니다. 봄날에 쑥을 캐는 할아버지 시인은 남북으로 갈리면서 다시 찾아갈 수 없도록 길이 막힌 옛 마을을 그립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쑥을 캐는데, 오늘 저곳에서도 쑥을 캘까 하고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하는데, 오늘 저곳에서도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할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눈앞에서 마주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는 늘 도사리는 고향 마을입니다. 두 발로 찾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자리에는 늘 맴도는 고향 마을입니다.


  쑥도 접시꽃도 울타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직하게 울타리를 쌓더라도 꽃씨는 바람을 타고 가뿐히 울타리를 넘습니다. 아무리 두껍게 시멘트담을 세우더라도 풀씨는 바람에 얹히 사뿐히 시멘트담을 넘어요.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쇠가시로 된 울타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총을 든 군인이 지켜서더라도 꽃씨랑 풀씨랑 나무씨는 모두 사뿐사뿐 이곳저곳 드나듭니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 매지리로 간다니까 아내는 / 쑥을 캐 가져오라고 말했다. / 맷돌에 갈아서 체로 친 미분에 / 물에 씻은 봄쑥을 넣어 / 쑥버무리를 만들면 예전에 떠나온 / 고향 생각이 날 거라고 하면서. (매지리에서 쑥을 캐며)


이 양반아, / 나는 새벽에 나오면 밤늦게까지 / 이 쓸쓸한 간이역을 지키고 있다오. / 설마 당신이 나보다 더 / 힘들다고는 하지 않겠지요? (기차를 잘못 내리고)



  쑥부침개를 먹고 싶다는 큰아이하고 쑥을 뜯으러 뒤꼍에 서는데, 마을 할매 한 분이 우리 집 뒤꼍에서 벌써 동이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쑥을 캐셨습니다. 할머니, 우리 집 뒤꼍 쑥은 우리가 뜯어서 먹으려고 그동안 고이 모셨는걸요? 말 없이 들어오셔서 이 쑥을 그렇게 샅샅이 캐시면 어쩌시나요.


  겨우내 기다리던 쑥이 얼마 안 남습니다. 그러나 남은 쑥은 새로 돋을 테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씨앗도 곧 새로 깨어나겠지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봄풀을 뜯기로 합니다. 갈퀴덩굴하고 살갈퀴하고 봄까지꽃하고 코딱지나물을 훑어서 풀부침개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쑥만 부침개로 맛나지 않으니까요. 쑥도 숱한 봄풀도 모두 반가우면서 맛난 봄밥이요 봄맛입니다. 삼월로 접어들었어도 북쪽은 많이 추워서 쑥이 안 돋았을는지 모르는데, 곧 북쪽 이웃들도 쑥내음을 맡고 손가락마다 쑥물이 들면서 맑고 환하면서 고운 봄바람을 마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저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요?” / 하고 물었더니, / 싸리비로 마당을 쓸던 노스님이 / “목백일홍이지요.” 하고 대답했다. (목백일홍)


벌써 저 / 시끄럽게 떠드는 바깥세상에 / 나가지 않은 지도 석달이 지났다. (겨울 들판에서)



  시집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를 선보인 민영 님은 앞으로 새로운 시집을 더 선보이실 수 있을까요? 그리운 곳을 그리는 이야기도, 그리운 곳을 가지 못하는 채 일흔 해 가까이 살아온 이야기도, 이곳에서 새롭게 짓고 가꾼 살림하고 얽힌 이야기도, 여든 나이에 나무 이름을 새로 배우는 이야기도, 시끄러운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하루 이야기도, 모두 고즈넉하게 시 한 줄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얼어붙은 두 나라 사이에 모든 앙금이 풀리기를 빕니다. 차가운 마음이 부딪히면서 갈래갈래 찢긴 이곳과 저곳 사이에 고운 봄바람이 불면서 다 같이 봄잔치를 벌이고, 봄쑥노래를 부르며, 봄맞이 쑥버무리를 두레상에 올려서 막걸리 한 잔을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기쁜 삶을 할아버지 시인이 더없이 환한 웃음으로 지켜보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시 한 줄이 예쁜 노래로 흐르는 시집을 더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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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그림책



  괴물이나 공룡을 다룬 그림책이 참 많아요. 왜 이렇게 아이들은 괴물이나 공룡을 좋아하나 하고 돌아보면, 나도 어릴 적에 이런 그림책을 곧잘 보았습니다. 괴물이나 공룡이 잔뜩 나오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밤에 무서워서 오줌 누러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쩐지 자꾸 이런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어른이 된 오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흔한 말로 ‘괴물’이라고 해도, 눈을 감고 바라보면 얼굴이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만날 수 있어요. 괴물이나 공룡으로 드러나는 목숨은 겉모습 아닌 속마음으로 마주할 적에는 그저 우리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느낀다면, 내 눈에 괴물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 괴물만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내가 스스로 괴물이라는 넋이 되었기에, 다른 괴물을 찾거나 느낀다고 할까요. 또는 내가 괴물이나 공룡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괴물 그림책이나 공룡 그림책을 찾는 셈이요, 괴물 그림책이나 공룡 그림책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덩치가 크다거나 생김새가 무시무시하다고 해서 괴물이나 공룡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덩치가 작거나 생김새가 귀여워도 괴물 짓이나 공룡 놀음을 할 수 있어요. 겉모습 때문에 괴물이나 공룡이 되지 않아요. 속마음 때문에 괴물이나 공룡이 되지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이들 앞에서 괴물 짓이나 공룡 짓을 일삼기 때문에 아이들은 괴물 그림책이나 공룡 그림책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괴물인 어른하고 함께 살아야 하니까, 공룡인 어버이하고 같이 지내야 하니까, 아이들도 괴물이나 공룡 노릇을 해야 할 테지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없는 문명사회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골목이나 학교 앞에서도 자동차는 거침없이 달리기만 해요.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은 학원을 으레 여러 군데를 다녀야 해요. 중학교 문턱에 이르면 놀이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오직 입시지옥으로 내달려야 해요. 아이들은 이 모든 사회 얼거리를 온마음과 온몸으로 느껴요. 그러니, 아이들이 마음을 달래려고 괴물이나 공룡을 찾을 수밖에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윌리엄 스타이그 님은 《엉망진창 섬》이나 《슈렉》 같은 그림책을 그렸어요. 두 그림책을 보면 괴물이나 공룡이 잔뜩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책에 나오는 괴물이나 공룡은 그리 안 무섭다고 느낍니다. 저만 안 무섭다고 느낄는지 모르겠는데, 이 그림책에 나오는 괴물이나 공룡이 ‘어떤 마음씨’인가를 살핀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져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어떤 마음씨로 바라보는가요?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를 어떤 마음결로 마주하는가요? 괴물 그림책에서 괴물이 참말 괴물인지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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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서 그림책 읽기



  예쁜 그림책은 우리 가슴속에 있는 고운 빛을 살려 주는구나 싶어요. 어린이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가슴속에서 고운 빛이 자라는구나 하고 문득 느끼거나 시나브로 깨달으리라 봅니다. 어른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고운 숨결이 샘솟는구나 하고 문득 알아차리거나 시나브로 배우리라 봅니다.


  《와일드 보이》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숲에서 숲에서 태어난 뒤로 혼자 살아가는데, 이 숲아이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숲에서는 외로울 틈이 없기도 하지만 날마다 새로운 일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알다가 배부른 기쁨을 배웁니다. 무서움을 느끼다가 무서움을 떨치는 길을 스스로 배웁니다. 이러던 아이는 그만 사냥꾼한테 사로잡혀서 도시에서 실험 대상이 되었고, 실험 가치가 없다고 내팽개쳐지면서 더욱 슬픈 나날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이 숲아이를 건사한 과학자 한 사람이 숲아이를 다른 과학자하고 달리 따스하게 보살피려고 했다는데, 막상 그 과학자도 이 아이를 지켜본 실험보고서를 쓸 뿐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빚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삶과 아이’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보살필 마음일까요? 과학자 자리에 서는 어른이라면 숲아이가 되든 도시아이가 되든 실험 대상이나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아도 될까요? 회사나 공장이나 일터에서 바쁘기 때문에 어버이 자리에 선 어른들은 집밖에서 돈 버는 일에만 바빠도 될까요?


  나라에서는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라에서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꿈으로 가르치며 노래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살림이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삶을 지어야지 싶습니다.


  어른으로서 그림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우리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을 ‘전문가 추천’에 맡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읽을 그림책이니 어른이자 어버이인 내가 스스로 하나하나 챙기고 살피고 읽은 뒤에 아이한테 건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밥으로 삼을 그림책이니 어른이자 어버이인 내가 손수 찬찬히 돌아보고 따지고 느낀 뒤에 아이하고 함께 누립니다. 그리고, 그림책을 때때로 덮은 뒤에 종이랑 연필이랑 크레파스를 꺼내어 아이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요. 우리 살림을 북돋울 우리 그림을 그려요. 아이하고 어버이가 함께 지을 삶을 꿈꾸면서 우리 그림을 새롭게 그립니다.


  어른으로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배우도록 이끄는 즐거운 그림책을 어른으로서 꼼꼼히 살핍니다. 아이들이 따사로운 살림을 가꾸도록 돕는 신나는 그림책을 어른으로서 바지런히 헤아립니다.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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