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
정경조.정수현 지음 / 삼인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40



마을 빨래터를 신나게 치우는 작은 문화

― 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

 정경조·정수현

 삼인 펴냄, 2016.2.29. 12000원



  정경조·정수현 두 분이 쓴 《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삼인,2016)를 읽다가 문득 ‘신나다’라는 낱말을 떠올리면서 우리 한국말사전을 돌아봅니다. ‘신나다’라는 낱말은 201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낱말로 써도 ‘틀리지 않’습니다. 2014년 11월까지는 ‘신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했어요.


  재미있게도 ‘재미나다’는 예전부터 늘 한 낱말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신나다’는 이제서야 한 낱말로 삼는 한국말사전이에요. 그런데 짜증이 난다고 할 적에는 아직 ‘짜증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옳다고 합니다. 똑같이 ‘나다’가 뒤에 붙는 말마디인데, 어느 말은 붙이고 어느 말은 띄어야 하는 한국말 맞춤법입니다. 이를테면 ‘화나다·성나다·뿔나다·골나다·성질나다’는 붙여야 하지만 ‘부아 나다·짜증 나다·신명 나다’는 띄어야 하지요. ‘제금나다’ 못지않게 ‘짜증이 나다’ 같은 말도 사람들이 널리 쓰는데 앞으로 언제쯤 되어야 ‘짜증나다’가 한 낱말로 한국말사전에 실릴 만할까요?



‘신바람’과 ‘신명’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어다 … 신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놀이를 통한 공동체적 유대감이다. 신명은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더 빛을 발한다. (27, 31쪽)


한국 춤에서 가장 보편화된 동작은 어깨를 움직이는 춤이다. (52쪽)



  그러고 보면, 이 책에 붙은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살맛 나다’처럼 적어야 오늘날 맞춤법입니다. ‘살맛’은 한 낱말이요 ‘맛나다’도 한 낱말입니다. 그렇지만 ‘살맛나다’는 아직 한 낱말이 아니에요. “살(살아갈) 맛이 나다”인 ‘살맛나다’를 한 낱말로 삼을 수 있는 한국말 살림살이라면, 우리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한결 재미나면서 신나게 그릴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판을 벌이고 상호 작용을 하는 추임새 문화가 몸에 배었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공연 관람을 하려면 좀이 쑤셔 견디기 어렵다 … 예부터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노는 공동의 자리를 ‘판’이라 불러 왔다. 씨름을 하는 곳은 씨름판, 노름을 하는 곳은 노름판, 윷놀이를 할 때조차 윷판이라 했다. (65, 69쪽)


추임새가 사라지면서 한국인들은 점점 남을 격려하는 데는 인색해지고 비난하는 데는 능숙해졌다. (84쪽)



  씨름판이나 노름판이나 윷판이라는 말마디를 듣다가, 일판이나 놀이판이나 살판이라는 말마디를 새롭게 떠올립니다. 어른한테는 일판이요 아이한테는 놀이판입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한테는 살판입니다. 그리고 살림판이요 사랑판일 테지요.


  글을 쓰면 글판이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판입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판이며, 밥을 지으면 밥판입니다. 빨래를 하는 빨래터는 빨래판이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들하고 우리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으며 봄맞이 물놀이를 즐겼어요. 나는 신나게 물이끼를 걷고,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합니다. 아이들로서는 신나게 노는 자리이니까 놀이판이면서 ‘신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나게 논다고 할 적에는 ‘신놀이’라는 말을 새롭게 써 볼 수 있을까요?


  《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에서 밝히는 ‘판’이나 ‘추임새’라는 말마디를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거드는 한마디는 언제나 추임새입니다. 기쁘게 주고받는 한마디는 새로운 이야기판으로 거듭납니다. 그러니 우리 겨레는 판소리를 즐겼고, 판놀이를 했을 테지요. 판소리는 마당소리요, 판놀이는 마당놀이였을 테고요. 그러고 보니 아예 ‘마당 + 판’으로 ‘마당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신명이 나는 자리이기에 ‘마당판’이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여러 잔치 문화를 즐겨 왔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음식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던 문화가 바로 잔치였다. (162쪽)


젓가락을 쓰는 한·중·일 세 나라 중에서 특히 한국 사람들의 젓가락 사용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 그 이유는 쇠젓가락을 사용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259쪽)



  예부터 한겨레를 두고 흰옷 입는 겨레라고도 했지만, 흰옷 입은 발자취보다는 춤과 노래를 즐긴 발자취가 훨씬 길다고 느낍니다. 고려나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가야나 발해나 부여 같은 예전에 입은 옷은 흰옷이 아닌 온갖 빛깔이 고이 어우러진 옷이라고들 해요. 그리고 어느 ‘나라 이름’으로 있던 삶이었어도 누구나 기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삶을 북돋았다고 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우리 삶터를 들여다보면 기쁘게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따로 ‘지역 축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마을놀이나 마당놀이는 거의 자취를 감추어요. 학교에서도 운동회나 무슨 축제를 열지 않으면 마음껏 춤추거나 노래할 만한 자리가 매우 드뭅니다. 아이들은 놀이마당을 누리지 못하고 학교랑 학원에서 시험공부에 너무 바빠요. 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어른들도 놀이마당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고단한 일에만 얽매입니다.



한국인들이 등산복을 애용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등산을 즐긴다는 데 그 원인이 있지만 실용적인 목적도 크다. 등산복은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 착용감이 편한 데다가 땀이 빨리 마르고 비가 와도 속은 젖지 않기 때문이다. (275쪽)



  《살맛 나는 한국인의 문화》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던 문화를 짚으면서 우리 사회와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다가, 이 이야기를 한 걸음 더 내디뎌서 새로운 생각으로 끌어올리면 어떠할까 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제는 예전과 달리 놀이판도 신명도 추임새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지라도, 조촐하게 새롭게 짓는 놀이판이나 신명이나 추임새를 생각해 볼 만합니다. 마을마다 조그맣게 맺는 두레(협동조합)를 떠올릴 만하고, 뜻이 맞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조그맣게 동아리를 이루는 자리를 떠올릴 만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녹색당 같은 정당도 틀에 박힌 제도권에서 벗어나서 삶과 살림을 새롭게 가꾸려는 조그마한 몸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흥군 같은 작은 시골을 보더라도 읍내에 ‘등산옷 가게’가 꽤 많아요. 해마다 새로운 ‘등산옷 가게’가 몇 군데씩 문을 엽니다. 사람 숫자는 몇 만이 안 되는 데에도 옷가게가 자꾸 문을 여니 알쏭합니다만, 그만큼 시골에서도 등산옷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그런데 이렇게 눈에 뜨이는 유행 같은 등산옷이 아닌 작은 몸짓을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도시를 조용히 떠나서 시골로 가는 사람들 숫자는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보다 아직 훨씬 적습니다만, 차츰차츰 늘어납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논밭을 지으면서 살림을 짓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요. 이들 ‘새로운 시골사람’은 도시사람을 먹여살릴 만한 농사를 짓지는 못합니다만, 이녁 살림을 건사할 만큼 땅을 가꾸면서 웃음을 짓습니다.


  어쩌면 이런 작은 몸짓이야말로 우리 겨레가 예부터 이은 조그마한 추임새요 어깨춤이요 신명이요 노래요 두레요 모둠이요 마을살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아이들하고 마을 빨래터를 신나게 치우는 동안 마을 할매나 할배는 “안 춥노? 춥겠네.” 하고 걱정하는 눈치이면서도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일흔이나 여든 나이가 넘은 할매나 할배는 마을 빨래터나 샘터를 치우기 어려워요. 우리 마을에서는 내가 아이들하고 늘 치웁니다. 대단한 몸짓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웃는 살림을 지으면 바로 이 작은 손길에서 새롭게 ‘살맛이 나는 우리 이야기’, 그러니까 ‘조그마한 우리 문화’가 태어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6.3.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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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도 옻 바르고 싶어서



  아버지가 신나게 옻을 바르니 두 아이도 바르고 싶다. 자, 자, 바르고 싶으면 가만히 지켜봐. 아버지가 어떻게 바르는가를 찬찬히 지켜봐야 어디를 어떻게 왜 바르는가를 알 수 있지. 그렇지만 아이들은 몸으로 먼저 하고 싶을 뿐, 지켜보기를 하지 못한다. 붓을 쥐는 손도, 붓을 쥐어 바르는 손길도 모두 서툴기만 하다. 그러게, 제대로 지켜보라니까. 그림을 그릴 적하고 옻이나 페인트를 입힐 적에는 다르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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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139. 2016.3.15. 제비꽃고리



  한창 평상을 손질하는데 큰아이가 평상 둘레에서 얼쩡거린다. 얼쩡거린다기보다 평상을 새로 놓으려는 처마 밑에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었기 때문에 돌아본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이 제비꽃무리를 들여다본다. 제비꽃무리를 살피는 큰아이는 꽃송이를 하나 딴다. “어, 반지 하려고 했는데 길이가 짧네. 꽃아 미안해, 하나 더 딸게.” 꽃순이가 된 아이는 세 송이째 딴 뒤에야 비로소 손가락에 꽃고리를 엮는다. 고마운 제비꽃이로구나. 꽃순이한테 꽃고리를 베풀어 주었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꽃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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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한치규)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지난 2012년에 《한씨네 삼남매》라는 매우 멋진 사진책이 나온 적 있다. 그 뒤 네 해 만인 2016년 봄에 한치규 님이 예전에 찍은 사진을 한자리에 묶은 사진책이 두 권 함께 나왔다. 하나는 《변모하는 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 이후》이다. 나는 ‘달라지는 서울’에는 그리 눈길이 가지 않아서 그 사진책은 좀 나중에 주문해서 읽고 우리 도서관에 둘 생각이다. 먼저 《분단 이후》를 장만해서 읽는다. 사진책 《분단 이후》는 군대에서 ‘장교’로 일한 분이기 때문에 찍을 수 있던 사진이 흐른다. 나 같은 여느 사병은 눈으로는 늘 보았으나 사진으로는 함부로 찍을 수 없던 모습을 아스라이 마주한다. 사진책에 흐르는 비무장지대는 1960∼70년대 모습이지만, 이 모습은 1980년대나 1990년대에서 엇비슷하다. 어쩌면 2000년대나 2010년대 비무장지대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군인옷 무늬는 바뀌고, 총을 쥔 젊은이는 바뀌더라도, 분단이라고 하는 생채기가 그대로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도 비무장지대는 한결같이 차갑고 스산하면서도 애처로운 무대가 되리라 느낀다. 2016.3.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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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비무장지대와 군사문화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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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모하는 서울- 1960~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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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씨네 삼남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
한승원 글, 한치규 사진 / 눈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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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을 새롭게 손질하기



  마당 한쪽에 놓은 커다란 평상을 손질한다. 이레에 걸쳐서 조금씩 손질한다. 비를 많이 맞아서 썩고 갈라진 자리는 톱으로 잘라낸다. 커다란 평상은 2/3 크기로 줄어든다. 크기를 어림하니 처마 밑에 둘 만하다. 처마 밑에 평상을 두면 비 맞을 걱정이 없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덮개를 씌우면 될 테니까. 다리가 튼튼하도록 받침나무를 더 붙이고 못질을 하고, 새 널을 붙이고 헌 널을 떼고, 마무리로 옻을 바른다. 말로 하자면 한 줄이면 넉넉하지만, 두 아이가 옆에서 심부름을 살몃살몃 하며 놀도록 하면서 이레에 걸쳐서 이 일을 했다. 이 일만 한다면 이틀이면 다 끝낼 수 있을는지 모르나,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옷도 개고 청소도 하고 도서관 갈무리도 하고, 이 일 저 일 함께 하자니 이레가 걸린다. 더욱이 옻을 발랐어도 뒤쪽까지 꼼꼼히 바르려고 날씨를 살펴서 하느라 옻바르기도 이틀이 걸린다. 기지개를 켜고 평상에 드러누워서 따끈따끈한 봄볕을 쬔다. 작은아이는 내 오른쪽에 눕고 큰아이는 내 왼쪽에 눕는다. 셋이 평상에 누워서 볕바라기를 하는데 큰아이가 “어머니는 어디 누워?” 하고 묻는다. 그래, 셋이 눕기에는 작지. “어머니는 마루에 누우라고 할까? 어머니 혼자 평상에 눕고 우리는 마루에 누울까?” 2016.3.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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