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정운현 지음 / 비아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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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1



새롭게 배우지 않으니 썩고 마는 어른들

― 쓴 맛이 사는 맛

 채현국·정운현 지음

 비아북 펴냄, 2015.2.27. 13000원



  효암학원 이사장이면서 ‘참 어른’ 소리를 듣는 채현국 님이 있습니다. 정운현 님이 채현국 님을 만나서 들은 말을 사이사이 곁들이면서 채현국 님이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책 《쓴 맛이 사는 맛》(비아북,2015)을 읽습니다. 이 책은 채현국 님이 정운현 님한테 들려준 말을 한 대목씩 적은 뒤, 이 말을 정운현 님 나름대로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는 얼거리로 엮습니다. 그래서 ‘채현국 님이 들려주는 쓴소리’보다는 ‘채현국 님이 들려준 말을 들은 정운현 님이 생각하는 이야기’가 좀 길게 차지합니다.


  채현국 님이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들려주었다면 ‘말풀이’ 같은 이야기를 길게 붙일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여러모로 아쉽구나 싶습니다. 채현국 님하고 정운현 님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살리는 얼거리로 책을 엮는 쪽이 한결 나았겠다고 느낍니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27쪽)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했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33쪽)



  이를테면,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29쪽).” 같은 말은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내가 살아 있지 않고서야 무에 소용 있나. 그 다음은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느냐다(102쪽).” 같은 말도 따로 붙임말이 없이 알아듣고 새길 만하리라 느낍니다. “집착을 끊으려면 집착하는 그 마음을 속여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마음부터 없애야 한다(106쪽).” 같은 말도 가만히 이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을 기울일 만해요.


  다시 말해서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책은 ‘채현국 어록 해설집이나 감상평’ 같은 얼거리입니다. 가만히 듣거나 새기면서 저마다 제 삶을 새롭게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채현국 님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채현국 님이 우리한테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른 붙임말이 없이 들려주는 ‘대화록’이나 ‘이야기마당’이라면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책이 한결 돋보일 만하리라 봅니다.



“삶이란 끊임없이 묻고, 배우고, 깨우치는 과정이다. 처음엔 누구도 삶을 알 수 없다.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삶이란 삶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이다. 다만 그저 아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갈등과 반복, 그 과정에서 피 터지게 싸운 결과, 우리는 삶을 사랑하게 된다.” (94쪽)


“지식이라는 것, 뭘 안다는 것 또한 삶을 분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언이나 좌우명 같은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농약, 화학비료 같은 것이 되고 만다. (97쪽)



  우리는 모두 배웁니다. 다섯 살 어린이도 배우고, 열다섯 살 푸름이도 배웁니다. 스물다섯 살 젊은이도 배우고, 마흔다섯 살 아저씨도 배웁니다. 일흔다섯 살 할머니도 배우고, 여든다섯 살 할아버지도 배우지요. 왜냐하면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동안에는 누구나 이 삶을 배워요.


  배우지 않을 적에는 고이거나 멈추지요.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는 옛말처럼, 배우지 않아서 그만 고이거나 멈출 적에는 삶이 아닌 죽음으로 치닫지 싶어요. 다시 말해서, 어여쁜 아이들은 날마다 늘 새롭게 배우면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뛰고 달리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 어른들도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몸짓이나 마음이 된다면 늘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뛰고 달리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마을살이’나 ‘두레살이’를 이룰 만하리라 생각해요.


  농약이나 화학비료 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 삶이 아니라, 두 손으로 즐겁고 씩씩하게 일구는 삶이 될 때에 참으로 즐거워요. 비닐집이나 유리온실에서 고이 키우는 남새가 아니라 맨땅에서 비바람을 고스란히 쐬면서 다부지고 튼튼하게 키우는 살림이 될 때에 참으로 튼튼해요.



“모험심을 가져야 한다. 기존의 틀 속에 갇혀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세상을 바꾼 사람, 자유로운 삶을 산 사람들은 모두 모험가들이었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다. 제멋대로 살면 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공포심부터 없애야 한다.” (108∼109쪽)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썩는다. 공부를 하면 썩어도 덜 썩는다. 공부를 하면 남에게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15쪽)



  채현국 님이 우리한테 ‘쓴소리’랑 ‘단소리’를 고루 들려줄 수 있는 바탕이라면, 누구보다 채현국 님 스스로 늘 새롭게 배우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할아버지 나이에도 늘 새롭게 배우려 하는 몸짓이기에 우리한테 즐겁게 온갖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지 싶어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잔뜩 갖추었기에 똑똑하거나 훌륭하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었기에 슬기롭거나 대단하지 않아요. 작은 한 가지라도 늘 새롭게 배울 때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훌륭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삶으로 가꿀 적에 웃음이 흐르고, 대단하기보다는 사랑스러운 살림으로 북돋울 적에 노래가 흐르리라 느낍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홀가분하게 날갯짓을 할 적에 배워요. 스스로 틀에 갇히면 ‘읽은 책’만 또 읽고, ‘아는 책’만 다시 읽으며, ‘익숙한 책’만 거듭 읽고 말지요. 책을 읽더라도 ‘새로운 책’으로 손을 뻗지 못한다면, 슬기로운 책읽기나 재미난 책읽기하고는 차츰 멀어지리라 느껴요.



“지금 직업인들은 말만 직업인이지 임금을 받는 노예들인 경우가 많다.” (125쪽)


“일선 학교의 현실은 딴판이다. 좋은 학생을 키울 생각만 하지, 좋은 교사를 키워낼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곡식을 키우는 농부가 시원찮은데 아무리 좋은 논밭인들 제대로 된 농작물이 나올 리 없다 …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181, 182쪽)



  채현국 님은 《쓴 맛이 사는 맛》이라는 책을 빌어서 우리가 ‘임금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임금노예’를 키우는 학교교육이 아니라, ‘꿈날개’를 펴는 아이들이 자라는 너른 살림터를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보여주어요.


  학생이 아름답게 자라는 배움터라면 참말로 교사도 아름답게 자라겠지요. 학생이 기쁘게 배우는 터전이라면 참으로 교사도 기쁘게 가르치겠지요.


  학교뿐 아니라 여느 보금자리도 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어른이 있는 곳에서는, 어른도 아이한테서 똑같이 사랑을 받습니다. 아이를 고운 손길로 돌보는 어버이가 있는 터에서는, 어버이도 아이한테서 똑같이 고운 손길을 받아요.


  새롭게 배우기에 새롭게 생각합니다. 새롭게 생각하기에 새롭게 살림을 다스립니다. 새롭게 살림을 다스리기에 새롭게 삶을 짓습니다. 새롭게 삶을 짓기에 새롭게 꿈을 꿉니다. 새롭게 꿈을 꾸기에 새롭게 길을 걷습니다. 새롭게 길을 걷기에 새롭게 사랑하는 숨결을 스스로 마음속에서 길어올립니다. 새롭게 사랑하는 숨결을 스스로 길어올리니, 새롭게 배우려 해요. 개구리 노랫소리가 차츰 커지는 기쁜 봄날입니다. 2016.3.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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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93. 물이 흐르는 곳



  놀다 보면 땀이 흐른다. 신나게 놀기에 땀투성이가 된다. 가까운 곳에서 손이랑 낯을 씻고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놀면서 땀투성이가 된 아이들이 손도 낯도 씻을 수 없거나 물도 마실 수 없다면, 놀이가 퍽 고단하리라. 물 한 모금으로 더위를 가시고, 바람 한 줄기로 새 기운을 얻는다. 아이들이 노는 자리 곁에는 물이 흘러야 한다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놀이터 한쪽이라면 살짝 물놀이를 할 만한 자리가 있으면 한결 나을 테고. 우리 마을에는 샘터랑 빨래터가 있어서 이곳은 ‘손빨래하는 자리’가 될 뿐 아니라, 아이들이 낯이랑 손을 씻는 자리도 된다. 더욱이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니 신나게 마실 만하다. 골짝물을 마을 앞 샘터에서 다슬기랑 함께 마시면서 놀이도 살짝 한숨을 돌린다. 2016.3.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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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3월호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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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봄을 기다리는 빗물놀이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오려는 문턱입니다. 한겨울에도 맨발차림으로 놀고팠던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자꾸 “이제 곧 봄이야?” 하고 물어요. 그러면 나는 아이들한테 되물어요. “너희가 보기에 봄이 언제 올 듯하니? 나무한테 물어보고, 바람한테 물어보렴. 봄이 얼른 오기를 바라면 해님한테도 얘기해 봐.”


  집에 텔레비전을 놓지 않으니 우리는 텔레비전을 안 보며 삽니다. 텔레비전을 안 보니 사건이나 사고 이야기를 안 보고, 날씨 이야기도 안 봐요. 우리가 보는 곳은 마당이요 뒤꼍이며 나무이고 하늘이며 땅이고 도랑물하고 냇물입니다. 서로서로 얼굴을 바라봅니다.


  바야흐로 따스하구나 싶은 바람이 새삼스레 찾아오는 때를 맞이하여 이불빨래를 신나게 합니다. 한겨울에 이불을 빨면 제대로 마르지 않아 눅눅해요. 가을에 빨래한 뒤 겨우내 덮던 이불은 봄을 앞두고 발로 힘차게 꾹꾹 밟으면서 빨아요. 마당 한복판에 아침에 널면 해질녘이면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이렇게 포근한 날씨가 되니 아이들은 저희한테 가장 재미나다는 흙놀이를 즐깁니다. 두 손으로 흙을 뭉쳐서 흙만두를 빚습니다. 흙빵을 구우며, 흙밥을 짓습니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흙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봄맞이 흙놀이를 새롭게 합니다. 땅이 보들보들하게 녹으면 이 아이들하고 함께 괭이를 쥐고 뒷밭을 갈면서 일놀이를 할 만하겠네 싶습니다.


  그런데 포근해졌다가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잎샘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면, 혀를 내밀면서 눈을 받아먹으며 놀지요. 모처럼 마을길에 눈이 쌓이면 함께 빗자루를 들고 고샅을 쓸다가 눈을 뭉치다가 슬그머니 눈덩이를 먹습니다. “눈 맛있니? 겨울맛이지? 이제 겨울이 가면 한동안 구경할 수 없는 재미난 맛이야.”


  잎을 시샘하고 꽃을 시샘하던 추위가 다시 꺾이고 봄더러 어서 오라며 비가 옵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놀던 아이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놉니다. “아버지, 우산 안 쓰고 비놀이 해도 돼요?” 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묻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네가 놀고 싶으면 얼마든지 놀아야지.” 추위도 더위도 벗님이고, 바람도 햇볕도 이웃님입니다. 눈님도 비님도 동무님이에요.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살가운 숨결이면서 놀이벗이자 놀이이웃이고 놀이동무입니다.


  웬델 베리 님이 쓴 《소농, 문명의 뿌리》(한티재,2016)를 읽어 봅니다.


  “내 소년 시절 이 지역은 그냥 시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시골이었다. 농장 규모는 보통 다 작았다. 이런 농장들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농장은 단순히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주거의 장소이자 삶의 원천이었다(93쪽).”


  우리는 먹고살려는 뜻으로 땅을 부칩니다. 돈을 벌려는 뜻이 아니라 ‘먹고’ ‘살려고’ 땅을 부쳐요. 오래된 한국말인 ‘먹고살다’인데, 한국말사전에서는 이 낱말을 “생계를 유지하다”로만 풀이하지만, 먼 옛날부터 ‘먹고살다’라 말할 적에는 “생계 유지”를 넘어서, 삶을 짓는 ‘밥(먹다)’하고 기쁨을 짓는 ‘살림(삶·살다)’을 함께 나타냈다고 느껴요. 예부터 시골사람은 누구나 ‘먹고살려’는 뜻에서 땅을 부쳤어요. 전쟁을 하려는 뜻이 아니고, 정치권력을 드높이거나 종교 목적으로 땅을 부치지 않아요. 경제발전이나 사회발전 때문에 땅을 부치지 않습니다. 첫째, 몸을 살찌우는 밥을 얻으려고 땅을 부쳐요. 둘째, 마음을 가꾸는 슬기로운 살림을 사랑스레 지으려고 땅을 부쳐요.


  바쁜 일철에는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들고, 한갓진 ‘쉼철’에는 나그네도 한집붙이가 되어 나란히 밥상을 받으면서 넉넉하게 잔치를 벌입니다. 함께 짓는 살림이면서 서로 북돋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형렬 님이 쓴 《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2016)라는 책도 읽어 봅니다.


  “치어들의 어미 연어는 사라지고 그 대신 자연이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은 연어 생명이 의지하고 진화해 온 오묘한 은혜다(65쪽).”


  사람뿐 아니라 물고기도 어미 혼자 새끼를 기르지 않습니다. 새도 벌레도 어미 혼자 새끼를 돌보지 않습니다. 들짐승도 이와 같아요. 온누리 모든 어버이(어미)는 아이(새끼)가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자라도록 온힘을 쏟습니다만, 어버이 사랑이나 손길로만 아이들이 자라지 않아요. 아이 하나가 오롯이 자라는 데에는 온마을 어른이 모든 슬기와 사랑을 모은다고 했듯이, 어버이를 비롯해서 온마을 어른이 따스히 아낄 뿐 아니라, 바람도 해도 별도 비도 눈도 흙도 나무도 풀도 나비도 벌레도 짐승도 벌도 꽃도 ‘돌봄이’ 구실을 해 줍니다. 숲에서 난 것을 먹는 삶이고, 숲에서 난 것으로 옷을 짓는 살림이며, 숲에서 난 것이 집을 짓는 바탕이 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구나 숲살림이고 숲살이요 숲사람이자 숲넋이랄까요.


  시골에는 학원이 적고, 놀이시설이나 문화시설도 적으며, 읍내 도서관도 작아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푸름이는 도시 아이들처럼 학원 열 군데를 다니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학원 서너 군데조차 다니기 어렵습니다. 학원이 워낙 적고 읍내에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더없이 고운 바람이 있고 해하고 별하고 달이 있어요. 밤마다 별잔치를 누리고, 낮에는 따사로운 햇볕에다가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구름을 지켜볼 수 있어요. 텔레비전에 기대지 않아도 하늘을 보며 날씨를 읽는 눈썰미를 배우지요. 대학교를 안 다녀도 흙을 손수 만지고 일구면서 흙살림을 익히고요.


  봄을 기쁘게 기다리며 빗물놀이를 합니다. 봄을 꿈꾸며 흙놀이를 합니다. 봄을 마음에 고이 품으며 살림놀이를 합니다. 시골아이는 소꿉놀이를 즐기면서 새로운 삶과 살림과 사랑을 이 땅에 짓는 작은 손길을 스스로 북돋웁니다. 어머니한테서 뜨개질을 배우고, 아버지한테서 말을 배웁니다. 이제 함께 밭자락을 새로 가꿀 기쁜 봄입니다. 2016.2.1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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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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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을 함께 읽는 아버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이 즐거우니 이 책을 읽습니다. 만화책을 읽거나 시집을 읽는다면 만화책이나 시집이 즐겁기 때문일 테지요. 소설책이 즐거운 사람은 소설책을 읽듯이, 나는 어린이책이 즐거우니까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나로서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살려는 하루이기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린이다운 마음을 어른으로서도 고이 다스리고 싶어서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늘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싶기에 어린이책을 읽는다고 할 테지요. 우리 살림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는 나날이기도 해서 어린이책을 읽지만, 스스로 어린이다운 꿈과 사랑을 한결같이 다스리고 싶어서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내 어린 날을 문득 돌아보니, 내가 어릴 적에는 내 곁에서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은 좀처럼 못 보았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책을 안 읽으’니까 우리한테 ‘어떤 어린이책을 읽히면 아름다운가’를 거의 알지 못했지 싶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이나 명작도서 목록은 뽑아서 읽히려 하고 독후감 숙제를 내라 했으나, 막상 어린이책을 어린이가 읽으면서 어느 대목에서 기쁨을 누릴 만한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글씨가 큼직하거나 그림을 많이 곁들여야 어린이책이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그림 하나 없거나 글씨가 잘아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어린이책에 사로잡힙니다. 글꼴이나 그림은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재미없이 글꼴을 키우고 그림만 많이 넣는다면, 이런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한 번쯤 손을 댄 뒤에는 다시 건드리지 않기 마련입니다. 글씨가 잘고 그림이 없더라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아이들은 책이 낡고 닳도록 다시 읽고 거듭 읽기 마련이에요.


  두고두고 깨끗하게 모셔 둘 책이 아니라, 그야말로 종이가 너덜너덜 낡고 닳을 만한 어린이책을 즐겁게 찾아서 읽습니다. 이 책 하나를 곁에 두면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하나를 발판으로 삼아서 마음에 사랑을 가득 가꾸는 길을 엿볼 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찾고 꿈을 그리면서 살림을 웃음꽃으로 일구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살고자 오늘도 신나게 어린이책을 두 손에 곱게 쥐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2016.3.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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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어 버릴 테다! 담푸스 철학 그림책 1
에릭 바튀 글.그림, 이주희 옮김 / 담푸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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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0



숲까지 집어삼킨 늑대가 튼튼해지는 길은?

― 다 먹어 버릴 테다!

 에릭 바튀 글·그림

 이주희 옮김

 담푸스 펴냄, 2013.12.20. 1만 원



  자다가 한밤에 빗소리를 듣고 눈을 뜹니다. 아니, 바로 눈을 뜨지는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비가 오네’ 하고 생각했어요. 오늘 밤에 비가 올 줄 몰랐구나 하고 느끼면서 마당에 무엇을 내놓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비를 맞으면 안 될 것이 있는지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서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아차, 어제 평상 손질을 마치고 오늘도 더 손질하려고 연장통을 처마 밑에 두기는 했는데 빗물이 들이칠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비설거지를 미처 못한 살림을 처마 밑으로 들이려고 부랴부랴 일어납니다.


  따스한 봄비 기운을 느끼면서 살림을 건사합니다. 어제까지 날마다 신나게 집 안팎을 치웠고 이제 며칠 더 치움질을 하면 새봄에 한결 말끔한 보금자리로 거듭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참으로 쉴 겨를이 없도록 날마다 일을 하다가 맞이한 비라서, 새 하루가 찾아오면 모처럼 느긋하게 이 비를 노랫가락처럼 들으며 쉴 만하겠다고 느껴요.


  아이들이 자면서 걷어찬 이불을 주섬주섬 챙겨서 새로 덮고서 기지개를 켜는데 온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납니다. 어젯밤에 잠들 적에는 아이들도 나도 신나게 곯아떨어졌는데, 이렇게 잠에서 깨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합니다. 놀면서 기운을 다한 아이들도, 일하면서 기운을 다 뺀 어버이도, 새근새근 자고 나면 참말 고맙게 새로운 기운이 솟아요. 그러고 보면, 아이도 어른도 신나게 놀거나 일하면서 군살 없이 튼튼한 몸으로 이어갈 만하구나 싶습니다.



올해도 춥고 건조한 겨울이 이어졌어요. 날이 풀리자마자 꼬치꼬치 마른 늑대 씨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숲에서 나왔어요. (3쪽)



  에릭 바튀 님이 빚은 그림책 《다 먹어 버릴 테다!》(담푸스,2013)를 읽습니다. 겨우내 배가 고파서 ‘갈비씨’가 되고 만 늑대가 너무 배고픈 나머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다가 그만 ‘뚱보씨’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늑대 한 마리는 처음부터 먹보이지는 않았어요. 너무 배고프다 보니 아무것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입을 쩍 벌리고 집어넣었는데, 늑대 먹이뿐 아니라 나무도 새도 구름도 바위도 몽땅 늑대 뱃속으로 들어갔어요.


  늑대는 처음에는 작은 짐승만 잡아서 먹네 하고 여겼지요. 그러나, 어느새 ‘숲이나 구름’을 먹는 맛이 남다른 줄 깨닫고는 무엇이든 다 집어삼키려고 해요.



늑대 씨는 차가운 음식으로 입가심을 하고 싶었어요. 시원한 구름을 후루룩 들이마시다, 날아가던 통통한 오리 떼까지 냠냠 먹어치웠어요. ‘음, 사르르 녹기도 하고, 오도독오도독 씹히기도 하네!’ 늑대 씨가 입맛을 다셨어요. 날름! 나무와 들과 함께, 지저귀던 새들도 커다란 아가리로 들어갔어요. (8∼9쪽)



  갈비씨에서 뚱보씨로 바뀐 늑대를 바라보는 실개울이 바르르 떨었대요. 아마 실개울뿐 아니라 작은 모래알도 바르르 떨었을 테지요. 가랑잎도 나뭇잎도 바르르 떨었을 테고요. 무엇이든 잡아채워 먹어치우는 이 무시무시한 늑대를 본 모든 것들은 그만 바르르 떨밖에 없어요.


  그런데 늑대씨는 먹고 또 먹어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아 자꾸 먹는데, 실개울 앞에 서다가 제 모습을 물에 비추어서 바라보았어요. 아마 실개울을 집어삼켜서 입을 씻으려고 생각했을 텐데, 실개울에 뚱뚱한 제 모습이 비치자, 그만 깜짝 놀라고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놀랐을 테지요.



늑대 씨 앞에서 가느다란 실개울이 바르르 떨었어요. 늑대 씨는 개울물을 들여다보았어요. 늑대 씨가 짜증을 냈어요. “뭐야! 왜 이렇게 뚱뚱해졌지? 내 배 근육! 팔뚝 근육! 다 어디 갔어!” (12∼13쪽)



  그림책 《다 먹어 버릴 테다!》에 나오는 늑대는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는 늑대를 보고는 뱃속에 너무나 많은 것이 들었으니 뚱뚱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늑대는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까지 냠냠 삼켜요.


  참말 못 말릴 늑대네요. 뚱뚱해진 몸을 다스리려고 병원에 갔으면 좀 철이 들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때에 누군가 또 병원 문을 두들깁니다. ‘뭐든지 집어삼키는 버릇’이 들고 만 다른 늑대 한 마리예요. 게다가 다른 늑대 한 마리는 ‘뚱뚱보 늑대’보다 몸집이 훨씬 큽니다.


  자,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뚱뚱보가 된 늑대는 어떤 일을 맞이할까요? 뚱뚱보 늑대는 군살을 덜어내고 튼튼하면서 씩씩한 예전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늑대 씨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곰이며 산양이며 오리 떼와 토끼 떼는 내버려 두고,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한 다음에…… 책 한 권을 먹어치우는 거래요! (31쪽)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은 살이 찔 겨를이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 내내 쉬지 않고 뛰고 달리고 구르고 웃고 노래하고 흙을 파고 소꿉을 하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니 언제 살이 찔 수 있겠어요. 살짝 토실토실하거나 포동포동한 아이는 있을 테지만, 뛰어노느라 바빠서 언제나 튼튼하면서 씩씩하리라 느껴요.


  어른도 이와 같아요. 집 안팎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살림을 짓고 삶을 가꾸면서 지낸다면, 어른도 살이 찔 겨를이 없을 테지요. 다만, 사람마다 몸이 다르니 몸집이 더 큰 어른은 있을 테고요.


  그림책 《다 먹어 버릴 테다!》를 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늑대는 ‘아무 생각이 없이’ 먹어대기만 합니다. 참말로 아무 생각이 없이 먹어대기만 하니까 그만 뚱뚱보 늑대로 바뀝니다. 무엇 하나를 먹을 적에도 고맙게 여기면서 즐겁게 먹는 몸짓이었다면 뚱뚱보로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 서둘러서 마구 먹으니까 말썽이 생겨요. 차근차근 끼니를 장만해서 차근차근 즐기고, 밥 한 끼니를 즐긴 만큼 삶과 살림을 새롭게 즐기려는 데에 기운을 쓴다면, 먹어도 먹어도 끊이지 않는 배고픔을 가실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먹고 또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즐겁게 먹었으니 이 즐거운 보람을 발판 삼아서 어떤 즐거운 살림을 새로 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았으리라 느껴요.


  즐겁게 먹는 밥은 몸하고 마음을 살찌우지 싶습니다. 즐겁게 하는 일은 몸이며 마음을 살리지 싶습니다. 즐겁게 하는 놀이는 몸이랑 마음을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북돋우지 싶습니다. 2016.3.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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