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물려주면서 가르치는 어른



  한국말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문법하고 시험공부만 가르치지요. 어쩌면 학교는 말을 가르칠 수 없는 곳이라 할 만할는지 모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로 다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헤아려 보면, 학교교육이 보통교육으로 퍼지기 앞서까지 온 나라 모든 마을에서는 다 다른 말을 썼어요. 자그마한 마을마다 말이 달랐고, 이 마을이 모인 고을마다 말이 달랐으며, 또 이 고을이 모인 고장마다 말이 달랐어요. 이를테면 ‘리’라는 행정구역으로 묶는 마을마다 말이 달라요. 다음으로 ‘면’이나 ‘읍’이나 ‘동’이라는 행정구역에 따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면’하고 ‘읍’ 사이도 말이 다르며, ‘군’이나 ‘시’라는 행정구역마다 말이 달라요. 또한, ‘도’로 끊는 행정구역마다 말이 다른데, ‘남도’하고 ‘북도’가 또 말이 다르지요.


  이처럼 다른 말을 크게 ‘사투리’라 하고 ‘고장말·고을말·마을말’로 더 잘게 가릅니다. 게다가 집집마다 다 다른 살림을 꾸리기에 ‘집말’도 조금씩 달라요. 이처럼 다른 말이던 살림인데, 모두 똑같은 교과서로 배워야 하면서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추는 말’로 지식을 가르치는 얼거리로 바뀌었어요.


  표준말은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의사소통 도구’입니다. ‘말’이라기보다 ‘의사소통 도구’예요. ‘말’이라고 할 적에는 집이나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마다 그곳 터전과 날씨와 바람과 물과 흙과 숲에 맞추어 다 달리 짓던 살림이 깃든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이리하여 오늘날 학교교육이나 사회문화는 ‘의사소통 도구’로 수많은 ‘지식·정보’를 주고받는 얼거리로 나아갑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은 ‘말’로 보이는 표준말이지만, 막상 말다운 말은 아닌 셈이에요.


  그러니, 어른이 된 사람들도 한국말을 몽땅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으면, 한국말이 아닌 한국말을 쓸 뿐입니다. 마음을 싣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는 ‘의사소통 도구’에 얽매인 채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살림을 짓는 사람이 생각을 가꾸는 슬기’인 ‘말’을 좀처럼 못 물려줄 수 있어요.


  의사소통 도구를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어수선하고 까다로운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의사소통 도구가 없으면 안 됩니다. 다만, 이러한 의사소통 도구로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수 있고, 때때로 마음을 잘못 읽거나 넘겨짚으면서 다툼이 생겨요. ‘이야기가 흐르는 사랑스러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읽거나 넘겨짚는 일이 생기지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친다고 할 적에는 ‘의사소통 도구’는 이러한 ‘의사소통 도구’대로 알맞게 일러 주면 됩니다. 그리고, 늘 되새기면서 생각할 대목은 ‘삶을 짓는 말’하고 ‘살림을 가꾸는 말’하고 ‘생각을 밝히는 말’하고 ‘사랑을 나누는 말’을 ‘슬기로운 마음’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기틀을 닦아 주어야지 싶어요.


  ‘말 배우기’는 ‘삶 배우기’라고 느낍니다. ‘말 가르치기’는 ‘살림 가르치기’라고 느낍니다. ‘말 나누기’는 ‘사랑 나누기’라고 느낍니다.


  아이하고 ‘의사소통’만 하겠다면 ‘지식·정보’를 주고받는 ‘도구’만 써도 됩니다.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겠다면 ‘생각을 슬기롭게 짓는 살림으로 누리는 삶’을 한껏 북돋우는 ‘말’을 우리 어른과 어버이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즐겁게 쓸 수 있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2016.3.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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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나요? 계절을 배워요 3
한영식 글, 남성훈 그림 / 다섯수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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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1



앉은뱅이 하얀 봄꽃이 싱그러운 하루

― 식물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나요?

 한영식 글

 남성훈 그림

 다섯수레 펴냄, 2015.10.5. 12000원



  생강나무도 매화나무도 개나리도 참달래도 곱게 꽃을 피운 이 봄이 무르익으면서 이웃 여러 나무도 하나둘 봉오리를 터뜨리려 합니다. 꽃눈보다 잎눈을 먼저 터뜨리는 나무도 많고, 꽃눈뿐 아니라 잎눈도 아직 안 터진 나무도 많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는 매화꽃이 꽃가루받이를 마친 뒤 마치 눈송이처럼 흩날리는데, 이런 매화나무 곁에서 유자나무하고 감나무하고 무화과나무는 아주 천천히 새눈을 틔우려 합니다. 모과나무는 이제 막 여린 싹이 돋아요.


  가만히 보면, 일찍 꽃이나 잎을 터뜨린 나무는 가을에 잎을 일찍 떨굽니다. 느즈막하게 꽃이나 잎을 터뜨린 나무는 가을에 잎을 더디 떨구어요. 모든 나무가 꼭 이런 얼거리는 아닐 테지만, 나무마다 바라는 바람이랑 볕이랑 날씨가 다 다르네 하고 새삼스레 느끼면서 바라봅니다.



나무는 추위를 이겨 낼 포근한 옷을 입기도 해요. 꽃이나 잎이 될 겨울눈은 복슬복슬한 털옷을 입고 겨울을 지내요. (6쪽)



  한영식 님이 글을 쓰고, 남성훈 님이 그림을 그린 《식물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나요?》(다섯수레,2015)를 읽으면서 우리 집 나무를 헤아립니다. 바야흐로 봄볕이 무르익으면서 유채잎이나 갓잎은 오므라듭니다. 겨우내 잎을 넓게 펼치던 유채나 갓인데, 이제는 몸통 한복판에 곧게 꽃대를 올리는 데에 힘을 모아요. 배추도 이와 같지요. 꽃대가 오를 무렵에는 잎이 오므라들어요. 잎으로 퍼뜨린 기운을 꽃으로 모으려는 뜻이니까요.


  이즈음 동백꽃은 하나둘 커다란 꽃송이를 벌리고, 후박나무는 잎눈을 더욱 단단히 맺으면서 부풀립니다. 붓꽃은 길쭉한 잎이 올라오고, 곁에서 솔(부추)도 올망졸망 키재기를 하듯이 솟습니다. 우리 집 흰민들레가 한 송이씩 꽃송이를 펼치면서 곰밤부리꽃이랑 봄까지꽃하고 어우러지고, 앵두나무도 머잖아 발그스름하면서 하얀 꽃송이를 터뜨릴 듯합니다. 겨우내 꽁꽁 옹크리던 수많은 나무와 풀이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하루 내내 마당에서 뛰어놉니다.



풀꽃들도 저마다 겨울 준비에 한창이에요. 땅에 뿌리를 박고 겨울을 지내는 풀꽃들은 한겨울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땅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요. (14쪽)



  겨울나기를 마친 나무는 기쁨으로 봄을 맞이합니다. 봄맞이를 기쁨으로 누리는 풀은 꽃송이도 잎사귀도 한껏 벌리면서 노래합니다. 이 봄에 마당이나 텃밭에 쪼그리고 앉으면 새로 돋은 풀포기마다 싱그러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잔바람에도 한들거리면서 춤을 추는 몸짓을 볼 수 있어요. 어느 풀을 훑어서 밥상을 차릴까 하고 살피다 보면, 이 보드라운 풀잎결이 얼마나 고운가 하고 다시금 느낄 만합니다. 맑으면서 끝에 살짝 아린 맛이 감도는 봄나물이에요.


  나비도 벌도 깨어나고, 개미도 부산스레 움직여요. 무당벌레가 하늘을 날고 까마귀떼는 사라졌어요. 직박구리 여러 마리가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집 뒤꼍 매화나무에 앉아서 꽃내음을 먹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 살짝 깃드는 참새 세 마리도 하루 내내 마당하고 마을 사이를 날아다닙니다. 곧 제비가 마을로 돌아와서 처마 밑에 겨우내 비었던 둥지를 손질할 테고요.


  앉은뱅이 제비꽃은 보랏빛 꽃송이를 터뜨린 지 한 달 가까이 됩니다. 냉이꽃도 저를 좀 보라면서 까딱거리고, 꽃다지와 꽃마리도 곧 이쁘장하게 올라올 듯합니다.



땅 위 줄기와 잎은 시들지만 땅속뿌리로 겨울을 지내는 식물도 많아요. 땅속은 땅 위보다 정말 따뜻하거든요. 수선화나 튤립 같은 커다란 알뿌리 식물은 물론, 도라지 인삼 쑥도 뿌리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뿌리에서 싹이 터서 자라요. (18쪽)



  그림책 《식물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나요?》에 감도는 봄빛을 돌아봅니다. 겨울나기를 하는 까닭은 봄을 꿈꾸기 때문일 테고, 겨울을 잘 나려고 잎을 떨구거나 잔뜩 옹크리거나 씨앗을 내놓는 까닭도 봄을 바라기 때문일 테지요. 사람도 가을걷이를 마치고 겨우내 조용히 웅크리듯이 보내는 까닭은 새로운 봄에 즐겁게 기지개를 켜면서 씩씩하게 하루를 짓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번데기에서 깨어나 새로운 몸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고 싶기에 겨울잠을 잡니다. 이 따사롭고 넉넉한 봄에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 벌려 자라고 싶기에 겨울나기를 합니다. 크고작은 풀벌레도, 크고작은 푸나무도, 또 어른과 아이도, 겨울을 잘 났습니다. 두툼한 옷을 한 꺼풀 벗고서 가볍고 산뜻하게 들일을 하고 집일을 하면서 살림을 건사하는 봄입니다.


  보송보송한 흙을 밀반죽처럼 주무르면서 씨앗을 심는 봄입니다. 보들보들한 나물을 훑고 야들야들한 꽃송이가 봄잔치를 이루는 곁에서 시원스레 큰숨을 마시는 봄입니다. 해가 높아지고 그림자가 짧아집니다. 빨래가 잘 마르고 송글송글 땀이 솟는 봄입니다. 올 한 해도 사랑스러운 나무와 풀을 고이 품으면서 푸른 바람을 실컷 마시자고 생각하면서 봄맞이 그림책으로 《식물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나요?》를 곁에 두어 봅니다. 2016.3.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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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아이 노릇 - 세계적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교육 이야기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39



학교에 가지 않으면 ‘반사회적 행동’일까?

― 어른 노릇 아이 노릇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미래인 펴냄, 2016.3.15. 11000원



  열흘 남짓 평상 짜기를 한 끝에 드디어 모든 마무리를 짓습니다. 제법 큰 낡은 평상 하나를 고쳤고, 섬돌에 얹는 평상을 새로 하나 짰습니다. 다른 일은 안 하고 평상 짜기만 했으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뚝딱하고 끝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평상도 짜고 살림도 하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을 놀리거나 가르치고 이모저모 다른 일을 모두 하면서 평상을 짜느라 틈틈이 일손을 놀렸습니다.


  봄맞이 집 안팎 청소도 마무리지으면서 처마 밑에 놓을 수납장을 손질하는데, 마지막 망치질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매우 세게 찧었습니다. 곁에서 아버지 일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아파?” “응, 매우 아파.” 지잉 울리면서 얼얼한 손가락을 호호 달래면서 망치질을 끝냅니다. 일을 거의 다 마칠 즈음 손가락을 찧으니 더 아픕니다.


  마당과 뒤꼍에서 신나게 뛰논 두 아이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깔고 눕힐 적에 큰아이가 새삼스레 묻습니다. “아버지, 아까 어느 손가락 찧었어?” “응, 첫째 손가락.” “그러면 엄지손가락?” “응.” “아직도 아파?” “아니. 이제는 괜찮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손가락을 망치로 찧었어?” “그러게. 망치질을 할 적에는 못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살짝 딴생각을 했나 봐.” “무슨 딴생각?” “글쎄, 이제는 다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보거나 마음을 빼앗기면 그렇게 망치를 잘못 놀릴 수 있어.”



선정도서라든가 지정도서라든가 과제도서 같은 신물 나는 용어가 아이들을 둘러싼 독서 문화에 많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좋은 책, 혹은 해가 되지 않는 책이라는 의미지만, 그건 참으로 쓸데없는 참견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만날까 하는 두근거림이야말로 책이 가진 생명입니다. (16쪽)


아이들은 모두 농담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농담, 놀이, 장난의 세계라고 할까요.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고, 목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손이 즐거운 세계입니다. (19쪽)



  며칠 앞서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를 치웠습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가 물이끼를 걷어내는 둘레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샘터를 치워 놓으면, 두 아이는 샘터를 둘러싸면서 놀고, 널따란 빨래터를 막대솔로 벅벅 문지르면서 다 치우면 바야흐로 빨래터에 뛰어들어서 옷까지 물에 옴팡 적시면서 놉니다.


  물이끼를 다 걷고 등허리를 토닥이며 기지개를 켠 뒤 《어른 노릇 아이 노릇》(미래인,2016)이라는 배움책을 읽었습니다. 말끔해진 빨래터를 바라보면서 읽는 책은 맛깔납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읽는 책은 한결 재미납니다.


  그림책 작가인 고미 타로 님은 이녁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배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몸은 어른이되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을 다루고, 몸은 아이인데 아이로 살기 어려운 사회를 다룹니다. 새삼스러우면서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초등학생들의 가방은 거의 란도셀입니다. 직장인들은 양복입니다. 더 어울리는 신발이나 옷이 널려 있는데, 그야말로 넘치도록 풍족한 사회인데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을 도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48쪽)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에게 선생님이 화를 내는 것은 ‘내가 시킨 일을 왜 하지 않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62쪽)



  고미 타로 님네 작은딸은 중학교를 얼마쯤 다니다가 그만둔 뒤로 학교를 다시는 더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작은딸은 스스로 하고픈 일을 즐겁게 찾아서 멋지고 신나게 살림을 잘 꾸린다고 합니다.


  고미 타로 님은 이녁 작은딸이 ‘아버지, 나 학교 그만 다닐래요.’ 하고 말할 적에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퇴를 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도 ‘말릴’ 뜻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스스로 초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고 나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학교는 더 다닐 만하지 않다’고 느꼈으니, 이 아이 마음을 헤아려야겠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다만 고미 타로 님네 큰딸은 그냥 학교를 다 마쳤다고 해요. 큰딸은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 마친 뒤 큰딸대로 살림을 잘 꾸리면서 산다고 해요. 학교를 다 마치든 학교를 안 마치든 대수로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어른 노릇 아이 노릇》이라는 책에는 학교 안팎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홀가분하게 흐릅니다. 학교라는 틀이 어떠한가를 다루고, 학교를 바라보는 어버이와 교사 마음이 어떠한가를 다루며, 학교를 왜 굴레나 짐처럼 여기는 사회 얼거리가 그대로 있는가를 다룹니다.



이 세상에서 ‘이지메’를 없애고 싶다면, 우선 현재의 학교 시스템을 없애야 합니다. 학교에 이지메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구조 자체가 이지메라는 뜻입니다. (69쪽)


학교에 가지 않는 건 반사회적인 행위이고, 사회로부터 소외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죽지 않는 아이, 게으름 피우지 않는 아이, 부지런한 아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아이들을 관리합니다. 아제 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관리자, 관청입니다. (82쪽)



  우리 집 두 아이도 학교를 안 갑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스스로 하고픈 것을 스스로 하면서 스스로 배웁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스스로 하려는 것을 스스로 하면서 스스로 배워요. 나는 두 아이를 늘 건사하고 돌보고 토닥이면서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만,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살림은 언제나 ‘아이한테서도 새롭게 배우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평상을 고치거나 새로 짤 적에 두 아이는 내 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여다봅니다. 가끔 일손을 거든다고 할 적에는 잘 거들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저희 나름대로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다가 그만둡니다. 이러고는 내 곁에서 신나게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놀아요. 다 짜고 손질해서 옻까지 바른 평상에 기쁘게 올라앉아서 소꿉놀이를 마음껏 즐깁니다. 그림책을 갖고 나와서 평상에 앉아서 읽어요. 종이를 들고 나와서 평상에 엎드려서 그려요.


  평상에 앉아서 해바라기도 하지요. 평상에 앉아서 나무도 바라보지요. 구름을 살피고, 낮에 뜬 달을 올려다봅니다. 저녁에도 평상에 앉아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한낱 평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평상을 발판으로 삼아서 아이들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를 찾고 재미난 이야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슬며시 묻지요. 왜 옻을 발라야 하느냐고 묻고, 옻은 뭐냐 하고 묻고, 옻붓이랑 그림붓은 뭐가 다르냐고 묻고, 망치로 찧은 손가락은 어떠냐고 물으며, 망치하고 못은 어떻게 쓰고 만드느냐고 물으며, 톱으로는 왜 나무를 켤 수 있느냐고 물으며, 톱을 손수 잡고 켜 보기도 하고 …… ‘가르침’이나 ‘배움’으로 치면 수많은 이야기와 손길이 오가면서 어우러집니다.



석고 데생만 죽어라 하다가 그리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체질이 되기도 합니다. 참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다 결국 석고 데생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기도 하죠. 그쪽으로는 아직 전통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103쪽)


창조성과 개성과 감성이 부족한 곳일수록 아이들의 창조성과 개성과 감성을 중요시하는 교육을 한다는 홍보 문구를 붙여놓습니다. (146쪽)



  학교에서 교사가 교사 자리에 설 수 있다면, 교사 스스로 늘 ‘새롭게 가르칠 삶 이야기’를 즐겁게 배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집에서 어버이가 어버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어버이 스스로 늘 ‘새롭게 나눌 살림 이야기’를 기쁘게 배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이든 배웁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어른인 우리는 어버이도 되고 교사도 되고, 때로는 그냥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어 아이들을 둘러싸고 무엇이든 보여줍니다. 재미나거나 새로운 모습도 보여줄 테고,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러운 모습도 보여줄 테지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든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삶과 살림을 배웁니다. ‘몇 살 나이’에는 ‘어느 학교를 몇 해 다녀’야 배우지 않아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배워요. 초등학교 졸업장이나 중학교 졸업장이나 고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배웠다’고 하지 않습니다. 졸업장은 졸업장일 뿐이지 ‘배움 증명’이 되지 않아요. 배움은 언제나 삶과 살림으로 시나브로 드러나요.



아이들은 어른을 그냥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으니까요. 어른들의 훌륭함을 보는 것도, 비판하려고 엄격하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거기 있으니까 볼 뿐입니다. (200쪽)


열 살까지 세상을 제대로 확실히 보는 눈을 기르지 않고 흘려보내면, 왠지 그 후 인생이 시들시들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피아제나 슈타이너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피아제와 슈타이너 속의 아이들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동물도감만 들여다보는 동물학자 같습니다. (210쪽)



  《어른 노릇 아이 노릇》은 차분한 목소리로 삶 이야기하고 살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삶과 살림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어른들은 삶과 살림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어진 틀에서 주어진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더 빠르게 많이 넣는 입시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꿈꾸고 생각하면서 즐겁고 사랑스레 할 수 있도록 삶과 살림을 가르치는 어른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옷 한 벌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집을 어떻게 짓거나 고치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말 한 마디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씨앗 한 톨, 책 한 권, 종이 한 장, 젓가락 한 벌, 능금 한 알, 장난감 하나, 연필 한 자루 …… 우리가 흔히 곁에 두는 모든 것이 태어난 흐름을 아이들이 가만히 살펴보면서 생각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합니다.


  나 스스로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란 끝에 어른이라는 몸으로 거듭난 내 발자국을 되짚으면서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 곁에 새로운 아이로 찾아온 이 어여쁜 숨결이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바라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오늘은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녁에 함께 잠들고 아침에 함께 일어나면서 어떤 하루를 지으면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어른 노릇하고 아이 노릇이 어우러지면 ‘사람 노릇’이 될 테고, 사람다운 길을 걸으면 저절로 사랑스러운 손길이 태어나리라 느껴요. 온누리 모든 어른하고 아이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사이좋은 살림을 짓자고 꿈꿉니다. 2016.3.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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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94. 내 꿈을 그리자



  아이들을 집에서 돌보면서 가르치는 동안 아이들도 나한테서 배우지만 나도 아이들한테서 배우기 때문에 누가 교사이거나 학생이라는 틀은 거의 없다고 느낀다. 다만, 어버이인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이 땅에서 살림을 지으니, 밥이나 빨래나 옷이나 집이나 여러 가지 일은 어버이인 내가 도맡는다. 이야기도 어버이인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얼거리가 되는데,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이야기를 듣기를 즐길 뿐 아니라, 어버이한테 저희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몹시 즐긴다. 아이들은 저희 나름대로 겪거나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조잘조잘 들려주면서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그림을 그린다. 나는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내 꿈을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요 새롭게 삶을 짓는 숨결로서 아이들 꿈을 그린다. 잘 그리는 그림이나 못 그리는 그림이란 없이, 늘 새롭게 그리는 꿈이다. 오늘 두 아이가 능금씨를 뒷밭에 심는다며 꽃삽을 들며 부산을 떠는 동안, 나는 마당에 새로 짜서 놓은 평상에 조용히 앉아서 새로운 꿈을 그려 보았다. 내가 고흥 시골에서 가꾸는 ‘사진책도서관’이 처음부터 맡은 몫이었던 모습을 비로소 짙게 깨닫고는 ‘한국말사전 배움터(연구실)’라는 이름을 함께 쓰자는 생각이 든다. 참말 그렇다. 나는 이 시골에서 한국말을 새로 가꾸면서 북돋우는 일을 하지. 나는 늘 아이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꿈을 꾼다. 2016.3.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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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못 가네 (사진책도서관 2016.3.18.)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하루 내내 비가 온 날, 작은아이는 도서관에 가고 싶습니다. 도서관으로 옮긴 장난감 자동차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비가 하루 내내 오기에 평상 새로 짜는 일은 하루를 쉽니다. 도서관 살림도 건사하면서 집 안팎 살림도 건사하느라 부산한 봄입니다. 이제 곧 뒤꼍도 쟁기로 땅을 살살 갈아서 씨앗을 심을 텐데, 그러면 더욱 부산한 봄날이 될 테지요.


  저녁나절에 빗줄기가 그칩니다. 비가 그친 모습을 본 작은아이는 얼른 도서관에 가자고 조릅니다. 하얗게 비안개가 낀 날에 자전거를 이끌고 나옵니다. 도서관 어귀에 물이 잔뜩 고인 모습을 보면서 “길이 너무 질척거리니 이튿날 오면 어떨까?” 하고 묻습니다. 길이 질척거려도 풀 돋은 데를 밟고 가면 된다는 작은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자전거 나들이를 합니다.


  하루 도서관 나들이를 못해서 서운한 작은아이일 텐데, 고맙게 봐줍니다. 게다가 자전거 나들이를 하는 동안 수레에 앉아서 ‘싱싱 달리는 동그란 바퀴 자전거’ 노래를 신나게 불러 줍니다. 귀여운 아이한테서 사랑받는 예쁜 도서관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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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ㄱ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ㄴ : 지킴이로 지내며 보탠 돈이 200만 원을 넘으면 된다

* 도서관+배움터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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