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후쿠에 준 지음, 목선희 옮김 / 살림Friends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42



양자역학을 ‘이레’ 아닌 ‘7분’ 만에 끝내기

―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

 후쿠에 준 글

 목선희 옮김

 살림프렌즈 펴냄, 2016.2.28. 9800원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가운데 하나로 나온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살림프렌즈,2016)를 읽기 앞서 생각합니다.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다고? 그런데 양자역학을 끝내는 데에 이레나 걸리나? 아니, 양자역학을 고작 이레면 끝낼 수 있나?


  양자역학을 다루는 책인 만큼, 나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양자역학은 이레 만에 끝낼 수 없다는 생각 하나에다가, 양자역학은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레 만에 끝낼 수 없는 양자역학이라면, 이레가 아닌 일흔 날이 걸려도 끝낼 수 없을 테고, 이레가 아닌 일곱 해가 걸려도 끝낼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이레 만에 끝낼 수 있는 양자역학이라면, 일곱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곱 분, 그러니까 ‘7분’ 만에라도 끝낼 만하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물질을 물리화학적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점차 원자나 분자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26쪽)


지금까지 발견된 많은 증거로부터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정확한 관점은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64쪽)



  사진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찍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읽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사진을 잘 찍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요? 사진을 잘 읽는 데에는 또 얼마나 걸릴까요?


  어떤 사람은 사진을 마흔 해나 쉰 해를 찍었는데에도 ‘사진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기를 손에 쥔 지 1분이 지났을 뿐인데에도 사진을 그냥 잘 찍습니다.


  살림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살림을 배우기는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살림을 제대로 익히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는 걸려야 할까요? 두세 해쯤 걸려서 살림을 익히기는 어려울까요? 두어 달 만에 살림을 익힐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이틀이나 사흘 만에 살림을 다 익히는 사람은 없을까요?


  흔히 ‘과학’은 어렵다거나 ‘수학’은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이나 수학뿐 아니라, 종교도 학문도 다 어렵거나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든 수학이든, 또 살림이든 사진이든, 또 아이키우기이든 밥짓기이든, 또 집짓기이든 뜨개질이든, ‘하루아침에 이루는’ 것은 없을 만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문득 깨달아서 즐겁게 하기도 합니다.



미시 세계에서 전자의 위치나 운동량은 처음부터 관측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핵의 주위를 전자가 ‘궤도운동을 한다’는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106쪽)


미시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이 근본적으로 불황적적이고 확률적으로 일어나지만 우리가 ‘관측’을 하면 그때마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상태가 결과로 표현된다. (138쪽)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는 일본에서 나온 ‘만화 7일 만에 끝내기’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일본 한자말이 많이 나옵니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크게 헤아리면서 다루는 낱말인 ‘보다(바라보다)’를 이 책에서는 ‘관측’이라는 한자말로 나타냅니다.


  그러면, 양자역학에서 가장 크게 헤아리면서 다루는 낱말인 ‘보다·바라보다’란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내가 보지(바라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거나 하나도 안 이루어진다’를 나타냅니다. 내가 보기에(바라보기에) 비로소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가 볼 적에 어떤 것이든 다 이루어집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배울 수 없습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어도 스스로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수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다 주어도 하나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돌이나 나무도 모두 책으로 삼고 스승으로 삼아서 배워요.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책이 아무리 많아도 이녁한테는 그냥 ‘돌이나 나무’와 똑같을 뿐입니다.



빛에너지가 연속적이라면 어두운 곳에서 장시간 노출해야 사진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순간에도 별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이 바로, 별빛은 에너지 덩어리인 양자로써 아득히 먼 우주 저편에서 날아왔다는 증거이다. 빛이 양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인간은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146쪽)


우주와 시공간이 탄생했을 때 모든 입자의 질량은 제로0였다. 물질입자도, 매개입자도 모두 광자와 같았다.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시공간과 물질입자 그리고 매개입자가 나뉘어졌다. (200쪽)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는 양자역학이 태어나기 앞서 서양 과학이 어떻게 흘렀고, 고전물리학이 어떻게 퍼졌는가 하는 대목을 넓게 다룹니다. 그리고 이 책이 일본에서 나온 만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서양에서 나오는 양자역학 책에서는 구태여 ‘일본 과학자’ 이야기를 이 책처럼 자주 길게 다루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일본 과학자를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 과학자 가운데 훌륭한 이들 발자취를 몰라도 된다는 뜻 또한 아니에요. 이 책이 ‘일본에서 일본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나온 터라, 일본 물리학자 이야기가 자주 많이 나올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양자역학을 배우는 길잡이책으로서 알차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대목에서는 ‘그냥 번역만 하기’에는 좀 아쉽다고도 할 수 있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일본 어린이는 이 책에서 다루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저 훌륭한 사람처럼 물리학자(과학자) 꿈을 키워야지’ 하는 생각을 북돋울 만합니다만, 부록이나 붙임말로 따로 ‘한국 물리학자’ 이야기라든지, ‘양자역학과 얽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온누리 모든 과학자’ 이야기를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관측하기 전에는 모든 가능성이 더해진 상태지만, 관측을 하면 무한한 가능성 중 각 상태의 확률 크기에 따라 단 하나의 상태만이 선택되는 것이다. (214쪽)



  그러고 보면, 이 책이 아무리 일본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일본 글쓴이 스스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 이야기는 부록으로 밀고, 몸글에서는 ‘양자역학 알맹이를 더 깊이 다루는 데’에 마음을 쏟지 못했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끝까지 외친 말, “사랑하는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만 다룰 뿐, ‘고전물리학’을 버리고 새로운 물리학인 양자물리학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외친 말은 다루지 못합니다. 아인슈타인과 논쟁을 오랫동안 하면서 고전물리학을 버리고 양자물리학으로 나아간 이들은 1920년대부터 “하느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하이젠베르크 쓴 《부분과 전체》 110쪽)”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진다”는 대목을 깨닫지요. 오늘날 양자역학 이론에서는 “하느님은 주사위놀이를 매우 자주, 아니 늘 즐긴다” 하고도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주사위놀이’에서 ‘주사위’란 ‘생각(이론)’입니다. ‘놀이’란 ‘삶(실험·경험)’이고요. 생각을 하나 내놓으면(주사위를 던지면, 또는 이론을 세우면), 이 생각(주사위·이론)에 따라서 어떤 일이 생기고(삶이 이루어지고, 또는 경험을 하고), 이 생각에 따라서 생기는 어떤 일을 보면(관측·관찰)서, 새로운 이야기(결과·실험결과)가 태어나요.


  이러한 양자역학 원리를 쉬운 말로 다시 간추리자면, ‘내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하기에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짓는다’입니다. 내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겪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있지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배울 수 없다고 해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생각’을 씨앗으로 심기에 삶에서 새로운 일을 겪고, 이 겪음이 바로 배움으로 나아가요. 그렇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무 생각이 없기에 수많은 일을 겪더라도 그 수많은 일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꾸 똑같은 일(경험)만 되풀이하는 얼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관측’이라는 행위를 할 때, 혹은 양자역학적인 ‘선택’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능한 모든 우주가 관측 시점으로부터 나뉘어,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220쪽)



  이제 《양자역학 7일 만에 끝내기》를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떼든 안 떼든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양자역학을 이레 만에 떼어도 좋고 안 떼어도 좋습니다. 다만, 양자역학에서 밝히면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깊고 넓게 곰삭이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기쁘게 사랑하려는 숨결로 하루를 새롭게 짓자고 하는 생각을 씨앗으로 심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이 씨앗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내 삶을 새롭게 겪고, 아이들이 씩씩하고 곱게 자라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보살피면서, 이 결에 맞추어 새로운 이야기가 무럭무럭 태어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주사위놀이를 하는 하느님’처럼 ‘삶을 짓는 바탕이 되는 생각을 늘 즐겁게 씨앗으로 심는 어버이’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관측하기에 결과가 생긴다’는 이론처럼, ‘생각하기에 삶이 태어난다’고 하는 얼거리를 슬기롭게 헤아리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이에요. 즐겁게 내 길을 고르고(선택), 즐겁게 내 삶을 바라보며(관측), 즐겁게 내 살림을 짓는(결과) 하루가 되기를 꿈꾸면서 아이들하고 웃음꽃을 피우려 합니다. 2016.3.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Bicentennial Man/Mission to Mars (바이센테니얼 맨/미션 투 마스)(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Walt Disney Video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나는 200이라는 숫자가 꽤 마음에 듭니다. 아니, 마음에 든다기보다 문득문득 200이라는 숫자를 떠올립니다. 누가 200이라는 숫자를 말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남는다기보다는, 어느 때에 불현듯이 떠올라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100이라는 숫자를 ‘온’으로 여겨서 빈틈이 없는 모습을 빗대곤 하는데, 나는 ‘한 온(100)’보다는 ‘두 온(200)’이라는 숫자가 마음이 끌려요.

  로빈 윌리암스 님이 훌륭하게 연기를 선보이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을 보면서 처음에는 ‘바이센테니얼’이 무엇을 뜻하는지 딱히 살피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같은 느낌이나 생각을 품고 싶은 로봇이 나오는 영화로만 여겼거든요. 이러다가 ‘Bicentennial’이라는 영어가 “200년을 잇는”을 뜻하는 줄 깨닫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니, 아하, 영화에 나오는 로봇은 바로 ‘200살 나이’를 살아요. 200살에 걸쳐서 사람살이를 지켜보는 동안 이 로봇은 이 사람살이에서 스스로 무엇을 품을 때에 ‘즐겁게 살림을 지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로봇은 부품을 제때에 갈면 목숨이 끊어질 일이 없습니다. 로봇한테는 죽음이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없는’ 로봇으로서는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어요. 로봇으로서는 ‘할 일’만 있으면 됩니다. 놀이도 아닌 일만 주어지면 됩니다. 로봇한테 가장 두렵다고 해야 할 대목은 ‘할 일이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200해가 아니라 2000해도 살 수 있는 로봇인데, 2000해에 걸쳐서 ‘할 일이 없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아마 미쳐서 날뛰다가 전쟁병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모로 본다면, ‘할 일을 모르는’ 채 사는 사람은 살림을 짓거나 사랑을 짓는 길이 아니라 전쟁무기로 전쟁을 일삼으면서 끝없이 배를 채우려고 하는 데에 매달리기 일쑤입니다. 전쟁무기로는 전쟁무기밖에 끌어들이지 못합니다만, 수많은 정치권력은 전쟁무기에만 매달려요. 평화나 사랑이나 살림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수많은 정치권력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정치권력을 손에 거머쥔 이들은 이 정치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데에만 마음을 쓸 뿐, 어떤 삶이나 사랑이나 살림을 지을 적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에는 마음을 쓰지 않거든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 나오는 로봇은 ‘주어진 일’에 온힘을 쏟습니다. 게다가 온힘을 쏟던 어느 날 ‘생각하는 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지어서 눈부신 길을 갈고닦을 수 있으며,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다만, 돈을 아무리 벌어도 이 로봇은 ‘돈을 쓸 곳’이 없을 뿐이에요. 돈을 쓸 일이 없고, 돈을 쓸 생각이 없으니 엄청난 돈이 있어도 부질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로봇은 오랫동안 여행을 하지요. 여행을 하는 동안 비로소 스스로 깨달아요. 로봇이든 사람이든 꼭 한 가지 빠지거나 모자란 대목은 ‘사랑·삶·살림’인 줄, 따로따로 있는 사랑이나 삶이나 살림이 아니라,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엮은 꿈일 때에 비로소 ‘보람’이 있어서 ‘일을 할 뜻’이 있는 줄 깨닫습니다.

  죽을 까닭이 없는 로봇이지만, 사람들하고 어울려 사는 동안 이 로봇은 ‘사람들처럼 살기’를 바라면서 ‘죽음(늙음·노화)’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을 바랍니다. 웃고 울 뿐 아니라 아프고 괴로운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요. 바야흐로 ‘사람보다 사람다운 숨결’로 거듭나는 길을 걷습니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아니기에 사람입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로봇하고 다른 사람으로서 하루를 짓습니다. 새봄을 맞이하고, 씨앗을 심고, 아이들을 돌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살림을 가꾸고, 또 이 일 저 일을 하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바라는 200이라는 숫자는 한낱 200이 아닙니다. ‘내 온(내 모든 숨결)’이 ‘네 온(네 모든 숨결)’하고 만나서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두 온(200)’입니다. 200살을 사는 로봇인 ‘바이센테니얼 맨’은 ‘혼자서만 살 수 없다’는 대목을 깨달아서 ‘죽음으로 가지만, 막상 죽음이 아닌 삶으로 가는 길’로 씩씩하게 나아가려 합니다. 오롯이 사람이 되고, 옹글게 삶이 되며, 오순도순 살림이 되는 자리에서 빙그레 웃으면서 고요히 눈을 감습니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밥 한 끼니


  

  꽤 오랜만에 바깥밥을 먹는다. 네 식구가 바깥밥을 언제 먹었는 지 떠오르지 않는다. 모처럼 바깥밥을 한 끼니 사서 먹으면서, 나는 집에서 한 끼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어제오늘 잇달아 ‘글 가다듬기’를 하느라 바쁘니, 읍내마실을 다녀오며 한 끼니 품을 덜면서 힘을 몹시 아낄 수 있다. 원고지로 2800장에 이르는 글을 살펴야 하는데, 오늘은 어느 만큼 살필 만할까. 오탈자만 살피는 ‘글 가다듬기’가 아니라 빠진 데를 손보면서 이모저모 보태기도 하니까 퍽 더디다. 나중에 교정 교열만 본다면 그때에는 서너 시간이면 다 마칠 테지. 교정 교열은 아무래도 서울에 가서 바로 마쳐서 출판사로 넘겨야지 싶다. 5월에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5월에 ‘새로운 국어사전’이 조그맣고 예쁘게 나오도록 하려고 힘을 쏟는다. 아버지가 이 일을 하느라 바쁜 어제오늘 두 아이가 씩씩하게 놀아 주어서 고맙다. 더 기운을 내야지. 살짝 숨을 돌리면서 등허리를 편 뒤에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하고 저녁놀이를 한 뒤, 밤하고 새벽에 더 일손을 잡아야겠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297] 눈부신 솜씨



  솜씨가 눈부시니 솜씨가 보여

  재주가 빼어나니 재주가 보여

  손길이 사랑스러워서 사랑이 보여



  글솜씨가 눈부신 글을 읽으면, 눈부신 솜씨를 볼 수 있습니다. 손재주가 빼어난 사진을 보면, 빼어난 재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솜씨가 투박하더라도 사랑이 깃든 글을 읽으면 따사로운 사랑을 느껴요. 재주가 없더라도 사랑이 흐르는 사진을 만나면 넉넉하며 포근한 사랑을 헤아립니다. 솜씨나 재주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솜씨나 재주는 다른 모든 것을 가리고 솜씨랑 재주만 두드러지게 해요. 이야기나 알맹이를 즐겁게 느끼거나 누리려면 바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넋/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9
신동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116



“아빠, ○○○당이 왜 나빠?”

―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신동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4.6.23. 8000원



  신동호 님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2014)를 읽습니다. 대뜸 묻는 냉면집 아저씨 이야기가 긍금합니다. 냉면집 아저씨가 어디로 갔기에 시인은 이렇게 물음표를 콕 찍을까요? 아무래도 냉면집 아저씨가 더는 냉면집을 지키거나 버티지 못하기에 어디론가 가셨겠지요. 냉면집 살림이 나빠졌을 수 있고, 냉면집 말고 다른 꿈을 찾아서 길을 나섰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한 재개발에 밀려서 떠나야 했을 수 있고, 고향이 그리워서 냉면집을 고이 접었을 수 있습니다.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겨울 경춘선 2)


광합성은 1차 산업이다. 지식인들은 이미 자신들이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산나무 증후군)



  사월을 앞둔 시골은 부산하려는 움직임이 살랑거립니다. 아직 부산하지는 않습니다. 바야흐로 새벽이나 밤까지 따스한 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부산할 테지요. 마늘밭에서 마늘을 뽑고, 마늘밭을 갈아엎은 뒤에, 이 자리에 새로운 남새를 심거나 모내기를 해야 하는 사오월이 그야말로 부산하지요.


  그래도 삼월 끝자락 새벽에 마을이 온통 연기투성이입니다. 집집마다 뭔가를 태우는 연기가 몽글몽글 솟습니다. 동틀 무렵부터 일어나서 하루를 연다는 뜻입니다. 나도 동틀 즈음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아침까지 깊이 자도록 불은 안 켭니다. 초만 한 자루 조용히 켭니다. 마당하고 뒤꼍을 돌면서 나무한테 인사하고, 곧 옥수수를 자리를 가만히 살핍니다. 날이 더 따스하면 아이들하고 신나게 옥수수를 심을 생각입니다. 어제는 텃밭에 붉은콩을 쪼르륵 심고, 뒤꼍에 나무도 한 그루 새로 심었습니다.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장벽이 없었음을 확인하던 금강산이 두려웠던 게다. 우리 모두. 장벽이 있어야 편안한 우리 모두. (미인송)



  꽃삽하고 호미를 쥐고 흙놀이를 신나게 하는 아이들입니다. 꽃삽하고 호미만 있으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동안 꽃삽하고 호미로도 배고픈 줄 잊고 놀아요. 밥을 먹으라고 부르면 더 놀아야 한다면서 안 오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시 사회이기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렇지만 딱 서른 해만 돌아보고 쉰 해를 거스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어요. 백 해를 되새기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온누리 거의 모든 아이들한테 꽃삽하고 호미를 맡기면 무척 신나게 흙놀이를 하리라 생각해요. 도시 아이들도 바닷가에 놀러가면 모래밭에서 모래를 파며 신나게 모래투성이가 되지요.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읽으면 신동호 님네 막둥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얼핏설핏 흐릅니다. 그러면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며칠쯤 아버지 일하는 곳에 함께 데리고 다녀도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개근’해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하루나 며칠쯤 학교를 쉬도록 하고서는,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바깥나들이를 넉넉히 다녀 보아도 즐거워요.



과태료 고지서를 깜빡하고 평양까지 가지고 갔다 / 납기 후 금액에 안달하던 자본주의 버릇까지 가지고 갔다 (평양, 가방)


늦은 밤, / 온종일 수학 문제를 푼 열다섯 아들이 / 집으로 가는 길에서 물었다. /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사막촌 주막)



  시인 신동호 님이 과태료 고지서 말고 이녁 아들을 데리고 평양을 다녀오면 어떠한 살림을 지을 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학교를 며칠 쉬도록 하고는, 이 아이들이 평양을 아버지하고 함께 밟으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살짝이나마 겪어 보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 시집을 덮고 부엌일을 합니다. 아침으로 지을 밥거리를 손질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는 아버지를 보는 우리 아이들은 저희도 칼질이나 도마질을 하고 싶습니다. 칼등으로 마늘을 빻으면 왜 칼등으로 마늘을 빻느냐고 물으면서 저희도 그처럼 하고 싶습니다. 절구로 마늘을 찧으면 저희가 절구질을 하겠다면서 손을 번쩍번쩍 듭니다.


  커다란 무도 썰어 보고 싶고, 길다란 당근도 썰어 보고 싶습니다. 매운 내가 퍼지는 양파도 썰어 보고 싶고, 말랑말랑 잘 삶은 달걀도 가만히 썰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어깨너머로 지켜보도록 틈을 내어 주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바라보면서 배우고, 어버이는 아이들 둘레에서 살림을 새로 지으면서 가르칩니다.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는데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 바다가 물러난 사리 갯벌 어디에서 개불을 잡고 있을까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이제야 철조망이 보인다 / 나는, 내가 자유인인 줄 알았다 / 망명의 꿈도 꾸지 못하는 포로였음을 (포로수용소)



  메밀꽃처럼 눈이 내리고, 눈처럼 매화꽃이 날립니다. 매화꽃이 진 옆에서 모과꽃이 피고 앵두꽃이 핍니다. 모과꽃하고 앵두꽃이 지면 붓꽃하고 장미꽃이 펴요. 붓꽃하고 장미꽃이 질 즈음에는 초피꽃하고 후박꽃이 핍니다. 이 사이에서 찔레꽃이 가만히 피어나서 어느새 온통 하얀 꽃밭이 됩니다.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를 가만히 덮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시인 신동호 님 아들은 아버지더러 “아빠 새누리당이 왜 나빠?” 하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아들한테 ‘왜 나쁜’지 낱낱이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요? 아니면, 싯말에만 이렇게 적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아버지더러 “○○는 왜 나빠?” 하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온누리에 나쁜 것(사람)은 없어.”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온누리에 좋은 것(사람)도 없어.” 하고 덧붙여요. 나쁘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좋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고, 좋다고 여긴 것(사람)이 어느새 나쁘다고 여길 만한 것(사람)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좋고 나쁨에 앞서 그것(그 사람) 바탕에 어떤 숨결이 흐르는가를 읽고 싶어요. 좋은 나무도 나쁜 나무도 없이 모두 ‘나무’이고, 좋은 풀도 나쁜 풀도 없이 모두 ‘풀’이며,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이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얘야, 네가 그릇을 떨어뜨려 깨뜨리면 네가 나쁜 아이일까?” “아니.” “아니지? 그냥 그릇을 떨어뜨려서 깨뜨렸을 뿐이야. 나쁜 사람은 따로 없어. 그저 그런 일을 했을 뿐이야. 나중에 그 사람이 그런 일을 왜 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참말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으면 돼.”


  새 아침에 새 하루를 엽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나눕니다. 새로운 살림을 짓자고 새롭게 생각합니다. 냉면집 아저씨는 틀림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새로운 마음을 품으리라 봅니다. 시인 아저씨도, 나도, 온누리 아이들도, 모두 마음자리에 새로운 꿈을 담아서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