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머리말을 쓰기 앞서



  모든 책은 글쓴이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수많은 사람이 품에 안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모든 책은 글쓴이 손을 거칠 적에도 ‘글쓴이가 그 글을 쓰기까지 만나거나 어우러진 모든 사람’하고 얽힌 이야기가 깃들기에, ‘글쓴이가 그 글을 쓸 적에도 수많은 사람이 품에 안는 이야기’인 채 태어난다고 할 텐데, 글쓴이가 글을 마무리짓고 출판사로 글꾸러미를 보내어 책이 나올 적에 ‘글쓴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제서야 ‘우리 모두가 누리는 책’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


  이제 원고지 2800장 남짓 되는 글꾸러미 하나를 마감하고 출판사로 넘기기 앞서 머리말을 쓰려 한다. 머리말을 붙여서 글꾸러미를 출판사로 보내더라도 몇 차례 더 손질하거나 깎고 다듬어야 한다. 글쓴이로서 모든 책을 놓고 ‘더 넣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늘 하는데, 이 대목을 맺고 끊는 일이 늘 아쉬우면서 서운하다. 다음에 새롭게 꾸미면서 넣으면 될 일이지만, 선뜻 마무리를 짓지 못하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졸졸졸 흐른다.


  오늘 마감을 할 글은 이대로 마감하기로 하고, 이듬해나 그 이듬해에 이룰 글꾸러미를 헤아리며 ‘새로운 벼리’를 짜 본다. 새로운 벼리를 짜니 좀 홀가분하다. 이렇게나 이 글꾸러미에 못 넣은 낱말이 많네 하고,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하나 내놓으려 하지만, 이 책에 한 마디라도 더 담으려고 하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아야겠네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자, 오늘은 오늘대로 말끔히 털고 한 걸음을 내딛자. 2016.4.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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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터 ㅊ, 이제 ㅋ



  나흘째 ‘사전 원고 손질’을 한다. 이제 곧 나올 새로운 사전이기에 더 꼼꼼히 살피느라 나흘째 걸린다. 말을 다루는 책을 살피니, 자꾸 새로운 말을 더 볼 수밖에 없고, 일은 더디다. 그렇지만 나흘째에 이른 오늘, 드디어 ㅊ을 지나 ㅋ으로 넘어선다. 이렇게 보다가도 다시 ㄱ이나 ㄴ이나 ㄷ으로 돌아가서는, 앞에서 갈무리하거나 손질한 대목을 또 보태고 다듬고 손질한다.


  눈코 뜰 사이 없이 글손질을 하느라, 아이들 밥차림이 허술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더 오래 놀아야 한다. 살짝 숨을 돌리고 머리를 식혀야겠다. 등허리를 편 뒤 아이들하고 한동안 논 다음, 새롭게 기운을 내어 ㅎ까지 씩씩하게 나아가야지. 이 일을 다 마치면 옥수수알을 불려서 옥수수씨도 뒤꼍에 기쁘게 심어야지. 2016.3.3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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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 영어와 프랑스어의 언어 전쟁
김동섭 지음 / 책미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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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8



영국은 셰익스피어가 ‘새 영어’를 일으켰다면

―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

 김동섭 글

 책미래 펴냄, 2016.3.10. 14000원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영어로 된 노래를 듣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아이들하고 함께 영어로 놀이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길 영화를 살피다 보면 한국에 있는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가 무척 많아서, 이런 영화는 영어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말로 나오지 않은 재미나며 훌륭한 그림책도 많아요. 한국말로 나온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보다가도 번역이 그리 알맞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기에, 아예 영어로 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따로 장만해서 읽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저절로 영어를 새로 배우는 어버이가 되면서, 아이들한테도 영어를 즐거운 놀이로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신나는 가락하고 섞어서 노래를 부르면 퍽 재미있습니다.



(1066년) 윌리엄의 영국 정복은 문화적으로는 대륙의 프랑스 문화의 유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정치적으로는 노르망디의 법률과 행정 제도가 영국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45쪽)


윌리엄 정복 이후 1399년 리처드 2세가 왕위에서 내려올 때까지 프랑스어는 333년 동안 왕의 모국어였고, 헨리 2세(1152년)부터 헨리 6세(1445년)까지 300년 동안 모든 영국의 왕은 프랑스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57쪽)



  영어로 된 말을 듣다 보면 소릿값을 처음부터 알아차리기 어려운 낱말이 꽤 있습니다. 영어에도 사투리가 있으니 표준 영어가 아니라면 말소리도 다르기 마련일 테지만, 표준 영어에서도 소릿값은 글꼴하고 사뭇 다르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글꼴하고 소릿값이 다를까’ 하는 수수께끼를 잘 풀지 못한 채, 이 낱말은 그저 이렇게 소리내야 하는구나 하고만 여겼습니다.


  김동섭 님이 쓴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책미래,2016)를 읽으면서 영어하고 얽힌 실타래를 찬찬히 돌아봅니다. 《영어의 탄생》(책과함께,2005)이라는 책을 읽으며 실타래를 조금씩 풀었고,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를 읽으면서 이 실타래를 조금 더 환하게 풀어 봅니다.


  영어는 처음부터 영어였을 테지만, 이웃에서 여러 나라가 영국이라는 곳으로 쳐들어오면서 수많은 ‘다른 말’이 들어왔다고 해요. 영국이라는 곳으로 쳐들어온 ‘숱한 다른 겨레’는 ‘다른 겨레가 쓰던 말’을 영어에 남겼고,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말을 쓰는 겨레’가 11세기부터 수백 해에 이르도록 그곳을 정치 권력으로서 다스리면서 영어는 더욱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노르만 정복 이후 노르만 방언을 통해 영어에 들어온 새로운 철자는 x, q, z였는데, 이 철자들은 고대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던 철자였다. (66쪽)


영국 왕실에 시집을 온 프랑스 공주들은 많은 식솔을 데리고 도버 해협을 건넜다. 그중에는 요리사, 재단사, 유모, 침모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프랑스 하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 영국 사회에서 상류 계층의 문화적 활동에 관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국어, 즉 프랑스어 어휘들이 자연스럽게 영어에 들어갔을 것이다. (81쪽)



  1066년 뒤로 수백 해에 걸쳐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두루 쓰였다고 합니다. 첫째, 이 나라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여느 사람들, 이른바 땅을 갈고 시골살이를 누리는 수수한 사람들은 ‘그냥 영어’를 씁니다. 둘째, 이 나라에서 정치 권력이나 문화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은 ‘프랑스말’을 씁니다. 셋째, 행정이나 종교나 법에서는 ‘라틴말’을 씁니다.


  이러한 얼거리가 무척 오래도록 이어졌다고 하는 영국이에요. 이러는 동안 수많은 프랑스말이 영어로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영국하고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벌어지면서 이 흐름은 수그러들었다는데, 백년전쟁이 끝난 뒤 영국이 바닷길을 뚫어 다른 여러 나라로 손길을 뻗는 동안,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나라와 겨레’에서 쓰는 말을 영어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영국은 백년전쟁을 통하여 귀중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자신들은 브리튼 섬의 영국인이고, 자신들의 모국어가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159쪽)


셰익스피어와 초서는 영어를 문학어로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초서는 수백 년 간의 프랑스 지배에서 영어를 독자적인 문학 언어로 독립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영어 어휘와 표현을 통해 ‘셰익스피어 영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164쪽)



  바깥으로 본다면, 영어는 어떤 말이든 저희 품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은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영국에 없는 삶이나 살림’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영국에 없는 말’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나 겨레에서 쓰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영국 영어는 ‘다른 나라 말’이나 ‘다른 겨레 말’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셰익스피어 영어’가 일어났듯이, 영국사람 스스로 ‘새로운 영어’를 지어서 ‘새로운 삶과 살림’으로 나아가는 길도 씩씩하게 열었다고 해요. 셰익스피어가 나타나기 앞서는 다른 나라나 겨레에서 ‘다른 말’을 곧이곧대로 영어로 받아들여서 썼을 뿐이라 한다면, 셰익스피어가 나타난 뒤에는 ‘새로운 삶과 살림’을 바로 ‘영어로 스스로 짓는 슬기로운 생각’을 빛냈다고 합니다.



영어 어휘 중에서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들은 대부분 영어 고유어에서 유래한 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빈도수가 적을수록 프랑스어의 비율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도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고유어들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전문 분야, 특히 학문과 예술 등의 전문 분야에서는 한자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88쪽)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를 쓴 김동섭 님은 책 끝자락에서 한국말 이야기를 살짝 들려줍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은 ‘여느 말(일반 의사소통)’은 수수한 한국말로 쓰지만, 문화나 정치나 학문이나 교육이나 종교나 …… 이런저런 자리로 가면 으레 한자말로 쓴다고 이야기해요.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어버이는 드물거나 없다시피 해요. 그런데, ‘우리 집 아이’가 아닌 ‘학교에 있는 학생’ 앞에만 서더라도 말이 달라지지요. 회사에서 말이 달라지고, 가게에서도 말이 달라져요. 그나마 오래된 저잣거리에서는 수수한 한국말을 쓴다고 할 테지만, 경제나 유통이나 대형할인마트 같은 곳에서는 수수한 한국말이 사라집니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영어’가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는 ‘어떤 한국말’이 있다고 할 만할까요? ‘박경리 한국말’이나 ‘홍명희 한국말’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셰익스피어 영어’는 문학에서뿐 아니라 여느 삶자리에서도 두루 쓰는 영어로 퍼진다고 하는데, ‘한국 문학에 나오는 말’은 ‘문학말’을 넘어서 ‘삶말’이나 ‘살림말’로도 퍼진다고 할 만할까요?


  다른 문화나 사회를 일컫는 모든 바깥말을 ‘영국에서는 영어’로만 담아내거나 ‘한국에서는 한국말’로만 담아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바깥말도 즐겁게 받아들여서 재미나게 쓸 만합니다. 다만, 스스로 삶과 살림을 가꾸는 자리에서는 나 스스로 새로운 말을 슬기롭게 짓는 생각을 함께 펼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가만히 보면, 영국 정치를 이루던 이들은 영어가 아닌 프랑스말이나 라틴말을 오랫동안 썼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수수한 영국사람’이 쓰던 영어로 돌아갑니다. 한국 정치를 이루거나 한국 문화나 학문을 이루는 이들은 오늘날 어떤 말을 쓸까요? 이들은 한국에서 앞으로 어떤 말로 나아갈까요? 2016.3.3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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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a 2016-03-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도 진화하고 변천한다는데 그렇군요. 괜히 세익스피어가 아니네요. 영국이 세익스피어를 높이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

파란놀 2016-03-31 09:57   좋아요 0 | URL
한국말도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한국에서도 문학에서만 빛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면서 살림을 북돋울 말이 태어난다면 참 아름답겠지요.
이 책을 pada 님한테 이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했다면
제가 더 고맙습니다 ^^
 
아주 특별한 배달 국민서관 그림동화 172
필립 C. 스테드 글, 매튜 코델 그림 / 국민서관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4



코끼리를 비행기에 싣고 고모한테 가자

― 아주 특별한 배달

 필립 C.스테드 글

 매튜 코델 그림

 이수란 옮김

 국민서관 펴냄, 2015.6.29. 1만 원



  집에서 작은아이를 안으면 큰아이는 저도 안아 달라 합니다. 잠자리를 깔며 큰아이를 업으면 작은아이는 저도 업어 달라 합니다. 때때로 두 아이를 한 팔씩 나누어 안으면서 놀다가 잠자리로 옮깁니다. 때때로 방바닥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배나 비행기 노릇을 해 봅니다, 그리고 마당에서 한 아이씩 손목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요.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이렇게 누가 안거나 업어 주면 무척 재미났어요. 누가 손목을 잡고 빙글빙글 돌려 주면 많이 돌아 주지 않아도 대단히 재미있어요.



“어딜 가는 거야?” “어딜 가겠어요? 코끼리를 그냥 우체통에 넣을 수는 없잖아요. 당연히…….” (6∼7쪽)



  필립 C.스테드 님이 글을 쓰고, 매튜 코델 님이 그림을 빚은 《아주 특별한 배달》(국민서관,2015)을 아주 남달리 읽습니다. 코끼리를 고모한테 선물로 보내려고 하는 당찬 가시내가 나오는 그림책을 무척 재미나게 읽습니다.


  코끼리를 부친다고? 말이 안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가시내는 ‘집에서 키우던’ 코끼리를 이끌고 우체국으로 갑니다. 우체국 아저씨는 ‘코끼리를 고무한테 보내려’면 우표를 얼마나 붙여야 하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수레에 잔뜩 우표를 싣고 와서는 몽땅 붙여야 한다고 말해요.


  아이로서는 수레에 가득 넘치는 우표까지 장만할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으로 가요. 아이가 사는 집에 있는 이웃은 비행기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 아이는 이웃 아주머니한테 ‘비행기를 빌려’ 달라고 말해요.



“메리 아주머니, 아주머니 비행기를 빌릴 수 있을까요? 이 코끼리를 저희 고모에게 보내려고요. 조세핀 고모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고 계셔서…… 친구가 꼭 필요하거든요.” (14쪽)



  그림책이기에 부풀려서 그린다고 여길 수 있지만, 참말 이 그림책대로일 수 있어요. 집에서 코끼리를 키울 수 있고, 아이가 비행기를 몰 수 있지요. 더군다나 이 아이는 코끼리를 비행기에 태우고 날다가 그만 기름이 다 떨어져서, 아니 기름을 안 넣고 비행기를 몬 탓에 비행기가 풀풀거리다가 비실비실 내려앉아요.


  깊은 숲에 비행기가 내려앉아서 더는 비행기로 코끼리를 데리고 가지 못해요. 이때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깊은 숲에서 이 아이를 누가 도와줄 만할까요?


  그림책 《아주 특별한 배달》에 나오는 아이는 야무지게도 악어한테 도와 달라고 얘기해요. 악어더러 냇물을 가로질러 달라고 말하지요. 더군다나 악어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태워 줘요.


  온누리에 이렇게 얌전하고 착한 악어가 또 있을까요? 그런데 아이는 악어한테 ‘고맙다’는 뜻으로 나중에 풍선껌을 보내 주겠다고 다짐합니다. 참으로 똘똘하고, 동무를 헤아릴 줄 아는 멋진 아이로군요.



“안녕, 악어야. 나를 저기 강 아래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이 코끼리를 우리 고모에게 보내려고. 조세핀 고모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고 계셔서 친구가 꼭 필요하거든.” (22쪽)



  새봄에 우리 집 아이들은 지난겨울에 했듯이 호미랑 꽃삽으로 땅을 파면서 놉니다. 땅을 파다가 지렁이가 나오면 흙을 덮어 줍니다. 나비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면 한참 쳐다보다가 풀밭에 내려놓아 줍니다. 들꽃을 한손 가득 꺾어서 꽃놀이를 하고, 마당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주워서 곱다며 춤을 춥니다.


  나도 아이들 못지않게 꽃내음을 맡으며 봄을 즐깁니다. 나무꽃 곁에 서고 풀꽃 둘레에 앉습니다.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나무도 몇 그루 뒤꼍에 심습니다. 새로운 철에 새로운 이웃을 만나고, 새로운 일과 놀이를 붙잡으면서 모두 새로운 살림으로 거듭납니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도 동무가 되지만, 나무나 꽃이나 애벌레나 새도 동무가 됩니다. 그림책 《아주 특별한 배달》에 나오는 아이는 코끼리랑 악어랑 잔나비를 모두 동무로 삼아서 놀 뿐 아니라,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면서 즐겁게 어울려요. 고모한테 가는 길은 언제나 남다르다 싶고, 고모한테 보내는 선물도 언제나 남다르구나 싶어요.



“세이디, 따뜻한 코코아 좀 마시겠니?” “네, 이 편지만 다 쓰고요. 친구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39쪽)



  그림책 《아주 특별한 배달》에 나오는 아이는 고모한테 코끼리를 보내면서 먼길을 즐겁게 가는데, 코끼리에 앞서 펭귄도 말도 고릴라도 보냈다고 합니다. 아마 처음에는 우체국에서 보내려 했지만 우표값이 많이 든다고 해서, 늘 이웃 아주머니한테서 비행기를 빌린 뒤에 손수 비행기를 몰면서 고모한테 찾아갔을 테지요. 언제나 기름을 안 채우고 날다가 깊은 숲에 떨어졌을 테고, 깊은 숲에서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새로운 동무를 사귀면서 한 걸음씩 나아갔을 테지요.


  동무는 학교에만 있지 않습니다. 동무는 마을에만 있지 않습니다. 온누리 어디에나 동무가 있습니다. 온누리 누구나 서로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되기에 서로 동무로 지냅니다. 즐거운 웃음으로 손을 맞잡기에 서로 동무로 어울려요.


  삼월이 저물고 사월로 접어드는 이즈음, 우리 집 처마에 제비가 언제쯤 돌아올까 하고 손꼽아 기다립니다. 반가운 동무가 올해에도 새롭게 이 시골집에서 함께 지낼 나날을 기쁘게 기다립니다. 2016.3.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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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98] 남성 여성



  아이가 태어나는 자리에는

  어머니랑 아버지가 함께 있으니

  나한테는 두 기운이 나란히



  사내가 아무리 훌륭해도 어머니가 있어야 아이를 낳아요. 가시내가 아무리 빼어나도 아버지가 있어야 아이가 태어나요. 사내 혼자 아이를 못 낳고, 가시내 혼자 아이를 못 낳아요. 둘은 서로 다른 몸이지만 한자리에 사랑으로 함께 있을 때에 새로운 살림을 지어서 즐거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서로 다르니 힘도 다를 테고, 슬기나 마음이나 손길도 다를 테지요. 어느 한쪽이 낫거나 좋거나 훌륭할 수 없이 서로 다른 둘은 서로 다른 대목을 고이 아끼고 보살피면서 바야흐로 새로운 하나를 짓는 꿈을 가슴으로 품어요. 그래서 우리한테는 언제나 두 가지 기운, 사내다움하고 가시내다움이 늘 나란히 있어요. 몸으로는 한쪽 모습으로만 보일 테지만 말이지요. 2016.3.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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