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 2단계 세바퀴 저학년 책읽기 7
하치카이 미미 글, 이영미 옮김, 미야하라 요코 그림 / 파란자전거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40



목도리를 다 뜨고 기뻐서 춤추는 ‘빨랑빨랑 양’

―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

 하치카이 미미 글

 미야하라 요코 그림

 이영미 옮김

 파란자전거 펴냄, 2011.8.20. 8900원



  뒤꼍에서 쑥을 뜯고, 이 쑥을 살살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반죽을 하고서, 반죽에 쑥을 섞으며, 이 쑥반죽을 부치거나 찝니다. 천천히 익는 반죽은 어느새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로 거듭납니다. 뜨끈뜨끈 김이 솟는 쑥부침개나 쑥버무리를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면, 짜잔 즐겁고 맛난 주전부리나 샛밥이 됩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손수 실을 짰을 테고, 오늘날에는 가게에서 실을 고릅니다. 실을 고른 뒤에는 바늘을 고릅니다. 그런 뒤 손수 틀을 짜거나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펴서 옷을 뜨지요. 손수 틀을 짜든 다른 사람이 마련한 틀을 살피든 품이 들기 마련이고, 바늘을 놀려 뜨개질을 해서 옷 한 벌을 이루기까지 또 제법 오래 품을 들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빨랑빨랑 양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 자꾸자꾸 뒤처지고 말았어요. (14쪽)


빨랑빨랑 양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은근히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자라도 괜찮을까?” (27∼28쪽)



  하치카이 미미 님이 글을 쓰고, 미야하라 요코 님이 그림을 넣은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파란자전거,2011)에는 두 마리 양이 나옵니다. 두 마리 양이 수컷하고 암컷인지, 또는 암컷하고 수컷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지만 늘 곁에 있는 동무요 이웃으로 지냅니다. 이 두 마리 양은 서로 다른 마음결이면서 늘 서로서로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한 발짝씩 살가이 다가서는 살림을 꾸려요.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느릿느릿 양은 그림을 그립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멋진 그림을 그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물감을 묻힌 붓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립니다. (35쪽)


느릿느릿 양이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는 동안, 빨랑빨랑 양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뭇잎 석 장. 이게 과연 숲이 될 수 있을까?’ 그림을 보고 있으니 빨랑빨랑 양도 나뭇잎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41쪽)



  ‘느릿느릿 양’은 이 이름처럼 늘 느릿느릿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느릿느릿 양답게 스스로 가장 즐거운 결을 살펴서 움직일 뿐입니다. ‘빨랑빨랑 양’은 이 이름대로 늘 빨랑빨랑 움직인다고 해요. 그렇지만 우악스레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아요. 어느새 빠르게 움직일 뿐입니다.


  느릿느릿 양은 느릿느릿 삶결을 헤아리면서 차분하고 꼼꼼한 살림을 짓습니다. 빨랑빨랑 양은 빨랑빨랑 움직이다가 어느 때에 이 빠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잃는구나 하고 깨닫고는 ‘빠르기’가 아닌 다른 자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두 양은 서로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고, 느림도 빠름도 대수롭지 않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느려 보이거나 빨라 보일 수 있는 삶결이 아닌, 서로 즐겁고 함께 기쁜 자리를 찾을 때에 하루가 그야말로 즐겁거나 기쁜 줄 알아차려요.



느릿느릿 양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빨랑빨랑 양도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요. (49쪽)


빨랑빨랑 양은 느릿느릿 양 몰래 목도리를 뜨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양은 얼마 전에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자기 털로 직접 뜬 먹진 파란 목도리였지요 … “다 됐어, 다 됐다!” 빨랑빨랑 양은 너무 기뻐서 빙그르르 돌며 춤까지 추었어요. 자기 물건을 만든 것보다 훨씬 기뻤지요. 빨랑빨랑 양은 예쁜 종이에 목도리를 싸고 리본을 달았습니다. (62, 69쪽)



  빠르기란 무엇일까요? 빠르기는 무엇으로 잴 만할까요? 빠른 사람은 무엇이 빠르다고 할 만할까요? 느림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느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느린 사람은 무엇이 느리다고 할 만할까요?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야 할 까닭이 없고, 어른들도 빠르게 살아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느리게 자란다거나 느리게 살아야 할 까닭도 없지 싶어요. 저마다 다른 몸과 넋에 따라서 알맞게 자라고 살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익숙해서 다른 사람보다 빠르구나 싶도록 해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어느 일이 손에 익지 않거나 더 오래 누리려고 다른 사람보다 느리구나 싶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말이나 글을 빨리 익히는 아이가 있을 테고, 말도 글도 느리게 익히는 아이가 있어요. 책을 빨리 많이 읽는 어른이 있을 테며, 책은 덜 읽거나 안 읽지만 재미나게 살림을 짓거나 가꾸는 어른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양과 빨랑빨랑 양》에도 나오는데, 뜨개질로 목도리를 뜨자면 여러 날이 걸릴 수 있고, 때로는 이레나 달포가 걸릴 수 있어요. 그런데 돈으로 목도리를 사자면 몇 분 만에 장만할 수 있겠지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여길 수 없어요. 돈으로 빠르게 장만하는 길을 갈 수 있고, 손수 실을 장만해서 차근차근 한 땀씩 떠서 목도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빨랑빨랑 양’은 목도리를 다 뜨고 나서 춤을 추었다고 해요. 제가 쓰려고 뜬 목도리가 아니라 선물을 하려고 뜬 목도리였는데, 더없이 기뻤다고 해요. 그래서 이 목도리를 곱게 싸고 고운 댕기까지 달아서 이웃 ‘느릿느릿 양’한테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빨랑빨량 양은 무리 속으로 섞여 드는 느릿느릿 양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보았습니다. 느릿느릿 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뒤에도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84∼85쪽)



  책을 덮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쑥을 뜯어 쑥밥을 짓자면 품이나 겨를이 제법 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짓는 밥은 한결 맛나면서 즐겁습니다. 부침개나 버무리가 익기까지 기다리면서 침을 꼴깍 삼키는 동안에도 재미납니다. 아이들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언제 다 되는가를 웃으며 기다립니다.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손길도 이와 비슷해요. 씨앗 한 톨이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올리며 줄기가 자라고 잎이 퍼져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으레 석 달이 걸려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아요. 옥수수 한 자루를 먹으려면 석 달을 알뜰살뜰 돌본 끝에 기쁘게 톡 따서 다시금 ‘옥수수 삶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요.


  그러고 보면 사람살이에서도 모든 일에는 품하고 겨를이 들어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지을 적에도,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열면서 사귈 적에도, 살림을 가꾸어 보금자리를 이룰 적에도, 참말 늘 품하고 겨를이 듭니다. 그래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고, 삶도 살림도 꿈도 돈으로 살 수 없다 하겠지요.


  춤추는 기쁨을 누리려고 손수 살림을 만지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손수 살림을 건사합니다.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누리면서 마음을 열어 사귀고, 손을 맞잡고 한길을 걷는 사랑을 나누면서 언제나 서로 따사로이 바라봅니다. 2016.4.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한강 편지 작은숲시선 (사십편시선) 15
임덕연 지음 / 작은숲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118



조용조용 거닐며 시를 읽으면

― 남한강 편지

 임덕연 글

 작은숲 펴냄, 2014.12.10. 8000원



  임덕연 님이 빚은 시집 《남한강 편지》(작은숲,2014)를 읽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군내버스에서 읽습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읽습니다.


  버스가 덜컹거릴 적마다 아이들도 내 곁에서 이리 움직이다가 저리 쏠립니다. 아이들은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재미나게 웃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는 듯합니다. 나도 아이들하고 이리저리 덜컹거리면 마치 놀이를 하는구나 싶어서 재미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덜컹거림 때문에 멀미가 났지만 이제는 이런 덜컹거림이 대수롭지 않아요.



몰래받은 설물인양 / 넌출 걸린 비닐들을 깃발처럼 날리면서 / 웅덩이가 모래언덕이 되고 / 자갈더미가 웅덩이가 되는 사연을 (강둑 풀)


강에 가려고든 / 남한강 / 여주 바위늪구비쯤 가 봐라 // 돌이 된 사람들이 / 참 사이좋게 누워있던 걸 (돌이 된 사람)



  교사이자 시인인 임덕연 님은 냇물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냇물에 어린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냇물을 바라보다가 느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냇물을 둘러싼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냇물과 냇가를 이루는 수많은 돌과 풀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조용해야 합니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우리 이야기가 파묻히기 일쑤입니다. 시끄러운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내야 비로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해요. 서로서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되고 가벼운 눈길이 될 때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청동기 시기 집터에는 / 강가에서 한 알 한 알 거뒀을 / 쌀알이 거의 석탄이 되어 나왔다. / 관에서 나와 말뚝을 박고 / 표지판도 세웠을 때는 / 좀 좋은 일이 있으려나 했지만 / 잡초가 자라고, 말뚝이 썩어도 / 촌살림은 별반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 새소리를 못 듣습니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옆에서 들려주려는 말소리를 못 듣습니다. 커다란 짐차가 우르릉거리며 지나갈 적에도, 삽차가 땅을 팔 적에도, 크고작은 자동차가 둘레를 지나갈 적에도, 이 모든 소리는 새소리나 말소리를 모두 잠재웁니다.


  그러고 보면, 냇물을 까뒤집어 시멘트를 들이붓는 삽질이 여러 해 동안 이어질 적에, 이런 일을 시키던 사람이나 이런 일을 하던 사람은 새소리도 말소리도 듣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해요. 수많은 기계가 내는 소리에 밀려서 작은 목숨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듣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작은 목숨이 내는 작은 소리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할 만해요.

  


나무들이, 풀들이, 수많은 돌들이 / 터벅터벅 / 강가를 걷고 있다. // 바람들이, 구름들이, 강물에 제 얼굴을 비춰대는 하늘이 / 쉬엄쉬엄 / 강가를 걷고 있다. (강가를 걷다)



  바쁜 걸음을 살짝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바쁜 일을 살짝 그치고 눈을 들 수 있을까요. 바쁜 하루를 살짝 내려놓고 둘레를 돌아볼 수 있을까요.


  꼭 시인처럼 나무나 풀이나 돌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꼭 시인처럼 냇가를 거닐어야 하지 않습니다. 바람을 쐬고, 비를 뿌리는 구름을 보며, 우리 몸을 이루는 물줄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는가를 헤아릴 수 있으면 됩니다. 내 목소리를 너한테 들려주고, 네 목소리를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으면 돼요.



강물은 / 그저 긴 꼬리를 달고 아래로만 / 미련 없이 흐르는 줄 알았는데 / 새벽녘 강가에 나와 보니 / 강물은 / 크고 작은 톱니바퀴 수천 개를 맞대어 돌리면서 / 지구를 돌리고 있었다. (이포, 강가에 서서)



  조용조용 걸으면 발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발소리를 죽인 채 살금살금 걸으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참새가 처마 밑을 바지런히 드나드는 소리를 듣고, 직박구리가 매화나무에 앉아서 노는 소리를 듣습니다. 딱새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살짝 내려앉아서 ‘딱딱’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작은 구슬을 입안에서 굴리는 듯한 소리도 듣습니다.


  발소리를 죽이면서 아주 천천히 마당이나 뒤꼍을 거닐면, 크고작은 새들은 우듬지나 가지에 앉아서 처음에는 내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딴 데를 봅니다. 발소리가 나거나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나도록 움직이면 새들은 이내 자리를 떠요. 나는 내 발소리도 몸짓 소리도 죽이면서 온갖 새가 우리 집 둘레를 드나드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새소리에다가 바람소리도 한결 깊이 듣습니다.


  시집 《남한강 편지》를 손에 쥐고 마당하고 뒤꼍을 걸어 봅니다. 다 읽은 시집을 평상에 내려놓고 나무 앞에 조용히 섭니다. 새로 돋는 잎을 바라보고, 새잎이 돋는 나무에 살포시 찾아드는 멧새를 마주합니다. 문득 낯익은 소리가 들려 위를 올려다보니 제비 여섯 마리가 빠르게 하늘을 가릅니다. 2016.4.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비행 (로알드 달) 살림Friends 펴냄, 2016.3.30.



  무척 두꺼운 ‘로알드 달 평전’이 있다. 이 평전을 절반쯤 읽었다. 꽤 더디게 읽는 셈인데, 여러모로 생각할 대목이 많아서 찬찬히 읽는다. 평전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로알드 달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놀라운 이야기를 마음껏 써냈는가 하는 대목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로알드 달이 이제 갓 스물 안팎인 나이에 석유회사 아프리카 파견사원으로 지내면서 겪은 일을 차분히 알 수 있었고, 왜 공군에 자원입대해서 어떻게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다쳤으며, 어떻게 살아나서 군인으로 일자리를 이을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도 알 수 있었다. 이런 밑지식이 없더라도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비행》은 얼마든지 재미나게 읽을 만하다. 그런데, ‘로알드 달 평전’ 앞자락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다면 훨씬 재미나게 느낄 만하지 싶다. 아무튼, 뱀이나 비행기나 배나 독일사람이나 노예나 전쟁이나 …… 로알드 달답게 능청스러우면서도 꼼꼼하고, 여기에 웃음을 잃지 않는 멋진 이야기를 새삼스레 돌아볼 만한 아기자기한 책이다. 2016.4.2.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천재이야기꾼 로알드 달- 로알드 달 재단 공식 전기
도널드 스터록 지음, 지혜연 옮김 / 다산기획 / 2012년 4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6년 04월 02일에 저장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
로알드 달 지음, 퀀틴 블레이크 그림 / 살림Friends / 2016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6년 04월 02일에 저장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넋 61. 우리가 ‘말’로 ‘생각’을 나타내는 뜻

― 알맞게 나누는 ‘표현·이해’는 무엇일까


[수수께끼] 궁금한 것이 있어요. 많은 ‘교수’들이 ‘권위적·강압적’과 같은 ‘-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제가 저런 말을 많이 쓰는 ‘교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면, 저런 한자말이 가르치는 데 빠른 ‘이해’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자말을 너무 ‘남용’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우리말이 주는 맛을 모르고 ‘무분별’하게 한자말을 쓰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 대부분 한자말을 적당히 쓰고 ‘이해’하는 것에 서로 어느 정도 ‘약속’이 되어 있어서, 적당한 한자말이 ‘표현’과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우리말을 쓰는 것도 좋지만, 저런 교수님들이 하는 ‘강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말로 생각을 나타냅니다. 말을 쓰지 않는다면 눈짓이나 손짓이나 몸짓으로 생각을 나타냅니다. 눈짓·손짓·몸짓을 쓰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생각을 나타내요. 자, 이러한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눈짓·손짓·몸짓으로 생각을 나타낼 적에는 ‘어떤 말’을 쓰는 셈일까요? 이때에 우리는 한국말이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그저 ‘생각’을 나타낼 뿐입니다. 마음으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다고 할 적에도 ‘마음’을 읽거나 밝힐 뿐이고, ‘마음’에 ‘생각’을 남아서 뜻을 주고받는 셈입니다.


  ‘말’을 쓰는 까닭은 바로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을 곧바로 읽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힘을 잃었다고 할 수 있기에 말을 빌어서 마음을 나타낸다고 할 만해요.


  나라나 겨레마다 말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말만 다를 뿐 생각이나 마음은 같습니다. ‘돌’이나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름)’은 나라나 겨레마다 모두 다를 테지만, 돌이나 나무를 바라보는 생각이나 마음은 같아요. 그래서 눈짓·손짓·몸짓으로 ‘그려서’ 얼마든지 ‘마음 나타내기’하고 ‘마음 읽기’를 해요.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연장’이나 ‘그릇’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내는 연장이거나, 생각이나 마음을 담는 그릇이지요. 어떤 연장이나 그릇을 쓰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영어라는 연장이나 그릇을 써서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고, 프랑스말이나 네덜란드말이나 포르투갈말이나 일본말이라는 연장이나 그릇을 써서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낼 수 있어요.


  그러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말을 쓸까요?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생각이나 마음을 슬기롭게 나타낼까요? 아니면, 허울로는 ‘한글’이지만, 이 한글(글)이라는 또 다른 ‘연장’이나 ‘그릇’에 ‘한국말답지 않은 말’을 끌어들여서 생각이나 마음을 그냥저냥 나타낼까요?


  번역투라는 ‘연장·그릇(말)’을 빌어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여느 사람은 못 알아들을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라는 ‘연장·그릇(말)’을 빌어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라고 하면 될 테지만, 누군가는 굳이 영어로 ‘포토’라고 말하면서 사진강의를 해요. 요새는 ‘글’이라 말하지 않고 ‘텍스트’라는 영어를 써야 뭔가 비평이 된다고 여기는 지식인이나 작가나 비평가도 많아요. 그런데 어떠한 말짓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우면서 정갈한데다가 곱기까지 한 말로 생각·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연장·그릇(말)’을 골라서 쓰든 모두 ‘나 스스로 고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고르는 길은 내 ‘넋’을 이루고 내 ‘삶’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흔히 쓴다’고 하기에 나도 그 말을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좋든 나쁘든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흔히 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구태여 똑같이 안 쓸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나쁘든 좋든 말이지요. 그래서 온누리 어느 나라에나 고장말(사투리)이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은 자리에서 길어올린 말이 바로 ‘고장말(사투리)’입니다.


  대학교나 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말은 ‘표준말’이나 ‘서울말’이나 ‘학문말’이나 ‘글말’입니다. 이러한 말도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옳거나 좋은 말이 아니고, 그르거나 나쁜 말이 아닙니다. 그저 ‘의사소통을 하는 연장이나 그릇’으로 삼는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 대학교나 수많은 학교를 비롯해서, 지식이나 학문을 다루는 이들은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그릇’을 단단히 붙잡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운 그 울타리(학문 체계)에 그들이 들어서기까지 ‘그 울타리에 깃든 그릇’이 되는 말을 달달 외워서 그 울타리에 깃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득권·권력’이라고 하겠지요. 기득권이나 권력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어렵게 쌓아올린 기득권이나 권력을 모든 사람이 아주 손쉽게 차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말은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 갇히기 마련입니다. ‘그 울타리에서 쓰는 말’이 어려운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번역투이든 일본 한자말이든, 그 울타리 안쪽에서는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그 울타리를 지키려고 ‘그 울타리 말’로 ‘기득권을 감싸는 의사소통’만 할 뿐입니다. 이러면서 ‘기득권을 감싸는 의사소통’을 가리켜 ‘전문용어·학술용어’라는 이름을 살며시 붙여요.


  ‘권위적’이나 ‘강압적’이라는 말을 쓰는 까닭은 그들한테 이 말이 익숙하기 때문이고, 그들 스스로 이 말에서 더는 새롭게 나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새롭게 지어서 새로운 말을 쓰려는 마음이 없으니 어느 한 가지 말에서 멈추거나 고이고 말아요. ‘권위적·강압적’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써야 ‘의사소통·표현·이해’가 더 잘 되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말만 알고 이런 말로만 생각하고 이런 말로만 삶을 바라보려고 할 뿐입니다. ‘그 울타리에 걸맞는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곳(학교나 강단이나 사회나 정치)에서는 ‘의사소통·표현·이해’라는 말을 쓸 테지만, 어느 곳에서는 ‘의사소통·표현·이해’라는 말이 없이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누고 ‘말하기’를 하며 ‘알아듣기’를 합니다. 힘을 내세우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니 ‘권위적’이나 ‘강압적’이 됩니다. ‘말’도 얼마든지 ‘권력’이 되기 때문에 ‘권위적·강압적’ 같은 말마디로 ‘울타리 감싸기를 하는 권력’을 그대로 이으려 합니다. 그들하고 똑같이 권력을 물려받거나 이어받을 생각이라면 우리도 그들하고 똑같은 ‘권위적·강압적’ 같은 말을 쓰면 되고, 우리는 그들과 달리 새로운 마음이 되고 새로운 생각을 지어서 새로운 삶·살림·사랑을 이루려 한다면, 이제부터 새로운 말을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쓰면 됩니다. 다만, ‘새로운 말’도 ‘지식 권력’이 되지 않도록 ‘누구나 즐겁게’, 그러니까 그야말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누구나 즐겁게 알아듣고 나눌 수 있을 만한 ‘새로운 말’이 될 때에 비로소 ‘권력 아닌 삶을 짓는 말’이 될 만합니다. 2016.4.2.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꼬마애벌레 말캉이 2 - 심심한 건 더 못참아!
황경택 글.그림 / 소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16



내 모습은 바로 ‘나를 낳은 엄마 모습’

― 꼬마 애벌레 말캉이 2

 황경택 글·그림

 소나무 펴냄, 2010.12.12. 9500원



  노랑나비도 흰나비도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봄입니다. 노랑나비하고 흰나비는 고흥에서 삼월 첫머리에도 반가이 보았고, 사월에도 기쁘게 봅니다. 삼월 첫머리에 깨어난 노랑나비라면 이월부터 번데기를 틀었다는 뜻이고, 한겨울에도 애벌레로 살았다는 뜻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겨울에도 갓이나 유채는 씩씩하게 돋습니다. 네 철 푸른 나무는 한겨울에도 짙푸른 잎을 매답니다. 이른봄에 나비로 깨어나려고 하는 애벌레로서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먹을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모든 풀이 다 시들어서 죽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월부터 돋은 쑥에도 온갖 애벌레가 꼬물꼬물 붙어서 기어다녔어요. 어느 아이는 나비로 깨어날 애벌레일 테고, 어느 아이는 나방으로 깨어날 애벌레예요.



“똥이 더러운 거라면, 똥을 만드는 동물도 더러운 게 아닐까? 난 똥을 치워 주잖아.” “넌 먹잖아!” “내가 없다면, 이 세상엔 똥이 가득할 거야.” “설마. 그 많은 똥들을 혼자 다 먹냐?” (17쪽)


“난 밤에 짝을 찾으려고 불빛을 만들어내지.” “짝은 찾아서 뭐 하게?” “알 낳지.” “왜 다들 알을 낳으려는 걸까?” “내가 죽으면 내 대신 살아가야지.” “안 죽으면 되잖아?” “안 죽는 건 없어.” “난 안 죽어. 천재니까!” ‘저거 바보 맞네.’ (33쪽)



  엊저녁에 집에서 나방 한 마리를 봅니다. 집안에서 나방을 보기는 올들어 처음입니다. 나비뿐 아니라 나방도 깨어날 때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깥에서는 파리도 몇 마리 날아다닙니다. 벌도 부산하고 파리도 부산해요. 저마다 새로운 숨결로 새봄을 맞이하느라 부산해요.


  황경태 님이 빚은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소나무,2010) 두 권을 읽으면서 나비하고 나방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꼬마 애벌레는 ‘뽕나무 애벌레’입니다. 마침 우리 집 뒤꼍에는 제법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이 뽕나무 둘레에는 뽕잎을 먹는 애벌레가 꽤 많습니다.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주인공 애벌레는 우리 집 둘레에서 흔히 보는 숱한 애벌레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해요.



“나도 엄마한테 신호 보낼 거야. 어떻게 하는 거야?” “넌 안 돼.” “난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어.” (37쪽)


“우린 왜 먹어야 할까?” “낸들 아냐.” “왜 그럴까? …… 난 안 먹을래! 생명을 해치는 일, 난 안 해!” “너, 먹지?” “생각해 봤는데, 난 풀밖에 안 먹어.” “풀도 생명이야. 생명은 다 같아. 너도 나도 풀도 다 같은 생명이야.” (85∼86쪽)



  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말캉이는 처음에는 뽕나무하고 이야기를 섞습니다. 뽕나무한테서 ‘말캉이’라는 이름을 얻은 애벌레는 나무 곁에서 나뭇잎만 먹으며 살기보다는 ‘너른 바깥누리’를 겪고 싶습니다. 씩씩하게 나무를 타고 땅바닥으로 내려서요. 다만, 하루 사이에 내려서지 못하고, 이틀에 걸쳐서 힘겹게 내려섭니다.


  문득 우리 집 애벌레를 떠올립니다. 애벌레는 하루 만에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하고.


  애벌레는 ‘작은 벌레’라고 하는 뜻처럼 작습니다. 뽕나무 곁에서 자라는 애벌레도 참으로 작습니다. 십 미터쯤 되는 나무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오자면 한참 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달팽이보다는 빨라요. 꼬물꼬물 기는 몸짓이지만 이틀까지 걸려서 땅바닥으로 내려오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한곳에서 빙글빙글 돌 수 있어요. 때로는 ‘수많은 발’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하늘을 가르며 바닥에 톡 떨어지기도 해요. 지난해 봄에는 바람이 퍽 가볍게 불던 날씨인데에도 애벌레가 그만 땅바닥에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방법이 있다. 네 엄마가 누군지 아는 방법!” “그, 그게 뭔데?” “네가 엄마가 되어 보면 알지!” (90쪽)


“그럼 이상한 걸 먹냐?”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걸 먹는 거야. 먹는 건 사랑스러운 거야!” (107쪽)



  누군가는 이 애벌레를 징그러이 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똥을 핥는 파리’를 더럽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벌레는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서 먹을 뿐 아니라, 나무꽃이나 풀꽃이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해 줍니다. 파리가 똥을 핥기에 사람이나 짐승이 누는 똥이 흙으로 돌아가서 풀하고 나무가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없어서 나비나 나방이 깨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셔요. 매화나무도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귤나무도 오얏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 모두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해야 합니다. 밤나무도 잣나무도 은행나무도 참나무도 벚나무도 사람이 하나하나 손을 써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 테고요. 바람도 꽃가루받이를 시켜 준다고 하지만, 크고작은 날벌레하고 풀벌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애벌레와 날벌레가 너무 늘지 않도록 새가 함께 있어야지요.


  함께 사는 지구별이자 숲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자 마을이라고 할 만해요. 그래서 작은 애벌레는 나무한테서도 삶을 배우고, 이웃 여러 벌레랑 짐승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사람도 다른 사람만 스승으로 삼지 않아요. 사람도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서도 배우고, 작은 벌레한테서도 배웁니다.



“아, 졸려. 근데, 뭔가 막 하고 싶다. 실 뽑기! 위로 갈 거야.” “왜 갑자기?” “나도 몰라. 그냥 뭐가 하고 싶어졌어. 본격적으로 실 뽑기를 하고 싶다.” (136∼137쪽)


“난, 암컷이었어.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나를 낳았듯 멋진. 아, 지금 내 모습은 엄마의 모습?” (165쪽)



  만화책 《꼬마 애벌레 말캉이》에 나오는 애벌레는 너른 바깥누리를 돌아다닌 끝에 뽕나무한테 돌아갑니다. 바깥누리를 돌아다니면서 사귄 여러 동무한테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길을 배웠고, 다시 돌아온 뽕나무한테서 ‘꿈꾸면서 잠드는 하루’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윽고 이 애벌레 말캉이는 스스로 번데기를 틀어서 깊이 잠들어요. 오랫동안 꿈나라를 헤맨 끝에 가만히 깨어나요. 날개를 단 눈부신 몸으로 일어나지요. 그러고는 어느 때에 문득 깨닫습니다. ‘아, 나는 나를 낳은 엄마처럼 엄마가 되었구나!’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를 낳아서 우리는 저마다 즐겁고 씩씩하게 살다가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우리는 다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새로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됩니다. 작은 애벌레는 작은 애벌레답고 수많은 이웃한테서 삶을 배워서 사랑을 키웠고, 사람은 사람대로 숱한 이웃한테서 살림을 배워서 사랑을 키웁니다. 모든 목숨이 싱그러이 깨어나서 무르익는 사월을 맞이하여 힘차게 기지개를 켭니다. 새와 풀벌레가 노래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노래하는 살림을 꿈꿉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어린 새하고 번데기에서 거듭나는 새로운 나비와 나방처럼, 나도 날마다 껍데기를 벗고 슬기로운 어른이자 어버이로 힘차게 서자고 다짐합니다. 2016.4.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