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쿠스 모르티스 -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
리 호이나키 지음, 부희령 옮김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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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44



‘주류 의학’이 아닌 ‘함께 죽는 삶벗’ 바라보기

― 아미쿠스 모르티스

 리 호이나키 글

 부희령 옮김

 삶창 펴냄, 2016.3.21. 22000원



  봄에 밭에서 남새를 뜯습니다. 이웃 할머니가 시금치밭에서 시금치를 솎으실 적에 살짝 거들면서 시금치를 뜯기도 하고, 갓김치를 담그려고 우리 집 밭에서 맨손으로 갓잎을 훑거나 뿌리까지 알뜰히 뽑기도 합니다. 통째로 먹을 남새나 풀이라면 뿌리까지 뽑습니다. 씨앗을 받을 생각이라든지, 나중에 잎을 더 훑을 생각이라면 잎만 뜯습니다.


  밭에서 시금치나 갓을 솎을 적에, 또 쑥을 뜯거나 봄나물을 할 적에, 우리가 먹을 만큼 솎거나 뜯는데, 다친 잎이나 벌레가 많이 먹은 잎은 그 자리에서 바로 흙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이러면 이 잎은 며칠 뒤에 바짝 시들어 바스락거리고, 며칠 더 지나면 어느새 조각조각 부스러지면서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생생하고 통통한 잎은 헹구고 손질해서 나물이나 김치로 바뀌어 밥으로 삼고, 시들거나 벌레 많이 먹은 잎은 저희가 처음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흙으로 바뀝니다.



누군가의 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어떤 이름으로 불렸던 개인들이 이제 장수의 추상적인 표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통계 숫자들이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 잔인한 범죄들을 보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눈이 멀었다. 대부분 산업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므로 죄책감을 나눠 갖고 있다. 산업이라는 과학을 믿고,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을 사거나 먹고, 산업에서 얻어지는 이윤으로 부유해진다. (22쪽)



  리 호이나키 님이 쓴 《아미쿠스 모르티스》(삶창,2016)를 읽습니다. 미국에서 2006년에 “Dying is not death”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리 호이나키 님은 1928년에 태어나서 2014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낯선 외국말로 붙은 책이름은 이반 일리치 님이 한 말에서 새로 따왔다고 하는데, ‘아미쿠스 모르티스(amicus mortis)’는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를 가리킨다고 해요.


  다시 말해서, “죽는 때는 죽음이 아니다(Dying is not death)”를 밝히는 도톰한 이 책은 “죽음을 함께 바라보고 함께 맞이하면서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벗(아미쿠스 모르티스)”이 어떠한 삶인가를 돌아보려고 한다고 말할 만합니다.



당신은 당신 앞에 있는 남자를 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는 환자라는, 일반화되고 단정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30쪽)


이 특화된 현대적 형태의 악마성으로부터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것인가? 나는 사랑이 가득한 친밀함의 실천에 그 해답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보는 법과 듣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알고, 미묘한 의도를 알아차리는 습관이 필요한 일이다. (42쪽)



  리 호이나키 님은 《아미쿠스 모르티스》라는 책에서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리 호이나키 님을 둘러싼 아버지하고 동무를 이야기하고, 병원에서 마주치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오랜 마음벗인 이반 일리치 님 이야기도 꽤 길게 다룹니다.


  그런데, 리 호이나키 님이 병원에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로워’ 보였다고 해요. 틀림없이 ‘가장 전문’이라고 할 의사와 간호사가 이들 ‘환자’를 다루는데, ‘사람’이 아닌 ‘환자’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누구라도 참으로 괴롭게 그곳에 머물면서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몸이 된다고 해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사람들은 ‘환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피뽑기 검사’도 날마다 으레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날마다 통계를 마련해야 하고,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이러한 통계를 마련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환자가 죽고 나서’ 보험회사에서 따진다고 해요. 병원에서 첨단설비와 의약품으로 꾸준하게 ‘처방한 기록’이 있지 않다면, ‘환자가 죽은 뒤’에 의사는 고소나 고발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류 의학은 암에 대해 오직 세 가지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것을 제거하거나(수술), 태워 버리거나(방사선 치료), 혹은 독살(화학 요법)하고자 한다. (81쪽)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라이시엄에서 걸어 다니면서 가르쳤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157쪽)


사람들 하나하나는 반드시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누가 나의 조상인가?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180쪽)



  《아미쿠스 모르티스》는 죽음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되새깁니다. 리 호이나키 님을 비롯한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갈 적에는 ‘아버지’를 만나거나 ‘벗’을 만나러 가지만, 병원에서는 ‘환자’라는 이름만 쓴다고 해요. 다시 말해서, 병원에서는 ‘환자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질병 상황을 통계로 정리한 몸뚱이’를 바라볼 뿐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리 호이나키 님은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옛날부터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적에 ‘학생을 책상맡에 앉히’지 않고 ‘함께 걸어 다니면서 가르치고 배웠다’고 하는 대목을 떠올립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멈추고 생각에 잠깁니다. 오늘날 우리는 학교라는 곳에 ‘학생을 책상맡에 앉히’기만 합니다. 강의나 교육을 하는 자리도 으레 이와 같아요. 가르치는 사람 혼자 강단에 서서 떠듭니다. 학생이 되는 사람은 책상맡에 얌전히 앉아서 듣기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얼거리’가 아니라 ‘책상물림이 되는 얼거리’라고 할 만해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스스로 세계의 시스템을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활동을 하지 못하리라고 가정한다. 시스템은 단단히 자리를 잡은 채 보통 사람들처럼 충성하지 않으려면 묵인하라고 요구한다. (244쪽)


우리는 건강이라고 불리는 추상적 개념에 집중하게 하는 뉴스와 호소와 유혹과 요구의 공격을 받는다. 이러한 선동은 많은 부분 다양한 의료 시스템에서 나오며, 우리의 두려움과 허영심에 호소한다. 건강에 ‘필요한’ 것들은, 시험해 보니, 그저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기기 위한 강매나 은근한 설득에 의한 판매 전략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263쪽)



  책상맡이 아닌 들판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얼거리가 아름다운 학교가 될 수 있을까요? 병원 침대맡이 아닌 ‘보금자리와 마을’에서 함께 돌보고 아끼면서 삶을 마감하는 길로 가도록 하는 ‘병 다스리기’를 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처방’이나 ‘치료’라는 한자말은 현대의학이 나타나면서 쓰는 낱말입니다. 예부터 이 나라에서는 ‘돌보다’나 ‘보살피다’라는 말을 썼어요. 병을 앓거나 다친 사람을 ‘똑같은 한집안 사람’으로 두고 함께 먹고자고 지내면서 돌보거나 보살폈어요. 함께 바람을 마시고, 함께 햇볕을 쬐며, 함께 밥상을 받으면서 병을 다스리거나 달랬어요.


  리 호이나키 님은 이녁 벗님인 이반 일리치 님이 ‘병을 한몸으로 맞아들여서 지내는 삶’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죽음하고 삶’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까운 살붙이하고 동무가 ‘삶을 내려놓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죽음이 아닌 죽음’하고 ‘삶이 아닌 삶’은 무엇인가 하고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요일과 죽은 이를 추모하는 예배의식을 경험하면서 나는 찬양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감각들을 집중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403쪽)



  배움은 무엇이 배움일까요? 아픔은 무엇이 아픔일까요? 돌봄이나 보살핌은 참뜻이 무엇일까요? 병원이나 의사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병원이나 의사가 바라보는 곳이 너무 한쪽으로 좁게 쏠리지 않았느냐 하고 묻는 《아미쿠스 모르티스》이로구나 싶습니다. 겉치레를 벗고 속을 가꾸는 길일 때에 비로소 ‘삶’이고 ‘죽음’이지 않느냐 하고 묻는 《아미쿠스 모르티스》라고 느낍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을 차리면서 밥찌꺼기는 으레 흙한테 돌려줍니다. 곧 매화 열매가 익어서 매화 열매로 효소를 담글 적에도 열매를 손질하고 남은 것은 모두 흙한테 돌려줍니다. 남새를 헹구며 나오는 흙물도 밭에다가 돌려줍니다. 밭에서 거둔 옥수수를 삶아서 먹은 뒤에도 옥수숫자루는 흙한테 돌려주어요. 흙에서 얻어서 몸을 살리고, 몸을 살리면서 몸밖으로 나온 것은 흙한테 돌려줍니다. 함께 살기에 함께 삶을 짓고, 함께 삶을 지으면서 이곳에서 서로 돌보는 사이로 지냅니다. 2016.4.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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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25. 민들레 목도리 (2016.4.7.)



  어머니한테서 배운 뜨개질로 ‘실가락지’를 떠서 손가락에 끼운 살림순이가 들마실을 하다가 노란 민둘레가 잔뜩 핀 곳을 보더니 세 송이를 꺾는다. 민들레꽃을 손에 쥐고 걷는가 했더니 어느새 가락지를 손에서 끄른 다음 민들레한테 둘러 준다. “이거 봐. 민들레 목도리야.” 이 봄에 민들레한테 목도리를 선물로 해 주는구나. 그래, 끈이 아니라 목도리야. 네 손가락에서는 가락지가 되듯이, 민들레 꽃줄기에서는 목도리가 되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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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8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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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17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다

― 신부 이야기 8

 모리 카오루 글·그림

 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6.3.30. 7500원



  요즈음 들어 큰아이는 새롭게 뜨개질에 눈을 뜹니다. 지난해에 어머니한테서 코를 잡는 뜨개질을 익히기는 했는데 얼마 못 가서 다른 놀이에 빠져서 코잡기를 어느새 잊었어요. 이러다가 요즈음 들어서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쥡니다. 어머니가 실을 엮고 속에 솜을 채운 ‘집인형(수제인형)’을 지어서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어머니가 여러 날에 걸쳐서 한 코 두 코 찬찬히 떠서 지은 뜨개인형을 보고는 아주 반했어요. 작은아이도 이 뜨개인형에 몹시 반한 나머지, 어디를 가든 꼭 뜨개인형을 챙깁니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다시 뜨개바늘을 손에 쥐면서 실엮기부터 합니다. 인형한테 줄 목도리를 조그맣게 뜨고, 아이 손에 끼울 가락지를 신나게 떠요.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까, 자꾸 짜증이 나서!” “새를 자수로 놓으면 즐거워요!” “아, 네, 그렇군요.” (48쪽)


“어머니가 되면 가족을 부양하니 모든 일에 책임을 가져야만 하지. 태어날 아이에게 입혀 준다는 생각으로 해 보거라.” “아이.” “응? 상상이 안 가느냐?” “그럼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며 수를 놓아 봐.” “그게 더 잘 될 게다.” (53쪽)



  모리 카오루 님이 빚은 만화책 《신부 이야기》(대원씨아이,2016)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터전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책입니다. 이 만화책을 그리는 분들(작가와 도움이 모두)은 참으로 ‘죽어 나겠네’ 하고 느끼면서 읽는 만화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입는 옷은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해서 무늬를 박은 옷’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든 배경에 나오는 사람이든 모두 ‘손바느질로 무늬를 알뜰히 넣은 옷’을 입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한 칸을 그리려고 해도 여러 사람이 수없이 그리고 다시 그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 여덟째 권에서는 ‘파미르’라는 아가씨가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 ‘신부’는 아니지만 앞으로 ‘신부가 될 아가씨’이지요. 그런데 이 아가씨는 ‘가시내는 모두 손바느질로 옷이며 옷감이며 깔개며 이불이며 살림이며 떠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건만, 뜨개질 솜씨가 영 시원찮습니다. 빵반죽은 무척 훌륭히 잘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바늘을 놀리는 데에는 아주 서툴어요.



‘뭐, 그대로 하라는 말씀은 없었으니까, 슬쩍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 “간단히 때울 생각만 하다간, 언제까지고 늘지 않을 게다.” (79쪽)


“정말 예뻐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았는걸요.” “뭐, 처음에만 힘들 뿐이지. 한 번 할 수 있게 되면 그 후로는 점점 편해지거든. 게다가 말이다, 이런 건 매일 쓰는 물건이야. 볼 때마다 참 잘 만들었구나, 생각할 수 있어서 좋지 않으냐.” (91쪽)



  바느질을 하는 젊은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책을 읽다가 우리 아이들을 문득 바라봅니다. 한 코 두 코 잡으면서 실을 엮어서 뜨개질을 익히려는 손놀림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실가락지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가락지가 발판이 되어 앞으로 깔개도 뜰 수 있고, 목도리도 인형도 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입을 옷도 스스로 뜰 수 있을 테고요.


  나도 어릴 적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실과 수업에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다만, 실과 수업을 하던 학기에만 한 달 즈음 하고 그쳤을 뿐이에요. 교과서에 나온 수업이었으니 1980년대 학교에서도 열 살 안팎 아이들이 뜨개질을 배웠어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대바늘도 팔고 실도 팔았어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목도리나 장갑이나 양말쯤은 으레 ‘집옷’으로 떠서 입곤 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50년대 무렵이라면 ‘옷을 사서 입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으리라 느껴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00년대 첫무렵이라든지 1800년대라 한다면, 누구나 제 옷은 제가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여기에서 더 헤아리면, 지난날에는 뜨개질이나 바느질만 스스로 하지 않았습니다. 천뿐 아니라 실까지 손수 얻었어요. 풀줄기에서 섬유질을 뽑아낸 뒤에, 이 섬유질을 말리고 다스려서 물레를 잣지요. 물레를 자은 뒤에는 베틀을 밟아요. 베틀을 밟아서 천을 짜고 나서야 비로소 바느질을 해요.



‘이대로는 안 돼. 무슨 수를 써야 해! 나는, 성격을 바꾸겠어. 나는 나의 이상형인 내가 되겠어.’ (168쪽)



  나는 오늘 어버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아이들한테 입히지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뜨개옷을 제법 지어서 입혔습니다. 이러다가 옷짓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나중에는 그냥 사서 입자고 하셨어요.


  나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옷을 손수 지어서 입자는 생각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서 사서 입으면 되고, 아니면 이웃한테서 물려받아서 입으면 되리라 여겼어요. 화학섬유로 공장에서 찍은 옷인지, 아니면 들에서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손수 짓는 옷인지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면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입을 옷을 그리며 살림을 짓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늘 손으로 만지면서 놀 인형을 어떻게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좋은 옷이나 인형을 ‘돈을 넉넉히 벌어서 사서 쓰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실을 풀줄기에서 섬유질로 얻어서 물레도 잣거나 베틀도 밟는 길까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하고 바늘을 장만해서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할 수 있습니다. 뜨개질하고 바느질부터 하나씩 제대로 새롭게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옷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신부 이야기》에 나오는 파미르 아가씨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새롭게 바느질을 하려고 애쓰듯이, 파미르 아가씨가 스스로 ‘새로운 나’로 거듭나려고 하듯이, 나도 올해부터 새로운 살림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기에 돈으로 사서 써야 할 일도 있을 텐데, 아직 많이 서툴고 모자라더라도 손으로 기쁘게 지어서 쓰는 살림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합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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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달팽이의 집 과학 그림동화 36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 비룡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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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6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 아기 달팽이의 집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12.5.15. 8500원



  시골살이 여섯 해째가 되는 올해에 집 안팎을 이모저모 많이 손질합니다. 지난 다섯 해는 이 시골마을에 터를 잡는 나날로 ‘집 손질’을 할 겨를이 없도록 살았다면, 올해에는 다른 어느 일보다 집을 손질해서 한결 살기 좋도록 가꾸는 일에 품을 들이는 하루입니다.


  처마 밑에 평상을 새로 짜서 놓고, 마당에 자질구레한 것이 놓이지 않도록 하나하나 치웁니다. 흙을 제대로 만지고, 나무도 함께 만지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짓는 살림을 헤아립니다. 어제는 하루 내내 방 한 칸을 새로 꾸미면서 보냈습니다.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묵은 먼지를 훔쳤어요.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면서 청소를 하다가 문득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버이 아닌 아이로 살던 서른 몇 해 앞서에 어머니는 거의 해마다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라고 하셨어요. 그때에는 왜 바꾸어야 하는가 하고 그저 성가시거나 힘들다고만 여겼지만, 막상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고 보면, 책상이나 옷장 밑이나 뒤에 쌓인 먼지하고 거미줄을 보고 깜짝 놀라요. 예전에 어머니는 해마다 벽종이까지 새로 바르셨는데, 이러면서 묵은 먼지를 털고 새로운 마음이 되도록 이끄셨구나 하고 이제서야 살갗으로 깨닫습니다.



파삭 파삭 파사삭, 어느 날 흙 속에 묻혀 있던 귀여운 알이 깨졌어요. 알에서 나온 건 작고 작은 집을 진 아기 달팽이. (3쪽)



  《아기 달팽이의 집》(비룡소,2012)이라는 그림책을 새삼스레 들여다봅니다. 이토 세츠코 님이 글을 쓰고, 시마즈 카즈코 님이 그림을 그렸어요. 한국에서는 요 열 해 사이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그릴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생태 자연 그림책을 1950년대에도 그렸고,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던 무렵에도 그렸어요. 그래서 오랜 땀과 품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척 멋진 그림책을 선보여요. 《아기 달팽이의 집》이라는 그림책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빚은 오랜 발자국’에 걸맞을 만큼 무척 매끄럽고 보드라우면서 살가운 손길로 ‘달팽이’랑 ‘흙’이랑 ‘풀벌레’랑 ‘사람이 사는 지구라는 별’을 아늑하게 보여줍니다.



아기 달팽이는 배가 고팠어요. 얼른 흙 밖으로 기어 나와 초록색 나뭇잎을 냠냠 먹었지요. 그런데 어어, 목 뒤에 난 구멍으로 찍 하고 응가가 나오더니 또 배가 꼬르륵꼬르륵. (5쪽)



  마침 삼사월 봄은 달팽이가 깨어나는 철입니다. 다른 풀벌레도 깨어나고, 나비랑 나방도 깨어나며, 먼먼 따스한 곳에서 살던 철새가 바다를 가로질러서 찾아오는 봄이에요. 밭을 갈거나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질을 하다 보면,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아주 조그마한 달팽이를 볼 수 있어요. 갓 깨어나서 아직 둘레로 퍼지지 않은 채 한자리에 잔뜩 모인 새끼 달팽이 무리를 보면 깜짝 놀라요.


  이런 달팽이 무리를 볼 적에 “얘들아, 우리도 이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을 테니, 너희는 너희대로 다른 풀을 먹으면서 살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를 갉아먹는 성가신 아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도 다른 풀 잎사귀도 모두 갉지요. 더욱이, 밥찌꺼기도 달팽이가 남김없이 먹어치워요. 이를테면 당근이나 무 꽁당이도 달팽이가 아주 잘 먹어요. 지렁이에 달팽이에 풀벌레에 나비에 애벌레에 파리에 …… 이 모든 아이들이 밭자락에 함께 어우러져서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베풀어 주어요.



아기 달팽이는 달개비꽃도 잔뜩 먹었어요. 그랬더니 점박이 무당벌레가 다가와 말했어요. “아유, 배가 볼록 나왔네. 그렇게 먹다간 집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9쪽)



  그림책에 나온 달개비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달개비라, 이 풀은 여름이 되어야 꽃을 피울 텐데? 하기는. 달팽이는 봄에만 깨어나지 않지요. 꾸준히 새로운 아기들이 깨어나지요.


  달개비는 달팽이도 맛나게 먹는 풀일 텐데, 사람한테도 무척 맛나요. 어제 흙을 만지며 살피니 모시 옆에 쇠비름이 함께 올라와요. 떡잎이 돋은 쇠비름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떡잎이 하나같이 이쁘장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쇠비름이나 모시는 날로 즐기는 나물인데, 달개비는 파란 꽃까지 싱그러운 맛이 감도는 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도 달개비잎이나 달개비꽃을 혀에 얹고 냄새를 맡다가 살살 씹으면 “우와, 달개비 맛이다!” 하면서 맛있다고 해요. 그렇지요, 달개비이니 달개비 맛입니다만, 텃밭에서 얻는 나물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씹을라치면, 하늘이 베풀고 빗물하고 바람이 나누어 주는 선물을 받는구나 하고 느껴요.



어느 날, 점박이 무당벌레와 팔랑팔랑 나비가 찾아왔어요. “우아, 멋진 집이다!” “근사하다!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19쪽)



  그림책 《아기 달팽이의 집》에 나오는 아기 달팽이는 등에 진 집이 차츰 커진다고 합니다. 아기 달팽이는 ‘자꾸 먹느라 몸이 커지’면 집이 작아서 못 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는데, 달팽이를 둘러싼 풀밭 동무들이 “멋진 집!”이라고 외치면서 반겼다고 해요. 바지런히 풀을 갉으며 몸이 자라는 동안 집도 함께 자라는 달팽이라고 해요.


  우리는 어떤 살림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도 우리 보금자리에서 해마다 차츰차츰 씩씩하게 자라는 어버이나 어른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마음이 자라는 만큼 살림도 자라고, 살림이 자라는 만큼 한결 살가우며 멋진 시골집을 이루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사월비 소리에 섞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침밥을 짓습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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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하자



  집안을 치우다가 다른 일이 많아서 한동안 미뤘다. 한동안이라고 하나 여러 달 미뤘다. 오늘 비로소 마저 치우기로 한다.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옮겨야지. 낮까지 이 일을 마친 뒤에는, 서재도서관에 가서 흙놀이터를 꾸며 보려고 생각한다. 한쪽에 있는 흙무더기를 삽으로 잘 다져서 놀이터로 바꾸어 볼 생각이다. 밤새 ‘흙미끄럼틀’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낮까지는 방 치우기요, 낮부터 해거름까지는 흙미끄럼틀이다. 오늘은 이 두 가지를 신나게 하자. 그러고 나서 저녁에 아이들을 재운 뒤에는 ‘출판사에 보낼 마감글’을 손질하자. 모두 신나게 하자. 머리끈을 질끈 동여맨다. 2016.4.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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