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3시의 위험지대 2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47



옛날 내 모습을 너한테서 느끼며

― 오전 3시의 위험지대

 네무 요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12.15. 5500원



  《오전 3시의 무법지대》에 이어서 나온 《오전 3시의 위험지대》를 2권까지 읽고 3권은 더 읽지 않는다. 2015년에 4권까지 나왔는데 3권은 장만했으나 따로 손이 가지 않는다. 이 만화책이 아예 못 볼 만큼 재미없는 만화라고 여기지는 않으나, 줄거리나 흐름이 너무 뻔하게 흐르겠구나 하고 느끼다 보니, 구태여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할까.



‘아, 젠장,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이지, 짜증난다.’ (18쪽)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니, 그거야말로 거짓 아닌가. 하긴, 어차피 내가 바뀌어 봤자.’ (20쪽)



  어떤 책을 읽든 ‘책을 이루는 이야기’에서 ‘오늘 내 삶을 되새기는 생각’을 엿본다. 이러한 생각을 엿보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내기도 하고, 미처 나 스스로 깨닫지 못한 대목을 곱씹기도 한다. 《오전 3시의 무법지대》2권에서는 두 마디를 가만히 헤아려 본다. 누군가한테서 ‘어리숙했던 옛날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일이란 짜증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짜증은 어느새 ‘지켜보는 눈길’이 되면서 ‘따스한 사랑’으로 바뀌곤 한다. 때로는 그냥 짜증만 더 커지면서 골부림이 될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내 모습은 바뀔 턱이 없어’처럼 생각한다든지 ‘내가 바뀌어 보았자 딱히 뾰족한 수가 있겠어’처럼 생각한다면 이 생각처럼 나아간다. 나 스스로 나를 안 믿고 안 사랑한다면, 누가 나를 믿거나 사랑하겠는가. 내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좋아해 주거나 아낄 수 있겠는가. 2016.4.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로 읽는 책 303] 어느 길로



  이 길에서는 이 즐거움

  저 길에서는 저 기쁨

  그 길에서는 그 사랑



  어느 길로 가든 ‘책임’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임이란 ‘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스스로 맡은 몫’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스스로 기꺼이 짊어지는 짐이기에 어느 길로 가든 이 짐을 씩씩하게 들고 다닐 만해요. 아이를 안거나 업으면서 ‘짐스럽다’고 느끼는 어버이란 없듯이, 이날은 이 길에서 이 즐거움이 되어요. 저날은 저 길에서 저 기쁨이 될 테지요. 잘 되거나 잘 안 되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늘 새롭게 맞이하는 일이고, 언제나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느끼는 하루이지 싶어요. 이리하여,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고 나누는 살림이 됩니다. 2016.4.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넋/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4
고성국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127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해요

―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

 고성국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6.4.19. 12000원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즈음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 꿈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간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떠오를 듯 말 듯하면서 안 떠오르면 그만두고, 그림으로 그릴 수 있듯이 떠오르면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으면서 서로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씨앗을 심느냐고 묻고, 나는 어떤 씨앗인가 하고 이름을 말한 뒤에 이 씨앗들이 싹이 트는 모습을 날마다 꾸준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우리 사랑을 모아서 씨앗을 심어서 돌보자고 이야기해요.


  아직 잘 모르기에 묻습니다. 먼저 겪어서 알기에 알려줍니다. 아직 서로 잘 모르지만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조금씩 실타래를 풉니다. 궁금한 대목을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어느새 수수께끼를 환하게 풀곤 합니다.



아이가 다시 묻지요. “꽃이 뭐야?”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기에서 막힙니다.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꽃의 본질에 대해 몰라서일 수도 있어요. 아이가 유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질문을 통해 자신이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혹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22쪽)



  고성국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철수와영희,2016)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하는데, 이 말하기를 깊이 헤아릴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바쁠 적에는 얼렁뚱땅 말하고 지나가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차근차근 이야기를 못 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학교를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는 으레 교사 한 사람이 말을 이끕니다. 아무리 한 학급이 작더라도, 스무 아이가 저마다 한 마디씩 1분만 말하더라도 수업 진도를 나갈 수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학교 얼거리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는 내내 거의 입을 다물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고, 어쩌다가 한두 마디를 곁들일 뿐이라는 뜻이며, 교사가 혼자서 신나게 말하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길게 말해야 한다면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알려주기에는 수월해요. 그렇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채 한 사람이 내처 말하기 때문에 ‘다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잘 알아들었는가’를 살피기 어렵습니다. 몇몇 아이들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싶은 대목이 나와도 어쨌든 진도를 나가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은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생각,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내 생각, 내 느낌, 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말은 상대의 생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상대의 느낌과 감성을 나의 것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닏. (63쪽)


말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감성과 정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64쪽)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은 ‘말을 하는 까닭’을 찬찬히 풀어냅니다. 나 혼자 떠들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밝혀요. 내 마음을 밝히되, 나도 네 마음을 들으려고 말을 한다고 밝혀요. 그러니까 ‘혼잣말’이 아닌 ‘이야기’가 되려면, 나는 차분히 내 생각을 밝히고 너도 차분히 네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너는 내가 말하는 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나는 네가 말하는 사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상대를 잘 알아야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안다는 것,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81쪽)


대화는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90쪽)



  그러면 우리는 왜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이루려 할까요? 왜 한 사람이 떠드는 얼거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골고루 말하는 얼거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까요? 바로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림을 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함께 보살피고 아끼는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알고 생각을 읽으려고 말을 섞어요. 서로서로 사람됨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길을 찾으려고 말을 나누어요.


  함께 느끼려는 이야기이고, 함께 알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서, 함께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는 이야기예요.



이기는 게 토론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억지로 내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한들 누구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124쪽)


여러분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순간 세상이 열립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음악과 시와 그림에 평생을 매달리는 이유예요. (140쪽)



  ‘토론(討論)’이라는 한자말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논의(論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내어 토의함”을 뜻한다고 해요. ‘토의(討議)’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검토하고 협의함”을 뜻한다 하고, ‘협의(協議)’는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함”을 뜻한다 하며, ‘의논(議論)’은 “어떤 일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음”을 뜻한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견(意見)’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을 뜻해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말풀이를 찾느라 길어졌는데, ‘토론 = 논의 = 토의 = 협의 = 의논 = 의견 주고받음 = 생각 주고받음’인 얼거리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토론·논의·토의·협의·의논’ 같은 한자말을 두루 씁니다만, 어느 한자말이든 “생각 나누기”를 가리키는 셈이에요.


  그러니까, 《10대와 통하는 말하기와 토론》을 쓴 고성국 님이 밝히듯이, “토론을 하는 까닭은 이기려는 뜻이 아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지려고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이기거나 지려는 뜻이라면 ‘말싸움·말다툼’이라고 하는 ‘논쟁’을 하겠지요.


  생각을 나누려 하기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돼요.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에 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돼요.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아끼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생각을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는 동안 마을이 아름답게 거듭나고 두레나 품앗이도 즐겁게 이루어요.


  우리는 서로 ‘한마음’이 되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이란 바로 우리가 서로 한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꽃피우도록 북돋우는 멋진 징검돌이지 싶습니다. 2016.4.1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청소년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제국사 - 고대 로마에서 G2 시대까지 제국은 어떻게 세계를 상상해왔는가
제인 버뱅크.프레더릭 쿠퍼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9



찔레무침 한 접시와 ‘식민지 제국’ 이야기

― 세계제국사

 제인 버뱅크·프레더릭 쿠퍼 글

 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6.2.5. 36000원



  사월은 삼월하고 다른 봄입니다. 겨울이 저무는 이월 끝자락부터 뒤꼍하고 마당에서 쑥이 돋기에 그무렵부터 쑥을 뜯어서 버무리나 부침개를 해서 먹었고, 때로는 밥에도 넣어서 쑥밥을 먹었어요. 삼월로 접어든 뒤에는 다른 나물을 훑어서 먹었고, 바야흐로 사월이 되면서 모시잎을 훑은 뒤 잘게 썰어서 모시밥을 지었으며, 무럭무럭 돋는 찔레싹을 신나게 훑어서 찔레무침을 합니다. 사월 한복판에 싱그러이 돋는 찔레싹을 잘 헹군 뒤에 한 줌은 그대로 고추장으로 무치고, 다른 한 줌은 살짝 데쳐서 된장으로 무칩니다. 무럭무럭 돋으려는 봄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려는 아이들한테 더없이 반가우면서 고마운 밥이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마 먼 옛날부터 새봄에 누구나 이 봄밥을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이 땅에서는 이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 나라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지요. 또 북중미나 남미라든지 유럽에서는 그곳 땅에서 돋는 봄나물로 봄밥을 누렸을 테고요.



대다수 제국처럼 로마도 처음에는 정복을 했다. 그러나 통제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과제는 폭력만이 아니라 인적·경제적 자원과 중앙권력을 계속 연결하는 일에도 달린 문제였다. (49쪽)


교육은 더 높은 신분과 더 많은 재물을 얻는 길로써 새로운 피와 사상을 끌어들였고, 사회의 상향 유동성을 상당히 높여 주었으며, 지방의 엘리트와 부유한 가문을 제국의 중앙으로 포섭했다. 그러나 교육은 이따금 폐단도 낳았다. 학식에 대한 특권적 접근, 시험과 관직 배정의 편파성, 등용 시험을 함께 통과한 관리들의 파벌, 도식적으로 통치하는 경향 등이 그것이었다. (89쪽)



  제인 버뱅크 님하고 프레더릭 쿠퍼 님이 함께 글을 써서 선보인 《세계제국사》(책과함꼐,2016)라는 두툼한 책을 봄날에 읽습니다. 봄바람을 마시면서 ‘세계제국’ 이야기를 돌아보고, 봄볕을 쬐면서 ‘세계제국’이 이 지구별에 남기려 했던 발자국을 되새깁니다.


  제국을 이루었다고 하는 나라들을 살피면 하나같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그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것들을 ‘함부로 가로채거나 훔쳐서 제 것으로 삼기 일쑤’였구나 싶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한테 없으나 이웃한테 있는 것’을 가로채거나 빼앗아서 ‘내가 혼자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마음’에서 전쟁무기와 군대를 일으키고, 이 전쟁무기와 군대를 바탕으로 자꾸자꾸 땅과 힘을 키운 제국 발자취라고 할까요.



전쟁의 주안점은 약탈, 전리품 분배, 더 많은 전리품을 얻기 위한 진격이었다. (156쪽)


몽골족은 상업 활동에 투자하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고속 운송 및 통신 체계를 유지하고, 상인과 장인을 보호하고, 관행으로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장거리 교육을 실행하고 상상할 지평을 넓혀 주었다. 몽골족은 중국인과 달리 상인에 대한 양가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173쪽)



  《세계제국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제국’을 헤아려 봅니다. 제국이 된 모든 나라는 참말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늘리는 일에 돈과 힘과 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무기와 군대를 발판으로 삼아서 전쟁무기나 군대가 적거나 없는 이웃나라를 손쉽게 짓밟거나 무너뜨렸다고 해요. 그런데 전쟁무기나 군대는 엄청나게 거느린 제국은 모두 똑같이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워낙 전쟁무기나 군대를 크게 키워 놓다 보니까, ‘전쟁무기와 군대를 유지하는 돈’도 엄청나게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제국은 모두 ‘식민지 사업’을 멈출 수 없었고, ‘군대를 거느리는 장군’한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흐름이다 보니 자꾸자꾸 새로운 전쟁과 정복으로 나아갈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제국이 된 모든 나라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바친 돈과 힘과 품을 전쟁무기나 군대에 하나도 안 들였다면 어떠했을까 하고요. 그 엄청난 돈과 힘과 품을 ‘사람들 살림살이를 가꾸는 길’에 썼다면, 군대를 키워서 ‘군대 유지비’만으로도 나라살림이 거덜날 만한 경제가 되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오순도순 즐겁게 마을살림을 가꾸도록 하는 경제’가 되는 길을 걸었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말이지요.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고립 영토, 대양과 대륙을 넘나드는 강압과 상업을 통해 획득한 자원과 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커다란 영토를 정복하여 차지했고, 뒤이어 아프리카인의 노동, 아메리카의 토지, 유럽의 시장을 연계하여 이익을 얻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노예를 생포하는 일은 무대 밖에서, 아프리카 정치체들이 전쟁을 벌이고 습격하는 와중에 일어났다. (241쪽)


영국 제국과 프랑스 제국에서,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과 에스파냐 제국의 일부 지역에서 제국에 이익을 가져다준 것은 노예제였고,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제국이었다. (272쪽)



  전쟁무기나 군대를 키우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제국’이 안 되었으리라 느껴요. 전쟁무기나 군대를 안 키웠다면, ‘제국 발자국’을 안 남겼을 테고, 우리가 세계사나 한국사에서 배우듯이 ‘땅을 넓히거나 빼앗기는 흐름’도 없었을 테지요. 전쟁무기나 군대를 키우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나라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 쳐들어가거나 쳐들어올 일이 없을 테니까 ‘국경이 없이도 평화로운 삶’을 이룰 만했을 테고, ‘국경이 없이 서로 즐겁게 교류를 하는 아름다운 살림’을 이룰 만했으리라 느낍니다.


  ‘국경 분쟁’ 같은 일은 제국이라는 틀로 정치를 꾸리기 때문에 생긴다고 할까요? 제국이라는 틀이 따로 없다면, 작은 마을 사람들은 어느 정치권력자가 나라를 세운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작은 마을 사람들은 봄에는 봄나물을 훑고 땅을 갈아서 씨앗을 심어요. 작은 마을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으면서 지내요. 작은 마을 사람들은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살지요. 총이나 칼이 없어도 평화롭기 마련인 작은 마을이요, 싸움이나 다툼조차 없이 서로 돕고 아끼는 두레와 품앗이가 이루어지는 작은 마을이에요.


  무엇보다도 작은 마을은 언제나 자급자족을 이루어요. 정치나 경제가 어떠하더라도 작은 마을에서는 스스로 삶과 살림을 지으니, 스스로 심고 거두어서 밥을 먹고 옷을 지으며 집을 가꾸어요. 작은 마을일 적에는 이웃으로 쳐들어가지 않아요. 작은 마을이기에 ‘이웃으로 그릇을 들고 가’지요. 그릇에는 집집마다 맛나게 지은 밥을 담아서 다 함께 즐겁게 나누려고 이웃을 사귀어요.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예를 필요로 한 것은 제국들의 역사에서 별반 새롭지 않은 일이었다. (344쪽)


아이티의 독립은 세계의 제국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아아티는 해방과 탈식민지화의 선봉일까? 아니면 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위험의 상징일까? (346쪽)



  나는 《세계제국사》를 읽으면서 ‘제국’을 이룬 나라는 이웃을 모른 채 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옆에 있는 나라나 마을을 ‘이웃’으로 여겼다면 이 ‘이웃’한테 전쟁무기나 군대를 이끌고 들어갈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 참말로 옆에 있는 나라나 마을을 이웃으로 여긴다면, 총칼을 앞세워서 윽박지르는 짓이 아니라 ‘맛난 밥을 그릇에 담은 사랑스러운 손길’로 찾아가겠지요.


  나한테 있는 넉넉한 것을 이웃한테 줄 때에 ‘교류’가 됩니다. 너한테 있는 넉넉한 것을 받으면서 하하하 웃을 적에 ‘이웃사랑’이 됩니다. 《세계제국사》라는 책에서는 ‘일본 제국’ 이야기도 조금 나오지만, ‘식민지 조선’ 이야기는 몇 줄 안 나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일본이 제국이 되어 이웃 여러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은 ‘유럽 여러 나라가 제국이 되어 지구별 여러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에 대면 아주 작다고 할 만하거든요. 중국이나 몽골이 제국이 되어 수많은 나라를 괴롭힌 발자국에 대어도 아주 작다고 할 만하고요.


  그렇지만,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가 되어 겪어야 한 아픔이나 생채기는 작지 않습니다. 지구별 모든 ‘식민지 나라’는 그야말로 끔찍하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곧 《세계제국사》라는 책은 ‘여러 제국 역사’뿐 아니라 ‘여러 식민지 역사’를 함께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제국이 일어나면서 무시무시한 전쟁무기와 군대를 뽐낸 발자국이란, 평화롭고 작은 수많은 마을이 아프게 짓밟힌 발자국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국가를 재형성하거나 형성할 때 누구의 권리를 중요하게 고려했을까? (495쪽)


군대와 관료제의 수준을 높이려면 새로운 교육 기준이 필요했다. 행정을 훈련시키는 과제는 재상이나 명사의 가정에서 교육기관으로 넘어갔으며, 교육기관은 인구와 중앙을 더 효과적으로 연결할 새로운 부류의 관료층을 길러내고자 했다. (511쪽)



  봄날 아침에 나는 우리 집 뒤꼍에서 찔레싹을 훑었습니다. 쑥을 훑을 적에는 아이들이 돕지만, 찔레싹을 훑을 적에는 혼자 합니다. 아무래도 찔레 가시 때문에 아이들한테 찔레싹을 함께 훑자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요. 아직 작고 여린 아이들은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서 찔레싹을 훑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커다란 소쿠리로 찔레싹을 잔뜩 훑은 뒤에 한 소쿠리는 살짝 데칩니다. 다른 한 소쿠리는 날찔레를 고추장으로 무칩니다. 아이들은 새봄 찔레무침을 맛나게 먹어 줍니다. 아이들 입에서 ‘맛있어!’ 하는 말이 터져나올 적에 ‘찔레 가시에 찔리며 새싹을 훑은 보람’을 느낍니다. 찔레무침을 넉넉히 했기에 큰 접시에 가득 담아서 마을회관으로 가져갑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마을회관에 도란도란 모여서 낮밥을 함께 드셔요. 할머니들도 한 젓가락씩 자시라고 찔레무침을 드립니다.


  싱그러운 봄나물을 훑고 무쳐서 먹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세계제국사》에 나오는 ‘제국이 된 나라’를 보면, 하나같이 ‘남쪽으로 내려가서 식민지를 넓히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역사책에 그런 얘기는 없습니다만, 어쩌면 ‘제국 권력자’들은 추운 고장에서 봄나물이 너무 그리워서 자꾸자꾸 남쪽으로 손길을 뻗으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어떤 제국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이 봄에 싱그러운 봄나물 한 접시를 받고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눌 수 있었으면, 모든 전쟁무기는 내려놓고 호미랑 가래랑 괭이를 쥐고서 밭을 일구며 씨앗을 심는 즐거운 두레살림으로 나아가지는 않았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2016.4.1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밥 먹자 249. 2016.4.15. 찔레싹무침(찔레무침)



  우리 집 뒤꼍에서 해마다 신나게 돋아서 퍼지는 찔레나무를 바라본다. 지난해까지는 그냥 바라보고 그냥 꽃내음 맡다가 그쳤는데, 올해에는 새롭게 살림을 지피기로 하면서 ‘그래, 이 찔레싹으로 무엇을 해 먹으면 맛날까?’ 하고 여러 날 생각을 기울였다. 바쁘면서도 때로는 한갓지다고 할 사월 시골이기에 찔레싹을 알뜰히 훑어서 나물로 먹는 손이 있을 테고, 그저 성가셔서 안 쳐다보는 손이 있을 테며, 어릴 적에 멋던 아련한 맛을 떠올리며 찔레싹무침을 하는 손이 있으리라 느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 찔레싹무침(찔레무침)을 맛나게 누리는 기쁨을 고이 안기를 바라면서 두 가지로 무쳐 본다. 하나는 살짝 데쳐서 된장으로 버무린다. 다른 하나는 날찔레를 곧바로 고추장으로 무쳐 본다. 된장무침은 들기름하고 감식초를 섞는다. 고추장무침은 들기름 없이 감식초하고 소금만 섞는다. 왜 이렇게 둘로 나누었느냐 하면, 두 가지 맛을 다르게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고추장으로 무친 찔레싹무침을 처음에는 맵다고 여기더니, 나중에는 된장으로 무친 찔레싹무침보다 고추장 쪽이 더 맛있다면서 고추장으로 무친 찔레싹무침을 꽤 많이 먹었다. 재미난 맛이지? 가시가 따가울 듯하면서도 하나도 안 따갑고 싱그러운 찔레싹무침이야.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밥짓기/봄나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6-04-15 13:3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가시가 걸리지 않을까 했었는데 안따갑고 먹을만 했군요.
벼리가 잘 먹었으니 흐뭇하셨겠어요.
음, 저도 맛이 궁금해요. 얼마전에 저도 비름나물을 숲노래님처럼 두가지 양념으로 무쳐본 적이 있는데 자꾸 그 맛이 떠오르네요^^

파란놀 2016-04-15 13:52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자그마치 네 번이나 무쳤어요 ^^;
두 번은 아주 여린 아이로만 무쳤고,
두 번은 `가시가 큰 아이`도 무쳤는데,
새로 돋은 찔레싹은
가시가 커도 손가락으로 슥 눌러도 그냥 눌리면서 떨어질 만큼
가시가 가시답지 않고 여려요.
몇 해 묵은 가지에 있는 가시만 따갑고요.
그래서, 겉보기로는 `가시가 있어`도
먹을 적에는 `두릅`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마을 할머니들한테 한 접시 가득 담아서 드리니
할머니들이 처음에는 다들 `두릅`인 줄 아시더라구요 ^^;;

qualia 2016-04-15 21:51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 찔레순 꺾어서 고추장에 많이 찍어 먹었는데요. 달콤쌉싸름한 게 정말 맛있어요. 숲노래 님 찔레싹무침 요리를 보니 입에 침이 ‘고입니다’. 스읍~, 아 맛있겠다~^^ 저 찔레싹무침이면 밥 두 공기는 걍 뚝딱인데~ 아이구 먹고 싶다. ㅋㅋㅋ

파란놀 2016-04-16 08:55   좋아요 0 | URL
날로 먹는 찔레싹에서는 풀맛만 흐르지만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서 먹으면
이 풀맛이 새롭게 바뀌면서
싱그러운 맛이 되는구나 싶어요.
찔레는 농장으로 키우는 사람이 아마 없을 테니,
어쩌면 이 봄에 오래된 시장에는 할머니들 가운데
산에서 훑어서 한 그릇 내다 파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