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 (사진책도서관 2016.4.1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도서관 어귀에 갓꽃하고 유채꽃이 어우러집니다. 갓꽃도 유채꽃도 마음껏 자랍니다. 노랗게 물들며 춤추는 이 꽃자리를 본 아이들은 노란물결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어른이 노란물결이 들어가면 고개가 빼꼼 보일 테지만, 아이들이 노란물결로 들어가면 머리도 몸도 안 보입니다. 빽빽하게 돋은 꽃밭으로 뛰어든 두 아이는 이리저리 헤집으면서 놉니다.


  딸기꽃이 드문드문 고개를 내밉니다. 사월은 딸기풀이 하얀 꽃송이를 실컷 떠뜨렸다가 저무는 달이에요. 곧 오월을 맞이하면 이때부터 딸기알이 발갛게 익어요. 이러면서도 오월에도 하얀 딸기꽃이 새로 피고, 앞서 피었다가 진 딸기꽃이 지면서 열매가 익는 동안 자꾸자꾸 꽃이랑 열매가 이어집니다.


  그 어떤 책으로도 알려줄 수 없는 재미난 놀이를 꽃밭이 알려줍니다. 그 어떤 만화나 영화도 가르칠 수 없는 신나는 놀이를 꽃밭에서 몸소 누립니다. 아이는 누구나 놀이를 하면서 자란다는 말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나는 어릴 적에 실컷 놀면서 씩씩하게 자랄 수 있었고,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실컷 놀면서 씩씩하게 자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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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28. 물을 주자 (2016.4.12.)



  밭을 일구어 씨앗을 심으면 두 아이는 저마다 제 몸에 맞게 그릇을 챙겨서 물을 떠서 나른다. 살살 부어 주렴. 물을 주면서 “사랑해” 하고 얘기해 주렴. 너희가 웃는 얼굴로 물을 줄 적마다 씨앗이 기지개를 켜면서 이제 깨어나 볼까 하고 생각을 하지.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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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반갑다 사회야 10
김현주 지음, 권송이 그림 / 사계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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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45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한 굴레에 갇히다

―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

 김현주 글

 권송이 그림

 사계절 펴냄, 2016.3.3.30. 12000원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는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의 관료들이 남긴 기록에 많이 나와요. 게으르고 지식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노예 노동을 시킨 것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꾸며 낸 것이지요. (40쪽)



  김현주 님이 글을 쓰고, 권송이 님이 그림을 그린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사계절,2016)를 읽으면서 가난이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먼저, 이 책에 나오는 ‘빈곤(貧困)’은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을 뜻해요. 사회에서는 흔히 ‘빈곤’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그저 ‘가난’이라고 하면 된다는 소리입니다. 가난한 모습 가운데 먹을거리가 없는 모습은 ‘굶주림’이라 합니다. 몹시 가난한 모습은 ‘억판’이나 ‘엉세판’이라 해요. 무엇이 모자라서 어렵게 지낼 적에는 ‘몰리다’라는 낱말을 써요.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먹을 것을 사고 약을 살 돈이 없어서 어렵고 불편한 게 아니에요. 그보다 인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어 힘들지요. (16쪽)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있다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요. 어느 한쪽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다른 한쪽에는 안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쪽에 힘없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다른 한쪽에는 힘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가난은 무엇이 될까요. 가난하면 잘못일까요? 가난이 잘못이라면 가난하지 않은 살림은 잘못이 아닌 셈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살림일 적에 ‘가난하다’고 말할 만할까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을 벌어서 오백만 원을 고스란히 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서 오십만 원을 쓰고 오십만 원을 남기는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그리고, 한 달에 십만 원을 벌랑 말랑 하지만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지어서 손수 누리기에 돈을 한 푼도 쓸 일이 없다면, 이러한 살림은 가난할까요, 안 가난할까요?


  우리 겨레뿐 아니라 이웃 수많은 나라를 헤아려 봅니다. 사람들이 땅을 지어서 밥이랑 옷이랑 집을 얻던 나날에는 ‘경제발전’이나 ‘국민소득’이 모두 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자급자족’ 사회에서는 경제교류나 상업이 거의 안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자급자족을 하면서 이웃하고 주고받는(교환) 살림을 꾸린다면, 그야말로 ‘돈 한 푼 없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이 없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와 달리 경제발전을 이루거나 국민소득이 높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할 수 없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누립니다. 자급자족이 안 되는 사회나 경제에서는 ‘돈이 있어도 가난할’ 수 있고, 더군다나 ‘돈이 많아도 가난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집가난(하우스푸어)’이 있어요. 집이 있습니다만 빚을 잔뜩 짊어져요. 그리고 ‘일가난(워킹푸어)’도 있어요. 다달이 돈을 버는 일자리는 있습니다만, 아무리 바지런히 일해도 살림살이가 뾰족하게 나아지지 않는 살림이에요.



부자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가난할 수 있어요. 2011년 미국에서는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이 빈곤 상태에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어요. (23쪽)



  미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한국은 ‘부자 나라’일까요, 아니면 수수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나라’일까요? 미국 어린이 다섯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다면, 어른도 이와 비슷할 테지요. 무엇보다도 가난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아예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이든 ‘지나치게 많이 거머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면서 함께 누리는 살림으로 넓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지구 사회라면 ‘몇몇 대륙이나 나라’에만 가난이나 굶주림이 있지 않아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가난한 여러 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책에서는 ‘가난한 한국 어린이 삶’까지 다루거나 짚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도 틀림없이 가난한 어린이가 있고, 꽤 많으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가난한 살림 때문에 주름살하고 시름이 늘어요.



식량 배급소를 찾아 얻을 수 있는 죽 한 그릇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생활 터전을 함부로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일이에요. (115쪽)



  한국이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되더라도 이웃나라가 가난하다면 한국도 이 가난을 함께 살필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한국에서도 바지런히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한국 아닌 이웃나라에 공장을 세워서 그 나라 사람들한테서 아주 값싼 일삯으로 한국에서 ‘무척 값싼 물건’을 쉽게 사서 쓰는 얼거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가난하다면 가난이 있다고 느껴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밥을 굶는다면 가난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살림을 생각할 노릇이고, 서로서로 기쁠 살림으로 나아가는 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린이 인문책 《세계의 빈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에서도 다루듯이 ‘식량 배급소’나 ‘원조’나 ‘구호’가 아니라 ‘살림터를 빼앗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길’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돈에 얽매이지 않아도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살림이 되도록 정책이 서야지 싶어요. 지구별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손수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부지런히 일하는데 가난에 갇히는 굴레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면서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기쁨누리가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4.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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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눈빛사진가선 16
김보섭 지음 / 눈빛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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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225



한때 ‘인천 한복판’이던 ‘중구’ 차이나타운

―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

 김보섭 사진

 눈빛 펴냄, 2015.10.1. 12000원



  인천 중구는 행정구역으로 ‘중구’인데, 길그림으로 살펴보면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는 안 보입니다. 인천이 걸어온 길은 인천이라는 고장으로서 곧게 걸은 길이 아닌 탓입니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항구가 선 곳이면서 바닷길로 서울하고 이어지는 징검돌입니다. 오늘날에는 직할시를 거쳐서 광역시가 되었기에 땅으로 치자면 넓습니다만, 지난날에는 그저 자그마한 고을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도 인천은 그리 크지 않은 고을이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서 ‘중구’나 ‘동구’ 같은 이름은 오늘날에는 걸맞지 않은 이름이지만, 이 이름에는 인천이라는 곳이 걸어온 자취가 고스란히 남습니다. 길그림을 보면 ‘중구’가 맨 왼쪽, 이른바 가장 서쪽에 있습니다. ‘동구’는 중구 위쪽에 있어요. 인천 ‘남구’는 중구하고 동구 오른쪽인 동쪽에 있습니다. 인천 ‘서구’는 동구 위쪽인 북쪽에 있어요. 이제는 계양구나 부평구라는 이름을 쓰지만 예전에는 ‘북구’라는 이름을 썼고, 이 북구는 인천에서 동쪽 끝에 있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얼거리이다 보니 인천 길그림을 살피면 ‘동서남북’이 모두 뒤죽박죽인 셈이라고 여길 만해요.


  오늘날에는 뒤죽박죽이지만, 인천이라는 작은 고을이 도시로 커진 일제강점기를 살피면, 그무렵에는 ‘인천 = 중구 + 동구’였다고 여길 만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랬어요.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인천 중구는 일본사람이 살던 곳이면서, 중국사람도 건너와서 살고 서양사람도 나란히 살던 곳이었어요. 그무렵에도 중구 쪽에 한국사람이 살았지만, 일본은 ‘조계지’라는 울타리를 내세워서 한국사람이 섣불리 넘보지 못하게 했어요. 이러면서 한국사람은 ‘동구’라는 곳에 몰려서 살았지요. 잠은 동구에서 자고, 일은 중구에 가서 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요즈음 인천에서 잠은 ‘인천에서’ 자고 일은 ‘서울에서’ 하는 틀하고 비슷한 모습이에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일제강점기 중구’ 자리는 일본사람이 ‘한복판에 선’ 곳이요, 여기에 중국사람도 한복판에 선 곳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전철역 이름에도 아직 이런 자국이 남았어요. ‘인천역’은 경인선 맨 왼쪽(서쪽)에 있는 끝 역이고, ‘동인천역’은 인천역 옆에 있는 곳인데, ‘동인천역’은 ‘이제 동쪽 인천이 아닌, 맨 서쪽에 있는 인천’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인천역’이라는 이름이 인천 중구에 있던 까닭은 그곳이 옛날에는 인천 한복판이었다는 뜻이고, ‘동인천역’은 인천 동쪽 끝자락을 가리켰다는 뜻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동인천역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면 ‘거기는 인천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됩니다. 옛날에는 그랬겠지요.



나의 기록은 1980∼2000년까지의 인천 화교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많은 중국집들로 화려하지만 그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은 여러 가지 이유로 쇠락해 있었다. 나는 사라져 가는 역사의 자취를, 화교 1세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다. (사진가 노트)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면서 인천이라는 고을이 차츰 커집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들어선 수많은 공장은 더욱 많이 늘어났습니다. 서울 옆에서 서울에 자원과 물건과 사람(인력)을 대는 고을로 커집니다. 이러면서 ‘인천 한복판’은 중구 쪽에서 차츰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서울하고 가까운 쪽으로 움직입니다. 인천역이나 동인천역이 ‘인천 중구’에 있다고 하더라도, 중구도 ‘인천역·동인천역’도 ‘옛날 한복판(구도심)’일 뿐입니다.


  김보섭 님이 1980∼2000년 사이에 찍은 ‘인천 차이나타운’ 모습을 담은 사진책 《차이나타운, 인천 청관》(눈빛,2015)을 읽으면서 인천 발자취와 ‘중구’라는 이름과 ‘한복판(도심, 구도심, 신도심)’이라는 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나는 인천 ‘남구(도화동)’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동구(송월동)’이고, 어린 날이나 국민학교는 ‘중구(신흥동)’에서 보냈습니다. 집과 학교와 이웃집 사이는 언제나 두 다리로 걸어다녔고, 공항이 들어서기 앞서 배로 오가던 영종섬을 꽤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은 인천 중구에서도 ‘북성동·선린동’ 두 마을을 찬찬히 살핍니다.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은 ‘차이나타운’인데,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을 생각하니, 영어로 차이나타운뿐 아니라, ‘청관’이란 한자말도 썼고, ‘중국인거리’나 ‘중국인마을’이란 이름도 썼어요. 그냥 ‘북성동’이나 ‘선린동’이라고만 하기도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눈부시도록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요 선린동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계획 때문에 인천이라는 곳이 ‘서울 언저리 공업 위성도시’ 구실을 하는 동안에는 행정이나 경제 모두 ‘오른쪽으로(서울과 가까이)’ 갈밖에 없었으니, 그 눈부신 북새통을 이루던 북성동이나 선린동은 차츰 저물밖에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고속도로가 나고, 중구에 있던 온갖 시설이 다른 구로 옮기면서 ‘중구’는 ‘한복판’이라는 이름이 바래도록 더 크게 저물었을 테고요.


  나는 어릴 적에 ‘중구에 있던’ 여러 학교들하고 인천시청에다가 인천시외버스역이 모두 ‘다른 구’로 옮기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학교와 행정기관과 여러 시설이 중구에서 다른 구로 옮기면서, 그야말로 인천 중구하고 동구는 나란히 비면서 엄청나게 조용해졌어요.


  요즈음은 ‘차이나타운 관광지’로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 마을로 바뀌는 중구이지 싶습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중국인마을’도 관광바람이 불며 다시 북새통을 이루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북성동이든 선린동이든 청관이든 차이나타운이든 중국인마을이든, 예나 이제나 똑같은 대목이 하나 있어요. 북새통을 이루었든, 눈부심이 저물었든, 새 관광바람이 불든, 작고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사람들은 늘 그대로입니다.


  관광지 걸개천이나 붉은 등불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몇 미터 안쪽으로 들어서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이 나옵니다. 이곳에서는 얌전하면서 수수한 골목집이 어깨를 맞댑니다. 사진책 《차이나타운》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이 조용하고 한갓진 골목집에서 얌전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여느 얼굴입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북성동이나 선린동에 살던 내 어릴 적 동무들은 ‘그냥 동무’였습니다. 화교도 뭐도 따로 아닌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바다 너머에 있는 어떤 나라를 그리는 마음을 때때로 느끼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오늘 함께 웃고 떠들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예요.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하고 놀던 골목하고, 내 어릴 적 동무들을 낳고 돌본 어버이(이웃 아저씨 아주머니) 모습을 작은 사진책 한 권에서 새삼스레 되돌아봅니다. 2016.4.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어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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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는 참 좋다! 물들숲 그림책 1
이성실 글, 권정선 그림 / 비룡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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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9



참나무숲이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며

― 참나무는 참 좋다!

 이성실 글

 권정선 그림

 비룡소 펴냄, 2012.9.28. 13000원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다가 “아버지, 쇠뜨기가 어떻게 생겼어?” 하고 물어봅니다. 얼마 앞서 논둑에서 쇠뜨기를 뜯어서 먹기도 했는데 그새 잊은 듯합니다. 그림책에 멀쩡하게 나온 쇠뜨기이지만, 틀림없이 이 쇠뜨기를 얼마 앞서 보기는 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뜻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손으로 만지면서 놀고 싶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쇠뜨기 얼마 앞서 먹었는데, 생각 안 나?” “잘 모르겠어.” 저녁에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한 바퀴를 휘 돌아보다가 쇠뜨기를 만납니다. 논둑 한쪽에는 꽃이 지고 짙푸른 빛깔로 바뀐 쇠뜨기가 가득하고, 논둑 다른 쪽에는 이제 막 돋은 쇠뜨기가 꽃을 피운 모습입니다. “자, 여기에 쇠뜨기 잔뜩 있네. 잘 보렴.” “아하, 얘가 쇠뜨기였구나.”


  작은아이는 저녁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푸른 쇠뜨기’를 한 아름 뜯습니다. 빙그레 웃는 작은아이는 “크리스마스 나무 만들려고.” 하고 말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성탄절에 흔히 세우는 나무하고 ‘푸르게 자란 쇠뜨기 풀’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큰아이도 으레 마당에서 가랑잎을 잔뜩 그러모아서 잎놀이를 하고, 숲마실을 다녀올 적에는 주머니에 가득 솔방울이나 나뭇잎을 주워서 담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있어. 얼었던 땅이 녹고 흙은 폭신폭신 촉촉하니 부드러워져. 도토리는 물기를 빨아들이고 부풀어 올라. (5쪽)



  이성실 님이 글을 쓰고 권정선 님이 그림을 그린 《참나무는 참 좋다!》(비룡소,2012)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숲마실을 갈 적마다 솔방울이나 오리방울을 줍기에 바쁜 아이들로서는 숲에서 보는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도록 돕는 그림책이 요즈음 들어 몹시 재미난 듯합니다.


  숲길을 걷다가 큰아이가 불쑥 ‘그림책에서 읽은 줄거리’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아이로서는 잊지 않으려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려줄 테고, 또 아이로서는 아버지도 더 잘 알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요. 그림으로 보던 떡갈나무나 굴참나무를 코앞에서 두 눈으로 볼 적에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목을 알아보려고 요모조모 살피고 만지느라 바빠요.



참나무는 참 달콤해. 여름밤이면 장수풍뎅이도 사슴벌레도 참나무 나무즙을 먹으러 찾아와. 으라차차!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슴벌레 수컷 두 마리가 뿔을 들이밀며 싸우기도 해. (13쪽)



  그림책 《참나무는 참 좋다!》는 ‘참’이라는 이름을 얻은 나무 한 그루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떻게 ‘참’ 좋은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풀어냅니다. 참 힘이 세고, 참 똑똑하고, 참 잘 자라고, 참 키가 크고, 참 넓고, 참 좋은 집이고, 참 달콤하고 …… 이리하여 숲짐승은 모두 참나무를 참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끌어내요.


  그리고 《참나무는 참 좋다!》는 사이사이 ‘넉 장 그림’을 보여줍니다. 안으로 포갠 종이를 펼치면 참나무가 있는 숲을 한결 큼지막하게 느낄 수 있도록 책을 엮었어요. 그림책 사이에 숨은 멋진 큰 그림이 깃들었습니다.



겨울 동안 참나무는 참 따뜻해. 나비 번데기가 참나무 가지에 고치를 틀었어. 나비는 고치 속에서 참나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참나무 밑 굴에서는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기도 해. (20쪽)



  숲짐승이 좋아하고, 숲짐승한테 보금자리와 먹이를 주며, 사람한테도 맑은 바람하고 도토리라는 열매를 베푸는 참나무입니다. 이뿐 아니라 빗물을 뿌리하고 줄기에 가득 품는 참나무예요. 참나무를 비롯한 온갖 나무가 숲에 골고루 어우러지기 때문에 우리 살림터는 푸르고 정갈하며 아름다울 만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참나무는 그리 좋게 대접을 받지 못해요. 어른들은 참나무숲을 쉽게 베어요. 길을 내거나 관광지나 골프장을 짓거나 뭔가를 할 적마다 참나무숲은 맨 먼저 밀려납니다. 참나무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기기 일쑤예요. 우리 집 아이들이 늘 마실을 다니는 뒷산 참나무숲도 자꾸만 깎이고 밀리면서 사라집니다. 다른 고장에서도 참나무숲은 좀처럼 느긋하지 못해요. 다들 조마조마하리라 느낍니다.



참나무는 참 예쁜 소리를 내. 가을이 오면 참나무는 다시 겨울을 준비해. 반들반들 단단하게 익은 도토리를 떨구고 곱게 물든 잎도 떨어져. 후드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휘리릭 나무 사이로 바람 부는 소리, 사락사락 낙엽이 서로 맞닿으며 떨어지는 소리가 나. (27쪽)



  새 가운데 참새가 있고, 나무 가운데 참나무가 있으며, 꽃 가운데 참꽃이 있습니다. ‘참’이라는 낱말은 ‘참다움 착함 고움’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참말 거짓말’에서도 참은 우리 삶과 넋과 말이 나아갈 길을 밝게 보여줍니다.


  나무에 참나무가 있으면 사람 가운데에도 ‘참사람’이 있겠지요? ‘참어른’이 있을 테며, ‘참길’을 걸어서 ‘참삶’을 가꾸는 ‘참사랑’이 있을 테고요?


  ‘참살이’라는 새로운 살림이 태어나듯이, 참다운 나라와 참다운 마을과 참다운 꿈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그저 흔한 참나무숲이 아니라, 사람과 숲짐승과 푸나무 모두 즐거이 어우러지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참나무숲이 아름드리숲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참나무는 참으로 좋은 나무요, 온누리 뭇나무도 더없이 좋은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2016.4.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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