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과서 어휘능력 12000 : D-1단계 초등학생의 학습 능력이 자라는 초능력 시리즈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 지음 / 아울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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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46



아이들은 ‘한자말’을 얼마나 알야아 할까?

―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 글

 박종호 그림

 아울북 펴냄, 2015.10.21. 12000원



12000자는 무척 많은 어휘이지만 핵심 어휘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초등교과서에는 한자가 42만 번도 넘게 나오는데 100번 이상 등장하는 한자는 500개를 넘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말)



  아홉 살 큰아이가 어느 책을 읽다가 ‘특징’이라는 낱말이 나와서 잘 모르겠다면서 어머니한테 묻습니다. 아이가 어머니한테 묻는 말을 옆에서 듣다 보니, 참말 어른들은 ‘특징(特徵)’이라는 한자말을 꽤 흔히 쓰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특징’을 찾아보면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점”으로 풀이합니다. ‘특별(特別)’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으로 풀이해요. 그러니까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점’을 가리키는 셈인데, ‘보통(普通)’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한다 하고, ‘구별(區別)’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남”을 뜻한다고 해요. 다시 ‘평범(平凡)’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를 뜻한다 하며, ‘차이(差異)’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을 뜻한다 하고, ‘색(色)다르다’는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보통의 것과 다른 특색이 있다”를 뜻한다 해요. 이제 여기에서는 ‘특색(特色)’이 나오는데, 이 한자말은 “보통의 것과 다른”을 뜻한다고 해요.


  자, 이제 ‘한자말 뜻풀이’ 찾기를 마칩니다. ‘특징’ 하나를 알려고 참으로 여러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다시금 간추리자면, ‘특징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히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하여 (차이가 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보통과 다른 특색이 있어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 = 다른 것에 비하여 ‘특별’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어 ‘특별’하지 않고 다른 ‘보통과 다른’ 보통으로 ‘다르게 되도록 다르게’ 눈에 뜨이는’인 셈입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낱말 가운데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한국말사전을 찾아본 어버이라면 ‘특징’을 놓고 빙글빙글 수없이 겹말풀이로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다 진저리를 치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간추리자면, ‘특징’을 풀이하려고 하는 동안 ‘특별·보통·구별·평범·차이·색다르다·특색’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특징’을 풀이하며 처음 나오는 ‘특별’은 ‘보통’을 거쳐서 다시 ‘특징’으로 돌아가요. 게다가 여러 한자말을 가만히 살피면 어디에나 ‘다르다’라는 한국말이 나오지요. 다시 말해서 “달라서 눈에 뜨이는 모습”을 ‘특징’이라 할 만하고 ‘특별·특색’도 이와 같다고 여길 만해요.



종자(種子)는 씨앗을 뜻해요. 종(種)이 ‘씨앗’이라는 뜻이거든요. 우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건 모두 작은 씨앗 덕분이랍니다. 쌀을 만드는 건 볍씨, 옷을 만드는 건 목화씨니까요. (32쪽)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는 뜻이에요. 무죄는 죄가 없다는 뜻이고, 무료는 요금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 다음 빈칸을 채워 낱말을 완성해 보세요. 이름 없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은 □□씨,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용사는 □□용사. (94쪽)



  아울북 초등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 (D-1 단계)》(아울북,2015)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오는 한자말을 살펴서 이 한자말을 잘 익히도록 도와주는 참고서라 할 만합니다. 책이름에 나오는 ‘12000’은 우리 사회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쓰인 한자말이 자그마치 12000 낱말이 넘기 때문에 이 12000 가지 한자말을 샅샅이 익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숫자입니다. 모두 20권으로 엮은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이고, 네 등급으로 나누어서 등급마다 다섯 권씩 묶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책에서 밝히는 통계 자료를 보니, 12000 가지가 넘는 한자말이 우리 사회 어린이책에 나온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100번 넘게 나타나는 ‘흔히 쓰기에 잘 알아야 할 만한’ 한자말은 500가지도 안 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말을 어린이책에 쓰는 우리 사회요 어른이라 하지만, 막상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게 한자말을 좀 지나치게 쓴다고 할 수 있어요.


  ‘씨앗’이라는 한국말이 있는데 우리는 왜 ‘종자’ 같은 한자말을 쓰거나 가르쳐야 할까요? 이름을 알 수 없을 적에는 흔히 ‘아무개’라는 한국말을 쓰는데 왜 ‘무명’이라는 한자말까지 써야 할까요?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거나 한자말을 안 써야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살림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알맞게 나타낼 만한 낱말을 슬기롭게 쓸 수 있도록 어린이를 이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걸어서’ 간다고 하면 될 일을 ‘도보’로 간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쉰다’고 하면 될 일을 ‘휴식’이라 하지 않아도 돼요. ‘하늘을 난다’를 ‘공중을 비행한다’라 하지 않아도 되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을 ‘취침하고 기상한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초등교과서 어휘 능력 12000》을 살펴보니, 이 책은 어린이가 12000 가지나 되는 한자를 차근차근 익히도록 잘 도와주는 얼거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굳이 안 가르쳐도 되는 한자말까지 ‘교과서와 어린이책에 나왔다’는 까닭 때문에 애써서 외우도록 이끄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쉽게 쓰고 주고받을 만한 한국말이 버젓이 있다면 구태여 ‘한자 지식 외우기’까지 이끌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이 물건은 특징이 이렇습니다”라 써도 되고, “이 물건은 이렇게 다릅니다”라 써도 돼요.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쓰도록 이끌되, 생각을 환하게 열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곰곰이 짚고 생각할 대목이라면, ‘하늘’이나 ‘땅’이라고 하는 낱말은 이 낱말을 소리로뿐 아니라 뜻과 느낌으로 함께 살필 때에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천·지’나 ‘天·地’라고 적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천·지’이든 ‘天·地’이든 ‘하늘·땅’을 알아야 비로소 말을 알아요.


  아이들한테 새로운 말을 가르쳐서 이 새로운 말로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을 즐겁고 아름답게 가꾸도록 북돋우는 테두리에서 영어도 한자말도 한국말도 슬기롭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한테 더 많은 한자말을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한자 천재’나 ‘한자 달인’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말’을 알아야 하고, ‘말에 생각을 담는 길’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2016.4.24.해.ㅅㄴㄹ



하늘이나 땅이란 뜻이 ‘천(天)’이나 ‘지(地)’라는 음으로 낱말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익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낱말 속에서 이 관계를 살피는 습관만 들여놔도 초등 어휘 학습의 반은 끝납니다. (프로그램 특징 : 10살 어휘, 수능 시험까지 간다)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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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랑나비야, 기운내서 날아오르렴

[시골노래] 봄에 깨어난 ‘우리 집’ 나비



낮에 마당 한쪽에 꽃을 옮겨심다가 나비 한 마리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 나비가 하늘을 팔랑팔랑 날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솔밭(부추밭)에서 다리를 써서 모시줄기를 타고 올라갑니다. 모시풀 꼭대기까지 기어서 다 올라온 나비는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날개를 살며시 들었다가 내립니다.


날지 않고 다리로 기어다니는 나비를 본 아홉 살 큰아이는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갑니다. 나비도감을 얼른 가지고 나옵니다. 한 장씩 차근차근 넘기면서 어떤 나비인지 이름을 찾아보려 합니다.


코앞에서 마주하는 갓 깨어난 나비를 찬찬히 살피면서 도감을 넘기던 큰아이는 “여기 봐! 이 나비야! 산호랑나비야!” 하고 외칩니다. 아, 그렇구나. 이 고운 나비는 산호랑나비라는 아이로구나.


나비 이름을 알고서 나비를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옳거니, 이 아이는 우리 집 초피나무에서 막 깨어났군요. 겨우내 초피나무 한쪽에서 번데기로 지낸 듯해요. 이른봄에 깨어나는 나비는 지난가을 끝자락에 번데기를 틀고는 긴긴 겨울잠을 잔다고 하거든요.


초피잎을 좋아해서 초피나무에서 겨울잠을 잤을 테지요. 이 어린 산호랑나비는 날개를 다 말린 뒤에는 꽃가루하고 꿀을 찾아서 나풀나풀 날아다닐 테지요. 아니,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초피잎을 좋아하고, 산호랑나비는 ‘초피나무 꽃가루’를 좋아할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 우리 집 초피나무는 하나둘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깨알보다 조금 굵다고 할 만큼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초피나무인데, 초피꽃은 풀빛입니다. 잎빛하고 같아요. 꽃가루만 살짝 노란 빛으로 드러납니다.


초피꽃이 필 무렵은 초피잎이 가장 보드랍다고 할 만해요. 초피잎이 가장 보드랍다고 할 만한 무렵은 민들레꽃도 한창입니다. 유채꽃은 차츰 저무는 사월 한복판이지만, 배추꽃이 피고 후박나무도 꽃봉오리를 터뜨려요. 곧 장미나무도 커다란 봉오리를 터뜨릴 테고요.


날개를 제대로 말리지 못한 탓인지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한 번 날아오르는가 싶다가도 마당에 떨어진 산호랑나비를 바라봅니다. 날개가 좀 가벼워졌는지 날개를 꽤 빠르게 퍼덕입니다. 그래도 꽤 오래도록 날아오르지 못하고 기운만 빠지는지 솔잎을 붙잡고 날개를 쉽니다.


이 예쁜 사월나비는, 봄나비는, 시골나비는, 또 ‘우리 집 나비’는 마음껏 하늘을 가르면서 새로운 몸을 기뻐할 테지요. 기쁘게 날갯짓을 하며 노닐다가 고운 짝을 만날 테고, ‘제(산호랑나비)가 태어난 초피나무’에 다시 알을 낳겠지요.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우리 집을 비롯해서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과 바다까지도, 또 골짜기랑 너른 들까지도 마음껏 날아다니렴. 아름다운 봄이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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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를 담근 하루



  한 달 남짓 만에 깍두기를 새로 담근다. 어제 읍내에서 무를 한가득 장만했는데 생강을 빠뜨렸다. 양념거리를 집에서 손수 심어서 돌보면 빠뜨릴 일이 없이 그냥 마당에서 슥슥 뽑거나 잘라서 쓸 텐데, 아직 그만큼까지는 안 된다. 마당 한쪽에 생강밭이 조그맣게 있어야겠구나. 아무튼 낮에 무를 잘 씻어서 숭숭 썰고서 소금으로 절였다. 저녁에 풀을 쑤고 양념을 마련하면서 감자버섯조림을 했고 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였다. 가만히 한숨을 돌리면서 기운을 모은 뒤에 맨손으로 씩씩하게 석석 버무렸다. 마늘을 빻다가 에고 허리야 하면서 쉬엄쉬엄 일을 했다. 모든 일을 마무리짓고서 설거지까지 마치니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했지만, 마음을 곧 다스리면서 ‘나는 늘 튼튼하고 기운차다네’ 하고 속삭였다. 아무렴, 밭일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이 일도 저 일도 다 해낼 수 있지. 오늘은 원고 교정을 얼마 못 보았지만, 또 아이들하고 숲마실도 못 갔지만, 이튿날에는 밭일을 조금만 하고 아이들하고 숲마실을 가자고 생각한다. 깍두기를 담가서 보람찬 오늘 내 마음은 꼭 모과꽃과 같다. 2016.4.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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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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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99



‘나무가 자라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 나무 수업

 페터 볼레벤 글

 장혜경 옮김

 이마 펴냄, 2016.3.10. 13500원



숲에 있는 흙 한 줌에는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숫자보다 많은 생명체가 들어 있다. 찻숟가락 하나에도 1킬로미터가 넘는 균사체가 들어 있다. 이 모든 생명들이 땅에 영향을 주어 땅을 나무에게 소중한 곳으로 만든다. (117쪽)



  마을 빈논에 꽃을 심고 돌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고향마을을 꽃하고 나무로 가꾸려는 분입니다. ‘꽃할배’라 할 수 있는 분인데, 우리 집에 흰수선화를 한 꾸러미 선물로 주셨어요. 고운 꽃을 고마이 바라보면서 마당 한쪽에 옮겨심습니다. 이러면서 마당 한쪽하고 텃밭에 돋은 ‘여느 풀’을 꽤 뽑습니다.


  ‘여느 풀’이라고 했는데 사회에서는 흔히 ‘잡초’라고 일컫습니다. 사회에서 잡초라고 할 적에는 ‘심어서 길러 먹으려고 하는 풀’이 아닌 풀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오이밭에 돋는 돌나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고들빼기나 씀바귀도 마늘밭에서는 잡초가 되지요. 민들레도 따로 나물이나 약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면 성가신 잡초가 될 뿐입니다.


  오늘 내가 우리 집 마당하고 텃밭에서 뽑은 ‘여느 풀’은 곰밤부리하고 갈퀴덩굴하고 꽃마리하고 쑥하고 모시입니다. 모두 즐거우면서 고마운 나물로 삼는 풀인데, ‘수선화를 옮겨심’는다든지 ‘우리 집에서 씨앗을 심을 자리’에 돋으면 어쩌는 수 없이 ‘뽑는 풀’로 삼아요. 한쪽에 잘 쌓아서 햇볕에 바짝 말린 뒤에 밭둑이나 밭고랑에 놓지요.


  등허리가 살짝 결릴 만큼 밭일을 하고서 평상에 가만히 눕습니다. 허리를 편 뒤 다시 흙을 만져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흙일을 쉬는 사이 《나무 수업》이라는 책을 새삼스레 펼칩니다. 페터 볼레벤 님이 쓴 《나무 수업》(이마,2016)인데, 이 책은 나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글쓴이 페터 볼레벤 님은 독일에서 ‘숲지기 공무원’으로 스무 해 넘게 일했다고 해요. 농약을 안 쓰고 기계도 안 쓰면서, 오직 말이나 사람 힘을 빌어서 나무를 살피고 돌보며 아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는 동안 페터 볼레벤 님을 비롯해서 ‘차분하고 조용한 숲지기’는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들었고, 나무가 속삭이는 노래를 들었으며, 이 말과 노래를 차곡차곡 글로 옮겼다는군요.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다니 ‘바보’ 아니냐고 물을 분이 있을까요? 나무가 속삭이는 노래를 듣는다니 ‘거짓말’ 아니냐고 따질 분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마음을 열고 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면 나무가 숨을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즐겁거나 기쁘거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나무한테 다가가서 뺨을 대거나 손을 대면 나무가 두근두근거리면서 반가워하는구나 하는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나무뿐 아니라 꽃이나 풀도 그런걸요. 씨앗 한 톨도 그렇고요.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허약해지고 허리가 굽고 병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활기가 넘치고 능률도 높아진다. (130쪽)


토종 숲 생태계가 그런 변화에 맞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사회 공동체가 완벽할수록, 숲의 미기후가 안정될수록 이국의 침입자들이 발을 내리기가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269쪽)



  나무를 조금 더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에서 우리하고 함께 사는 나무를 헤아리고, 우리 마을에 있는 나무를 헤아리며, 우리 고장에 있는 나무를 헤아립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우리하고 함께 사는 나무하고,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리하고 함께 숨을 쉬는 나무를 헤아립니다.


  사람과 사람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살붙이를 헤아리고, 우리 마을 이웃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를 헤아립니다. 우리 고장 사람들을 헤아리고, 이 나라 사람들을 헤아리며,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리하고 함께 숨을 쉬는 사람들을 헤아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서로 어떤 느낌이거나 생각인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서도 사람이 마음을 안 열면 나무가 들려주는 말이나 노래를 들을 수 없어요.


  나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무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대목을 짚습니다. 나무한테서 기쁘게 배우자고 말해요. 나무하고 함께 ‘기쁜 살림을 짓는 슬기’를 다스리자고 말해요. 오백 해는 거뜬히 살 뿐 아니라 수천 해도 넉넉히 사는 나무와 같은 결로 나무를 바라보자고 말해요. 그러니까 ‘백 해를 살 동 말 동하는 사람 목숨’이 아니라 ‘즈믄 해를 넉넉히 사는 나무’라는 테두리에서 나무를 바라보아야 ‘나무 돌보기’나 ‘나무 가꾸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즈믄 해는커녕 이백 해도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나무 마음을 나무처럼 헤아리느냐’ 하고 물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어버이와 나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또 우리 아이들이 낳을 새로운 아이들을 찬찬히 생각할 수 있다면, ‘나무를 사랑하는 길’도 헤아릴 만하지 싶습니다. 두고두고 물려줄 만한 숲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길을 헤아려 보면 아름다운 나날이 될 만하리라 생각해요.


  《나무 수업》을 조용히 덮고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우리 집 마당에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는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니 여름에는 뜨거운 볕을 가려 주고 바람이 시원합니다. 우람한 나무 한 그루는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가려 주면서 집 둘레에 포근한 기운이 서리도록 해 줍니다. 이 큰 나무에는 온갖 멧새가 찾아들면서 하루 내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떨구는 잎은 다시 이 나무한테도 돌아가지만, 밭흙을 기름지게 가꾸는 거름이 되기도 해요. 후박나무 껍질로 엿을 고기도 하고, 치약을 빚기도 해요. 그리고 이 후박나무 잎에는 파란띠제비나비가 알을 낳지요. 해마다 멋진 나비가 깨어나는 보금자리 구실도 하는 나무 한 그루예요. ‘마당이 있는 집’도 훌륭하지만, ‘나무가 자라는 마당이 있는 집’이야말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집이 되리라 생각해요. 2016.4.23.흙.ㅅㄴㄹ



죽은 가문비나무와 소나무는 어린 활엽수 숲의 탄생을 돕는 조산원이다. 그것들의 죽은 몸통에 저장된 물은 뜨거운 여름날에도 대기를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 쓰러진 줄기는 천혜의 울타리가 되어 노루나 사슴의 침입을 막아 준다. (290쪽)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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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05] 인문여행



  작은 몸짓이 바로 발자국

  수수한 살림이 늘 이야기

  이 삶은 한결같이 나들이



  오늘날 ‘인문여행’이나 ‘공정여행’이 널리 자리를 잡습니다. 흔한 말로 ‘관광’이라 하는 ‘구경하기’와 ‘기념품 사기’를 넘어서자는 뜻입니다. 그러면 ‘인문’이나 ‘공정’이란 무엇이 될까요? 인문여행을 하면서 헤아린다면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책이나 인터넷에 적힌 수많은 지식을 되새기거나 곱씹어야 인문여행이 될까요? 아니면 스스로 보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맞이하면서 굳이 ‘인문·공정’ 같은 이름은 몰라도 ‘나들이’나 ‘마실’을 누릴 수 있으면 될까요? 책이나 인터넷에 남는 역사나 세계사나 문화사가 아니라, 이웃마을과 이웃사람을 몸하고 마음으로 함께 마주할 수 있으면 되리라 느껴요. 멀리 떠나야만 되는 여행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나 스스로 한결같이 누리는 삶도 늘 여행이리라 느껴요. 2016.4.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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