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20.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



  사진비평을 하는 분들 가운데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고 외치는 분이 꽤 많다. 이분들이 들려주는 비판을 귀여겨듣고 보면 참으로 그럴 만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는 벌써 오랫동안 불거졌다. 예전에도 이런 목소리는 으레 있었고, 오늘날에도 똑같이 이런 목소리가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이런 목소리는 그대로 있으리라 느낀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면 한 가지를 하면 되리라 본다. 무엇인가 하면, 이런 말을 외치려고 하는 사람 스스로 새로운 사진길을 닦으면 된다.


  다른 작가나 비평가나 출판사나 기획자나 공무원을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지 않아도 된다. 그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그 길이 좋다’고 여겨서 그 길을 갈 뿐이기도 하고, 그 다른 사람들은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모르기’에 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 길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길이 좋다고 하는데 다른 길을 생각할 틈이 없다.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새로운 길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시 말해서, 비판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일은 대단히 쉽다. 한국사진에 앞날이 없다고 외치는 일이란 너무 쉬울 뿐 아니라, 이런 말을 외치는 이들은 매체나 언론에 눈길까지 한몸에 그러모을 만하다.


  그냥 조용히 새로운 사진길을 닦으면 된다고 본다. 한국 사진계나 세계 사진계에서 눈길을 끌지 않으면 어떠한가? 서울 한복판에서 사진전시를 못 하면 어떠한가? 이른바 ‘주류 사진계’가 안 되면 어떠한가? 게다가 ‘비주류 사진계’조차 안 되면 어떠한가? 더 나아가서 ‘아무 사진계’마저 없으면 어떠한가?


  학연이나 지연이 너무 뿌리깊어서 얄궂다고 한다면, 돈이 휘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저 그들은 그런 데로 가라 하고, 오늘 이곳에서 작고 수수하면서 활짝 웃는 사랑스러운 사진길을 닦자. ‘비판’ 아닌 ‘창작’이 있으면 된다. 2016.4.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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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7 - 완결 토성 맨션 7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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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4



내 마음에 낀 때를 닦는 창문닦이

― 토성 맨션 7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5.4.15. 9000원



  ‘첫 걸레질’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주 아스라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으레 걸레질을 하면서 방바닥을 훔치는 모습이 고이 흘러요. 내가 갓난쟁이일 무렵인지, 아니면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무렵인지, 아니면 두어 살이나 서너 살 무렵인지, 아니면 예닐곱 살 무렵인지 잘 모릅니다만,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훔치면 방바닥이 반들반들해지던 모습이 떠올라요. 걸레질을 마친 자리가 얼마나 곱게 빛나고 매끄럽던지, 일부러 어머니 뒤를 좇으면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놀던 일도 떠오릅니다.


  마치 마법사와 같았다고 할까요? 어쩜 이렇게 깨끗하면서 환히 빛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하루하루 흐르더니 내가 우리 어머니처럼 방바닥을 훔치고 걸레를 빨며 집안일을 건사하는 어버이 자리에 섭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어. 천천히 확실히. 나도 멈춰 서 있지는 않았을 거다.’ (9쪽)


“소타 씨와 다른 분들을 믿고 다녀올게요. 아버지가 본 풍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저는 보고 싶어요.” (45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5) 일곱째 권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이 책을 책상맡에 두면서 ‘닦는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마무리짓는 이야기 《토성 맨션》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너무 더러워지고 망가진 탓에 아무도 지구에서 숨을 못 쉬고 못 살고 말아서, 그만 지구를 떠나 지구 바깥에 ‘고리’ 같은 건물을 올려서 산다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만화예요.


  그런데 말이지요,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지구 밖에서도 ‘창문을 닦’습니다. 우주에서 떠도는 먼지가 있다면서, 이 먼지가 창문에 들러붙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주에 있는 건물 창을 닦는 창문닦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책입니다.


  이른바 ‘우주 창문닦이’인 셈이니 ‘여느 창문닦이’하고는 퍽 다를 만합니다. 크기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러나 우주 창문닦이로 일하든, 높은 건물에서 창문을 닦는 일을 하든, 두 자리 모두 아슬아슬해요. 줄을 놓친다든지 줄이 끊어지면 목숨을 잃어요. 아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83쪽)


‘마사에의 꿈을 뺏은 건 누구지? 내 꿈은 뭐였지?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내 세계는 변했다.’ (95쪽)


‘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작으면 좁은 곳도 빠져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105쪽)



  만화책 《토성 맨션》에 나오는 창문닦이는 모두 ‘하층 주민’입니다. 하층 주민인 창문닦이는 ‘상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습니다. 하층 주민은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합니다. 하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기에는 너무 위험하기에 아무도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한다고도 해요. 더군다나, 상층 주민은 저희 건물 창문을 스스로 닦지도 못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주에서도 계급과 신분으로 갈린 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는 셈입니다. 상층 주민은 우주에서 ‘별을 보며’ 사는데, 하층 주민은 우주에서 살지만 막상 ‘별조차 못 보고’ 살아요. 우주에서도 전깃불을 밝혀서 살아요. 하층 주민은 햇볕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어두움에 갇힌 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은 발돋움했기 때문에 ‘대기권 바깥’에 우주 건물을 지어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주 건물에서 밥을 얻고 아기를 낳으며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만한 과학기술은 있지만 서로 평화롭거나 아름다운 삶터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어요. 상층하고 하층이 갈린, 위층하고 아래층이 있어서 ‘도드라진 차별’이 있는 사회입니다.



‘아버지, 저는 다른 방법으로 같은 장소에 설 거예요. 좇고 뛰어넘어서 설명 목표가 없어지더라도, 저의 미래는 계속됩니다. (191쪽)



  하층에서 늘 어둠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장비를 단단히 챙겨서 상층으로 가서 창문닦이 일을 합니다. 상층 주민은 남(하층 주민)이 닦아 주는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상층 주민으로서는 하층 주민이 없으면 창문이 지저분해지다가 꽉 막히겠지요. 이뿐 아니라 상층 사회를 버티는 온갖 시설이나 문화도 하층 주민이 여러 가지 밑바닥 일을 맡아 주기 때문에 누릴 수 있어요.


  더 생각해 본다면, 돈이나 권력이 있어서 ‘손에 흙이나 물을 안 묻히’고도 깨끗한 옷과 집과 밥을 얻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만화책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그래요. 부자나 권력자 자리에 있는 사람은 쌀이나 고기나 푸성귀가 어떻게 나는지조차 몰라도 맛나거나 기름진 밥을 먹어요.



“왜 저렇게 링(우주 건물)이 아름다운지 아세요?” “응? 왜지?” “링이 아름다운 건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이죠.” (238∼239쪽)



  만화책 《토성 맨션》은 상·하층 계급 얼거리를 비판하거나 따지는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오늘날 지구 사회가 이 모습 그대로 흐른다면 앞으로 모든 사람이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는 날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다룹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두 지구를 떠나는 날’을 맞이한다면, 그때에도 사회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계급 사회 멍에를 그대로 짊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다루지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이런 바보스러운 계급 사회 멍에를 푸는 실마리는 ‘가장 작고 수수한 아이’ 손에 있다는 대목을 다뤄요. 이른바 ‘기성 사회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 꿈을 새롭게 품는 아이가 씩씩하게 첫 한 발을 내디디면서 둘레 어른들을 조용히 일깨운다는 대목을 다루지요.


  일곱 권에 이르는 만화책을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주인공 아이는 ‘우주 건물’에서 비행선에 몸을 싣고 ‘붉은닥세리(불모지) 지구’로 날아갑니다. 붉은닥세리 지구에 닿은 주인공 아이는 먼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지구라는 곳에 처음으로 두 발을 디디면서 ‘우주 건물’을 바라보았고, 이 우주 건물이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에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아주 조용히 책을 덮고 아스라히 먼 옛날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집안을 훔치는 모습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작은 걸레를 아이한테 맡기면서 함께 먼지를 훔치는 집일을 되새깁니다.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는 걸레로 훔치고, 마음에 끼는 먼지는 사랑으로 닦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가랑잎은 빗자루로 쓸고, 마음에 도사리는 응어리나 미움이나 생채기나 아픔은 언제나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나는 내 마음에 끼는 먼지를 씩씩하게 닦아 낼 줄 아는 ‘창문닦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6.4.3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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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 집을 지어요 Wonderwise (그린북 원더와이즈) 1
카렌 월러스 지음, 지연서 옮김 / 그린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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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1



‘우리 집’을 손수 지을 수 있을까?

― 뚝딱! 집을 지어요

 믹 매닝·브리타 그란스트룀 글·그림

 지연서 옮김

 그린북 펴냄, 2004.11.10. 8000원



  그림책 《뚝딱! 집을 지어요》(그린북,2004)를 만나면서 깜짝 놀랐고, 재미있게 읽었으며, 기쁘게 살림을 돌아봅니다. 그림책 이름에 고스란히 드러나듯이 이 그림책은 ‘집을 짓는 길’을 어린이가 알기 쉽도록 풀어내요. 이론으로만 밝히는 집짓기가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즐겁게 집짓기를 해 보도록 북돋아요. 그리고, 집이란 어떤 곳인가 하는 이야기도 첫머리에 굵고 짧으면서 또렷하게 잘 밝혀서 들려줍니다.



집은 우리가 살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에요. 그래서 집을 짓기 전에, 가장 적당한 재료를 잘 선택해서 지어야 해요. (2쪽)



  집이란 참으로 그렇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곳일 때에 집입니다. 어떤 집을 지으려 하는가를 처음부터 잘 헤아리고 골라야 합니다. 날씨를 살피고 철을 헤아리면서 집을 지어야 해요. 누가 살고, 몇 사람이 지낼 터전인가를 따져서 집을 지어야 해요. 어느 마을에 짓는 집인지, 또는 멧골이나 숲이나 바닷가에 짓는 집인가 하는 대목도 잘 따져야 하지요. 얼마나 오랫동안 지낼 집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이 집에서 어떤 살림을 가꾸려 하는가도 꼼꼼히 따져야지요.


  그런데 우리는 ‘집짓기’는 뜻밖에도 거의 못 배웁니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집짓기를 가르쳐 주지 않아요. 대학교에서도 집짓기를 가르치지 않지요. 막상 우리는 늘 집에서 사는데, 우리가 깃든 집이라는 곳을 어떻게 짓고 손질하며 가꾸는가 하는 대목을 가르치는 얼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해요.



날씨가 따뜻한 곳에서는 진흙과 나무로 초가집을 지어요. 지붕은 짚을 엮어서 만들지요. 마치 새 둥지처럼요! (8쪽)



  우리는 집짓기를 어디에서 배워야 할까요? 우리는 집짓기를 안 배우고 살아도 될까요? 우리는 집짓기는 모르는 채 ‘남이 지어 놓은 집’을 빌리거나 얻거나 사서 지내면 될까요? 우리 집을 우리 손으로 짓는 길을 기쁘게 익혀서 우리 아이들한테 집짓기를 물려줄 수는 없을까요? 우리 어른들이 이제껏 집짓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아이들하고 새롭게 집짓기를 차근차근 배워서 지을 수는 없을까요?


  그러니까 ‘집 문제’를 나라한테 맡기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푸는 길을 찾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만 수없이 올리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손수 지어서 손수 살림을 가꾸는 길로 나아가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봐요.


  다만, 도시에서는 많이 어려울는지 몰라요. 도시에서는 ‘내 땅’을 장만하기에 너무 벅찰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도시에서 ‘내 땅’을 장만했어도 ‘오래된 도심지 재개발’이 닥치면, ‘내 땅’인데에도 밀려나야 할 수 있고 ‘내 땅에 내가 손수 지은 집’인데에도 그만 쫓겨나야 할 수 있어요.



집을 짓는 방법도 정말 다양해요. 여러분이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지을 건가요? (26쪽)



  집짓기는 바로 삶짓기를 이야기하지 싶습니다. 어떤 집을 지으려 하느냐는 생각은 바로 삶을 어떻게 지으려 하느냐를 묻는 대목이 되지 싶습니다. 손수 지어서 가꾸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려 할 적에 비로소 ‘내 땅을 장만해서 내 집을 내가 스스로 짓는 길’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대형발전소가 있어서 대형주택(아파트 단지)을 건사해 주는 틀에서 벗어나, 전기도 물도 손수 길어올려서 살림을 가꿀 수 있는 보금자리를 짓는 길을 생각할 때에 사회도 달라지고 우리 모습도 거듭날 수 있지 싶어요. 작은 그림책 한 권인 《뚝딱! 집을 지어요》인데, 이 작은 그림책은 우리 어른들한테 찬찬히 물어요. ‘아이한테 어떤 삶하고 살림을 가르치거나 물려줄 생각’인가를 물어요. 어떤 집을 짓고, 어떤 살림을 지으며, 어떤 사랑을 지어서, 어떤 이야기를 짓는 ‘웃음꽃을 짓고 싶은가’를 참말로 상냥하게 물어요. 2016.4.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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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책



  책을 안 읽고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어쩌면 어떤 사람은 책을 한 권조차 안 읽었지만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멋진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아무 책을 안 읽었기에 어설프거나 어리숙한 책을 쓸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기에 더 훌륭하거나 더 아름다운 책을 쓰지는 않는다. 책을 적게 읽었거나 못 읽었기에 더 어리석거나 더 바보스러운 책을 쓰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책을 쓰려고 한다면 ‘지을 책’에 담을 이야기가 마음속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를 써서 책을 짓느냐도 대수로울 테지만,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있느냐 하는 대목이 그야말로 대수롭지 싶다.


  책을 지으려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 사람이리라 본다.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 사람은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리라 본다. 그러니,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을 놓고 ‘책’이라 하지 않는 까닭을 알 만하다.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이라고 하는 ‘종이꾸러미’에는 이야기를 지으려고 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깃들지 않으니까. 2016.4.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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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 철수와영희 생명수업 첫걸음 2
조영권 글.사진 / 철수와영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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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0



‘징그러운 벌레’ 아닌 ‘고운 이웃’이 되고 싶어

―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

 조영권 글·사진

 철수와영희 펴냄, 2016.4.21. 18000원



  비가 그치고 나면 시골마을에는 몇 가지가 새삼스레 바뀝니다. 첫째, 저녁나절부터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둘째, 손수 심은 씨앗이며 흙 품에 안겼던 들풀 씨앗이며 쑥쑥 올라옵니다. 셋째, 봄바람은 한결 싱그러우면서 푸르고 맑게 달라집니다. 넷째, 바야흐로 수많은 풀벌레가 더욱 많이 기지개를 켜고, 겨우내 잠들었던 나비가 신나게 깨어납니다.



곤충들은 경쟁이 심해지거나 견뎌 내기 힘들 정도로 자연환경이 변할 때 그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적응하거나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어. 바로 탈바꿈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춰 몸과 습성을 변화시키는 거지. (37쪽)



  비가 그치고 난 도시에서는 무엇이 바뀔 만할까요? 도시에서는 시골과 달리 개구리 노랫소리라든지 싹이나 풀이 우거진다든지 바람결이 사뭇 달라진다든지 하는 날씨를 알거나 느끼기는 쉽지 않으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도시에도 나무가 있고 골목밭이 있어요. 공원에서 돋는 풀에 풀벌레가 있고, 꽃가루를 찾는 벌하고 나비가 드문드문 날아요.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철수와영희,2016)를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집하고 마을에서 으레 마주치는 풀벌레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나도 우리 집하고 마을에서 자주 만나는 풀벌레마다 어떤 이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름만 안다고 해서 풀벌레를 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이름뿐 아니라 한살이를 알아야 하고, 한살이를 넘어서 이 풀벌레가 짝을 짓는 결이나 알을 낳고 흙밭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도 찬찬히 알 수 있어야지 싶어요.



곤충은 1차 생산자인 식물을 먹고 자신은 더 큰 동물에게 잡아먹히며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해. (47쪽)


나비 무리는 몸통에 비해 날개가 유난히 크고, 날개는 털로 덮여 있으며, 애벌레 시기에 입으로 실을 토해 낼 수 있는 곤충이야. (76쪽)



  밭둑이나 마당 한쪽에서 들풀을 뽑아서 뿌리를 하늘로 보도록 해서 눕힐라치면, 언제나 온갖 풀벌레가 가득합니다. 밭을 갈 적에는 지렁이뿐 아니라 쥐며느리와 집게벌레와 달팽이에다가 아직 안 깨어난 풀벌레 알이 잔뜩 있어요. 조금 큰 돌을 들어서 옮길 적에는 으레 개미가 바글거려요. 아차, 또 개미집을 건드렸네 싶다가도, 개미들은 저희 집 뚜껑으로 삼던 돌이 사라지면 어느새 새로운 곳을 찾아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일구어요.


  그런데, 시골살이를 하면서 풀벌레하고 흙이 어떻게 얽히는가 하는 대목을 좀 새롭게 바라봅니다. 무엇보다도 ‘흙이 살아서 숨쉰다’고 하는 데에는 풀벌레가 많아요. ‘흙이 메마르거나 죽었네’ 싶은 데에는 풀벌레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까무잡잡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흙에는 수많은 풀벌레하고 흙벌레가 어우러져요. 허옇거나 시뻘건 흙에서는 풀벌레나 흙벌레를 좀처럼 찾아보지 못해요. 왜 그러한가 하고 여러 해에 걸쳐서 살펴보았는데, 풀벌레나 흙벌레는 가랑잎이나 마른 풀줄기나 풀잎을 갉아먹기도 해요. 마른 잎을 좋아하는 풀벌레나 아주 작은 벌레(이른바 미생물)가 마른 잎을 흙으로 천천히 바꾸어 주고, 이 자리에 ‘조금 큰 풀벌레’가 찾아들어요.



파리 무리는 앞날개 한 쌍만 남아 있어. 뒷날개는 퇴화해서 작은 돌기로 남았는데, 이것이 평형감각을 유지해 주며, 끝이 봉긋한 곤봉처럼 생겼다고 해서 ‘평균곤’이라고 불러. 딱정벌레들이 쓰지 않는 날개 한 쌍을 보호용 갑옷으로 바꿨다면, 파리들은 날개 한 쌍을 평형감각 기관으로 바꾼 거지. (78쪽)



  《조영권이 들려주는 참 쉬운 곤충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싼 풀벌레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이 풀벌레는 ‘그냥 징그러운 벌레’가 아니라 ‘지구라는 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웃’이라고 하는 대목을 글로 밝힙니다. 이러면서 사람 곁에서 쉽게 찾아볼 만한 벌레마다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고, 잠자리나 딱정벌레뿐 아니라 모기나 파리는 어떠한 한살이로 어우러지고, 날개나 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암컷 입장에서는 쓸모없어진 수컷을 잡아먹어 새끼를 돌보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인 거지. 나중에 새끼들이 자라 먹이가 많이 필요해지면 암컷은 자신의 몸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 줘. (103쪽)


(벌과 파리) 암컷이 나방이나 나비 애벌레, 하늘소 애벌레 등의 몸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으면 그 안에서 알들이 깨어나 기생한 애벌레의 몸을 파먹고 자라는 거야.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벌들의 이런 행동 덕분에 식물에 해를 입히는 곤충의 양이 조절되기도 해. (107쪽)



  시골집에는 집 안팎으로 벌레가 많습니다. 거미는 집안에도 집밖에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부엌에 뭐만 떨어뜨려도 어느새 개미가 찾아옵니다. 나방은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왔는지 저녁에 불을 켜는 자리를 붕붕 납니다.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둘레에는 으레 애벌레가 나뭇가지나 나뭇잎에서 미끄러졌는지 애벌레가 기어다닙니다. 비가 온 뒤나 바람이 세게 분 날에는 애벌레 한두 마리쯤 쉽게 찾아봅니다. 마을이나 숲에서 사는 새는 바로 이 애벌레를 잡으려고 우리 집 나무를 찾아오지 싶어요.


  애벌레는 자라는 동안 잎을 갉고, 번데기나 고치를 튼 뒤에는 마음껏 하늘을 날며 꽃마다 찾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자그마한 풀벌레나 흙벌레는 마른 잎이나 줄기를 갉아서 새로운 흙으로 바꾸는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이 흙에서 나온다면, 흙에 씨앗을 심는 시골지기 손길뿐 아니라, 이 흙을 함께 돌보며 곁에 있는 풀벌레가 있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수많은 벌레가 있어서 우리(사람) 모두 밥을 기쁘게 먹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얼핏 ‘징그러운 벌레’로 여길 수 있지만, 이 작은 벌레가 하는 일이라든지 이 작은 벌레가 제 몸을 지키려고 여러 몸빛을 보여주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운 이웃’이 우리 곁에 있어서 지구가 푸르네 하고 느낄 만하지 싶어요. 오늘도 새로운 풀벌레를 만나면서 가만히 속삭입니다. 얘야, 네 이름은 뭐니? 2016.4.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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