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소식지 <삶말> 23호에 싣는 도서관일기입니다.

도서관 지킴이 이웃님한테 <삶말> 23호를 부칠 텐데

이번 소식지를 부치면서

저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자란 흰민들레가 맺은 씨앗을

다섯 톨씩 담으려고 해요.

지난 4월부터 흰민들레씨를 바지런히 모았습니다 ^^


..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사진책도서관 2016.5.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곧 도톰한 ‘새 사전’이 한 권 나옵니다. 이 ‘새 사전’은 오래도록 마음에 담은 꿈이요, 이 땅에서 태어나 살면서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생각을 지으려고 하는 사랑으로 엮는 책입니다.


  ‘새 사전’에 붙이는 이름은 어떻게 나올는지 아직 모르는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새 사전’을 이루는 글은 2015년 1월에 처음 마무리를 지었고, 그 뒤 꾸준히 손질하고 다시 쓰고 고치고 하면서 2016년을 맞이했습니다. 2016년 3월에 드디어 ‘디자인 시안’이 나왔고, 지난 3∼4월은 몇 차례씩 글손질을 했습니다. 5월에도 글손질을 더 할 테고, 참말로 모든 마무리를 지어서 5월에 ‘새 사전’이 나오도록 힘을 쏟으려고 해요.


  다른 여러 가지 ‘우리 말글 이야기’도 올해에 새롭게 씁니다. ‘말놀이’를 하듯이 어린이한테 ‘말을 아름답게 살려서 쓰는 길’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거의 다 새롭게 썼고, 요새 끝손질을 합니다. 여기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잇는 책으로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이야기를 씁니다. ‘마을말’ 이야기는 스물네 꼭지 이야기 가운데 스물두 꼭지를 끝냈으니 두 꼭지를 더 쓰면 마무리가 되어요. 그러니까 2016년 1월부터 5월에 이르도록 두 가지 이야기책에 담을 글을 새롭게 쓰고, ‘새 사전’을 수없이 고쳐쓰고 손질하면서 보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도서관 소식지나 이야기책을 제때 내놓지 못했어요.


  〈삶말〉 23호를 쓰면서 이 같은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5월에 ‘새 사전’을 선보인다면 살림이 한결 느긋할 테고, 이 ‘새 사전’으로 말을 살찌우며 넋을 가꾸고 사랑을 짓는 슬기로운 길을 이웃님한테 넉넉히 들려줄 수 있겠지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은 500쪽 즈음 되는 도톰한 책 한 권으로는 끝나지 않아요. 첫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수많은 말 이야기를 앞으로 꾸준히 다루어야지 싶어요.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저희 집살림도 도서관살림도, 또 글살림하고 배움살림도, 여기에 삶을 짓는 사랑살림하고 꿈살림까지,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일구려고 해요.


  ‘새로운 말’이란 이제껏 아무도 안 쓴 남다른 말을 가리킨다고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기쁨으로 마주하면서 웃음으로 가꾸려고 할 적에 저절로 샘솟는 말이 바로 ‘새로운 말’이라고 느낍니다. 오래된 사전에서 캐내는 ‘옛말’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 손길로 살림을 지으면서 어루만지는 말이 바로 ‘새로운 말’이라고 느껴요.


  사진책도서관 숲노래가 늘 새롭게 이야기꽃을 길어올리는 배움살림을 짓는 터전이 되기를 꿈꿉니다. 오늘은 텃밭을 갈아 당근씨를 심어요. 밭에는 씨앗을, 마음에는 생각을 심지요.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도서관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형의 꿈 난 책읽기가 좋아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콜슨 그림, 김옥주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47



꿈꾸는 인형이 참말로 토끼가 되었네

― 인형의 꿈

 마저리 윌리엄즈 글

 윌리엄 니클슨 그림

 이옥주 옮김

 비룡소 펴냄, 1998.11.6. 7000원



  마저리 윌리엄즈 님이 1922년에 “the Velveteen Rabbit”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어린이문학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사랑받는 날에는》이나 《헝겊 토끼의 눈물》이나 《토끼 인형의 눈물》이나 《사랑받는 날에는 진짜가 되는 거야》나 《벨벳 토끼 인형》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책을 살피다가 이 가운데 《인형의 꿈》을 골라서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이 작품이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꿈꾸는 인형’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를 다루기에 “인형의 꿈”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값비싼 장난감들도 토끼 인형을 무시했지. 헝겊 쪼가리로 만들어진 토끼 인형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 (9쪽)


토끼 인형은 진짜 토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 무엇을 본떠 자길 만들었는지도 몰랐지. 진짜 토끼도 모두 자기처럼 톱밥으로 가득 차 있는 줄만 알았지. (10쪽)



  단출한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토끼는 ‘그냥 토끼’가 아닙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형 토끼’입니다. 인형인 토끼이니 몸에서 피가 흐르지 않습니다. 뼈가 없어요. 소리를 내지 못하고, 뛸 수 없을 뿐 아니라, 웃거나 울 수 없어요. 밥을 먹지 않고, 똥을 누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인형입니다. 마음이 없다고 여길 만하고, 생각도 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가만히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어느 날 문득 어느 아이 곁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값싼 인형이라며 놀리는 다른 장난감이 있지만, 이 인형 토끼는 ‘오래된 장난감 말’이 들려준 이야기를 늘 마음에 새겨요. 오래도록 따사로이 사랑을 받으면 ‘인형이 아니라 목숨이 깃든 토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을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얘야, 뭘로 만들어졌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너도 진짜가 될 수 있고말고. 누군가 널 장난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아주아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 너도 진짜가 될 수 있지.” (14쪽)


소년은 어딜 가든지 토끼 인형을 데리고 다녔지. 토끼 인형을 손수레에 태워 주기도 했고, 정원에 데려가 점심을 먹기도 했어. 꽃밭 울타리 뒤 산딸기 나무 밑에다 동화에 나오는 오두막 같은 예쁜 토끼집도 지어 주었어. (19쪽)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인형인 토끼는 꿈을 꾸면 ‘폴짝폴짝 뛰는 토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이 말도 안 될 만한 일은 참으로 일어날 만할까요? 문학이니까, 게다가 어린이문학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만할까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애타게 바라고 온힘을 쏟아서 꿈을 꾸면 이룰 수 있을까요?


  인형 토끼는 어느 날 ‘인형을 아끼는 아이’하고 들판으로 마실을 가요. 이때에 ‘인형이 아닌 참말 목숨이 있는’ 토끼를 만나지요.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을 보고는 처음에는 동무인 줄 여기다가, 나중에는 인형인 줄 알아요. 인형 토끼는 저도 높이 뛸 수 있고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외치지만, 들토끼 또는 멧토끼는 인형 토끼를 더 쳐다보지 않고 떠납니다. 인형 토끼는 너무 서럽고 슬프지만, 저를 아끼는 아이가 다가왔기에 아이 품에서 잠들고 놀면서 서러움하고 슬픔을 달랩니다.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아름다움을 잃으면서까지 사랑을 받아 진짜 토끼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눈물 한 방울이, 진짜 눈물 한 방울이 누더기가 된 벨벳 코를 간지럽히며 흘러내리더니 땅에 떨어지네. (36쪽)



  책을 덮고서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벼리야, 이 책에 나오는 인형 토끼는 참말로 폴짝폴짝 뛰는 멧토끼가 되었네.” “응. 진짜 토끼들처럼 진짜 토끼가 되었어.” “그러면 인형 토끼는 어떻게 진짜 토끼가 되었을까?” “음, 꿈을 꿔서?” “그래, 인형 토끼가 꿈을 꾸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인형 토끼?” “인형인 채 있으면서 꿈을 안 꾸었으면 그냥 인형으로 있겠지. 그냥 인형으로 있다가 낡거나 해지면서 버려지겠지.”


  아이한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줍니다. “우리도 늘 꿈을 품으면, 이 꿈을 자꾸 되새기면서 한결같이 마음속으로 그리면, 아침에 일어나서 꿈을 새롭게 그리고, 저녁에 자면서 꿈을 다시금 그리면, 이렇게 늘 꿈으로 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렇지만 꿈이 안 이루어질 수도 있지.” “언제? 언제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꿀 때에는 꿈이 안 이루어져. 꿈을 안 꾸니까 이루어질 꿈이 없겠지?” “응. 그래. 그러면 꿈을 꾸어야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그렇지. 그리고 꿈을 그냥 꾸기만 할 뿐 아니라,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늘 그릴 수 있어야 꿈이 이루어져.”


  《인형의 꿈》을 읽으면, ‘사랑받은 장난감’은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꿈을 꾼 장난감’은 오직 헝겊 토끼 하나입니다. 헝겊 인형이던 토끼만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꿈을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에 새겨요. 기쁠 때에도 꿈을 그리고, 슬플 적에도 꿈을 그려요. 마침내 막다른 벼랑 같은 자리에 놓여도 인형 토끼는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꿈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꿈이 없이 지내는 삶은 어떤 뜻이 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꿈을 그리기에 꿈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고, 꿈을 안 그리기에 아무 꿈이 없이 쳇바퀴를 도는 삶이 된다는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더없이 쉽고 그지없이 마땅한 이야기인데, 바로 이 쉽고 마땅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늘 잊은 채 똑같은 쳇바퀴를 굴리지는 않나 하고 돌아봅니다. 멧토끼가 되고 싶은 꿈을 품어서 끝내 멧토끼가 된 헝겊 인형 토끼처럼, 나도 내가 될 새로운 모습을 꿈으로 고이 꾸면서 마음에 찬찬히 아로새기자고 생각합니다. 2016.5.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르게 물드는 눈 2 (우니타 유미) 애니북스 펴냄, 2016.4.29.



  너하고 나는 어떤 말을 쓰는 사이일까? 우니타 유미 님이 두 권으로 짧게 마무리를 지은 《푸르게 물드는 눈》 둘째 권을 읽는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일본 아가씨’하고 ‘중국 사내’는 서로 마음으로 아끼면서 사귀는 사이가 된다. 일본말이 서툰 중국 사내이지만, 말이 서툴어도 마음으로 아낄 수 있기에 두 사람은 사랑을 짓는 길을 걷는다. 일본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일본 사내도 많지만, 정작 마음으로 아끼는 길을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느끼지 않으니 일본 아가씨는 ‘같은 일본말’을 쓰는 사내들하고 마음으로 새로운 꿈을 짓지 못한다. 참으로 마땅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똑같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한국말’을 쓰는 사이일까? 우리는 참으로 ‘같은 한국말’을 쓰는 한국사람이거나 이웃이나 동무라고 할 만할까? 오늘 우니타 유미 님 트위터(https://twitter.com/unita_y)가 있는 줄 알았다. 일본말로 된 트위터를 한참 읽어 보았다. 2016.5.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한 줄 책읽기)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푸르게 물드는 눈 2- 완결
우니타 유미 지음, 김재인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4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16년 05월 03일에 저장
품절
[세트] 푸르게 물드는 눈 1~2 - 전2권
우니타 유미 지음, 김재인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6년 05월 03일에 저장
품절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25



아파도 웃으면서 새 노래로 자라는 사람들

― 순백의 소리 13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4.25. 4800원



  노래대회가 있습니다. 노래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고 겨루는 대회가 있습니다. 서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나누면서 아름다운 삶을 북돋우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목소리를 잘 뽑느냐를 겨룬다든지, 누가 더 악기를 잘 켜느냐를 겨루는 자리가 있어요.


  노래대회에서 으뜸이 되면 이름을 드날리거나 돈을 잔뜩 거머쥔다고 합니다. 노래대회에서 버금을 해도 훌륭하고 딸림을 해도 대단하지만, 으뜸이 아닌 버금이나 딸림이 된다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흔히 “1등을 놓친다” 같은 말을 써요. 노래부르기에까지 차례를 매겨서 누구는 1등이고 누구는 2등이며 누구는 3등이라고 금을 긋습니다.



‘공기가 으르렁댄다. 타누마의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프레이즈 하나만으로도 그 탁월한 능력을 알 수 있다.’ (9쪽)


‘선생님, 저도 코스케만할 때는 굉장했는데, 그렇게 기뻐해 주셨던가요?’ (23쪽)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절로 우러나와서 노래를 부릅니다. 놀다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게다가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부릅니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버스에서 시골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를 느끼고는 어느 때에는 “오냐, 잘 부른다. 더 불러 봐.” 하고 웃고, 어느 때에는 “시끄럽게 뭔 노래!” 하면서 꾸짖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꾸짖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옆에서 “애들 목소리 듣기 좋은데 왜 못 부르게 하쇼?” 하고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나무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노래란 무엇일까요? 노래는 언제 부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또 무엇일까요? 악기로 켜는 노래는 언제 켤 만할까요?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6) 열셋째 권을 읽으면서 ‘노래부르기’하고 ‘악기 켜기’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노래하고 악기를 놓고 솜씨를 겨루는 대회를 생각해 봅니다.


  즐거움이 우러나와서 부르는 노래일 때하고, 아주 훌륭하거나 멋지다는 말을 듣는 노래일 때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즐겁거나 신날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천재? 장래? 메이저? 머리로 답을 찾아 헤메고, 자기를 비하하며 자신을 누르려 했다.’ (48쪽)


‘타이가 씨의 소리다. 겉치레 없이 즐겁게 연주하는, 타이가 씨의 소리.’ (77쪽)



  라가와 마리모 님이 빚은 만화책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샤미센이라는 일본 악기를 켭니다. 대회에 나와서 으레 1등을 밥먹듯이 하는 젊은이가 있고, ‘천재’라는 아이들한테 늘 꺾이면서 ‘자기비하’를 일삼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래대회에 나와서 그저 언제나처럼 ‘우승후보답게 빼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노래대회에서조차 그저 언제나처럼 ‘이웃하고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승후보는 우승후보답게 1등을 쉽게 거머쥡니다. 즐겁게 악기를 켜는 사람은 순위발표를 보지도 않고 대회장에서 나갑니다. 순위발표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대회에도 안 나갈 노릇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회에 일부러 나간 그 사람은 ‘오랫동안 스스로 억눌렀던 자기비하’라는 굴레를 깨고 싶어서 대회 무대에 한 번 서 보았어요.



“내 소리가 할배 소리 같드나?” “아니.” “그럼, 내 안에서 할배가 없어졌드나?” “형은 할배의 소리로 자랐다 아이가.” “음, 그래.” (137쪽)


“타이가 씨가 지금, 사와무라에게 샤미센을 지도하시나요?” “나? 설마.” “그럼 누구한테서 배운 거랍니까?”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아닐까?” (186쪽)



  이제껏 열두 권에 이르는 낱권책이 나왔고, 어느새 열셋째 권이 나온 《순백의 소리》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머잖아 열넷째 권도 나올 테고, 아마 스무 권 즈음까지 꾸준히 나올 듯합니다. 열셋째 권까지 한 권씩 찬찬히 돌아보니, 권마다 조금씩 다르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노랫결에 담아서 들려주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노랫가락에 제 마음과 느낌과 생각을 담는 걸음걸이를 넌지시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노래나 악기는 누구한테서 배울까요? 대단한 스승한테서 배울까요?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한테서 차근차근 배울까요? 또는 사람뿐 아니라 바람소리한테서도, 나뭇소리한테서도, 꽃소리나 풀소리한테서도, 벌레나 새나 짐승 울음소리한테서도 배울까요?


  나는 ‘썩 잘 부르는 노래’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닐 적에 음악 실기시험에서 늘 ‘바닥 점수’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되게 좋아합니다.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아버지를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아버지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노래합니다.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 닿아도 기운을 내어 씩씩하게 노래를 하지요. 오랫동안 자전거를 달려서 다리힘이 풀려도 새삼스레 힘을 뽑아서 나긋나긋 노래를 하지요. 이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들은 시골버스뿐 아니라 고속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전철에서도,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제법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에 나오는 여러 젊은이들은 ‘아픔을 먹으면서 이 아픔을 새로운 노래로 삭이는’ 숨결을 보여주어요.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대회나 겨루기를 모르는 아이들은, 참말로 티없이 맑고 싱그럽게 노랫가락에 웃음을 담아서 사랑을 들려주려 한다고 느낍니다. 2016.5.3.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만화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
황주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49



교사는 돈 잘 벌고 안정된 일자리?

―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황주환 글

 갈라파고스 펴냄, 2016.4.11. 15000원



  경상북도에서 교사로 일하는 황주환 님이 쓴 ‘자기고백 교육비평’이라고 할 만한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갈라파고스,2016)를 읽다 보면, 황주환 님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이를테면, 여학생 뺨을 때린 이야기라든지, 또 아이들을 때린 일을 그만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그 학생하고 만났을 적에 그 학생이 왜 저를 때렸는가 하고 물었을 때 대꾸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낱낱이 써도 될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자기고백’을 하기에 오늘날 이 나라 학교교육를 차근차근 짚고 바라보면서 비평을 할 수 있으리라고도 느낍니다.



왜 나는 그런 지도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마도 내 몸에는 그런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미 몸으로 학습한 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까닭이다. (57쪽)


학교폭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손톱만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도, 그것을 승자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더 이상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75쪽)



  교사 황주환 님은 스스로 보기에도 부끄럽고 남한테 밝히기에도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까닭을 곰곰이 파헤칩니다. 황주환 님이 어릴 적에 학교에서 교사한테 늘 맞고 자랐으니 ‘맞고 자란 몸’이 버릇으로 굳었고, 이 버릇대로 ‘교사 자리에 서고 나서는 때리는 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몸으로 학습한 것(57쪽)”은 마음보다 늘 앞섰다고 털어놓아요.


  그러니까,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폭력 아닌 사랑으로 배운 일’이 몸에 남지 않은 터라, 아무리 ‘머리에 이론이나 지식’으로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치자’고 하는 말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론이나 지식이 제대로 샘솟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폭력을 안 쓰고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을 뿐 아니라 ‘나는 왜 저렇게 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부끄러이 여겼고, 황주환 님으로서 부끄러운 몸짓을 ‘이제부터 새로 배워서 털어내자’고 다짐했다고 해요.



아이들이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란다. 국어 교과서에 소원 세 가지를 적어 보라는 예비 문제에, 돈 많이 벌기, 돈벼락 맞기, 돈 많은 애인 만나기를 적는 것처럼, 오로지 돈을 반복하는 학생들이 교사가 되고 싶단다. (80쪽)


공부를 못한다고 자기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자기 몫을 주장하고 곳곳의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행하는 이 수업이 바로 연대의 사례라고, 내 믿음으로 말한다. (107쪽)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라고 붙인 책이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분이 ‘자기고백’을 하면서 밝힌 대목에서 이 책이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드러납니다. 학교가 ‘질문을 가르치지 않’을 때에, 학생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찾는 삶’을 몸에 익히지 못합니다. 스스로 묻지 않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체제와 정치와 사회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따르는 ‘기계’가 되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묻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돈 많이 버는 안정된 일자리’를 바란다고 합니다. 또는 ‘돈 많은 애인 만나기’를 바란다고 해요. 아이들은 교사라고 하는 자리를 ‘돈 잘 벌고 안정된 일자리’로 바라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황주환 님은 아이들 머릿속에 ‘돈’만 남도록 되고 만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시무시할 뿐 아니라 앞길이 캄캄한 노릇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을 찾으려는 삶이 아니니 앞길이 캄캄하지요. 꿈을 꽃피우고 사랑을 나누려는 아이들이 아니라 돈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된다면 더없이 무시무시하지요. 아무리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을 정부에서 시키려 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사회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이 억눌리거나 짓밟히는 모습이라면, 아이들은 오직 돈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왜 우리는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하지 못할까. 그러니까 왜 우리는 부당한 지시에도 충직하기만 한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저항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지 않던가! (168쪽)



  교사 황주환 님은 이녁이 학생일 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교사로 학생을 마주하는 오늘날에도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 얼거리에서는 ‘저항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 안팎에서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학생’만 기르려 한다고 털어놓습니다. 교사를 비롯해서 ‘어른 자리’에 있다는 이들은 학생과 어린이와 젊은이가 ‘공손한 태도’이냐 아니냐만을 따진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바라는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교사나 어른이 너무 적다고 털어놓습니다.


  문득 높임말이라고 하는 말을 떠올립니다. 높임말이란 서로서로 높이려고 쓰는 말입니다만, 어느 때에는 낮춤말로 탈바꿈하기도 해요. 한쪽만 높이도록 하는 높임말일 적에는, 다른 한쪽은 어느 한쪽을 낮추는 말이 되어요. 어느 한쪽은 나이가 많대서 높임말을 받고, 높임말을 받으면서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 반말(낮춤말)만 쓸 적에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공손하게 높임말을 안 쓴다’고 하면 아무리 ‘바른 말(정당한 요구)’을 한다고 하더라도 ‘버릇없다’고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귀를 닫기 일쑤예요.



왜 교사는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을까? 왜 교사는 학생의 요구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의하기보다 학생이 공순하냐 아니냐에 민감할까? (172쪽)



  ‘묻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묻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 또는 생각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학교가 아이들을 ‘묻는 사람’으로 키운다고 한다면, 학교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운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학교가 아이들을 ‘묻지 않는 사람’으로 길들이려 한다면, 이는 아이들을 ‘생각을 잃어버린 채 고분고분하기만 한 기계’로 길들이려 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시골학교에서도 도시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골교사 한 사람뿐 아니라 도시교사 누구나 아이들한테 ‘생각하기’를 가르치고 ‘생각하는 사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묻는’ 사람이 되어서, 새롭게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2016.5.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