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놀이터 101. 풀내음



  나는 어릴 적에 풀밭에 드러눕기를 즐겼다. 내가 어릴 적에 나라에서는 ‘풀밭에 함부로 누우면 어떤 병원균이 옮는다’고 하면서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그렇지만 풀밭에는 들쥐뿐 아니라 수많은 벌레가 살고 지렁이가 산다. 풀밭에 드러누우면 병원균이 옮는다면,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드러누우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풀밭이나 흙밭에조차 드러누울 수 없는 얄궂은 곳을 보금자리나 마을로 삼아서 지내는 셈일까? 큰아이가 감나무 곁 풀밭에 그냥 드러누워서 논다. 풀이 우거지기 앞서이니 꼭 알맞춤한 때에 드러눕는구나 싶다. 풀이 우거지면 낫으로 베어도 되고, 밭으로 일구려 할 즈음 뿌리까지 뽑을 수 있다. 풀밭에 누우면 풀내음을 맡고, 하늘숨을 쉰다. 풀밭에 누우면 흙을 새삼스레 느끼고, 햇볕하고 햇빛하고 햇살을 새롭게 받아들인다. 2016.5.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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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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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6



겉치레를 버리고 새로움을 찾는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42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8) 스물여섯째 권을 읽으면 책끝에 뒷이야기가 붙습니다. 애장판이 아닌 가벼운 낱권책으로 나올 적에 뒷이야기가 붙기도 하고 안 붙기도 하는데, 스물여섯째 권에 붙은 뒷이야기는 남다릅니다. 그린이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가 어떤 사람인가를 짤막하게 밝히기 때문입니다.



“‘왜?’냐는 물음에 대해 대답을 못하는 것은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란다.” (9쪽)


‘정직하게 말하면 됐을 텐데. 사실은 그 책의 의미를 하나도 모른다고.’ (21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꽤 오랫동안 읽었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한국말로는 1999년에 첫째 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스물여섯째 낱권책이 나올 즈음은 이 만화책을 스무 해 즈음 그렸다고 합니다. 스물여섯째 낱권책 뒷이야기를 보면, 그린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아주 짧게 적으면서, 이 만화에 나오는 유교수는 바로 이녁 아버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만화책에는 ‘유교수네 네 딸’이 나오는데, 만화를 그린 분은 참말로 ‘교수 아버지를 둔 네 자매 가운데 막내’였으며,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연구’를 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늘 연구를 하고 책을 읽던 아버지는 네 딸하고 논 일이 아주 드물다고 해요. 그래도 넷째 딸은 이런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늘 곁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는군요. 늘 지켜보았고, 아버지 이야기를 언니하고 어머니한테서 들으며 이 만화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잘은 몰라도, 일본은, 많은 것을 버리며 앞으로만 가요. 다들 앞으로도 영원히 커지기만 한다고 착각하면, 그 자리에서 다 멈춰버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41쪽)


“스트립쇼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걷지만, 조금 전까지 어떤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었을까 상상하면 재미있거든요. 엉큼한 얼굴들이지만 어쩐지 밉지는 않고, 때로는 사랑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이상한가?” (45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 첫째 권을 1999년에 처음 만날 무렵에도 문득 느꼈습니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는 예나 이제나, 그러니까 첫째 권이 나올 때이든 스물여섯째 권이 나올 때이든, 또 서른 몇째 권이 나온 뒤이든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릴 적이든 젊을 적이든 정년퇴직 언저리이든 ‘겉치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겉을 꾸미지 않아요. 유교수가 마음을 두는 곳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에 마음을 두면서 살아요. 마음을 가꾸자고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일어나고, 밤마다 즐겁게 되새기면서 잠듭니다.



“할아버지, 이 사람 누구예요?” “할아버지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란다.” “소중한 사람? 하나코보다?”“소중한 사람에게 우열을 따져서는 안 돼. 소중한 사람은 마음 여기저기의 한켠에 있어도 되는 거야.” “엉! 하나코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도 이 나이가 돼서야 겨우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됐지.” (62∼63쪽)


“할아버지! 카메라로 찍지 말고 이 비디오로 찍으라니깐요!” “비디오가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어요. 순간적인 약동을 기억에 오래 새기려면 정지화면이 더 좋을 때도 있단다.” (166쪽)



  만화책 한 가지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는 바탕이라면 무엇보다 ‘꾸준함’이라고도 하겠지만, 이 꾸준함을 잇는 기운이란 늘 ‘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지 싶습니다.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기에 오래도록 한 가지 만화를 그릴 수 있고,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운 마음결’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만화책뿐 아니라 우리들 여느 삶자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스무 해나 마흔 해를 살기는 어렵습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속보기로는 늘 새롭기에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웃으면서 살림을 지을 만해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쉰 해나 일흔 해를 사는 기운이란 ‘깊고 넓으며 따사로이 마주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바라신다면, 제가 나이마다 겪은 ‘첫 경험’을 모두 들려 드릴까요? 그 차이가 사소하다 해도, 60세가 되지 전에 60세를 경험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미지로 가는 위대한 첫걸음이죠!“ (205쪽)


“예, 저는 자신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거죠. 그렇군! 즉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모두가 사랑한다는 뜻이군요!” (207∼208쪽)



  만화책에 흐르는 말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해 보고, ‘소중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고 밝히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으면 동무를 사귈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보고, 해마다 늘 새로운 삶을 겪을 뿐 아니라 날마다 늘 새로운 하루를 만난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섭니다만, 막상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자리에 서기’이지 싶어요. 스스로 교수라고 생각하기보다 ‘배우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가르칩니다. 늘 새롭게 배우는 기쁨을 누리면서 가르칩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삶·살림·사랑을 이웃하고 나누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스무 해 넘는 나날에 걸쳐 수십 권이 나온 만화책으로 여길 수 있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라고 할 만하지만, 나는 이 만화책을 한 권씩 오래도록 되읽고 돌아보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한 번 슥 훑고 줄거리만 좇은 뒤에 덮는 만화책이 아니라, 뒤엣권이 언제 나오나 하고 손꼽는 만화책이 아니라, 권마다 다 다르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 함께 나눌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는 길동무책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만화책을 처음 보던 1999년에는 좀 시큰둥하기는 했는데 다시 볼수록 새로웠고, 이제는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도 있을 만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이녁 아버지한테 ‘마음을 가꾸고 새로 배우는 삶’을 물려받았다면, 나는 내 나름대로 언제나 새로 배우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길’을 즐겁게 물려주자고 생각합니다. 2016.5.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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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말 (소야 키요시·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사 펴냄, 2004.8.30.



  사랑을 받아 태어난 아이가 ‘유리 말’을 갖고 함께 놀려다가 그만 다리를 부러뜨렸다는데, 부러진 다리를 고치려고 유리나라로 찾아가서 헤엄을 치고 하늘을 날다가 유리 눈물을 줍고 불꽃하고 맞서서 유리 아기를 지키다가 다시 어머니랑 아버지가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를 담은 《유리 말》은 꿈속 이야기일까, 아니면 삶에서 참말 몸소 겪은 이야기일까? 어느 모로 본다면 꿈속에서 본 이야기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꿈이 삶이요, 삶이 꿈일는지 모른다. 우리 몸하고 마음은 꿈과 삶 사이에서 가장 깊고 따스한 사랑을 찾아서 흐를는지 모른다. 《유리 말》 이야기를 아이하고 곰곰이 읽어 본다. 2016.5.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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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말
소야 키요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정성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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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뜨개인형을 읽기



  곁님이 밤을 새워서 뜬 뒤 아이들한테 선물한 ‘얼룩말 손가락 뜨개인형’을 나도 손가락에 꽂아서 놀아 봅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한 번 놀면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밤을 새운 한 사람 손길이 깃든 이 뜨개인형은 아이들이 늘 만지면서 놀 만하고, 어른도 곧잘 함께 놀 만합니다. 이 뜨개인형을 손수 떴기에 더 애틋할 수 있고, 이 뜨개인형을 플라스틱 실이 아니라 면으로 된 실로 짰기에 더 살가울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오래도록 손수 품을 들인 놀잇감’을 선물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지은 놀잇감도 선물했을 테지만, 으레 이레라든지 열흘이라든지 달포라는 긴 나날을 들여서 한 가지를 마련했어요. 다시 말하자면 더 많은 놀잇감이 있어야 더 잘 놀 수 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은 손길로 찬찬히 바라보면서 지은 놀잇감일 적에 두고두고 놀 뿐 아니라,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새로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고작 뜨개인형 하나라 할 수 있지만, 이 뜨개인형을 고이 아끼고 돌보면서 논다면 오래오래 물려주고 물려받다가 나중에 새로운 아이가 새롭게 뜰 수 있을 테지요. 우리 곁에 둘 만한 책도 이와 같을 테지요. 고이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새로운 노래를 일굴 만한 이야기를 다루도록 북돋우는 책 한 권이 있으면 넉넉하겠지요. 2016.5.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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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김태완 지음 / 호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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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2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살기

―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김태완 글

 호미 펴냄, 2002.12.30. 13000원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경쟁이 없던 어린 시절, 배만 부르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던 시절, 오로지 앞날의 희망만 있던 시절,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해도 너그러운 웃음으로 넘어가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17쪽)



  동양철학자인 김태완 님은 광주에 있는 지혜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생각하기(철학)’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김태완 님이 쓴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호미,2012)도 ‘생각하기’를 다룹니다. 이 책은 김태완 님 나름대로 ‘한시 읽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시 한 줄을 놓고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한시 번역이나 한시 소개나 한시 강좌는 아닙니다. 한문을 잘 알도록 이끄는 책이 아니고, 한시 역사를 짚도록 이끄는 책이 아닙니다. 문학이나 공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시를 쓴 옛사람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짓는 삶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가난에 대한 긍정적 저항정신이라 할까 이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나중에 내가 성취하는 바가 더 클 테니까! 그리고 내가 일구는 세계는 돈이나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정신의 세계이니까! (124쪽)


농사일을 할 때나 농촌에 살 때는 비가 가끔 성가시긴 해도 여간 반갑지 않다. 게다가 오래 가물다가 비가 오면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모처럼 일을 쉬게 되니 한가롭기도 하고, 그래서 모자란 잠도 몰아서 낮잠으로 자기도 하고, 모여서 전도 부쳐 먹고 막걸리도 기울이며 한가로운 이야기도 나눈다. (195쪽)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이란 “서울로 가서 살지 않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시냇가에서 살고,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살아요. 누군가는 들판에서 살고, 누군가는 숲에서 살아요. 누군가는 멧골에서 살며, 누군가는 시골에서 살지요.


  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헤아리면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서울을 둘러싼 크고 작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시냇가에 사는 사람”은 열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꼽기도 어려워요. 아마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쯤 꼽을 수 있을까요?



버들가지 잎사귀 무성해질 때면, 멧새, 참새, 온갖 자그마한 텃새들도 날아들어 가지 사이를 들락거리며 짝을 찾고, 아이들은 버들가지에 물오르면 가지를 꺾어 틀어서 호드기를 분다. (213쪽)


봄은 모두의 봄이다. 비도 모두의 비이고, 바람도 모두의 바람이고, 꽃도 모두의 꽃이고, 모두가 봄을 만들고 봄을 꾸미고 봄을 일구는 것이다. (253쪽)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숫자를 생각해 봅니다. 이 숫자를 ‘등수’나 ‘차례’로 살핀다면, 99등이나 100등쯤 되겠지요. 한마디로 꼴등입니다. 이 숫자대로 살핀다면, 99등이나 100등은 아주 가난할 테고, 아주 뒤처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숫자가 아닌 삶하고 살림으로 생각해 봅니다. 등수도 차례도 아닌 ‘삶’하고 ‘살림’으로 살핀다면,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한 삶이나 살림이란 ‘스스로 짓는 하루’라 할 만해요. 이른바 자급자족이지요. 자급자족이니 남한테 손을 벌리지 않고, 돈에 얽매이지 않아요. 주머니에 돈이 없다 하더라도 돈 때문에 살림이 쪼들리지 않습니다. 손수 지어서 거둔 것을 내다팔지 않아서 돈을 벌지 않더라도, 손수 지어서 거둔 것을 손수 가다듬어서 먹으니,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밥을 누리는 하루예요.


  이 얼거리를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시냇가에 물러나 사는 즐거움”을 누리려 할 적에는 바로 나 스스로 찾고 가꾸고 나누고 웃음짓고 노래하는 하루라 할 만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방송을 보아야 즐거움이 아니고, 손수 짓는 하루에서 스스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라 할 만해요. 이리하여 《시냇가에 물러나 사는 즐거움》이 한시 하나를 놓고 펼치는 이야기는 ‘소재 파악’이나 ‘주제 분석’이 아닙니다. 시를 지어서 부른 사람들이 스스로 즐긴 꿈하고 사랑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곳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숨결로 이어져요.



의식주를 모두 자급자족하던 농가에서 삼을 키워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일은 여자의 일 가운데 가장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이었다. 물론 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여 삶는 일까지는 남자가 하지만, 쪄낸 삼베 껍질을 벗겨서 올올이 째고 끝과 끝을 이어서 실로 만들고 베틀에 올려 삼을 짜는 일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다. (313쪽)



  김태완 님은 삼을 심고 가꾸어 거두어 실을 얻는 이야기를 ‘한시 풀이’가 아닌 ‘한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얽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고 겪었으며 늘 하던 살림짓기를 한시 이야기로 버무립니다.


  한시를 읽고 시골 이야기를 읽다가 조용히 책을 덮습니다. 우리 집 마당을 둘러보고 밭자락을 살핍니다. 콩씨랑 옥수수씨랑 당근씨랑 무명씨 곁에서 자라는 여느 풀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뽑습니다. 여느 때에 여느 풀은 여느 나물로 삼지만, 밭에 씨앗을 심으면 이 여느 풀을 아낌없이 뽑아서 밭둑에 두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백 손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는 삶이라 한다면, 백 손가락이 저마다 다른 백 가지 손가락이 되는 길이 더없이 즐겁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다섯손가락을 놓고 보아도 그래요. 엄지는 엄지이면 될 뿐, 새끼일 까닭이 없습니다. 넷째는 넷째일 뿐 셋째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섯 사람이 있으면 다섯 갈래 삶하고 살림이 있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겁지 싶어요.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갈래 삶하고 살림이 있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거울 테고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하고 살림을 배우면서 다 다른 아름다움을 나눌 때에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참말로 우리는 누구나 서로서로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로 하루를 맞이할 적에 즐겁게 웃고 노래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6.5.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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