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처음 피우는데 재미있어!”

[시골노래] 흙놀이 곁에서 모깃불



우리 집 뒤꼍에는 텃밭이 있는데, 이 텃밭 한쪽에는 흙놀이터가 있습니다. 지난겨울에 흙을 그러모아 두 아이가 마음껏 흙을 조물락거리면서 뒤집어쓸 작은 놀이터를 꾸몄습니다.


한겨울에도 손이 시렵다는 말을 안 하면서 참으로 신나게 흙놀이를 했어요. 정 손이 시려우면 장갑을 낀 채 흙놀이를 했고, 겨울에도 흙투성이가 되어 놀았어요.


겨울에는 풀이 모두 시들어서 추위 빼고는 딱히 마음을 쓸 대목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또 이 봄이 무르익으면서 흙놀이터 둘레는 풀밭으로 바뀝니다. 나는 바지런히 풀을 매어 밭으로 바꾸지만, 호미 한 자루를 쥐어 밭으로 바꾸는 겨를보다는 풀이 자라는 겨를이 더 빠릅니다.


겨울에 포근하고 봄에 따스한 고장인 터라, 다른 곳보다 모기도 일찍 깨어납니다. 흙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자꾸 모기에 물려 따갑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모기 때문에 성가셔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다가 생각합니다. ‘그래, 이제 모깃불을 태울 때가 되었네.’


호미로 뒤꼍을 일구면서 캐낸 커다란 돌을 고릅니다. 예전에 구들로 쓰던 판판하고 넓적한 돌을 들어서 아이들 흙놀이터 곁에 둡니다. 마른 풀을 모아서 올리고, 잘 마른 쑥도 뭉쳐서 올립니다. 성냥을 당겨 불을 피웁니다.


마른 풀에 불이 붙어 자작자작 소리를 냅니다. 불길이 솟다가 수그러들고, 검불은 차츰 까맣게 바뀝니다. 연기가 피어나면서 빙그르르 돕니다. 내 몸에도 연기를 쐬고, 아이들 몸에도 연기가 퍼지도록 합니다.


두 아이는 한참 흙을 파면서 놀다가 큰아이가 모깃불 앞으로 다가옵니다. “나도 해 보고 싶어.”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아직 잘 모르는 아이는 날풀을 모깃불에 얹습니다. “얘야, 날풀은 물기가 많아서 잘 안 탄단다.” “그러면?” “가랑잎처럼 잘 마른 풀을 얹어야지.”


어느덧 두 아이는 흙놀이는 뒤로 젖힙니다. 이제 두 아이 모두 “땔감을 찾자! 땔감을 모으자!” 하면서 뒤꼍을 이리저리 달립니다.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아이들은 땔감을 모은다기보다 그냥 뒤꼍을 신나게 달리면서 노는 재미를 누리지 싶습니다.


재미있지? 불 피우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아버지는 도시에서 태어나 살며 마을 한쪽에서 어른들 몰래 불을 피우면서 놀곤 했는데, 그 재미란 이루 말할 수 없었어.


처음에는 불씨에 숨을 마냥 세게 훅 불던 아이들이지만, 이내 고르면서 오래 후우우 불면서 불씨를 살리는 길을 깨닫습니다. 연기가 잘 나서 더 모깃불을 살피지 않고 밭을 매노라니 어느새 아이들이 마른 풀을 잔뜩 얹어서 그만 불길이 사그라듭니다. “아버지! 불이 꺼졌어! 성냥 줘 봐!” “어디 보자. 얘야, 이렇게 잔뜩 얹으면 불씨도 숨이 막혀서 타지 못해. 숨이 드나들 길을 열고서 조금씩 얹어야지.”


가만히 살피니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냥을 쓰지 않고 숨을 찬찬히 불어서 다시 불씨를 살립니다. “앞으로는 뒤꼍이나 마당에서 흙놀이를 할 적에 이렇게 모깃불을 피우자. 신나겠지?” “응! 벼리, 불 처음 피우는데 되게 재미있었어! 다음에도 또 피울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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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2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영상으로 아이들 움직임과 목소리를 들으니 더 새롭고 반갑고 한번 더 보게 되고, 그렇네요.
불놀이, 어릴 때는 참 재미있었는데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니 불이 무서워졌어요.

파란놀 2016-05-20 18:55   좋아요 0 | URL
이런 재미난 놀이는 사진으로뿐 아니라
동영상으로 찍으면 한결 재미나구나 하고 느껴요.
어제도 즐겁게 모깃불 피웠는데
오늘도 해가 기우는 이즈음
또 피워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6년 5월호에 실었습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나무 곁 풀밭에 누우며



  봄이 무르익으면서 따사로운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갔습니다. 자전거로 골짜기를 탄다든지 봉우리를 넘자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지만, 천천히 달려서 천천히 둘러보는 숲길이 언제나 반갑습니다.


  골짝물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골짝물에 몸을 담그며 놀기에도 아직 찹니다. 그렇지만 바위를 타며 숲놀이를 즐깁니다. 가랑잎을 엮은 ‘잎배’를 물줄기에 살며시 올려놓으며 놉니다. 발밑에 밟히는 가랑잎 소리를 들으며 숲을 찬찬히 거닙니다. 이러다가 아주 작고 하얀 꽃을 봅니다. 쓰러진 나무 밑에서 피어난 하얀 꽃입니다. 아주 작아서 먼발치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아버지가 땅바닥에 쪼그려앉아서 뭔가를 들여다본다고 여긴 두 아이가 어느새 옆으로 달라붙습니다. 셋이 함께 쪼그려앉아서 작은 숲꽃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이 꽃 뭐야? 예쁘다.” “예쁘지. 예쁘면 네가 이름을 지어 줘.” “음, 흰꽃? 아니면 별꽃?” 꽃 학자나 풀 학자가 붙인 이름이 있습니다만, 나는 이런 이름을 먼저 알려주기 앞서 아이들 나름대로 꽃이나 풀이나 나무를 마주하면서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른바 ‘학명’은 맨 나중에 알려줍니다.


  골짝마실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 사전을 뒤적입니다. 우리가 숲에서 본 꽃을 놓고 ‘산자고(山茨菰)’라고 하는 이름도 쓴다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되고 시골사람 사이에서 쓰는 이름이 있으리라 느끼기 때문입니다. 먼저 ‘말물옺’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온다는 ‘가채무릇’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북녘에서는 ‘까치무릇’을 학명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세 가지 이름을 찾아보면서 이 가운데 어떤 이름을 아이한테 들려줄는지, 또는 세 가지를 모두 알려주어야 할는지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에서는 꽃이나 풀 한 가지를 놓고 ‘여느 이름(시골 이름)’하고 ‘학문 이름’이 왜 다른가 하는 대목도 밝혀서 들려주어야 하는구나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반다나 시바 님하고 마리나 모르푸르고 님이 함께 글을 쓴 어린이 생태인문책 《씨앗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요》(책속물고기,2016)가 있습니다. 100쪽이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책에 담은 이야기는 매우 알차다고 느껴요.


  “다국적 씨앗 회사들은 씨앗을 서로 나누는 농부들을 골칫거리로 생각했어요. 씨앗을 보관하고 나누는 것이 원래 농부의 일이고 권리인데 말이에요.” (50쪽)


  다국적 씨앗 회사에서는 ‘씨앗 특허’를 내요. 씨앗 회사가 이런 일을 하기 앞서 ‘꽃 특허’가 있어요. 씨앗이든 꽃이든 장사를 크게 벌여서 돈을 많이 거두어들이려고 하면서 특허를 누가 먼저 올리느냐 하는 다툼이 불거진다는데, 이러는 동안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덤터기를 쓰고 말아요.

  나눈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다투지 싶어요. 함께 즐긴다는 마음이 없으니까 싸우는구나 싶어요. 이 봄에 손수 씨앗을 심어서 알뜰히 보살피는 하루를 누리는 살림이 된다면 다툼이나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나아갈 만하리라 생각해요.


  이 봄에 아이들하고 날마다 밭을 일굽니다. 지난 다섯 해 동안 묵힌 밭을 날마다 두 평씩 갈아서 씨앗을 심습니다. 기계로 하면 한나절도 안 걸릴 밭일이지만 한 달 남짓 차근차근 밭일을 합니다. 어찌 보면 밭놀이일 수 있고 ‘소꿉밭’일 수 있습니다. 한나절 만에 다 갈아서 씨앗을 심고 끝내는 밭일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들이 늘 밭을 살피며 흙을 만지며 함께 놀기를 바라면서 소꿉밭을 짓습니다.


  소꿉밭을 다 지은 뒤에는 다른 살림을 만져요. 보드랍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나물을 훑어서 밑반찬을 마련하고, 겨우내 미룬 헛간 치우기를 합니다. 서재도서관 책꽂이를 손질하고, 이불이랑 봄옷을 빨며 방을 새로 꾸밉니다. 그리고 찔레싹을 한가득 훑어서 찔레무침을 합니다. 한 소쿠리는 날찔레를 고추장으로 무칩니다. 한 소쿠리는 데쳐서 된장으로 무칩니다. 소복히 담은 찔레무침 한 접시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갑니다. 마침 낮밥을 자시던 할머니들이 찔레무침 접시를 보시더니 “두릅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에요. 드셔 보셔요.” “이게 뭔가?” “찔레요.”


  빈 접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조영권 님이 쓴 《참 쉬운 곤충 이야기》(철수와영희,2016)를 읽어 봅니다. 이 봄에 돋아서 솜털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흰민들레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노린재가 민들레씨를 붙안으면서 놀곤 합니다. 노린재는 짝짓기를 할 적에 솜털씨앗이 폭신해서 좋아할까요.


  “물속 곤충들은 물에서 썩어 가는 부식질과 유기물을 먹고 살아. 만일 이들이 없다면 물이 부패하고 탁해지는 것을 막기 어려워.” (147쪽)


  밭에서 쉽게 만나는 노린재가 어떤 노린재인가를 알아보려고, 또 아직 이름을 모르는 수많은 풀벌레를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벌레 이야기책을 자주 들춥니다.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도랑물에서는 이 물에서 사는 작은 벌레가 있기에 물이 맑다고 합니다. 밭이나 숲이나 들에서도 이곳에서 사는 수없이 많은 작은 벌레가 있기에 기름진 흙이 되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까무잡잡한 멋진 흙이 되리라 느낍니다.


  다섯 해를 고이 묵힌 밭을 일구다 보면 참말로 수많은 벌레를 만나요. 이 시골집에 처음 깃들 적에는 쓰레기더미였던 자리가 어느새 싱그러운 흙으로 바뀌었어요. 삽날조차 안 들어가던 붉은닥세리도 삽날이 잘 들어가는 흙이 되었습니다. 나는 쓰레기를 걷어냈을 뿐이고, 후박잎에 동백꽃에 갓줄기를 이 땅에 얹어서 말렸어요. 흙이 흙답게 되도록 애쓴 일은 모두 풀벌레하고 지렁이가 해 주었어요.


  뒤꼍에서 감나무 뿌리를 감싸던 석류나무를 두 시간 즈음 삽질을 해서 겨우 떼놓아 옮겨서 심었습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나무 둘레에서 놀다가, 감나무를 타다가, 감나무 옆 풀밭에 드러눕습니다. 나무 곁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어떠니? 풀밭이, 흙이, 나무가, 구름이, 하늘이, 바람이 너한테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니? 2016.4.1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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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털털 막걸리 - 우리 발효 음료 막걸리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 1
김용안 글, 홍선주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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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56



울릉섬에는 ‘후박막걸리’일까 ‘호박막걸리’일까?

― 시금털털 막걸리

 김용안 글

 홍선주 그림

 미래엔 아이세움 펴냄, 2016.1.30. 1만 원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 가운데 하나로 나온 《시금털털 막걸리》(미래엔 아이세움,2016)를 가만히 읽어 봅니다. 아이들한테 웬 술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들려주느냐 하고 물을 만할 테지만, ‘교과서 전통문화 그림책’이라는 이름처럼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닌 ‘한겨레가 예부터 가까이에서 즐기던’ 살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요. 흙을 일구어 나락을 거둔 다음 겨를 벗긴 뒤에 쌀을 얻어서 밥을 짓듯이 막걸리도 함께 빚어서, 고된 일을 하고 난 몸을 달랜다든지 손님한테 드린다든지 했어요.



누룩은 따뜻한 방을 좋아해. 누룩은 방에서 15일 동안 푹 쉴 거야. 그때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곰팡이, 효모가 누룩에 붙어. 그래서 누룩에 하얗고 노란 꽃을 피우지. (9쪽)



  막걸리는 여러 가지 ‘발효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된장이나 김치처럼 막걸리도 잘 삭혀서 먹는 고마운 밥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늘날에는 집에서 누룩을 띄워서 막걸리를 손수 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손수 짓는 밥살림을 헤아리면서 아이랑 함께 ‘집술’을 담가 볼 만하리라 생각해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하고 집에서 막걸리나 된장을 빚을 수 있다면, 이러한 ‘집 막걸리’하고 ‘집 된장’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어요. 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아이가 ‘내가 손수 빚은 막걸리예요’ 하면서 선물로 드릴 수 있을 테고요.



막걸리를 만들려면 먼저 ‘고두밥’을 지어야 하거든. 고두밥은 쌀을 잘 불려서 찜통이나 시루에 찐 거야. 찜통에서 김이 폴폴 나고 있어. 항아리는 볏짚을 태운 연기를 쐬어서 소독을 해 둬. 그리고 술밥을 항아리에 담아 두면 돼. 며칠이 지나면 막걸리가 발효되기 시작해. 발효되는 소리가 들리니? 부글부글, 뽀글뽀글 화산이 끓는 소리 같아. (10쪽)



  그림책 《시금털털 막걸리》를 펼치면, 먹걸리를 놓고 깊거나 넓게 살피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막걸리가 어느 때부터 비롯했는가를 헤아리고, 막걸리를 언제 어떻게 즐겼으며, 막걸리를 어떻게 빚거나 담그는가 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막걸리를 집집마다 빚던 살림이 갑자기 왜 끊어졌는가를 밝히며, 아이들이 저마다 손수 짓는 살림을 익히도록 돕는 이야기를 알려주어요.


  그림책을 아이랑 함께 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빈 독이 셋 있는데, 잘 말린 쑥을 태워서 독을 소독하고는, 이 독에다가 ‘우리 집 막걸리’를 한번 빚어 볼까 하고요. 올해에는 아이들하고 ‘집 막걸리’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더군다나 우리 집에는 마당에 우람한 후박나무가 있어요. ‘후박막걸리’를 담가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매실막걸리’라든지 ‘모과막걸리’를 담가 볼 만해요. 우리 집에는 매화나무하고 모과나무가 있거든요. 늦가을이나 겨울에 뒤꼍 유자나무에서 유자를 따면 ‘유자막걸리’를 담글 수도 있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절, 일제는 집에서 술 빚는 것을 막고 강제로 누룩 만드는 곳을 없앴어. 그래서 우리 술과 누룩은 거의 사라졌어. 23쪽)



  그런데 《시금털털 막걸리》에서는 “막걸리는 이름 그대로 ‘막 거른 술’이야. 네가 무슨 일을 막 한다면 그건 대충 한다는 뜻일 거야(6쪽).” 하고 이야기해요. 이 대목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막 거른 술”은 “대충 거른 술”을 가리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막’이라는 한국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 “바로 이때”나 “갓”을 가리킵니다. 둘째, “함부로”나 “마구”를 가리키지요. 이 두 가지 뜻 가운데 ‘막걸리’를 으레 둘째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 막걸리를 빚거나 담는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마구 걸러서 담근다”거나 “아무렇게나 걸러서 빚는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품이나 겨를이 무척 많이 오래 들거든요. 누룩을 띄운다든지 고두밥을 지을 적에 ‘함부로’ 하지 않아요. 체나 천에 거를 적에도 ‘마구잡이’로 거르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막국수’를 ‘마구’로 풀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거친 메밀가루”를 쓴대서 ‘마구’로 여길 수도 있을 만하지만, 국수를 손수 빚어서 삶으려면 이때에도 손이며 품이며 겨를이 참으로 많이 들지요. 예부터 우리가 먹거나 입거나 짓는 살림 가운데 ‘마구(막)’ 하는 일은 없다고 느껴요. 모두 오래 손을 쓰고, 깊은 품을 들이며, 참으로 긴 겨를을 기다리고 지켜보면서 짓는 살림입니다.


  그러니까 막걸리라고 할 적에는 “담그고 나서 막 마실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갓 걸러서 담근 맛으로 즐기는 술”을 ‘막걸리’라고 할 만하지요. 오래도록 술독에 두어서 아주 깊이 우러나도록 하고 난 뒤에 즐기는 술이 아니라, “담가서 바로 마실” 수 있는 술이 막걸리이거든요.


  그리고 《시금털털 막걸리》를 읽다 보니, “울릉도에서 많이 나는 것은? 맞아, 호박이야. 울릉도에서는 호박을 넣어 노란 호박 막걸리를 만들었어(26쪽).” 같은 대목이 나와요. 이 그림책을 쓰신 분은 ‘울릉도 호박엿’하고 ‘울릉도 호박막걸리’를 말하려 하셨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잘못된 얘기예요. 무엇이 잘못인가 하면, 울릉도에서는 처음에 ‘호박엿·호박막걸리’를 빚지 않았습니다. 섬에서 빚은 엿하고 막걸리가 뭍에 잘못 알려져서 그만 ‘호박’으로 잘못 퍼졌어요.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에서도 비슷한 엿이나 막걸리를 예부터 빚었다고 해요. 어떤 엿이나 막걸리인가 하면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로 빚는 엿이나 막걸리입니다. 후박나무는 소금기가 묻은 바닷바람이 부는 따스한 고장에서만 자라요. 이 후박나무에서 얻은 껍질하고 열매를 섞어서 빚는 엿이나 막걸리는 뱃사람이 뱃멀미를 하지 않도록 하는 약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후박엿·후박막걸리’이지요.


  후박나무는 전남·경남 바닷가라든지 울릉도나 가거도 같은 섬에서 볼 수 있는 나무예요. 이러다 보니 바다와 멀리 떨어진 뭍에서는 ‘후박나무’를 모르기 일쑤이고, ‘후박엿’을 ‘호박엿’으로 잘못 말했다고 해요. 요새는 울릉도에서 아예 호박으로 엿이나 막걸리를 빚기도 한다지만(사람들이 워낙 잘못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박나무를 지키려는 뜻으로 웬만해서는 후박나무 껍질을 안 벗기려 한답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빚은 엿하고 막걸리는 ‘후박엿·후박막걸리’예요. 어린이한테 한겨레 옛살림을 들려주는 그림책인 《시금털털 막걸리》인 만큼, ‘막’이라는 낱말하고 ‘후박막걸리’라는 대목은 바로잡아 주어야지 싶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막걸리나 술은 ‘빚다’나 ‘담그다’라는 낱말로 나타냅니다. 막걸리나 술은 ‘만들다’라는 낱말로 나타내지 않아요. 이 그림책에서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막걸리를 만든다”처럼 쓰는데, 이 말투도 “막걸리를 빚는다”나 “막걸리를 담근다”로 고쳐 주어야지 싶어요. 2016.5.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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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342. 2016.4.22. 차 한 잔에


  차 한 모금을 마시면서 그림책을 넘긴다. 차 두 모금을 넘기면서 그림책을 펼친다. 차 세 모금을 즐기면서 그림책을 본다. 맛있지? 재미있지? 이제 마룻바닥에 앉아서 햇빛을 받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철이로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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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플라시보다 -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마음 활용법
조 디스펜자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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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4



할머니는 어떻게 ‘약손’이 될 수 있는가

― 당신이 플라시보다

 조 디스펜자 글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2016.4.20. 23000원



  조 디스펜자 님이 쓴 《당신이 플라시보다》(샨티,2016)는 ‘플라시보’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으로 꼼꼼하게 따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을 쓴 조 디스펜자 님은 뇌·신경학·세포학 과학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 디스펜자 님은 여느 과학자하고는 좀 다르지 싶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이녁이 겪은 일이 달라요.


  이녁은 어떤 일을 겪었는가 하면, 1986년 어느 날이라고 하는데, 철인 3종 경기를 뛰다가 그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자전거 사고를 치렀다고 해요. 헤엄치기를 끝내고 자전거를 달리는데, 그만 뒤에서 자동차가 달려들어 이녁을 들이받았고, 들이받은 데에서 그치지 않고 18미터나 질질 끌고 가다가 자동차가 멈추었다고 해요.


  이 자전거 사고로 조 디스펜자 님은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척추뼈가 부서졌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손을 쓰기 어려웠다고 해요. 뼛속에 어떤 물질을 집어넣어서 굳히거나 버티도록 해야 한다고 했대요. 그러지 않으면 척추뼈가 와르르 무너져서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때에 조 디스펜자 님은 병원 치료나 수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침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그림 그리기’를 했다고 합니다. ‘부서진 척추뼈’가 아닌 ‘튼튼한 몸’을 마음속으로 그렸다는데(그렇다고 이 ‘마음속으로 그림 그리기’가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답니다. 침대에 누운 채 꼼짝하지도 못 했으니 늘 이 일만 하면서 차츰 잘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달이 지날 즈음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해요. 이러고 얼마 뒤에는 다시 예전처럼 일할 수 있었고, 끔찍한 자전거 사고를 치른 지 석 달 뒤에는 ‘다시 자전거를 타는 몸’이 되었는데, 부서진 척추뼈가 제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참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요.



나는 하루에 두 번 각각 두 시간씩 내면으로 들어가 내가 의도한 결과의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완전히 치유된 척추 그림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고 또 산만한지도 알게 되었다. (24쪽)


나에게는 내 안의 지성과 접촉하고 그것을 통해서 내 마음으로 내 몸을 치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27쪽)



  ‘플라시보(placebo)’는 ‘위약 효과’라고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약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할머니 손은 약손”이나 “어머니 손은 약손” 같은 말을 해요. 약을 쓰지 않아도 할머니나 어머니가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살살 어루만지면 어느새 아픔이 가신다고 해서 ‘약손’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치거나 아픈 몸’을 낫게 할 적에는 약만 써서는 보람을 얻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병원 시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치거나 아픈 사람 스스로 ‘생채기를 씻고 일어서려는 마음’이 없다면 다치거나 아픈 데에 안 낫는다고 하거든요.


  《당신이 플라시보다》를 쓴 뇌 과학자인 조 디스펜자 님은 이녁 스스로 ‘끔찍한 자전거 사고’를 겪어야 했을 적에, 이 사고를 수술이 아닌 ‘마음 다스리기’로 나은 일을 겪은 뒤, 뇌 과학·신경학·세포학을 새롭게 바라보았다고 하지요. 이녁이 과학자였기에 ‘어떻게 마음으로 꿈을 그리는 것’만으로 이녁 몸을 새롭게 고칠 수 있었는가를 과학 이론으로 풀어내려고 했답니다. 여기에 양자역학 원리를 받아들여서 ‘아픈 사람이 아픔을 스스로 씻는 길을 과학 원리를 바탕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려고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매일 자동 인형처럼 살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들은 것이다. 같은 생각이 같은 선택을 이끈다. 같은 선택이 같은 행동을 이끈다. 같은 행동이 같은 경험을 창조한다. (116쪽)


새로운 선택은 또 새로운 행동을 부른다.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경험을 부른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감정을 창조하고, 새로운 감정과 느낌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당신을 고취한다. 바로 그때 ‘진화’가 이루어진다. (120쪽)



  조 디스펜자 님은 《당신이 플라시보다》라는 책을 빌어서 우리가 ‘생각·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늘 똑같은 생각’인 채 ‘늘 똑같은 하루’를 보내지 않느냐 하고 묻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까닭은 ‘새로운 생각’을 스스로 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물어요.


  이 물음을 찬찬히 받아들이면서 참말로 내 생각과 마음을 새삼스레 되짚어 봅니다. 기쁨이란 먼 데에 있지 않겠지요. 나 스스로 기쁘게 생각해야 기쁨이고, 나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으면 기쁨이 아닐 테니까요.


  이를테면,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면서 소꿉밥을 흙으로 지어서 나한테 내미는데, 빙글빙글 웃으며 두 손으로 ‘흙밥(소꿉밥)’을 내미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이들하고 즐겁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웃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집안에 흙덩이를 들고 들어오다니!’ 하고 나무란다면, 나한테는 기쁨도 웃음도 샘솟지 못할 테고, 아이들한테도 기쁨이나 웃음이 아니라 ‘서운함’을 심고 말 테지요.



우리는 정말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 (154쪽)


당신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곳에 당신의 에너지가 놓인다.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식이나 마음을 둔다면 당신은 그 가능성에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278쪽)



  우리는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겁거나 기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면서 지낼 때에 즐겁거나 기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힘들다’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뭘 해도 힘들어요. 밥을 짓든 잠을 자든 그저 힘들어요. 이와 달리 ‘신난다’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뭘 해도 신나요. 밭일을 하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다니든 신나요.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는가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나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면 내 삶은 엉망이 된다고 할까요. 내가 스스로 기쁜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일을 겪더라도 스스로 기쁨이지만, 내가 스스로 안 기쁜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일을 마주하더라도 안 기뻐요. 어려운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지요. 참으로 쉬운 지식이나 이론이지요. 그런데 이 쉬운 지식이나 이론을 ‘쉽기 때문에 너무 쉽게 잊고’ 지나치는구나 싶습니다.



완전한 치유는 양자장 속에 미지의 가능성으로서 이미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고 깨닫고 구체화시킬 때까지 말이다. (338쪽)


감정과 생각이 급기야 습관적 혹은 자동적이 되고, 그 시점에서 태도가 형성된다. 태도들이 모여 믿음이 되고, 관련된 믿음들이 모여 인식이 된다. 이런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이 형성된다. (400쪽)



  남이 나한테 뭘 해 주기 때문에 기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똑같은 일을 놓고도 이때에는 기뻐도 저때에는 안 기쁘구나 하고 느껴요.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기쁨일 적에는 작은 들꽃 한 송이를 보더라도 웃지만, 내 마음이 기쁨이 아닐 적에는 어마어마한 장미꽃다발을 받아도 웃지 않아요. 내 마음이 기쁨일 적에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노래를 부르지만, 내 마음이 기쁨이 아닐 적에는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도 ‘아직 돈이 모자라!’ 하는 생각에 젖어 조금도 노래를 못 부르고 안절부절하기 마련이지 싶어요.


  《당신이 플라시보다》라는 책은 우리가 스스로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꿈을 스스로 그려서 담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대단한 꿈이든 수수한 꿈이든, 우리가 스스로 마음속에 ‘꿈을 그려야 꿈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꿈을 안 그리는 사람은 이룰 꿈이 없어서 꿈을 못 이룬다’는 얼거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꿈을 그리기에 언제나 그 꿈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걷는 셈이고, ‘내가 그 꿈을 어떻게 이뤄? 말도 안 되지!’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심으면, 그만 나는 내 꿈을 그리지 못하면서 아무 꿈도 못 이루는 삶, 늘 똑같은 몸짓만 되풀이하는 나날이 되는 셈이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할머니 약손’처럼 따사로운 사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고, 내 몸을 고요히 가꾸는 길로, 언제나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예부터 할머니는 아이를 따사로이 보살피려는 사랑을 마음으로 한가득 품었기 때문에 언제나 상냥하고 넉넉한 ‘약손’이 되어 우리를 보듬어 주었으리라 느껴요. 2016.5.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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