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마음 담는 글 (2016.3.27.)



  산들보라야, 너는 아니? 네가 마음을 기울여서 손에 힘을 주고 차근차근 하나씩 그리다 보면 어느새 글씨가 방긋 웃으면서 너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아니? 빨리 써야 하지 않아. 밥을 빨리 먹어야 하지 않거든. 숨을 빨리 쉬어야 하지도 않아. 빨리 쓰기에 멋지거나 훌륭한 글이나 글씨가 아니지. 언제나 네 마음을 고이 담아서 쓸 때에 예쁘며 사랑스러운 글이나 글씨가 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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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110. 작대기로 들어 (2016.5.17.)


  작대기로 들어 본다. 나무 작대기를 쥐면서 마당을 몇 바퀴 돌다가 작대기 끝에 살그마니 걸쳐 본다. 나무가 우거지는 곁에서, 오월꽃이 피는 둘레에서, 저녁바람이 불어 포근하게 감기는 이곳에서, 홀가분하게 놀이를 짓는다. 우리 놀이를 나무와 꽃과 풀과 바람과 구름과 해가 나란히 지켜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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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살이 - 느리고 고유하게 바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법
김준 지음 / 가지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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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01



바닷빛을 읽으며 물고기를 알던 섬살림

― 섬: 살이

 김준 글·사진

 도서출판 가지 펴냄, 2016.4.22. 16000원



  광주전남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준 님은 어느덧 스물여섯 해째 ‘섬 연구’ 외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왜?》나 《바다 맛 기행》이나 《한국 어촌사회학》이나 《섬 문화 답사기》나 《김준의 갯벌 이야기》 같은 책을 쓰셨는데, 《섬: 살이》(가지,2016)라고 하는 책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섬을 연구한 발자취를 따라서 물고기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고, 물고기와 바닷것을 올리는 밥상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납니다. 섬에 보금자리를 틀어서 이룬 살림살이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고, 섬과 뭍을 오가는 길목에 드리운 갯벌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나요. 그리고 섬이라는 터전에서 어떤 삶이 예부터 고이 흘렀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러모아서 《섬: 살이》가 태어나요.



할머니들이 아직도 걸을 수 있는 것은 바구니에 채워야 할 굴이 있기 때문이다. 팔순 할머니가 겨울에도 기어이 조새를 쥐고 갯벌로 걸어가는 것은 거기에 굴밭이 있기 때문이다. (43쪽)



  《섬: 살이》라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김준 님은 ‘서울살이’나 ‘시골살이’나 ‘마을살이’처럼 ‘섬살이’를 쓰지 않고 ‘섬: 살이’처럼 느슨하면서 길게 말소리를 잇습니다. 그냥 살면서 드러나는 살림살이가 아니라, 오래도록 차근차근 다스리면서 천천히 피어난 물살이와 바닷살이를 들려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가파도, 마라도, 우도처럼 언덕도 없고 피할 곳이 전혀 없는 섬에서는 이중벽을 쌓기도 했다. 안과 밖에 이중으로 돌담을 쌓고 가운데 틈에 잡석을 넣었다. 그렇게 담을 쌓고 나무를 심어 바람을 어느 정도 막고 나서야 농사를 짓고 살림집도 지었다. (73쪽)



  바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나 돌로 담을 쌓습니다. 바람이 그리 많지 않다면 가볍게 울타리를 하겠지만요. 제주섬은 돌담이 높아 거의 지붕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바닷바람도 막아야 하지만, 때로는 물결이 넘치기도 하니, 이도 함께 막아야 합니다.


  돌담을 쌓은 적이 있는 분이라면, 묵직한 돌을 날라서 하나하나 쌓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를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묵직한 돌을 나를 적에는 이 무거운 돌을 꽤 날랐구나 싶지만, 정작 담을 쌓으려고 하다 보면 얼마 안 되어요. 자주 수없이 자꾸자꾸 나르고 나른 끝에 비로소 돌담을 쌓을 수 있습니다.


  담으로 쌓는 돌은 멀리서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땅을 일구면서 땅에서 캐기도 합니다. 집터를 다지면서, 밭을 일구면서, 섬에서 논을 지으려 하면서 그야말로 수많은 돌을 자꾸자꾸 캐내고, 이 돌을 바탕으로 돌담을 쌓지요.



감태는 민둘이 들어오는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 잘 자라기에 옛날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귀하다. 과거에는 김 양식장에서 파래, 매생이와 함께 잡태로 취급되었다. 밭농사로 말하면 잡초에 해당한 것이다. (134쪽)



  숲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나뭇가지나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만 보아도 숲바람을 알거나 읽을 수 있습니다.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흙빛과 흙내만 살펴도 날이나 날씨를 알거나 읽을 뿐 아니라, 언제 씨앗을 심어서 거두느냐도 알 수 있어요.


  하늘을 바라보기에 하늘을 읽으면서 하늘을 알고, 별을 바라보기에 별을 읽으면서 별을 알아요. 다만, 그냥 바라보기만 한대서 하늘이나 별을 쉽게 알기는 어려울 테지요. 두고두고 바라볼 뿐 아니라 온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깊이 쏟아서 바라보다가, 어느새 그윽한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섬사람은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바닷물을 읽어요. 바닷빛을 읽고, 바닷내(바다 내음)를 읽어요. 바다를 끼고 살면서 바다를 읽어서 알지 못한다면 바닷마을이나 바닷집을 이룰 수 없을 테니까요. 《섬: 살이》를 쓴 김준 님은 지난 스물여섯 해에 걸쳐서 ‘섬사람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섬사람과 닮으면서 섬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되’어서 섬을 바라봅니다.


  섬을 바라보면서 찬찬히 마음을 기울입니다. 섬을 바라보며 찬찬히 기울이던 마음은 이윽고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이 사랑은 시나브로 따사로운 눈길이 되고, 살가운 손길이 됩니다.



섬 노인의 기억과 경험은 예사롭지 않다.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다. 별과 달을 보고 며칠 날씨는 귀신같이 맞췄다. 바다 색깔만 보고 조기가 오는 길을 알았다. 어디 기뿐인가. 배를 짓는 일을 제외하면 고기잡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건 스스로 만들어 썼다. (18쪽)



  처음에는 ‘바닷마을 연구자로 있으면서 논문을 썼다’고 할 테지만, 이제는 ‘바닷사람이나 섬사람과 같은 자리에 서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한 김준 님이 펼치는 《섬: 살이》이지 싶어요. 김준 님은 섬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마다 이녁 한 사람이 훌륭하고 놀라운 ‘박물관 사람’이라고 깨닫거든요.


  건물로 서지 않으나, 섬에 우뚝 서서 살림을 지은 ‘박물관 사람’입니다. 건물로 우람하게 있지 않으나, 섬에서 조촐하고 다부지게 삶을 지은 ‘박물관 사람’이에요.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슴속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모두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스스로 두 손으로 지은 삶이요 살림이며 사랑이에요.



돔 종류가 다 그렇듯 뼈가 억세서 잘 발라먹어야 한다. 이 때문에 고흥 녹동에서는 ‘뻣센고기’라 한다. 여수에서는 군평선이를 꽃돔이라고도 부르고, 목포에서는 쌕쌕이, 통영엥서는 꾸돔이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딱돔(닭돔), 딱때기, 챈빗, 얼게빗등어리라는 이름도 있다. (226쪽)


소, 돼지, 닭. 인간에게 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닭은 학용품을 사야 하는 아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연필이 필요하면 달걀 한 개, 노트가 필요하면 달걀 두 개, 그리고 남은 알은 골망태에 모아두면 예쁜 병아리로 변신했다. (279쪽)



  섬에 바람이 붑니다. 때로는 관광바람이나 개발바람이 붑니다. 섬에 바람이 붑니다. 때로는 ‘모든 아이와 젊은이는 도시로 보내자’는 바람이 붑니다. 아이도 젊은이도 거의 도시로만 쏠리는 오늘날 바람이 붑니다. 그렇지만 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예나 이제나 섬에 고요히 서서 섬살이를 ‘섬: 살이’로 꾸립니다.


  갯것을 거두고, 바닷것을 거둡니다. 갯살림도 바닷살림도 모두 정갈하게 다스립니다. 바닷빛을 읽으며 물고기를 알던 섬살림이란, 바로 이 섬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키우고 가르치고 얼크러지던 작으면서 예쁜 살림이지 싶습니다. 이 작으면서 예쁜 살림살이 이야기가 도톰한 책에서 새롭게 피어납니다. 2016.5.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가지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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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장려금과 빈곤층,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이 올해에 근로장려금을 처음으로 받는다면서, 이 얘기를 이녁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합니다. 쉰다섯 살 나이에 처음으로 받는 근로장려금이라 조금 놀라셨지 싶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페이스북에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라는 말을 적으십니다.


  최영미 시인은 ‘아는 교수’들한테 시간강의를 달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아는 교수’들은 최영미 시인한테 ‘학위’를 물었다지요. ‘국문과 석사학위’가 없이는 ‘대학교 시간강의’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해마다 근로장려금을 받으면서 지냅니다. 올해에도 근로장려금을 받을 텐데, 나는 나를 ‘빈곤층’이라고 여긴다거나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아직 우리 살림살이에서 ‘돈’이 많지 않다뿐입니다. 돈은 많지 않아도 밭을 일구고,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타며, 시골마을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리면서 하루하루 재미를 누립니다.


  나는 고등학교만 마친 가방끈인 터라, ‘학위’는커녕 ‘졸업장’도 딱히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나를 불러서 한두 시간쯤 이야기(강의)를 들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 전화가 가끔 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최영미 시인은 시집을 수십만 권 팔았다고 하는데 목돈이나 살림돈은 얼마 안 남으신 듯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돈이라고 하는 숫자’는 덧없거나 부질없을는지 몰라요. 최영미 시인 같은 사람조차 근로장려금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리 이름이 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근로장려금을 일찌감치 받았을 테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다른 기금을 받기도 할 테지요. 최영미 시인은 적어도 ‘기초생활수급자’이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돈 걱정을 안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척 아름다운 사회요 복지이자 문화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뿐 아니라,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도 돈 근심을 안 하고 흙을 만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도시 자영업자나 작가는 이럭저럭 ‘근로소득’이 잡힐 테지만,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한테는 ‘근로소득’이 잡히기란 매우 어려워요.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빕니다. 군대나 전쟁무기는 차츰 사라질 수 있기를 빕니다. 전쟁무기에 나랏돈을 들이지 말고, 사람들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데에 나랏돈을 들일 수 있기를 빕니다. 2016.5.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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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19 2016-05-19 17:23   좋아요 0 | URL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이 글을 보고 하루 빨리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자신에 꿈을 키울수 있도록 복지,지원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갑니다.

파란놀 2016-05-19 17:20   좋아요 2 | URL
말씀처럼 참다운 복지정책이 서서
가난도 다른 고단함도 없이
누구나 즐겁게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땅과 바다 -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
칼 슈미트 지음, 김남시 옮김 / 꾸리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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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0



신대륙을 ‘빈 곳’으로 보며 ‘땅 취득’을 하려던 문명

― 땅과 바다

 칼 슈미트 글

 김남시 옮김

 꾸리에 펴냄, 2016.4.30. 17000원



  독일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 님은 1942년에 《땅과 대지》라는 책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말로 나옵니다. 칼 슈미트 님은 이 책에서 “우리는 땅의 자식들일까, 아니면 대양의 자식들일까(12쪽)?” 하고 묻는데, 나치당에 들어가서 일하기도 했던 이녁은 ‘독일이 영국처럼 드넓은 바다를 누비면서 식민지를 늘리지 못한 일’을 아쉽게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계의 역사는 땅 취득의 역사야. 땅의 취득이 있을 때마다 그들이 서로 협약을 맺기만 했던 것은 아니야. 그들은 매우 자주 서로 대립했고 종종 피를 부르는 형제전쟁을 치르기도 했어. (91∼92쪽)


비행기들이 바다와 대륙 위의 영공을 횡단할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송신소에서 나오는 무선전파들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로 대기공간을 통과해 지구 전체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제 새로운 제3의 차원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세 번째 원소, 즉 인간실존의 새로운 원소 영역인 공기를 정복했다고 결론 짓고 싶을 거야. (128쪽)



  군대를 앞세운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를 삼는 일을 “땅 취득”이라고 바라본 일은 오직 칼 슈미트 한 사람뿐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땅과 대지》를 읽다 보면, ‘식민지가 된 나라’는 ‘유럽한테 식민지가 된 때부터 비로소 역사가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바다를 가로질러서 유럽에서 북미 중미 남미로 쳐들어갔기에, 이때부터 북·중·남미는 ‘새로운 역사’가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럽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이 같은 이야기는 ‘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북·중·남미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나라’로서 바다만 끼고 살다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이웃나라 일본’은 한국으로 쳐들어오면서 ‘대륙(땅)으로 나아간다’고 외쳤어요. 일본이라는 나라한테도 한국이라는 식민지는 “땅 취득”이었을 뿐일 테고, 그들 나라가 ‘새로운 역사’를 펼치는 일만 헤아렸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독일이 ‘바다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하늘 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모습은 새로운 ‘정복’으로 느끼면서 무척 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정복’한 독일은 어마어마한 비행기를 이끌고 이웃 여러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렸어요. 하늘을 아름답게 날면서 새로운 바람을 쐬는 몸짓이 아니라, 끝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땅 취득”을 하려는 ‘형제전쟁’에 매달렸습니다.



아가미를 통해 호흡하는 거대한 육지동물을 말이야! 북극에서 남극까지 세계의 바다를 헤엄쳐 횡단하는 가장 크고, 가장 강하며, 가장 힘이 센 바다동물이 바다의 서식 조건에서 폐로 숨을 쉬고, 포유류로서 살아 있는 새끼들을 낳는다는 것! 양서류도 아닌 온전한 포유류이면서도 동시에 그 생명의 원소에 의하면 물고기라는 것이지. (37쪽)


고래물고기가 없었더라면 어부들은 언제까지고 해안에만 들붙어 있었을 거야. 고래가 그들을 유혹해 해양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해안에서 해방시켰던 것이지. (42쪽)



  《땅과 대지》를 쓴 칼 슈미트 님은 이 지구라는 별에서 ‘뭍(땅)’은 좁고 ‘바다(물)’는 훨씬 넓은데, 사람들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만 바라볼 뿐,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는 볼 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만 겨우 붙들린 채 드넓은 곳을 바라볼 줄 몰랐다고 이야기해요.


  고래잡이가 나타난 일이란, 사람들이 고래를 잡으려고 먼 바다로 나간 일이란, 비로소 ‘좁은 땅’에서 스스로 해방되어 넓은 새터(신세계)를 깨달은 일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칼 슈미트 님이 이야기하는 ‘넓은 새터’는 “땅 취득”처럼 “바다 취득”을 할 때에만 뜻이 있는 셈인가 싶어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서로 이웃이 되어 아름답게 지내는 살림이 아니라, 이웃이 조용히 일구면서 지내는 땅을 가로채거나 빼앗을 적에 비로소 ‘넓은 새터’가 나타나면서 ‘새 역사’를 쓴다고 할 만한지 아리송하기도 해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사람들은 비어 있는 공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어. 그 이전에 일부 철학자들이 ‘비어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있어도, 비어 있는 공간을 떠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일이란다. (83쪽)



  ‘식민지 개척’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유럽 사람들한테 유럽 아닌 곳은 ‘빈 곳(빈 공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유럽 사람들한테는 유럽 역사와 문화만 있을 뿐이고, 유럽 사람들한테 빈 곳이던 아시아나 북·중·남미는 그저 ‘빈 곳’이면서 ‘아무 역사가 없는 곳’이 될 만합니다.


  북미를 식민지로 삼아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룬 유럽 사람들한테 ‘미국사’란 북미 토박이를 밀어내어 “땅 취득”을 한 역사입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그 터에서 조용히 살아온 사람들이 지은 살림을 ‘미국사’로 여기지 않겠지요.


  우리가 말하는 ‘빈 곳’은 참말로 비었다고 할 만한가 적잖이 궁금합니다. 빈 땅이나 빈 밭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수많은 풀과 나무가 자라고 수많은 벌레와 작은 짐승이 깃들어 삽니다. ‘빈 곳’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비지 않고 수많은 다른 숨결이 있어요.


  유럽 문명이나 문화는 ‘유럽 아닌 곳’을 ‘빈 곳’으로 바라보면서, 유럽 아닌 곳을 하나씩 “땅 취득·바다 취득·하늘 취득”이라는 얼거리로 차지하려고 하면서 차츰 거듭났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이나 문화는 이렇게 발돋움했다고 할 수도 있을 테고요. 다만,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 없다면, 바로 저곳은 텅 빈 곳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숨결(사람)’이 살림을 짓는 삶터인 줄 바라보려는 눈길이 없다면, 이는 제국주의나 나치나 군국주의처럼 전쟁무기로 이웃을 짓밟고 마는 일이 되지 않으랴 싶어요.


  문명에 앞서 평화를 생각하고, 문화에 앞서 살림을 생각하며, 식민지(땅 취득)에 앞서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5.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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