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315] 많이



  많이 읽었으니 또 많이 읽네

  자주 해 봤으니 자꾸 더 해

  그러면 언제쯤 새길을 갈까



  잘 하는 일이 있기에 언제나 이 잘 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잘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 하지 못하는 일은 아예 안 한다거나 생각을 못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나는 밥을 못해”라든지 “나는 집안일을 할 줄 몰라”라고 하면서 밥짓기나 집안일에는 등을 돌려 버릴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여태 잘 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 새로 해 볼 생각이야” 같은 마음이 되어 처음으로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어요. 익숙한 대로 똑같은 일만 하는 길을 걸을 수 있고, 낯설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넋/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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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지꽃

 


한겨울 추위가 누그러지며

동백꽃이 필 무렵


마당 한쪽이랑 밭자락에

꼬물꼬물 자그맣게

푸른 떡잎 내밀며

처음 깨어나더니


겨울 저물고 햇볕 고운

봄날에 봄바람 먹고

흐드러지는

보랏빛 작은 아이

봄까지꽃.


봄이 저물고

땡볕으로 바뀔 무렵

감쪽같이 사라지는

너는


그야말로 봄까지만

나랑 동무하며 노는구나.



2015.12.25.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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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감꽃, 작은 감꽃



  찔레꽃내를 맡으려고 찔레나무 곁에 서는데, 찔레꽃내하고 다른 달콤한 냄새가 퍼져서 뭔가 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작은 감꽃이 구른다. 작은 감꽃마다 개미가 바글거린다. 이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감나무에 감꽃이 조롱조롱 맺혔다. 뒤꼍 한쪽에는 굵은 감꽃이 맺는 감나무가 있다. 세 그루에는 굵은 감꽃이 맺고, 한 그루에는 작은 감꽃이 맺는다. 그런데 말이지, 어쩌면, 작은 감꽃이 맺는 이 나무는 ‘고욤나무’일는지 모른다. 이제껏 감나무로만 알았으나 막상 고욤나무였을 수 있다. 조롱조롱 무더기로 매달린 노란 꽃송이를 제대로 모르는 채, 더욱이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나무마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여섯 해 동안 이 고흥집에서 두 나무를 늘 마주하고 바라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차근차근 살피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감꽃을 보는 동안 한쪽 꽃은 크기가 작네 하고 여기기만 했을 뿐, 서로 다르게 생긴 꽃인 줄 생각하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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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6-05-26 21:08   좋아요 0 | URL
벌써 감꽃 피는 계절이네요.
저도 작년에 감꽃사진 제법 찍었는데요.... 그런 일이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파란놀 2016-05-26 21:44   좋아요 0 | URL
이 감꽃도 곧 저물려고 해요.
슬슬 감알이 조그맣게 맺히겠지요 ^^
 

‘상중’인 집에 들이닥치지 마셔요



  어제 5월 24일 낮에, 어느 방송국 다큐팀에서 전화가 왔다. 5월 26일 목요일부터 6월 5일까지 열흘에 걸쳐서 방송을 찍자고 한다. 너무 갑작스럽기에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하고 읍내에 나가는 군내버스였기에 집으로 돌아가서 연락하겠노라 하고 끊었다.


  다큐 방송은 지난해부터 촬영 섭외가 왔다. 지난해 끝무렵에는 ‘올해 유월에 선보일 새로운 사전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아주 바빴기 때문에 뒤로 미루자 했고, 올 1월에는 ‘올해부터 우리 집 아이들하고 시골집 도서관에서 새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얼거리를 세우기 때문에 어떤 바깥손님도 받지 않는다’는 말로 미루자 했다. 적어도 삼월쯤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월 즈음 다큐팀에서 고흥에 한 번 왔는데, 그 뒤로 딱히 언제 찍겠노라 하는 말이 없어서 안 찍나 보다 하고 여겼다. 이러다가 지난주 즈음 새로운 피디가 찍기로 했다면서 이주에 다시 한 번 와서 어떤 살림을 찍으려 하는가를 이야기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와 본다고 하면서 언제 오겠노라 하는 말은 없이 다큐팀 회의로 촬영 날짜를 잡아서 통보를 한 셈이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차렸다. 아이들이 밥을 먹도록 한 뒤에 전화 아닌 쪽글로 우리 살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5월 21일에 ‘유산’을 한 곁님을 돌보아야 하기에, 적어도 석 주는 바깥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방송국 다큐팀은 내 쪽글에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하고 답쪽글을 남겼다.


  짤막한 답쪽글을 받고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이를테면 ‘끓어오르는 짜증’ 같은 뭔가가 일어났다.


  ‘한 목숨이 며칠 앞서 바람처럼 떠나서 조용히 지내는 시골집’에 ‘열흘씩이든 하루이든 방송국에서 바깥손님으로 들이닥치는 일은 반기지 않는다’는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을까? 내가 아무리 사회하고 손을 끊고 지낸다고 하지만, ‘상중’인 집에 무턱대고 찾아가지는 않는다.


  방송국에서는 무엇이든 ‘그림이 되는 다큐’를 찍겠다는 마음일는지 모른다만, 방송이든 다큐이든 어떤 일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일을 하겠노라 한다면, 언제나 ‘찍히는 사람’을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무 때에나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아이들을 재우고,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끙끙 앓으며 자다가 깊은 밤에 문득 한 가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번 다큐 방송은 말끔히 손사래쳐야겠다고. ‘방송국 사람’은 ‘이웃이나 동무’가 아닐는지 모르나, 피디나 작가라는 자리에 앞서 그들이나 나나 모두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집이나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려면 먼저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는 마음이시기를 바랍니다. 2016.5.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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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inee 2016-05-2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대하는듯 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숲노래님의 방송도 보고 싶네요.
 


 미추홀북 후보 (사진책도서관 2016.5.2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함께살기)는 인천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인천에 사진책도서관이 있을 적에 날마다 인천 골목마실을 했고, 이 골목마실을 바탕으로 2010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이라는 사진책을 한 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2010년에 태어난 이 책은 올 2016년에 이르기까 아직 2쇄를 찍지 못했습니다. 2쇄는 못 찍었어도 이 사진책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을 테지요.


  인천 ‘미추홀도서관’에서 ‘2016 미추홀북’을 뽑는다고 합니다. 처음에 66권을 1차 후보로 뽑았고, 이 가운데 여섯 권을 추려서 2차 후보로 삼았다고 해요. 이제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투표를 해서 이 여섯 권 가운데 하나를 ‘2016 미추홀북’으로 뽑는다고 하는데, 《골목빛》이 마지막 여섯 권 후보가 되었어요. 2010년에 나온 책이 2016년에 이르러서야 인천에서 비로소 눈길을 받는 셈이에요.


  출판사에서는 절판을 시키려다가 ‘책이 예쁘’기 때문에 ‘팔림새가 무척 낮아’도 이제껏 절판을 안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일곱 해를 고이 지켜본 보람을 거둘 수 있을까요? 사진책 《골목빛》에 깃든 골목마을 모습 가운데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서 이 사진책에만 남은 사랑스러운 ‘골목빛’이 참 많습니다. 사라지기 앞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었어요. 새삼스레 설레는 미추홀북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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