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



배추를 잘게 썰어 배추된장국

무를 송송 썰어 무된장국

멸치를 폭 끓여서 멸치된장국

달걀을 가만히 풀어 달걀된장국


된장을 구수히 풀면

모두 된장국이 되니


떡을 넣어 떡된장국

소고기 넣어 소고기된장국

콩나물로 콩나물된장국

황태로 황태된장국

두부 넣어 두부된장국


그리고

호박된장국 시금치된장국

냉이된장국 달래된장국

쑥된장국 꽃된장국


늘 새로운 된장국 끓여

우리 함께 즐겁게 먹자



2015.12.27.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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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곳



  하룻밤 서울마실을 잘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 바깥일을 보느라 시외버스에서 아홉 시간 남짓 보내고, 잠은 거의 자지 못하는 채 이틀에 걸쳐서 사람들을 만나서 기운을 쏟으니, 고흥 읍내에 내려서 저잣마실을 하고 택시를 불러서 마을로 오기까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졸음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가방에 기대어 눈을 붙였고, 시외버스에서도 자다가 깨다가 책을 읽다가 하면서 팔에 힘이 오르지 못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 닿아 아이들하고 인사하고 짐을 풀고 씻고 저녁거리를 내놓은 뒤 비로소 숨을 돌리는데, 천천히 새 기운이 솟는다. 조용한 바람을 느끼고, 싱그러운 개구리 노랫소리를 느낀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말소리를 느끼고, 하룻밤 아이들하고 잘 지낸 곁님 숨결을 느낀다. 그저 좋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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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여관에 묵으려 하는데


  어젯밤이 아닌 오늘 새벽, 여관에서 묵으려 하는데 여관집 사장님이 잠에 곯아떨어지셔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신다. 그래서 아침에 여관집 사장님이 일어나시면 그때에 삯을 치르자는 생각으로 빈 방을 찾아서 나 스스로 문을 하나씩 열어 보는데, 문이 열리는 방마다 누군가 드러누워서 코를 곤다. 아니 이 사람들은 문도 안 걸고 잠을 자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참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끝내 빈 방을 찾지 못해서, 여관에서 묵자는 생각을 접고 피시방에 갔다. 자물쇠도 채우지 않고 그냥 자는 여관집 사람들 곁에 살그마니 누웠다가 아침에 슬그머니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여러모로 놀랍고 새삼스러웠다고 느낀다. 이제 피시방에서도 일어나야 할 때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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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려고 책을 덮다



  여섯 달 남짓이 되어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시를 쓴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이,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사이, 전철을 기다리는 사이, 수첩을 꺼내어 시를 적어 본다. 처음에는 책을 좀 읽으려 했으나 어느새 머릿속에서 수많은 노래가 어우러지거 얽히고 흐르면서 ‘얘야 책을 덮으렴, 얘야 이 노래를 들으렴’ 하면서 싯말이 자꾸자꾸 흘러넘쳤다. 이리하여 나는 책을 고이 덮고 가방에 넣었다. 한손에 연필을 쥐고 한손으로 수첩을 받치면서 자꾸자꾸 시를 썼다. 서울마실에서 만날 살가운 이웃님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시를 한 자락 쓰고, 또 한 자락, 다시 한 자락, 그야말로 술술 바람이 불듯이 썼다. 시를 쓰려고 책을 덮었다. 노래가 흘러넘쳐서 책을 덮었다. 춤을 추면서 웃고 싶어서 책을 덮었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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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그제 밤부터 서울마실을 헤아리며 짐을 챙기고 막바지 원고 교정을 했다. 이 막바지 원고 교정은 한 번 더 해야 한다. 아무튼 고흥집에서 밤을 새다시피 원고 교정을 했고, 어제 아침에 이웃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여덟 시에 타려고 일곱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서기까지도 원고 교정을 했고, 군내버스에서도 시외버스에서도 내내 원고 교정을 했는데, 이때에 한 가지를 아주 뚜렷하게 느꼈다. 집안일을 안 하고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원고 교정에만 오롯이 마음을 쓰다 보니, 원고 교정이 아주 빨리 끝났다. 원고지 삼천 장에 이르는 원고 교정을 참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이 일을 여러 날에 걸쳐 해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는데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그리 어렵지 않은 일’로 맞이했다. 시외버스가 성남이라는 곳을 가로지를 즈음 원고 교정을 마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예쁜가, 아버지가 혼자 바깥일을 보러 나들이를 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면서 저희끼리 고흥집에서 놀아 주는 이 아이들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훌륭한가 하고 생각했다. 겉으로만 보자면 나는 ‘내 이름’만 ‘내가 쓴 책’에 올리지만, 막상 내가 쓴 모든 책에는 곁님뿐 아니라 아이들 숨결이 고이 깃들면서 네 사람, 아니 여섯 사람(먼저 떠난 두 아이를 더해서) 손길이 깃들었다고 할 노릇이지 싶다. 2016.5.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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