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있는 책



  헌책방에 있는 책하고 새책방에 있는 책은 다릅니다. 두 곳은 다른 책터이니 저마다 다른 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헌책방에는 헌책이 있고, 새책방에는 새책이 있어요. 헌책은 말 그대로 헌책이고, 새책은 말 그대로 새책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다른 책은 언제나 같은 책이곤 합니다. 헌책은 헌책 값으로 사고파는 물건이요 새책은 새책 값으로 사고파는 물건인데, 두 가지 물건은 물건이라는 대목을 넘어서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예요. 또한 헌책이든 새책이든 우리가 두 손에 쥐어 펼치면, 이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언제나 똑같이 우리 마음을 건드립니다. 오래된 책이기에 마음을 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책이기에 마음을 더 움직이지 않습니다. 1950년에 찍은 책이기에 더 애틋하지 않습니다. 2015년에 찍은 책이기에 더 빳빳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어떻게 찍은 책이라 하건, 모든 책에는 사람이 삶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가꾼 손길이 깃든 슬기가 흐릅니다. 헌책방에 갔으면 헌책을 샀고 새책방에 가면 새책을 샀을 텐데, 어떤 책이건 늘 책이요 이야기이며 슬기라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앞으로 얼마나 기나긴 해가 흐르더라도 한결같이 흐를 꿈과 사랑이 어우러진 노래를 바람처럼 불러 봅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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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일공일삼 58
찰스 레빈스키 지음, 김영진 옮김, 흐리겔 파르너 그림 / 비룡소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숲에 길을 내려면 나무한테 물어봐야지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찰스 레빈스키 글

호리겔 파르너 그림

김영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9.12.20. 8500원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비룡소,2009)라는 어린이문학을 읽다가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외계인이 지구사람한테 들려주는 말이 무척 재미나다고 느껴서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이야기는 글쓴이가 짐짓 꾸몄을 수 있고, 참말로 겪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참이고 거짓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참말 있다고 할 수 있고, 글쓴이 꿈속에만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에 나오는 외계인은 어린이 모습이라고 합니다. 지구에 온 외계인은 저희 외계별에서는 누구나 처음에는 어른으로 태어났다가 차츰 자라면서 어린이로 바뀐다고 해요. 더군다나 그 외계별에서 갓 태어난 어른(그러니까 그 별에서는 어린이라고 할 사람)은 너무 철이 없어서 버릇도 없고, 뭐든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 사는 외계별에서는 갓 태어난 어른이 차츰 자라서 400살쯤 넘기며 어린이로 몸이 바뀔 즈음(!) 비로소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제대로 삶이나 사회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500살을 앞두고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저마다 은하를 누비면서 다른 별로 가서 체험활동을 하고는, 다른 은하 다른 별에서 지낸 이야기를 보고서로 써내는 숙제를 한다고 해요.



"이제 질문에 답을 해 주지. 나는 우리 별에서 왔어. 네가 우리 별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이유는 지구 사람들이 무식해서야.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잖아." (25쪽)



  아주 뚱딴지 같은 이야기이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에 왔다는 499살 외계인이 하는 말은 자꾸자꾸 지구사람(글쓴이) 머릿속을 콕콕 찌릅니다. 시간을 멈추었다가 뒤로 돌릴 수 있는 외계인이요, 하늘을 난다든지 잠을 한숨도 안 자더라도 졸리지 않는다든지 빵을 한꺼번에 수십 덩이를 먹을 수 있다든지 하는 모습을 놓고 본다면, 또 맞은편 마음속을 읽을 줄 알고 나무하고도 이야기할 줄 아는 외계인 모습을 본다면, 이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면서 너희는 무식하다고 하는 말을 하하 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일 만하지 싶어요.


  참말 그렇잖아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라는 별로 나들이를 와서 지구 체험을 한다지만, 이 지구별에 사는 우리는 다른 어느 별로도 체험을 하러 다녀오지 못해요. 그러니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자면 지구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습니다(무식합니다).



"그럼 굉장히 혼란스럽겠는데." "왜?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거나 못 알아보건 하지 않아." (36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한테는 이름이 따로 없다고도 해요. 이 외계인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이름을 늘 새롭게 짓는다고 해요. 다른 외계인도 모두 그처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로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하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되물어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 지구사람 머릿속에 못을 박기도 하는데요,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하 하고 무릎을 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며 놀아도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재미난 이름(별명)을 붙여 주어도 이 아이들은 언제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든 자전거를 타든 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겉모습으로만 마주하지 않아요. 아니, 우리도 서로서로 마주할 적에는 겉모습보다는 마음으로 사귀어요. 마음으로 맞는 이웃이기에 기쁘게 어우러지지요. 겉모습이 이쁘장하다기에 어우러지지 않아요. 마음이 곱고 착하며 참답기에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가 됩니다.



"사람이라고? 도로를 숲에다 만든다면서, 너희 별에선 사람들한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단 말이야?" "그럼, 사람들한테 묻지, 아님 누구한테 물어?" "당연히 나무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무들은 베이는 게 싫을지도 모르잖아." (50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사람이 너무 바보스러워 보인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너무 엉뚱한 짓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숲을 밀고 길을 닦는다면서 왜 숲에 있는 나무한테는 물어보지 않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물어요. 이때에 지구사람은 할 말을 잊습니다. 어떻게 나무한테 물어보느냐고 되물으려다가 그만 멍하니 입만 벌리지요. 지구사람으로서는 나무한테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이와 비슷해요. 숲을 밀거나 갯벌을 메우려는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숲이나 갯벌한테 묻는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일 적에도 냇물이나 도룡뇽이나 물고기나 새나 들꽃한테 물어본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뜻깊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를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어느 날 어떤 육상 코치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이 달리기를 대단히 잘하는 줄 알아채고는 육상 선수가 되어 보라고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이 외계인은 육상 대회에 나가서 아주 천천히 트랙을 돌아요. 육상 코치는 외계인더러 "게임을 즐기라"고 말했고, 외계인은 그 말 그대로 빙긋빙긋 웃으면서 14분도 넘게 아주 천천히 트랙을 거닐면서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하는 말이란, 즐거운 나들이였기에 아주 느긋하게 즐겼다고 하지요. 즐겁지 않다면 후다닥 해치웠을 테지만, 즐거웠기에 아주 천천히 걸었다고 해요.



"다른 선수들은 왜 빨리 뛰어야 하고 넌 왜 빨리 뛸 필요가 없는데?" "그 선수들은 즐겁지 않았으니까요. 즐겁지 않은 일은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좋잖아요. 저도 다른 선수들처럼 그렇게 다리가 아팠으면 아주 빨리 뛰었을 거예요. 얼른 끝내 버리려고요." (144쪽)



  외계인은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구사람이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둘은 그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서로 다르게 사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달리기를 할까요?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이나 문화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은 어떠한 사람으로 우뚝 설 적에 슬기로운 마음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까요? 지구사람인 우리는 나무나 풀이나 새나 벌레나 바람이나 구름한테 말을 걸면서 저마다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읽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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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1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우리 나라 작가들도 이렇게 틀에 박히지 않은,`뚱딴지 같은 생각`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내었으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6-06-11 15:42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벌써 읽지 않으셨다면...
벌써 절판된 책이니 ㅠ.ㅜ

저는 절판된 이 책을 문득 찾아내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비룡소쯤 되는 출판사라면
이 같은 책은 절판시키지 말고
잘 다루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hnine님 말씀처럼
한국 작가도 이렇게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
 

http://www.ajunews.com/view/20160608091545674


2016년 6월 10일 금요일 낮 네 시(16시)부터 인천 송도 트라이볼이라는 곳에서 '책노래(북콘서트)'를 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 토론자 세 사람 가운데 하나로 함께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책노래잔치가 있는 줄 진작 알렸어야 하는데, 오늘 6월 10일에 이르기까지, 어라 이런 것도 안 알렸네 하고 깨닫습니다.

엊그제 인쇄소에 넘긴 '새로운 책(사전)' 마감글손질에 바쁘다가 그만 홍보까지 깜빡 잊었더군요.

아이구야 하고 깨닫지만, 하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어떤 강의나 강연이나 토론 자리에 가든 글(원고)을 미리 써서 나누어 드린 뒤에, 그 글은 즐겁게 읽는 자료로 삼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이번에는 글조차 미리 못 썼습니다.

아무튼, 못 쓴 글은 못 쓴 글이고, 즐겁게 책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그 자리에 오실 분들한테 책과 삶과 숲과 사랑과 말과 꿈과 바람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잘 풀어놓을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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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힘이 되는 노래



  고흥집에서 글을 쓸 적에 나는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아뭇소리를 듣지 않고 오로지 내 글쓰기에 사로잡힙니다. 이때에는 글판 두들기는 소리조차 듣지 않고, 내 손가락이 내 마음에 따라 흐르면서 글판을 누른다는 느낌조차 모조리 느끼지 않습니다. 둘째, 셈틀에 어떤 노래를 틀어놓습니다. RAMTHA 훈련 가운데 하나인 불꽃 같은 숨을 쉴 적에 바탕노래로 삼는 노래를 틀어요. 이 훈련 노래는 훈련을 할 적에 들어도 몸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이끌지만, 훈련이 아닌 여느 때에도 마음을 튼튼히 다잡도록 북돋우는 숨결이 있다고 느낍니다. 고흥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바깥일을 보며 글을 쓴다고 할 적에도 유에스비 메모리카드에 이 훈련 노래를 담아서 갖고 다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유에스비 메모리카드가 먹통이 되었고, 듣고 싶던 훈련 노래를 듣지 못합니다. 괜시리 서운하고 슬프네 하고 여기다가 인터넷을 켜서 유투브에 들어갔고, 유투브에서 영어 노래를 틀어 봅니다. 그동안 아이들하고 즐겁게 듣던 영어 노래입니다. 아이들하고 듣는 영어 노래는 내가 어릴 적에 그냥 한국 동요인 줄 알던 노래였으나 이제 와서 다시 들으니 번안 동요였고 영어 원곡이 따로 있는 줄 깨달은 노래입니다. 영어 노래, 그러니까 영어 동요를 들으면서 영어를 새롭게 배우자는 마음도 있지만, 이보다는 이 영어 동요가 무척 차분하면서 즐겁다고 느낍니다. 한국에서 흔히 듣는 한국 동요는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여기면서 좀 어설프거나 어수룩한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 짙다면, 훌륭한 영어 동요는 그냥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노랫결이 따사롭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억지로 쥐어짜는 귀여움이 아니라, 수수하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눈길과 목소리로 부르는 훌륭한 영어 동요가 몹시 반가우면서 재미있다고 할 만하다고 느껴요. 이런 노래를 바탕에 깔아 놓으면 나는 어느새 고요하면서 고즈넉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스스로 잊던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 몸짓으로 글을 쓸 수 있어요. 내가 곁에 두면서 읽고 싶은 책이라면, 바로 이렇게 사랑스러운 노래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어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수수하게 삶을 사랑하고 살림을 짓는 꿈이 깃든 책이 더없이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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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셈틀



  오늘 새벽까지만 하더라도 여관 셈틀은 유에스비 메모리카드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에 다시 셈틀 앞에 앉으니, 어느새 유에스비 메모리카드를 읽어 주지 않습니다. 왜 이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셈틀을 껐다가 켜고 유에스비 메모리카드도 뺐다가 꽂았다가, 다른 자리를 찾아서 수없이 꽂아 보지만, 유에스비 메모리카드를 더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씨름을 하지만 끝내 두 손을 듭니다. 여관 침대에 벌렁 누워서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쳐다봅니다. 설마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에서 새롬데이타맨프로 풀그림을 살펴보지만,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 이 풀그림을 올린 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늘 쓰는 편집기를 쓸 수도 없습니다. 새롬데이파맨프로 풀그림을 가상메모리라든지 제 블로그 한쪽에라든지 올려놓는다면 여관 셈틀이 유에스비 메모리카드를 안 읽어 주더라도 걱정이 없을 텐데, 이제껏 이렇게 안 했네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참말로 나는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살피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멍하니 여관 텔레비전을 들여다볼 적에 태국 요리사하고 한국 요리사가 서로 겨루는 풀그림이 흐르던데, 무대에 나온 모든 요리사하고 사회자는 입을 모아서 태국 요리사 솜씨가 매우 훌륭하고 뛰어나며 맛있다고 손가락을 추켜세웠는데, 막상 평가단 점수에서는 한국 요리사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쪽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태국 요리사들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손뼉을 쳐 줍니다. 여관 텔레비전으로 멍하니 바라보아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점수 매기기이네 하고 느끼는데, 한국 사회는 이렇게 속이 좁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면서 다시 나를 돌아봅니다. 그러면 이 방송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는 우리 아이들이나 이웃님을 얼마나 너그럽거나 넉넉하게 어루만지거나 껴안는가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슬기로운 살림을 지으면서 텔레비전 풀그림을 나무랄 만한가 하고 뒷통수를 긁적이면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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