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놀이 8 - 좁은 골이 재미나지



  산들보라는 꼭 누나 앞에 서고 싶다. 산들보라는 꼭 누나 앞에서 걷고 싶다. 아직 걸음도 몸놀림도 느린데, 머잖아 누나를 앞지르고 싶다. 사름벼리는 동생 앞에 서거나 걷고 싶다. 산들보라는 저보다 느린 줄 알기 때문에 빠르게 날듯이 걷거나 달리고 싶다. 그러나 좁은 골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둘이 아옹다옹 재미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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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집에 가자



  얼마 앞서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을 다녀올 적에 두 아이가 버스에서 내릴 적마다 곯아떨어져서 이 아이들을 안고서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집에 닿아 자리에 눕히면 눈을 번쩍하고 뜨면서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아요. 이런 일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해 겪는 동안 곁님이 늘 하던 말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적에 아이한테 말하면서 깨우면 알아서 잘 일어나서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다고.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그래, 그 말이 틀림없이 맞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대로 안 하고 살았습니다. 이러다가 얼추 한 달 즈음 앞서부터 버스에서 아이한테 살살 속삭이면서 내리자고 달래 봅니다. 그러니 이 깜찍한 아이들은 버스가 멈춘 뒤에 눈을 슬그머니 뜨고는 졸리지만 똘똘한 몸짓으로 스스로 버스에서 내려서 씩씩하게 걷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로 나갈 적에는 “자, 이제 내리자.” 하고 말합니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자,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말합니다. 부드럽고 살가이 건네는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이 몸에 새로운 기운을 척척 집어넣으면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틀림없이 그럴 테지요. 오늘 저녁에 신문 한 부를 얻으러 읍내를 다녀오면서도 이러한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을 달랠 수 있는 모습을 몸소 겪으며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아이들을 앞으로 더 안아 주기 어려울 나이가 될 때까지는, 그러니까 아이들 몸무게가 내가 안기 어려울 만큼 될 때까지는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구나.’ 하고요. 그렇지만 등에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안아 주지는 말자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어요. 홀가분한 몸으로 더 따스히 안고 신나게 놀자는 생각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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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책읽기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무렵에 나한테 군대에서 어떻게 지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1995년 무렵을 돌이키니, 다음 같은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ㄱ. 누가 널 때리면, 넌 그놈을 죽지 않을 만큼 때려라.

ㄴ. 웃사람(고참)한테는 개기지 말아라, 비록 웃사람이 너보다 어려도.

ㄷ. 뭐든 주면 고맙게 먹어라, 안 그러면 굶고 갈굼 받는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무렵에서는 군대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군대에서 여러 가지 죽음도 보았고 총질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참말로 해 줄 만할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받거나 듣지 못한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내가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새롭게 들려주거나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음처럼 생각해 봅니다.

각해요.


ㄱ. 누가 널 때려도, 너는 아무도 때리지 말아 주렴.

ㄴ. 누가 널 욕해도, 너는 아무한테도 욕을 하지 말아 주렴.

ㄷ. 누가 널 괴롭혀도, 너는 아무도 괴롭히지 말아 주렴.


  내가 맞았대서 남을 때리거나, 내가 욕을 들었대서 남을 욕하거나, 내가 괴롭힘 받았대서 남을 괴롭히면, 참으로 언제나 고스란히 이 굴레에서 되풀이되더군요. 한 번 이 굴레에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몹시 힘들어요. 게다가 이 굴레는 군대에서만 그치지 않아요. 사회에서도 똑같고, 집에서도 똑같지요. 남한테서 맞은 일은 곧 풀리지만, 내가 누군가를 때린 일은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지워지거나 풀리지 않아요.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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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형용 形容


 비행기 형용 → 비행기 모습

 그 모친의 형용 → 그 어머니 모습

 형용은 보이지 않다 → 모습은 보이지 않다

 물건을 집는 형용을 하다 → 물건을 집는 모습을 하다 / 물건을 집는 시늉을 하다

 형용 못할 만큼 탐스럽게 → 말도 못할 만큼 소담스레 / 더할 나위 없이 소담스레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다 → 이루 다 나타낼 수가 없다

 말로는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 말로는 그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내 기분을 형용하면 → 내 느낌을 그리자면 / 내 마음을 나타내자면

 형용할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 → 나타낼 수 없는 향긋한 냄새


  ‘형용(形容)’은 이름씨일 적에는 “1. 사물의 생긴 모양 2. 사람의 생김새나 모습 3. 말이나 글, 몸짓 따위로 사물이나 사람의 모양을 나타냄”을 뜻한다 하고, 움직씨로 ‘형용하다’ 꼴로 쓸 적에는 “말이나 글, 몸짓 따위로 사물이나 사람의 모양을 나타내다”를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 ‘생김새’나 ‘모습’이라는 낱말을 쓰면 되고, ‘나타내다’나 ‘그리다’라는 낱말을 쓰면 돼요. 2016.6.24.쇠.ㅅㄴㄹ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 더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 뭐라 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 아주 대단한 즐거움으로

→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즐거움으로

→ 넘치는 즐거움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이정애 옮김-레이온 야이따 형제》(건아사,1987) 23쪽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

→ 그릴 수 없는 괴로움을 겪을지도 모를 일

→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를 일

→ 차마 밝힐 수 없는 아픔을 겪을지도 모를 일

《윤주영-동토의 민들레》(호영,1993) 126쪽


이 은은한 풍미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윽해

→ 이 아슴푸레한 맛매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그윽해

→ 이 아련한 맛매가 뭐라 그릴 수 없을 만큼 그윽해

→ 이 어렴풋한 맛매가 뭐라 나타낼 수 없을 만큼 그윽해

《신큐 치에/문기업 옮김-와카코와 술 5》(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6) 64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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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뜻밖의


 뜻밖의 선물 → 뜻밖인 선물

 뜻밖의 행운 → 뜻밖인 행운

 뜻밖의 기회 → 뜻하지 않은 기회 / 뜻밖에 온 기회

 뜻밖의 순간이었다 → 뜻밖인 순간이었다 / 뜻밖인 때였다

 뜻밖의 만남이다 → 뜻밖인 만남이다

 뜻밖의 사고가 나다 → 뜻밖에 사고가 나다


  한자말 ‘의외(意外)’를 쓰지 않고 한국말 ‘뜻밖’을 쓰니 반갑습니다. 그러나 한국말 ‘뜻밖’을 쓰더라도 토씨를 얄궂게 붙이면 아쉽습니다. 선물도 행운도 기회도 ‘뜻밖의’가 아니라 ‘뜻밖인’처럼 ‘-인’을 붙여야 올바릅니다. 흐름을 살펴서 ‘-이면서’나 ‘-이고’나 ‘-이자’ 같은 토씨를 붙일 수 있어요. 2016.6.24.쇠.ㅅㄴㄹ



엄마의 뜻밖의 일면을 알게 됐다

→ 엄마한테서 뜻밖인 모습을 알았다

→ 엄마한테서 뜻밖이다 싶은 모습을 알았다

《오자와 마리/서수진 옮김-PONG PONG 2》(대원씨아이,2009) 30쪽


외톨이 뜸부기를 만난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 외톨이 뜸부기를 만난 일은 뜻밖인 행운이었다

→ 외톨이 뜸부기를 만난 일은 뜻밖에 거둔 행운이었다

→ 외톨이 뜸부기 만나기는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 외톨이 뜸부기를 뜻밖에 만나서 행운이었다

→ 외톨이 뜸부기를 만나 뜻밖이며 기뻤다

→ 외톨이 뜸부기를 만나 뜻밖이었고 기뻤다

→ 외톨이 뜸부기를 만나 뜻밖이면서 즐거웠다

《송명규-후투티를 기다리며》(따님,2010) 45쪽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 뜻밖인 대답이었지만

→ 뜻밖이라 할 대답이었지만

→ 뜻밖이던 대답이었지만

《최형미-음악 혁명가 한형석》(상수리,2015) 57쪽


친구들을 보면서 뜻밖의 놀라움을 느꼈다

→ 동무들을 보면서 뜻밖에 놀라움을 느꼈다

→ 동무들을 보면서 뜻밖으로 놀라움을 느꼈다

《리 호이나키/부희령 옮김-아미쿠스 모르티스》(삶창,2016) 153쪽


뜻밖의 풍경을 마주칠지

→ 뜻밖인 풍경을 마주칠지

→ 뜻밖이라 할 모습을 마주칠지

→ 뜻밖이 될 모습을 마주칠지

《슬구-우물밖 여고생》(푸른향기,2016) 203쪽


어머님은 이러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 어머님은 뜻밖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 어머님은 뜻밖에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어머님은 이렇게 뜻밖인 말씀을 하셨다

《김구/이주영 엮음-김구 말꽃모음》(단비,2016) 73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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