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빨래하기



  그동안 되살림비누로 빨래를 했는데, 이제 되살림비누조차 안 쓰는 빨래를 하자고 생각한다. 되살림비누를 꼭 써야 하느냐 하고 곁님이 물은 지 한참 되었는데, 나는 이제서야 몸이 움직인다. 비누를 쓰지 않고도 옷을 빠는 길을 비로소 생각하고, 옷가지를 오래도록 고이 건사하면서 두고두고 입고 누리는 살림을 찬찬히 돌아본다. 세제를 쓰면 옷에 세제 냄새가 남을 뿐 아니라, 세제는 고스란히 땅과 바다로 스며든다. 되살림비누를 쓰더라도 되살림비누를 이룬 것들이 흙하고 바다로 스며든다. 빨래란, 옷만 깨끗하게 하는 몸짓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터전도 정갈하게 보듬을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할 테지. 아주 마땅한 일이지만, 이 아주 마땅한 일을 어릴 적부터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내가 어릴 적에 곁에서 늘 지켜본 ‘우리 어머니 빨래’나 ‘이웃집 빨래’는 모두 ‘세제 쓰는 빨래’였고, 내가 나중에 제금을 나서 혼자 살림을 가꿀 적에 이르러 ‘되살림비누’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나 제금을 나서 혼자 지내던 첫무렵부터 되살림비누를 알지는 않았다. 삶도 살림도 사랑도 사람도 하나씩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하나씩 배우는 동안 천천히 배워서 알았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저희 옷을 저희 손으로 스스로 빨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고 입을 무렵에는 오롯이 ‘맑은 빨래’가 되도록 해야지. 오늘은 햇볕이 좋아 옷장 하나를 마당에 내놓으면서 내 옷을 몽땅 바깥에 놓고 새로 말린다. 이제부터 날마다 한 사람 옷가지를 모조리 내놓아 뜨거운 여름볕에 바싹바싹 말리려 한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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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6 한정판 - 완결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32



‘끝’이 끝이 아닌 이야기

― 피아노의 숲 26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6.14. 6500원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 스물여섯째 권이 나왔습니다. 스물다섯째 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구나 하고 느꼈는데 한 권이 더 나왔습니다. 이제 스물여섯째 권은 참말로 ‘끝’을 맺는 이야기이리라 생각합니다. 설마 여기에서 일부러 한 권을 더 늘리지는 않을 테지요. 스물여섯째 권은 ‘추억의 미니 화보집’이라고 해서, 첫째 권부터 스물다섯째 권에 이르는 겉그림을 한 자리에 모으는 조그마한 책을 선물로 붙여 주었습니다.



“너의 피아노는 우연인지 기적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안에서는 대 사건이었어.” “고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모든 게 대 사건이에요. 피아노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지만, 결과는 기적이네요.” (12쪽)



  ‘숲 가장자리’에서 태어나 마을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온통 버림이나 따돌림을 받는 터전을 겪어야 하던 ‘이찌노세 카이’는 ‘아지노 소우스케’를 만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어요. 카이는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오직 제 놀잇감이자 놀이동무로 삼으면서 어린 나날을 보냈는데, 카이가 숲에서 찾은 버려진 피아노는 바로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였다지요. 아지노는 사고로 한손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면서 피아노를 스스로 버렸는데, 마침 아지노가 버린 피아노가 뜻밖에 ‘숲 가장자리’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 외톨이처럼 자라던 카이가 ‘버려진 피아노’를 버려진 피아노가 아니라 ‘숲을 밝히는 고요한 새 피아노’로 여겼어요.



“불만이 있으시면 다음부턴 회장님이 이곳에 오셔서, 직접 그 귀로 경연자들의 피아노를 들어 주세요!” (41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바로 이 같은 줄거리로 첫머리를 열었습니다. 버려진 마을과 버려진 아이가 버려진 연주자한테서 버려진 피아노를 만나는 이야기가 첫 줄거리예요. 이 다음부터는 아지노가 ‘작은 초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면서 살림돈을 버는 줄거리가 흐르고, 이때에 카이를 만나는 줄거리가 흐르지요. 아지노는 이녁이 버린 피아노가 ‘피아노도 노래도 배운 적이 없는 시골스러운 아이’가 마음껏 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요. 바야흐로 새로운 눈을 뜬다고 할까요.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할까요.


  아지노는 카이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기로 하지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하는 카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앞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익혀서 ‘어떤 것’도 카이 마음대로 이룰 수 있도록 길동무가 되겠노라 하고 꿈을 꾸어요.



“이찌노세 군은 앞으로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에 있어서, 당신을 피아니스트로 복귀시키는 일이 절대 불가결이라고 하더군요.” “네?”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당신의 수술을 의뢰해 왔습니다.” ‘뭐?’ “수술 얘기는 이찌노세 군이 아니라, 모두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아지노 씨. 사고로 부상을 입은 당신의 왼손 얘기입니다.” (108∼109쪽)



  아지노한테서 피아노와 노래와 삶과 살림과 사랑 모두를 처음으로 배우는 카이는 아지노한테서 배우면 배울수록 ‘고마움’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데, 여기에 한 가지 마음을 더 키웁니다. 무엇인가 하면,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던 저를 살려내면서 키운 아지노한테 무언가 하나 ‘선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지요.


  이 꿈은 바로 ‘한손을 사고로 잃어 피아노 연주자로 더는 뛰지 못하는 아지노’한테 ‘사고로 잃은 한손’을 되찾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지노가 한손을 잃다시피 한 때에서 스물다섯 해가 흐른 때에는 ‘옛날에는 할 수 없던 수술’을 ‘이제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수술’로 바뀌었다고 해요. 참말 그렇겠지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이 처음 나오던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그리 발돋움하지 않았고, 손전화도 그냥 ‘전화만 되던 손전화’였습니다. 만화책 주인공인 아지노한테 스물다섯 해가 흐른 나날뿐 아니라, 이 만화책이 나오고 또 나오며 기나긴 해가 흐른 나날을 돌아본다면, 참으로 모든 것이 아주 새롭도록 달라지거나 거듭났습니다.



“아지노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지노는 그런 생각이 없더라도요. 그만큼 피아노를 쳐 왔던 손은, 손가락은,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129쪽)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즐거운 끝(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즐거운 끝’이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좀 다른 말을 해야지 싶어요. 즐거움은 언제나 있었거든요. 카이가 숲 가장자리 마을에서 살며 학교나 사회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았을 적에도 카이는 늘 ‘버려진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움을 스스로 지었’어요. 그러니까 카이로서는 늘 ‘즐거운 삶’이에요. 이런 카이한테 아지노는 ‘새로운 삶’을 선물했고, 카이도 스스로 ‘새로운 삶’을 더 힘차게 가꾸었습니다.


  이 흐름에서 아지노만큼은 스스로 ‘즐거운 삶’도 ‘새로운 삶’도 북돋우거나 가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피아노의 숲》 스물여섯째 권 이야기에서 카이가 아지노를 일깨워서 ‘낡은 틀’을 버리고 ‘아지노 선생님 스스로 마음 깊이 하고 싶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자꾸자꾸 건드립니다. 선생님한테서 “바보구나!”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엄청난 돈과 이름값을 거머쥘 수 있는 자리까지 가볍게 내려놓으면서 ‘아지노 선생님이 한손을 되살리는 길을 걷도록’ 곁에서 새로운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내 일 따위는 어찌되든 좋아! 너는 너 스스로의 일만 생각하면 돼!” “어찌되든 좋지 않아요! 나는 말이죠, 아지노랑 연습하는 게 100배는 더 중요하다구요!” “바보구나!” (254쪽)



  이리하여 《피아노의 숲》은 스물다섯째 권에서 ‘카이가 아름답게 우승하는 모습’으로 한 번 끝을 맺었지만, 스물여섯째 권에서 ‘카이와 아지노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다시금 끝을 맺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무엇이든 스스로 마음에 품는 대로 하거나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며 새롭게 끝을 맺습니다.


  피아노를 빼어나게 쳐야 하는 삶이 아니라, 어떤 일을 뛰어나게 해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늘 즐거움과 기쁨으로 사랑을 가꾸는 꿈을 마음에 품을 적에 날마다 새롭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피아노의 숲》이리라 생각합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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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자 者


 낯선 자 → 낯선 이 / 낯선 사람

 맞설 자가 없다 → 맞설 사람이 없다 / 맞설 이가 없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 죽은 이와 산 이

 저자 → 저이 / 저놈 / 저치 / 저 사람


  ‘자(者)’는 “‘놈’ 또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사람을 좀 낮잡아 이르거나 일상적으로 이를 때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느 사람을 가리킨다면 ‘사람’이라 하면 되고, 여느 사람을 낮잡으려고 한다면 ‘놈’이라 하면 돼요. 사내를 낮춘다면 ‘놈’만 써도 되고 가시내를 낮춘다면 ‘년’만 써도 되는데 ‘놈년’처럼 낮추어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내나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누군가를 두루 낮출 적에는 ‘치’라는 낱말을 쓸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이이·저이·그이’처럼 여느 자리에 쓰거나 ‘이놈·저놈·그놈’이나 ‘이치·저치·그치’처럼 낮추어 쓰면 됩니다. 2016.6.26.해.ㅅㄴㄹ



우리 일 년 생활비를 그자들은 한 끼에 다 먹어 버린단 말야

→ 우리 한 해 살림돈을 그놈들은 한 끼에 다 먹어 버린단 말야

→ 우리 한 해 살림돈을 그이들은 한 끼에 다 먹어 버린단 말야

→ 우리 한 해 살림돈을 그치들은 한 끼에 다 먹어 버린단 말야

《주요섭-미완성》(을유문화사,1962) 203쪽


알아차린 자는 하나도 없었다

→ 알아차린 이는 하나도 없었다

→ 알아차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로맹 롤랑/박성룡 옮김-밀레》(신구문화사,1977) 15쪽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 막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앤드류 포터/노시내 옮김-진정성이라는 거짓말》(마티,2016) 151쪽


오늘 그 똥을 누고 있는 자들은 누굴까

→ 오늘 그 똥을 누는 이들은 누굴까

→ 오늘 그 똥을 누는 놈들은 누굴까

→ 오늘 그 똥을 누는 놈년은 누굴까

→ 오늘 그 똥을 누는 사람은 누굴까

《한희철-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꽃자리,2016) 302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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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칠하다 漆


 도화지에 크레용을 칠하다 → 그림종이에 크레용을 입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다 →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다

 빨랫감에 비누를 칠하고 → 빨랫감에 비누를 묻히고

 붉은색으로 칠하다 → 붉은빛으로 발랐다 / 붉은빛으로 입혔다

 노란 물을 칠하였다 → 노란 물을 입혔다 / 노란 물을 발랐다


  ‘칠(漆)하다’는 “1. = 옻칠하다 2. 면이 있는 사물에 기름이나 액체, 물감 따위를 바르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옷칠(-漆)하다’는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윤을 내기 위하여 옻을 바르다”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 한국말로는 ‘바르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때로는 ‘입히다’라 하면 되고, 때로는 ‘묻히다’라 하면 됩니다. ‘풀칠’이나 ‘페인트칠’ 같은 자리에서는 ‘풀질’이나 ‘페인트질’로 손볼 만합니다. ‘먹칠’도 ‘먹질’로 손보면 돼요. 2016.6.26.해.ㅅㄴㄹ



몸에 색깔들을 칠하기 시작했고

→ 몸에 빛깔을 입혔고

→ 몸에 빛깔을 넣었고

→ 몸에 빛깔을 바야흐로 발랐고

《마르코스/박정훈 옮김-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2001) 29쪽


꽁지에도 색깔들을 칠해 놓았지

→ 꽁지에도 빛깔을 입혀 놓았지

→ 꽁지에도 빛깔을 발라 놓았지

《마르코스/박정훈 옮김-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2001) 29쪽


새로 페인트칠한

→ 새로 페인트를 바른

→ 새로 페인트를 입힌

→ 새로 페인트질을 한

《이문숙-한 발짝을 옮기는 동안》(창비,2009) 100쪽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 부모 얼굴에 먹을 바르거나

→ 부모 얼굴에 먹질을 하거나

→ 어버이 얼굴을 먹으로 더럽히거나

→ 어버이 얼굴을 더럽히거나

《댄 뉴하스/안진희 옮김-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양철북,2013) 74쪽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 시절

→ 입에 풀을 발라야 하는 때

→ 입에 풀질을 해야 하는 때

《한희철-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꽃자리,2016) 273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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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6-06-26 09:34   좋아요 0 | URL
`칠`자가 한자라는 거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늘 새롭습니다ㅠㅠㅠㅠ

파란놀 2016-06-26 11:22   좋아요 0 | URL
한자라고 안 쓸 까닭이 없지만
한자라고 쓸 까닭도 없어요 ^^

이 낱말을 쓰려면 즐겁게 쓰되,
아주 오랫동안 쓰던
수많은 낱말이 있다는 대목을
함께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
 


 알량한 말 바로잡기

 감당 堪當


 내 힘으론 감당을 못하겠다 → 내 힘으론 해내지 못하겠다

 일이 커져서 감당이 안 된다 → 일이 커져서 어떻게도 안 된다

 슬픔을 감당 못 하고 → 슬픔을 견디지 못 하고

 입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 입원비를 댈 힘이 없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다 →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너무 많다

 웬만한 각오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 웬만한 다짐으로는 해내기가 어려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워 → 빤히 쳐다보는 눈길을 이기기 어려워


  ‘감당(堪當)’은 “1. 일 따위를 맡아서 능히 해냄 2. 능히 견디어 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말로는 ‘해내다’나 ‘견디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어떤 일을 해내거나 견딜 수 있다면, 어떤 일을 ‘짊어지’거나 ‘이길’ 수 있습니다. 또는 ‘대다’나 ‘짊다’나 ‘지다’ 같은 낱말을 써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 한국말사전에는 ‘감당(甘棠)’을 “= 팥배나무”라면서 싣고, ‘감당(勘當)’을 “심문하고 조사함”이라면서 실으며, ‘감당(監幢)’을 “신라 때에, 육부 소감전에서 각 사지(舍知) 다음가는 벼슬”이라면서 싣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감당’을 쓸 일이 있을까요? 2016.6.26.해.ㅅㄴㄹ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도모를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도모를 이기기가 힘들어졌다

→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도모를 달래기가 힘들어졌다

→ 가뜩이나 힘이 넘치는 도모를 짊어지기가 힘들어졌다

《고쿠분 히로코/손성애 옮김-산촌 유학》(이후,2008) 24쪽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감당해 왔을 것이다

→ 더 살 길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돌봐 왔을 것이다

→ 더는 살 길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보살펴 왔으리라

→ 더는 살 길이 없는 아버지를 줄곧 혼자 떠안아 왔으리라

《요시다 아키미/조은하 옮김-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애니북스,2009) 64쪽


빗물이 … 하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쳐

→ 빗물이 … 냇물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흘러넘쳐

→ 빗물이 … 냇물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흘러넘쳐

《한무영-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그물코,2009) 33쪽


길게 펼쳐진 내일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 길게 펼쳐진 내일을 짊어지기엔 턱없이 모자란

→ 길게 펼쳐진 내일을 이기기엔 턱없이 모자란

《박용현-정당한 위반》(철수와영희,2011) 326쪽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왔을 때

→ 이기기 힘든 괴로움이 찾아왔을 때

→ 견디기 힘든 고비가 찾아왔을 때

→ 짊어지기 힘든 가시밭길이 찾아왔을 때

《한희철-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꽃자리,2016) 192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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