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들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이틀 내리 골짝마실을 다녀옵니다. 작은아이가 더 자라면 골짜기로 걸어서 다녀올 생각이지만 아직 많이 어리니 자전거로 다녀옵니다. 그런데 골짜기를 자전거로 다녀오면 골짜기에서 누린 시원함을 내리막에서 더욱 시원하게 맞이하면서 집에 닿을 무렵에는 땀이 하나도 없지만, 걸어서 돌아오면 다시 땀이 솟지요. 아무튼 이틀 내리 골짝마실을 하고서, 집에서는 옷장 하나와 이 옷장에 깃든 옷을 몽땅 마당에 널어서 말린 뒤에 다시 집에 들이느라 부산한 하루였습니다. 이러면서 저녁밥을 차렸어요. 내 기운은 여기까지였는지 여기까지 하고는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새벽 네 시까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소리를 귀로 듣기는 해도 몸이 일어나지 못해요. 그래도 이런 몸을 일으키는 힘은 한 가지 있습니다. 내 옆에서 잠든 아이들이 이불을 뻥뻥 걷어차서 한밤에 썰렁해 하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누운 채로 손발을 뻗어’ 이불을 찾아내어 두 아이한테 꼭꼭 여미어 덮어 줍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 ‘아무리 고되거나 지쳤어’도 바로바로 했던 기저귀 갈기처럼, 아이들하고 얽힌 일은 내 젖 먹던 힘을 끌어내어 어떻게든 해내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사흘째 골짝마실을 바랄 듯한데, 오늘은 큰아이 자전거를 자전거수레에 싣고 읍내에 다녀와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골짜기를 가든 읍내를 가든 자전거로 다녀오기에 만만하지 않으나 즐거운 길이 되도록 하자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더욱 힘을 내야지요.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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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402 : 만남과 조우



만남이 무슨 비밀 조우라도 된다는 듯

→ 만남이 무슨 비밀 만남이라도 된다는 듯

→ 만남이 무슨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


조우(遭遇) : 1. 신하가 뜻에 맞는 임금을 만남 2. 우연히 서로 만남



  한자말 ‘조우’는 ‘만남’을 뜻합니다. 지난날 궁궐에서는 한국말이 아닌 한문을 흔히 썼으니 그때에는 ‘조우’조차 아닌 ‘遭遇’처럼 적었을 테지요. 그러나 궁궐에서 아무리 ‘遭遇’라는 한문을 썼더라도 시골에서 살림을 짓던 여느 사람들은 ‘만남’이라는 한국말을 썼을 테지요. 오늘날에는 여러 지식인이 ‘조우’라는 한자말을 흔히 쓰고, 군대에서도 “적을 조우한다”처럼 으레 쓰는데, 우연히 만난다고 할 적에는 ‘마주치다’를 쓰면 됩니다. ‘마주치다’는 “우연히 만나다”를 뜻합니다. 그러니 “적을 마주치다”처럼 쓰면 될 노릇이지요. 2016.6.26.해.ㅅㄴㄹ



우리의 만남이 무슨 비밀 조우라도 된다는 듯

→ 우리 만남이 무슨 비밀 만남이라도 된다는 듯

→ 우리 만남이 무슨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

→ 우리가 무슨 비밀 만남이라도 한다는 듯

→ 우리가 마치 비밀스레 만나기라도 한다는 듯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황근하 옮김-좋은 인생 실험실》(샨티,2016) 148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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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106. 골짜기에 가려면



  큰아이가 “아버지 더워요. 우리 골짜기 가요.” 하고 말한다. 아침을 지나 낮이 되니 덥지. 그러면 골짜기를 가야지.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날마다 골짜기에 다녀오면 시원해. 그런데 골짜기에는 그냥 갈까? 아니면 아버지가 부엌을 다 치우고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랑 수세미를 바깥에 내놓아 말리고 이것저것 다 마친 다음에 갈까? 부엌일을 아버지 혼자 할까, 아니면 네가 거들까? 작은아이가 “우리 골짜기 언제 가?” 하고 묻는다. 작은아이더러 “네가 논 방이랑 마루 치웠니?” 하고 되묻는다. “우리는 집안을 이렇게 어지럽히고 아무 데도 안 가.” 하고 덧붙인다. 골짜기를 다녀오면 틀림없이 졸음이 쏟아지거나 지칠 텐데 골짜기로 나서기 앞서 집에서 치워 놓지 않으면 이대로 저녁에도 밤에도 그대로 널브러진 모습이 된다. 얘들아, “얼른 가요!” 하고 노래할 틈이 있으면, 너희가 할 수 있는 몸짓으로 너희 장난감을 가지런히 놓아 두렴.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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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s 2016-06-2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기들이 재촉할만한 골짜기입니다. .
 

책을 놓는 자리 곁에



  책을 놓는 자리에는 책을 놓지요. 그런데 책을 놓는 자리 곁에 다른 것을 놓기도 해요. 이를테면 연필이나 수첩을 놓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붙이기도 합니다. 들꽃을 꺾어서 곱게 꾸미기도 하고,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책을 좀 쌓기도 합니다. 시계를 놓을 수 있고, 이것저것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올릴 수 있어요. 책꽂이에는 책을 꽂기 마련이지만, 책꽂이 한쪽에 못을 박아 달력을 걸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재미난 것을 붙일 만하고, 마음에 드는 포스터나 그림이나 엽서도 붙일 만해요. 모두 내 나름대로 내 사랑을 담아서 꾸미는 손길입니다.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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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물 책읽기



  내가 왜 기계빨래를 그리 안 좋아했는가를 돌아봅니다. 딱히 기계빨래를 거스를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두 손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면, 내 옷가지에 그동안 깃든 땀내음이나 먼지내음을 고스란히 헤아릴 뿐 아니라, 빨래를 하면서 빨랫물이 얼마나 나오는가를 모두 지켜볼 수 있어요. 기계가 빨래를 해 주는 일을 싫어한다기보다 ‘전기 없는 삶’이라면 옷을 어떻게 건사하려 하느냐는 마음으로 늘 ‘손으로 짓는 살림’을 헤아리려 했습니다. 이러다가 요 며칠 사이에 문득 새롭게 하나를 깨닫는데, 내가 손빨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빨랫물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구나 싶어요. 되살림비누를 쓰더라도 빨랫물에 거품이 생긴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거품이 생긴다면, 이 거품은 무엇이겠느냐 하고 돌아봅니다. 어제부터 설거지를 할 적에는 이엠발효액만으로 하는데, 꽤 잘 되고 깨끗합니다. 설거지물도 한결 깨끗하고요. 빨랫물을 쳐다볼 수 있다고 해서 빨래나 살림을 더 잘 헤아리지도 못했다는 대목을 깨달으면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고 해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제대로 헤아린다고는 할 수 없다는 대목을 새삼스레 배웁니다. 우리가 읽을 것이라면 ‘책’이 아니라 ‘살림’일 테지요. 애써 책을 읽는다면 ‘책에 깃든 살림’을 읽어야 할 테고요. 2016.6.2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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