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09. 사회주의자



  우리 아이를 둘러싼 여느 어른들은 꼭 ‘사회주의자’ 같다. 집에서 신나게 놀도록 하고, 언제나 느긋하게 살림을 배우도록 하며, 날마다 새롭게 꿈꾸도록 천천히 가르치는데, 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기 때문에 ‘학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 관계가 어렵고 말리라’ 하고 얘기한다. 아니, 우리 이웃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인가? 뭔 사회를 그리도 좋아할까? 그런데 나이가 무척 어린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사회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이들을 무턱대고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힘이나 생각이나 몸이 모두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그만 ‘푸대접(차별)’하고 ‘따돌림’이 생긴다. 놀이동무로서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이 아닌, 그냥 수업 진도에 맞추어 한자리에 뭉그러뜨리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약육강신 사회 관계’를 몸에 익힌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를 아이들 스스로 손사래친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가 아닌 사랑’을 배우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늘 즐거이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살림’을 배우려 한다. 사회주의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보다는 ‘사랑둥이’나 ‘사랑쟁이’나 ‘사랑님’이 될 적에 아름다우리라 본다. 2016.7.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아이 167. 2016.6.26. 멍석딸기순이



  자전거를 몰아 골짝마실을 하는데 큰아이가 멧딸기를 보았다고 외친다. 참말 멧딸기인가?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느라 헉헉거리기에 옆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골짝마실을 마치고 고갯길을 내려오며 흘끗 살피니 참말 불긋불긋한 뭔가가 있다. 며칠 뒤 골짝마실을 다시 하면서 고갯길 앞에서 자전거를 눕히고 멧딸기를 훑기로 한다. 큰아이가 본 대로 멍석딸기이다. 이 한여름에 아직 멧딸기가 있구나. 이곳은 새길 닦는 공사를 하느라 땅이 쓸려서 느즈막하게 딸기가 났지 싶다. 장마를 앞두고 올해에 마지막으로 얻을 수 있는 멧딸기를 치맛자락 가득 담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꽃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 효형출판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삼례 책마을 쪽으로 강연마실을 다녀오는 기찻길에서 이 책을 읽는데, 몸이 무척 고단한 데에도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담뿍 사로잡혀서 참으로 즐겁게 읽었다. 헌책방지기가 아가씨였구나. 책을 나르거나 다루는 얘기도, 조용히 책을 읽는 얘기도, 작은 헌책방을 둘러싼 사람들 얘기도 구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타리무 사들고 돌아오는 길



  이틀에 걸친 삼례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녀오지 않았기에 고흥집으로 돌아갈 적에 몸이 홀가분합니다. 오늘은 가방도 제법 가벼워서 읍내에서 ‘새로 담글 김치’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장만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배추 한 단을 들고 갈까? 열무 두 단을 들고 갈까? 배추랑 열무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열무로 고릅니다. 이튿날 아침에 아이들하고 천천히 열무를 다듬은 뒤에 절여서 김치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읍내에서 20시 30분 마지막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읍내 중·고등학교로 다니는 아이들이 꽤 많이 탑니다. 이 아이들은 다른 면이나 깊은 마을에서 읍내까지 버스로 오가는군요. 시골 아이들이지만 창밖보다는 손전화에 눈을 박고야 마는데, 앞으로는 밤숲빛도 바라볼 수 있을 테지요. 집에 닿아 아이들한테 늦은 밥을 챙겨 주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습니다. 이제 신나는 노래를 틀고서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놀린 뒤에 고요히 잠들어야지요. 따사로우면서 싱그러운 시골 밤이 흐릅니다.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 인권이 해답이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표창원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9

 


‘소수(시골)’가 희생하는 나라에 평화는 없다
―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인권연대 기획
 표창원·오인영·선우현·이희수·고병헌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6.7.12. 13000원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아픔이나 슬픔이 자꾸 불거지곤 합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철거를 하는데, 막상 재개발 대상이 되는 곳에서 살던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살림을 꾸려야 하는가를 살피지 않기 일쑤입니다. 다 같이 즐거이 살림을 짓는 길보다는 그저 겉보기에 깔끔하거나 돈이 더 나오는 길을 살피는구나 싶어요.


  때로는 무턱대고 공사를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송전탑이나 핵발전소나 군부대를 손꼽을 만한데요, 이들 송전탑이나 핵발전소나 군부대는 ‘도시 한복판’에 들어서지 않아요. 이런 시설은 모두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기 일쑤입니다. 이른바 ‘다수(도시)’를 헤아려서 ‘소수(시골)’가 희생해야 한다는 투가 되기 일쑤예요.

 


다수결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저항을 이기주의로 매도하지요. 이를 탄압하는 국가 권력을 옹호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정했다는 논리로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정말 ‘공정’했을까요? 공정하다면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걸까요? (46쪽)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는 투표를 거쳐 다수결로 어떤 일을 꾀하곤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나 다수결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에서 투표나 다수결만 옳다고 밀어붙인다면, 투표나 다수결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쪽은 늘 눌리거나 밟히거나 밀리거나 죽어야 하기 일쑤입니다.


  인권연대에서 기획하고, 표창원·오인영·선우현·이희수·고병헌 다섯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철수와영희,2016)를 읽으면서 투표와 다수결이라고 하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송전탑이나 핵발전소를 놓고 본다면, 송전탑이나 핵발전소는 ‘도시에 사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 때문에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커다란 발전소를 들일 일이 없고 커다란 송전탑을 세울 일이 없습니다. 어느 시골이든 볕이 잘 들기 마련이기에, 시골에서는 집이나 마을에 맞추어 지붕에 햇볕전지판만 붙여도 ‘전기 자가수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엄청나게 많으면서 높다란 건물, 지하상가, 지하철과 전철, 수많은 편의시설과 문명과 문화가 있기 때문에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써야 하지요.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커다란 발전소는 도시 때문에 세워야 하는데, 정작 도시에는 커다란 발전소를 안 세워요. ‘다수’가 있는 곳에 큰 발전소를 세우면 ‘안전하지 않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소수’가 있는 곳에서는 ‘안전하지 못한 시설’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가해자들의 상당수는 학대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집이나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존감도 상당히 낮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매우 수치스러운 존재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한 분노가 가슴속에 남아 있다가 어떤 대상을 향해 폭발하게 되는 거예요. (54쪽)

 

몇 명 없앴다고 친일파가 사라지겠느냐, 이런 말에 임옥윤이 답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힘들고 어렵더라도, 맞서 싸우자고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갖고 말이에요. (88쪽)

 


  초등학교 옆에 군부대나 미사일기지를 세우려고 정책을 꾀할 어른은 없으리라 봅니다. 설마 있을까요? 서울이나 부산 한복판에 군부대나 미사일기지를 세우겠다고 할 어른도 없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는 온갖 것을 자꾸 세우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런 일이 자꾸 불거질까요?


  평화로우면서 깨끗한 전기를 얻어서 도시와 시골이 모두 평화로우면서 깨끗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고 슬기를 빛내며 돈을 쓰는 정책이 서기가 어려울까요? 다수도 소수도 아닌 ‘모두’를 살필 줄 아는 똑똑한 정치가 서기는 힘들까요?


  남녘에 군부대나 미사일기지를 늘리려 한다면, 북녘에서도 똑같이 하리라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북녘에서 새로 늘어날 군부대와 전쟁무기에 발맞춰 남녘에서도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더 늘리겠다는 정책이 서겠지요. 이는 끝이 없습니다. 북녘에서 먼저 멈추든 남녘에서 먼저 그치든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남북녘 정치 우두머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이 말썽거리를 슬기롭게 푸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군부대와 전쟁무기에 돈을 쓸 노릇이 아니라, 평화롭게 살림을 지어서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길에 돈도 힘도 마음도 쓸 노릇이라고 느껴요.

 


대테러 전쟁으로 희생된 이슬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내 부모, 내 가족이 미국의 공습으로 죽었다면? 당연히 증오와 분노가 생기겠지요. (164쪽)

 

이 모델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선악과 우열도 존재하지 않아요. (175쪽)

 


  다수 의견이 옳거나 소수 의견이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수 의견이 맞거나 다수 의견이 그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다수와 소수일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다수나 소수라고 하는 숫자가 아닌 ‘모두’여야지 싶고, ‘함께’여야지 싶어요.


  그리고 모두 나아갈 길이나 함께 열 길이란, 언제나 평화와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투표와 다수결로만 그치는 민주주의가 아닌, 슬기롭게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손길이 되는 참다운 민주가 넘실거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고 물었던 그 학생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공부는 바로 우리 삶과 관련해서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한 번뿐인 삶을 헌신해서 실현하고 싶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니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이지요. (220쪽)

 


  인문책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수가 희생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다수가 희생할 까닭도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누구도 ‘희생’하지 말고, 서로 따사롭고 넉넉하게 아낄 줄 아는 몸짓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바로 이 어깨동무이지 싶습니다. 손을 맞잡으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길을 걸어야지 싶습니다. 서로 환하게 웃음짓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춤을 출 수 있는 잔치마당을 이루어야지 싶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희생’은 사라져야지 싶습니다. ‘희생받거나 억눌리는 소수’가 목소리를 높이는 아프거나 슬픈 몸짓을 제대로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어깨동무를 할 때에 평화가 섭니다. 손을 맞잡을 적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도시와 시골이, 아이와 어른이, 남녘과 북녘이, 경계나 울타리 같은 허울은 걷어내어 새롭게 기쁨을 지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