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과 글쓰기


 글을 쓰고 싶다. 참말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어 죽을 노릇이다. 오늘 내가 인천에 온 까닭은 바로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오로지 글쓰기에만 내 넋을 바치고 싶고, 골목마실과 헌책방마실에 내 온 얼을 베풀고 싶기 때문이다.

 집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옆지기를 사랑하면서 글을 쓸 수 없다. 이러는 동안 글을 쓸 틈이 없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는 가운데 글이란 참 부질없다. 아이 웃음 한 번 볼 때가 원고지 1000장짜리 글 하나 쓰기와 같다. 옆지기를 꼬옥 안으면 원고지 100장을 쓸 때와 같다. 아이 빨래를 하고 집식구 먹을 밥을 하면 원고지 10장을 쓸 때와 같다.

 바보는 바보라 내 말을 못 알아듣는데, 원고지 1장짜리 글이든 1000장짜리 글이든 모두 똑같은 글이고 아름다운 글이다. 나는 살림꾼으로 지내느라 참말 글쓸 짬을 내고 싶어 미치겠다. (4343.7.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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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앞으로도 (인천) 배다리에는 오실 거지요?” “따로 배다리에 온다기보다, 저는 헌책방하고 골목 때문에 와요. 인천(또는 인천 배다리)에 헌책방이 모두 사라지거나 인천에 골목길이 죄다 밀려나고 말면, 저는 인천에 올 까닭이 없습니다.” (4343.7.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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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밝히는 책읽기


 나날이 눈이 좋아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날이 목숨줄 늘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한결 나으며 아름다운 책을 쓰고 엮고 읽고 나누는 사람은 외려 줄어듭니다. 나날이 어두워지는 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가운데 스스로 싱그럽고 힘차게 거듭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눈이 밝을 때에도 밝은 책을 사랑하지 못해 왔으니, 눈이 어둡고 나서도 밝은 책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눈이 밝을 때에 밝은 책을 사랑하던 사람은 눈이 어두워지고 말아 책을 더 읽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 때에는 ‘책을 읽지’ 못하지만 ‘삶을 읽으’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4343.7.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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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 빛길


 서울 지하철 강변역에 자리한 버스 타는 곳에서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저녁 7시 40분에 막차입니다. 버스 타는 곳에 저녁 8시 38분에 가까스로 닿아 표를 끊으려고 하니 일찌감치 끊겼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저녁 9시에 무극(금왕읍)으로 오는 버스표를 끊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자전거 바퀴를 떼어놓고 서 있습니다. 짧은치마 차림인 아이들 다섯이 버스 앞에 서서 수다를 떱니다. 무극에 살며 도시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인 듯합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가 조용히 잠들어 있는 버스에서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몹시 차갑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팔과 다리를 문지른 끝에 무극에 닿습니다. 무극에 닿을 때 갑작스레 아파트숲이 왼쪽과 오른쪽에 나란히 펼쳐집니다. 참 생뚱맞다 싶을 모습이지만, 이 깊은 시골마을에 퍽 높다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버스 짐칸에서 자전거를 내립니다. 바퀴를 붙입니다. 불을 켜고 달립니다. 바구니와 가방에는 짐이 잔뜩이라 꽤 무거워 자전거는 천천히 나아갑니다. 밤길에는 오가는 차가 퍽 적어, 내 자전거에서 불을 끄고 달리면 참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어 찻길이 하나도 안 어둡습니다. 보름달 빛살에 기대어 느긋하게 달리며 가뿐 숨을 내뱉습니다. 가뿐 숨을 내뱉다가도 가만가만 숨을 멈추며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 아닌 산마을에서 들려올 소리가 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시골 버스역에서 내려 국도를 달리는 동안에는 별을 보지 못합니다. 드문드문 지난다고 하지만, 드문드문 지나는 자동차 등불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국도가 끝나고 우리 살림집으로 들어서는 시골길에 접어들어 참말 아무런 등불 없이 자전거 불조차 켜지 않고 싱싱 달릴 때에라야 별이 보입니다.

 별을 봅니다. 까만 밤하늘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별을 올려다보며 느긋하게 땀 뻘뻘 흘리며 달립니다. 달리는 발은 느긋하지만 아무튼 땀은 뻘뻘 흘립니다. 이제 우리 집에 다 왔습니다. 아이 엄마는 부엌 쪽에 불을 켜 놓고 아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있던 아이 엄마가 일어납니다. 오늘 하루에다가 어제 낮과 저녁을 아이랑 둘이 보내느라 고달팠을 아이 엄마 모습을 훤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며칠 앞서부터 쥐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벽을 파먹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오늘은 자고 이듬날 아침에 바지런히 읍내에 나가서 쥐끈끈이 몇 사들고 와야지요.

 땀으로 범벅이 된 자전거 손잡이를 물로 헹구고 헛간에 놓습니다. 자전거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 밤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집으로 들어와 옷을 모두 벗어 담가 놓고 찬물로 멱을 감습니다. 아, 우리 집에서 몸을 씻을 때가 가장 즐겁고 홀가분합니다. 이 찬물 맛이란. 이 조용한 시골집이란. 쥐야, 너도 밤에는 잘 자렴. 그리고 이듬날에는 부디 네 보금자리인 산으로 돌아가렴. 끈끈이에 붙들려 목숨을 잃지 말고 조용히 네 숲으로 돌아가렴. (4343.7.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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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7-29 07:59   좋아요 0 | URL
어맛, 생극! 시댁 큰집이 생극이에요. 반갑습니다.

파란놀 2010-07-29 08:55   좋아요 0 | URL
생극은 참 작고 조용한 면이에요~
 


 책읽기 3


 아이 엄마가 긴 걸상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책을 손에 쥔 채로 잠들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일을 쉬거나 숨을 돌리며 책을 돌리려 할 때마다 아이랑 놀거나 아이한테 밥을 해 주거나 파리를 잡거나 빨래를 하거나 하면서 책을 손에 쥐려다가 놓습니다. 밤새 이불에 네 차례 오줌을 눈 아이는 아침부터 “바지 젖었네.” 하는 말로 깨어납니다. 아이한테 너 이렇게 자꾸 오줌 안 가리려 하고 그냥 싸 버리면 다시 기저귀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울 듯 말 듯한 얼굴이다가 창가에 개미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을 보며 “개미 있다.” 하는 말로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합니다. 아빠가 잠자리 나무판을 걷어 말리려 하니 옆으로 떨어져 있다가, 바지 하나 들고 와서 아빠한테 입혀 달라고 흔듭니다. 이제 아이 먹일 밥을 하고 이불을 빨고 아이 씻기고 빨래를 하며 하루를 열어야겠습니다. (4343.7.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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