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손


 책짐을 여러 시간에 걸쳐 쉬잖고 묶어 날라 쌓고 있다 보면 두 손은 빨개진다. 그러나 책을 묶고 나르고 쌓는 동안 두 손이 빨개지는 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새책이라 하는 책을 묶고 나르고 쌓아도 두 손은 책먼지와 책때를 타면서 새까맣게 바뀌니까. 나중에 손을 씻고 보면 두 손이 바알갛게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처음 하루이틀은 바알갛게 바뀐 손이 밤나절 잠자리에서 따갑다고 느낀다. 사흘나흘이 되면 바알갛게 바뀌던 손이 누런 빛으로 다시 달라진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아픔이 사라진다. 손바닥과 손가락이 이어진 마디 끝자락뿐 아니라 손가락과 손바닥에 통째로 두툼하게 꾸덕살이 박인다. 누런 빛이 지나면 예전 살빛으로 돌아오는데 예전보다는 조금 거무튀튀하거나 짙어진 살빛으로 자리잡는다. 다만, 책 묶기를 더 하지 않는다면 다시 노란 빛으로 살짝 바뀌다가는 금세 하얀 손이 되어 버린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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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땀


 인천 배다리에서 지난 2007년 4월부터 꾸리던 ‘사진책 도서관’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긴다. 책짐은 진작부터 쌌는데, 이 가운데 사진책을 맨 나중에 싸려고 남겨 놓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인천을 떠나기 앞서까지 사진책만큼은 마지막으로 찾아올 사람한테 보여주고 쌀 생각이었다. 이제 끝물 책짐인 사진책을 싼다. 어제 새벽 두 시 사십 분까지 쌌고, 오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싸고 있다.  어느덧 아침 여덟 시 이십오 분인데, 책을 싸는 내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땀방울은 똑똑 방울져 떨어진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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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쏙 봄이 와요 (보드북) - 봄 편 똥강아지 봄여름가을겨울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 / 호박꽃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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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나비!” 하고 외치며 웃는 딸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 심조원·김시영, 《쏙쏙 봄이 와요》



 인천에서 살던 때, 동네 골목 마실을 하노라면 으레 나비를 만났습니다. 동네 골목 곳곳에는 크고작은 꽃그릇에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가 자랐으며, 골목 골골샅샅에는 크고작은 텃밭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와 흙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비가 날고 벌이 윙윙거립니다. 그렇지만 모든 골목동네에서 나비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다. 퍽 많은 골목사람이 당신 살림집 둘레에 꽃잔치를 벌여 놓고 있을 때에 비로소 나비를 만납니다.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요즈음, 집에 들어온 나비를 내보내느라 날마다 바쁩니다. 며칠 앞서는 사마귀가 ‘뜯어진 모기장 틈바구니’로 들어왔습니다. 귀뚜라미나 방아깨비나 쇠파리까지 우리 살림집으로 자꾸자꾸 들어옵니다. 미처 모기장을 달지 못한 창문으로 들어오고, 밥을 하며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옵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라는 그림책을 집어듭니다. 인천 골목집에 깃들던 때에는 《까먹자 빠작》이라든지 《옹기종기 냠냠》을 퍽 자주 집어들며 엄마나 아빠보고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 달라 했는데, 두 돌을 지난 아이는 시골집에서 거의 《쏙쏙 봄이 와요》만 집어들며 혼자서 펼쳐 봅니다. 그러고는 나비가 나올 때마다 책을 한손으로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나비를 가리키며, “아빠, 나비!” 또는 “엄마, 나비!” 하고 외칩니다. 개미는 ‘기미’라 말하고, 콩은 ‘꽁’이라 말합니다. 바퀴벌레를 보고는 아직 ‘파리’라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기 때문에 아이가 더는 《옹기종기 냠냠》을 안 좋아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는 떡볶이나 튀김이나 만두를 곧잘 사 먹을 수 있는 한편, 한 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사 먹었기에 더 낯익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만. 시골로 살림집을 옮긴 뒤로는 두 달 남짓에 걸쳐 꼭 두 번만 떡볶이와 튀김을 사 왔거든요. 시골집에서는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사 와야 하니 힘들기도 하지만, 굳이 군것질거리를 사 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꼭 그러하지는 않으나, 도시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하고 시골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이 다르기에 따로 주전부리가 없어도 넉넉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옹기종기 냠냠》 같은 책이 재미나다고 여길 만합니다. 《쏙쏙 봄이 와요》에서도 군데군데 자연 내음이 깃들어 있습니다만(더구나 이 그림책은 그림결이 몹시 예쁘며 곱습니다. 티가 나도록 잘못 그렸다든지 엉뚱하게 그린 그림 또한 없습니다), 큰 틀에서는 도시에서 마주하는 아주 자그마한 자연입니다. 시멘트와 쇠붙이에 둘러싸이거나 가로막혀 숨이 가쁜 자연이에요. 자칫 자연을 아예 잊거나 모를까 걱정스러운 도시 살림이기에, 이런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 나라 어버이들이 아이들한테 자연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쏙쏙 봄이 와요》 같은 그림책을 그렸다 할 텐데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 도시 터전에서는 이만 한 자연조차 쉽사리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도시에서 학교나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있을 때에 나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나비를 생각하기나 하나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는 보거나 생각하겠으나, 나비나 벌이나 잠자리나 쓰르라미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나마,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기는 하지요. 그런데 이 매미소리마저 자동차 소리에 파묻힙니다. 가게마다 크게 틀어 놓는 노래소리에 스러집니다.

 시골집에 있는 동안 따로 노래를 틀어서 들을 일이 없습니다. 밥을 하는 동안에도 집구석 어디엔가 들어와 있는 귀뚜라미가 노래를 하지만, 산속 수풀 어딘가에서 크고작은 새가 우짖습니다. 집 둘레 텃밭과 논밭에서 온갖 풀벌레가 지저귑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빗소리를 듣습니다. 맑은 날에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밤에는 까만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듯합니다. 보름달빛이 환한 밤에는 보름달이 속삭인다는 느낌이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는 소리라든지 빗물이 나뭇잎에 튕기는 소리라든지 닭이 똥을 누는 소리라든지 처마에서 빗물이 마당으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라든지, 모든 소리가 노래결과 매한가지입니다.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가서 하루밤을 묵을 때에는 참 후덥지근합니다. 선풍기를 안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여느 도시사람이라면 에어컨을 찾겠지만요. 우리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선풍기를 들이지 않았으나, 시골에서는 더더욱 선풍기를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날 그대로 날씨를 느낍니다. 달력이 아닌 낮밤 날씨를 살갗으로 느끼며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헤아립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날씨와 철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아이 어머니와 저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 또한 차츰차츰 몸으로 자연과 삶터를 맞아들입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에서 나비만 찾는 모습이 알쏭달쏭하다가도, 아이가 이 그림책을 펼칠 때에 아이 삶터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란 오직 나비 하나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 세 사람은 시골집에서 감자를 심고 캔다든지 고구마를 심고 캔다든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고작 두어 달째 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한 해 두 해 살림을 이어가는 동안 감자를 심어 캐고, 고구마를 심어서 캐노라면 《쏙쏙 봄이 와요》를 들출 때에 “아빠, 감자!”라든지 “엄마, 고구마!” 하고 외치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 감자!” 하고 외칠 무렵이면, 이제 우리 아이는 《쏙쏙 봄이 와요》는 이웃집 어린 동생한테 물려주고 다른 그림책을 들춰볼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4343.8.26.나무.ㅎㄲㅅㄱ)


― 쏙쏙 봄이 와요 (심조원 글,김시영 그림,호박꽃,2010.3.16./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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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4 : 독후감과 느낌글과 서평과 책이야기

 제 깜냥껏 즐겁게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씁니다. 제가 쓰는 느낌글은 저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 하나가 제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를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숙제처럼 하는 독후감이 아니요, 어딘가에 내놓아 글삯을 타내려는 서평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책 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야기입니다.

 저는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인 글을 제 누리집에 꾸준히 올려놓습니다.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쓴 지 열예닐곱 해가 지났으니 그동안 글을 꽤 많이 썼다 할 만합니다. 제가 쓴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읽으며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고, 저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저는 제 삶으로 받아들인 책 하나를 놓고 글을 씁니다. 책 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듬날은 어느 자리로 옮아 가는가를 곱씹으며 글을 씁니다. 책 하나를 발판 삼아 오늘 이곳에서 이듬날 저곳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헤아리며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느낌은 모두 다릅니다. 책을 읽으며 받아들일 느낌은 모두 다를밖에 없기에 책을 읽고 나서 쓸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는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빌어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책을 읽자니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돈이 아깝고, 책을 읽기는 읽었으나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면서,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요모조모 간추려 독후감 숙제를 내는 듯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담아 갑니다’ 같은 한두 마디를 남깁니다. 이런 말마디를 남기는 아이들은 ‘고맙게 정보나 자료를 얻으니’까 인사말을 남긴다고 생각할 텐데, 차라리 이런 인사말이란 남기지 않고 조용히 베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베끼려면 조용히 베끼고, 드러내어 인사말을 남기고자 한다면 독후감 숙제가 아닌 아이들 깜냥껏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쓸 노릇이라고 봅니다.

 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에 아이들이 남긴 인사말 댓글을 읽다가 울컥 하고 치밀어오릅니다.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느껴 한 마디 달아 놓습니다. “독후감 숙제를 하려면 책을 읽지 마셔요. 책이 아깝습니다.”

 지난주에 살짝 인천으로 마실을 가며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아벨서점〉에 들렀습니다. 아이와 아이 어머니와 저 셋이 다 다른 책시렁에서 책을 살피고 있자니, 키가 어머니보다 큰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랑 들어와서는 《삼대》와 《운현궁의 봄》 같은 소설책을 찾습니다. 아니, 찾지 않고 책방 일꾼한테 “이런 책 있나요?” 하고 찾아 달라 말합니다. 스스로 찾지 않고 찾아 달라 이야기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제대로 말하자면 ‘찾아보기 도움이’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책을 찾으려는 사람은 책방이나 도서관마다 책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서 몸소 찾아야 합니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이 찾아야지 책을 파는 사람이 찾을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내가 바라는 책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책값을 치르고 책을 가방에 챙겨 책장을 손수 넘겨야 합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는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삭여서 책을 읽은 사람 스스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독후감·서평·신간소개·북리뷰’ 따위 말이 붙는 글은 책글이 아니요 느낌글이나 책이야기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글조차 아닙니다. (4343.8.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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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과 글쓰기 2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만두기


 지난 2000년부터 올 2010년까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가 3204꼭지이다. 열 해에 걸쳐 3204꼭지를 기사로 올리며 받은 글삯은 모두 12249000원이다. 글 한 꼭지에 3000원이 조금 넘고 4000원이 살짝 안 되는 셈이다. 열 해에 걸쳐 1200만 원이라면 한 해에 120만 원인 꼴이요, 다달이 10만 원이 떨어졌다는 소리이다. 글삯을 모두어 놓고 생각하면 큰돈이라 여길 테지만, 낱낱이 파고들면 하나도 큰돈일 수 없다. 열 해에 걸쳐 3204꼭지라면 거의 날마다 한 꼭지씩 기사를 띄웠다는 소리요, 날마다 기사를 하나씩 썼을 때에 다달이 10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니까, 이런 글삯은 이른바 최저생계비는커녕 최저임금에조차 닿지 않는다.

 올 2월, 누리신문 〈오마이뉴스〉 열 돌을 기린다는 자리에서 〈오마이뉴스〉 대표를 맡은 오연호 님이 지나가는 말로 슬며시 “이야, 원고료를 이천만 원이나 받은 사람이 있어요?” 하고 놀라워 한 적이 있는데, 원고료 이천만 원을 받은 분은 기사를 1000 꼭지 넘게 예닐곱 해를 썼다. 이분한테도 글삯을 한꺼번에 모두 더해 놓고 보면 큰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글 하나를 써서 띄우느라 들인 품과 땀과 나날을 헤아린다면 그야말로 푼돈일밖에 없다.

 ‘시민기자’라는 이름을 받고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글을 띄운 사람들은 큰돈을 번다거나 높은 이름값을 얻자고 글을 띄우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돈벌 생각이라면 이곳에 글을 띄울 까닭이 없다. 글을 바지런히 많이 띄운다고 돈이 될 턱이 없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이 땀과 품과 나날을 바쳐 글을 띄웠고, 어느새 조용히 사라져 간다. 나 또한 열 해라는 햇수에서 멈춘다. 열한 해라든지 열두 해라든지 스무 해를 곱다시 이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헤아린다면, 한 달 10만 원을 글삯으로 번다 하여도 살림에는 어느 만큼 보탬이 된다. 그런데 한 달 10만 원 보탬을 하자며 들이는 품과 땀과 나날은 지나치게 많다. 한 달 10만 원 보탬을 안 하면서 이만 한 품과 땀과 나날을 우리 살붙이한테 들인다면 ‘돈벌이를 적게 하면서 훨씬 한결 더욱 즐겁고 기쁘며 보람찬 삶’을 영글 수 있다.

 나는 살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집살림도 하고 바깥살림도 한다. 집살림이란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아이 씻기고 하는 모든 일이요, 바깥살림이란 살림돈이니 찻삯이니 전화삯이니를 버는 온갖 일이다. 다만 아직 다부진 살림꾼은 아니다. 살림 시늉을 하는 사람이다.

 살림이란 살리는 일이다. 돈을 벌든 집안을 가꾸든 살리는 일이 살림이다. 나로서는 다달이 10만 원을 더 버는 일이 참된 살림일까, 아니면 10만 원이라는 돈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손길을 누리는 일이 참된 살림일까.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그동안 올렸던 글에 값하는 글삯이 줄잡아 3000∼4000원이지, 요 몇 해에 걸쳐 내가 글 하나 띄우며 받은 글삯은 글마다 2000원이었다. 그러니까 글 하나 여미는 데에 몇 시간, 글 하나 여미느라 이래저래 살피고 품 파느라 여러 날을 들이며 얻어들인 돈이란 2000원이었던 노릇이다. 이 돈 2000원이란 얼마나 고마운 품값인가. 그러나 이제는 이 고마운 돈에 매이기보다 더 고마운 우리 살붙이 사랑을 아끼고 싶다. 우리 살붙이 보금자리를 튼 산골마을 바람과 물과 하늘과 흙을 어깨동무하고 싶다. (4343.8.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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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Cinemusic 2011-08-03 12:44   좋아요 0 | URL
궁금한 걸 조금 풀 수 있었네요...인기글이든 아니든 그 정도 수입이신가요?

2011-08-04 0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