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3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작은 나라가 마땅히 어여쁘다
 [책읽기 삶읽기 16] 레너드 위벌리,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를 읽다. 이 책을 쓴 레너드 위벌리 님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를 1953년에 내놓았고, 《달나라 정복기》는 1962년에 내놓았으며, 1969년에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월스트리트 공략기》를 내놓는다. 1981년에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를 내놓으며 ‘작은 나라’이지만 이름부터 ‘작지 않은(그랜드) 나라’ 사람들이 펼쳐 보이는 싱그러운 웃음을 베풀었다.

 네 작품 모두 첫머리에 모든 실마리와 줄거리가 나타나지 싶다. 《달나라 정복기》 또한 첫머리에 이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낱낱이 드러낸다. 아니, 가만히 생각하면, 첫머리이기 앞서 책이름부터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또렷이 밝힌다고 해야지 싶다. 이 작품이 1962년 미국에서 나왔음을 헤아리며 찬찬히 읽어 본다.


.. 지난해에 마운트조이 백작은 예산을 대폭 확충하여, 공국의 산 주위를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도로를 직선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다른 공약들처럼 이 역시 매년 선거 때마다 반복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랜드 펜윅 사람들은 좁아터진데다가 구불구불해서 위험하기까지 한 지금의 도로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국 내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고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고 해 봐야 자전거뿐이어서, 사고가 나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수준에 그친다는 이유도 이런 반응에 한몫하긴 했다 ..  (10∼11쪽)


 “농부들은 미국의 호의를 의심스러워하는 한편, 막대한 자금이 국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까닭에 하나같이 벤트너를 지지했다. 반면 빨래를 할 때마다 주전자에 물을 데워 나무 빨래통을 채워야 하는 주부들은 마운트조이 백작을 열렬히 지지했다(103쪽).”는 대목은 첫머리에 나온 실마리이자 줄거리를 한결 단단히 뒷받침한다. 작은 나라 ‘그랜드 펜윅’ 사람들은 조금도 바보가 아니요 얼간이 또한 아니며 멍텅구리조차 아니다. 그네들 삶에 걸맞을 빠르기를 알고, 그네들 삶을 언제나 알뜰히 즐길 줄 안다. 어마어마한 돈을 주겠다는 커다란 나라 꿍꿍이를 걱정할 줄 알며, 제 깜냥과 주제에 알맞게 조촐히 살아갈 줄 안다.

 작은 나라에 굳이 자동차가 있을 까닭이 없을 뿐더러,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할 곳이 없는 한편, 애써 자동차까지 타고 멀리멀리 나다닐 일이 없다. 작은 울타리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내는 삶이 아니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알콩달콩 웃음꽃 피우는 삶을 잘 알며 즐기기 때문이다.

 엊그제 자전거를 타고 금왕읍 장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꽤나 굵직한 공사판 옆을 지나갔다. 멀쩡한 4차선 ‘고속화 국도’ 한쪽을 헐어 살짝 구불텅한 길로 바꾸는 공사인데, 이렇게 구불텅한 길로 바꾸면서 바로 옆에 새로 닦는 고속도로(평택과 제천을 오가는 새 고속도로)하고 이어지는 샛길을 잇느라 바쁘더군. 예전 ‘반듯한’ 길은 그대로 둔 채 고속도로하고 이어질 샛길만 이으면 되는데, 애써 산을 또 깎고 아스팔트길을 새로 깐다. 그야말로 세금이 넘치니까 이런 공사를 한다. 복지와 문화와 교육에 쓸 돈이든 이 나라 환경을 알뜰히 건사하는 데에 쓸 돈이든 펑펑 넘치니까 이런 길 공사에 목돈을 퍼붓는다.

 평택과 제천을 오가도록 한다는 고속도로는 아주 우람하다. 충청북도에는 대단히 높은 산은 없으나 갖가지 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만고만한 가파른 산이 한결같이 이어진다. 새 고속도로는 이 고만고만 가파른 산꼭대기나 산중턱을 1자로 뚫는다. 거의 산 높이하고 똑같은 높직하고 굵은 기둥을 세운 다음, 이 기둥에 반반하고 두툼한 시멘트덩이를 올려놓는다. 시골마을 모습을 얼마나 망가뜨리는가를 살피지 않고, 시골 논밭을 얼마나 허물어뜨리는가를 돌아보지 않으며, 시골 산자락을 얼마나 무너뜨리는가를 헤아리지 않는다. 공사를 마치고 자동차로 이 고속도로를 씽씽 달릴 사람들 또한 아무것도 안 느끼겠지. 오로지 ‘1분을 더 줄인다’느니 ‘10분을 더 줄인다’느니 하는 숫자에 얽매이겠지. 이 나라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고속도로를 더 많이 뚫어 놓아야 한다고 얘기할 테지. 그런데, 이 나라 앞날을 생각할 때에 이 나라 자연 터전을 깡그리 짓밟는 일은 어떻게 도움이 될까. 무엇을 이바지하고 어떤 보람이 있을까.

 고속도로 둘레에 새로 올라서는 아파트가 몹시 많다. 이들 고속도로 둘레 아파트를 볼라치면 고속도로 옆으로 아파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소리막이(방음) 울타리’를 높직하게 쌓는다. 소리막이 울타리를 쌓는다고 모든 자동차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고속도로 차소리는 웬만큼 막는다지만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와 멈추는 차소리는 고스란히 울려퍼진다. 새벽녘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소리는 고요한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에 메아리처럼 울리곤 한다.

 햇볕을 쬘 권리를 바야흐로 말할 수 있고,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 소리를 안 들을 권리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연탄공장 옆에서 탄가루를 들이마시지 않을 권리라든지 제철소나 유리공장 옆에서 쇳가루와 유리가루를 들이마시지 않을 권리 또한 겨우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말할 수 있기 앞서까지는 고스란히 들이마시고 새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기차길이나 전철길 옆에서 살아 보면 안다. 아마, 돈이 많아 기차길이나 전철길 옆에서 살 일이 없는 이들은 하나도 모를 테지. 그래서 자꾸자꾸 새 자동차길만 닦으려 하고, 더 널따란 길을 놓으려 하며, 고즈넉하며 사랑스러운 삶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뽑아낼 만한 공사와 행정과 사업만 벌이려 하는지 모른다.

 다시 《달나라 정복기》를 들여다본다. “작년에 그랜드 펜윅을 지나간 자동차는 모두 네 대였습니다. 그로 인해 거위 여섯 마리와 오리 다섯 마리가 죽었고, 양 네 마리가 놀라서 새끼를 조산했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모조리 암놈들이었습니다. 또한 테드 페인터의 모친께서 그때의 자동차 소음 때문에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고생하고 계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12쪽).” 하는 대목이 첫머리에 함께 나온다. ‘작은 나라’인 그랜드 펜윅인 만큼, 이 작은 나라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넉 대가 지나가는 바람에 거위와 오리와 양 몇 마리가 다치거나 죽었는가’를 알 뿐 아니라, ‘마을 할머니 이름이며 마을 할머니 몸이 어떠한가’까지 안다. 이제 우리 나라는 몹시 커다란 나라가 되어 버린 만큼 대통령 자리에 있든 시장이나 군수 자리에 있든 구청장이나 읍장 자리에 있든 동사무소 일꾼이나 읍사무소 일꾼으로 있든 동네사람이나 마을사람 삶을 모른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 산골집 주소랑 이어진 신니면사무소 일꾼들이 산골마을 삶자락을 헤아려 줄 일이란 없다. 인천에서 지낼 때 창영동사무소 일꾼이나 동인천동사무소 일꾼이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읽어 줄 일이란 없었다. 똑같다.

 이 시골마을에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지나가고, 버스를 타기까지 어느 만큼 큰길로 걸어가야 하며, 버스는 어디부터 어디로 오가는지를 면사무소 일꾼들은 모른다. 버스는 하루에 몇 대가 오가며, 몇 시 몇 분에 오는지를 면사무소 일꾼뿐 아니라 버스회사 일꾼마저 모른다.

 지난주 음성읍 장날에 갔을 때에, 무하고 배추하고 ‘값이 좀 내렸다’는 푯말을 붙인 푸성귀 장사꾼들을 보았다. 500원인가 1000원인가 내렸다 하는 무하고 배추 값이란 아직도 3000∼5000원 안팎이다. 그런데 이 무하고 배추란 비료와 농약을 먹고 자란 무하고 배추이다. 비료와 농약을 먹지 않고 자라는 ‘유기농’ 무하고 배추는 값이 얼마일까? 이 나라 사람들은 ‘유기농’ 푸성귀 값하고 ‘화학농’ 푸성귀 값이 어떻게 다른 줄을 얼마나 알려나. 유기농 콩으로 빚으며 소포제와 유화제 따위를 안 넣은 두부 한 모하고, 화학농 콩으로 빚으며 소포제와 유화제 따위를 넣은 두무 한 모 값이 어떻게 다른 줄을 얼마나 알려나. 참말로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알면서 살아가는지 모를 노릇이다. 무엇이 ‘살아가는 즐거움’이요, 무엇이 ‘어깨동무하는 마을살이’이며, 무엇이 ‘내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다움’인지를 생각하기나 할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작은 나라’ 그랜드 펜윅 이야기를 두 권째 읽었다. 먼저 《뉴욕 침공기》를 읽었고 《달나라 정복기》가 두 권째이다. 《석유시장 쟁탈기》랑 《윌스트리트 공략기》도 재미있으리라 여기지만 석유 싸움이나 주식 다툼은 그리 돌아보고 싶지 않다. 돈을 사이에 놓고 툭탁질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거나 신나더라도 들여다보기 싫다. 하기는, 《뉴욕 침공기》나 《달라나 정복기》 모두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힘센 나라들이 서로 더 많은 돈을 거머쥐려고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작은 나라’ 사람들은 아무 욕심이 없이 ‘조용하면서 즐겁게’ 살고픈 마음에 ‘큰 나라’ 사람들한테 ‘제발 싸우지 말고 조용히 좀 지내자구’ 하는 말을 건네려고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느 책을 읽든 오늘날 한국 같은 바보 나라 뒷통수를 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작은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무기 또한 석궁 말고는 없는데, 석궁은 무기라기보다는 가끔 들새를 잡을 때에 쓰는 사냥 연장이다. 작은 나라에 있는 칼은 밥할 때에 쓰는 부엌 연장이다. 칼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돈을 빼앗는 깡패란 없다. 작은 나라에 있는 쇠붙이란 논밭을 일구는 데에 쓰는 낫과 호미와 쇠스랑과 쟁기이다. 작은 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지만, 자전거조차 안 타고 두 다리로 걷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자전거 마실도 즐거웁지만 두 다리로 한결 한갓지고 느긋하게 거닐며 ‘아름다운 자연 터전’을 마음껏 받아들이는 가운데 너른 넋을 가꾸는 삶이 훨씬 즐거우니까.

 대한민국 제주섬에는 올레길이 있다는데, 대한민국이란 나라에는 ‘따로 도보관광을 하는 길’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두 다리로 걸을 만한 데’가 거의 사라졌다. ‘따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길’을 수백 수천 억원을 들여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자전거로 홀가분하게 다닐 만한 데’가 거의 없어졌다.

 자전거길이든 거님길이든 돈으로 닦을 수 없다. 사람들 삶터이든 보금자리이든 돈으로 지을 수 없다. 마음으로 닦고 사랑으로 지으며 땀방울로 돌본다. (4343.10.22.쇠.ㅎㄲㅅㄱ)


―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달나라 정복기 (레너드 위벌리 글,박중서 옮김,뜨인돌 펴냄,2006.10.28./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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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아빠가 힘든 몸을 가까스로 버티며 글 한 조각 끄적인다. 아이는 옆에서 같이 놀아 달라며 무릎을 밟고 타며 갖은 칭얼칭얼을 다 부린다. 이러다가 아빠가 쓰는 글을 망가뜨린다. 아빠는 버럭 성을 부린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논다. 그러다가 거울을 집어 놀며 아빠도 보라며 비추어 준다. 너무 가까이 대었기에 좀 떨어뜨려야 보이지요 하니까 살살 떨어뜨려 준다. 아빠 얼굴을 비춰 주다가는 이제 제 얼굴도 보이는지 제 얼굴만 들여다본다. 이때 아빠 얼굴이 살짝 스치는데, 아이한테 성을 내며 찌푸른 이맛살 골이 그대로 파여 있다. 그래, 힘들면 그냥 쉬자. 아이도 쉬고 아빠도 쉬자. 함께 그림책 보며 잠자리에 벌렁 드러눕자. (4343.10.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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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과 글쓰기


 우리 살림집 옆 멧기슭을 탄다. 엊그제에 이어 오늘 두 번째로 멧기슭을 걷는다. 아이한테 옮은 고뿔에다가 지난주부터 떨어지지 않는 몸살로 끙끙거리면서도 아침부터 신나게 밥해서 차리고 빨래해서 널고 아이랑 놀아 주며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한 시 무렵인가 드디어 뻗는다. 아이는 한 시간 즈음 혼자 놀다가 아빠가 팔베개를 해 주며 다시 그림책을 읽히니 비로소 잠들어 준다. 아이는 한 시간 반쯤 더 낮잠을 자 준다. 아빠가 쉬를 하고 아이가 설마 쉬를 할까 싶어 기저귀를 바닥에 대어 주려는데 아이는 그사이에 쉬를 하고 만다. 1분만 쉬를 늦게 했으면 이불을 적시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아빠가 먼저 아이한테 기저귀를 깔아 주었으면 되었을 테지.

 아이는 잠에서 깬 다음 까까를 달라며 운다. 아침부터 밥을 한 술도 안 떴기에 밥을 먹으라 얘기한다. 아이는 그저 울기만 한다. 그러나 우리 집에 무슨 까까가 있나. 울고 싶으면 울라 하고 아이가 오줌으로 적신 옷가지 여러 벌을 빤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어 놓는다. 아이 엄마를 불러 세 식구가 멧기슭을 타며 숲길을 걷기로 한다. 말은 숲길이지만 길 없는 숲이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보송보송한 흙을 밟는 숲길마실이라고 할까. 몸에서 후끈후끈한 기운이 올라오며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비알진 숲길을 걷는다.

 숲길을 걷는 김에 멧느타리버섯을 다섯 송이쯤 딴다. 더 딸 수 있으나 나중에 먹을 때에 따기로 하고, 이듬날 먹을 만큼만 딴다. 올해에는 얼마 못 따는 셈이지만 이듬해에는 올해보다 더 딸 수 있겠지. 버섯 씨앗이 찬찬히 퍼지며 요 기스락에 버섯밭을 알뜰히 일구어 주기를 비손한다.

 마땅한 소리인데 작은 버섯까지 씨를 말리면 이듬해에 다시 버섯 구경을 하기 어렵다. 제법 커서 어른 손바닥만 하다 싶을 때에 따면 좋다고 느낀다. 버섯 나는 자리를 눈에 익히고서 나날이 얼마나 크는가를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멧느타리버슷임을 알고 나서 읍내 장날에 마실을 갔다가 마을사람들이 파는 멧느타리버섯을 보았다. 이 버섯은 얼마든지 사서 먹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따로 비닐집이나 밭을 일구어 거둔 버섯이 아니니까. 척 보아도 알아볼 수 있다. 할매나 아지매가 산을 타며 딴 멧버섯은 값이 퍽 눅다. 마트에서 비닐팩에 담아 파는 버섯과 견주면 부피가 훨씬 많은데 값이 싸다. 아마 이 버섯은 아는 사람만 알아보며 사 먹지 않을까. 게다가 이 버섯은 아는 사람이라면 시골에서는 으레 몸소 산을 타며 따서 먹을 테고.

 먹으면 안 되는 버섯은 조금 뜯어 살살 물어 보면 쓴맛이 돌아 얼른 뱉게 된단다. 먹으면 되는 버섯은 아무 말썽이 없단다. 도감을 보아도 되지만, 스스로 몸으로 깨우칠 수 있단다. 좋은 글을 읽는 사람은 누가 ‘이 글이 참 좋답니다’ 하고 말해 줄 때에만 좋은 글임을 깨달을까. 따로 추천하거나 칭찬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이 글이 참 좋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가. 글 한 줄 쓰는 사람은 글쓴이 스스로 내가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는지 깨닫는가. 내가 쓴 글이 어느 때에는 참으로 좋고, 어느 때에는 참으로 얄궂은가를 깨닫는가. (4343.10.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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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책읽기를 즐겨 한다. 놀 수 있는 몇 가지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 그런데, 밥을 차린 자리에서는 밥을 먹어야지. 왜 밥은 안 먹고 책을 보느냐고요. 책은 밥 먹고 보셔요. 

 - 2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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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0.20.
 : 잠자리밭 달리기


- 금왕읍(무극읍)에 먹을거리를 사러 가다. 가방에는 쓰레기 한 봉지를 담는다. 시골집 둘레로는 쓰레기를 거두러 오는 차가 없다. 도시라면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차가 오갈 뿐 아니라, 사람이 꽤 많이 사는 데에서는 날마다 쓰레기봉투를 거두러 다닌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에는 한 달에 한 번조차 쓰레기차가 다녀 가지 않는다. 시골집에서는 쓰레기를 그냥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우리 집이야 비닐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사비닐이 나올 까닭이 없지만, 농사짓는 이웃집들은 비닐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비닐을 읍이든 면이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땅에 묻거나 태운다. ‘국산 곡식’을 사들인다는 농협이라고 비닐 쓰레기를 거둘까?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농약 담은 병이랑 막걸리 담은 플라스틱이랑 땅에 심어 놓던 비닐을 고스란히 쓰레기로 내놓으니 모조리 땅으로 흘러들고야 만다. 정갈한 자연 터전이란 건사하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작은 쓰레기는 작은 봉지에 담아 읍내에 나갈 때에 버스역 쓰레기통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쓰레기통에 넣는다.

- 집을 벗어나 논둑길을 달린다. 볕 잘 드는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아주 많이 앉아 있다. 내 자전거가 지나갈 때에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차근차근 날갯짓을 한다. 입을 벌리고 달리다가는 잠자리가 입에 들어갈 수 있다. 얼굴이고 안경이고 몸이고 잠자리가 부딪는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춘다. 자전거가 너무 빨리 달리면 잠자리가 다칠 테니까.

- 자동차 씽씽 달리는 큰길로 나오니 잠자리는 거의 안 보인다. 다만, 드문드문 몇몇 잠자리가 보이는데 이 잠자리들은 머잖아 자동차한테 밟혀 죽거나 치여 죽겠지. 자전거로 달리는 길 가장자리에는 밟혀 죽거나 치여 죽은 잠자리 주검이 잔뜩 있다. 이제 나비는 거의 안 보인다. 나비들은 벌써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군 생극면과 금왕읍으로 갈리는 세 갈래에서 금왕읍 길로 접어들어 오르막을 달린다. 조금 달리니 새 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왜 새 길을 내야 할까 궁금하다. 예전 길이 뭐 말썽이 있다고. 예전 길은 그대로 둔 채 새로 닦는 고속도로하고 잇는 길 하나만 내면 되는데. 이 길을 새로 닦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일부러 산자락을 제법 파헤쳐서 안쪽으로 길을 냈고, 예전 길이 있던 자리에는 중앙분리대를 널찍하게 만들었다. 참 돈 쓸 데가 많은 대한민국이다.

- 읍내에 닿다. 마침 오늘은 무극 장날. 여느 날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장날 때에만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시골 작은 가게들은 온통 하나로마트한테 잡아먹혔다. 도시에서는 이마트이니 롯데마트이니 홈플러스이니 하지만, 시골에서는 작은 면에까지 하나씩 있는 하나로마트가 마을사람 살림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 하나로마트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삼으며 즐겨찾는다.

- 장마당이 펼쳐진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며 걷다. 늘 들르는 묵집에서 묵 하나 사고 옆집에서 찐빵을 사려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단다. 한쪽 다리를 저는 아주머니가 길바닥에 펼쳐 놓은 능금 한 봉지를 사다. 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2500원어치씩 사다. 음성읍 떡볶이집보다 값이 좀 세고 부피 또한 좀 적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했던 닭튀김을 사다. 더 살 거리는 없기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따뜻한 먹을거리가 식기 앞서 집에 닿으려고 신나게 오르막을 달린다. 읍내로 올 때에는 빈 가방에 내리막이기에 땀방울이 안 돋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오르막이요 꽉 찬 가방이니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는다.

- 공사하는 자리를 지나 대원휴게소 못 미친 굽은길 내리막을 달린다. 관광버스 한 대가 갑자기 자전거 쪽으로 달라붙는다. 굽은길 내리막을 달릴 때에 자전거 쪽으로 버스를 밀어붙이니 자전거는 옴쭉달싹 못할 뿐 아니라 도랑에 처박혀야 한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잡는다.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고, 도랑에 처박히지도 않다. 2차선 길이 아닌 4차선 길이며 오가는 차가 드물어 관광버스는 안쪽 길로 달리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자전거 옆으로 바짝 붙다가는 밀어붙인다. 버스기사는 차를 몰며 심심하기에 시골에서 자전거 달리는 사람을 노리개로 삼는가. 자칫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판이나, 죽이든 다치게 하든 얼른 내빼면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알 턱이 없으니 완전범죄가 된다고 여겨 이런 짓인가. 이런 못된 짓거리 때문에 누가 치었는지 모르며 숨을 거두는 마을 할배가 얼마나 많았을까. 이런 못난 기사들 때문에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는 마을 아이가 얼마나 많았으랴. 불쌍하다. 안쓰럽다. 가엾다. 안타깝다.

- 마을길로 접어들다. 다시 논둑길을 달린다. 집을 나서며 나를 배웅하던 잠자리떼가 나를 맞이해 준다. 잠자리들은 날갯짓 바지런히 하며 내 둘레를 오락가락한다. 내가 아주 천천히 달리면 내 머리에든 몸에든 살포시 내려앉겠지. 집에서 빨래를 마당에 널 때면 잠자리들이 빨래에든 내 손에든 내 옷에든 가만히 내려앉곤 한다. 이 잠자리들은 곧 추위가 닥치면 모두 숨을 거두겠구나. 잠자리한테는 마지막 햇살을 쪼이는 나날이요, 바라보고 마주하며 만나는 모든 목숨과 풀과 하늘과 흙과 물이 하나같이 애틋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잠자리라 하여도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 옷이나 머리나 손이나 자전거 손잡이에 얌전히 내려앉고 싶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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