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책읽기 3


 사진을 찾으러 인천으로 온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역 사진쟁이한테서 작품을 사는 미술은행을 연다고 하기에 나도 작품을 내놓아 보았다. 작품과 함께 ‘포트폴리오’라는 녀석을 A3크기 파일에 담아서 내라고 했기에, 골목 사진 가운데 80점을 추려 두 권을 만들어 냈다. 이제 이 사진첩을 도로 가져가야 하는 터라 모처럼 인천 마실을 한다. 문화재단에서 착불 택배로 돌려주면 좋으련만, 이곳 사람들은 할 일이 많으니까 작품을 낼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내도록 하고, 작품을 돌려받을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받도록 한다.

 공모에 붙었다면 인천마실이 한결 홀가분했을 테지. 공모에 붙지 않았으니 무거운 사진첩을 돌려받으러 가는 길이 마뜩하지 않다. 그러나 내 사진 80점을 그냥 둘 수 없는 노릇이다. A3 크기로 사진을 80점 만들자면 돈이 얼마인데. 생각해 보면, 작품을 산다 할 때에 문화재단에서 먼저 나서서 작품을 살 테니 몇 점 내놓으시오 하고 말해야 옳지 않나 싶다. 사진쟁이 스스로 ‘나는 이런저런 작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기 앞서 문화재단 일꾼이 알아보고 찾아와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다. 참말 지역 작가를 돕고 싶다면, 지역 작가를 문화재단이 꼼꼼히 알아보고 살피면서 돕는 길을 헤아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 때에 돈이 얼마인데. 품이 얼마인데. 땀이 얼마인데.

 그러나 내가 섣불리 헛꿈을 꾸었으니까, 배부른 김치국을 마셨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런 말이나 하는 셈일는지 모른다. 그래, 내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땀을 들여 찍은 사진을 내가 고이 여기며 사랑하고 싶어, 이 사진을 돌려받으려고 인천으로 마실을 나왔고, 마실을 나오는 김에 가을녘 골목 삶터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보태려는 헛마음을 품지 말자. 나 스스로 좋은 내 사진을 즐겁게 찍기만 하자. 이런저런 공모에 어설피 내놓지 말자. 내 골목 사진을 좋아하는 골목 이웃한테 거저로 나누어 주는 일을 다시금 조용히 이어가자.

 어제 낮에 부랴부랴 서울로 오고, 서울에서 헌책방 두 군데와 만화가게 한 군데를 들렀다. 책값으로 30만 원을 알뜰히 썼고, 가방이 미어터져 헌책방 일꾼한테 택배를 한 상자 맡기고 밤 전철을 타고 인천에 와서 여관에 묵는다. 고단한 하루인 터라 전철에서 내내 서서 오는 동안 더 고단한데, 만화책 한 권을 꺼내어 읽으며 고단함을 잊는다.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로 내놓은 만화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0) 1권을 읽는다. 오자와 마리 님 새 작품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PONG PONG》 세 권 다음으로 《민들레 솜털》이 나왔는데, 《민들레 솜털》은 2권까지 번역된 뒤로 3권이 아직 번역이 안 되었다. 어쩌면 일본에서도 3권이 아직 안 나왔으니 번역을 안 할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오자와 마리 님 만화는 썩 사랑받지 못한다. 찾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고 느낀다.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전철에서 구석에 서서 홀로 싱긋빙긋 웃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고단함을 잊고 시끄러움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다리가 아픈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고, 시골집에서 아이랑 아이 엄마랑 힘겨이 복닥이는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내 가방에는 시골집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이 잔뜩 들었다. 헌책방에서 택배를 맡길 때에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은 하나도 안 넣었다. 그림책은 모조리 내 가방에 넣어 질끈 짊어지고 돌아갈 생각이다. 아빠를 기다리는 딸아이한테 곧바로 보여주고 싶어, 어깨가 무겁고 등허리가 휘지만 열 몇 권 장만한 그림책은 기꺼이 짊어지고 돌아가려 한다. 그러니까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에도 이 책은 고스란히 짊어질 노릇이다.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알이 배기면서 딸아이와 함께 즐길 그림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쳐메고 골목을 몇 시간 걷자면 참 힘들겠지. 그렇지만 뭐 어떠랴. 어깨를 누르는 무게를 기쁘게 느끼면서 사뿐사뿐 거닐고 나긋나긋 사진을 찍어야지. 시골로 돌아가는 길에는 고속버스가 아닌 무궁화 기차를 타고 싶다. (4343.1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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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9 08:31   좋아요 0 | URL
인천사는 분이야 왔다갔다 할수 있지만 지방 사는 분한테는 좀 너무한 처사군요.문화재단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인가 보지요.마치 공무원 같네요 ㅜ.ㅜ

파란놀 2010-10-29 08:59   좋아요 0 | URL
'인천 출신 작가'도 문화재단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천 무대를 소재로 하는 작가'도 지원을 받는데, 이런저런 '마음씀'이란 따로 없답니다 ^^;;;

어차피 공무원이니까요... 어쩌면 '공평'한 노릇이라 할는지 모르지요...
 

  포대기이자 작은 아기 담요를 똘똘 말고 책꽂이 벽에 붙어 책을 깔고 앉은 아이. 2분쯤 이렇게 앉아 놀다가 책이 무너지며 앞으로 자빠졌다. ㅋㅋ 

 - 2010.10.26.

 

오늘은 덤으로 '사진쟁이 어린이'를 걸친다. 사진쟁이 어린이 모습은 날마다 (나와 애 엄마는) 보니까 너무 흔한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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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7 10:59   좋아요 0 | URL
ㅎㅎ 아드님이 귀여워 보이시네요^^

파란놀 2010-10-27 12:44   좋아요 0 | URL
아... 딸이옵니다 (__)

카스피 2010-10-29 08:32   좋아요 0 | URL
ㅎㅎ 다시보니 귀여운 따님이세요^^

드팀전 2010-10-27 12:06   좋아요 0 | URL
^^ 따님 아니던가 ^^ 아이 표정에서 어떤 힘이 느껴집니다.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인가 싶기도하네요.

파란놀 2010-10-27 12:45   좋아요 0 | URL
네, 딸이랍니다 ^^;;;
그저 아이 나름대로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또 제 줏대를 잘 다스린다고 느껴요. 가만히 보면 아빠하고 엄마는 잘 안 닮고 할아버지하고 이모를 닮은 듯한... -_-;;;;

워너군 2010-10-27 13:06   좋아요 0 | URL
근래 본 꼬마들 중에 단연 으뜸입니다. 드팀전님 말씀마따나 다른 아이들이 갖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누구 닮은들 어떻습니까 ㅎ

파란놀 2010-10-28 05:40   좋아요 0 | URL
음.. 좋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딸아이를 한결 애틋하게 사랑하면서 잘 살아야겠어요..
 

  춥지만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올여름 파랗던 하늘을 떠올린다. 아침에 마당에 보니 물이 얼었다. 물이 어는 이런 날 빨래는 한낮에 널어야 한다. 겨울날 골목빨래를 올해에는 사진으로 얼마나 담을 수 있으려나.

- 2010.8.22. 인천 동구 금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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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집 평화 발자국 3
이승현 글 그림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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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는 돈 좋아하는 사람만 남으라 하자
 [만화책 즐겨읽기 7] 이승현, 《파란집》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신문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때에도 우리 살림집에는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로 들어와 홀살이를 처음 할 때에는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잤습니다. 날마다 신문을 돌리며 날마다 열세 가지 아침신문(스포츠신문 두 가지랑 경제신문 하나까지)을 읽었습니다. 신문배달 일꾼으로 지내던 삶을 마감하고 책마을 일꾼으로 바뀐 1999년 여름부터는 내가 돌리던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신문을 영 보아 주기 힘들다고 느껴 끊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차마 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신문배달 일꾼으로 여러 해를 살았거든요. 사람들이 신문을 끊으면 ‘신문사 본사’가 아닌 ‘신문사 지국’이 피를 봅니다. 신문사 본사는 ‘독자 구독료’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문에 나는 광고 값’으로 움직이는 신문사입니다. 독자 구독료는 신문사 지국이 살아가는 돈입니다. 그나마 신문사 지국은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지국을 차릴 때에 신문사 본사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냅니다. 독자 구독료 가운데 꽤 큰몫을 본사로 보냅니다. 신문사 지국으로서는 기자가 받는 달삯보다 훨씬 적은 돈을 독자 구독료에서 떼어 일삯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지국장쯤 되어야 그럭저럭 ‘살림을 꾸릴 달삯’이 될 뿐, 총무라 하여도 신문배달 달삯으로는 살림을 꾸리지 못합니다. 여느 일꾼들은 달삯이 몹시 적습니다. 지국에서 먹고자는 일꾼이 가장 잘 받고, 알바 대학생이 둘째로 받으며, 아줌마가 셋째로 받고, 중·고등학교 알바생이 넷째로 받으며, 초등학생이 막째로 받습니다. 똑같은 부수를 돌리더라도 받는 일삯이 꽤 크게 벌어집니다. 이렇게 계급을 두어야 지국장은 조금이나마 돈을 더 챙길 수 있고, 신문에 넣는 광고종이는 오로지 지국 몫인데, 이 몫은 으레 지국장이 다 챙깁니다. 이리하여, 신문 독자가 신문을 끊으면 지국은 벌이가 하나 줄 뿐 아니라 본사에 벌금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신문배달을 그만두던 1999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는 지국이 본사로 ‘독자 한 사람이 신문을 끊을 때마다 5만 원’씩 물도록 했습니다. 거꾸로, ‘지국에서 독자 한 사람을 늘리면 본사에서 5만 원’을 줍니다. 조·중·동이라 일컫는 신문사 지국은 이 ‘벌금이자 성과금’이 더 센 줄 압니다. 이런 형편을 아니까, 신문에 실리는 글이 영 못마땅해도 지국 일꾼들 살림살이가 걱정스러워 신문을 끊지 못했는데,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서울을 떠나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기던 2005년에 이르러 겨우 신문을 끊습니다. 이때부터는 어떠한 신문도 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은 1994년부터 끊습니다. 텔레비전 있는 집에 찾아갈 때라든지 밥집에서라든지 옆지기 어버이 댁에서만 방송을 봅니다. 있으니 같이 보는 셈인데, 신문을 읽던 지난날이든 더러더러 방송을 함께 봐야 하는 오늘날이든,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이야기란 언제나 도시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도시사람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거의 모두 서울사람 이야기에 머뭅니다. 부산이나 대구 이야기라든지, 서울하고 가까운 인천 이야기라든지, 다른 도시 이야기는 참말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95%가 서울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서울이라는 큰도시에서 제법 잘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대사 한 줄조차 없으나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보는 만화가 아니라 읽는 만화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넘기는 만화책이 아니라, 그림에 서린 이야기를 읽는 만화책입니다.


.. 희망을 안고 파란집에 끝까지 남았던 영혼들께 바칩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앞쪽에 그린이 말이 깃듭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서울 용산에서 잿더미가 되고 만 가난하고 가녀린 사람들 삶을 담았다고 합니다. 아마,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이라는 이름이 붙어 쫓겨나거나 죽어야 했던 사람들 삶만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만히 헤아리면 서울 용산뿐 아니라 온나라 곳곳에서 쓸쓸하고 슬프게 쫓겨난 모든 가난한 사람들 삶터와 삶자락을 담았다고 해야 한결 알맞을 테지요.


.. 아내가 열이 나 아팠습니다. 그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라고 지나쳤는데, 오늘 제가 열이 펄펄 끓습니다. 제 몸이 아프니까 그제야 아내의 아픔이 이해가 됩니다. 왜 그때 좀더 관심을 갖고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뒤쪽에 그린이 말이 다시 깃듭니다. 그린이는 늦쟁이라 할 만합니다. 제때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 아니라 느즈막히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도 느즈막히 헤아린다면 고맙지요. 느즈막히는커녕 죽는 날까지 못 헤아리는 바보스러운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데요. 대학교까지 나온들, 대학원까지 다닌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들,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된 삶을 살피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요.

 《파란집》이란 서울 용산에만 있지 않으며, 서울 용산에만 있을 턱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울 용산 이야기는 그럭저럭 서울 한복판에서 살던 사람들 이야기라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납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한 줄로조차 안 다루는 온나라 곳곳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삶이 매우 많습니다. 이 많은 아픈 삶을 그려 주는 이는 드물고, 이 숱한 가난한 울음과 웃음을 고이 담아 주려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보고 읽고 곰삭이고 되뇌고 돌아봅니다. 자그마한 내 살림집에서 올망졸망 오순도순 알뜰살뜰 지내던 사람들은 ‘더 커다란 돈’을 노리는 사람들 손아귀에서 생채기를 잔뜩 받은 채 쫓겨납니다. 재개발은 서울 강남 같은 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값싼 땅을 아파트로 바꾸어 비싸게 팔아야 큰돈이 되지, 비싼 땅 아파트를 허물어 다시 지어서는 큰돈이 되지 않습니다. 재개발업자라든지 정부 건설 부서에서는 ‘땅값하고 집값이 싼 가난한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집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살림살이로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일수록 재개발 값어치가 클 뿐 아니라 ‘이렇게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란 늘 개발 반대 목소리가 불거지는 곳’이니 얼른 밀어내려고 합니다. 권력자한테는 돈이 큰 값어치일 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소담스레 나누는 공동체 또한 얄궂은 걸림돌이니까요. 돈은 돈대로 벌면서, 사랑스러운 작은 동네를 허물어야 검은 꿍꿍이를 언제까지나 이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갈 데가 없어 버티던 작은 사람들은 이슬이 됩니다. 또는 잿더미가 됩니다. 일자리가 없어 도시로 몰려들던 사람들은, 더 큰 도시로 찾아오던 사람들은 작은도시로든 시골로든 돌아가지 못합니다. 도시로 찾아와 일자리를 찾던 어버이가 낳아 키우던 아이들은 시골을 모릅니다. 시골로 갈 마음을 품기 어렵습니다. 치고박고 다투어야 하는 도시에서 내 작은 살림 꾸릴 뿐 아니라 ‘셋집에서 집임자로 거듭나기’를 꿈꿀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집삯을 내더라도 도시에서 일자리를 붙잡으며 도시에서 버티려 할 뿐, 시골 논밭을 일구며 스스로 벌고 스스로 쓰며 스스로 살아가는 땀맛과 손맛을 찾으려 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인크루트라고 하나, ‘일자리를 알음알이 해 준다’는 여러 가지 매체가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대학생 일자리를 걱정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이든 저런 일자리이든 하나같이 도시에서 펜대를 붙잡거나 기계 손잡이를 붙잡는 일자리입니다. 쟁기와 낫과 삽과 호미를 드는 일자리란 없습니다. 시골에서조차 농업고등학교란 사라졌는데,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농사꾼 가르치는 학교는 없고, 농사꾼 가르치는 교과서 또한 없습니다. 게다가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안 쓰면서 거름을 만들고 땅심과 밥심을 살리는 교과서란 아예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 귀퉁이라든지 방송 끄트머리에라도 실리지 않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도시에서 아프게 살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 생채기를 살뜰히 그렸습니다. 그래요, 도시에서는 ‘파란빛’ 집이겠지요.

 그렇다면 ‘푸른빛’ 집이란 없으려나요. 하늘과 바다는 파란 빛깔입니다. 땅(흙)은 누런 빛깔입니다. 하늘(파랑) 기운과 물(파랑) 기운을 받으며 땅(누렁) 기운을 얻어 자라나는 새 목숨 풀·꽃·나무·열매는 푸른 빛깔입니다. 재개발 보상금이나 이삿돈은 그야말로 코딱지돈이라 할만큼 적은데, 이 적다 하는 돈은 도시에서는 적을지라도 시골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꿈을 꿉니다. 저는 ‘파란집’ 꿈보다는 ‘푸른집’ 꿈을 꿉니다. 큰숲에 깃들던 작은 집에서 살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살림집은 바로 푸른집이었습니다. 재개발 보상금으로는 도시에서 새 살림집을 마련하기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새 살림집을 넉넉히 마련하여 조용하고 오붓하며 신나게 살아갈 수 있답니다. 도시 한켠 가난한 골목동네를 싹 쓸어내어 재개발을 할라치면, 그래요 다 떠나 주지요. 다 옮겨 주지요. 한 동네 사람들 통째로 시골로 옮겨 가지요. 도시에서는 돈있고 힘있고 이름있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 보라지요. 버스기사랑 전철기사도 가게 장사꾼도 청소부도 전기회사 일꾼도 헌책방 사장님도 택배기사도 모두모두 시골로 옮겨 주지요. 국회의원 대통령 재벌총수 의사 판사 검사 같은 분들만 도시에 덩그러니 남아 스스로 잘 살아 보라고 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시골에서 스스로 땅을 일구며 스스로 작은 집에서 서로서로 벗삼으며 마을잔치 즐기며 살아갈 테니까, 가멸찬 분들은 도시에서 300평짜리 아파트를 지어 떵떵거리며 살아가라지요. 도시에서는 파랗디파랗 아파트를 높디높게 올려세우며 살라 하고, 시골에서는 푸르디푸른 살림집을 살붙이들 어우러질 만큼 조그맣게 마련하여 살아가면 되지요. (4343.10.27.물.ㅎㄲㅅㄱ)


― 파란집 (이승현 글·그림,보리 펴냄,2010.1.2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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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사 지국은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지국을 차릴 때에 신문사 본사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냅니다라고 하셨는데 조중동은 그렇다고 언젠가 PD수첩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한계레까지 그럴줄은 몰랐네요.

파란놀 2010-10-27 12:44   좋아요 0 | URL
제가 일하던 한겨레 서울 아무개 지국은, 어느 날 이런저런 회계정리를 하다가 문득 영수증을 보고 알았는데, 2천만 원을 내셨더군요. 그때에는 신문사 지국을 여는 데에도 경쟁이 많아 꽤 목돈을 내야 했습니다만, 한겨레신문 지국을 차리려는 이들은 신문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부금처럼 낸다고 생각했다고 들었어요... 어찌 되었든 다 '장사'이니까 이런 돈을 받을밖에 없어요...
 
낮은 山이 낫다
남난희 지음 / 학고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가난하고 어리숙하며 미련한 사람이 낫다
 [책읽기 삶읽기 10]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밤에는 늘 몇 차례 잠을 깬다. 아이가 자면서 오줌을 누느라 젖은 기저귀를 갈아 주려고 잠을 깨고, 아이가 오줌을 누지 않았더라도 새벽에는 으레 깬다. 새벽 두 시부터 시간마다 한 번씩 깬다.

 몸이 괜찮다면 새벽 두 시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글쓰기를 한다. 몸이 조금 무거우면 세 시에 일어나고, 아무래도 찌뿌둥하다면 네 시에 일어난다. 몸이 제법 무거우면 다섯 시에 일어나고, 몸이 퍽 고단하면 여섯 시에 일어난다. 고뿔이 들었다든지 어디가 아프다면 일곱 시에 일어난다.

 오늘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 어젯밤 아이하고 좀더 신나게 놀면서 일찍 잠들었다면 세 시나 네 시쯤에는 일어났겠지.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살짝 마을을 돈 다음 들어와 책도 읽으며 열 시 즈음 잠들었기에, 네 시나 세 시에 잠을 깨기는 했지만 아이가 오줌을 눈 줄 알면서도 일어나지 못한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이 같은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글쓰기를 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희뿌윰히 밝아 오는 빛살을 느끼며 일어난다든지, 하늘에 걸린 달이 드리우는 빛무늬를 받으며 일어난 적이 없다. 고요히 잠든 골목동네에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이나 우유를 돌리는 사람들 소리, 웃집 젊은이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비적비적 섬돌을 밟으며 중얼중얼 올라가는 소리, 깊은 새벽에도 시끄럽게 골목을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깨곤 한다. 몸이 먼저 날씨와 때를 느끼어 받아들이기 앞서, 갖은 소리와 불빛이 내 몸을 건드린다.

 새벽 두어 시든 서너 시든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얌전히 깔아 놓는다. 시골집은 많이 추우니까 이불을 바닥에 잘 깔아 놓아 따스함이 날아가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발소리를 죽이며 큰방으로 나오고, 쉬를 누러 바깥으로 나온다. 달빛과 별빛이 앞마당으로 쏟아진다. 깊은 새벽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우는 보름달이 몹시 밝다. 어제도 밝고 그제도 밝더니 오늘 또한 참 밝다. 둘레에 다른 빛이 없기 때문일까. 날이 꽁꽁 얼면 달빛이 더 밝다고 했더니, 오늘은 어제보다 달이 살짝 이울었으나 빛무늬는 훨씬 널따랗게 퍼진다. 올망졸망 별빛 또한 참으로 반짝반짝 밝다. 이렇게 밤빛이 곱고 좋은데, 굳이 한국전력에 전화해서 등불 하나 세워 달라 할 까닭이 없다. 멧기슭 집이라 밤손님이 들까 걱정스럽다는 어르신 말씀이 있으나, 가난한 멧기슭 집까지 뭔가를 얻으러 찾아들 밤손님이라면 얼마나 배를 곪는다는 소리일까. 아니, 예까지 뭔가를 훔치고 돌아갈 생각으로 찾아올 밤손님이라면 얼마나 다리가 아플까. 버스도 전철도 택시도 없는 이런 멧기슭에.

 멧기슭에서 젊은 나날 꿈을 길어 올리다가 그예 멧사람으로 살아가는 남난희 님이 쓴 《낮은 산이 낫다》(학고재,2006)를 읽었다. 이 책에 앞서 《하얀 능선에 서면》(수문출판사,1990)을 읽었다. 《하얀 능선에 서면》은 꽤 팔리거나 읽혔는지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어렵잖이 한 권씩 보곤 한다. 산을 타는 이야기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 여러 해 동안 《하얀 능선에 서면》을 들추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이 책이 왜 이렇게 자주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럼 한번 구경이라도 할까 싶어 처음으로 들추어 보는데, 뜻밖에 이야기가 아주 좋았다. 늘 손에 쉽게 닿는 자리에 있으나 돌아보지 않던 책인데, 생각해 보면 내 곁에서 내 손길이 뻗기를 오래도록 기다리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낮은 산이 낫다》라는 책을 읽으면 “서구의 알피니즘이 들어오면서 산은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더 빨리, 더 힘든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게 되었다 …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면 아이의 동심이 부러워진다. 아이는 온몸으로 산과 만난다. 나무를 껴안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도 한다(11쪽).”는 대목이 나온다. 남난희 님은 ‘겨울 백두대간 걷기’를 여자로서는 꽃등으로 해냈다고 한다. 여자로서는 꽃등으로 하든 남녘에서 꽃등으로 하든 그다지 대단한 일이 되지 않는다. 첫째이건 둘째이건 막째이건 무슨 대수랴. 백두대간을 타든 동네 뒷산을 타든 다를 바 없다. 어떤 길을 얼마나 걷든 똑같이 산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남난희 님 《하얀 능선에 서면》을 읽으면서 ‘이분은 참 멧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래, 헌책방에서 《하얀 능선에 서면》을 한참 서서 읽다가 책값을 셈하자니, 헌책방 할배가 넌지시 한 말씀 했다. “이거, 참 재미있는 책이지? 이 사람 참 재미있는 양반이더구만. 좋은 책이지.” 그 뒤로 이 책을 몇 권 더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해 보는데 이 책을 받은 벗님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냥 산 타는 이야기’쯤으로 여길는지 모르고, 다른 읽을거리가 많아 바빠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남난희 님은 《낮은 산이 낫다》에서 당신 삶이 찬찬히 무르익은 한결 고즈넉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나라 고무신은 참 좋다. 우선 ‘가격이 싸고 어디서나 쉽게 신고 벗을 수 있고 발이 편하고 비교적 질기며 보기도 좋다. 간편하게 세탁하여 빨리 신을 수도 있고, 신다가 버려도 그리 아깝지 않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등 장점이 무수히 많다(27쪽).”는 대목을 읽으며 피식 웃는다. 아주 맞는 소리이니까. 산을 탈 때에도 고무신이 퍽 좋다. 산을 고무신을 신고 한참 타다가 나중에는 신을 벗어 가방에 넣고 맨발로 타면 더욱 좋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남난희 님도 고무신을 신고 산을 타다가 맨발로 바꾼 적이 잦지 않을까. 나는 2004년에 고무신을 처음 신었는데 이때에 한 켤레 값이 3000원이었다. 2009년까지 이 값이었는데 2010년에 접어드니 장마당에서 고무신을 구경하기 어렵다. 고무신은 플라스틱신과 견주어 딱딱해서 시골에서도 잘 안 신으니까 공장에서 더 안 만든다고 했다. 2004년에 3000원 하던 값은 1000원인가 1500원 오른 값이라고 했다. 남난희 님이 고무신을 처음 신던 무렵에는 한 켤레에 1000원이나 1500원쯤 하지 않았으랴 싶다. 그때에도 웬만한 운동신은 2만 원을 웃돌았을 테니까 고무신 한 켤레를 신어 한두 해 보내면 신값을 얼마나 아끼는 셈일까. 고무신을 신으며 늘 느끼지만, 고무신 생김새가 참 곱다. 고무신은 신는 동안 차츰 닳는데, 닳아 가는 생김새 또한 꽤 곱다. 여느 운동신은 신을수록 모양이 뒤틀리고 망가지면서 볼품이 없다.

 “얼마 전 그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는 의사의 퇴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수술을 했다고 한다 … 나는 이 이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 산중에서 맞는 봄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새소리에 단잠을 깨고,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갓 돋아난 잎들, 갓 피어난 얼레지와 제비꽃은 또 얼마나 예쁜지 … 정말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이렇게 충만하고,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깨끗한 곳에서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95∼100쪽).” 하는 글월을 읽는다. 농사짓는 착한 사람이 옹기종기 모인 시골마을도 좋고, 이웃집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멧기슭도 좋으며, 바다랑 이웃하는 마을도 좋다. 꼭 알맞게 모여 마을을 이룬 시골일 때에 살기 좋다. 살기 좋은 마을이라면 아이를 낳기에도 좋으며,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도 좋다. 아이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벌레소리에 귀를 쫑긋한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느낄 수 있고, 구름이 흐르는 모양을 느긋하게 올려다볼 수 있다. 도시에서 서른 해쯤 살아오는 동안 도시사람 가운데 구름 구경을 느긋하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은 다섯 번이 채 안 된다. 도시에서는 구름도 하늘도 바람도 무지개도 별도 달도 해도 느긋하게 올려다보며 마주하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 아니지. 도시에서는 자연을 가까이할 수 없다. 도시에서 살며 자연을 가까이하려 든다면 돈벌이에 뒤처질밖에 없고 끝없는 다툼과 겨루기에서 밀릴밖에 없다. 도시에서는 자연일랑 까맣게 잊어야 한다. 도시에서는 자연은 어린이한테 읽히는 ‘자연그림책’이나 ‘생태도감’ 같은 책으로만 읽히면 된다. 날마다 몸에 넣는 밥이 바로 자연임을 느낄 수 없고, 언제나 나를 살도록 하는 님이 자연임을 깨달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 동네라는 골목동네 사람들이 자그마한 꽃그릇에 자그마한 꽃이나 푸성귀를 기르는 도시농업을 진작부터 해 왔지만, 한국에서 환경운동이니 무어니 하는 사람들은 한국땅 골목동네 ‘도시 생태 농업’을 느끼지 못하면서 으레 쿠바로 가느니 생태도시 아바나라느니 떠들기만 한다.

 “장난감이 넘치는 도시 아이들이 얼마나 가지고 놀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직접 만든 물건을 선물하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더 클 것이다 …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땅의 위대함을 보고 배운다면 참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125, 222쪽).” 하고 읊는 글월을 두고두고 곱씹는다. “이곳에서 살다 보니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조금은 알 듯하다. 땡볕 아래서 밭매기를 하지 않고 편하게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아는데, 땀을 흠뻑 흘리며 풀을 뽑는 고생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농산물이 깨끗하고 충실해야만 제값을 받을 수 있으니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를 안 칠 수 없어서 그렇게밖에 못하는 것이다(69쪽).” 같은 글월을 되씹는다. 시골사람은 농사를 지으며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써야 한다. 푸성귀나 곡식을 기르든, 고기소나 고기돼지나 고기닭을 기르든 매한가지이다. 도시사람은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에 커다란 마트에서 더 값싸게 파는 물건을 장만할밖에 없다. 시골사람은 오롯이 유기농사를 짓기 힘들고, 도시사람은 생활협동조합을 함께하며 생협 물건을 쓰기 어렵다. 모두 똑같은 걱정을 안고 똑같은 굴레에 빠져 허덕인다. 서로 만날 길이 없고 서로 사귈 틈이 없다. 함께 어깨동무할 짬이 없고 함께 손을 맞잡을 마음이 없다.

 이리하여 남난희 님은 “낮은 산이 낫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알아들으며 살아갈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은 어디에 얼마나 있으려나. 가난한 사람이 낫고, 적게 배운 사람이 나으며, 못생기거나 키가 작거나(또는 멀대 같거나) 힘이 여린 사람이 나은데, 이 흐름을 알아채며 오순도순 어깨를 겯을 사람은 이 나라에 얼마나 되려나. 글솜씨가 어리숙한 사람이 낫고, 착한 사람이 나으며, 미련한 사람이 나은 줄, 이 땅에서는 얼마나 알아들으며 헤아릴 수 있으려나. (4343.10.27.물.ㅎㄲㅅㄱ)


― 낮은 산이 낫다 (남난희 글,학고재 펴냄,2004.6.28./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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