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우리 말 66] Giftishow기프티쇼

 ‘Giftishow’라 적은 밑에 작은 글씨로 ‘기프티쇼’라 적어 줍니다. 참으로 마음이 넓기 때문인가 싶으면서도, ‘Giftishow’는 ‘기프티쇼’가 될 수 없으나, 이러한 말마디가 찬찬히 퍼지면서 스며듭니다. ‘Gifti’란 무엇일까요. 또, ‘기프티쇼’이니 ‘기프티콘’이니 하면서 읊는 말이란 무슨 소리일까요. ‘선물쇼’인지 ‘선물콘’인지, 무언가를 즐거이 나누려는 마음이라 할 때에도 이렇게 해야만 즐거움이나 나눔이 되거나, 또는 돈이 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은 영어를 배워서 이런 데에서 쓰는군요. (2011.1.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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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14] 커뮤니티

 사람들 작은 힘으로 온누리를 조금씩 바꾸면서,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예전 같으면, 아니 요즈음도 어슷비슷하지만, 으레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같은 말마디만 썼다면, 이제는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 같은 말마디를 쓸 줄 압니다. 다만, ‘케이블카’는 ‘하늘차’로 고쳐써야 하지만, 이렇게 고쳐쓰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잘못된 일을 가로막겠다 할 때에는, 여느 사람들이 익히 쓰는 말투대로 외침말을 적어서 가로막으려고 힘써야겠지요. 옳게 다듬을 말투는 ‘하늘차’이지만, 이렇게 다듬어서 이야기하면 여느 사람들은 말투를 다듬으려고 애쓰지 않는 만큼 못 알아듣습니다. 이리하여 사회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교육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슬프거나 딱하거나 아쉬운 말마디로 일을 할밖에 없어요. 그리고, 좋은 뜻으로 좋은 모임을 꾸려 이야기를 나누는 누리집 게시판 이름을 ‘커뮤니티’처럼 붙이고야 맙니다. ‘사랑방’이라든지 ‘이야기터’라든지 ‘회원 한마당’이라든지 ‘열린마당’이라든지 ‘쉼터’라든지 ‘우물가’라든지, 예쁘며 살가이 이름을 붙이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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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13] 배송비 페이백

 읍내책방을 다니든, 도시에 깃든 작은책방이나 헌책방을 다니든, 요즈음에는 책을 사면서 퍽 쓸쓸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책’에 자꾸 길들기 때문입니다. 머잖아 전자책이 나오면 이렇게 할 일조차 없을 테지만, 종이에 찍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매무새가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침묵의 봄》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이나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마저 이렇게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책’, 아니 ‘거저로 그날 집으로 보내 주는 물건’으로 삼는다면, 이러한 물건을 받아쥐어 펼치는 사람한테 어떠한 사랑씨앗이 자라나는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책 몇 권 부치는 누리책방에서는 ‘돌려받으세요’라고도 하고 ‘페이백’이라고도 하는 제도까지 마련했답니다. 그러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돌려받는다는 우편삯은 누가 내는가요. 누리책방에서? 출판사에서? 어쩌면 책 읽는 내가? (4344.1.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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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24 21:48   좋아요 0 | URL
보통은 책값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파란놀 2011-01-25 07:06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요.

시골 읍내 책방에는 없는 책이 너무 많고,
책방마실 하러 도시 나가기 만만하지 않아,
이제는 인터넷책방에서도 책을 사야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정책들 때문에
정작 출판사들과 독자들이
피해를 입는데,
스스로 제살 깎아 먹는 줄 너무 모르거나 잊는 듯해요...
 



 책은 건네줄 수 있을 뿐


 책은 건네줄 수 있을 뿐입니다. 알맹이까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맛있는 밥을 손수 차려서 대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맛을 제가 느껴 줄 수 없습니다. 밥을 먹는 사람 스스로 느낄 맛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 흐르는 땀이 우리 몸을 얼마나 시원하게 해 주는지 글로 써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짜릿함과 힘듦을 제가 모두 느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짜릿함이요 힘듦입니다.

 보는 재미나 구경하는 재미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가 몸소 해 보는 재미만큼 클 수 없습니다. 듣는 재미나 읽는 재미가 제아무리 크다 한들 우리가 손수 말하고 쓰는 재미보다 클 수 없습니다.

 논밭에 곡식을 심어서 거두어들이는 보람도 크다고 하지만, 거두기까지 하루하루 땀흘리며 가꾸고 돌본 보람보다 클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 열매를 맺어서 거두는 일이란 그동안 애써 일한 보람 가운데 아주 작은 한 가지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거나 즐겁게 읽으면 좋을 책을 얼마든지 추천할 수 있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가서는 나한테 좋을 책은 나 스스로 골라야 해요. 책읽기뿐 아니라 ‘책 고르기’가 아직 서툴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저나 다른 누가 알려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합니다. 저한테 도움을 받는 분이건 다른 분한테 도움을 받을 분이건,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오며 좋아하거나 즐기던 책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어떠한 삶을 꾸리면서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책을 사랑하는가를 짚으려 한다면, 애써 추천받는 책을 찾아 읽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누구나 내 삶을 꾸려야지 남 삶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을 돌보며 내 삶에 마음을 쏟아야지 남 삶에 기대거나 마음 쏟을 수 없어요.

 아이한테 삶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지식 또한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버이 몸가짐 그대로 아이한테 일깨워 주기만 합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익히되, 아이 몸과 마음에 걸맞게 받아들입니다. 아이 몸과 마음에 걸맞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열 마디를 하더라도 이 가운데 한 마디를 알아듣기까지 몇 달 몇 해가 걸립니다. 글을 가르치든 말을 가르치든 여러 해가 걸립니다. 아이가 손수 밥하기를 하도록 이끌자면, 아이가 손수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동생을 돌보도록 이끌자면, 얼마나 기나긴 해에 걸쳐 얼마나 숱한 땀을 흘려야 할까요.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홀로 우뚝 섭니다. 책읽기라는 길에 접어들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책을 건네줄 수 있으나 읽도록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홀로서는 책읽기요, 홀로서는 삶입니다. (4344.1.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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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개의 눈동자
쓰보이 사카에 지음, 김난주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교사가 되고픈 사람이라면
― 쯔보이 사까에, 《스물네 개의 눈동자》



- 책이름 : 스물네 개의 눈동자
- 글 : 쯔보이 사까에 (쓰보이 사카에)
- 옮긴이 : 추식
- 펴낸곳 : 한일출판사 (1961.9.5.)



 헌책방에서 ‘쓰보이 사카에(쯔보이 사까에)’ 님 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2001년이었나 2002년이었나, 서울 대방동에 자리한 〈대방헌책방〉에서 만나지 않았나 떠올립니다. 이럭저럭 책을 다 골랐다 싶어 책값을 셈하고 나올 즈음, 셈대 앞쪽에 꽂힌 퍽 조그마하면서 낡은 책 하나 눈에 뜨였습니다. 책이름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보면서, ‘이 책이름은 뭐냐? 어째 스물네 개의 눈동자 따위로 이름을 붙였담. 토씨 ‘-의’를 이렇게 엉터리로 붙여도 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언제 적 책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 싶어 들춥니다. 1961년에 나온 책입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우와, 1961년에도 사람들은 토씨 ‘-의’를 이렇게 엉터리로 썼구나.’

 글쓴이나 옮긴이를 잘 모르는 주제에, 또 글쓴이나 옮긴이를 보기 앞서, 책이름을 놓고 혼자 궁시렁댑니다. 이때로서는 낯선 글쓴이요 낯선 일본문학인 만큼, 다시 제자리에 꽂을까 하다가, 애써 집은 만큼 책장을 넘기자 생각합니다. 머리말을 읽고 몸글을 조금 읽습니다. 시골 섬마을 아이들 열둘을 가르친 교사 한 사람 이야기가 주르르 흐릅니다. 옮긴이가 ‘한국땅 꽤 외진 시골 사투리’로 적바림해 줍니다.

 번역글이 참 좋다고 느끼는 한편, 창작글 또한 무척 좋다고 느낍니다. 어, 어, 이런 놀라운 문학이 있었네,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일은 그만 잊습니다. 헌책방 문간에 서서 꽤 오래 책을 읽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쯔보이 사까에’를 찾아보지만, 이런 이름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때에는 이분 문학책이 1961년을 끝으로 다시 못 나왔다고 여깁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1965년 한일협정 때문에, 1960년대 첫머리까지 아주 많이 옮겨지던 일본 문학이며 철학이며 사상이며 책이, 1965년을 고빗사위로 거의 옮겨지지 않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일본문학이 차츰차츰 고개를 내밉니다.

 1961년판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읽고 한참 뒤인 어느 날, 다른 헌책방에서 1997년판 번역책을 만납니다. 응? 이렇게 다시 나왔나? 곰곰이 돌이켜보니, 예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할 때에 ‘쯔보이 사까에’로만 찾아보았기에 알아볼 수 없었고, 책이름으로 찾아보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참 바보로군, 하고 생각합니다. 1997년에 비로소 다시 옮겨졌으니, 자그마치 서른여섯 해 만에 다시 나온 셈인데, 서른여섯 해 만에 새로 빛을 본 책은 거의 사랑받지 못하다가는 2004년에 거듭 나오기는 했으나 이내 사라집니다. 그래도 츠보이 사카에 님 다른 문학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우리교육,2003)라는 책은 판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나마 만날 수 있으니 반갑습니다. 게다가 헌책방에서 퍽 오래 다리품을 팔며 눈을 밝히면 1997년과 2004년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마운 노릇입니다.


.. “선상님!” 이번에는 색다른 이야기나 할 것처럼 불렀다. “엉, 마쓰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나 부지? 뭔지 말해 봐.” “저라우, 어무니가 일어나먼이라우 잉, 앙철 벤또 사 준다고 했어라우. 뚜껑에 백합꽃 무늬가 있는 거…….” 푸욱 한숨을 들이키더니 마쓰에는 얼굴에 희열을 띤다. “아이 좋기도 하겠다. 애기 이름도 그렇게 지었니?” 마쓰에는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는, 그것을 몸짓으로 나타내기나 하듯 어깨를 움추려 보인다. “아직 안 지었구나. 그럼 이렇게 지으렴. 백합꽃처럼 고운 이름을 찾아봐.” 마쓰에는 크게 숨을 들이켜, 얼굴을 벙글거렸다. “유리꼬? 유리에? 선상님, 유리에로 하면 좋겄지라우. 유리꼬는 너무 흔해빠즌 이름이지라우.” 마쓰에는 즐거운듯,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쓰에의 눈이 이렇게도 상냥스러웠던가,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 선생은 그 검은 눈썹에 쌓인 검은 눈동자 속에 자신의 감정을 퍼부었다 ..  (110∼111쪽)


 언제였던가, 일본에서 문학박사라 하던 어느 분이 한국으로 한국문학을 배우러 와서 한글학회 사람들하고 어울리던 자리에 함께한 적 있습니다. 한국말을 곧잘 하기에 일본말을 못하면서도 이분하고 몇 마디 말을 섞었습니다. 이때 《스물네 개의 눈동자》하고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라는 책을 떠올리며 “일본에서 쓰보이 사카에 님 문학은 어떤가요? 요즈음에도 사람들이 즐겨 읽는가요?” 하고 여쭙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문학박사라 하는 이분은 쓰보이 사카에라는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을 모르니 작품을 읽은 적이 없겠지요.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195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 꽤 사랑받았다고 덧붙이는데, 도무지 모릅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차, 내가 잘못했나? 아무리 한국에서 한국문학 박사라 할지라도 손창섭 문학이라든지 장용학 문학까지 다 읽었으리라 여길 수는 없잖아. 김학철이나 김석범 문학까지 다 읽어야 한국땅 한국문학 박사이지는 않을 테니까. 문학박사 논문을 내면 박사가 되지, 모든 문학을 두루 꿰거나 읽어야 문학박사가 되지는 않잖아.’


.. “저넌 맏아들이지만, 그래도 군인 되넌 것이 쌀장사버덤은 …….” “엉 그럴가. 잘들 생각해 봐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자, 다음 말을 못 잇고 말없이 남자 어린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다시가 무엇을 느꼈는지, “선상님은 군인얼 싫어하지라우?”라고 묻는다. “그래, 고기잡이나 쌀장수를 선생님은 더 좋아해.” “우메에. 으째서라우?” “죽는 것이, 억울하니까.” “그라문 선상님은 겁보게라우.” “그래 겁보야.”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뒤숭숭해진다. 그쯤 말을 주고받은 것으로 교감선생님한테서 주의를 받았다. “오오이시 선생, 빨갱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거 아시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도대체 빨갱이라고,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을 어디를 보고 빨갱이란 말인가?) 잠자리에 누운 채 생각을 하던 오오이시 선생은 건너방 쪽으로 크게 외쳤다. “어머니! 계세요?” “왜 그러니?” 오지는 않고 미닫이만 바라보고 대답하는 품이 화로불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리 좀 빨리 오세요. 의논 드릴 게 있어요.” 발자욱 소리와 함께 미닫이가 열리자, 어머니의 골무 낀 손을 바라보면서 들이대듯 했다.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질 싫어졌어요. 삼월부터 그만둘가 봐요.” “그만두다니,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그만두고, 푼돈 줍는 과자장수를 하는 편이 나을까 봐요. 날이 날마다 충국애국 따위, 이제 정말이지 진저리가 나요.” “무슨?” ..  (151∼153쪽)


 1990년대 번역판도 장만해서 조금 읽었으나 번역글이 영 가슴으로 스미지 않았습니다. 너무 반듯한 번역글이라 할까요. 《스물네 개의 눈동자》에 나오는 열두 아이를 비롯한 시골사람들은 ‘여 선생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도시 문명이나 문화란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람들입니다. 표준말이라든지 표준말하고 가까운 사투리를 쓸 턱이 없습니다. 1990년대 번역판은 사투리 맛이 하나도 안 납니다.

 이제 와 다시금 헤아린다면, 오늘날 사람치고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마,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투리로 문학을 창작하거나 번역한다면, 이런 글을 읽어 줄 만한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할 만합니다. 쓸 사람도 없고 읽을 사람도 없어요.

 더욱이, 시골마을 삶자락을 글로 쓰는 사람부터 없고, 시골마을 삶자락이 책이나 글로 나왔을 때에 기쁘고 반갑게 읽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시골마을 삶자락을 헤아리는 사람이 적고, 시골마을 삶자락이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 따위에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삶자락이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풀그림에나 나올 테지요.

 1928년을 무대로 한 작품이라는데, 1928년에 “군인이 싫어.” 하고 말하면서 “충국애국 교육 거부”를 하던 시골 교사란, 게다가 남자 교사도 아닌 여자 교사가 이렇게 가르치며 보낸 삶이란, 온통 전쟁으로 미쳐 돌아가던 일본 제국주의요 군국주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으랴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총칼을 내세운 바보가 많았던 한편, 총칼을 뿌리친 착한이 또한 많았습니다. 한국땅에는 독립을 외친 아름다운 사람도 많았으나, 식민지땅에서 부역을 일삼으며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사람 또한 많았어요.

 교사라 한다면, 참말 교사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헤아려 봅니다. 교사가 되고픈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교사가 되어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며 가르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무엇을 익히거나 받아들이거나 살피면서 아이들 앞에 서야 할까 곱씹어 봅니다.

 지식을 가르친대서 교사라 할 만한지요. 시험점수 잘 나오게 할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많이 보내면 훌륭한 교사라 할는지요. 교사는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4344.1.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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