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3.15. 

글쓰기를 하는구나. 그런데... 

 

밥상에서 밥 안 먹고 뭐 하냐... 

 

요, 돼지 꾸루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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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7 20:57   좋아요 0 | URL
ㅎㅎ 바나나 볼펜으로 열심히 글을 쓰네요^^

파란놀 2011-03-28 07:17   좋아요 0 | URL
아버지가 공책에 글을 쓰면 아이도 따라서 이렇게 놉니다 ^^;;;
 

 

- 2011.3.14. 

아버지가 책을 널브러뜨리며 살기에 너도 따라하니... 그래도 아버지는 요새 책 치운다며 애쓰는데...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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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25. 

발목이 잠기도록 내린 눈을 쓸고 나서, 낮에 아이를 안고 잠들다 일어나 보니, 멧자락 눈은 어느새 제법 많이 녹았다. 새벽과 아침에 눈을 쓸지 않았으면 마당은 물바다나 얼음바다로 되었고, 길도 안 녹았으리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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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 별빛과 책읽기


 시골마을 멧골집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비록 예전과 견주면 그닥 안 맑은 하늘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제법 파란 빛깔 고운 낮하늘입니다. 아마 지난날하고 견준다면 참 어설프다 할 수 있겠지만, 제법 까만 빛깔이면서 알알이 별빛이 박힌 예쁜 밤하늘입니다.

 도시 한켠 골목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를 떠올립니다. 기찻길 옆 골목집에서는 기차 소리로 시끄러웠으나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보며 탁 트인 마음이 될 수 있었기에 좋았습니다. 3층 벽돌집 2층에서 살아갈 때에는 하늘 한 조각만 바라볼 수 있어서 서운했으나, 저녁에 보리술을 사러 아이를 데리고 동네 가게에 다녀올 때에는 조용한 밤길에 조용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내가 밟아야 할 흙을 흙답게 밟을 수 있어야 하는 한편, 내가 등으로 짊어지며 올려다보아야 할 하늘을 하늘다이 올려다보며 고개숙일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이 아닐까 하고 느낍니다.

 흙을 느끼고 하늘을 느끼는 나날이기에, 흙하고 하늘한테 고맙다 말할 수 있습니다. 흙을 보며 하늘을 보는 하루이기에, 흙이랑 하늘한테 눈길을 보내며 말을 걸 수 있습니다. 흙을 만지거나 하늘을 휘젓는 삶이기에, 흙과 하늘한테서 새 목숨을 선물받는다고 느낍니다.

 깊어 가는 봄날 흐드러지게 내린 눈꽃은 밤새 눈얼음으로 바뀝니다. 눈이 부시게 하얗게 깔린 눈떡 같은 눈밭을 땀흘려 쓸고 치웁니다. 겨울날 눈은 그냥 쌓이기만 하지만, 봄날 눈은 땅바닥에 얼어붙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라면 밤에도 얼어붙을 걱정이 없으나, 시골자락, 게다가 멧골자락 눈은 밤새 얼어붙습니다. 겨울눈은 겨울눈대로 한 번 얼어붙으면 고약하지만, 봄눈은 봄눈대로 한 번 얼면 퍽 고달픕니다.

 눈을 눈으로 맞아들이면서 이 눈더미를 텃밭에 뿌립니다. 우리 조그마한 텃밭이 눈물을 머금으며 더욱 싱그러울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어느새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찾아들며, 다시금 별빛 깜깜한 밤입니다. 등불 하나 없는 멧자락 밤은 참 깜깜합니다. 이 깜깜한 밤마을 어디쯤에선가 올빼미가 울고, 나로서는 이름을 잘 모르는 멧새와 멧짐승이 웁니다. 엊그제까지 울던 멧개구리 소리는 모두 잦아들었습니다. 설마 갑작스레 추워져서 얼어죽었나? 겨울잠에서 깨어 서로 사랑놀이를 나눈 다음 알을 낳고 한꺼번에 숨을 거두었나?

 도시에서 살아가면 도시내기 삶이면서 도시내기 삶을 글로 적바림하면서 도시내기끼리 나눌 책을 빚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면 시골뜨기 삶이면서 시골뜨기 삶을 글로 옮기면서 시골뜨기끼리 주고받을 책을 일굽니다. 이제 도시내기만 많고 시골뜨기는 드물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 글은 읽어 줄 사람이 드물 테지만, 어쩐지 별빛과 밤하늘 느끼는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어,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몇 줄 끄적입니다. (4344.3.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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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하고 영화 보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셈틀 앞에 앉으면 아이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일이 바쁘면 아이가 영화 노래를 부르더라도 안 된다고 끊을 수밖에 없지만, 아이한테 영화 보자면서 셈틀 화면 한쪽 창에 영화를 띄우면 나 또한 이 영화를 함께 보고야 만다. 아이가 볼 영화를 켤 때에는 내 일이란 조금도 할 수 없다. 아니,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일이라든지 마음을 움직여 글을 쓰는 일은 하지 못한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본 영화이더라도 다시금 영화에 빨려든다.

 아이 스스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빨려드는 영화일 때에만 아이 스스로 좋아한다. 한 번 보면서 재미없다고 여기는 영화는 보다가 자꾸 딴짓을 하거나 아버지 무릎을 떠나 방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논다. 볼 때마다 새롭게 좋은 영화는 자꾸자꾸 다시 보고 싶어 한다.

 아이는 그림책을 볼 때에도 스무 번 마흔 번 예순 번을 거듭 보면서 재미있는 그림책을 다시 본다. 백 번 이백 번 다시 넘길 만한 그림책이 아니라면 아이는 처음부터 따분하다고 느끼는구나 싶다. 그런데 아이만 따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인 나 또한 아이가 따분하다고 느끼는 그림책을 재미있다고 느낄 수 없다. 아이가 따분하다고 느끼는 그림책은 참말 따분하다고 느낄밖에 없는 아쉬운 구석이 곳곳에 드러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참 마땅한 소리이다. 어린이 눈높이란 ‘어린이한테 발맞추어 유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부터 즐겁거나 재미나거나 신나게 읽으며 언제라도 다시 보도록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푹 절거나 꽁꽁 사로잡히도록 해서는 안 되지. 꿈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고, 내 자리에서 꿈으로 나아가며, 다시 꿈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다가는, 거듭 내 자리에서 꿈으로 걸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느낀다. 꿈에서 삶을 보고 삶에서 꿈을 본다.

 쉰두 가지 이야기로 이어지는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아이하고 함께 본다. 누군가 고맙게 옛 만화영화 동영상을 올려놓기에 볼 수 있다. 열넷째 이야기하고 열다섯째 이야기를 보면, ‘네로’가 그림그리기에 푹 빠져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네로한테는 ‘종이 = 사치스러운 물건’이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으나 종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흙바닥이든 나무판자이든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린다. 네로 스스로 발을 디디며 살아가는 터전과 네로 스스로 마주하며 사귀는 사람을 사랑스레 느끼기에, 이 사랑스레 느끼는 결 그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네로가 그리는 사랑스러운 그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사람은, 네로와 마찬가지로 착하며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네로처럼 착하며 사랑스럽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네로가 그린 놀랍도록 착하며 사랑스러운 그림을 들여다보면 가슴 한켠이 쿡 찔리는 듯 놀라워 하기는 한다.

 착한 마음을 이길 마음이란 없다. 왜냐하면 착한 마음이란 누구하고 싸울 마음이 아니요 누구하고 싸움박질을 해서 우악스레 밟거나 이기려는 마음이 아닐 뿐더러 누구를 아프게 하려는 마음이 아니니까. 착한 마음은 언제나 착하기만 할 뿐이다. 칼도 총도 무기도 없으며, 거친 말도 욕지꺼리도 없다. 사랑스러운 마음 또한 오로지 따스한 사랑일 뿐, 차가운 미움이라든지 매몰찬 등돌림이라든지 무시무시한 등처먹기 따위란 깃들지 않는 마음이다.

 나는 착한 영화가 좋다. 나는 사랑스러운 책이 좋다. 나는 착하지 않은 영화는 싫다. 나는 사랑스럽지 않은 책은 따분하다. (4344.3.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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