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0
정유정 지음 / 보림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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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스럽든 슬기롭든 제 목숨껏 살아가는 오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 정유정,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보림,2001)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오리라든지 거위를 볼 일이 없었습니다. 흔하다는 닭이나 토끼 또한 볼 일이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학교에 사육장이 있었고, 학년과 반에 따라 청소가 돌아가기 때문에 사육장 청소를 자주 했고, 이 사육장에는 거위와 닭과 공작이 있었습니다.

 사육장은 ‘짐승을 키우는 우리’라는 뜻이지만, 정작 사육장이라는 데를 들여다보면 쇠줄로 얽은 우리에 가둔 셈이요,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도시에서 짐승을 볼 일이든 돌볼 일이든 없는 국민학생이 이들 짐승을 어여삐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린이에 앞서 어른인 교사부터 짐승우리 짐승을 예쁘게 바라보지 않았으니까요.

 어른인 교사는 날마다 쌓이는 짐승똥 치우기를 어린이인 국민학생한테 맡길 뿐입니다. 어른인 교사가 하는 일이란, 닭이나 거위가 낳은 알이 있을 때에 주워 오도록 시키는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닭이든 거위이든 좀처럼 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호젓하거나 넉넉하게 살아갈 앞날이 보일 턱이 없는 쇠그물 2층짜리 울타리에 갇혀 지내면서도 암탉과 암거위는 끝까지 알을 품으면서 우리들한테 맞섰습니다. 이때, 사육장 청소를 맡은 동무들 누구나 알을 빼앗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빈손으로 교실로 돌아가면 ‘어른인 교사’는 크게 꾸짖습니다. ‘그깟 알 하나 못 가져오느냐’고 몽둥이나 주먹을 흔들며 윽박질렀습니다. 닭이나 거위한테서 알을 빼앗기도 싫지만 얻어맞기도 싫습니다. 아니, 얻어맞는 일이 조금 더 무섭습니다. 끝내, 조금 더 힘이 센 쪽(어린이)이 조금 더 힘이 여린 쪽(닭과 거위)한테서 목숨을 빼앗습니다. 닭이든 거위이든 알을 빼앗으려 들어가면 금세 알아채며 콕콕 쪼거나 꽉 물려고 달려듭니다. 닭은 열 스무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쪼면서 똥을 싸지르고, 거위는 숫거위가 곁에서 껑껑 울고 부리로 쪼면서 몸으로 밀칩니다.


.. 오리는 우리 안에서 날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되풀이되는 것이 정말 답답했어요. 그래서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5∼6쪽)


 똥을 잔뜩 뒤집어쓰고 온몸이 물려 아픈 채 달걀과 거위알을 들고 교사한테 갑니다. 교사는 커다란 냄비를 어디에선가 빌려서 교실에서 알을 삶습니다. 거위알은 닭알보다 훨씬 크고 빛깔이 다릅니다. 삶긴 뒤에도 빛깔이 퍽 다릅니다. 어른인 교사는 이 달걀과 거위알이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고 웃음지으면서 말하고, 사육장 청소를 맡은 우리한테는 거위알을 나누어 주겠다며 먹으라고 내밀지만, 사육장 청소를 맡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달걀이든 거위알이든 받지 않습니다. 달걀이나 거위알이 싫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날 외할머니와 이모들 사시는 시골집에 갔을 때에는 달걀을 ‘곱게 얻어’서 ‘아주 고맙게’ 먹었습니다. 흔히 먹거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던 달걀이라고 시골집에서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도시에서는 값싸게 사먹는다지만, 시골에서는 암탉이 알을 낳았을 때 드문드문 얻어 아껴서 먹습니다. 밥은 벼가 내어준 살점인 목숨이고, 달걀은 닭이 내어준 살점인 목숨입니다. 도시에서 살며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에서 달걀 열 줄이나 한 판을 사서 들고 올 때에는 ‘목숨을 먹는다’고 못 느꼈지만, 외할머니 댁에서 닭우리에 들어가 한 알 살며시 얻어 나와서 먹을 때에는 ‘목숨을 먹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사육장 청소를 자주 맡아 하던 국민학생 때, 어른이자 담임인 교사가 알을 꺼내 오라고 시키던 날부터 닭과 거위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이 일이 있기 앞서까지는 닭똥과 거위똥 냄새가 구리다며 쓸고 치우기를 코를 감싸쥐며 했지만,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닭과 거위가 이 좁은 데에 갇혀서 조그마한 저희 알을 지키려고 애쓰거나 용쓰는 모습을 겪은 탓인지, 코를 감싸쥐지 않으며 쓸고 치웠으며, 모이는 예쁘게 그릇에 놓고 물그릇은 잘 씻어서 틈틈이 갈았습니다. 닭과 거위는 더 나대거나 울거나 물지 않았으며, 그저 조용히 그예 죽은듯이 지냈습니다.


.. 오리는 찔레꽃 향기로운 산길을 돌아 뒤뚱뒤뚱 걷고 또 걸었어요. “호수 냄새는 더 향기로울 거야.” 오리는 생각했어요 ..  (11쪽)


 그림책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보림,2001)를 읽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닭이나 오리나 거위를 보기란 퍽 힘듭니다. 드문드문 닭을 치는 집이 있으나, 좋은 고기나 알을 얻어 조금씩 먹으려는 시골집이 아니고서는 굳이 닭을 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닭공장에서 금세 닭을 뽑아내어 값싸게 파니까, 시골집에서 닭을 친들 벌이가 되지 않습니다. 오리농사를 짓는 데가 아니라면 오리를 칠 일이 없겠지요. 거위를 치는 집은 훨씬 적습니다.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까만오리가 사람하고 함께 지냅니다. 이 까만오리는 날지 않고 걸어다닙니다. 가끔 날갯짓을 하며 조금 날기는 합니다. 사람 곁에서 한식구처럼 지내는 오리라면 이렇게 날지 않고 걷기만 하면서 지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고기하고 알을 얻으려고 집에서 키우니 그렇지, 오리이든 거위이든 하늘을 날아다니는 짐승입니다. 새끼일 때에 날갯죽지를 끊어 못 날도록 하니까, 오리이든 거위이든 날기를 잊고 맙니다. 오리나 거위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 쓰임새에 따라 날짐승이라는 목숨값이 달라집니다.

 뒤뚱뒤뚱 걷는 오리나 거위를 보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총총총 뛰듯 걷는 참새나 박새를 볼 때에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겅중겅중 걷는 왜가리나 해오라기를 봐도 그래요. 새한테는 어쩐지 걷기가 안 어울립니다. 새라면 날아야 어울려요. 가끔 날개를 모두 펼쳐 푸드덕거릴 때가 있는데, 안 나는 닭이나 거위라 하더라도 날개가 참 큽니다. 그래, 처음부터 하늘을 날도록 태어난 목숨이니까, 날개가 이처럼 커야겠지요. 커다란 날개가 아니고서는 좀 뚱뚱하다 싶은 오리나 거위가 하늘을 훌훌 날 수 없겠지요. 갈매기이든 매이든 올빼미이든 꾀꼬리이든 직박구리이든 날개가 몸뚱이와 견주어 얼마나 큰데요.


.. “백로 아저씨. 여기가 호수예요?” “호수? 여기는 논이야. 호수는 날아서 가야 돼.” “저는 날지 못하는데요.” “그럼 할 수 없지. 호수는 아니지만 여기도 살기 좋은 곳이야.” ..  (23쪽)


 그림책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에서는 짐승우리에 갇힌 채 태어나 갇힌 채 죽는 오리들이 나옵니다. 물가나 숲이나 들판에서 살아가는 오리가 아닌, 처음부터 사람이 길러서 고기를 얻으려는 오리가 나옵니다. 이들 오리가 스스로 날갯짓을 하면서 우리를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들한테는 이들 오리가 돈이니까, 한 마리라도 섣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빈틈없이 두르겠지요.

 그러나, 어찌 되든 그림책이기 때문에, 주인공 오리는 아무 걱정없이 홀로 살며시 빠져나옵니다. 다른 오리도 근심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주인공 오리만 씩씩하게 길을 떠납니다. 찔레꽃 내음을 맡으며 언덕을 오르고 들판을 지납니다. 짐승우리 아닌 논에서 이웃 오리를 만나지만 이곳이 물가가 아닌 줄 알며 슬픔에 잠기고, 슬픔에 잠기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개한테 쫓깁니다.

 그림책이니까 벼랑까지 쫓긴다고 그렸을 텐데, 날지 못하고 걷기만 하는 오리로서는 금세 개한테 잡혀 물려 죽었겠지요. 어떻든 그림책이니까, 주인공 오리는 벼랑에서 힘껏 뛰어내렸고,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며 날갯짓을 했기 때문인지 처음으로 하늘을 납니다.


..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물론 여러 오리 가운데 한 마리였지요 ..  (38쪽)


 오리는 수많은 오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오리는 우리에 갇혔으면서 우리인지 아닌지 모르거나 우리에 갇혔어도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여기며 태어나고 죽는 오리일 수 있습니다. 이 오리한테는 때맞추어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으나, 스스로 먹이를 찾고 스스로 잠자리를 찾으며 스스로 짝꿍이나 동무를 사귀는 한편 스스로 날개를 다듬으며 하늘을 누빌 줄 아는 오리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사름들도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느 회사원으로 다달이 적잖은 일삯을 받아 아파트에서 퍽 괜찮다 싶은 살림을 꾸리는 사람일 수 있고, 시골에서 논밭을 손수 일구며 내 먹을거리와 보금자리와 아이들을 내 손으로 건사하며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오리는 오리로서 살아갑니다. 어느 곳에서건 사람은 사람으로서 살아갑니다. 바보스러운 오리이든 사람이든, 제 목숨껏 살아갑니다. 슬기롭거나 씩씩한 오리이든 사람이든, 제 깜냥껏 살아냅니다. (4344.7.17.해.ㅎㄲㅅㄱ)


―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정유정 글·그림,보림 펴냄,2001.2.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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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풀이


 두 아이하고 두 달 가까이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돌이킬 겨를이 없다. 그렇지만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무렵 하루를 가만히 곱씹지 않는다면 너무 슬프거나 서럽다. 두 아이를 다 씻기고 옆지기도 씻고, 둘째는 옆지기가 재우고 첫째도 잠자리에 눕히며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도록 한 다음, 비로소 아버지도 빨래 한 점을 하면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면서 생각한다. 이토록 몰아치는 하루하루라면,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에 옆지기 어머님이 찾아와서 열흘 즈음 집일을 거들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나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몸풀이하는 살림과 일을 얼마나 미리 헤아렸을까.

 요즈음 들어 더더욱 생각에 잠긴다. 몸이 너무 고단해 차마 입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고, 머리에서도 살짝 스치다가 잊어버리는 생각이라, 옆지기가 무엇을 물어도 얼른 떠올리지 못하거나 나중이 되어서야 겨우 되새기곤 하는데, 옆지기 어머님을 보면서 ‘첫째 아이가 나중에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았을 때에 옆지기가 손주 돌보기와 딸아이 몸풀이를 거들 수 없을 테니까, 아버지가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앞으로 서른 해는 더 튼튼히 잘 살아야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꿈이 아니라, 딸아이가 나중에 겪을 힘겨운 나날을 생각하자면, 그때까지 어버이로서 어떻게든 잘 살아내어 갓난쟁이와 처음으로 살아가는 괴로운 보람과 힘겨운 즐거움을 잘 맞아들이도록 길동무 구실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어설픈 꿈을 더 꾼다면, 둘째 아이가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은 다음에 며느리 될 사람 일손을 거들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느낀다.

 오늘은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아무쪼록 두 아이가 커서 저희 아이를 낳아 키울 서른 해쯤 뒤를 지나고 나서 옆지기가 흙으로 돌아간다 할 때에, 열 해쯤 혼자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다음에 나도 옆지기를 따라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떻든, 어버이라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라면, 몸을 더 아끼고 마음을 더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고맙게 맞아들이고 즐거이 떠나보내면서 새날을 다시금 고마우며 즐거이 보듬어야겠구나 싶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 한다고, 참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왼손목과 오른팔꿈치와 왼발목이 몹시 아파 건드리거나 움직이기만 해도 아픈 지 여러 해 되었으나, 용케 오늘까지 집일을 도맡으면서 두 아이도 이 조그마한 집에서 그렁저렁 함께 지낸다. 이듬날은 비가 오지 않는 장날이 될까. 아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장날에 맞추어 마실을 못한 지 보름이 넘은 듯하다. (4344.7.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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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그만 읽어 이제


 저녁이 깊으면서 달이 뜨는 밤인데, 첫째 아이는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두 시간째 “자, 이제 책 그만 읽자.” 하고 말하지만 아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방에 불을 켜고 이곳에서 읽으라 하다가 잠자리를 깔고 아이 팔다리와 얼굴을 찬물로 씻은 다음 자라고 하지만, 잠을 자지 않는다. 불을 다 껐는데도 책을 들어 펼친다. 참다 못해 “책 그만 읽어 이제!” 하고 큰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아이는 제 책을 가슴에 품고 잠자리에 앉으려 한다. 히유, 너한테는 책이 즐거움이니. 너한테는 책이 좋은 동무이니. 이제 어머니한테 맡기자 생각하면서 부엌으로 가서 밀린 설거지를 한다. 아이는 어머니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논다. 설거지를 마친 다음 드디어 몸을 씻고 머리를 감으며 빨래 한 점을 한다. 아이는 아직도 노래를 부른다. 혼자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한동안 노래를 부르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질까. 아버지는 오늘도 책 한 줄 제대로 펼치지 못했고, 낮잠을 재울 무렵 첫째 아이와 나란히 누워 그림책 하나 펼치며 반쯤 들추다가 그만두었다. (4344.7.16.흙.ㅎㄲㅅㄱ)
 

 

(아침에 책 읽는 어여쁜 모습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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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난다. 언제 보고 이제서야 보는 해인가 헤아리면서 오늘 가장 먼저 할 일을 하나씩 어림한다. 무엇보다 빨래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서 할 수 없던 두꺼운 옷 빨래나 이불 빨래를 해야 한다. 이 좋은 햇볕을 듬뿍 쬐면서 숲에서 책 한 권 시원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지 못한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멧길을 오르내리도록 마실을 다니자고 생각할밖에 없다. 아이들 옷가지가 햇볕을 쬐며 따사로운 기운을 듬뿍 받아들이기를 바랄밖에 없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빨래기계를 쓴들 햇볕처럼 보송보송 말리지 못한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아파트에 산다 한들 햇볕을 머금은 바람처럼 바짝바짝 말리지 못한다. 햇볕을 흉내내거나 바람을 시늉한대서 햇볕처럼 따사롭거나 바람처럼 시원하지 않다. 흙을 따라한대서 흙처럼 모든 씨앗을 넉넉히 품으면서 뿌리가 내리도록 하고 줄기를 올리도록 하지 못한다.

 해를 바라보는 풀처럼 해를 바라보는 빨래이고, 해를 바라보는 나무처럼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해를 좋아하는 꽃처럼 해를 좋아하는 살결이요, 해를 사랑하는 흙처럼 해를 사랑하는 목숨이라고 느낀다.

 햇볕을 보니, 살아가는 하루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햇볕을 쬐며, 살아숨쉬는 오늘을 다시금 고맙게 돌아본다. (4344.7.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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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영어 사전 - 개정판
안정효 지음 / 현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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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 가로막는 영어 불지옥이기에
 [책읽기 삶읽기 68] 안정효, 《가짜 영어사전》(현암사,2000)



 896쪽에 이르는 《가짜 영어사전》(현암사)은 2000년에 처음 나오고, 2006년에 927쪽으로 다시 나옵니다. 영어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을 하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그러모은 《가짜 영어사전》은 책이름 그대로 한국사람이 옳지 않게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영어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더는 찍지 않고 더는 팔지 않으니, 이 책을 찾아서 읽자면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헌책방을 뒤져야 합니다. 애써 다리품을 팔면서 이 책을 찾아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이 나오기 앞서이든 이 책이 나오고 나서이든 이 책이 자취를 감추고 나서이든,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버릇은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는 버릇이 좀처럼 들지 않아요.


.. 한국인이 외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도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생 외국인과는 대화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없는 한국사람들끼리, 우리 말은 내버려 두고 어떤 불량 ‘외래어’를 남용하느냐 하는 현실은 마땅히 걱정해야 할 만한 점이다 …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목적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자신이 화려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외국어를 즐겨쓰고는 한다 ..  (4∼5쪽)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한테까지 정규 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 아니어도 어릴 적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고 영어 영화를 봅니다. 돈이 좀 있으면 나라밖으로 퍽 오래 다녀오기도 하고 아예 몇 해쯤 살다가 한국으로 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돈을 들여 영어를 익숙하게 하도록 길들이’면, 나중에 ‘돈을 쏠쏠히 벌 일자리를 다른 사람보다 한결 수월히 거머쥘’ 수 있다고 여기니까요.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려 하는 움직임이든, 여느 살림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몸부림이든,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나라와 여느 살림집 모두 ‘돈을 더 버는’ 데에 뜻을 둡니다. 아이들이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영어를 배워 영어책을 마음껏 읽는다든지, 영어 쓰는 나라에서 문화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을 꽃피운다든지 하는 뜻으로 영어를 일찍부터 날마다 여러 시간 끝없이 가르치지 않아요.

 이런 한국땅인 터라, 아이들이 어린 날부터 배우는 다른 과목이든 무엇이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을 더 잘 벌도록 돕는’ 쪽으로 기웁니다. 아이들이 착하게 살아가거나 참다이 어깨동무하거나 곱게 살림을 일구도록 돕는 쪽으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요. 아니, 어린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부터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겉치레하는 말입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오직 영어를 내세울 뿐 아니라, 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찾는 데에는 젬병이 되고 맙니다.


.. 또다른 이상한 영어인 ‘핸들을 잡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직업이 운전사이다’라는 엉뚱한 뜻이 되듯, 기껏해야 ‘입에 재갈을 물린다’라는 뜻 말고는 서양인의 귀에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개그를 한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내 직업은 코미디언이다’라는 놀라운 의미상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러나 ‘gag를 하다’는 ‘우억우억 게우다’라는 뜻이다 … 길거리에서 ‘핸드폰(물론 이것도 가짜 영어임)’ 따위 제품에 관해서 설명과 선전을 하는 예쁜 아가씨를 ‘나레이터 모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필시 그들이 ‘모델처럼 예쁘고 젊으며, 상품에 관한 설명(narration)을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하는 ‘선전’은 영어로 ‘sales pitch’이지, 전혀 ‘narration’이 아니다 ..  (16, 68쪽)


 《가짜 영어사전》을 곁에 두고 여러 해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가짜 영어사전》을 찬찬히 읽으면 나 스스로 잘못 길들거나 익숙한 영어가 너무 많다고 느낄 만합니다. 스스로 생각꽃을 피우면서 생각밭을 일군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리는 영어를 쓸 일이 없겠지요. 나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라는 일을 하니까 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 가운데 어느 한 마디도 쓰지 않을 뿐더러, 쓸 까닭이 없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똑같이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숱한 이웃이나 동무는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뿐 아니라 미처 싣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어를 온갖 자리에 마음껏 씁니다.

 《가짜 영어사전》을 읽다 보면 ‘굳이 안 다루어도 될 만’하거나 ‘말풀이가 그닥 시원스럽지 못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잘못 쓰는 영어를 까밝혀 바로잡으려’는 데에 마음을 쓰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게 쓰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그러니까, 《가짜 영어사전》은 ‘바른 영어 바른 씀씀이’를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갈 수 없겠지요. 아니, 이 대목만 짚을 수 있어도 고마운 노릇이에요.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람치고 옳고 바르며 알맞고 아름다이 한국말을 살뜰히 익혀서 알뜰히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거든요.


.. ‘르뽀’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의 ‘reportage’를 일본 글자로 표기한 다음 앞부분을 잘라서 쓰던 말을 한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반토막 언론 용어이다 … ‘-ment’는 ‘statement’나 ‘comment’ 같은 단어의 꼬리에 붙는 접미사로서 혼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전혀 단어 노릇을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방송국에만 가면 여기저기서 ‘멘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 정작 영어 ‘ment’는 ‘말’이라는 단어 가운데 ‘ㄹ’ 받침 정도에 해당한다 …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차에 ‘캐비넷’이 달렸다. 서양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노릇이지만, 진짜다 ..  (181, 247, 588쪽)


 ‘멘트’라는 영어이든 ‘멘토’라는 영어이든 ‘멘토링’이라는 영어이든 공무원부터 진보 지식인까지 마음껏 쓰는 한국입니다. 진보 지식인이든 보수 지식인이든 수구 지식인이든 누구이든,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제도권학교 일꾼이든 대안학교 일꾼이든 이런 영어를 영어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마땅히 쓸 낱말이 없다’고 여기거나 ‘한국말로 사랑스레 나타낼 생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캐비넷’이든 ‘핸드폰’이든 엇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영어를 영어다이 배우지 않거나 못하니까 《가짜 영어사전》을 써서 다룰 만큼 한국사람 스스로 엉터리 말을 자꾸 씁니다. 잘 살필 수 있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가짜 영어’는 ‘거짓 영어’나 ‘콩글리쉬’가 아닙니다. ‘엉터리 말’입니다. 잘못 쓰고 아무렇게나 쓰는 ‘엉터리 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쓰는 말마디 가운데 ‘영어 꼴인 말마디’를 그러모았다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알파벳으로 적는 엉터리 말’을 다루는 《가짜 영어사전》이에요.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영어를 쓸 때에 알맞고 바르게 영어를 쓰기’를 바랍니다. 애써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영어를 쓰는 모습까지 꾸짖지 않습니다. 영어를 얼토당토않게 쓴 자리를 ‘올바르며 사랑스럽고 알맞게 가다듬을 한국말’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다루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깊이 생각하거나 톺아보지는 않아요.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어쩌면 앞으로 다시 나올는지 모르는 새판이든, 《가짜 영어사전》이 한국말답게 쓰는 한국말을 더 헤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이 뜻있는 책이 뜻있게 읽히면서 사람들 말매무새와 말씀씀이를 추스르는 도움책으로 자리잡으리라 봅니다.


..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행하는 가짜 영어의 생태 가운데 하나가 용법의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는 ‘크로스오버’이고, ‘투 톱’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스포츠에서만 머물지 않고 정치계로까지 진출했다 … ‘프로포즈’는 동사이고, 흔히 사용하는 ‘프로포즈하다’라는 표현은 ‘청혼하다하다’라는 소리가 된다. 정확히 말하려면 ‘프로포잘하다’가 되어야 한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도 ‘이소라의 프로포잘하다’라는 이상한 뜻이 담긴 제목이다 … ‘egg fry’를 제대로 된 영어로 고치면 ‘fried egg’이다 ..  (678, 751∼752, 873쪽)


 영어에 미친 사람들 밑뿌리를 생각해 봅니다. 영어에 미친 사람들은 영어에만 미쳤다기보다 돈에 미치고 도시에 굶주리며 미국에 목매달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 이웃을 더 사랑하려고 영어를 배우지는 않으며, 지구별 모든 이웃을 아끼려고 영어를 익히거나 즐겨쓰거나 껴안는 한국사람이라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영어에 눈멀기 앞서 참삶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영어에 목매달기 앞서 참사랑을 보듬지 않습니다. 영어에 사로잡히기 앞서 참사람이 되려 힘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영어를 제대로 못해도 착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어요. 영어를 안 배워도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을 수 있어요. (4344.7.16.흙.ㅎㄲㅅㄱ)


― 가짜 영어사전 (안정효 씀,현암사 펴냄,2000 첫판,2006 고침판/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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