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와 어린이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 위에 얹은 하모니카를 들고는 피아노 걸상에 서서 춤을 추면서 하모니카를 부른다. 하모니카를 불며 춤을 추는 누나를 동생은 평상에 누워 목아지를 쪼옥 빼며 바라본다. 아이들이 이루는 사랑과 평화를 집에서 맞아들일 수 있는 어버이는 즐겁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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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길 책읽기


 네 식구가 여러 날 함께 움직일 짐을 꾸린다. 어른 둘이 짊어질 가방에는 어른 둘이 쓸 여러 가지보다 두 아이가 쓸 여러 가지가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두 아이가 입을 옷가지만으로 가방이 셋 나온다. 철이 바뀌는 때요, 네 식구가 갈 곳은 퍽 따스한 곳인 터라, 여름옷과 가을옷을 한꺼번에 챙겨야 하니 옷가방이 여럿 나올밖에 없는지 모른다. 여름옷만 챙기거나 가을겨울옷만 챙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옷걸이를 열일곱 챙기고, 빨래집게를 스물 챙긴다. 빨래비누는 다섯 장 챙길까 생각한다. 우산은 안 챙기고 싶은데, 그래도 넣어야겠지. 손닦개를 넣고 걸레로 쓸 천을 하나 마련한다. 여관에서 머물 때에는 방바닥을 훔쳐야 하니까. 빨래바가지 하나쯤 넣을까 하다가 내려놓기로 한다. 아이 수저를 챙기기로 한다. 옷가지를 넉넉히 챙겼지만, 기차와 시외버스 에어컨을 걱정하면서 담요를 하나 챙기려 하고, 갓난쟁이를 눕힐 때에 쓸 깔개를 챙기기로 한다. 논둑에서 자라는 호박 한 알 땄고, 다 먹지 못한 멧느타리버섯 몇을 챙긴다. 부산에서 만날 분한테 드려야지.

 가방에 아이들 옷가지를 넣기 앞서 바닥에 죽 깔았을 때에, 문득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으면 이만 한 짐을 조금도 짐으로 여기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아마 이것저것 더 챙겨서 자가용 짐칸에 차곡차곡 실으려 했으리라. 어른 둘은 아이 몫까지 등으로 짊어지고 손으로 들어야 한다. 오로지 몸뚱이를 써야 한다. 택시를 얻어 타더라도 가방은 손수 짊어져야 한다. 기차를 타서 짐칸에 올려놓으면 우리 가방만 줄줄이 놓일 텐데, 어떻게 보면 ‘어디 집을 옮기는’ 사람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런데 참말 우리는 ‘집을 옮기려고’ 길을 떠난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머물러야 하니까 옷가지를 더 챙긴다. 조금 무겁거나 벅차더라도 새 마을로 가서 여관에 풀어놓으면 되니, 더 힘을 내자고 다짐한다.

 혼자 마실길을 나서면 내 가방에는 책이 꽤 들어간다. 혼자 마실길을 나서건 온 식구가 마실길을 나서건 내 옷가지는 몇 챙기지 않는다. 내 옷을 하나 덜면 아이 옷가지를 너덧 더 넣을 수 있으니까. 옆지기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어버이라면 으레 이러한 마음이지 않을까. 아이 옷가지를 꽤 많이 챙긴다 하더라도 여느 때에 ‘아이가 참 예쁘다고 여기며 좋아하던 옷’을 모두 챙기지 못한다. 아이는 어쩌면 제가 여느 때에 좋아하던 옷이 한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없다며 투덜거릴는지 모른다. 어쨌든 ‘다른 예쁜 옷이 있으’니까 옷이야 금세 잊고 신나게 뛰놀 마음으로 부풀 수 있다. 어찌 되든, 아이는 제 옷가지 때문에 가방이 큼지막할 수밖에 없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알 까닭도 없다. 어버이라면 이렇게 살아내야 하니까.

 새삼스럽지만,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내 한두 살이나 두어 살이나 서너 살이나 너덧 살이나 대여섯 살 무렵, 내 어버이가 나를 데리고 어디를 돌아다닐 때에 짐을 얼마나 꾸려 어떻게 짊어졌을까를 헤아려 본다. 생각나지 않더라도 어떤 모습 어떤 느낌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곱씹는다. 예전에는 시외버스나 기차가 훨씬 좁았고, 가난한 평교사 살림에 좀 넉넉한 기차를 꿈꿀 수조차 없었을 텐데, 내 어버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마실을 다녔을까. 아니, 마실을 다닐 엄두를 아예 못 냈을까.

 오늘부터 여러 날 땀 실컷 쏟으면서 어른 둘이 낑낑대겠구나. 옆지기는 첫째 아이가 힘들어 하리라 걱정한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힘들겠지. 어른보다 아이가 훨씬 힘든 마실길이 될 터이니, 이래저래 고단하다면 고단한 대로 차에서 눈을 붙이면서 아이들을 상냥하게 보듬으며 토닥이는 어버이 구실을 잊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할 수 있지만,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이런 생각이 쓸려서 사라지지 않기를 빌며 꾹꾹 적바림한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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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8 : 책을 언제 읽어야 할까


 사람들이 나날이 책을 덜 읽는다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읽어요. 책을 좋아하면서 책을 살가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일 때이건 가멸찬 살림일 때이건 책을 알맞게 장만해서 즐거이 읽습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안 읽어요. 바쁠 때에는 바빠서 안 읽고 느긋할 때에는 느긋해서 안 읽어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은 책을 늘 빨리 읽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언제나 많이 읽어요. 걸음이 빠른 사람은 걸음이 늘 빠릅니다.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노상 일이 많아 바빠요. 삶 그대로 책을 읽고, 삶 그대로 마음을 씁니다.

 사람들은 책뿐 아니라 영화를 즐기고 노래를 사랑합니다. 춤이나 연극이나 그림을 좋아해요. 신문도 많으며 손전화로 신문글을 언제 어디서나 읽습니다. 정보와 지식이 넘치고, 상식과 소문이 흐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몸으로 녹이거나 삭이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아리송해요. 책이며 영화이며 새소식이며 가득하지만, 문화나 예술은 춤을 추지만, 이들 지식이나 정보나 문화나 예술은 조각조각 난 채 내 삶을 아름다이 못 돌보거나 이웃사랑을 어여삐 못 나누지 싶습니다.

 북아메리카 토박이 사람들과 삶을 사진으로 담은 에드워드 커티스 님 책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났습니다. 저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을 예전에 일본판과 미국판으로 읽었습니다. 한국판으로는 나오기 힘들겠다고 여겼어요. 한국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에 깃든 넋을 옳게 읽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사진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참 대견한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판 책에 실린 사진 빛느낌은 일본판이나 미국판보다 퍽 떨어집니다. 사진을 다루는 솜씨나 매무새가 아직 못 미쳐요. 가만히 보면, 한국땅에서 디지털사진기 한 대쯤 안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 할 만하지만, 사진읽기와 사진보기와 사진찍기를 슬기로이 살피는 분은 퍽 드뭅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라는 아홉 권짜리 만화책을 함께 읽습니다. 옆지기는 이 만화책이 그림도 괜찮고 줄거리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샤먼 시스터즈》를 그린 타카토시 쿠마쿠라 님 다른 만화책은 한국말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샤먼 시스터즈》 또한 널리 사랑받지 못해요. 아니, 널리 사랑받지 못한다기보다 이 만화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4권 62쪽).” 하는 말마따나, 돈이 있건 없건 이름이 높건 낮건 힘이 세건 여리건, 더 너그러우면서 한결 사랑스레 살아가지 못할 때에는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맛을 볼 수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을 언제 읽어야 좋을까 하고 차분히 되뇝니다.

 아이하고 마주한 자리에서는 아이 눈을 바라보며 웃으면 됩니다. 아이한테 놀잇감을 쥐어 주거나 수레에 태워 어디 마실을 가거나 값진 옷을 입히거나 값나가는 가루젖을 먹여야 하지 않아요. 따순 어머니 품에서 젖을 알맞게 먹이면서 포근한 아버지 품에서 시원을 바람을 쐬도록 안으면 됩니다. 나부터 사랑스러울 때에 아이를 사랑스레 껴안고, 나 스스로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책 하나 손에 쥡니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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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목요일 아침에 네 식구가 짐을 꾸려 

부산마실을 합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책잔치를 열어요. 

이 자리에 함께하려고 길을 떠나요. 

부산에 들른 다음, 

시외버스를 타고 전남 고흥으로 가요. 

고흥에 닿으면, 네 식구가 고흥에서 지낼 살림집과 

우리들이 건사한 4만 권 남짓한 책과 자료를 둘 도서관 자리를 알아봅니다. 

잘 옮길 수 있겠거니 하고 믿습니다. 

좋은 자리를 고맙게 찾고, 

좋은 자리에서 차근차근 살림을 마련해서 놓은 다음, 

충주 멧골자락 책과 살림을 옮길 수 있겠지요. 

네 식구가 충주 끄트머리 멧골자락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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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22 00:01   좋아요 0 | URL
어엇... 전후 사정을 잘 모르지만... 전남 고흥이 새 터전이 되시는 건가요? 부디 아름다운 도서관이 되길 기대합니다.
 
워낭소리, 그 후 - 사진작가 지영빈의
지영빈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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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동안 찍지 못하는 사진이라면
 [찾아 읽는 사진책 60] 지영빈, 《워낭소리, 그후…》(책이있는마을,2010)



 하루 동안 찍지 못하는 사진이라면, 한 달이나 한 해뿐 아니라 열 해나 스무 해가 걸려도 못 찍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무엇을 찍건 누구를 찍건, 나한테 주어진 겨를만큼 사진을 찍어야, 나 스스로 더 넉넉히 말미를 마련해서 사진을 찍을 때에 제 목소리가 살아숨쉬는 제 이야기가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집에서 두 아이를 사진을 담을 때에도 똑같습니다. 내가 집에 머무는 겨를이 고작 1분이나 10분이라 하더라도 이동안 사진 열 장이나 서른 장을 찍을 수 있습니다. 찍기 나름입니다. 그냥 마구 눌러대는 사진이 아니라, 내 아이를 내가 사랑하는 마음그릇만큼 사진으로 찍어요.

 내가 참말 내 아이를 아끼며 사랑하는 넋이라 할 때에는, 고작 하루 몇 분 사이에 열여섯 장 사진을 찍어, 이 열여섯 장으로 사진책 하나 묶을 수 있습니다. 꼭 백육십 장에 이르는 사진을 열 달이나 열 해에 걸쳐 찍어야 사진책으로 묶을 만하지 않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아이하고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가만히 사진으로 담아 사진책 하나로 묶을 수 있어요. 내 아이가 갓 태어나 학교에 들어가고 어른이 되어 혼인을 할 때까지 사진으로 담아야 사진책 하나 빚을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쥔 우리들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일구는 일’을 하지 ‘더 많이 찍은 사진’이나 ‘더 오래 찍은 사진’으로 겨루기나 숫자놀이나 등수매기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영빈 님이 일군 사진책 《워낭소리, 그후…》(책이있는마을,2010)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지영빈 님은 영화 〈워낭소리〉가 나온 뒤, 이 영화에 나온 할아버지네 막내아들한테서 ‘아버지 사진 찍어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과 봉화를 수 차례 오가며 카메라에 이르신의 모습을 담았다(머리말).”고 합니다. 사진책 《워낭소리, 그후…》를 읽다 보면, 참말 “수 차례 오가며” 찍은 사진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꼭 이만큼 찍은 사진입니다.

 이를테면, 봉화에서 ‘어르신하고 함께 살면서’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봉화에서 ‘어르신하고 한 달이고 석 달이고 함께 먹고자면서’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어르신하고 몇 달이건 몇 해이건 함께 어울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 가장 빛나거나 가장 훌륭하거나 가장 돋보이거나 가장 사랑스러울 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워낭소리, 그후…》 같은 사진책이 《굴피집》(안승일 사진책)만 한 깊이가 담긴 사진책이 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다만, “수 차례 오가며” 찍은 사진이라면, 이렇게 “수 차례 오가며” 만날 수 있는 깊이와 너비가 어떠한가를 사진쟁이 삶으로 녹이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돼요. 어르신하고 마흔 해를 살아온 이웃처럼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안 됩니다. 어르신 이야기를 영화로 담은 감독처럼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안 돼요. 오직 몇 차례 만날 수 있는 틈에서 살릴 수 있고 살아낼 만한 사진을 헤아리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어르신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기다림과의 싸움이었다. 며칠을 찍었는데도 거의 같은 사진뿐이었다(머리말).”는 말을 되새깁니다. 짧지 않은 나날을 사진을 찍은 지영빈 님이요, 조용필·이광조·장동건·이승연처럼 이름난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지영빈 님입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조용필·이광조·장동건·이승연처럼 이름난 연예인은 당신들 스스로 ‘아주 바쁜 틈을 내어 사진으로 찍혀야’ 합니다. 봉화마을 어르신이라 해서 안 바쁜 나날이 아니에요. 그러나, 봉화마을 어르신은 ‘당신한테 바쁜 나날에 지영빈 님한테 굳이 틈을 쪼개어 사진으로 찍혀 줄 까닭이 없’습니다. 어르신네 막내아들이 당신 사진을 찍어 주기를 바라건 말건, 어르신으로서는 누가 당신을 찍거나 말거나 아랑곳할 일이 없기도 하며, 퍽 귀찮거나 싫을밖에 없습니다. 나하고 사랑스레 만나면서 따스히 어우러질 이웃이나 벗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기 좋은 썩 괜찮다 싶은 사진 몇 장 후다닥 얻어’ 돌아가려는 사람으로 다가온다면, 봉화마을 어르신뿐 아니라 대통령이나 서울시장도 사진 찍히기를 달가이 여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애써 사진 몇 장 찍더라도 ‘사진을 찍은 사람부터 스스로’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고 사귀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해야 합니다. 남녀 사이에 살을 섞는 사랑놀이가 아니라,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과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영빈 님은 “똑같은 일상, 똑같은 동선에서 어르신의 변화를 담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머리말).”고 말하지만, 정작 《워낭소리, 그후…》에는 어르신 하루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드는 ‘하루 삶’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어요. 아니, 처음부터 이러한 ‘하루 삶’을 담을 마음이 없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이 ‘하루 삶’을 바라보거나 살피지 않았으니까, 이 ‘하루 삶’을 ‘똑같은 동선’이라고 여길 뿐, 이 움직임과 모습과 삶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샘솟는가를 가슴으로 깨닫지 못해요. 사진으로 꽃피우지 못합니다.

 “옷 좀 바꿔 입고 찍자고 해도 한사코 당신이 좋아하는 옷만 고집하시던 이 시대 최고의 멋쟁이(머리말).”라는 말은 아주 덧없습니다. 시골마을 할아버지를 찍는 사진은 연예인을 찍는 사진하고 다른데, 할아버지한테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하다니요. 이것 참 버르장머리없는 노릇입니다. 아니, 사진을 찍는다는 사람으로서 밑바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전쟁터에서 군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봐, 전투화 코가 벗겨졌잖아. 다른 전투화 신고 와.” 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다쳐서 어깨를 붕대로 감싼 군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봐, 붕대가 제대로 안 감겼잖아. 다시 감아.” 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능금밭에서 능금을 따는 일꾼한테 “여보시오. 좀 고운 옷을 입고 능금을 따시오. 그래야 사진이 잘 나오지.” 하고 말해도 될는지요. 새마을운동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면, 관청에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는 홍보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면, 할아버지 삶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헤아려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을 텐데, 지영빈 님은 ‘워낭소리 할아버지 삶’을 사진으로 어떻게 보여주도록 그려야 아름다운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가벼운 손재주를 부려 포토샵 사진을 몇 끼워넣기까지 합니다. 사진책 《워낭소리, 그후…》는, 영화 〈워낭소리〉가 극장에 걸린 뒤부터 봉화마을 어르신이 얼마나 시달리거나 고달프거나 힘겹거나 짜증스럽게 살아야 하는가를 낱낱이 보여주는 슬픈 얼굴입니다. (4344.9.21.물.ㅎㄲㅅㄱ)


― 워낭소리, 그후… (지영빈 사진,책이있는마을 펴냄,2010.2.23./23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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