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hnine 님이 '이오덕-권정생 편지책'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시기에, 이제 이 글을 걸칩니다. 벌써 여덟 해나 지난 일이지만, 여태껏 그닥 달라지거나 나아진 대목은 하나도 없기에 예전 글을 걸쳐 봅니다. 2003년에 알라딘서재 게시판에는 이 글을 안 올렸군요. (그때에 알라딘서재가 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2003년에 쓴 글이라서, 이 글을 다시 살피니 '올바르지 않은 말법과 말투'가 곳곳에 부여 부끄럽네요 ㅠ.ㅜ 

아무튼 글이 퍽 길고 여럿이며,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공식으로 올림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바탕으로 모든 중앙일간지에 후속보도가 이루어졌고, 이 기사가 나간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출고정지'와 '일시품절'을 해서 책이 더 팔리지는 않았으나, 실제로는 1800권쯤 팔린 줄 압니다. 남은 책은 이오덕 선생님 유족한테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한길사는 이오덕·권정생 선생님 앞에 사죄해야
 [책읽기가 즐겁다 39] 허락도 없이,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낸 한길사



 <1>

 지난 2003년 11월 5일 새로운 책이 하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은 차근차근 서점에 진열이 되었고 독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책을 사 보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 광고도 냈고, 보도자료도 돌려서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보며 앞다퉈 기사를 썼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과 교육을 살리고자 온몸을 바친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먼저 한 분은 지난 8월 25일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다른 한 분은 이오덕 선생님에게는 둘도 없는 벗인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적에도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세상에 내놓아 알리고픈 마음을 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처럼 깨끗하면서도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널리 알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와 가르침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생각'으로만 품었지 `실천'으로 옮겨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습니다. 책으로 내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입니다. 가난하고 힘겹고 아픈 몸으로 죽음과 몇 번이나 싸우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 동정이 가는 불쌍한' 모습이 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더구나 세상에 아직 알려지면 안 되는 당신의 지난 삶 이야기가 편지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도 좋은 뜻만 품었을 뿐 책으로 내는 일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허락'은 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다만, 언제라도 권정생 선생님이 "책으로 내도 좋겠어요" 하고 말을 하면 책으로 내도록 `준비'만은 해서 편지를 `한길사'라는 출판사에 맡겨 한번 검토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2>

 그러는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걸 바라지 않았으나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그 편지 가운데 몇 편을,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방송에서 공개했습니다. 물론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채였습니다.

 사실 책으로 나온 과정도 문제이지만 여기서도 큰 문제입니다. `한길사'에는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관'할 권리는 있었지만 `공개'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입니다. 한길사 편집부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로 내려와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이러한 책을 내려고 했다'면서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봉투'를 빌려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유족은 이오덕 선생님 유언에 그런 책을 내라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편지 내용을 검토해 보고, 이미 (방송에) 공개가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내야 한다면 내겠다'고 일단 한길사 편집부 직원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길사는 원고를 유족에게 보내주지 않았고 더구나 편지봉투 몇 장을 빌려간 뒤로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덜컥 책이 나온 것이죠.

 며칠 뒤 이오덕 선생님 방 한쪽 구석에서 `한길사에서 지난날 가제본으로 찍은 편지 원고 사본'을 우연하게 찾아내서 살펴본 유족은, '아무래도 내서는 안 되겠고,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해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 "책을 낼 수 없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권정생 선생님은 그때 "내(권정생)가 죽은 뒤 ◎◎년 뒤에 내면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내지 말아라"고 말했다 합니다.


 <3>

 그 뒤 11월 10일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어느 독자로부터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길사로 확인했습니다. 이에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유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출판을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출판계약서'를 씁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나 권정생 선생님은 유언이든 전화로든 `허락'을 하지 않았으며 `출판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습니다.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고서 `허락을 했다'는 말만으로 책을 낼 수가 있을까요?

 기자는 이 대목에서 참과 거짓을 가리고자 한길사 편집부 강옥순 주간과 전화통화를 했고,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에 내려가서 서류와 사실 관계를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간접이지만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인 이정우님 곁에서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 하는 내용을 옆에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한길사에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은 예전에도 한길사에서 책을 내실 때는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구두로만 계약을 한 뒤 인세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해 드렸"고, 이렇게 하면 "이오덕 선생님이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아버님(이오덕 선생님)은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면서 "당신이 전화통화를 누구하고 하고 무슨 말을 했는가까지도 수첩이나 일기에 적는 분"이고 "글 하나를 선집에 실을 때도 출판동의서를 받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도 실제 이오덕 선생님 유고 뭉치에서 `출판계약서'와 `출판동의서' 뭉치를 보았으며, 그 출판계약서 가운데에는 한길사 것도 있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1997~1998년 사이에 이오덕 선생님이 편지모음을 책으로 내는 일을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2003년 8월까지도 `완전동의'를 하지 않았기에 책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한길사 출판'을 `완전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 원고는 한길사로 보내 `책을 낼 준비는 해 두라'고 했겠지만 `편지봉투'는 한길사 쪽에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책 관련 저작권과 사용권은 아드님인 이정우님에게 정식 승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허락'을 했다고는 하지만 `출판계약서'나 `출판동의서'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내는 일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아드님이 아닌) 제3자에게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권을 일임했다"고 말했고 그 분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 내역을 알아보니 `일임'이 아니라 `고문 상담'이었습니다.


 <4>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11월 12일 충주로 내려와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을 만납니다. 내려오기 앞서 펴낸 책을 `판매중지'를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4일까지도 판매중지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미 낸 책과 관련된 `출판계약서' 한 장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한길사에서는 모두 3000권을 찍었고 이중 1200권이 시중에 깔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깔린 책에 대한 판매중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 이 책은 서점에서 계속 판매되고 있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고자 11월 15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를 찾아갔고, 다른 도매상과 소매상에서는 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또 17일 아침에 교보문고 북마스터에게 전화를 걸어 출고 상황과 출고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출판사로 주문하면 책이 들어올 수도 있다"입니다. 다른 도매상에는 아직 재고가 있기에 그곳에서 받아서 팔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형편을 헤아려 본다면 한길사에서는 `판매중지'를 하지 않았고 `출고정지'만 시켰을 뿐입니다.

 이와 관련 한길사 강옥순 주간은 14일 <오마이뉴스> 편집부와의 통화에서 "이미 서점에 깔린 책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 다만 (유족과 권정생 선생의)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책은 출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과 유족쪽은 "독자에게 팔린 책 한 권까지도 카드 결재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모두 회수해서 유족이 수긍할 수 있는 상황과 근거 아래 폐기처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쪽에서는 실질로는 `출고정지'만을 한 상태이며, 도소매상에 `판매 중단' 통지문만 보내도 시중에 깔린 1200권이 더는 팔리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안 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5>

 지난 11월 12일,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충주를 거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안동에 가서 `권정생 선생님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며 `책을 내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 하는 이야기를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에 유족은 곧바로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출판 허락을 했느냐"고 물었고, 권정생 선생님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기자는 유족이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한길사 사람들을)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 세워서 벌벌 떨게" 해서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읽으라고 가져온 책은 읽지 않고 아직도 그냥 밖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출판계약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유족'과 관련된 계약서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권정생 선생님' 문제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낸 책은 평소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계약서와 인세 정산까지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주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당신이 쓴 책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서 인세 수입이 대단하다고도 하겠으나 무척 가난하게 살아가십니다. `돈'에 미련이나 욕심이 없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돈'에 미련이 없다고 해서 `출판계약서' 한 장조차 없이 책을 내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종로서적'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고 낸 적이 있습니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책으로 책을 낸 다음에도 무척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이번 한길사 문제도 지난날 종로서적 책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때에도 "반드시 권정생 선생님께 동의를 받아야만 책을 낼 수 있다"는 `단서'를 단 `조건부 허락'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길사에서는 이런 `조건부 단서'를 `구두 허락이자 계약'이라고 말을 하면서 책을 냈고, 책을 낸 뒤에도 이 사실을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작권자가 둘이라면 두 사람에게 허락과 동의를 얻은 뒤 출판계약서를 써서 내야 합니다. 백 번 양보하여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계약을 해서 내기로 했다(이 또한 사실이 아님을 앞서 밝혔습니다)'고 친다 해도, `권정생 선생님과 계약을 안 했다'는 대목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한길사에서는 이 대목에서는 "나중에 허락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정생 선생님이 (책의) 머릿글을 썼으니 동의한 게 아니냐'고 물어옵니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 머릿글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회보에 쓴 추도글'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을 위해서 쓴 글'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 또한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책에 실었습니다.

 지난 11월 12일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이 "완강히 반대"를 해서 출판이 늦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치 권정생 선생님이 그저 `반대만 고집스레' 한 사람인 것처럼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를 했을 뿐 아니라 내지 못하게 한 책입니다. 이런 데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에게 또다른 피해와 손해를 입혔습니다.


 <6>

 처음에 기자는 `이오덕 선생님 뜻을 기리고 선생님 책을 소개하는 글 후속 보도'를 하고자 충주로 여러 번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내려가서 유족 분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번 일이 터진 걸 알았으며, 사건이 일어난 그날부터 충주에서 유족 곁에서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저 또한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지금도 책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일을 보며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책이고, 꼭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책이라고 해서 "지은이 모르게 낼 수는 없"으며 "지은이 허락을 안 받고 낼 수 없"으며 "지은이가 살아 있을 때 했던 일과 했던 말과 다르게 말씀을 하면서 책을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개인 생각입니다만, 책을 낸 한길사에서는 언론에 `책이 크게 보도'된 만큼 언론에 `공개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불미스럽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라고 해서 감추거나 숨기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가난하면서도 부지런히 살아가고자 애썼던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런 두 분 뜻을 제대로 기리자면, 책도 좀더 소박하게, 좀더 정성껏, 좀더 따뜻하며 아우르는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서 즐겁게 만든다면 좋겠습니다. `책'은 그 다음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최종규 .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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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책 옮긴 지 이틀째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1.10.



 11월 8일 드디어 책을 옮겼다. 내 살림집에 책이 있지 않다 보니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애가 탔는지 모른다. 이 책들이 곰팡이를 얼마나 먹으면서 시름시름 앓는지 걱정스럽고, 끈에 묶인 채 숨이 막히느라 고달파 하는 소리를 듣기 힘겨웠다.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책을 짐차에 싣는다. 두 시간 남짓 들여 짐차에 책을 다 싣는다. 짐차에 책을 워낙 많이 실은 탓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전라남도 고흥까지 짐차가 닿는 데에 여덟 시간 즈음 걸린다. 책꽂이와 책을 내려 등짐으로 옛 흥양초등학교 교실로 나르는 데에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어찌 되든 다 옮겼다. 이래저래 말과 일과 뭐가 있든 없든 일을 다 해낸다. 책은 다 왔을까? 사이에 새거나 사라지지 않았을까? 샌 책이 있든 사라진 책이 있든 어쩌는 수 없다고 느끼나, 이 큰 덩이를 모두 옮길 수 있기에 홀가분하다. 이제부터 나는 내 사랑스러운 책들로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쓰고 싶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자락에서 옆지기가 마음밭과 흙밭을 예쁘게 일구는 나날을 즐거이 누리고 싶다. 잔뜩 쌓인 책을 갈무리하는 일은 이제부터 기쁘게 하기만 하면 된다. 재촉하거나 다그치는 사람이란 없다. 해코지하거나 헐뜯거나 등칠 사람 또한 없다. 나는 내 삶을 아끼면서 내 책을 아끼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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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으로 쓰는 글


 빨래를 하면서 손가락에 힘을 준다. 엊그제 책짐을 나르느라 새벽 한 시 가까이까지 너덧 시간 쉬지 않고 등짐을 날랐더니 이듬날에는 손가락에 힘을 넣을 수 없었고, 이틀째에는 그럭저럭 손가락을 쓸 만하다. 이듬날에는 빨래를 하기 벅찼으나 천천히 꾹꾹 누르며 했고, 아이들 씻길 때에도 아이고 아야 허리야 팔이야 하면서도 차근차근 쓰다듬으면서 씻겼다.

 손가락에 힘이 없으니 책을 부치려고 택배종이에 주소와 이름과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면서 적을 때에 몹시 고단하다. 혼자서 택배종이를 다 쓰려 했으나 끝내 옆지기한테 보내는이 주소는 적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손가락에 힘이 없는 만큼 팔뚝과 손목과 어깨에는 힘이 더 없다. 팔뚝과 손목과 어깨로 힘을 못 쓰는 만큼 등과 허리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다리로 쓸 힘 또한 얼마 없다. 이틀쯤 그저 푹 쉬고 싶으나, 느긋하게 쉬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쉬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 몸에 따라 천천히 일하면서 몸을 푸는 길을 걸어야 한다.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천천히 하면서 몸을 맞출밖에 없다. 책등짐을 나를 때에도 다른 일꾼은 담배를 물면서 몇 분 동안 쉬지만, 나는 이렇게 쉴 수 없는 몸이라 등짐 부피를 줄이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쉰다. 더 곰곰이 돌이키니, 군대에서 무거운 베낭과 소총과 탄통 들을 잔뜩 짊어지며 멧길을 걸어야 할 때에도 걷는 빠르기를 조금 줄이는 일이 쉬는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작은 공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때그때 겪고 느끼는 이야기를 조금조금 글로 옮긴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노라면, 네 살 첫째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곁에 붙어서 저도 글을 쓴다며 제 공책에 글그림을 그린다. 처음 글그림을 그릴 때에는 꼬물꼬물 그림이었는데, 곧 다섯 살 나이에 접어들 첫째 아이는 꽤 글꼴 티가 나는 글그림을 그린다. 곁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참 멋지네 예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나는 내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보며 자랐을까. 나는 내 어머니한테서 무엇을 보며 컸을까.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 아이가 손가락과 손마디와 손바닥에 좋은 느낌을 좋은 사랑을 실어 받아들일 수 있기를 꿈꾼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오늘 하루 고단한 삶을 마무리짓는 땀방울을 곱게 품에 안자고 다짐한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머잖아 우리 집 살림이 시나브로 피면서 책을 잔뜩 쌓은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과 터를 우리 집숲이자 책숲으로 일구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꿈꾼다. 늦가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처음으로 면내마실을 다녀왔다. 좋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좋다. 발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즐겁다. 손가락으로 아이 머리를 감기면서 살며시 쓸어넘기는 결이 좋다. 발가락을 버티며 아이들 안고 시골길 걷는 동안 맡는 풀내음이 고맙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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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살기 1호>를 내놓았습니다. 

<함께살기>는 '1인 단행본'이에요. 1인 단행본 1호는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입니다. 

이 책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가 되신 분들한테는 그냥 부칩니다.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요 글을 읽으시면 '한 평 지킴이' 알림글이 있어요.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는 

여느 책방에 넣지 않아요. 

다음주부터 두 군데 책방에는 책을 보내요.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와 서울 명륜동 <풀무질> 두 군데에. 

이 책이 궁금해서 사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로 주문해 주셔요 ^^ 

- 책 받을 곳, 전화번호, 이름, 이렇게 세 가지 남겨 주신 다음 

책값(14000 + 1000)을 계좌이체로 넣으시면 돼요.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책 1권 값은 14000원인데, 택배로 부쳐야 하기에 1000원을 더합니다 ^^ 

(남은 택배값 2000원은 제가 내요) 

..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ㄱ. 눈을 밝히는 책읽기 ……… 10
책읽기 1
책읽기 2
책읽기 3
인천사람 책읽기
좋은 책 읽기 1
좋은 책 읽기 2
새책을 읽으며
눈을 밝히는 책읽기
글쓰기와 책읽기

ㄴ. 책읽기 잇는 삶 ……… 20
전철에서 책읽기 1
무릎과 책읽기
책읽기 4
전철에서 책읽기 2
아픈 사람과 책읽기
아이한테 책 읽히기 1
아이한테 책 읽히기 2
책읽기 잇는 삶
전철에서 책읽기 3
책을 사는 까닭
시골사람 책읽기
서두르는 책읽기

ㄷ. 내가 읽는 책과 사람과 ……… 35
버스와 책읽기
내가 읽는 책과 사람과
졸면서 책읽기
젊음과 책읽기
줄거리와 책읽기
지식인과 책읽기
눈쓸기 책읽기
새벽녘 책읽기

ㄹ. 한국책 말할 자유 ……… 48
바보가 되는 책읽기
한국책 말할 자유
천재와 책읽기
콩콩콩 책읽기
아침맡 책읽기
좋은 삶과 책읽기
헌책과 책읽기
책읽기와 느낌글
책베개 책읽기

ㅁ. 군대와 책읽기 ……… 67
뜨개책
분석하는 책읽기
제넋을 찾는 책읽기
개와 책읽기
군대와 책읽기
미군부대와 책읽기
좋은 글과 책읽기
도움받는 책읽기
제넋과 책읽기

ㅂ. 맹자 어머니 책읽기 ……… 87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아파하자
어느 만큼이나 책읽기
견문 넓히는 책읽기
맹자 어머니 책읽기
오른팔꿈치와 책읽기
목숨을 걸고 책읽기
손가락과 책읽기 1
사람과 책읽기
어린이노래와 책읽기

ㅅ. 달삯과 책값 ……… 106
손가락과 책읽기 2
사람한테서 책읽기
책읽기와 춤추기
술과 책읽기
걸으면서 만화책 읽기
달삯과 책값
아픈 몸으로 책읽기
찬물 빨래 하고 책읽기
책 하나를 되풀이 읽기
봄비에 책읽기
아껴 아껴 책읽기

ㅇ. 사진책 읽는 어린이 ……… 126
아이하고 책읽기
고기와 책읽기
서울마실과 책읽기
손으로 쓰는 책
느긋하게 책읽기
뒷차와 책읽기
사진책 읽는 어린이
그림책 읽는 어린이
밥하고 책읽기
발톱과 책읽기
배우는 책읽기
무덤가에서 책읽기
밀치며 책읽기

ㅈ. 학교와 책읽기 ……… 151
군대에서 휴가 나와 책읽기
나비 날갯짓과 책읽기
원자력발전소와 책읽기
손으로 책읽기
학교와 책읽기
입가를 닦으며 책읽기
팔베개를 하고 책읽기
값을 매기는 책읽기
겨우 책읽기
고양이 사진책 읽기
죽은이 책읽기
새눈과 책읽기
아프니까 책읽기

ㅊ. 저녁에 ……… 174
밤하늘 별빛과 책읽기
나라밖 나들이와 책읽기
사진과 책읽기
하루하루 책읽기
자전거와 책읽기
저녁에
빨래하고 책읽기
머리끈과 책읽기
책읽기 5
아침 밥하기와 책읽기
마실을 떠나며 책읽기

ㅋ. 당근씨와 책읽기 ……… 193
도시사람과 책읽기
돈과 책읽기
세겹살과 책읽기
쑥부침개와 책읽기
네 살 아이 호미질과 책읽기
네 살 아이 새벽맞이와 책읽기
말과 삶이 하나
피아노와 사진기와 책읽기
발바닥 붙임딱지와 책읽기
당근씨와 책읽기
빼쫑빼쫑 새와 책읽기

ㅌ. 사랑하는 책읽기 ……… 217
단풍꽃과 책읽기
밥먹기와 책읽기
벼락과 책읽기
둘째와 책읽기
삶과 죽음과 책읽기
사랑하는 책읽기
발가락 책읽기
시골집 책읽기
산들보라
바쁘니까 책읽기

ㅍ. 눈부신 빨래 ……… 237
병원과 책읽기
졸업장과 책읽기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읽기
뻐꾸기 소리와 책읽기
기저귀 빨래와 책읽기
똥 만지는 손으로 책읽기
나무숲 책읽기
눈부신 빨래
서당개 책읽기
힘드니까 책읽기
책을 읽는 즐거움

ㅎ. 자가용과 책읽기 ……… 256
감자꽃 책읽기
미역국 책읽기
재미난 책읽기
기계와 책읽기
자가용과 책읽기
학교이름과 책읽기
말과 책읽기
개똥벌레 책읽기
집안일과 책읽기
손바닥 책읽기
갈치구이와 책읽기
빗소리 책읽기
사람과 삶과 사랑

맺음말 : 책읽기는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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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1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이나 바쁘실텐테도 책을 내셨네요. 잘 받아서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아름다운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7] 주명덕 사진·이상일 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



 오늘이 되어 새 사진이 반짝 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제가 되어 옛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습니다. 글피가 되어 다른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나거나 반짝거리던 빛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기에 더 빛날 만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개를 찍거나 골목고양이를 찍기에 더 예쁘거나 더 남다르지 않아요. 정치꾼들 모습을 찍으니까 더 볼썽사납거나 더 재미없지 않아요. 이름난 사람을 찍으니까 더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이름 안 난 사람을 담기에 덜 도드라지거나 덜 볼 만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사진으로 안 담던 모습이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이 나지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던 모습인 만큼, 나까지 사진으로 담을 때에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지 않아요.

 새삼스럽거나 새롭다 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사진답다 하지 않습니다. 낯설거나 놀랍다 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서 글답거나 그림답지 않듯, 사진답다는 이름은 쉬 얻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라서 흔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긴대서 보잘것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기에 눈여겨볼 만하지 못한 사진으로 나뒹굴지 않아요.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알아줄 만하지 않은 사진으로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주명덕 님이 사진을 찍고 이상일 님이 글을 넣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의 장승》은 1976년에 1쇄를 찍고 1979년에 재판을 찍었다고 나옵니다. ‘재판’은 2쇄를 가리킬는지 3쇄를 가리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재판’이나 ‘중쇄’라고만 밝히기 일쑤였거든요.

 《한국의 장승》에 글을 넣은 이상일 님은 “환경이 바뀐 때문에 장승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11쪽/이상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사람은 장승을 아름답다고 여겼을는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굳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장승은 장승이니까 세워요. 장승은 장승이기에 마을마다 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승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기에 장승을 꺾거나 분지르거나 뽑아 버리려나요. 장승을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다룰까요. 장승은 쓸데없다고 여겨 함부로 내치는가요.

 197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장승은 ‘사라지는’ 한겨레 삶입니다. 1970년대를 휘몰아치던 새마을운동은 흙으로 짓고 짚으로 이던 작은 시골집을 모두 밀어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바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잇도록 했습니다. 마을길도 시멘트길로 바꾸고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쭉쭉 늘렸어요. 곧, 흙도 흙일꾼도 흙삶도 내팽개치는 첫무렵입니다.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며 장승이든 나무문이든 짚신이든 고무신이든 빨래방망이든 워낭이든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장승이 서던 자리에는 신호등이 서겠지요. 장승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 이름 굵직하게 새긴 커다란 돌이 들어서겠지요. 장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겠지요. 장승 앞에서 절을 하던 사람들은 예배당 뾰족탑 앞에서 절을 하겠지요.

 달라지는 삶이요 삶터입니다. 달라진 삶이자 삶터인 만큼 신호등을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을사람 모여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라지듯,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을 따라 흐르는 대중노래가 온누리에 넘실거립니다.

 벼베는 기계로 벼를 베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애써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굳이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낫을 어떻게 쥐고 벼포기를 어떻게 잡으며 낫을 휘휘 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투성이일 텐데, 낫질하는 모습 사진을 누군가 찍는들, 이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누가 읽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장승》은 한국땅에서 장승이 재빠르게 사라지던 때에 찍은 사진을 그러모읍니다. 재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나마 좀 남던 때에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의 장승”이건 “전라도 장승”이건 “경상도 장승”이건, 사진으로 담기조차 빠듯하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제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쌍계사 터 장승”이라든지 “경북 충무시 문화동 장승”처럼 ‘가까스로 살아남았을까 싶은 장승 하나’만 날마다 숱하게 찾아가서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장승 하나만을 네 철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느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 싶습니다.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으로 나온 《한국의 장승》입니다. 주명덕 님이 찍은 장승 사진이 이 작은 손바닥책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겠지요.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합니다. 지난날 찍었으나 미처 못 담은 숱한 장승 사진에다가, 2010년에 새로 달라졌을 장승 사진을 더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한국의 장승”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사진책 하나 그럴듯하게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떠한지 헤아리고, 한겨레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으면서, 어제 오늘 글피로 이어지는 삶이란 우리들 저마다 얼마나 값있거나 뜻있는가를 되새기는 사진이야기를 사진쟁이 두 다리 튼튼하게 내딛는 싱그러운 삶길로 보여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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