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1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오줌 싸 주니 이불 빨래
 [만화책 즐겨읽기 130]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1)》

 


  첫째 아이랑 처음 함께 살던 나날을 떠올립니다. 첫째 아이는 이불에 참 자주 쉬를 누었습니다. 천기저귀를 대더라도 늘 대야 하니까, 오줌을 누고 나서 곧장 갈아 주더라도 고추가 발개지기 마련입니다. 이제 막 쉬를 누었으니 다문 10분이라도 알몸으로 있으라 하는데, 이렇게 열어 놓았을 때 어김없이 쉬를 누곤 했습니다. 밤에 자면서 쉬를 푸지게 누어 이불까지 흥건히 젖기 일쑤였습니다. 여름에 태어난 첫째는 겨우내 두꺼운 이불을 자주 빨도록 이끌었어요.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와 달리 아직 이불에 쉬를 거의 안 합니다. 그러나 둘째도 첫째처럼 오줌가리기를 할 무렵에는 어김없이 이불에 쉬를 할 테지요. 돌이 지나면 낮에는 기저귀를 푼 채 지내도록 하고 쉬를 누일 텐데, 이때에 이불이며 방바닥이며 책꽂이이며 온갖 곳에 쉬를 할 테지요.


  아이들 똥오줌 때문에 이불을 빨아야 하면, 이제 아침부터 두 팔이 욱씬욱씬 저리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불을 빨래하면서, 아이들아 너희들 얼른 자라서 너희 이불을 너희가 신나게 밟으며 빨아 주렴,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너희가 이불에 똥도 누고 오줌도 누니 이불을 자주 빨아 보송보송 포근히 덮고 잘 수 있겠지요. 아버지 몸은 고단하고 고달프며 고되지만, 아버지 어릴 적에도 이불에 얼마나 자주 똥오줌을 누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 어느 화창한 가을날, 나는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휴가를 얻어 고향집에 내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7∼8쪽)
- 말인즉슨 혼자 살던 방년 79세의 외할아버지가 가족들 몰래 첩을 두고 아이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에게 첩이나 숨겨둔 자식이 있었다면 솔직히 나도 심란했겠지만, 글쎄, 뭐랄까, 외할아버지가 그랬다면 왠지 용서가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달까. 오히려 제법이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11∼12쪽)


  돌을 앞둔 둘째 아이는 하루에 네 차례 안팎 똥을 눕니다. 볼볼 기어다니던 아이 손을 만질 때에 차갑네, 하고 느끼면 어김없이 쉬를 누었거나 똥을 누었습니다. 아침 일곱 시 반 무렵 잠에서 깨어 꽁꽁거리는 아이가 엉덩이를 실쭉샐쭉 흔들며 아버지한테 기어오면, 나 똥 누었으니 얼른 기저귀 갈고 밑 씻어 주셔요, 하는 뜻입니다.


  밤에 자다가 쉬를 누면 으앙 하고 자지러질듯 울면서 기저귀를 다 갈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볼볼 기어다니며 놀 때에는 바지까지 축축히 젖도록 쉬를 두어 차례 누고도 암 말을 안 해요. 요 녀석, 밤에만 그렇게 울어대지 말고, 낮에 낑낑거리기라도 해야 알아차리지 않겠니.

 

 


- ‘친아버지가 죽었는데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나? 죽었단 것도 제대로 안 가르쳐 준 거 아냐? 내가 여섯 살 때 죽는다는 걸 이해했었나?’ (15쪽)
- ‘이 회의의 주제는 린을 누가 맡아 주느냐……가 아니었나? 회의니 뭐니 하면서 그럴듯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결국 이 사람들의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 아냐?’ (23쪽)
- ‘엄마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158쪽)


  아이들과 살아가는 나날이란 아이들과 몇 미터 안쪽에서 하루 내내 지내는 나날입니다. 아이들이 안 보이는 데로 가서 무얼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 또한 제 어버이가 안 보이는 데에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마주보거나 서로 느낄 만큼 가까운 데에서 숨결과 목소리 모두를 느끼며 함께 지냅니다.


  아이가 무얼 바라는지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헤아립니다.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 꽁알꽁알 하는 소리를 다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합니다. 아이가 똑바로 말하도록 기다립니다. 아이한테 제대로 말하라고 이릅니다. 마음으로 알아들으니 말을 않더라도 얼마든지 아이가 입으로 털어놓기 앞서 찬찬히 이루어 줄 수 있지만, 이렇게 하는 일이란, 아이가 무럭무럭 씩씩하게 자라도록 이끄는 어버이 구실은 아니겠지요.


  때로는 심부름을 시키고, 때로는 나 혼자 말없이 집일을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함께 하도록 부릅니다. 다 마른 빨래를 개면서, 자 여기 네 옷이니 네가 개렴, 하고 내밀기도 하고, 아이는 스스로, 이 옷 내 옷이야, 하면서 하나하나 집어 가서 조물딱거리며 갭니다.


  첫째 아이는 퍽 말끔히 빨래를 개기도 하지만, 어수룩하게 구기기도 합니다. 말끔히 갤 때에는 참 잘 갰다고 얘기합니다. 어수룩하게 구기면, 애써 빨아서 말렸는데 이렇게 구기면 어떡하니 하고 얘기합니다.


  둘째가 기저귀에 쉬를 해서 갈아야 할 때면 첫째 아이가 뽀르르 달려가서 새 기저귀 한 장을 가져옵니다. 첫째 아이가 딴청을 부리며 안 가져온다 싶어 아버지가 일어나서 가져올라치면 어느새 팩 일어나 휙 달려오면서, 내가 가져갈게, 하고 외칩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가 둘째 기저귀를 벗기며 갈려 할 때에 첫째 아이가 말없이 기저귀 한 장을 가져옵니다. 따로 시키지 않았으나 아이가 으레 스스로 나서서 가져옵니다. 예쁜 아이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착한 아이요, 다부진 아이입니다.

 

 


- “린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고 야무진 애예요. 적어도 당신들보다는 제대로 된 어른으로 클 겁니다. 린! 이런 삭막한 데는 애들이 있을 곳이 못 돼. 우리 집에 올래?” (25∼26쪽)
- 썰렁하기 그지없던 내 방은 먼지덩어리가 굴러다니는 일도 없어지고 잡지 나부랭이들이 구석으로 치워졌으며. (66쪽)
- “갈아입으면 그만이야.” “화 안 내?” “물론! 화낼 일도 아니고 비웃을 일도 아냐. 뭣보다 네가 안 그러면 이불도 잘 안 갖다 널고, 커버도 누레질 때까지 안 빨거든.” (125쪽)


  어느 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모두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마을에서 동무를 사귀며 어느 고장말을 쓰는 아이라 하더라도 저마다 어여쁜 아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녀야 사회를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거쳐야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밟아야 아이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삶길을 찾아나서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학교이든 따로 안 다녀도 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더 똑똑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은 시험성적이 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자격증을 안 따도 되며, 아이들은 큰회사나 공공기관 일꾼으로 뽑히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이웃과 예쁘게 사귀고 동무랑 즐거이 어우러질 수 있으면 됩니다.


  책은 안 읽어도 돼요. 흙을 느끼고 바람을 마시며 물을 헤아릴 수 있으면 돼요. 학원은 몰라도 돼요. 햇살을 좋아하고 구름을 읽으며 별빛을 누릴 수 있으면 돼요. 사람들 복닥거리는 도시로 나아가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먹는 밥과 스스로 입는 옷과 스스로 살아가는 집을 어떻게 건사하면서 어떻게 아낄 때에 좋은 삶인가를 깨달을 수 있으면 돼요.

 

 


- “애들은 어른들이 기분 안 좋으면 자기를 야단친다고 생각한다구.”(177쪽)
- “아빠가 된 게 아니라, 린에 대해서만 어찌어찌 맞춰 주게 된 거야. 다른 애들은 전혀 모르겠어.” (186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7) 첫째 권을 읽습니다. 큰도시 여느 회사원으로 일하는 서른 살 아저씨가 갑작스레 만나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여섯 살 어린이와 복닥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서른 살 아저씨는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이란 생각조차 한 일이 없습니다. 아이와 살아가기는커녕 아가씨와 사랑을 속삭이며 누리는 나날조차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


  서른 살 아저씨는 보육원을 찾느라 애먹습니다. 바야흐로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줄 헤아리지 못합니다. 집구석 치우느라 바쁘고, 아이한테 무엇을 먹이고,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며, 아이한테 무슨 말을 들려주어야 하는가를 놓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맡아야 하는 아이라서가 아니라, 남녀가 사랑을 속삭여 낳은 아이를 놓고도, 오늘날 이 나라 여느 아저씨들은 이 아이들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가를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거나 아예 깨닫지 않으면서 지내지 않느냐 싶기도 해요. 아이들하고 어떤 밥을 먹고, 아이들하고 어떤 옷을 입으며, 아이들하고 어떤 집에서 살아야 서로 아름다우며 좋은가를 돌아보지 못해요. 아이를 낳기까지 어른으로서 어떤 삶을 꾸리며 어떤 넋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 ‘허걱! 애 데리고 아침 지하철 타기도 참 못해먹을 짓이네.’ (52쪽)
-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희생해 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왠지 모르게 그 말이 가슴 한구석에 걸렸다. 곱씹어 보면 그건 엄마는 우리들을 건사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다는 뜻인데, 애 키우는 게 다 그런 건가? (87쪽)


  도시 한복판에서 아이를 데리고 전철을 타는 일이란 참 못해먹을 짓입니다. 겪어 보았으면 누구나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시 한복판에서 아이를 데리고 전철을 타는 일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도시 한복판에서 전철을 타는 일마저 참 못해먹을 짓이 아니랴 싶어요. 느긋하게 오가는 전철길이 아닌 끔찍하다 여기는 지옥철이 된다면,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참 슬픈 길이에요. 아이가 먹기에 나쁜 밥이라면 어른이 먹기에도 나쁜 밥입니다. 아이가 보거나 듣기에 안 좋은 이야기라면 어른이 보거나 듣기에도 안 좋은 이야기이기 마련입니다.


- “그렇구나. 할아버진 이 꽃을 제일 좋아했지.” (19쪽)


  만화책 《토끼 드롭스》 첫째 권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을 그린 분은 그림을 참 못 그리는구나 싶습니다. 어설프며 어수룩한 그림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만화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그림은 못 그려도 되니, 이야기를 담아 주면 되거든요. 이야기는 없으면서 그림만 예쁘장하대서 만화책을 즐거이 읽지는 못해요. 그림결은 삐뚤빼뚤하거나 엉망진창과 가깝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살가우면서 빛난다면 기쁘게 넘기는 만화책으로 삼을 수 있어요.


  초점이 어긋나거나 흔들린 사진이라 하더라도 이야기 예쁘게 담았으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초점이 잘 맞고 안 흔들린 사진이라 하더라도 이야기 하나 밍숭맹숭하거나 아예 없다면 조금도 볼 만하지 않습니다.


  삶은 빈틈이 하나 없는 나날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갖추어야 어버이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잘 해내야 예쁜 아이가 아닙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면서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입니다. 사랑을 받아먹으며 사랑스레 웃고 떠들며 노는 아이입니다.


  오줌을 싸 주니 이불을 빨아요. 낑낑거리니 한 번 더 안아요. 졸립다 하니 자장노래를 불러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니 내 배에 엎드리도록 한 뒤 토닥토닥 재워요. 배고프다고 울어대니 젖떼기밥을 먹이고 어머니젖을 물려요. 심심하다고 하니 함께 손을 맞잡고 춤도 추고 공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들판을 누벼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서로 빙긋 웃으며 살아가는 좋은 삶벗인 살붙이예요. (4345.3.13.불.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1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7.1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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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읽는 책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장석봉 님이 한국말로 옮긴 “시튼의 야생동물 이야기” 여섯 권이 나왔다.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회색곰 왑의 삶》, 《뒷골목 고양이》, 《위대한 늑대들》, 《표범을 사랑한 군인》, 《다시 야생으로》인데, 이무렵 이 책들을 하나하나 사서 읽으면서, 이 아름다운 문학이 새로 옷을 입고 나온 일은 더없이 기쁘고 고맙지만, 틀림없이 이 책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질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책들이 아주 아름답고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기도 했으나, 이때에는 나 혼자 살아가던 나날이었지만, 나중에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 하면, 우리 아이들이 시튼 문학을 맛보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알뜰히 이 책들을 건사하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다짐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참말 이 책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나마 몇 가지 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모르는 일인데, 아직 살아남은 책들도 창고에 있던 책이 띄엄띄엄 다 팔리고 나면 다시 찍는 일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잊혀지지 않을까. 이렇게 잊혀지고 나서 스무 해쯤 뒤, 이를테면 2030년이나 2040년에 또다시 새로 옷을 입고 태어날는지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새옷이 썩 반갑지 않다. 아름다운 문학인 만큼 아름다운 번역이 되도록 아름답게 느낄 말글로 꽃피우는 책이 되어야 반갑다. 껍데기만 새롭다 해서 새로운 책이 아니다. 알맹이가 새로울 때에 비로소 새로운 책이다. 옷을 새로 입힌다 해서 새로 태어나는 책이 아니다. 알맹이를 새롭게 일구면서 가꿀 때에 바야흐로 새로 태어난 책이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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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13 11:36   좋아요 0 | URL
덧붙이면, 잿빛곰 이야기는 재판을 찍으며 겉그림이 달라졌다.
넷째 이야기는 늑대들부터는 겉그림 짜임새가 달라졌다.
넷, 다섯, 여섯, 이 책들도 하나, 둘, 셋 책들처럼
겉을 꾸미면 한결 멋스러웠으리라고 나 혼자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궁...
 

엊그제부터 <뒷골목 고양이>를 읽는다. <뒷골목 고양이> 번역이 아주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우리 나라에서 생태환경 책 번역으로 나온 책으로 보자면, <수달 타카의 일생>과 맞먹을 만큼 번역을 잘 했다고 느낀다. <뒷골목 고양이>는 <회색곰 왑의 삶>과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와 나란히 나왔던 시튼 동물기 가운데 하나로, 2003년에 장석봉 님 번역으로 선보였다. 2012년에 나온 김성훈이라는 분 번역은 얼마나 읽을 만할까? 2012년 번역책이 1970년대 박화목 님 번역보다 한결 말끔하거나 살가울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시튼 님 책이 나오는 일은 늘 반갑지만, 어떤 번역이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인 번역인지가 더 살필 대목이다. 번역이 시원찮으면 너무 슬프다. 이 아름다운 글과 문학과 삶과 사랑이 깃든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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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2년 03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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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1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언제부터 '톰슨'이 '톰프슨'으로 바뀌었나...'톰프슨'이 맞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어째 영 씁쓸하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준다면, 왜 '반 고흐' 이름은 제대로 바로잡지 않을까? '반 고흐'라는 이름은 국적도 정체도 알 수 없는 한국 이름이다. 어쩌면, 일본사람 입을 거쳐 들어온 뚱딴지 이름인지 모른다.

네덜란드사람 'Van Gogh'는 네덜란드말로 '퐌 호흐'라 읽는다.

요즈음은 어떠한가 모르겠으나, 1994년에 한국외대 네덜란드말 학과에 들어갔을 때에, 교수들이 맨 처음 가르쳐 준 말이 딴 학생은 몰라도 네덜란드말 학과 학생들은 'Van Gogh' 이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이리스트는 고치기(수정)가 안 되어 덧글로 덧붙여 적는다.

페크pek0501 2012-03-13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경우 봤어요.
<고독의 위로>의 저자가 조선일보에선 엔서니 스토, 로 돼 있는데,
알라딘에선 앤터니 스토, 로 돼 있는 거예요.
이럴 땐 어떤 게 맞는 건지... 이런 것 좀 통일했으면 해요.

파란놀 2012-03-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국어원 통일안은 있어요.
그런데 모든 외국사람 이름을 '영어 발음식'으로 통합을 하다 보니까
'통일'이 아니라 해서
출판사에서는 이를 잘 안 받아들이곤 해요.

일본사람도 프랑스사람도 독일사람도 에스파냐사람도...
영어투로 이름을 적어야 한다면
참 짜증스럽겠지요...
 

[함께 살아가는 말 87] 낮밥

 

 초등학교 아이들이 롯데리아나 케이에프시나 맥도널드라는 곳에 찾아가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푸름이한테 말합니다. “런치세트 주셔요.” 스무 살을 넘고 서른 살을 웃도는 젊은 사람들이 ‘브런치 카페’를 찾아갑니다. 그래도 아직 웬만한 회사원들은 낮 열두 시 즈음 되어 ‘점심’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돌겠지요.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들 가운데 ‘런치’나 ‘브런치’를 모를 분은 없겠지만, ‘점심’을 먹을 만한 밥집을 찾아다니며 이녁 나름대로 맛집을 헤아리겠지요. 아침에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하고 나서 낮으로 접어들 무렵 밥을 차립니다. 흔한 말로 ‘아점’이라 할 만한 밥으로 하루 첫 끼니를 즐깁니다. 여느 사람들이 낮밥을 먹을 즈음 우리 네 식구는 첫밥을 먹습니다. 아침에 먹을 때에는 아침밥이고, 낮에 먹을 때에는 낮밥이며, 저녁에 먹을 때에는 저녁밥입니다. 밤에 무얼 먹는다면 밤밥이 될 테지요. 새벽에는 새벽밥을 먹습니다. 새벽에 듣는 새소리는 새벽소리입니다. 밤에 듣는 새소리는 밤소리입니다. 달은 낮에도 걸리곤 해 낮달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밤에는 새까만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별과 함께 밤달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며 개구지게 뛰놉니다. 아이들 빨랫거리는 하루에도 숱하게 쏟아집니다. 아침빨래, 낮빨래, 저녁빨래를 하면서 하루가 저뭅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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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책 문지아이들 73
앨런 앨버그 지음, 자넷 앨버그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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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공룡 책’이 재미없고 안 궁금해요
 [환경책 읽기 36] 앨런 앨버그·자넷 앨버그, 《지렁이 책》

 


- 책이름 : 지렁이 책
- 글 : 앨런 앨버그
- 그림 : 자넷 앨버그
- 옮긴이 : 김서정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6.4.24.)
- 책값 : 7500원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면 지렁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는데 지렁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퍽 무섭습니다. 지렁이가 살아가지 못하는 땅이란 사람 또한 살아갈 만하지 않은 데라 할 테니까요.


  몇 해 앞서부터 정부가 앞장서며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나라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을 벌입니다. 수많은 삽차가 땅을 파고 끝없는 짐차가 돌을 퍼붓다가는 시멘트를 어마어마하게 들이붓습니다. 작은 시골 냇물조차 이렇게 망가져요. 아마, 어느 누구도 땅속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를 살피거나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겠지요. 지렁이뿐 아니라, 쑥이든 억새이든 갈대이든 민들레이든 무어든 무어든 냇가나 물가나 냇둑에서 자라던 숱한 풀들이 뽑히거나 잘리거나 죽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겠지요. 피라미 송사리 죽든 말든 생각조차 않겠지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옛집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울 때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예전에 아주 가끔 아파트 공사터를 멀찌감치 바라본 적 있는데, 몹시 깊이 파헤친 땅속은 되게 무서웠습니다. 도무지 어떠한 목숨이라고는 깃들지 못할 듯한 흙덩이만 보였어요. 시뻘겋거나 시커먼 흙덩이도 틀림없이 흙일 테지만, 이 흙덩이를 밑에 깔고 높이높이 올리는 시멘트 건물이란 사람들 몸에 얼마나 좋을는지 알쏭달쏭해요.

 

 


.. 지렁이들은 보통 걱정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지렁이로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답니다. 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 것도 지렁이에게는 심각한 골칫거리예요 ..  (7쪽)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입니다. 예부터 봄이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고 했어요. 우리 집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빛살처럼 따사롭게 온 집안을 감도는 봄기운이 고맙습니다. 꽤 이른 새벽에는 참새가 재재거리며 날아다니고, 이윽고 참새보다 덩치 큰 새가 날아다닙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참새나 딱새나 박새를 잡아먹는 꽤 큰 새를 몇 마리 보았습니다. 아직 들판에는 누런 빛깔이 더 많은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들새와 멧새 먹이가 될 벌레도 많이 깨어나겠지요.


  그러나, 이런 꽃 피고 새 우는 봄을 오늘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느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꽃송이나 새소리로 봄을 느끼던 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력을 보며 봄을 말할 뿐입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봄을 들을 뿐입니다. 아가씨들 옷차림에서 봄을 본다 할 뿐입니다.


  참말 봄이란 ‘백화점 에누리’가 봄이 되어도 될까요. 참으로 봄이란 ‘초·중·고등학교 새학기’가 봄이 되어도 되나요.


  꽃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맞이하는 봄이란 얼마나 봄다운가요. 새를 느끼지 못하면서 맞아들이는 봄이란 얼마나 봄이라 할 만한가요.


  봄이 없는 데에 여름이 없습니다. 여름이 없는 데에 가을이 없습니다. 가을이 없는 데에 겨울이란 없습니다.

 


.. 지렁이야 세상 어디 가나 다 똑같지 않겠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  (18쪽)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찹니다. 봄바람이라고 마냥 따사롭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봄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아직 봄이니 살랑이는 따순바람과 함께 서늘한 찬바람이 함께 찾아듭니다. 그래도 봄인 만큼 햇살은 더 눈부시고 햇볕은 더 따뜻합니다. 후박나무 빨래줄 기저귀는 금세 마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마당에서 뒹굽니다. 더 따스해지고 더 포근히 바람이 불면, 이제 들판과 멧자락으로도 마실을 다니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두 해 자라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멧길을 타고 들판을 내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살림을 일굽니다. 좋은 살림을 일구며 좋은 생각을 빚습니다. 좋은 생각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좋은 밥이고, 좋은 벗이며, 좋은 일입니다.


  좋게 어우러지면서 씨앗 하나 심습니다. 씨앗이 며칠쯤 지나 싹이 틀까 기다립니다. 싹이 튼 씨앗은 얼마나 씩씩하게 줄기를 올릴는지 다시 기다립니다. 줄기를 올릴 새싹이 언제쯤 새잎을 틔우며 씩씩하게 푸른 옷을 입을는지 거듭 기다립니다.


  꼭 모든 사람이 밭을 일구지 않아도 된다 여길 수 있지만, 다문 한 평이라도 스스로 밭을 일구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문 한 평조차 내 두 다리로 밟을 흙이 없고 만질 흙이 없으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흙에 뿌리내리는 풀을 보고 꽃을 볼 때에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렁이를 보고 벌레를 보면서 내가 어디에 어떻게 기대며 삶을 누리는가를 돌아본다고 느껴요.

 


.. 지렁이는 태초에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이 땅 위에서, 아니지, 땅 속에서 살았습니다. 공룡들이 시끄럽게 쿵쾅거리고 다니면서 서로 치고받고 할 때, 지렁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  (22쪽)


  앨런 앨버그 님과 자넷 앨버그 님이 함께 빚은 《지렁이 책》(문학과지성사,2006)을 읽습니다. 지렁이를 기르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가 이 지구별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이야기는 없는 책입니다. 그저 ‘지렁이 책’입니다.


  지렁이 그림이라지만, 지렁이마디를 그리지 않습니다. 지렁이 눈을 사람 눈처럼 그립니다. 그래도, 이 《지렁이 책》에 나오는 지렁이들은 예쁘장합니다. 참말 예쁘장한 지렁이들이 나옵니다.


.. 지렁이는 우리가 이 땅에 살기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지렁이는 땅의 제왕이랍니다 ..  (34쪽)

 


  아마 지렁이 스스로 저희가 대단하게 무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렁이가 무얼 먹으며 지구별 쓰레기를 없애는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가 누는 똥 때문에 흙이 살아난다는 대목을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는 그저 아주 오래오래 이 지구별에서 이름도 자취도 훈장도 도서관도 딱지도 재산도 토지문서도 아무것도 없이 슬기롭게 살아왔어요. 때로는 삽날에 찍혀 죽고, 때로는 두더쥐한테 잡아먹히고, 때로는 가뭄에 말라죽고, 때로는 큰물에 휩쓸려 죽으면서, 이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한삶을 누렸어요.


  찬찬히 돌아보면, ‘공룡 책’보다 놀랍다 여길 만한 ‘지렁이 책’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먼 옛날 말라비틀어 죽었다는 공룡들 모습을 되살리려고 용을 씁니다. 공룡 화석을 모으고 공룡 박물관을 만듭니다. 공룡 유전자를 살피고 공룡뼈가 어떻다는 둥 떠듭니다. 공룡 그림책을 만들고 공룡 영화를 찍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공룡이 지구별에서 무얼 했다고 공룡을 그렇게 떠들거나 섬기거나 노래하나요. 콩쾅거리며 시끄럽게 싸우며 살던 공룡은 몽땅 숨을 거두었다는데, 왜 이들 공룡을 그토록 찾고 살피며 그리려 하나요. 마치, 사라진 옛 문명을 되새기는 일하고 같지 않나 싶어요. 화산재를 맞고 사라졌다는 옛 문명을, 서로서로 끔찍하게 죽이고 죽으며 사라졌다는 옛 나라들을, 엄청나게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되살리려는 일하고 다 똑같구나 싶어요. 그저 전쟁으로 일삼던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왜 자꾸 들먹이면서 되새기는데다가 ‘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아이들한테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죽이고 죽던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되거나 학문이 될 수 있나요.


  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오늘 아침 들은 새소리가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우리 뒤꼍 땅뙈기에서 지렁이가 몇이나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땅이 조금 더 폭신폭신해질 무렵 밭갈이를 할 때에 지렁이가 얼마나 나올는지 궁금해요.


  고구려 아무개 임금님이 땅을 얼마나 넓혔는지 하는 이야기보다, 고구려 무렵에는 어떤 지렁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발해라든지 옛조선 이야기보다 발해나 옛조선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공룡들이 서로 죽이고 물어뜯을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라는 마을에서 살던 지렁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땅 영광과 기장이라는 마을에서 살아갈 지렁이는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도 지렁이가 있을까요. 부산에도 지렁이가 사는가요. 도시에서 지렁이들은 어떻게 삶을 버티는가 궁금합니다. 헬리콥터로 온 들판과 멧자락에 농약을 뿌려대는데, 이런 판에 지렁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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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이들도 이책 참 재밌어했어요.
손에 착 들어오는 책크기도 알맞구요.^^

파란놀 2012-03-13 18:15   좋아요 0 | URL
네, 참 재미나게 엮었어요.
그래도 어딘가 한 구석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재미나게만 엮느라
막상 지렁이가 무언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도 밝히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