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책읽기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길그림을 들여다본대서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가 얼마나 푸르거나 빛나거나 아름다운가까지 환하게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몸으로 느낄 때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몸으로 느끼기 앞서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즐거운가를 한껏 받아들입니다.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흐뭇하지 못하다면, 막상 내 몸으로 부대끼며 바라보더라도 그닥 흐뭇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으로 즐겁게 사귀거나 만나지 못했기에, 몸으로 부대낄 때에도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반갑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하, 나는 길그림으로 척 볼 때에 몹시 서늘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갑다 싶은 도시라 할 때에는, 마음부터 내키지 않아요. 온통 딱딱하게 수평 수직으로 금을 긋거나 갈라 아파트를 세운 동네 길그림을 보면 무시무시하거나 무섭기까지 해요. 구불구불 온갖 골목집 흐드러진 동네 길그림을 보면 아기자기 앙증맞으며 재미나요. 한들산들 여러 시골집 하나둘 깃든 마을 길그림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며 꼭 찾아가서 한갓지게 지내며 천천히 들길이나 고샅을 거닐고 싶어요.


  몸으로 찾아가기 앞서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아, 불현듯 한 가지 옛일 떠오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따숩게 말 걸기를 거의 못하던 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아니면 가난한 학교 가난한 아이들한테 꿈만큼은 크게 부풀려 꾸라고 하던 가난한 교사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내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날, 누군가 ‘지도 여행’을 들려주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는 마음속으로 이 나라 이 마을에 내가 있다고 그리면서 내가 이 나라 이 마을을 걷는다고 꿈을 꾸라 했어요.


  나는 우리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녔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지구별 숱한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 네 식구 보금자리를 찾을 때에도 길그림을 쫙 펼치고는 이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숲을 생각하고, 마을을 이루는 시골집을 헤아리며, 마을과 하나되는 들판과 멧자락을 그렸습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바라기 신 앞에서 노는 어린이

 


  아이들 신을 빨래한다. 햇살 좋은 날 고무통에 모두 담갔다가 비누를 바르고 복복 비빈 다음 헹군다. 햇살 드는 자리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이는 신을 바라보고 앉아 조잘조잘 노래하면서 논다. 모처럼 모든 신을 깨끗하게 빨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보송보송 다 마른 이듬날부터 아이는 이 신 저 신 또 갈아신고 흙밭이며 모래밭이며 개구지게 뛰논다. 하루만에 모든 신이 다시 지저분해진다. 좀 한 가지만 꿰고 놀면 안 되겠니? 하루에 한 켤레만 신으면 안 되겠니? (4345.4.29.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기계 한 달

 


  빨래기계를 쓴 지 한 달이 지난다. 빨래기계 안 쓰던 때에는 하루에 세 차례씩 빨래를 했지만, 이제 하루에 한 차례만 한다. 빨래기계로 하루에 세 차례 하자니 물이랑 전기가 아깝기도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빨래를 하자면, 비오는 날에는 꽤 애먹는다. 그러나 이제 둘째가 제법 자랐으니 기저귀 빨래가 몇 장 줄어 이럭저럭 비오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도 하다.


  기계를 빌지만 빨래는 언제나 내 몫이다. 기계를 쓰면 일손을 덜어 다른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일 만하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참말 이와 같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를 쓰기에 내 일손이 더 줄어드는지 안 줄어드는지 외려 느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기계를 빌어 빨래를 하니, 내 손발가락 트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집일을 하며 물을 적게 만지지 않는다. 힘들거나 고되거나 졸립거나 벅찬 날에는 몇 시간 내리 물을 만지며 집일을 하자니 손끝부터 발끝까지 지릿지릿 저린다. 손가락에 물이 마를 새 없으니, 젖은 손으로 책을 쥘 수도 없다.


  그러면 내 손은 왜 물이 마를 새 없을까. 참 마땅하지만, 사람이 빨래만 하며 살겠는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 한 아이는 똥을 누고 한 아이는 무어가 엎지른다. 한 아이를 밥먹이고 한 아이하고 논다. 둘째가 기저귀에 똥을 누든 첫째가 오줌그릇에 똥을 누든 물을 만진다. 개구지게 먹어 옷이며 입이 지저분해진 아이들 입을 씻긴다. 설거지를 한다. 죽을 끓인다. 죽 그릇을 설거지한다. 개수대와 밥상을 닦는다. 밭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이래저래 물을 만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려 낯을 씻는다.


  빨래기계 한 달을 지내며 생각한다. 기계가 있대서 더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은 좀 가볍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온갖 일거리로 짓누를 때에는 내가 아무리 빨래를 좋아하거나 즐긴다 하더라도 고단한 굴레가 될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이 죽 먹이기도 즐기고,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기도 즐기며, 아이하고 노래부르거나 그림그리는 나날을 즐겨야지. 아이하고 걷는 들길을 즐기고, 옆지기가 나무라는 말을 즐기며, 뻑적지근한 등허리와 팔다리를 즐겨야지. (4345.4.28.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읽는나무 2012-04-29 07:32   좋아요 0 | URL
기계 결국 들이셨군요.^^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기계 들인다고 결코 일감이 수월해진 것은 아닌게 맞습니다.
전기세 아끼느라 몰아서 빨래를 돌리다보면 빨랫줄에 빨래 너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개키는 시간도 길어지고,입어야 할 옷들의 가지수가 옷장에 확 늘어나 입을땐 좋은데,차츰 빨랫통에 빨랫감이 차오름과 동시에 옷장속에 입어야할 옷감들이 줄어들어 급할땐 정말 낭패되기 일쑤이지요.ㅋㅋ
전 속옷이랑 수건은 꼭 삶아서 널거든요.그래서 샤워 많은 계절엔 혼자서 수건이 매번 모자라 허둥지둥거려요.때론 심적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기계 종료되어야 빨래를 널 수 있기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꽤나 애매하여 외출할일이 있을땐 은근 신경을 써야하구요.ㅠ
또한 기계를 돌려도 며칠에 한 번씩은 손빨래를 해야 할 빨랫감도 분명 있어요.그래서 주부들은 손에 물이 마를날이 없는 것같아요.아~ 대한민국 남자들이 된장님같은 마음 같았으면 주부들의 손은 좀 덜 거칠어질 수 있을 것같은데 말입니다.^^
전 손이 선천적으로 예쁜손이 아니거든요.헌데 결혼 12년차가 되니 못난 손에다 거칠기까지 하여 참~ 남들앞에 내놓기가 좀 민망합니다.

암튼,기계를 써도 불편한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래도 기계를 환영하는 것은 기계돌아가는 그시간에 조금이라도 몸이 편하다는 것! 몸이 편하니 그시간에 더 생산적인일(?)을 할 수 있다는 것!...그맛 아니겠습니까!ㅎㅎ
널려 있는 빨래를 보니 좀 여유있어 보여 좋으네요.^^
저 많은 빨래를 손으로 다 하셨다면 어쩔뻔 했어요?
요즘엔 햇볕이 좋아 빨래가 금방 말라서 정말 행복하시겠어요?ㅋㅋ
게으른 저도 빨래가 잘 말라 행복하답니다.^^

파란놀 2012-04-29 09:2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제껏 겨울이고 장마철이고 저 빨래들을 늘 손으로 했는걸요~

그나저나 오늘 비가 올까 말까 꾸물거리네요.
얼른 뒷밭 골라 감자를 심어야 하는디... 이궁~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5) -중中 36 : 부재중 2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고정희-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 116쪽

 

  국어사전을 살피면 ‘부재중(不在中)’이 한 낱말로 실립니다. “자기 집이나 직장 따위에 있지 아니한 동안”을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부재중’을 하나씩 뜯어서 적은 풀이말입니다. “있지 아니한 동안”이란 ‘不(아니한) 在(있지) 中(동안)’이에요

.
  한국말은 “있지 + 아니한 + 동안”처럼 적습니다. 중국말은 “아니한(不) + 있지(在) + 동안(中)”처럼 적습니다. 그러니까, ‘부재중’이라는 낱말은 한국사람이 한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 아닌, 중국사람이 중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이에요. 이 중국말을 한국사람이 받아들여 깊이 헤아리지 않으며 쓰는 셈이에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자말 ‘부재중’ 뜻풀이에 ‘동안’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으레 ‘가운데 중’으로 새기는 한자 ‘中’인데, ‘동안’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는 中에 / 가는 中에 (x)
 그러는 동안에 / 가는 동안에 (o)

 

  “그러는 중에”라든지 “일하는 중에”라든지 “먹는 중에”처럼 말하는 분이 퍽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마디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중국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대로 적자면 “그러는 동안에”와 “일하는 동안에”와 “먹는 동안에”예요. 또는 “그러는 때에”나 “일하는 때에”나 “먹는 때에”입니다.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면 알 만하리라 싶지만,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지 않으면 알 만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늘 쓰는 말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를 돌아보지 않기에, 내 말마디를 한결 아름다이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합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를 살피지 않는 터라, 내 동무와 이웃이 한껏 어여삐 살찌우거나 보듬도록 돕거나 이끌지 못합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있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

 

  서로 어여삐 잘 쓰는 말은 기쁘게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서로 얄궂게 잘못 쓰던 말은 즐거이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나씩 다스립니다. 하나하나 바로잡습니다. 한 마디이든 두 마디이든 슬기롭게 빚습니다. 한 마디부터 천천히 알뜰살뜰 꾸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
 [만화책 즐겨읽기 147] 스에츠구 유키, 《치하야후루 (2)》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으레 묻는 말 두 가지는 ‘왜 여기로 왔느냐’ 하고 ‘무슨 연고가 있느냐’입니다. 첫째, 왜 모두들 시골 떠나 도시로 가고 싶어 안달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둘째, 시골 가운데 깊디깊어 도시바라기를 하는 마당에 이곳까지 온 까닭은 둘레에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어림합니다.


  나는 사람들 물음에 아주 짤막히 대꾸합니다. “좋아서요.”, “아는 사람 없어요.”


  오늘 우리 식구한테 좋은 시골이면서, 앞으로도 우리 식구한테 아름다운 시골이 되리라 느꼈기에 외진 두메시골이라 할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아는 줄’을 꿰지 않고 ‘스스로 잘 살’고 싶어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 “좀더 우리 셋이서, 카루타를 하고 싶었는데.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 “왜 우노? 우리 이만치 안 재미있었나.” (18∼19쪽)
- “카, 카루타를 같이 해 줘서 고맙다. 치하야도, 타이치도. 하지만도, 인자 영영 못 만나것제?” (33쪽)

 

 


  돌이키면, 내가 내 고향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둘레에서 흔히 묻곤 했습니다. ‘아니, 서울에 안 있고 왜 인천에 있느냐’ 하고. 처음에는 “고향이거든요.” 하고 대꾸했지만, 나중에는 “조용하고 예쁜 골목이 좋아서요.” 하고 대꾸합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랐던 인천 골목동네가 조용하고 예쁘니 좋다고 말하면, 어느 누구도 더 토를 달지 못했어요. 어쩌면, 참 싱거운 녀석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고, 참 주제넘거나 철없는 놈이네 하고 여겼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러다 바닥을 쳐야 비로소 뭔가 알겠지 하고 여겼을는지 모르지요.


  나는 전라남도 고흥 두메시골에 마련한 보금자리가 참 좋습니다. 조용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늑합니다. 아직 우리 논밭이 없습니다만, 참 좋습니다. 앞으로 우리 논밭이 천천히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좋습니다.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니 좋습니다. 상큼한 바람과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들풀을 누리니 좋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하며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거닐거나 뒹굴 수 있어 좋습니다.


  다시금 생각하면, ‘아무 연고 없이’ 이곳으로 왔다는 우리 삶이란, ‘사람을 보고’ 이곳으로 오지 않은 삶이란 뜻입니다. 아는 사람한테 기대어 어떤 벌이나 일자리를 거머쥐겠다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늘 마주할 좋은 자연과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느끼려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 “어쩌면 아라타도, 카루타보다 소중한 것이 생긴 게 아닐까?” (55쪽)
- “청춘을 다 바쳐도 강해질 수 없다고? 그런 푸념은 일단 바치기나 하고 하거라.” (66쪽)
- ‘아라타, 가끔 만나서 카루타를 하자. 신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고 싶어.’(148쪽)

 

 


  스에츠구 유키 님 만화책 《치하야후루》(학산문화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더 생각합니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좋은 삶이 좋습니다. 참말 좋은 삶이 좋습니다. 돈이 넉넉한 삶은 돈이 넉넉한 삶일 테지요. 돈이 넉넉하면서 좋은 삶도 있을 테지만, 우리 식구는 그저 좋은 삶을 생각하고 꿈꿉니다.


  그예 아름다운 나날과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포근한 꿈과 빛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 흐트러진 몸을 다스리면서 내 어지러운 넋을 추스를 쉼터를 생각합니다. 내 거친 손길을 다독이면서 내 무딘 마음길을 어루만질 사랑터를 생각합니다. 내 모자란 말문을 차근차근 열고 내 어수룩한 말나래를 살풋살풋 쓰다듬을 놀이터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나한테 가장 대수로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사랑하면서 아낄 한 가지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살붙이하고 가장 즐겁게 나누면서 빛낼 한 가지란 무엇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 “난 카루타에서 제일 좋은 건, 카드를 25장씩 나눠서 펼치기 직전이야. 막 두근두근해서, 좋은 상상밖에 안 들거든.” (123쪽)
- “카루타를 좋아하고 매일매일 하다 보면, 어쩌다 카루타의 신이, 소리보다 한 발 먼저 와서 가르쳐 줄 때가 있다. 할아버지는 카루타를 그만치 좋아하니까네, 아라타한테 지지 않는기라.” (137쪽)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아버지는 첫째 아이를 품에 안으며 글을 썼습니다. 첫째 아이가 제법 자라 혼자 방방 뛰고 구르며 놀 이즈음에는 갓난쟁이 둘째를 품에 안으며 글을 씁니다.


  첫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가리기까지 몇 만 장에 이르는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둘째 아이 자라는 동안 이 아이가 똥오줌을 언제 가릴까 생각하면서 날마다 새로 기저귀를 빨고 개며 가다듬습니다.


  호미질 하는 아버지 곁에서 호미질 하는 아이입니다. 셈틀 앞에 앉는 아버지 곁에서 셈틀 앞에서 알짱대는 아이입니다. 자전거 타는 아버지 곁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버지 곁에서 나긋나긋 들길 걷는 아이입니다. 논둑 풀을 뜯어 먹는 아버지 곁에서 논둑 풀맛을 천천히 되새기는 아이입니다.


- ‘그때 내가 배운 것은 카루타가 아니야. 정열이야. 아라타의.’ (28쪽)
- ‘즐거워 보여. 즐거워 보인다, 치하야. 네가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걸까? 너도, 우리하고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걸까?’ (87∼88쪽)

 

 


  아이가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며 배웁니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내 삶을 알뜰히 다스리고픈 마음은 아니에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버이나 어른이라는 이름에 앞서,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며 기쁘게 누릴 때에 내가 아름답게 꽃피우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꽃피우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저희 스스로 저희 깜냥껏 아름답게 꽃피울 길을 찾거나 생각하겠지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가 스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니, 내가 온갖 자질구레한 일에 이끌려 내 모습을 스스로 잊느라 돌이키지 못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되새깁니다. 내가 내 어버이한테 나눈 사랑을 돌아봅니다. 내가 내 삶자리에서 누린 기쁨을 곱씹습니다. 내가 내 발걸음으로 꽃피운 꿈이나 내 손놀림으로 무너뜨린 꿈을 헤아립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좋은 꿈이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에는 내 가슴에 사랑스러운 빛이 감돌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놀이·삶을 누리면서 내 하루를 좋게 돌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어깨동무하면서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글피도 한결같이 어여삐 누립니다.


- “물 속에 잠긴 단풍잎의 붉은색은, 헤어져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연모의 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그 검은 잉크로 인쇄한 카루타 카드가, 곱디고운 단풍 빛깔로 보이지 않나요? 이제 아시겠어요? 제가 시를 즐기는 것과 경기 카루타는 전혀 다른.” “굉장해.” “네?”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굉장해! 카나, 더 가르쳐 줘!” (178∼179쪽)
- “카나! 우리 선생님이 그러셨어. 카루타와 친해져서 친구가 되라고. 카나는 이미 100수 모두와 친구잖아? 정말 강할 거야.” (183쪽)

 


  마음을 배우는 꽃피는 삶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배웁니다. 나는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쌓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거나 마음을 북돋웁니다.


  좋은 책 하나를 읽을 때에는 나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됩니다. 슬프거나 궂은 책 하나를 읽고 나면 내 마음까지 슬프거나 궂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슬프거나 궂은 책을 찾아 읽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거저로 책을 선물한다 하더라도 나한테 슬프거나 궂다 싶은 책은 맞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내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나한테 가장 아름답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책을 읽고 싶습니다.


  곧, 내 삶 가운데 더없이 빛나며 즐거운 하루를 통틀어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내 삶 가운데 가없이 해맑고 기쁜 하루를 송두리째 바쳐 옆지기하고 부대낍니다.


  서로서로 가장 좋은 삶을 누려요. 서로서로 가장 예쁜 말을 나눠요.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는다지만, 배가 부르면 왜 좋을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왜 흐뭇할까요. 배가 부를 때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더 즐거이 누릴 수 있기에 고맙지 않을까요.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삶을 누릴 기운을 되찾고자 날마다 새롭게 밥을 먹고 밥거리를 살피며 밥상을 차리지 않을까요.


  나는 내 마음을 살찌우고 싶어 내 몸이 홀가분한 길을 걷도록 하루하루 일굽니다. 나는 내 마음을 북돋우고 싶어 내 몸이 튼튼하고 씩씩하도록 이모저모 땀흘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치하야후루 2 (스에츠구 유키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25./42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