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으로 짓는 작은 사람 이야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7] 이흥환 엮음,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책이름 :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엮은이 : 이흥환
- 펴낸곳 : 삼인 (2012.4.10.)
- 책값 : 15000원

 


  다섯 해를 함께 살아가는 첫째 아이는 새벽 세 시 무렵 밤오줌 한 차례 누고 아침 여덟 시 무렵 아침오줌 한 차례 누면 속이 개운하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밤새 쉬를 안 누고 아침에 일어나서 한 차례 누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바지에 오줌을 조금 지리고 나서 “나 바지 갈아입을래.” 하고 말하며 새 속옷과 새 바지로 갈아입고 자리에 눕습니다. “나 오줌 지렸어.”나 “나 오줌 쌌어.” 하고 말하지 않지만,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을 때에는 오줌으로 옷가지를 버린 때입니다.


  밤 열두 시에 옆지기한테서 둘째 아이를 받습니다. 둘째를 가슴에 얹고 재웁니다.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어느 결엔가 둘째 아이가 내 오른팔을 베개 삼아 잡니다. 베개 삼아 자던 아이가 낑낑거려 퍼뜩 잠에서 깨어 왼손으로 아이 가슴을 토닥입니다. 이불을 여미면서 오른팔을 슥 뺍니다. 몇 시간 이렇게 잤나 모르겠지만 오른팔이 없는 듯 뻑적지근합니다. 첫째 옷을 갈아입히고 뒷밭에 아이 오줌을 뿌리고는 나도 쉬를 하고 하늘을 보니 파랗게 물들며 동이 트려 합니다. 처마에 있는 제비집에서는 암수 제비 두 마리가 삣삣삣 하면서 새 하루를 열려고 부산을 떱니다.


  새벽 다섯 시 십 분. 밤개구리 소리는 천천히 잦아들고, 들새와 멧새 지저귀는 소리 차츰 커집니다. 이웃집은 슬슬 하루를 열 테고, 우리 집도 우리 집대로 새 날을 엽니다.


- 봉석이는 히죽히죽 웃는다고 하였으나 요사이에는 내가 손을 달라고 하면 손을 척 내주곤 합니다. 봉식이 크게 웃을 적에는 당신의 생각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봉석이 아버지, (중략) 할 말이 많으나 이것으로 끝맺습니다. 우스운 소리도 할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믿을 데도 없으나 봉석이를 보면 웃습니다. 그리고 망나(막내) 아주버님이 일하시고 집에 들어와 말도 안 할 적에는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은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 하나밖에 없습니다. 해답 빨리 해주시요. (1950년 6월 8일 은애 올림/22쪽)
- 아-아 고향 삼천리를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먼 곳에 있는 사랑하는 나의 동생에게 발 없는 편지야 빨리 빨리 달아나라. (1950년 10월 8일 백홍섭/49쪽)


  어제 저녁을 먹고 누런쌀을 불리려 했는데 깜빡했다고 떠오릅니다. 얼른 일어나서 누런쌀을 씻고 불려야겠습니다. 그나마 요사이는 날이 따뜻해서 새벽녘 누런쌀을 불리면 아침에 새로 밥을 지을 만합니다. 다른 밥거리는 어제 먹고 남은 삶은고구마 있고 말랑두부국이 있습니다. 뒤꼍에서 풀을 뜯어도 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길러서 먹어 버릇하는 삶입니다.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자라나는 풀이나 열매를 기쁘게 얻어 알맞게 먹어 버릇하는 삶은 아주 드뭅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사람들이 땅을 일구어 몇 가지 곡식을 거두기 앞서까지 어떻게 살아갔을까 하면, 하나같이 풀과 열매와 고기를 먹었겠지요. 스스로 살아가는 풀과 열매와 고기를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었겠지요. 비료도 사료도 항생제도 풀약도 없이, 온통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갈하며 가장 아름다운 목숨을 내 몸으로 받아들였겠지요.


  바다에서 낚는 조기 이야기를 다루는 어느 책을 읽으니, 1960년대 끝무렵에 이르러 연평도에서든 남녘 바다에서든 조기낚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합니다. 갑작스레 씨가 마르듯 크게 줄었다 합니다. 고기잡이배가 더 커지고 고기그물이 더 발돋움한 탓에 새끼고기까지 잡아들이느라 조기가 확 줄었다 할 테지요. 그런데 ‘문명 발달’과 ‘마구 낚기(남획)’ 때문에 조기가 줄어들기만 했을까요. 1960년대 끝무렵이라 하면 새마을운동이 한창 온 나라를 휩쓸던 즈음입니다.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모르고도 언제나 유기농과 친환경으로 흙을 아끼고 살찌우던 사람들이 새마을운동 때문에 비료와 사료와 풀약과 항생제를 마구마구 쓰던 즈음입니다. 화력발전소가 부쩍 늘고, 폐수와 매연을 마구 내뿜는 공장이 엄청나게 늘던 즈음입니다. 고속도로와 함께 자동차가 끝없이 늘어나며, 사람들 스스로 환경을 아름다이 지키려던 마음을 한꺼번에 내팽개치던 즈음입니다.


- 당신하고 같이 사진 한 번 찍지 못한 것이 유감이 되어 어떡하면은 좋은런지 막 안타까운 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진은 나의 가슴에서 죽을 때까지 있다는 것을 알고, 당신에게 나의 사진을 보내드리니 살아 있는 동안에 잊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편지를 쓰면서도 폭탄 소리에 몇 번씩 놀라면서 점심시간에 감추고 쓰기 때문에 문구가 되지 못하더라도 잘 보시오. 인제 우리 학교는 어느 곳으로 이주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만 시간을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1950년 10월 11일 오후 10시 10분/36∼37쪽)
- 동무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머님이 자식을 서이식(셋씩) 전선으로 내보내게 되여 서운하실 것인데, 동무들이 만히(많이) 위려하여(위로하여) 주십시요. (1950년 10월 8일 정원/66쪽)


  이 나라 온 들판과 멧자락과 냇물과 바다는 쉰 해 남짓 비료와 사료와 풀약과 항생제에 찌들었습니다. 국립공원 멧자락이라 하더라도 솔잎혹파리를 잡는다며 갖가지 풀약과 항생제를 끝없이 뿌립니다. 깊디깊은 두메라 하더라도 풀약과 항생제 그늘에서 홀가분하기 어렵습니다. 마음 놓고 풀을 뜯어서 먹을 만한 시골이나 멧골은 없다 해도 될 만큼 슬프며 메마른 터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웬만한 시골이나 멧골도 흙길을 모조리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로 닦습니다. 깊은 멧자락 등성이나 봉우리까지 자동차가 붕붕 달립니다. 언젠가 관악산에 한 번 오르니, 꼭대기에서 냉장고를 들여 얼음과자에 막걸리에 라면 따위를 팔던데, 사람들은 스스로 먹고 마시고 버리고 더럽히는 짓을 끔찍하게 저지르며 하나도 안 느낍니다. 풀과 나무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줄 안 느낍니다. 풀과 나무가 깃들 흙이 싱그럽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줄 안 느낍니다. 물고기와 바닷고기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없으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는 줄 안 느낍니다.


  게다가, 풀·나무·흙·새·물고기 들을 살리는 길이 ‘옛날로 돌아가는 고단한 삶’인 줄 잘못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밥을 먹는 사람은 ‘풀 열매’를 먹는 사람이에요. 하얀 쌀밥을 먹더라도, 이 하얗게 깎은 벼알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이에요. 세겹살을 싸서 먹는 상추를 비닐집에서 키우더라도 흙이 있어야 자랍니다. 흙 없이 물로만 상추를 기르기도 한다지만, 전기로 밝힌 등불을 쬐며 물만 마시는 상추가 사람 몸에 좋은 기운으로 스며들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햇볕을 쬐며 빗물을 마시며 기름진 흙에서 자라는 상추나 배추나 무나 당근이나 호박이나 쑥이나 냉이나 버섯이 되어야 비로소 사람 몸에 좋은 기운으로 스며들리라 느낍니다.


  나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바람을 마시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햇살을 쬐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물을 먹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흙에 보금자리를 짓고 싶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좋은 바람·햇볕·물·흙을 꿈꿉니다.


- 어머님께 3천 원 쥐어 보냈는데 이제는 돈 보낼 일도 막연합니다. 어린 아해(아이)들을 맡겨놓으니 겨울 날 일 앞으로 지낼 일 참으로 가슴이 막힙니다. 어떻든 목숨만 붙어놔주시요. 아해들 어떻든 잘 길러주시요. 정세가 좋아지면 곧 만나겠지요. 급한 길가에서 씁니다. (강계 국립건설은행 북지점 한운봉/115쪽)
- 오라버님,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내가 보낸 이 편지를 품 안에 넣고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십시요. 부탁합니다. 꼭!! (1950년 9월 23일 복실은 올림/189쪽)


  도시에서도 먹이를 얻으며 목숨을 잇는 비둘기나 고양이나 참새나 까치나 개는 너무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들짐승다운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도시짐승하고 닮습니다. 도시짐승이 들짐승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듯, 도시사람한테는 들사람다운 모습이 조금도 없습니다. 가공식품과 화학약품에 길들어진 도시사람입니다. 물질문명과 제도권 울타리에 얽매이는 도시사람입니다. 스스로 책을 지을 수 있고, 스스로 학교를 세울 수 있으며, 스스로 흙을 일구거나, 스스로 삶을 가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 삶이 내 책입니다. 내 넋이 내 아이와 나를 함께 북돋우는 학교입니다. 내 하루가 내 보금자리 밭자락과 논자락을 북돋우는 땀방울입니다. 내 사랑이 내 생각을 보듬으며 내 삶이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던 때에는 ‘쓰레기’라는 낱말을 안 썼습니다. 쓰레기라든지 찌꺼기라는 낱말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 살림살이에서 쓰레기가 될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람다이 살아가지 않고 물질문명을 누리거나 퍼뜨리면서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생깁니다. 태워도 화학물질이 남는 쓰레기입니다. 묻어도 썩지 않는 쓰레기입니다. 전기를 만들며 수십만 수백만 해 동안 방사능이 남는 쓰레기입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옷을 만들고 아파트를 만들고 고속도로를 만들며 언제나 쏟아지는 쓰레기입니다. 쓰레기를 먹고 쓰레기를 누리며 쓰레기를 둘러놓고 살아가는 문명이고 물질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 삶을 헤아립니다. 한국전쟁이 터질 즈음 사람들 삶은 어떠했을까요. 새마을운동 따위 없던 때 사람들 삶은 어떠했을까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아니던 때, 이씨 임금들이 봉건 위계질서로 사람들을 내리누르지 않던 때, 서로 제 잘났다며 땅빼앗기를 일삼던 여러 나라가 우글거리지 않던 때,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거나 조그맣게 외딴집을 이루던 작은 사람들은 어떤 삶 어떤 꿈 어떤 이야기 어떤 나날을 지으며 사랑을 누렸을까요.


- 과히 놀라지 말아라. 평양 소식을 알린다. 9월 16일에 놈들의 공습에 무사히 지내든 우리 사는 사택에다가 80개의 폭탄을 던지며 수백 명 사람 죽고 하는 중에 우리의 두 집 식구는 천명으로 살아났다. 작은어머님 집도 폭탄에 치여 형편이 없고 무너지는 집 속에서 살아나고, 우리 집 식구는 집 안에 있다가 폭탄 파편에 겨우 몸을 빠져서 살아났다. 나는 현장에 갔다가 연기가 매우 나서 집에 돌아온즉 식구들은 울고 있는 현상이다. (210쪽)
- 집에서 네가 사랑하는 토끼 2마리, 돼지 2마리 모두 가지고 큰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을태 삼촌이 논에서 베를 베다가 적의 폭격에 희생되었다. (1950년 10월 10일/226쪽)


  이흥환 님이 엮은 인문책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를 읽습니다. 한국전쟁이 불거지면서 ‘보낸 사람은 있되 받을 사람은 없’어지고 만 편지꾸러미를 예순 몇 해만에 풀어내어 선보입니다. ‘혁명’과 ‘새 조국 건설’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러 있으나, ‘삶’과 ‘사랑’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거의 모두라 할 작디작은 편지에 담긴 이야기를 읽습니다.


  남녘이든 북녘이든, 총이나 폭탄이나 전투기나 군대는 무슨 값을 하겠습니까. 전쟁이나 무력통일이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무슨 보람을 하겠습니까.


  사람은 그저 사람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사람답게 사랑을 나누고 사람답게 꿈을 피우고 싶은 사람입니다.


  전쟁통에는 해방군도 적군도 아군도 인민군도 국군도 없습니다. 모두 바보입니다. 총을 든 사람은 몽땅 바보입니다. 총을 들어 평화를 지키겠다고 외친다지만, 총만 들어서는 아무도 살지 못해요. 한창 총을 쏘다가도 배가 고픈걸요. 한창 폭탄을 떨구다가도 똥이 마려운걸요. 한창 칼을 휘두르며 ‘내 이웃이거나 동무였을 적군’ 배를 가르고 팔다리를 자르다가도 졸음이 쏟아지는걸요.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아갑니다. 사람은 똥오줌을 누어야 살아갑니다. 사람은 잠을 자야 살아갑니다. 사람은 두 다리 쪽 뻗고 가뿐하게 드러누울 좋은 보금자리가 있어야 살아갑니다.


  이쪽도 저쪽도, 속으로는 ‘북진통일’이나 ‘남진통일’이 아닌, 아무런 정권도 주의주장도 권력도 체제도 울타리도 틀도 제도권도 없는, 그저 사랑스러우며 좋은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랐으리라 생각합니다.


.. 한국전쟁의 전쟁터에 불려 나간 청년들의 태반이 이런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도 남에서든 북에서든 국가의 이름으로 나중에 써낸 전쟁사에는 이런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 ..  (엮은이 말/164쪽)


  역사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사회나 정치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목숨(생명력)’이 없는 역사나 사회나 정치가 여느 사람들한테 무슨 꿈이 되거나 어떤 사랑이 될는지 생각합니다.


  목숨이 아닌 역사 기록은 잊히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 뜻도 값도 없습니다. 아무 뜻도 값도 없는 역사 기록을 굳이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잊히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처음부터 떠올릴 만하지 않고 얘기할 값어치 없는 역사 기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대단한 역사 기록이라 한다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님 발자국을 좇는 이야기만 실리지, 여느 사람들이 어떤 삶을 누리면서 어떤 사랑을 빚는가 하는 이야기는 안 실립니다. 역사 기록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값을 할 테지만, ‘삶·꿈·사랑·믿음·이야기’라는 보금자리로 돌아보자면 아무 값을 못 합니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에 실린 작디작은 글월은, 어느 글월이나 애틋하고 구수하며 살가운 사랑을 한 자락씩 보여줍니다. 바로 이 애틋하고 구수하며 살가운 사랑이 감도는 이야기이기에 즐거이 읽을 만합니다. 이렇게 애틋하고 구수하며 살가운 사랑이 풍기기에 반가이 읽을 만합니다. 1950년 6월에도 9월에도 10월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랑과 꿈과 눈물과 웃음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4345.5.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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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토마토 먹기

 


  앞니 위 넷 아래 셋 있다고 토마토를 깨물어 먹고 싶니. 그래, 깨물어 보렴. 깨물기는 하면서 먹지는 못하면서. 만지고, 입에 대고, 굴리고 쥐며 재미나게 놀렴.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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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 들고 어린이

 


  가까운 곳으로 마실을 하더라도 꼭 목에 사진기를 거는 아버지처럼 아이도 제 사진기를 들고 따라나서고 싶다. 잘 챙기고 예쁘게 놀아라. 궁금하다며 뚜껑 함부로 열다가 망가뜨리지는 말고. 벌써 망가뜨렸지? 아무리 쪼물딱거리더라도 망가진 사진기는 되살아나지 않을 텐데.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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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5-01 09:57   좋아요 0 | URL
류는 지금도 제 카메라를 자기 카메라 처럼 조물딱 조물딱 거리면서 놀아요,
류의 사진찍기는 아무 아주 어렸을때 손에 물건을 잡기 시작했을때부터인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제법사진을 잘 찍습니다,,
참 귀엽네요,,ㅎㅎㅎ

파란놀 2012-05-01 10:20   좋아요 0 | URL
네,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노는 요즘 아이들은
모두 사진을 잘 찍는구나 싶더라고요~

카스피 2012-05-02 22: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저런 필림 카메라는 집안의 가보 1호였지요.하지만 시간이 흘러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이다보니 위의 필림 카메라는 5천원선에 팔리더군요ㅜ.ㅜ
 


 개미집

 


  뒤꼍 땅뙈기를 밭으로 일구려고 틈틈이 삽과 쟁기로 파헤치곤 했다. 때때로 아주 커다란 돌덩이를 캐기도 한다. 이때에는 낑낑거리며 들어내고는 나중에 돌울을 쌓으려고 아무렇게나 던져 두곤 했다. 다른 일로 바쁘다가, 내팽개쳐진 돌덩이를 두어 달만에 들어서 돌울을 쌓던 엊그제, 커다란 돌덩이 밑에서 바글거리는 개미떼를 본다. 이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저 돌덩이 밑에도 개미집. 작은 돌 밑에도 개미집 있고, 조금 큰 돌 밑에도 개미집 있다.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개미집 구멍은 아주 작다. 문득 궁금해서 삽으로 쿡 찍어 ‘개미집 자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돌울을 쌓으며 물골을 내려고 하는데, 물골 자리에 있던 돌 밑마다 개미집이 어김없이 있다.


  개미들은 무척 커다란 벌레를 여럿이 들어 옮긴다고는 하나 ‘사람한테는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라 하더라도 여럿 아닌 수백이나 수천이 모여도 들어 옮기지 못한다. 모래로 이룬 언덕이라면 한 알씩 들어 날라 옮긴다 하지만, 한 덩어리 돌덩이나 바위라면 개미가 옮길 재주가 없으리라. 50층 높이쯤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덩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바위덩이를 수백 수천 수만 사람이 모인들 한꺼번에 짊어지고 옮길 수 있을까.


  네 식구 먹고살자며 밭을 일구고 물골을 낸다. 생각해 보니, 그토록 비가 퍼부었어도 이 돌덩이 밑에 있던 개미집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그러면 개미들은 어디로 드나들었을까. 비가 올 적에는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돌덩이 밑을 흙으로 꽁꽁 틀어막았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돌을 집어 나른다. 한쪽에 돌울을 쌓는다. 개미들은 집뚜껑을 하루아침에 잃는다. 이른바 ‘미리 알리기’조차 없이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이 집을 잃는다.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새 집을 찾아야 하고 새 보금자리를 지어야 한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이 쓴 《초원의 집》 둘째 권 끝자락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른 들판에 한 해 꼬박 걸려 알뜰히 짓고 밭까지 일구어 놓은 살림집을 이들 식구는 고스란히 내놓고 새 터로 떠나야 한다. 미국 정부에서 토박이들하고 협정을 맺어 ‘인디언 보호지구’를 마련하면서, 로라네 식구는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야 했단다. 로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해 동안 흘린 땀을 서운히 여기지 않는다. 거꾸로 보면, 북중미 토박이는 흰둥이한테 하루아침에 삶터와 일터와 꿈터를 몽땅 빼앗기지 않았는가.


  우리 시골마을조차 ‘4대강 사업’ 끄트머리 가운데 하나인 ‘시골 실개천 시멘트 처바르기’를 한다. 시골마을 논물이 흐르는 냇물 도랑을 뭐 하러 시멘트 들이부으며 ‘관광지 서울 청계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루 셀 수 없도록 커다란 돈을 들여 온 나라 물길을 시멘트로 처바른다. 냇물에서 살던 물고기 보금자리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냇물이 보금자리였을 숱한 목숨들 삶과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 들새와 물새를 생각하지 않는 건설업이요 경제이며 정치이다. 지율 스님은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천성산에 뚫으려는 굴을 막으려 했다지만, 도룡뇽 한 마리 때문에 고속철도를 안 놓아야 마땅하다. 도룡뇽 한 마리로 대표하는 뭇목숨을 아끼고 사랑하자면 고속철도는 없어도 된다. 고속도로도, 공항도, 전철도, 학교도, 아파트도, 공장도, 골프장도, 핵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도룡뇽 한 마리를 비롯해 뭇목숨을 살리고 아끼자면 구태여 안 지어도 된다.


  이틀쯤 지나 개미집 자리를 들여다본다.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모두 잘 옮겼을까. 모두 새 터에 즐겁게 또아리를 틀었을까. 개미들아, 물골은 이곳에만 하나 낼게. 새 물골은 내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 주렴.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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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28) 나름 1

 

여전히 손님은 별로 없지만 ‘아리바이트’까지 하는 할머니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나름 힘겨웠거든
《박기범-낙타굼》(낮은산,2008) 73쪽

 

 ‘여전(如前)히’는 ‘예전처럼’이나 ‘예전과 같이’로 다듬고, ‘별(別)로’는 ‘얼마’나 ‘거의’로 다듬습니다. 흔히 쓴다 싶은 한자말인데, 아마 한자말이라고 못 느끼기도 할 테고, 한자말이라 느끼더라도 이 낱말 쓰는 일이 무어 대수로운가 하고 여기기도 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여전히’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언제나’라든지 ‘언제나처럼’이라든지 ‘예전처럼’ 같은 한국말 쓰임새가 줄어듭니다. ‘별로’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그다지’나 ‘거의’나 ‘얼마’나 ‘몇’ 같은 한국말 씀씀이가 사라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바이바이’라 말하면서 ‘잘 가’나 ‘잘 있어’ 같은 한국말이 자취를 감춥니다. ‘또 봐’라든지 ‘다음에 봐’ 같은 한국말도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글쓰기’였을 테지만, 언제부터인지 ‘작문(作文)’이 되었고, 이제는 ‘라이팅(writing)’이라는 말이 곧잘 쓰입니다. ‘리라이팅’ 같은 영어도 쓰일 뿐 아니라 숱한 영어가 곳곳에 쓰여요. 이러면서 한국말로 가리키던 모습은 하나둘 사라져요.


  국어사전에서 ‘나름’이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나름 [의존명사]
  (1) (명사, 어미 ‘-기’, ‘-을’ 뒤에 ‘이다’와 함께 쓰여) 그 됨됨이나
      하기에 달림을 나타내는 말
   - 책도 책 나름이지 / 네가 열심히 하기 나름이다 / 제 할 나름이다
  (2)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방식이나 깜냥을 이르는 말
   - 나는 내 나름대로 일을 하겠다 / 자기 나름의 세상을 살기 마련이다 /
     나름대로 그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터 / 태임이는 태임이 나름으로

 

  제가 ‘나름’이라는 말을 올바르게 쓴 지는 2000년 즈음입니다. 이무렵에야 이 낱말 쓰임새를 비로소 제대로 알았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어 주는 어느 분이 어느 날, ‘나름’은 그 자리에 그와 같이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넌지시 일러 주었습니다. 저도, 이 보기글에 나오듯이 “나름 힘겨웠거든” 꼴로 ‘나름’을 쓰곤 했어요. 그분은 저한테 ‘나름’은 이처럼 외따로 적을 수 없는 말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나름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그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할머니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당신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이 말씀을 듣고 ‘엇, 그런가?’ 하며 온갖 국어사전을 다 뒤적이고,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읽었습니다. 한참 읽으며 헤아려 보니 참말 그렇더군요. 여태껏 제대로 모르고 ‘나름’을 쓴 셈이었습니다. 부끄럽더군요. 우리 말 운동을 한답시고 끄적거리는 주제에 ‘나름’ 한 마디 올바르게 못 쓰고 살았다니.


  저한테 ‘나름’ 쓰임새를 알려주신 분은 제가 그 한 마디 똑바로 못 쓴다고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젊은이가 그 말투를 아직 못 배웠겠거니 생각하며 일러 주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어느 때에도 ‘나름’ 쓰임새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법 수업이 있었으나, 이때 ‘나름’을 올곧게 쓰도록 가르치지 않았다고 떠올립니다. 어쩌면 교과서에 실리기는 했는지 모르나, 이러한 말씀씀이는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아요. 교사도 모르고 학생도 모릅니다. 여느 어버이도 모르고 여느 아이도 모릅니다. 지식인도 모르고 교수도 모를 뿐 아니라 기자도 모릅니다. 대통령도 모르고 국회의원이나 군수도 모릅니다. 공무원도 모르고 소설쟁이도 모르며 시인도 모릅니다. 참말 아무도 모르는 한국말입니다. 아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국어학자 또한 국어사전에 싣기는 하지만 올바르거나 알맞거나 슬기롭게 가다듬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이 일은 이 일 나름 뜻이 있다 (x)
 이 일은 이 일 나름대로 뜻이 있다 (o)

 

  한 마디로 간추립니다. ‘나름’은 외따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너 하기 나름이지”처럼 쓰든지 “할머니 나름대로 하셔요”처럼 써야 합니다. 앞에 이름씨를 하나 넣고, 뒤에는 씨끝을 붙입니다.


  몰랐다면 배워야 합니다. 나이 예순이든 일흔이든,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면 배워야 합니다. 몰랐으니 즐겁게 배웁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어떻게 말썽거리인가 이제껏 몰랐으면, 이제부터 배우면 됩니다.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는 까닭을 그동안 몰랐으니, 나이 예순이 되든 일흔이 되든 이제부터 배우면서 함께 어깨동무를 즐겁게 하면 됩니다.


  딱 하루만 알다가 이 땅을 떠나더라도 즐겁게 배우면 됩니다. 고작 한 시간만 알다가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참되었는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밝고 깨끗한지를 알 때에 내 아름다운 넋이 참말 아름다이 꽃을 피웁니다.


  예수님과 부처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아흔아홉 해를 모르고 살았어도, 마지막 한 해를 깨닫고 제대로 헤아리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마음이 평화로우며 사랑을 나누거나 베풀 수 있다고 하지요. 늦는 때란 없어요. 언제부터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손을 붙잡느냐가 대수롭습니다. ‘흘러간 낡은 말’을 배우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두고두고 우리 가슴에 새길 ‘언제나 새로운 말’을 배우며 나누는 한겨레요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4341.5.17.흙./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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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손님은 얼마 없지만 ‘아리바이트(곁벌이)’까지 하는 할머니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퍽 힘겨웠거든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3) 나름 2

 

젊으면 젊음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나이 들어도 젊은이들의 존중을 받으니까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함규진-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41쪽

 

  “젊음 자체(自體)만으로”는 “젊음만으로”나 “젊음 하나로”로 다듬습니다. ‘행복(幸福)하고’는 ‘즐겁고’로 손봅니다. “젊은이들의 존중을 받으니까”는 “젊은이들한테서 우러름을 받으니까”나 “젊은이들이 우러르니까”나 “젊은이들이 곱게 섬기니까”로 손질합니다. “행복할 수 있는 거야”는 “즐거울 수 있어”로 가다듬습니다.


  한 마디 두 마디 살뜰히 추스릅니다. 한 줄 두 줄 예쁘게 보듬습니다.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 그 나름대로 즐거울 수 있어
→ 서로 즐거울 수 있어
→ 저마다 즐거울 수 있어
→ 다 함께 즐거울 수 있어
→ 모두 즐거울 수 있어
 …

 

  생각을 살뜰히 추스를 때에 내 넋을 어떻게 어떤 낱말에 담아낼 때에 빛나는가를 깨닫습니다. 마음을 예쁘게 보듬을 때에 내 얼을 어떻게 어떤 글줄에 실어낼 때에 환해지는가를 느낍니다.


  좋게 헤아릴 때에 좋게 빛나는 말입니다. 곱게 살필 때에 곱게 피어나는 글입니다.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더라도 사람들은 무슨 줄거리인지 읽어냅니다. ‘나름’ 같은 말마디를 잘못 적었지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가 잘 읽습니다. 아마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대목이 있어도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를 옳게 읽겠지요.


  그런데, 띄어쓰기 틀리거나 맞춤법에 어긋나면 글쓴이나 읽는이나 알맞게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말투나 어그러진 말법이나 비뚤어진 말결은 글쓴이나 읽는이 모두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며 생각하지 못합니다.


* 보기글 새로 쓰기
젊으면 젊으니까 즐겁고, 나이 들어도 젊은이들이 좋게 모시니까 서로 즐거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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