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빛 사랑―최종규, 헌책방 이야기 사진잔치 열여섯, 2012.5.

 


찾아오는 길 www.gegd.co.kr/map.html
때 : 2012년 5월 3일∼5월 31일
곳 : 김형윤편집회사 1층, 헌책방 〈지나간 시간〉

 


  모든 책에는 저마다 다 다른 빛을 담습니다.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며 이루는 이야기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책 한 권으로 스며듭니다. 갓 나온 책을 살피면, 이제 막 이웃들 앞에 선보이면서 즐겁게 나누고픈 고운 사랑을 따사롭게 담은 빛이 환합니다. 새책방 책꽂이를 거쳐 헌책방 책시렁으로 옮긴 책을 돌아보면, 오래도록 이웃들하고 주고받던 고운 사랑이 보드랍게 무르익은 빛이 그윽합니다.


  새책이기에 더 빛나지 않습니다. 헌책이기에 더 어둡지 않습니다. 책이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한 자락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에 따라 책 하나가 나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습니다. 빛나게 스며드는 책이라 한다면, 두고두고 즐겁게 물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환하게 녹아드는 책이라 한다면, 오래오래 기쁘게 돌이킬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어느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사람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어느 책은 몇 안 되는 사람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백만 사람한테서 사랑받던 책이 있고, 열 사람한테서 사랑받은 책이 있습니다. 어느 책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어느 책이 더 값지다고 따지지 못합니다. 그저 나 스스로 내 삶을 알뜰살뜰 꾸리는 길에서 좋은 길동무나 이슬떨이로 삼을 만했다면 고마우며 반가운 책입니다.

 

  헌책방 마실을 즐기면서 찍은 사진들을 그러모아 “책빛 사랑”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책사랑’도 ‘빛사랑’도 아닌 ‘책빛 사랑’입니다. 책으로 스며드는 빛을 사랑합니다. 책을 바라보는 빛을 사랑합니다. 책을 일구던 빛을 사랑합니다. 책을 읽는 빛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새책방에 가건 도서관에 가건 헌책방에 가건 대여점에 가건 책을 읽습니다. 내 집 책꽂이에서 꺼낸 책이건 동무네 집 책꽂이에서 빌린 책이건 그예 책을 읽습니다. 나는 헌책을 읽거나 새책을 읽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책을 읽습니다. 1950년에 나온 책도 책이고, 2010년에 나온 책도 책입니다. 1850년에 나온 책이든 1990년에 나온 책이든 ‘나온 해’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책 하나를 읽으며 내 가슴이 어여삐 빛날 수 있으면 흐뭇합니다. 나로서는 ‘새책’도 ‘헌책’도, 또 ‘비싼 책’도 ‘값싼 책’도 읽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좋게 느끼는 책’을 읽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사랑할 책’을 읽습니다.

 

  책 하나로 이루어진 빛을 느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책 하나로 이루어진 빛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땅 조그마한 책마을에 조그마한 씨앗 하나로 태어나려는 아리따운 책터에 ‘사랑씨’와 ‘꿈씨’와 ‘믿음씨’가 찬찬히 얼크러지면서 ‘삶을 빛내는 씨앗’ 하나 싱그럽게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ㅎㄲㅅㄱ)

 


* 최종규
1975년에 인천 도화1동에서 태어남. 전남 고흥 동백마을 시골집에서 네 식구가 살아가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꾸림.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사진책과 함께 살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리깊은 글쓰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책 홀림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사랑하는 글쓰기》, 《생각하는 글쓰기》,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 같은 책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경기 파주 책잔치 하는 동안에

   나들이 하실 수 있는 분은 마실해 주셔요.

 

.. 저희 식구는 5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파주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 5월 5일 14시에는, 모이는 사람이 제법 되면

   "헌책방과 책과 삶"이라는 주제로 '사진잔치 강연'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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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남에서 파주까지 마실오시는군요.따남은 커서 괜찮겠지만 아드님은 아직 어린데 먼길을 가면 좀 힘들겠네요.된장님은 차가 없으신것 같으신데 설마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타고 기차타고 올라오시려면 좀 힘드실것 같습니당^^;;;

파란놀 2012-05-03 06:31   좋아요 0 | URL
모두 힘든 나들이입니다 @.@
에구...
 


 시골구름 책읽기

 


  시골마을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는 일도 책읽기입니다. 도시에서 아파트 너머 보이는 구름을 올려다보는 일도 책읽기입니다. 구름이 흐르는 결을 살피면 날씨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구름이 어지러이 흘러 날씨를 읽기 힘들다 한다면, 이런 결대로 책읽기입니다. 오늘날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든, 자연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든, 한국땅 봄·여름·가을·겨울이 엉터리가 된 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다만, 어렴풋이 깨닫더라도 제대로 느끼거나 옳게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그저, 모두들 봄날 이런 비가 갑작스레 퍼붓거나 쏟아지면 안 되는데, 봄에 여름 같은 날씨가 되면 안 되는데, 하고만 중얼거리고 그칠 뿐입니다. 날씨가 흔들리거나 바뀌는 까닭은, 나(사람들) 스스로 자연과 하나되는 삶하고 자꾸 멀어지기 때문인데, 내 탓을 깨닫지 않으니, 날씨는 자꾸자꾸 더 흔들리고 얄궂게 뒤틀립니다.


  시골마을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려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나들이를 다니거나 아예 시골에 보금자리 마련해서 꾸리는 삶이란 책읽기입니다. 어떤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거나 쑤셔넣거나 하는 지식넣기 아닌 책읽기입니다. 왜냐하면, 삶을 읽으려 하니까 책을 읽으려는 매무새입니다. 삶을 누리려 하는 몸짓이라면 책을 누리려 하는 몸짓입니다. 삶을 즐기려는 마음가짐일 때에는 책을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됩니다. 삶을 빛내려는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이라 한다면, 책을 빛내려는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이 될 수 있겠지요.


  시골마을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려는 사람이 반갑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시골마을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나부터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나란히 시골마을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언제나 바라보면서 내 가슴에 좋은 사랑이 천천히 솟아나기를 꿈꿉니다. 좋은 책이 내 가슴에서 샘솟기를 바라고 가다듬으며 기다리고 즐기며 생각하고 일굽니다. (4345.5.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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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 - 물구나무 023 파랑새 그림책 23
아를린 모젤 지음, 블레어 렌트 그림, 이미영 옮김 / 물구나무(파랑새어린이)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좋은 기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2] 블레어 렌트·아를린 모젤, 《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물구나무,2003)

 


  블레어 렌트 님 그림과 아를린 모젤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물구나무,2003)를 읽고 나서 두 차례 놀랍니다. 먼저, 일본 옛이야기를 일본 그림결 물씬 나도록 그림책으로 담은 사람은 일본사람 아닌 서양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아이하고 ‘그린이 이름’은 들여다보지 않고 책을 읽었어요. 그저 일본사람이 빚은 그림책이겠거니 하고 여겼습니다. 둘째, 이 예쁘장하며 재미난 그림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져 사라졌습니다. 헌책방에서 장만하거나 도서관에서 찾아보아야 비로소 구경할 수 있습니다.


.. 아주 먼 옛날 일본에 키가 작달막하고 웃기 잘하는 아줌마가 살고 있었어요. 아줌마는 곧잘 “히히히.” 하고 웃었고, 쌀로 떡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  (5쪽)

 


  온누리 모든 책이 언제까지나 사랑받을 수는 없습니다.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이 오래오래 널리널리 사고팔릴 수는 없습니다. 어느 책은 스무 해나 마흔 해가 지나도 사랑받으며 사고팔린다지만, 어느 책은 고작 한두 해 지나고 나서도 금세 감쪽같이 사라지곤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옛이야기만큼은 오래오래 사랑받습니다. 옛이야기를 담은 ‘요즘 책’이 그닥 사랑받지 못하고 썩 잘 안 팔릴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옛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 입과 눈과 마음을 거쳐 아이들 입과 눈과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그저 옛날 옛적 오래된 이야기라서 ‘옛이야기’라 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곱게 이어오면서 앞날까지 곱게 이어갈 만한 이야기일 때에 비로소 ‘옛이야기’라 합니다. 그저 오래된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라고만 해요.


.. “내 떡! 내 떡! 누구 내 떡 못 봤나요?” 이번엔 무섭게 생긴 지장보살이 말했어요. “내가 봤지. 2분 전에 내 옆으로 굴러가더구나. 하지만 그 떡을 쫓아가지 마라. 짓궂은 도깨비를 만나게 될 테니까.” “히히히.” 아줌마가 웃었어요. “저는 도깨비가 두렵지 않습니다.” ..  (13쪽)

 


  그림책 《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참 웃음이 많습니다. 무얼 한 가지 해도 즐겁게 웃습니다. 골을 부리지 않습니다. 성을 내지 않습니다. 토라지거나 삐치지 않습니다. 짜증을 내거나 뿔을 돋우지 않아요.


  그림책 아주머니는 꿈을 꿉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꿈을 꿉니다. 무언가 거머쥐려는 속셈이 아닙니다. 무언가 혼자 차지하려는 꿍꿍이가 아닙니다. 남몰래 히죽거리는 셈속이 아닙니다. 그예 수수하게 품는 꿈입니다. 그저 꾸밈없이 돌보는 꿈이에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나는 내 꿈을 얼마나 곱게 건사하는 어버이일까. 나는 내 꿈을 아이와 함께 얼마나 즐거이 누리고픈 어버이일까. 나는 내 꿈을 옆지기하고 얼마나 신나게 나누려 하는 좋은 짝일까.


  하얀 꿈은 하얀 사랑을 이룹니다. 까만 꿈은 까만 어둠을 부릅니다. 푸른 꿈은 푸른 들판을 빚습니다. 바알간 꿈은 바알간 빛깔을 뽐냅니다. 나는 어떤 빛깔로 내 삶을 보듬으면서 어떤 삶을 누리고픈 꿈을 꾸는 사람일까요.


.. “히히히.” 아줌마가 웃었어요. “쌀떡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  (24쪽)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제비가 노래합니다. 우리 집 뒷밭 둘레에서 들새가 노래합니다. 우리 시골마을 논자락마다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이웃마을 논배미에서 숱한 풀벌레와 멧새가 노래합니다. 논물이 모이는 냇물에서는 물고기가 노래합니다. 해오라기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노래합니다.


  모두들 사이좋게 노래하며 좋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 좋은 이야기 감도는 노래를 들으며 오늘 하루 어떤 좋은 꿈을 꾸는가 돌아봅니다. 나 또한 내 나름대로 즐거이 노래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빚으려는 하루인가요. 나부터 내 슬기를 가다듬어 기쁘게 노래하면서 좋은 사랑을 이야기 한 자락에 담으려는 나날인가요.


  그림책 《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에 나오는 아줌마는 대단한 재주가 없습니다. 놀라운 재주도 없습니다. 거룩한 솜씨라든지 빼어난 솜씨 또한 없어요. 그림책 아줌마는 여느 아줌마입니다. 지붕에 풀이 돋아 꽃이 핍니다. 마당은 풀밭이며 꽃밭입니다. 풀밭이며 꽃밭인 집 둘레에는 언제나 벌나비가 춤을 춥니다. 아줌마는 즐겁게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리며 집 안팎을 돌봅니다.


.. 어느 날 오후, 아줌마는 떠나온 집 생각이 나서 쓸쓸해졌어요. 그래서 아줌마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지요. 먼저 요술 주걱을 허리띠에 꽂고 문 밖을 나섰어요 ..  (26쪽)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좋은 기운 하나는 사랑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벗 하나란 사랑일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나 스스로 사랑이 좋다면, 누가 나한테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 내 좋은 사랑으로 우리 보금자리와 우리 마을을 곱게 바라보며 보살피면 됩니다. 나 스스로 사랑이 좋으니 내 손길은 사랑이 어린 손길이 되도록 다스리면 됩니다. 사랑을 담아 이야기를 건넵니다. 사랑을 실어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을 빚어 밥을 짓습니다. 사랑을 갈무리하며 빨래를 합니다. 사랑을 듬뿍 쏟아 살붙이들을 껴안습니다.


  좋은 마음을 품으며 좋은 삶이겠지요. 궂은 마음을 품으니 궂은 삶이겠지요. 더없이 쉽고 그지없이 뻔한 노릇이에요. 참 마땅하고 그야말로 옳은 노릇이에요.


  그림책을 덮고 다시 들추고 다시 덮고 다시 들추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찌뿌둥한 날씨에는 찌뿌당한 몸으로 찌뿌둥한 하루를 즐거이 보내자. 맑은 날씨에는 맑은 몸으로 맑은 하루를 신나게 보내자. 흐린 날씨에는 흐린 몸으로 흐린 하루를 예쁘게 보내자. 따사로운 날씨에는 따사로운 몸으로 따사로운 하루를 마음껏 보내자. (4345.5.1.불.ㅎㄲㅅㄱ)

 


― 별나게 웃음 많은 아줌마 (블레어 렌트 그림,아를린 모젤 글,이미영 옮김,물구나무 펴냄,2003.9.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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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5-01 13:01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을 품으면 좋은 삶, 궂은 마음을 품으면 궂은 삶... 저도 오늘 좋은 마음을 품고 이 화창한 봄날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산책하려고요. 산책은 뭐니뭐니해도 해질무렵이 최고예요.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하면 딱 좋던데요. ㅋㅋ

파란놀 2012-05-02 04:04   좋아요 0 | URL
걷기는 더 좋거나 나쁜 때가 없는 듯해요.
언제나 다 좋구나 싶어요.

저는... 다 좋아하는데
한낮을 조금 더 좋아하기도 해요.
땀 뻘뻘 흘리며 걸으며
내 몸을 더 잘 느끼곤 해요 @.@

류연 2012-05-01 18:58   좋아요 0 | URL
따사로운 날씨에는 따사로운 몸으로 따사로운 하루를 마음껏 보내자
좋은 말이네요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때는 나들이가 가고프네요 ㅎㅎ

파란놀 2012-05-02 04:03   좋아요 0 | URL
느긋하게 며칠 푹 쉬면서 나들이 즐기셔요~
 

모과나무

 


겨울 나고
새봄 맞은,

 

새눈 트고
꽃잎 열린,

 

꽃이 작고
잎이 작은,

 

앙증맞고
보드라운,

 

집 뒤꼍
모과나무.

 


4345.4.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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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집으로 찾아오는 제비
 [고흥살이 11] 어떤 집에서 예쁘게 살아갈까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린 날 인천에서도 제비와 박쥐를 자주 보았습니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제비와 박쥐는 참 흔했습니다. 땅강아지와 사마귀도 흔했고, 개구리와 매미도 흔했습니다. 낮에는 제비처럼 날아다니며 놀고 싶었고, 밤에는 박쥐처럼 날갯짓하며 놀고 싶었습니다.


  아파트가 그리 많지 않고 자가용 또한 얼마 있지 않던 예전 인천에는 제비와 박쥐가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길마다 자가용이 넘치지 않던 지난날 인천에는 땅강아지와 사마귀가 사람과 같이 살았습니다. 이제 높다란 아파트 우뚝 솟고, 골목마다 자가용이 줄줄이 늘어서는 곳에는 제비가 깃들기 힘듭니다. 박쥐가 매달리기 어렵습니다. 땅강아지도 사마귀도 개구리도 모두 도시에서 쫓겨나거나 도시를 떠납니다. 도시에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만 남습니다.


  2005년에 중국 연길시로 나들이를 다녀올 때에, 연길시 한복판에서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어릴 적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비들이 춤추고 저마다 보금자리를 틀 수 있다면, 이곳은 사람이 살아갈 만하겠구나 생각합니다.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고, 제비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한다면 사람 또한 좋은 보금자리를 오래오래 건사하기 어렵구나 생각합니다.


  4월 15일 언저리에 고흥 읍내에서 제비 여러 마리를 보았습니다. 4월 22일 한낮, 아이들 데리고 멧마실 들마실을 하다가 제비떼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춤추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니 얼추 백∼이백 마리쯤 되는 제비들이 떼를 지어 저마다 춤을 추듯 어울려 날아다닙니다. 봄을 맞이한 들판을 마음대로 가로지르면서 저희 좋은 짝을 찾는 춤사위일까요.


  우리 집 처마에는 제비집이 셋 있습니다. 하나는 튼튼하고 둘은 허물어졌습니다. 저 제비떼 가운데 두 마리는 우리 집 처마로도 깃들까 궁금합니다. 지난해 우리 집에서 지낸 제비가 지난일을 떠올린다면 이곳으로 다시 찾아들리라 생각합니다. 이러고서 이튿날 4월 23일, 암수 제비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으로 뻔질나게 드나듭니다. 둘째 아이 죽을 섬돌에 앉아 먹이며 바라보자니, 제비 두 마리는 입에 흙이랑 지푸라기를 물고 쉴새없이 드나듭니다. 지난해 살던 집을 새로 손질하느라 바쁘군요. 그래, 이렇게 찾아와 주는구나.


  봄맞이 제비들은 새벽 다섯 시를 넘을 무렵부터 지저귑니다. 천천히 동이 트는 빛살을 느끼며 하루를 열고, 바쁘고 즐거이 하루를 누리며, 고요하며 한갓지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제비는 꼭 저희 식구들 깃을 들일 만큼 조그마한 흙집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흙집을 지었습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돌로 바닥을 깔며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이었습니다. 제비는 흙집 처마에 흙집을 지으며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더 돌이키면,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 흙집 풀지붕에는 구렁이가 함께 살았습니다. 생쥐도 풀지붕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박꽃 또한 흙집 풀지붕에 뿌리를 내려 훤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삶이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람하다 싶은 건물을 높디높게 쇠붙이와 시멘트로 올려세워야 비로소 삶이 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밑거름인 흙으로 집을 지어 꾸릴 만한 삶입니다. 풀을 먹고 나무와 어깨동무하며 하루하루 누릴 만한 삶입니다.


  삶이란 참 대수롭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해마다 새 잎과 새 꽃이 나뭇가지마다 가득합니다. 해마다 싱그러이 피어나는 새봄이요, 해마다 짙푸르게 우거지는 들판입니다. 아이들은 새로 태어나고, 늙은 어버이는 조용히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새 목숨을 잇습니다. 사랑 누린 사람들이 따사로운 흙 품에 안깁니다. 가만히 돌고 도는 좋은 삶이기에 대수롭습니다. 찬찬히 이어가는 삶이기에 대단합니다. 쓰레기나 빚이나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 아닌 사랑과 믿음과 꿈과 마음과 생각을 잇는 삶이기에 아름답습니다.


  1912년 옛사람과 1512년 옛사람과 1012년 옛사람과 512년 옛사람과 12년 옛사람은 흙집 처마 제비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삶을 누렸을까 천천히 곱씹습니다. (4345.5.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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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5-01 13:10   좋아요 0 | URL
와우, 제비... 귀한 사진 올려주셨네요.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집도 잘 봤어요. 대문 위에 산과 하늘이 있군요.

파란놀 2012-05-02 04:02   좋아요 0 | URL
네, '귀한 사진' 맞답니다.
근데 '추천'이 너무 적네요 ㅜ.ㅠ

제비집과 제비를 잊거나 모르는
알라딘서재 이웃들한테 보여주려고
사진 잔뜩 올렸는데.... ㅠ.ㅜ

서당터 2012-05-01 18:35   좋아요 0 | URL
바쁘다는 핑계로 추억이 되었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내요.. 어릴적 구석구석 다니던 곳들이 어른이 되면서 가던곳만 일정하게다니는 습관을 만들어버렸내요.. 아이들에 눈에 보이는 내고향은 내가 어릴적 보았던 것들과 같은 모습일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흐른만큼 정말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어야 할 곳이 ... 내키보다던 높던 담장은
세월의 흔적처럼 무너적 버리고.. 나보다 작았던 동백꽃 나무는 나보다 커버린 시간들..
놀이터여던 변해버린 마을회관....그 많던 학생들을 잃어버린 초등학교.. 학교 고목 나무 밑에서의 추억들.. 좁아지는 마을길들.... .
따뜻한 사진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파란놀 2012-05-02 04:01   좋아요 0 | URL
서당터 님 마음속으로 늘 따뜻한 이야기를 품으시기에
이런저런 사진을 바라보면서 따뜻하다는 무언가를
느끼시는구나 싶어요.

언제나 좋은 마음 잘 이어 가시리라 믿어요~

카스피 2012-05-02 22:43   좋아요 0 | URL
제비라 어렸을 적에는 무릎근처라 날아다니던 제비를 본 기억이 나는데 요즘 서울에는 당최 제비를 볼수 없네요ㅜ.ㅜ

파란놀 2012-05-05 07:26   좋아요 0 | URL
제비가 서울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