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좋아진다
이태성 지음 / 낭만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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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에 좋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8] 이태성, 《사진이 좋아진다》(낭만북스,2009)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삶일 때에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글을 씁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하루를 누릴 때에 내 아이 또한 아이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하루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좋다고 느끼는 사랑을 나누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빛냅니다. 좋다고 느끼는 꿈을 키우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보살핍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며 아름답게 가다듬는 사랑일 때에는, 내 손에 연필을 쥐면서 아름답구나 싶은 글을 쓰거나 아름답구나 싶은 그림을 그립니다. 어여쁘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며 어여쁘게 북돋우는 꿈일 때에는, 내 손에 호미를 쥐면서 어여쁘다 싶은 논밭을 일구거나 어여쁘다 싶은 풀과 나무하고 이웃합니다.


  생각이 삶으로 되고, 삶이 고스란히 글이나 그림이나 흙이나 푸나무로 스밉니다. 내가 여느 삶자리에서 누리는 넋이 바로 내 글이요 그림입니다. 내가 여느 삶터에서 가꾸는 얼이 바로 내 밭흙이요 푸나무입니다.


  사진을 찍는 이태성 님이 《사진이 좋아진다》(낭만북스,2009)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이태성 님은 “정신없이 이어진 촬영 끝에 온 깨달음은 아주 분명했다. 감정에서 시작된 열정적인 촬영의 반대편에는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를 냉정하게 조작해야 하는 것이 사진만의 독특한 매력인 것이다(28쪽).” 하고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든 차분하게 사진을 찍든 조리개와 셔터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자동으로 맞추고는 정신없이 찍을 수 있어요. 완전자동으로 맞추면서도 차분하게 찍을 수 있어요. 사진은 사진기를 움직여 빚는 삶입니다만, 사진기라는 기계를 어떻게 다루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발이를 받치고는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을 텐데, 누군가는 세발이 없이도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어요. 누군가는 세발이를 받쳤어도 흔들렸구나 싶은 사진을 찍거나 초점이나 무언가 어긋나게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그저 홀가분하게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 가운데에는 작품이라 할 사진이 있을 터이나, 사진찍기는 작품찍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는 빛이나 조리개를 어찌저찌 맞추거나 어느 사진기나 필름을 쓸 때에 한결 돋보인다고 말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과 마음이 모두 달라요. 누군가는 놀이사진기(토이카메라)로 이런 느낌을 찾는다면, 누군가는 1회용사진기로 저런 느낌을 찾아요.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담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계로 똑같이 찍을 까닭이 없어요. 사진은 그저 사진이에요. 내가 살아가는 나날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삶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그리는 꿈을 담는 사진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담는 사진이에요.


  사진이 좋아진다면, 내 삶이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내 삶이 좋아지지 않고서야 내 사진이 좋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삶을 좋아지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작품만 빚는 이가 꼭 있습니다. 아마, 삶은 안 좋아지고 사진도 안 좋아지지만, 작품 하나만은 돋보이도록 하는 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눈부신 작품이나 빛나는 예술이나 훌륭한 문화를 빚는다고 하는 사진쟁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삶은 무너지면서 문학은 세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삶은 흔들리면서 판화는 우뚝 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삶은 어두우면서 작품은 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태성 님은 “강원도에서라면 특별할 것이라 믿었던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에게도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이 특별한 기분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 정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동그랗고 귀여운 태양이 공산성 너머로 지는 자극적인 풍경이었다(50쪽).” 하고 말합니다. 서울에서도 슬프다면 서울 바깥에서도 슬픕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슬픈 빛을 스스로 털며 서울을 벗어난다면, 서울에 있든 서울 바깥에 있든 내 마음은 가장 홀가분하면서 더없이 싱그러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불러들이는 슬픔입니다. 스스로 맞아들이는 기쁨입니다. 스스로 꾀하는 어두움입니다. 스스로 바라는 밝음입니다. 스스로 망가뜨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아끼는 삶입니다.


  곧,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누군가는 작품을 합니다. 누군가는 삶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꿈을 이룹니다.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얻어야 사진을 하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책을 펴내야 뜻을 이루는 길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은 ‘작품’을 비싼값에 팔아야 꿈이 펼쳐진 셈이 아닙니다.


  사진기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연필이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이태성 님도 “어쩌면 우리가 가진 눈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이고, 우리가 가진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필름이 아닐까(102쪽).” 하고 말합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사람은 두 눈으로 언제나 사진을 찍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언제나 사진을 건사합니다. 그런데, 이태성 님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정작 “방앗간 주인 할아버지와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왜 찍으려고 하는 거냐고 할아버지께서 물었다. 그냥 내 앞에 주어진 풍경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들이 조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102쪽).” 하고 덧붙입니다.


  이태성 님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용기가 안 나서 말을 못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이태성 님 삶이 아니’기에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아직 이태성 님한테는 ‘이태성 님 앞에 주어진 모습이 사랑스럽거나 예쁘’지 않으니, 이렇게 말하지 못할 뿐이에요. 책에 글 몇 줄 적바림한대서 ‘내 삶’이나 ‘내 넋’이나 ‘내 길’이 되지 않아요. 책에 적바림하는 몇 줄 글은 그저 ‘내 바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몇 줄 적는대서 내 삶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스스로 이와 같이 살며 좋아할 때에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말이 삶이 되고 삶이 말로 드러날 때에, 바야흐로 내가 바라보는 그대로 내 사진이 될 수 있어요.

 

 


  이태성 님은 “여행이란 이방인이 되어 낯선 도시를 걸을 때 이해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며 나와 남을 구별하는 방식을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도 없는 대지에서 자연과 마주서는 느낌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164쪽).” 하고 말합니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삶이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태성 님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참말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참말 이러한 결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른대서 바보가 아니요, 모르기에 아무것도 못하지 않아요. 누구나 스스로 아는 만큼 하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누리면 돼요. 오늘 이곳에서 “여행이란 이방인이 되어 낯선 도시를 걸을” 때에 누리는 빛이라 여기면, 이대로 누리면 됩니다. 굳이 딴 모습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내 모습이 아닌 탈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이 아닌 껍데기를 뒤집어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만 잘 아로새기면 돼요. 좋은 삶에 좋은 사진이에요. 예쁜 삶에 예쁜 사진이에요. 웃는 삶에 웃는 사진이에요. 슬픈 삶에 슬픈 사진이에요.


  사랑하는 삶에 사랑하는 사진이기에, 사랑스레 바라보는 눈길과 매무새로 사랑스레 느끼거나 나눌 사진 하나 찍습니다. 길손이 고작 하루 머물다 지나가며 찍는 사진이기 때문에 사랑스레 나눌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나그네가 아주 살짝 다리쉼만 하고 지나가는 결에 찍는 사진이라서 사랑스레 느낄 사진을 못 찍지 않습니다. 경주 토박이라서 경주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부산 토박이라서 부산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그러니까, 서울 토박이라서 서울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스튜디오를 꾸린대서 스튜디오 사진을 잘 찍지 않을 뿐 아니라, 패션사진가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패션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이와 같은 얘기가 될 텐데, 다큐사진가라는 이름을 붙일 때에도 다큐사진을 잘 찍는다 할 수 없어요. 오직 한 가지예요. 좋은 삶에 좋은 사진이고, 궂은 삶에 궂은 사진입니다. 참다이 빛내는 삶에 참다이 빛나는 사진이며, 검은 속셈으로 얼룩진 삶에 검은 속셈이 환히 드러나는 얼룩진 사진입니다. (4345.7.29.해.ㅎㄲㅅㄱ)

 


― 사진이 좋아진다 (이태성 글·사진,낭만북스 펴냄,2009.12.30./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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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이야기에서 1번으로 나올 만한 책이지만, 9번으로라도 나오니 반갑다. 농부가 없으면 도시사람 누가 밥을 먹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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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란다- 농부
이윤엽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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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알아채지 못한 사진

 


  참 좋다고 느낀 삶 한 자락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누리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있어, 이 꿈과 사랑을 사진으로 적바림합니다. 스스로 느끼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없다면 내 손에 사진기를 쥘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좋은 웃음과 이야기가 있어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우리 시골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손님은 두 아이를 데리고 왔으며, 우리 집에도 두 아이가 있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참으로 좋네, 하고 느끼며 시골 들길을 거닐며 우리 집으로 가는 뒷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적바림합니다. 손님을 치르고 나서 며칠 지난 뒤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뒷모습 사진이기에 뒷모습을 담습니다. 우리 아이가 등에 뭔가를 멨습니다. 뭔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복주머니’입니다. 옆에 선 언니가 가방을 멨기에 저도 복주머니를 가방처럼 등에 멘 셈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등에 복주머니를 멘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손님네 언니랑 사이좋게 놀면서 언니를 따라합니다. 아이는 즐겁게 놀았겠지요. 어버이가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고, 어버이가 미처 못 알아챌 만큼 즐겁게 놀았겠지요.


  사진으로 뒷모습을 찍었기에 나중에 알아보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뒷모습을 안 찍었더라도,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논 줄 몰랐다 하더라도, 아이 얼굴을 보면 웃음이 흐드러지니까 ‘그래, 이런 웃음이 좋아.’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새롭게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도 예쁜 뒷모습도 모두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4345.7.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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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2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언니와 안헤어지려고 하지 않던가요? 저만할 때 언니를 무척 따를 때인데요.
언니 따라 복주머니 멘 것 보고 혼자 상상해봅니다.

<삶말> 잘 받았어요. 고맙게, 잘 읽겠습니다.

파란놀 2012-07-29 07:50   좋아요 0 | URL
놀이동무 곁을 안 떨어지려고 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놀아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9) 마찬가지

 

마찬가지로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거야 …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픈 건 우리가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단다
《요시노 겐자부로/김욱 옮김-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217, 219쪽

 

  “자신(自身)이 불행(不幸)하다고”는 “스스로 즐겁지 않다고”나 “스스로 슬프다고”로 손볼 수 있고, “느낄 거야”는 “느끼겠지”나 “느낄 테지”로 손봅니다. “마음이 아픈 건”은 “마음이 아픈 까닭은”이나 “마음이 아프다면”으로 손질하고, “정상적(正常的)인 정신(精神) 상태(狀態)에서 벗어났다는 것을”은 “옳은 마음에서 벗어났다고”나 “올바른 마음하고 동떨어졌다고”로 손질해 봅니다. “알려주는 신호(信號)라고”는 “알려주는 뜻이라고”나 “알려주는 셈이라고”나 “알려준다고”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그나저나 이 보기글에서는 이런저런 한자말이나 말투를 다듬는다 해서 글이 매끄럽거나 예쁘지 않아요. 여느 눈길로는 좀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얄궂은 대목이 있습니다. 첫 글월은 첫머리를 ‘마찬가지로’로 엽니다. 다음 글월은 첫머리를 ‘이와 마찬가지로’로 엽니다. 똑같이 ‘마찬가지’라는 낱말을 쓰지만, 두 낱말을 쓴 모양새가 달라요.


  이와 비슷하게 쓸 만한 다른 낱말을 넣어 생각해 봅니다. 이를테면, ‘매한가지’나 ‘비슷’과 ‘같다(똑같다)’를 생각해 봅니다. 이들 낱말을 글 첫머리에 넣는다 할 때에도 “매한가지로 눈이 하나밖에 없는”이나 “비슷하게 눈이 하나밖에 없는”이나 “똑같이 눈이 하나밖에 없는”처럼 적어도 잘 어울릴까요.

 

 마찬가지로 (x)
 이와 마찬가지로 (o)

 

  ‘마찬가지’나 ‘매한가지’나 ‘비슷’이나 ‘같다(똑같다)’를 글 첫머리에 넣을 때에는 앞 글월에 나오는 어떤 이야기를 듭니다. 곧, ‘이와’를 넣어야 글이 이어집니다. “너는 참 예뻐.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참 예뻐.”처럼, ‘이와’라는 말마디가 들어가서 앞에 어떠한 이야기가 나오는가를 밝혀야 올발라요.


  어쩌면, “마찬가지로 나도 참 예뻐”라고만 적으면서 ‘이와’는 살짝 덜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러하지만’이나 ‘그러하지만’이라 적어야 될 자리에 ‘하지만’이라 적어 버릇하거든요. 더군다나, 적잖은 글쟁이나 지식인은 ‘이리해서’나 ‘그리해서’라 적어야 될 자리에 ‘해서’라고만 적기 일쑤예요.


  말길이가 길어지거나 늘어지기에 이처럼 줄여서 쓸 수도 있다고 여길 만하지만, 곰곰이 살피면 말길이 때문에 줄여서 쓴다고 느끼기 힘들어요. 멋을 부리거나 치레를 하려고 자꾸 ‘새롭다 싶은 말투’로 써 버릇하는구나 싶어요. 한동안 ‘쉼표(,)’를 글 사이사이 수두룩하게 집어넣는 문학이 퍼진 적 있어요. 이야기가 새로워야 할 텐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얽매였달까요. 어느 모로 보면, 내 마음을 더 넓고 깊이 보여준다 할 말투라 할 수 있지만, 가만히 살피면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고 마음을 여는 길을 가로막는 말투라 할 만하기도 해요.

 

 비슷한 것을 지었다
 노래 비슷한 것을 지었다

 

  더 깊은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끼리라면 “비슷한 것을 지었다”라고만 적어도 무엇을 지었다는 뜻인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낯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노래 비슷한 것을 지었다”라고 적어야 제대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바쁘다 바빠’ 하고 외치는 삶터에서는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같은 말투가 자꾸 퍼질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하자면”처럼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꾸 사라지리라 느낍니다.


  뜻을 알고 느낌을 새긴다면 2000년대 또는 2010년대 새로운 말투로 여길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터에서는 새로운 말투라 하듯, 오늘날 바쁘고 힘든 도시 사회에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말하자면”처럼 말하는 한국 말투는 이냥저냥 잊어도 될 만하고 여기면서 “마찬가지로 말하자면”처럼 말해 버릇해도 된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와같이”처럼 몽땅 붙여서 쓰는 사람도 제법 있어요.


  한국 말투는 벌써 무너진 지 오래라 하는 사람이 있고, 지구별을 헤아리는 마당에 영어를 배워야지 한국말을 익혀서 무엇에 쓰느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치고 영어 말투를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콩글리쉬’를 쓰면 엉터리라 나무라는데, 정작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며 슬기롭고 어여삐 가다듬는 사람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참말 한국 말투는 벌써 무너진 지 오래일까요? 참말 한국 말투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어른들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예전에 무너졌다’고 둘러대는 셈 아닐까요? 참말 한국 말투를 살리거나 살찌우거나 빛낼 오늘날 어른들 스스로 제 할 몫을 안 하며 바보스레 살아가지는 않나요? (4345.7.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와 마찬가지로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슬프다고 느끼겠지 …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프다면 우리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알려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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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딩동 편지 왔어요 - 우편집배원 일과 사람 2
정소영 지음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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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띄우는 마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3] 정소영,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사계절,2010)

 


  편지나 택배를 부칠 일이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면 소재지로 갑니다. 비가 모질게 오거나 아이들이 새근새근 자지 않으면 언제나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우체국으로 갑니다. 면 소재지에 우체국 하나 있기에 고맙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우체국은 아주 작습니다. 아주 작지만 걸상이 놓이고 화장실이 있습니다. 작은 시골 우체국이지만, 서울이나 도시처럼 땅값이 비싸지 않으니 자리를 넉넉하게 씁니다.


  택배를 부칠 때에는 집에서 종이에 미리 주소를 적어서 붙입니다. 편지를 부칠 때에는 우체국에서 무게를 달고 크기를 잽니다. 편지에 스티커 아닌 우표를 붙이고 싶어 얘기를 해 본 적 있는데, 시골 작은 우체국에는 우표가 없어 붙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우표가 오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읍내 우체국에 가면 우표가 있으리라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편지는 모두 스티커를 붙입니다. 들고나는 모든 흐름을 기계에 맡깁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우표를 붙여서 편지를 보내자면 품이 많이 들 뿐더러, 우표 갯수와 값을 날마다 셈해야 합니다. 퍽 번거로운 일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체국에서 우표를 쓰자고 생각한다면, 우표에 조그맣게 바코드를 새겨서 이 바코드를 읽도록 하면 갯수이든 값이든 셈틀이 알아서 손쉽게 셈할 수 있어요.


  더 생각하면 요즈음 편지를 부치는 사람들 가운데 봉투에 손수 주소와 이름을 적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공무원이라면 모든 집 주소와 이름을 하나하나 손으로 적자면 너무 힘들다 여길 테니 이렇게 안 할 만합니다. 전기값이나 전화값 내라는 쪽글을 한국전력이나 한국통신 일꾼이 손으로 써서 보낼 일은 없겠지요. 그러나 맨 처음에는 누구나 으레 마땅히 손수 주소와 이름을 적었으리라 생각해요. 맨 처음에는 편지를 부치려는 사람 누구나 으레 마땅히 손수 우체국을 찾아갔으리라 생각해요.

 

 

 


.. 우편물이 산더미라고?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몇 배나 더 많아. 처음엔 힘들어서 팔다리가 덜덜 떨렸어. 지금은 가뿐하게 해내. 자꾸 하다 보니 힘이 세졌나 봐 ..  (10쪽)


  나는 국민학생이던 때부터 우체국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우표를 모으며 놀기도 했지만, 편지동무가 있어 편지를 부치려고 우체국을 참 자주 찾아갔습니다. 구멍가게에서 보통우표를 사서 부칠 수 있지만, 부러 우체국에 가서 갓 나온 예쁜 기림우표를 사서 부치고 싶었어요. 내가 편지동무 한 사람한테 부치는 편지는 오직 한 통인 만큼, 오직 한 통에 걸맞게 예쁘게 주소와 이름을 적고, 오직 한 통에 알맞도록 사랑스레 우표를 붙이고 싶었어요.


  우체국에 처음 스티커가 나오던 때를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우체국 일꾼 스스로 스티커가 익숙하지 않다며 잘 안 쓰려 했습니다. 손으로 주소와 이름을 적어서 부치려는 편지에 스티커를 붙이자니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장 예쁜 기림우표를 찾아서 붙여 주려 했습니다. 스티커 붙이는 기계가 망가져서 못 쓸 때에는 ‘손수 우표값을 헤아려 알맞게 잘라서 붙이’면서 ‘늘 이렇게 해 오던 일’인데 ‘이제는 기계와 셈틀 없으면 일을 못 하’는 흐름이 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편지가 퍽 줄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앞서는 집집마다 뭔가를 광고하는 편지가 꽤 많았습니다. 이제 광고편지는 종이봉투에 담아 보내지 않습니다. 광고편지는 누리편지로 띄웁니다. 광고종이를 사람들이 우체통에 수두룩히 꽂습니다. 도시에서는 우체통마다 광고종이가 넘쳐나서 정작 편지가 묻히거나 버려지거나 휩쓸리기도 합니다.

 

 

 

 

 


.. 여기가 바로 내 구역이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지만, 주소를 익히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 이젠 눈 감고도 훤히 알 수 있어 ..  (20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광고종이를 하나도 구경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몇 안 되는 집집을 돌며 광고종이를 넣는 사람은 없습니다. 광고종이란 물건을 팔려는 종이요, 물건을 팔려는 사람은 좁다란 도시에 촘촘히 들어서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꼬드겨 물건을 팔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악다구니와 같아요.


  나는 신문배달을 했기에 편지배달을 하는 일을 살짝 어림해 봅니다. 우체국 일꾼이 커다란 가방에 편지나 소포를 잔뜩 담고는 모든 집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갑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우체국 일꾼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면 가까이나 멀리 떨어져서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우리 집에 어떤 편지가 왔을까 하고 기다립니다. 우리 집 우체통에 무언가를 넣는가 하고 바라봅니다.


  도시에 아파트가 처음 생길 무렵 우체국 일꾼은 ‘더 많은 집을 더 수월하게 찾아가서 편지를 넣을’ 수 있기에 홀가분하겠지 하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신문배달을 하는 나는 우체통에 신문을 넣지 못하고 꼭 대문 밑이나 우유주머니에 넣어야 했어요. 신문을 아파트 우체통에 꽂으면 누군가 얌체처럼 훔치곤 해요.


  아마 우체통에 꽂힌 편지를 몰래 훔친 사람도 있겠지요. 제 것이 아니면서 슬쩍하는 사람이 참말 있어요. 우체통에 꽂힌 책이나 잡지를 가로채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보내는 보람과 받는 보람을 앗는 사람 마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싹틀까요.

 

 

 


.. 하지만 마을로 들어오면 나를 기다리는 분들이 참 많아. 여기는 읍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없어. 차도 사람도 별로 없어서 어르신들이 읍내 나가기가 힘들어. 그래서 내가 오고 가며 심부름도 해 드려 ..  (34쪽)


  편지를 띄우는 마음은 그리운 사랑을 띄우는 마음입니다. 가까이 떨어진 곳에 살든 멀리 떨어진 곳에 살든 조그마한 편지 한 통이 다리가 되어 서로 만납니다. 종이 몇 장에 연필로 눌러 적은 글이 숱한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편지를 보내며 이 편지를 언제 받으려나 하고 설렙니다. 편지를 받은 뒤에 답장을 쓰겠지 하고 생각하며 두근두근합니다. 내가 보낸 이야기에 어떤 이야기가 돌아올까 하고 기다립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살가운 벗한테는 편지가 없어도 서로 이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은 너한테 바람처럼 날아서 찾아갑니다. 네 마음은 나한테 햇살처럼 따사로이 찾아옵니다. 굳이 종이에 글을 써서 보내지 않아도 서로서로 예쁘게 만납니다. 따로 편지라는 틀이 없어도 서로서로 기쁘게 어울립니다. 종이에 부러 글을 써서 보낸 까닭이라면, 서로를 그리고 아끼며 생각하는 좋은 마음을 오늘 하루 기쁘게 누리고 싶기 때문이었으리라 느낍니다. 편지를 쓰면서 내 하루를 더 사랑하고 더 즐기며 더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 하지만 나는 내 일이 좋아. 날마다 빨간 우체통을 열고 이런저런 사연이 담긴 편지들을 만나는 게 좋아.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참 좋아. 나는 우편집배원이니까 ..  (44쪽)


  정소영 님이 빚은 그림책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사계절,2010)를 읽습니다. “일과 사람”이라는 큰 틀거리에서 오늘날 지구별 사람이 ‘돈버는 일자리(직업)’로 삼는 여러 갈래를 살피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는 우체국 얼거리를 보여주고, 편지나 소포를 가르는 흐름을 보여주며, 우체국 일꾼이 어떻게 편지나 소포를 나르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어린이는 우리 둘레 수많은 이웃 가운데 한 사람을 한결 깊이 헤아릴 만합니다. 어쩌면 어느 어린이는 ‘나는 우체국 일꾼이 되고 싶어’ 하고 생각할 만합니다.


  좋습니다. 스스로 좋게 품는 생각이라면 좋게 누리는 삶이 될 테니까 좋습니다. 편지를 나르는 일꾼은 사람들이 즐겁게 품고 좋게 돌보려는 뜻이 담긴 편지를 두 손 가득 살뜰히 어루만지면서 집집마다 나르니까 좋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느 회사에서 돈을 더 벌어들이려는 뜻으로 광고종이를 잔뜩 찍어 보내려 할 때에는 이 짐덩어리를 나르느라 고단하겠지요. 사랑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편지를 손에 쥐며 사랑스러움이 자랍니다. 사랑스러운 기운이 없는 광고편지를 손에 쥐며 일이 고됩니다.


  가난한 달동네 마을에 ‘토지강제수용’ 알림편지를 돌려야 할 때에는 얼마나 슬플까요.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나 송전탑을 맞아들이지 않으려는 시골마을 사람들 집에 정부나 기업에서 보내는 ‘압류장’이나 ‘고소장’을 돌려야 할 때에는 얼마나 힘겨울까요. ‘군대 징집영장’을 돌릴 때에도 얼마나 아플까요.


  온누리에 웃음이 가득한 삶이면서 웃음이 가득한 편지를 부치고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전쟁 아닌 평화를 담고, 광고 아닌 사랑을 담는 편지를 서로서로 오붓하게 주고받으면 얼마나 예쁠까요.


  문득 돌아보면, 세금고지서는 편지로 띄울 일이 아니지 싶어요. 한국전력이든 한국통신이든 건강보험공단이든, 이곳 일꾼이 다달이 스스로 마을을 두루 돌면서 집집마다 사람을 얼굴을 마주보면서 세금을 받아야지 싶어요. 돈으로 흐르거나 전산처리라는 허울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얼크러지는 삶터로 달라져야지 싶어요. 우체국 일꾼이 하는 일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살가운 징검돌 구실이라고 생각해요. (4345.7.28.흙.ㅎㄲㅅㄱ)

 


― 일과 사람 02 : 우편집배원,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 (정소영 글·그림,사계절 펴냄,2010.4.3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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