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조병준 詩의 집
조병준 지음 / 샨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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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하느님과 시
[시를 노래하는 시 26] 조병준,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책이름 :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 글 : 조병준
- 펴낸곳 : 샨티 (2007.9.15.)
- 책값 : 9000원

 


  마당에 걸상을 놓고 앉아 파리를 잡으며 시를 읽습니다. 웬 파리가 이렇게 달라붙나 싶어 한 마리 열 마리 두 마리 스무 마리 끝없이 잡습니다. 파리는 무언가 제 먹이가 있으니 떼를 지어 붕붕 날아다니겠지요.


  파리채에 얻어맞아 목숨을 잃은 파리는 마당에 톡톡 떨어집니다. 마당에 파리 주검이 하나둘 늘면 이제 개미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개미는 파리 주검을 혼자 붙잡고 나르기도 하고, 둘이나 여럿이 함께 들어 나르기도 합니다. 작은 개미는 파리 주검에 잔뜩 달라붙어 파리 주검을 조각조각 뜯어서 나르곤 합니다. 개미들은 모기도 잠자리도 나비도 조각조각 잘라서 저희 집으로 나릅니다. 개미들은 벌레 주검이 생기면 곧 냄새를 맡고는 몰려들어, 이들 주검을 깨끗이 치웁니다.


.. 꽃무늬 벽지 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 베니어합판 뒤로 꿈꾸는 사람들이 들린다 ..  (슬픈 여인숙)


  처마 밑에 어느새 생긴 거미줄이 퍽 큽니다. 거미는 처마랑 빨래줄 사이에 하얀 줄을 드리웁니다. 거미는 제법 커서 마치 하늘을 붕 뜬 채 걸어다니는 듯 보이곤 합니다. 어느 날 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걸립니다. 나비는 꽤 크게 몸부림을 치고 거미가 가까이 다가섭니다. 그런데 나비가 거미줄에서 풀려나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거미가 줄을 끊어 나비를 풀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럴까, 그럴까, 생각합니다. 거미한테 너무 큰 벌레가 줄에 붙으면 줄이 몽땅 끊어지니 풀어 줄 수 있겠지요.


  지붕 위부터 퍽 높은 전깃줄 사이에 이어진 거미줄에도 잠자리가 걸립니다. 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풀려나지 못합니다. 곳곳에 거미줄이 많고, 곳곳에 잠자리나 나비가 곧잘 걸립니다. 엊그제에는 빗물받이와 처마 사이에 새로 생긴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기에 손가락으로 줄을 끊어 풀어 줍니다. 거미도 잠자리도, 또 나비도 파리도, 또 개미도 만만하지 않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개미는 흙땅 큰돌 밑에 집을 짓곤 하는데, 내가 큰돌을 골라 옮길 때면 개미들은 저희 집 지붕을 잃었다며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어지러이 헤매며 새 터로 옮기곤 합니다.


  나는 돌을 옮길 뿐이지만, 개미는 집을 잃은 셈입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릴 뿐이지만, 때때로 나뭇가지 사이 거미줄을 머리나 자전거로 끊곤 합니다. 나는 밭뙈기 풀을 뽑지만, 밭뙈기 풀숲에 깃들던 벌레는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내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됩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들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물결이 되어 나한테 찾아들곤 합니다. 나는 나대로 물결이고, 옆지기와 아이들은 서로서로 저마다 다른 물결입니다. 물결과 물결이 만나 출렁거리기도 하고, 살가이 얼크러져 녹아들기도 합니다. 여러 물결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여러 물결은 골을 부리듯 부딪히며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 나뭇잎들도 비를 덮고 따뜻했을 거야 ..  (희생)


  집안에 들어온 모기를 두 손바닥을 짝 부딪혀 잡습니다. 피가 팍 튀는 모기가 잡히기도 하고, 새끼손톱보다 큰 모기가 잡히기도 합니다. 네가 먹은 피는 누가 피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네 커다란 덩치로 우리 피를 얼마나 빨아먹으려 했니 하고 묻습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습니다.


  내 이웃이든 먼 이웃이든 사람들은 으레 모기향을 태우거나 모기약을 뿌립니다. 모기를 좇거나 잡으려고 갖가지 약을 씁니다. 약을 써서 모기가 해롱거립니다. 그리고, 약을 쓰는 만큼 모기향이든 모기약이든 사람 몸이나 옷이나 집 곳곳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모기약은 모기도 먹고 사람도 먹습니다. 모기향은 모기도 떨어뜨리고 사람도 떨어뜨립니다.


.. 나무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서성이다 돌아갔다 / 길 잃은 햇살과 강물과 빗줄기들이 / 잠시 수군거리다 떠나기도 했다 ..  (숲으로의 여행)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 소재지를 다녀오는 길에 딱정벌레 한 마리 길 한복판에 뒤집힌 채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꽤 큰 녀석이 어쩌다 여기에서 바둥거리나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자전거가 딱정벌레를 안 밟도록 바퀴를 살살 옆으로 비껴 지나갑니다. 조금 달리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딱정벌레가 스스로 잘못해서 길 한복판에 뒤집혔는지 모르나, 시골길 자동차 뜸한 곳이라 하더라도 때때로 지나가던 자동차한테 치여 이곳에 뒤집혔는지 모릅니다. 자동차한테 치이지 않았더라도 자동차가 일으킨 바람에 그만 뒤집혔을 수 있어요. 내 자전거는 딱정벌레를 안 밟고 지나갔으나, 내 뒤를 따를 자동차는 그냥 밟고 지나가겠지요.


  뙤약볕 내리쬐는 길을 돌아갑니다. 딱정벌레도 이 뙤약볕에 고달프리라 생각합니다. 날개를 살살 건드려 뒤집어 주려 하는데 영 기운을 못 씁니다. 안 되겠네 싶어, 손가락 하나를 뻗어 딱정벌레가 내 손가락을 붙잡도록 합니다. 딱정벌레 겉껍질은 눈부시게 반짝이는 짙푸른 빛깔입니다. 꼭 짙푸른 빛깔 보석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딱정벌레를 보여주고는 길가 소나무 줄기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쉬든, 이곳에서 먹이를 찾든, 이제 딱정벌레 스스로 살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얗게 빛나며 파란하늘을 물들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 우리 이모 / 처자식 있는 남자에게 속아 시집가 / 마심이 언니 낳고 서울로 올라와 / 바지락 까서 마심이 언니 시집보내고 / 콩나물 팔아서 마심이 언니 신랑 사철 새 옷 해 입히고 / 마심이 언니 벽제에서 태운 날부터 / 두부 팔아서 / 매일매일 술 마셨다 ..  (우리 이모, 부잣집에 태어나러 가네)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를 찰랑입니다. 바람이 불어 논배미 볏포기를 흔듭니다.


  후박나무는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열매 떨어진 꽃받침을 하나둘 마당에 떨굽니다. 빨간 꽃받침은 바다에서 자라는 산호 가지를 닮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 서면 쏴아아 쏴르르 하며 볏포기끼리 서로 잎사귀 부딪거나 스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다에 설 때에 듣는 물결 소리랑 볏포기가 바람에 살랑이며 낼 때에 듣는 소리랑 비슷하구나 싶습니다.


  잠투정을 하는 작은아이를 안고 마루에 서서 깜깜한 바깥을 바라보면 풀벌레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이 풀벌레는 무슨 노래일까, 하고 물으며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는, 응 응, 하고 되묻습니다. 새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따라 고개를 까딱까딱 돌립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찾습니다. 한여름이 되어 개구리 노랫소리는 거의 잦아들었지만,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자그맣게 섞여 함께 들리기도 합니다. 풀벌레와 개구리는 우리 집 작은아이더러 예쁜 아이야 이 저녁에 예쁘게 자야지 아직 안 자고 무엇을 하니, 하고 묻습니다. 작은아이한테 풀벌레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천천히 달랩니다.


.. 나는 그저 / 내 살색이 보호색이 될 수 없었던 나라들에서 / 내게 잠시 친절했던 현지인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  (그의 살색은 연한 밀크초콜릿 색이었다)


  조병준 님 시집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샨티,2007)을 읽습니다. 파리를 잡다가 읽고, 모기를 잡다가 읽으며, 잠자리 날갯짓 소리를 듣다가 읽습니다. 식구들 먹을 풀을 뜯다가 질경이 잎사귀 뒤에 오도카니 붙은 작은 알을 바라보던 느낌을 떠올리며 읽습니다. 마당 한켠 꽃밭에서 줄기를 뻗은 수박풀은 줄기가 꺾여 간당간당하더니 그예 다시 기운을 차려 씩씩하게 잎사귀를 키웁니다. 수박풀이 대견하구나 싶어 잎사귀를 살살 쓰다듬습니다. 수박풀 까끌까끌한 느낌을 되새기며 시를 읽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태어납니다. 오늘 하루 꿈꾸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거듭납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옷을 입습니다.


.. 아버지, 세 분 작은아버지 모시고 / 됫병 소주 들고 / 큰할아버지, 할아버지, 두 분 작은할아버지 / 무덤들 인사 다닐 때 / 어쩌면 무덤마다 / 돗나물, 취나물, 머위, 고사리, 삘기, 익모초, / 지천으로 널렸을까 ..  (지팡이 아버지)


  무더운 낮이 지나면 조금은 시원한 밤이 찾아옵니다. 조금은 시원한 밤이 지나면 다시 무더운 낮이 찾아옵니다. 아침에는 고운 햇살이 온누리를 밝힙니다. 저녁에는 포근한 달빛이 온누리를 감쌉니다. 낮에는 들판에서 고운 꽃송이와 풀잎을 바라봅니다. 밤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봅니다.


  고운 꽃과 풀은 내 마음에 곱게 드리웁니다. 반짝이는 별은 내 가슴에 반짝이며 깃듭니다. 내 손길은 언제나 고울 수 있습니다. 내 눈길은 늘 반짝일 수 있습니다. 내 두 다리는 언제나 곱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내 두 눈은 늘 반짝이면서 착하게 둘레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시듯 / 그의 어머니께서도 즐거운 세상 이야기를 / 아들에게서 얻어듣는 저녁을 / 소박하게 바라시지만, 오늘도 / 이미 밖에서 읽었던 신문을 뒤적이며 / 어머니의 질문들을 수저 소리로 떠넘기고 / 그는 밥상과 함께 어머니를 내보낸다 ..  (안개마을 사람들)


  내 마음은 어느 길을 가고 싶은가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손가락에 피가 맺혀도 씩씩하게 빨래를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집일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집일인지, 몸이 더 기운을 내며 하는 집일인지 헤아립니다. 아이한테 궂은 말을 윽박지르는 나는 마음이 움직이는 나인지 몸이 움직이는 나인지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따숩게 자장노래를 부르거나 놀이노래를 부르는 나는 마음이 이끄는 나인지 몸이 이끄는 나인지 곱씹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꿈꾸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 나일까요.


  나는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싶은 나일까요. 어쩌면 나는 내 삶도 꿈도 사랑도 한 번조차 돌아보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이르지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나는 내 길도 집도 넋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왔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한겨울에도 누이들은 / 밤에야 마음 놓고 빨래를 할 수 있었다 / 식구들을 모두 재우고 / 빨래처럼 얼어버린 누이들도 잠에 들었다 ..  (겨울가족)


  시를 쓰는 조병준 님은 스스로 ‘지구별 떠도는 집’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조병준 님 마음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조병준 님 몸이 지구별을 떠도는 집일까요. 마음에 따라 몸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까요, 몸에 따라 마음이 움직여 지구별을 떠도는 삶일가요.


  사람은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마실하는 넋으로 이루어진 목숨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몸뚱이를 놀려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이것저것 붙잡으면서 온누리를 눈과 귀와 코와 머리로 겪는 목숨일까 헤아려 봅니다.


  시골집 마루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는 지구별과 나를 생각합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들을 태우고 들길을 달리면서 온누리와 나를 헤아립니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기다릴까요. 내 마음을 이루는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꿈꾸기를 기다리며 지켜볼까요. 내 몸에 깃든 하느님은 내가 어떻게 사랑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는 따순 햇살이 될까요.


  이제 시집을 덮습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된 두 아이 옷을 벗기고 함께 씻습니다. 벗은 옷은 신나게 빨고, 마당 꽃밭 한켠에서 자라는 하얀 콩꽃을 바라봅니다. (4345.7.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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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꽃 책읽기

 


  가운데가 노랗고 테두리가 하얀 작은 꽃송이를 어릴 적부터 곧잘 보았다. 참 흔하게 보는 꽃이요, 어디에서라도 쉽게 보는 꽃이었다. 꽃이름은 잘 몰랐지만 달걀꽃이라고 일컬었다. 꽃송이를 줄기랑 같이 따서 손가락에 가락지처럼 이으며 놀곤 했다. 가시내도 사내도 꽃가락지를 삼으며 예뻐 했다.


  마당 한켠에서 달걀꽃이 피고 진다. 꽃대가 오를 무렵 뽑고 또 뽑아도 어느새 새삼스레 자란다. 풀은 아주 작은 씨앗을 조그마한 흙땅에 숱하게 뿌려 다시금 기운을 차리며 돋는다. 사람은 어떤 씨앗을 제 마음에 심거나 제 이웃 마음에 심을까.


  다섯 살 큰아이가 달걀꽃을 잔뜩 꺾는다. 그런데 꽃대를 좀 밭게 꺾는다. 꽃대가 좀 기름하게 꺾으면 여러 꽃송이를 한데 엮든 손가락에 고리처럼 묶든 하기 좋을 텐데. 꽃대를 밭게 꺾으면 꽃송이 엮기가 힘든 줄 스스로 느낄 테고, 다음에는 좀 기름하게 꺾어서 놀 수 있겠지. 자그마한 달걀꽃 송이를 갖고 노는 자그마한 손이 앙증맞도록 예쁘다. (4345.7.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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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0) 존재 160 : 무언가에 속해 있는 존재

 

우리의 본성과 우리가 해 온 여행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에 속해 있는 존재임을 깊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本性)과”는 “우리 마음과”나 “우리 참마음과”나 “우리 속마음과”나 “우리 밑마음과”로 다듬을 수 있고, “해 온 여행(旅行) 덕분(德分)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헤아리며”나 “우리가 디딘 발자국을 톺아보며”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속(屬)해 있는”은 “깃든”이나 “하나된”으로 손볼 수 있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는 “알 수 있습니다”로 손볼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돌아보는 글월이기에 낱말과 말투를 한결 찬찬히 돌아봅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헤아립니다. 더 찬찬히 살피고 더 상냥히 가다듬습니다.


  내 밑바탕이 되는 모습은 밑모습이라 할 만할까요. 내 밑바탕이 되는 넋이라면 밑넋이라 하면 될까요. 내 밑바탕이 되는 마음이라면 밑마음이라 하고, 내 밑바탕이 되는 생각이라면 밑생각이라 하면 되나요.


  국어사전에 담긴 낱말을 헤아리고, 국어사전에 안 담겼으나 내 가슴속에 깃들어 숨쉬는 낱말을 헤아립니다. 나는 어디로든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내가 걷는 이 씩씩한 길은 나들이가 되기도 하지만, 마실이 되기도 하며, 들놀이나 숲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길을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깁니다. 내 발자국은 발자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곳에 깃든 내 몸일 수 있어요. 어느 한 곳에 들어가는 내 몸일 수 있어요.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거나 깃들지 않으며 홀가분한 내 몸일 수 있어요.


  알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깨닫습니다. 알고픈 꿈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말이 빛나면서 넋이 빛납니다. 넋이 빛나면서 말이 빛납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스스로 가장 고운 생각을 일구며, 스스로 가장 예쁜 말주머니를 엮습니다.

 

 무언가에 속해 있는 존재임을
→ 무언가에 깃들어 살아가는 줄
→ 무언가 되어 살아가는 줄
 …

 

  우리는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일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 마음을 빛낼까 생각합니다. 내가 이웃이나 동무한테 들려주는 말은 얼마나 곱게 빛나는 말일까 생각합니다. 내가 손을 놀려 쓰는 글에 담기는 이야기는 얼마나 아리땁고 환하며 맑을까 생각합니다. (4345.7.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밑마음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 되어 살아가는 줄 깊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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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ane Michals (Paperback)
Renaud Camus / Thames & Hudson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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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거나 나쁜 사진은 없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1]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Duane Michals》(Photo Poche,1983)

 


  사진은 언제나 사진일 뿐, 좋다고 할 사진이나 나쁘다고 할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삶은 늘 삶일 뿐, 좋다고 할 삶이나 나쁘다고 할 삶은 따로 없습니다. 사랑은 노상 사랑일 뿐, 좋다고 할 사랑이나 나쁘다고 할 사랑은 따로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너르며 고운 넋이 되어 아름다운 새누리에서 새 삶을 잇고, 누군가는 스스로 불구덩이 같은 무덤을 파서 고된 죽음을 되풀이합니다.


  아침을 맞이해 해가 뜹니다. 저녁을 맞이해 해가 집니다. 뜨는 해와 지는 해는 그동안 얼마나 기나긴 햇수를 이었을까요. 비가 내리고 구름이 흐르며 바람이 붑니다. 비와 구름과 바람은 얼마나 기나긴 햇수를 이었을까요.


  한결같은 넋은 아름답습니다. 한결같이 흐르는 목숨은 아름답습니다. 한결같지 않은 넋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흐르지 못하는 목숨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숲에서 태어나 숲을 먹고 숲을 마시며 숲을 누리던 사람은, 숲사람으로서 한결같은 넋과 목숨을 건사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숲에서 태어났으나 숲을 밀어 없앤 사람은, 숲이 밀려 없어진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숲을 잊거나 잃거나 모르거나 등진 채 살아갑니다. 숲이 사라지거나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살아간다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숲에서 나는 목숨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숲을 밀어 없앤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숲을 남겨 풀과 나무를 얻어야 합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야 밥을 먹고, 풀과 나무가 있어야 짐승을 길러 고기를 먹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야 바다가 튼튼하게 살찌면서 바다에서 고기를 얻습니다.

 

 


  숲도 바다도 하늘도 흙도 모두 한결같습니다. 해가 한결같듯 숲이 한결같고, 바람이 한결같듯 바다가 한결같으며, 비와 구름이 한결같듯 하늘과 흙이 한결같습니다.


  사람은 숨을 쉽니다. 사람은 물로 이루어져 물을 마십니다. 사람은 목숨을 먹습니다. 사람은 숱한 목숨한테 둘러싸인 채 제 목숨을 맑게 빛냅니다.


  따사롭게 내리쬐다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한여름 햇살을 느끼면서 《Duane Michals》(Photo Poche,1983)를 펼칩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Duane Michals》는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님 사진으로 이루어집니다. 조그마한 사진책을 대청마루에 펼쳐 읽자니, 다섯 살 큰아이가 조르르 달라붙으며 같이 보자고 합니다. 아버지랑 같이 본 다음 제가 따로 더 보겠다고 합니다.


  다섯 살 아이는 《Duane Michals》를 읽습니다. ‘어, 머리가 없네?’ ‘어, 나무가 있네?’ ‘어, 아기가 있네?’ ‘어, 옷을 벗었네?’ ‘어, 길이네.’ ‘어, 물이 흐르네.’ 하고 종알종알 입을 놀립니다. 다섯 살 아이는 사진마다 한 마디씩 토를 달면서 읽습니다(2012년에 다섯 살인 큰아이가 앞으로 열 살이 되거나 스무 살이 될 적에는 이 사진책을 어떻게 새롭게 읽을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아이가 바라보는 사진은 ‘다섯 살 아이가 살아온 결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다섯 살 아이는 ‘듀안 마이클’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지구별 사진밭 큰 기둥’으로 기린다 하는 어느 사진쟁이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그저 사진을 읽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그예 사진책을 천천히 읽으며 놉니다.

 

 

 

 


  누군가는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가서 사진학을 배우거나 사진역사를 배우거나 사진기술을 배우면서 ‘듀안 마이클’이라 하는 사진작가 한 사람과 사진작품을 이론으로 익히고 실천으로 따라할 수 있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이 사진에 담은 넋과 뜻을 새기면서 곰곰이 살피거나 머리에 지식을 담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전시회에 걸린 듀안 마이클 님 작품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녁 이름을 모르는 채 ‘오호, 이러한 사진도 있네.’ 하고 생각하며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사진은 없고, 훌륭하지 않은 사진은 없습니다. 멋있는 사진은 없고 멋있지 않은 사진은 없습니다. 뛰어난 사진과 뛰어나지 않은 사진도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결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무늬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랑을 사진으로 적바림합니다.


  내 사진은 내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를 다루는 내 사진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오직 내 이야기일 뿐이요,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빚은 내 꿈과 빛이 담긴 사진 하나일 뿐입니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나입니다. 내 목숨은 더 거룩하지 않지만, 덜 거룩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내 눈으로 바라본 모든 삶자락 가운데 한 가지를 사진으로 담기에 더 빛나지 않으나, 덜 빛나지 않습니다. 딱 한 자락을 담는 사진이라 하지만, 딱 한 자락을 담는 사진에 내 온 삶과 이야기와 사랑이 스밉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찍든, 스무 해짜리 영화를 찍든, 아니면 두 장짜리 사진으로 엮든, 이 모든 자리에는 내가 누리는 꿈과 믿음과 생각이 가만히 깃듭니다.


  듀안 마이클 님은 이녁이 생각한 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은 이녁이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무언가 내세우는 사진이 아니고, 어떠한 주의나 주장을 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사진기라는 기계를 빌어 가만히 나타냅니다. 가슴속에서 태어나는 그림자를 사진기라는 기계를 얻어 살며시 드러냅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는 사진이 되든, 두 손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살짝 벌려 실눈을 뜬 사진이 되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척하지만 눈으로는 빤히 바라보는 사진이 되든, 달라질 이야기란 없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 사진책 《Duane Michals》 한복판을 펼치면, 꽃다발을 든 할머니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나도 빙그레 웃고, 우리 집 아이도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책 《Duane Michals》 겉장과 맨 마지막을 바라보면 앤디 워홀이라는 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인데, 나도 때때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리 집 아이도 때때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내가 좋은 삶을 누린다 여기면 내 사진은 늘 좋은 사진이 되고, 내가 좋은 삶을 못 누린다 여기면 내 사진은 늘 좋은 사진이 못 됩니다. (4345.7.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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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6 : 한여름에 책을 읽다

 


  이른새벽 해맑게 트는 동을 바라봅니다. 하늘이 파랗게 맑고 구름이 하얗게 싱그러운 시골에서는 새벽과 저녁에 눈부신 빛무지개를 잔뜩 누립니다. 새벽에도 저녁에도 하늘 끝은 짙붉게 물듭니다. 어떤 핏물보다 짙고 어떤 열매보다 붉은 노을빛은 내 마음이 착하고 예쁘게 이루어지도록 이끄는 상냥한 손길과 같다고 느낍니다. 새벽노을을 바라보며 《산처럼 생각하라》(소동,2012)라는 책 하나를 읽습니다.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말한다는 이 책 30쪽에서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생태를 보존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비폭력 행위라는 것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하는 얘기를 들려주고, 74쪽에서 “멸종의 위기는 변화하고 진화하라는 요청 같기도 하다.” 하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책을 가만히 덮습니다. 한여름 풀벌레소리를 듣습니다. 참말 한여름이 무르익을 때에는 무논 개구리 노랫소리가 고요해집니다. 논가를 거닐면 곳곳에서 개구리를 만나지만, 이른여름까지는 개구리 노랫소리 가득하더니, 한여름에 접어들며 개구리 노랫소리가 똑 끊겨요. 아마 사람도 알아들을 만큼 커다란 노랫소리는 잦아들고, 개구리끼리 나누는 작은 목청으로 이야기꽃 피우지 않으랴 싶어요.


  여러 해 앞서, 천성산에서 지율 스님은 도룡뇽 한 마리를 들며 숲을 지키자는 뜻을 널리 펼쳤어요. 참 많은 사람들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고작 도룡뇽 한 마리’라며 손가락질을 했습니다만, 고작 도룡뇽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숲이라면 사람도 이곳에서 살지 못해요. 참말, 도룡뇽이고 개구리이고 살지 못하는 ‘숲 없는 도시’는 ‘우리 사람’이 살기에 얼마나 좋은 터전이 될까요. 도룡뇽도 개구리도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어깨동무하거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나요.


  김남주 님 묵은 시집 《진혼가》(청사,1984)를 들추다가 〈고구마똥〉이라는 시를 읽습니다. “그래도 누가 있어 허구많은 사람들 / 서울에도 내가 있어 순한 마음이 있어 / 건성으로나마 물어 온다면 / 어떻게들 사느냐고 물어 온다면 / 나는 무어라고 할까 / 부끄러워 뭐라고 할까 // 밤별이 곱더라고 수다를 떨까 / 달빛이 밝더라고 수줍어할까” 하는 대목에 새삼스레 밑줄을 긋습니다. 읽고 또 읽고 새겨서 읽습니다. 정부 추곡수매를 다루는 〈秋穀〉을 읽다가 “다짜고짜 쿡쿡 찔러 / 대창으로 쇠창으로 / 여기저기 찔러 놓고 / 나락 색깔 곱지 않다 / 쭉정이가 섞여 있다 / 가마니가 너무 헐다 / 새끼줄이 퉁퉁하다” 하는 대목에 쓰겁게 밑줄을 긋습니다. 가을걷이 마친 흙일꾼 나락을 재고 따져 사들인다는 정부 공무원은 한여름 들판에 나와 논둑 풀을 뜯거나 피사리를 해 본 적 있을까요. 정부가 등급을 낮추어 나락을 사들인 뒤 몇 곱 값을 붙여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쌀을 내놓으면 오직 돈으로 다시 사들여 전기밥솥에 안치는 도시사람은 뭉게구름과 제비 날갯짓과 바람소리를 먹으며 무럭무럭 크다가 이삭이 패는 볏포기를 손으로 쓰다듬은 적 있을까요.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며 달립니다. 고속철도가 논밭 사이로 달리고, 숲 한복판에 구멍을 뚫어 달립니다. 도시마다 전기가 모자라다며 아우성이고, 도시에 모자란 전기를 시골마을 한복판에 발전소 세워 채우려고 법석입니다. (4345.7.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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