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겨를을 못 낼 때에

 


  날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느 하루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할 때에는 숨이 막힌다. 곰곰이 생각한다. 내가 글일꾼 아닌 흙일꾼이라 한다면, 하루라도 흙을 만지지 못하거나 쓰다듬지 못할 때에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내가 마음닦기를 하며 삶을 다스리는 사람이라 할 때에 어느 하루 마음닦기 할 겨를을 누리지 못할 때에 얼마나 숨이 죌까.


  내 삶을 내가 사랑스레 누리지 못하면서 하느님 넋이 되지 못한다. 내 삶을 내가 사랑스레 누리는 길은 ‘반드시 글을 써서 어느 만큼 남기’는 굴레 아닌 ‘글쓰기를 어떻게 받아들여 즐기느냐’에 있다.


  글을 쓸 겨를을 도무지 못 내는 나날을 자꾸자꾸 보내면서 생각한다. 내 삶을 쓰는 내 글은 어떤 사랑이 빛나는 이야기일 때에 나 스스로 활짝 웃으며 마주할 만한가. (4345.8.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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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적 같은 일 - 바닷가 새 터를 만나고 사람의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송성영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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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가다
 [책읽기 삶읽기 112] 송성영,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

 


  마을에서 매미 우는 나무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곤 합니다. 이웃 어느 집이건 나무가 우람하거나 많은데, 이 많은 나무 가운데 매미 우는 나무는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면내나 읍내에 나가면 매미 노랫소리를 쉬 듣습니다. 도시에서도 매미 노랫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 한복판에서는 매미 노랫소리를 못 들으니 좀 알쏭달쏭한데, 가만히 생각하니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 누구나 풀약을 무척 자주 쳐요. 논둑에도 밭둑에도, 논에도 밭에도 틈틈이 풀약을 칩니다. 나무 밑이라고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는 자동차가 몹시 많습니다. 도시사람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웁니다. 그렇지만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 풀약을 틈틈이 치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도시 길거리에서 자라는 나무 밑이나 둘레에는 담배꽁초이며 쓰레기이며 잔뜩 있지만, 나무뿌리 있는 땅속에는 시골처럼 풀약 기운이 스며들 일이 적으리라 느껴요.


.. 그동안 생활비를 꺼내 쓰는 통장에 있는 100만∼200만 원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제게는 분명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욕심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그 거금으로 농사지을 땅과 빈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옆에 작은 흙집까지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  (15쪽)


  저녁에 읍내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해 떨어지고 별이 뜬 읍내 밤하늘은 까맣습니다.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입니다. 시골 읍내에서는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읍내보다 훨씬 까맣습니다. 훨씬 까만 밤하늘에는 훨씬 반짝이는 별이 더 많이 보입니다.


  밤이 까맣기에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까맣지 않다면 별은 밝지 않을 뿐더러, 별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밤이 하얗다면 별은 깜깜합니다. 밤이 하얀 곳에서는 아예 별을 잊거나 모른 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해가 밝기에 푸른 잎사귀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알아봅니다. 해가 맑기에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하얗습니다. 해가 곱기에 가을날 누런 들판을 바라볼 수 있고, 해가 예쁘기에 새와 꽃과 벌레와 냇물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로 불을 밝혀도 집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내리쬐는 낮에도 책을 읽을 수 있으나, 해가 떨어진 깊은 밤에도 전기불을 켜면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없는 깊은 밤에도 길거리에 불빛을 드리우면 걸어다니기에 좋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며 나방 날갯짓을 살필 수 있어요.


.. 전 그저 부드러운 뒷산과 좌우 산줄기가 바람을 막아 주고 있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 … 밑도 끝도 없이 터를 구하는 데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고 푼수처럼 말하자 동네 어르신이 마뜩찮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뭐 그렇게 까다롭게 땅을 구하러 다녔데요이. 어디든 정 붙이고 살믄 고만이지.” ..  (26, 62쪽)


  새벽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노랫소리라 느끼기에 새벽녘 찾아드는 소리 모두 노래라고 여깁니다. 멧새도 들새도 풀벌레도 바람도 나뭇잎도 풀잎도 모두 노랫소리를 들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노래이고, 아침 낮 저녁 밤으로 새롭게 울려퍼지는 노래라고 맞아들입니다.


  새끼를 깐 멧새나 들새 노랫소리는 새삼스럽습니다. 갓 깨어난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나며 퍼지는 노랫소리는 남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갓 태어난 아이들 노랫소리도 새삼스럽습니다.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노랫소리도 남다릅니다.


  나는 늘 노랫소리에 둘러싸인 채 살아갑니다. 나를 둘러싼 노랫소리는 내 마음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마음결이 따사로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따사롭습니다. 내 마음결이 칙칙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칙칙합니다. 내 마음결이 보드라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보드랍습니다. 내 마음결이 딱딱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딱딱해요.


  내 마음이 생각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으로 누리는 삶이 사랑을 이끕니다.


.. 산 위의 나무들은 땔감이 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막아 주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푸른 빛깔에 고운 단풍까지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293쪽)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삶을 누립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사랑을 나눕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꿈을 이룹니다.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오늘 하루 다르게 찾아옵니다.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오늘 이야기는 새롭게 빛납니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도 싱그러운 하루입니다. 저 시골마을에 깃들어도 상큼한 하루입니다. 저 골목집에서 살아도 해맑은 하루입니다. 저 아파트숲에 깃들어도 산뜻한 하루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눈빛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손길이 사랑스럽지 못하니 삶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몸짓이 사랑스러울 때에 삶은 시나브로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내가 걸어갈 길은 스스로 일굽니다. 내 길은 내가 닦습니다. 내 생각은 내가 예쁘게 다스리지만, 내 생각은 나 스스로 바보스레 내팽개치곤 합니다.


.. 전력 소모량이 많은 대도시 주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구태여 자연경관을 해치고 전자파로 건강까지 해치는 송전 철탑을 세워 먼 거리까지 전기를 끌어다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안정성을 강조한다 해도 그만큼 위험천만한 시설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핵발전소 반대를 이기적인 님비 현상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정작 이 위험한 시설에서 멀리 떨어져 살며 물 쓰듯 전기를 사용하는 대도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  (322쪽)


  송성영 님이 전라남도 고흥에 새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수필책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을 읽습니다. 송성영 님은 흙을 일구는 삶을 생각하지만, 밥벌이는 글을 써서 메꾸곤 했답니다. 송성영 님 옆지기가 ‘미술 교사’ 노릇을 하며 알뜰히 버는 돈이 있어, 시골자락에서 흙과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나도 시골에서 살아가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글을 안 쓴다면 삶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글쓰기에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는 만큼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겠지요. 글을 써서 책을 빚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글을 안 쓰고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면, 돈벌이는 없거나 적거나 다를 수 있으나, 밥벌이는 넉넉할 수 있는 한편 새로운 ‘벌이’를 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흙을 더 잘 알 수 있고, 풀이랑 나무를 한결 넓게 알 수 있어요. 글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글을 한결 잘 쓰거나 한결 잘 읽을 수 있어요. 흙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흙을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다룰 수 있어요. 바닷사람이 바닷물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물질과 고기잡이를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할 수 있어요. 자가용을 장만한 사람 또한 자가용한테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자가용을 한결 잘 알거나 잘 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룹니다.


  그나저나, 송성영 님은 “우리 집을 포함해 달랑 집 두 채만 있는 바닷가 오지임에도 번듯한 새집에 깃들여 살며 기운이 펄펄 살아난 아내는 이사 오자마자 이력서를 챙겨 방과 후 강사 자리를 찾아나섰습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에는 미술 전공자들이 귀한 모양입니다. 아내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다 초등학교 세 군데에서 강사 자리를 얻었습니다(226쪽).”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은 어떤 모습인지 아리송합니다. ‘문화적 여건’이란 무엇이고, ‘낙후한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나 또한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느 시골마을 여느 시골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이웃 할머니가 백일홍을 바라보며 예쁘다 말하는 모습이란 ‘문화를 누리는 삶’이며 ‘그림 같은 그림을 알아보는 눈길’이라고 느껴요. 높고 낮은 멧자락을 낀 비탈밭 돌을 골라 돌울을 쌓아 빚은 밭이랑 논은 모두 ‘아름다운 예술품’이로구나 싶어요. 풀빛 우거진 숲이 넓게 이어진 멧자락 모두 ‘예쁜 문화예술’이로구나 싶어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 될 만큼 싱그럽고 해맑게 지키며 돌본 시골마을 고흥은 어디나 ‘문화요 예술이며 문명이고 사랑’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시골 분들 스스로 삶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더 씩씩하게 믿지 못한 나머지, 자꾸자꾸 풀약을 칩니다. 논에도 밭에도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맙니다. 풀약을 안 치고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이랑 열매가 훨씬 높은 값을 받는 요즈음이기 때문에 유기농 농사를 지어야 하지는 않아요. 풀약을 친 곡식이나 열매는 사람 몸에도 안 좋을밖에 없을 뿐더러,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살찌우며 거둔 곡식이나 열매는 흙일꾼인 시골사람부터 달삯쟁이인 도시사람 모두 튼튼하게 살릴 수 있어서 좋아요. 돈 때문에 짓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돈을 더 벌자고 하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고 삶을 빛내며 삶을 가꾸고픈 꿈이 있어서 유기농을 해요.

  꼭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내 보금자리와 마을을 한결 푸르게 사랑하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본다면, 모든 들풀이 모든 약초이듯, 모든 들풀을 손으로 살가이 쓰다듬으며 좋은 벗이자 밥이자 넋으로 맞아들일 만하겠지요.


  풀약을 안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을 뜯어먹어도 배가 부르면서 몸이 싱그럽게 살아나요. 풀약을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도 섣불리 뜯어먹을 수 없어요. (4345.8.5.해.ㅎㄲㅅㄱ)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송성영 글,오마이북 펴냄,2012.6.22./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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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먹고 산다나

 


  이웃마을에 간다. 일산에서 자동차를 끌고 찾아와 주신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이웃마을에 간다. 여느 때에 우리 식구는 두 다리로 걷거나 군내버스로 다닐 수 있는 곳만 찾아가지만, 이렇게 자동차를 끌고 찾아와 주신 분이 있어 홀가분하게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가 본다.


  우리 마을도 이웃한 마을도 온통 숲이다. 우리 마을도 이웃한 마을도 온통 논밭이다. 풀과 나무가 그득한 길을 푸른 내음 가득한 바람을 마시며 달린다. 옛날 사람들은 이웃마을에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며 찾아갈 때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옛날 사람들은 굳이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며 살았을까 헤아려 본다. 어쩌면 내 좋은 마을에서 예쁘게 살아가면서, 나와 같이 좋은 꿈과 사랑으로 살아갈 이웃하고 예쁘게 사귀려고 마실을 누렸을는지 모른다. 오늘날처럼 찻길이 널따랗게 뻥뻥 뚫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숲길을 걷거나 들길을 걷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천천히 풀과 나무와 꽃과 바람과 햇살과 하늘과 흙을 누렸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좋은 마음을 다스리면서 언제 어디에서라도 좋은 이야기를 길어올렸으리라 생각한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순간이동’이 있다지만, 굳이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한갓지게 들길과 숲길과 멧길을 거닐면서 좋은 숨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 느낀다.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가장 좋은 빛을 쬐고 가장 좋은 그림을 그리면서 고운 말을 나누었으리라 느낀다.


  바다를 낀 이웃마을 가게에서 동동주 한 병을 산다. 가게 할머니가 집에서 손수 담가서 판다고 한다. 아이들과 옆지기와 할머니와 다섯이 나란히 평상에 앉아 동동주 맛을 본다. 문득 할머니가 여쭌다. “뭘 먹고 산다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잘 먹고 살아요.” (4345.8.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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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8-05 08:58   좋아요 0 | URL
할머님의 말씀이 새삼 우습네요.
걱정해주시는 말씀이 분명하신데..그광경이 왜 우습죠?
동네분들은 모두다 흙 만지는 일을 열심히 하거나,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어 먹고 살고 있다라고 여기실테죠?^^

파란놀 2012-08-05 09:13   좋아요 0 | URL
아뇨.
시골에서 농사짓거나 고기잡아서는
'돈이 안 되'고,
도시에서 회사를 다녀야
'돈이 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답니다...
 
업어 줘 업어 줘 아기 그림책 나비잠
조 신타 글.그림, 이선아 옮김 / 보림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며 업는 아이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5] 조 신타(초 신타), 《업어 줘, 업어 줘》(보림,2007)

 


  작은아이가 다가옵니다. “업어 줘, 업어 줘.” 큰아이가 달라붙습니다. “업어 줘, 업어 줘.” 다섯 살 큰아이와 두 살 작은아이하고 살아가는데, 이 틈바구니에 셋째 아이가 우리한테 찾아온다면 이 아이도 “업어 줘, 업어 줘.” 할까요?


  아이 눈빛을 바라보아도 아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아도 아이 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이 목소리를 들어도 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만이 아니에요. 이웃 아이를 바라볼 때에도, 또 내 옆지기를 바라볼 때에도, 또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에도, 내 생각과 마음을 가만히 기울이면 모두들 어떤 넋인가를 읽을 수 있어요.


  서로 마음으로 사귑니다. 서로 마음으로 하나됩니다. 서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싱긋 웃으며 마음과 마음이 만나 즐겁습니다. 방긋 웃으며 마음과 마음이 얼크러져 예쁩니다.


  그래요. 서로 손을 맞잡고 웃어도 즐거울 테지만,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어도 즐거워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입을 맞추어도 즐거울 테지만, 살며시 눈을 감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느끼고 바람을 맞아들이며 햇살을 누릴 때에도 즐거워요.


  작은아이를 안습니다. 큰아이를 업습니다. 작은아이를 업습니다. 큰아이를 안습니다. 옆지기를 안습니다. 그러나 옆지기를 업지는 못합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내 몸을 쓰다듬습니다. 나는 내 몸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사랑을 빛내며 꿈꾸는가 하고 돌아보며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아이들을 업는 어버이는 환한 웃음꽃입니다. 들판이나 텃밭이나 멧자락에 가득한 풀을 쓰다듬으며 아끼는 사람들은 맑은 웃음빛입니다. 아이들은 나한테 “업어 줘, 업어 줘.” 하면서 다가옵니다. 나는 내 어버이인, 곧 아이들한테 할머니요 할아버지한테 “업어 줘, 업어 줘.” 하며 들러붙습니다.


  서로 좋아하니 좋습니다. 서로 사랑하니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끼니 예쁩니다. 서로 믿으며 믿음직합니다. 서로 마음을 기울여 상긋 웃으니 웃음씨가 웃음꽃이 되고 웃음열매가 되며 웃음나라가 됩니다. (4345.8.3.쇠.ㅎㄲㅅㄱ)

 


― 업어 줘, 업어 줘 (조 신타 글·그림,이선아 옮김,보림 펴냄,2007.3.3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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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지 않은 시집을 읽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시집 두 권을 읽는다. 문학상 여럿 받고 널리 사랑받는다는 이들이 내놓은 시집 두 권이다. 한 권은 뒷간에서 읽다가 아침햇살 받으며 마당에 선 채 다 읽는다. 다른 한 권은 마당 한쪽에 선 채 아침햇살이 차츰 따스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다 읽는다. 이 시집 두 권을 내놓은 두 사람은 시집 하나를 이루려고 시를 몇 해에 걸쳐서 썼을까. 어떠한 삶을 어떻게 누리면서 이 같은 싯말을 빚을 수 있었을까.


  시집 두 권을 덮으며 생각한다. 참 즐겁지 않은 시집이고, 참 즐겁지 않은 시집을 읽은 나머지 내 마음밭에 즐겁지 못한 싹이 트는구나 싶다. 즐겁지 못한 노래를 들으면 즐겁지 못한 생각이 자꾸 스멀거리듯, 즐겁지 못한 싯말을 훑으며 내 마음에도 즐겁지 못한 이야기가 끝없이 오물거리는구나 싶다.


  온누리에 책이 많고, 온누리에 사람이 많으며, 온누리에 이야기가 많다. 눈을 감아 집을 잊고 시름을 잊으며 오늘 하루 재미나던 모든 이야기를 잊으며 잠이 들 때에는 새로운 꿈터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며 새로운 사랑을 꽃피운다. 재미나던 일을 되새기며 잠이 들면 재미나게 꿈누리를 누비고, 따분하거나 고단하다 싶은 일을 돌이키며 잠이 들면 따분하거나 고단하다 싶도록 꿈누리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렇다. 나는 나부터 내가 쓰는 글이 내가 늘 돌아보더라도 즐겁게 웃으며 맑게 노래할 만한 글이 되기를 바란다. 내 삶은 즐겁게 웃으며 누리고 싶은 하루이니까, 즐겁게 웃으며 누리고 싶을 만한 싯말이 영글지 않은 시집을 펼치면서 낯에 빙긋 웃음을 띠기는 어렵구나 싶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어도 틀림없이 시가 맞다. 사랑스러운 꿈을 아끼는 시가 아니어도 어김없이 시가 맞다. 전쟁도 사람이 빚는 일이고, 미움과 다툼도 사람이 빚는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스레 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시집이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되기는 바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어느 시집은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되리라 느낀다. 어느 책은 ‘사랑스레 하는 일’이 될 테고, 어느 사람 눈길은 ‘사랑스레 하는 일’로 따스하겠지. 어느 모로 보면, 즐겁지 않다 싶은 시집을 읽으면서도, 나는 즐겁게 누리고 싶은 삶이야 하고 생각하며 즐거이 읽을 수 있겠지. 내 마음 어느 한켠에서 ‘오늘 어쩐지 시무룩하거나 슬프거나 고단한 앙금이 있네’ 하고 느끼기에 시집 두 권을 읽으면서 해맑으면서 예쁜 마음이 못 되었구나 싶다. (4345.8.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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