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얽힌 낱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나 스스로 안 좋아하는 책을 굳이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누가 선물해 주기 때문에 읽는 책은 없습니다. 내가 읽고 싶기에 읽는 책입니다.


  나는 글로 된 책을 읽습니다. 그림으로 된 책도 읽습니다. 사진으로 된 책도 읽습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라는 울타리에 들지만,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엮었느냐에 따라 나눌 수 있고, 줄거리에 따라 나눌 수 있으며, 읽는 사람 나이에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새것인가 헌것인가에 따라 나누기도 하며, 쓰임새에 따라 나눌 수 있어요.

 

 ㄱ. 헌책 그림책 만화책 잡지책 소설책 지도책 이야기책 역사책
 ㄴ. 새책 사진책 인문책 철학책 어린이책 청소년책 노래책 수필책

 

  책을 (ㄱ)과 (ㄴ)처럼 나누어 봅니다. 이렇게 나누는 뜻이 없다 할 수 있으나, 이렇게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굳이 이처럼 나누고 싶지 않지만,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ㄱ)과 (ㄴ)으로 나누어 봅니다. 그러니까, (ㄱ)은 ‘국어사전에 실린 책 낱말’입니다. (ㄴ)은 ‘국어사전에 안 실린 책 낱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국에서는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은 붙여서 적도록 하고, 국어사전에 안 실린 낱말은 띄어서 적도록 하는 맞춤법이 있어요. 그래서, (ㄱ)처럼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이라면 걱정없이 붙여서 쓰면 되는데, (ㄴ)처럼 국어사전에 안 실린 낱말일 때에는 골머리를 앓아요.


  ‘헌책’은 ‘헌책’처럼 붙여서 씁니다. 그런데 오래된 책과 갓 나온 책을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헌책과 새 책”처럼 띄어서 써야 한다면 어딘가 얄궂지 않나 궁금합니다. ‘그림책’과 ‘만화책’은 한 낱말이지만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은 한 낱말로 다루지 않으니 알쏭달쏭해요.


  책을 말하는 적잖은 분들은 ‘그림책’이 한 낱말인 줄 모르고 ‘그림 책’처럼 띄어서 쓰기도 합니다. ‘이야기책’이 한 낱말인 줄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요즈막에 ‘인문책’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드높지만, 이 낱말 또한 국어사전에 안 실렸으니 ‘인문 책’처럼 적어야 올바르다 할 텐데, 이렇게 띄어서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문책’ 가운데 ‘역사책’은 붙여서 적도록 하나, ‘철학책’은 띄어서 적어야 올바르다고 해요. 문학을 다루는 책에서 ‘소설책’은 붙여서 적어야 올바르다 하면서, ‘수필책’은 띄어서 적어야 올바르다고 해요. 지도를 보여주는 ‘지도책’은 한 낱말이지만, 노래를 담은 ‘노래책’은 한 낱말이 아니라고 해요.


  수많은 책이 나오고 온갖 책이 태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책을 가리키는 한국말 또한 새롭게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국어사전 한 권을 앞에 놓고 이 낱말은 이렇게 적고 저 낱말은 저렇게 적도록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일은 없어야지 싶습니다. 이제 ‘환경책’이라는 낱말을 널리 쓰고, ‘사진책’은 퍽 일찍부터 한 낱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씁니다. ‘과학책’이나 ‘놀이책’ 같은 낱말도 퍽 자주 써요.


  ‘-책’을 뒤에 붙이는 낱말도 날개를 달 노릇이요, ‘책-’을 앞에 붙이는 낱말도 날개를 달아야지 싶어요. 이를테면, ‘책날개’나 ‘책마을’부터, ‘책밭’이나 ‘책나라’나 ‘책누리’나 ‘책사랑’이나 ‘책마음’이나 ‘책씨’나 ‘책꽃’이나 ‘책지기’나 ‘책터’처럼, 마음을 북돋우고 생각을 여는 낱말을 알맞고 아름답게 쓰는 길이 환하게 터야지 싶어요.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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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님은 시인이지만, 시집보다 산문집이 훨씬 자주 나온다. 시집이 읽히기보다는 산문집이 한결 잘 읽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시보다 산문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꾸준하게 담으면서 사랑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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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아이들-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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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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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즐겁게 읽기
[말사랑·글꽃·삶빛 26] ‘행복’과 ‘즐거움’

 


  나는 늘 즐겁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즐겁지 않은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빨래를 하든 밥을 하든 즐겁습니다. 옷을 입든 밥을 먹든 즐겁습니다. 나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썩 반기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만, 반기지 않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믿음직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일을 할 때에 가장 즐겁습니다. 가장 좋은 마음이 되어 가장 좋은 길을 걸을 때에 가장 기뻐요.


  사진을 좋아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진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진으로 쓰는 일기를 말하는 글을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읽다가 63쪽에서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내가 즐겁고 행복하려고 선택한 것 아닌가.”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즐겁고 행복하려고”라는 말마디를 가만히 되읽습니다. 새삼스레 국어사전을 펼칩니다. 국어사전에서 ‘행복(幸福)’은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으로 풀이합니다. 말풀이에 나온 ‘만족(滿足)’은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으로 풀이합니다. ‘기쁨’은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있다”로 풀이하고, ‘흡족(洽足)’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넉넉하여 만족함”으로 풀이합니다. 마지막으로 ‘복(福)되다’를 찾아보니, “복을 받아 기쁘고 즐겁다”로 풀이하고,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로 풀이합니다.


  국어사전 풀이말을 놓고 곰곰이 살핍니다. 먼저 ‘만족 = 충분함 = 넉넉함’이 됩니다. 다음으로 ‘흡족 = 흐뭇함’이 됩니다. 그리고 ‘행복 = 기쁨 = 즐거움’이 돼요.


  다시 한 번 국어사전을 뒤적여 ‘즐겁다’를 찾아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로 풀이합니다. 모두 돌림풀이인 셈입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이하고, 한자말을 한국말로 풀이합니다. 한국말도 한자말도 다른 어슷비슷한 낱말하고 뭉뚱그리듯 ‘돌려막기’를 합니다. 다만, ‘기쁘다’는 어떠한 삶을 ‘느끼는’ 대목을 나타내기에 알맞고, ‘즐겁다’는 어떠한 삶을 ‘누리는’ 대목을 나타내기에 걸맞겠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행복’이란 ‘복되다’를 가리키고, ‘복되다’는 ‘즐겁다’를 가리키는데, 이렇게 가리키는 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말을 하면서 국어사전을 살피는 사람이 있을까요. 말을 하면서 국어사전을 살피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면서 말뜻과 말느낌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옳고 바르게 써야 하기 때문에 국어사전을 뒤적이거나 말뜻을 살피지 않습니다. 바른 말 고운 말이 아름다운 말이라서 국어사전을 찾거나 말느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나타내고 내 삶을 드러내는 말을 깨달으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내 마음을 찾고 내 삶을 누리려고 말을 살피고 생각합니다.


  한번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 ‘즐겁다’를 영어로 옮길 적에는 어떤 낱말로 적바림할까요. 한자말 ‘행복’을 영어로 옮길 적에는 어떤 낱말로 적을까요. 한국사람은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한테 ‘기쁨-즐거움-흐뭇함’을 어떤 낱말로 들려줄 수 있을까요. ‘행복-만족-흡족’을 어떤 영어로 외국사람한테 알려줄 수 있는가요.


  즐겁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즐겁게 주고받는 글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책 한 권 즐겁게 읽습니다. 밥 한 그릇 즐겁게 먹습니다. 내 한 삶 즐겁게 누립니다. 밭뙈기에서 즐겁게 김을 맵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씻깁니다. 들바람을 쐬면서 즐겁게 자전거를 달립니다. 숲바람을 느끼면서 즐겁게 고개를 오르내립니다. 즐거울 때에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즐거웁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즐거울 적에 꿈을 꿉니다. 즐거운 나머지 활짝 웃고 두 팔 벌려 서로서로 예쁘게 껴안습니다.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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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 지음, 정환욱.심정섭 옮김 / 샨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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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맑을 때에 아기도 맑다
 [사랑하는 배움책 6] 메리 몽간,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 책이름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 글 : 메리 몽간
- 옮긴이 : 정환욱, 심정섭
- 펴낸곳 : 샨티 (2012.7.10.)
- 책값 : 2만 원

 


  한여름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점을 합니다. 아침에 새삼스레 다시 몸을 씻고 나서 빨래 여러 점을 합니다. 이제 낮이 되어 아이들이 뛰놀고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길 무렵, 또 빨래를 하겠지요. 낮에 여러 차례 아이들 씻기며 빨래를 하는 여름이요, 저녁에도 아이들을 또 씻기고 빨래하는 여름입니다.


  빨래거리를 그러모아 기계에 넣고는 한꺼번에 돌려도 된다 하지만, 여름날 자주 몸을 씻거나 씻기는 틈틈이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로 빨래감을 적시고, 씻은 몸을 말리면서 빨래를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은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 줍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며 하는 빨래는 하루 내내 이어집니다.


..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세요. 또 아기가 자라면서 여러 변화들이 생길 텐데 그때 당신의 느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 왜 우리는 정상적인 출산을 부인하고 있고, 출산 교실에서는 왜 출산을 어쩔 수 없는 위험한 의료 작업으로 묘사하는 것일까? … 왜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가? 왜 완벽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여성의 몸이 진통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제되어야 하는가 … 출산이 고통스럽다는 믿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믿음이 맞는지 어떤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채 고통을 합리화하고 출산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기도 하며 거기에 고상한 목적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  (31, 65, 81, 83쪽)


  햇살 뜨거운 여름에는 빨래가 잘 마릅니다. 햇살 포근한 봄가을에도 빨래는 잘 마릅니다. 햇살 따사롭지만 겨울에는 빨래가 잘 안 마릅니다. 그러나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빨래를 합니다. 기저귀를 빨래하고 여느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날씨에 따라 빨래 마르기가 달라지지만, 철에 따라 빨래는 다 다른 기운을 햇살과 바람한테서 받아먹습니다. 햇살을 먹으며 마르고, 바람을 먹으며 마릅니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을 마당에 넙니다. 이불은 좋은 볕을 듬뿍 쬐며 좋은 기운으로 한결 보송보송합니다. 좋은 볕을 머금은 이불을 덮으며 좋은 날씨를 떠올립니다. 장마철을 맞이해 이불을 말리지 못하고, 또 이불을 빨지 못하며 눅눅한 기운을 느껴야 할 때에는 햇살조각을 그립니다. 날은 춥지 않더라도 해가 들지 않는 날에는 살림살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고 깨닫습니다.


  햇빛이 좋을 때에는 햇볕도 햇살도 좋아, 아이들과 들길이나 멧길을 걷기에 좋습니다. 내 몸은 좋은 빛살을 누리고, 내가 걷는 길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도 좋은 빛살을 누립니다. 저마다 좋은 기운을 뿜으면서 좋은 삶터를 이룹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가장 즐겁게 누리는 삶을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인 나한테 가장 즐겁게 찾아드는 삶을 아이들한테 찬찬히 보여주면서 나누고 싶습니다. 곧, 어버이와 아이로서 다 함께 햇살을 누리고 싶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다 같이 바람과 풀과 나무를 누리고 싶습니다. 고운 바람을 누리고, 고운 꿈을 빚으며, 고운 사랑을 열고 싶습니다.


.. 아기를 처음 본 날, 아기가 이 세상에 ‘잡아당겨져’ 나오면서 겪었을 경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고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 약물을 쓰지 않고 내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그(의사)에게 거듭 설명했다 … 의사가 있든 없든 아기는 정확히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진통의 단계 구분은 의료진을 위해 개발된 평가의 척도일 뿐이다. 산모에게 진통은 하나의 연속 과정이고 산모가 깊이 이완할 때 출산은 시작된다 … 산모들은 두려움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도록 도움을 받기보다는 약물을 사용하자거나 의료 개입을 받으라고 먼저 권유받는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기보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부터 선택하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  (46∼47, 70∼71, 88∼89쪽)


  두 아이와 살아가는 나날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새벽녘 빗소리를 들으며 네 식구 살림을 돌아봅니다. 옆지기와 빚는 삶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비구름 걷히고 맑은 햇살 따사로이 내리쬐는 빛무늬를 느끼며 시골살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길을 살피거나 찾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시골살이를 어떻게 여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터로 옮기든 그대로 함께 살든 오늘 이곳에서 지내는 나날을 몸과 마음에 새기리라 느낍니다.


  나는 예나 이제나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며 보낸 적이 없습니다. 주머니에 맞돈이 하나도 없어 우체국에서 30만 원을 빌고는 ‘도둑맞아 사라진 사진기’ 하나를 헌것으로 13만 원 치르고 장만해서 사진을 찍고 살던 때에도, 은행계좌에 남은 돈이 10만 원이 채 안 되던 때에도, 하루 앞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빌릴 수 있고 갚을 수 있습니다. 스무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고, 백 해쯤 지나야 갚을는지 모르지요. 어찌 되든 돈은 얼마든지 빌리거나 갚아요. 다만, 내 마음이나 삶은 오늘을 오늘대로 누리지 못하면 덧없이 지나갑니다. 팍팍한 살림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누려야 비로소 새 하루가 찾아오고, 새 하루도 이날대로 누려야 다시금 새 하루가 찾아와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살 적에는 다달이 찾아오는 집삯 내는 날이 참 빨랐다고 느낍니다. 서울에서는 혼자 살며 방을 얻을 적이든, 어디를 돌아다닐 때이든, 사람을 만날 때이든, 으레 돈이 들어요. 서울은 전철역조차 걸상이 몇 군데 없습니다. 버스 타는 데에 걸상이 널따랗게 있지 않아요. 사람이 걷는 길은 너무 좁을 뿐 아니라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서기 일쑤요, 전봇대와 꽃밭이 ‘걷는 길을 막’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다면, 사람다운 나날을 스스로 깨닫거나 아끼기는 힘든 터가 서울이로구나 하고 느꼈어요. 언제나 돈으로 굴러가는 얼거리이다 보니, 나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집삯이라든지 밥값이라든지, 자꾸 돈에 마음이 쓰이곤 했어요.


  그러나, 이런 서울에서도 돈보다 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이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빠듯한 살림살이 걱정보다 즐거울 하루 삶에 찬찬히 마음을 기울이는 이는 어김없이 있으리라 믿어요. 모든 사람이 온통 돈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예 불구덩이 같은 서울이요 한국이겠지요.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지내고,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몇 해를 살며, 다시 시골로 옮겨 지내다가, 이제 아이들 낳고 한결 깊은 시골마을로 옮겨 살아갑니다. 지나온 나날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나날이 끔찍했거나 힘들었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하고 시골은 무엇보다 한 가지가 크게 달라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며, 내가 맡고, 내가 마시는 모든 숨결이 크게 달라요.


  나는 푸른 들판과 숲을 보고 싶지, 끝없는 건물과 아파트를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풀 돋는 흙길을 걷고 싶지, 아스팔트나 시멘트로만 덮인 길을 걷고 싶지 않아요. 풀숲에 드러누우면 풀내음을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 즐거워요. 하늘빛이 파랗구나 하고 느끼고 싶어요.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구름을 느끼고 싶어요.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 스스로한테 하늘을 말하고 구름을 말하며 별을 말했어요. 비가 모질게 퍼부으면 이 빗물이 도시를 다 휩쓸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빗물에 휩쓸려 사라지면 도시에도 차츰 푸른 싹이 트며 풀밭이나 꽃밭이나 나무숲으로 거듭날까 하고 생각했어요.


.. 여성은 양육자인 동시에 치유자였다 …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동안 여성들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접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수천 년간 계속되었다 … 출산에서 필요한 것은 출산을 빨리, 급박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이완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격려와 출산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며 …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 서로를 격려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산모가 긍정적인 출산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  (74∼75, 92, 105, 108쪽)


  메리 몽간 님이 빚은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을 읽습니다.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밝히는 이야기책입니다. 메리 몽간 님은 당신 아이를 ‘조금도 평화롭지 않게’ 낳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메리 몽간 님은 ‘아주 끔찍하고 매우 아프게 아이를 낳았’답니다. 당신 몸은 가장 슬프고 아픈 생채기를 치러야 했다고 해요. 당신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 아이한테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이끌어 보았고, 이렇게 이끌며 아기를 낳을 때에 당신 아이와 ‘당신 아이가 낳은 아기’ 모두 평화롭게 이 땅에서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해요.


  간추려서 말하자면, 메리 몽간 님은 몸으로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몸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마음으로 품은 사랑으로 달래면서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로구나 싶습니다. 당신은 평화로운 아기 낳기를 할 수 없었으나, 당신 아이를 비롯해 당신 아이 또래 젊은이, 또 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 짝꿍을 맺으며 낳을 아이들을 헤아리며 쓴 책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라 할 만해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달까요.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혔으니 기쁘게 글을 쓰고 ‘아기 낳는 참 예쁜 길’ 하나를 깨달아 밝힌다고 할까요.


..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할 일은 자신들이 아기를 정말 원했으며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배 속의 아기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 아기가 배 속에 있는 9개월은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성장해 가는 기간이다 … 아기들은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나온다 … 산모의 자연스러운 몸의 파동이 아기를 산도로 부드럽게 내려 보낸다 … 누에고치에 있는 나비를 억지로 빼내겠는가? 자연 출산 과정에는 아기와 산모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꼭 필요하다 ..  (118, 156, 172쪽)


  가시버시를 맺어 주는 혼례식장에서 가시버시 두 사람한테 ‘평화로운 마음’이 들도록 이끄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혼례식장은 가시버시 두 사람이 느긋하며 아늑하게 사랑다짐을 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간에 맞추어 착착착 형식을 밟습니다. 틀을 세워 틀에 맞추도록 합니다.


  가시버시가 되는 두 사람은 초등학교이든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사랑을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사랑을 들려주지 않아요.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기에 사랑을 못 들려주지 않아요.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사랑하고는 동떨어져요. 오늘날 문명사회 제도권학교는 학력자격증을 떼어 주는 기관입니다. 가시버시가 서로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맺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시버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뜻을 들려주지 않으며, 가시버시가 사랑으로 빚은 아이가 사랑스레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 농약을 많이 쓰거나 방부제 처리된 야채나 과일은 피할 수 있는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 산모와 남편이 산모 자신과 아기를 위해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만족스러운 출산에 대한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면, 자신의 출산의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몇 시간에 걸쳐 아기를 인위적으로 밀어내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오직 산도가 준비되었을 때에만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아기가 태어난 뒤 다른 사람 손에 아기를 맡기는 걸 아예 막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아기는 자신에게 익숙한 체취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친구나 친지 등 손님은 엄마가 해야 할 집안일을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만 허용한다. 방문해서 식사를 가져다주고, 세탁기를 대신해서 돌려주고, 시장을 봐주고, 집을 청소해 주는 등 손님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  (206, 223, 297, 317, 326쪽)


  어버이가 맑은 숨을 마실 때에 아이가 맑은 숨을 마십니다. 어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릴 때에 아이가 고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어버이가 돈벌이 회사에 얽매일 때에 아이는 시험점수 학교에 얽매이면서 제 어버이와 똑같은 길로 나아갑니다. 어버이가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슬기롭게 살피지 않을 때에, 아이도 밥과 옷과 집이 이루어지는 삶을 스스로 슬기롭게 살피지 않아요.


  ‘아기 낳기’는 점 하나입니다. 점 하나를 찍는 앞뒤 흐름, 곧 삶을 헤아리면서 아기를 맞이하고 아기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점 하나를 찍는 ‘아기 낳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가시버시가 살아가는 나날이 고이 흐르면서 아기도 낳고 무럭무럭 자라며, 어느새 아이들 키는 제 어버이보다 커집니다.


  냇물은 물방울 하나가 아니에요. 물방울이 모여 냇물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냇물에서 물방울 하나를 떼어낼 수 있지만, 이 물방울 하나는 여럿으로 더 나눌 수 있으며, 물방울 하나로도 또다른 냇물이 되어 흐르곤 합니다.


  햇살이 비춥니다. 햇살은 조각과 조각이 모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햇살 가운데 조각 하나만 떼어내지 못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가운데 조각 하나를 떼어내 듣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요, 삶은 삶입니다. 가시버시 몸속에서 자라는 씨앗부터 사랑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고, 아기는 스스로 튼튼한 나무 한 그루 되어 살아갑니다.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에서 말하는 ‘평화롭게 아기 낳기’를 살피면, 아기를 낳는 때에만 평화로울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여느 내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를 낳을 때에도 평화를 생각하면서 아기를 평화로 맞이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기를 사랑으로 맞아들여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무엇을 걱정할까요. 이 아기가 벙어리로 태어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학교에서 1등을 못할까 걱정하나요. 이 아기가 앞으로 대학교에 못 갈까 걱정하나요.


.. 출산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이 부부가 사랑으로 아기를 갖게 하고는 이런 고문 같은 심한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  (32, 43, 59쪽)


  아기는 사랑으로 낳으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돌보면 됩니다. 아기는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며 재우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삶을 사랑으로 보살피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하루를 사랑스레 누리면 됩니다. 어버이는 스스로 제 일과 놀이를 가장 빛나는 사랑이 되도록 가꾸면 됩니다.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느 때에도 걱정투성이요, 아기를 낳을 때에도 걱정덩어리입니다. 근심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근심꾸러미요, 아기를 낳을 적에도 근심나라입니다.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습니다. 살아갈 뿐입니다. 걱정도 사랑도 누가 따로 가르치거나 누구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맞아들일 뿐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두 사람이 아기를 낳을 적에 참말 사랑이 될 수 있지만, 걱정이 되기도 할 테지요. 어버이 두 사람이 참다이 사랑이 아닌 근심이나 걱정이라면, 어버이 두 사람이 착하게 사랑이 아닌 다른 물질이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읽더라도 아기를 평화롭게 낳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읽는대서 아기를 평화롭게 맞이하지 못해요. 삶이 평화로울 때에 아기도 평화롭게 낳지, 삶은 평화롭게 다스리지 않으면서 아기만 평화롭게 낳지 않아요.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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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8-2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저를 위해 써 주신 리뷰 같아요.
두어번 반복해서 읽습니다.
비슷한 다큐를 본적이 있어요
큰 아이를 낳을 때 기체조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내가 아프다지만 밖으로 나오는 아이는 낯선 세상에 더 두렵고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다고,
그래서 아이 낳는 순간에도 아이 숨을 편히 쉬게 해주려고 복식호흡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입을 벌리지 않았죠
입을 벌리면 복식호흡이 안되니까요.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길 바라는 요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2-08-20 06:57   좋아요 0 | URL
잘 아실 테지만, 아기를 낳는 일은 '아이와 살아가는 긴 흐름' 가운데 하루예요. 이 하루를 걱정할 일이 없어요. 이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면서, 기나긴 나날을 어떻게 즐거이 살아갈까를 생각하시기를 빌어요~ 좋은 기운 내셔요~
 


 글을 쓰는 때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서 글을 쓰면 개운하다. 아이들이 그만 아주 일찍 깨어서 아침을 맞이할 때 글 한 조각 제대로 여미지 못하면 속이 답답하다. 그러나, 새벽이나 아침에 못 쓴 글은 낮이나 저녁에 쓸 수 있다. 또는 밤이나 이듬날 새벽에 한꺼번에 쓸 수 있겠지. 며칠 늦출 수 있을 테고, 몇 달이나 몇 해 늦어지는 때도 있으리라. 조바심을 낼 까닭이 없다. 흐르는 삶은 내 넋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이 고이 이어갈 수 있도록 다스리면 된다. 내 꿈을 생각하면서 내 사랑을 글에 살포시 싣는 매무새를 예쁘게 추스르면 된다. 어느 날은 새벽 아닌 아침에 글을 쓰고, 어느 날은 낮이나 저녁에 글을 쓴다. 어느 날은 도무지 한 줄조차 쓰지 못한다. 글을 쓰는 때는 따로 없다. 글을 잘 쓸 만한 때 또한 딱히 없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언제라도 글을 못 쓰고, 내가 마음을 가다듬을 줄 안다면 언제라도 글을 쓴다. 마음이 있을 때에 어떤 글을 쓰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이 싱그러울 때에 어떤 글을 쓰면 빛날까 하는 생각이 샘솟는다. (4345.8.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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