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물놀이 허우적

 


  한손에는 바가지, 다른 한손에는 사진기 들고 고무통 물놀이를 하던 산들보라 그만 미끄러져 철부덩. 고무통 얕은 물이니 스스로 잘 일어나지만 으앙 하고 운다. 그러게 한손에 뭐 하나라도 놓아야지. 울면서도 이 손 저 손 아무것도 안 놓는구나. (4345.9.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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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5
우치다 린타로 지음, 김지연 옮김,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 책과콩나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꿈과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3] 우치다 린타로·나카무라 에쓰코, 《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책과콩나무,2010)

 


  가을바람이 불면서 저녁이 선선합니다. 이제 여름이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름이 지나갔으면 가을이요, 가을이면 감이 익고, 감이 익으면서 하늘이 한결 새파란 빛깔로 빛날 테며, 하늘처럼 구름은 해맑게 하얗고, 구름 따라 제비는 따스한 나라로 돌아가겠지요.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불볕이거나 땡볕이던 더위를 식힙니다. 가을에는 열매가 익고, 곡식이 여뭅니다. 가을에는 서늘한 바람이 겨울이 곧 다가오니까 집살림을 잘 건사하라는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들새와 멧새 노랫소리는 한결 잦아드는 가을입니다. 새들은 가을을 누리면서 겨울나기를 헤아리느라 바쁘겠지요. 풀벌레는 가을에 한껏 목숨을 빛내면서 마지막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사람은 예부터 가을에 무얼 하며 살았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일을 거들 만큼 바쁘다 하는데, 겨울과 봄에 먹을 밥을 미리 건사해야 하니까 바쁠밖에 없어요. 가을걷이를 하는 틈틈이 날마다 밥을 지어 그날그날 먹습니다. 아이들은 가을에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빨래는 언제나처럼 날마다 새로 나오고, 이부자리도 찬찬히 살핍니다. 이제 여름이불은 말끔히 빨아서 옷장에 넣을 때요,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해바라기를 시킬 철입니다.


.. “오늘은 내가 모모의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된다는 게 뭐야?” ..  (6∼7쪽)


  보름달이 둥그렇게 뜹니다. 차츰 이우는 달은 그믐을 맞이합니다. 다시 조금씩 살이 붙는 달은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다가는 보름달이 됩니다. 이제 가을날 한가위 보름달이 찾아옵니다. 우리 식구는 기차를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나들이를 떠날 테고, 아이들은 기차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도 거침없이 뛰고 구르고 날고 하면서 놀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은 저녁 느즈막한 때까지 개구지게 놉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마에 땀 송송 맺히도록 신나게 놉니다. 어쩌면 이렇게 잘 놀 수 있니, 하고 묻다가도, 나도 어린 날 너희들처럼 개구지게 놀고 신나게 놀았으니까, 이러한 기운이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질 테지, 하고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씩씩하게 커서 저희 좋은 짝꿍을 만나 저희 아이들을 낳을 때에는, 이 아이들 또한 개구지게 놀고 신나게 놀겠지요. 아이들은 맑은 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자라고, 이 맑은 빛을 저희 아이한테 물려주면서 날마다 즐겁게 꿈을 꾸리라 느껴요.

 


..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거야.” 셋은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었습니다. “그 다음엔?” 토토가 미미에게 물었습니다. “음, 그 다음에는 …….” ..  (12쪽)


  아이들이 나누는 말은 제 어버이한테서 들은 말입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몸짓은 제 어버이한테서 본 몸짓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빚는 길은, 어버이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빚는 길입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버이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빚을 때에, 아이들 또한 삶을 슬기롭게 짓고 사랑을 환하게 빚어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노래하지 못할 적에는, 아이들이라고 남달리 삶을 짓거나 사랑을 빚기 힘듭니다.


  곧, 삶을 누리며 짓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삶을 누리며 짓는 길을 물려줍니다. 사랑을 나누며 빚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사랑을 나누며 빚는 꿈을 이어줍니다.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물려줍니다. 넉넉하게 쓰다듬는 손길을 이어줍니다. 따사롭게 마주하는 눈길을 물려줍니다. 너그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이어줍니다.


  어버이로서 할 몫이라면 아이들한테 학원이나 학교나 시설이나 단체에 들어가도록 등을 떠미는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아이들이 맑게 웃고 밝게 뛰놀며 환하게 꿈꾸는 삶과 사랑을 어버이부터 몸소 누리며 어깨동무해야지 싶어요.


  빗소리를 듣습니다.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에 풀잎과 나뭇잎 흩날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들풀이 자라는 빛깔을 바라봅니다. 무르익는 곡식을 바라봅니다. 시나브로 익는 열매를 바라봅니다. 하늘을 날고 나뭇가지에 앉는 들새를 바라봅니다. 동이 트는 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달이 뜨는 하늘을 서로 바라봅니다.

 


.. 그래도 열은 내려가지 않고 여전히 불덩어리처럼 뜨거웠습니다. 미미는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않고 모모를 보살폈습니다 ..  (18쪽)


  우치다 린타로 님 글이랑 나카무라 에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책과콩나무,2010)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새끼 토끼들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스스로 ‘엄마가 됩’니다. 아이들은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으레 소꿉놀이를 합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늘 마주하고 바라보는 ‘어버이 구실’을 스스로 맡습니다. 집에서 늘 마주하는 어머니 모습을 흉내내고, 집에서 언제나 바라보는 아버지 몸짓을 시늉합니다.


  옳거나 그르거나 따지면서 흉내내지 않습니다. 맞거나 틀리거나 살피면서 시늉하지 않아요. 고스란히 마주하며 흉내를 냅니다. 낱낱이 바라보며 시늉을 합니다. 어머니가 누리는 삶이 아이들 소꿉놀이에 오롯이 드러납니다. 아버지가 즐기는 사랑이 아이들 소꿉놀이에 온통 나타납니다.


.. “엄마가 된다는 건.” 미미가 말했습니다. “걱정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거야.” “그렇구나.” 토토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로 그때, 미미와 토토를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24∼25쪽)


  아이들을 참답게 사랑하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제 어버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참답게 사랑합니다. 아이들을 착하게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제 어버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착하게 아낍니다. 아이들을 곱게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제 어버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곱게 돌봐요.


  가는 말이 곱기에 오는 말이 곱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티끌이 모여 커다란 봉우리를 이룹니다. 천 리 길을 한 걸음부터 걷습니다. 밥 한 숟갈을 나누어 밥 한 그릇을 이룹니다. 종이 한 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떠한 삶을 들려주는 어버이인가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떠한 사랑을 꿈꾸는 어버이인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일구어 아이들하고 웃음으로 주고받는 어버이인가 생각합니다. (4345.9.8.흙.ㅎㄲㅅㄱ)

 


― 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 (우치다 린타로 글,나카무라 에쓰코 그림,김지연 옮김,책과콩나무 펴냄,2010.9.1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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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468) 급하다急 1 : 급하게 지나쳐 갈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은 어느 한 곳에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급하게 지나쳐 갈 수가 있다
《가와이 에이지로/이은미 옮김-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유원,2003) 14쪽

 

  ‘감동(感動)’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을 뜻하는 한자말이에요. 이 낱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감동(感動)을 받은”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인”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머물러 있을 수 있고”는 “머무를 수 있고”로 다듬고, ‘반대(反對)로’는 ‘거꾸로’나 ‘이와 달리’로 다듬으면 한결 나아요.


  외마디 한자말 ‘급하다(急-)’는 모두 일곱 가지로 쓰인다고 합니다. “(1) 사정이나 형편이 조금도 지체할 겨를이 없이 빨리 처리하여야 할 상태에 있다 (2) 시간의 여유가 없어 일을 서두르거나 다그쳐 매우 빠르다 (3) 마음이 참고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을 내는 상태에 있다 (4) 병이 위독하다 (5) 성격이 팔팔하여 참을성이 없다 (6) 기울기나 경사가 가파르다 (7) 물결 따위의 흐름이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렇게 일곱 가지예요. 이 낱말을 넣은 국어사전 보기글이 퍽 많은데, “급한 일”이나 “돈이 급하다”는 “바쁜 일”이나 “돈이 빨리 있어야 한다”를 가리킵니다. “급하게 먹다”나 “급하게 서두르다”는 “바삐 먹다”나 “허둥지둥 서두르다”를 가리켜요. “헐레벌떡 먹다”나 “허겁지겁 서두르다”를 가리키기도 해요. “마음만 급하지”는 “마음만 바쁘지”를 가리키고, “병세가 급하다”는 “병세가 깊다”나 “병세가 안 좋다”를 가리켜요. “급하게 경사지다”는 “매우 비탈지다”를 가리키며,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은 “비탈이 가파른 곳에서는”을 가리킵니다. “개울은 물살이 급해서”는 “개울은 물살이 빨라서”를 가리켜요.


  여러모로 쓸 만하다 하기에 일곱 가지로 쓰는 외마디 한자말일 텐데, 곰곰이 살피면 이곳저곳 한결 알맞게 추스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예부터 슬기롭게 가누던 말마디를 생각할 수 있어요.

 

 급하게 지나쳐 갈 수 있다

→ 얼렁뚱땅 지나쳐 갈 수 있다
→ 설렁설렁 지나쳐 갈 수 있다
→ 후다닥 지나쳐 갈 수 있다
→ 빨리 지나쳐 갈 수 있다
 …

 

  보기글에 나오는 ‘급하다’를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나오면 ‘급하게 지나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건너뛴다’는 소리입니다. ‘그냥 넘긴다’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책을 읽다가 훌쩍 건너뛸” 수 있다는 얘기이고, “책을 읽다가 재빨리 넘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뜻을 잘 살피면서 손쉽게 쓰면 됩니다. 단출하게 쓰면 그만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이 환하게 열립니다. (4339.4.4.불./4345.9.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인 어느 한 곳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 있고, 이와 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후다닥 지나쳐 갈 수가 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8) 급하다急 4 : 급한 경사

 

산의 측면으로 급한 경사를 이루며 깊숙이 파고든 협곡들과 검게 돌출한 바위들이 보인다
《셀마 라게를뢰프/배인섭 옮김-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125쪽

 

  “산(山)의 측면(側面)으로”는 “산 옆으로”나 “산 옆쪽으로”로 다듬습니다. 또는 ‘산기슭으로’나 ‘멧기슭으로’로 다듬을 수 있어요. 또는 “산줄기를 따라”나 “멧줄기 옆으로 따라”로 다듬어도 돼요. ‘협곡(峽谷)’은 ‘좁은 골짜기’로 손보고, ‘돌출(突出)한’은 ‘튀어나온’이나 ‘솟은’이나 ‘불거진’이나 ‘쑥 나온’으로 손봅니다.

 

 급한 경사를 이루며
→ 가파르게 기울어지며
→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
→ 가파르고
→ 가파르면서
 …

 

  “비스듬히 기울어짐”을 한자말 ‘경사(傾斜)’로 적는 분들이 제법 많은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자말 ‘경사’는 한국말 ‘기울기’로 바로잡으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드문 탓인지, ‘경사’라는 한자말은 널리 쓰이고, ‘기울기’라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습니다.


  산이나 언덕이 기울어진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로 ‘비탈’이 있고, 고장말로 ‘비알’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멧자락을 이야기하니 ‘비탈’이나 ‘비알’이라는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먼저, 말뜻 그대로 “산 옆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이루며”처럼 손보고, 다음으로 “산 옆쪽으로 가파른 비탈을 이루며”처럼 손보며, 다시금 “산 옆으로 가파르며 깊숙이 파고든 좁은 골짜기들과”처럼 짤막하게 간추립니다. (4345.9.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멧줄기 옆으로 가파르며 깊숙이 파고든 좁은 골짜기들과 검게 튀어나온 바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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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예쁘게 읽는 책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두 병원에서 낳고 말았습니다. 옆지기와 나는 병원 아닌 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느긋하게 아이를 맞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미국사람 메리 몽간 님이 쓴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2012) 59쪽을 읽습니다. “출산은 과학이 아니다. 해부학도 아니다. 또한 의사나 조산사, 간호사의 일도 아니며, 누군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산은 부모와 아기의 것이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벌써 아이를 둘 낳았고, 다섯 살 두 살 두 아이는 무럭무럭 크는데, 나는 굳이 ‘아이낳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두 아이를 집에서 사랑스레 낳지 못했으나,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더 커서 스무 해쯤 뒤가 되면, 이 아이들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될 테지요. 이때에 우리 아이들이 병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집에서 사랑스레 아이를 낳도록 돕자면, ‘앞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옆지기와 내’가 오늘 ‘아이낳기’를 예쁘고 사랑스레 다시 배워야 해요.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을 쓴 메리 몽간 님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병원에서 낳고 말았다지만,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커서 아이를 낳을 무렵 당신이 지난날 겪은 아픔과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꿈꾸면서 ‘히프노버딩’이라는 ‘아이를 사랑스레 낳는 길’을 마련했다고 해요. 메리 몽간 님은 105쪽에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내가 바라는 꿈을 곱게 헤아릴 때에 참으로 내가 바라는 꿈이 곱게 이루어집니다. 내가 바라는 꿈이 아니지만, 내 둘레에서 이래저래 떠돈다 해서 귀를 기울이거나 눈길을 둘 때에는, 뜻밖에도 내가 안 바라거나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할 때에는 사랑이 태어나요. 내 마음속에 미움이 깃들 때에는 미움이 나타나요.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적바림한 책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한글샘,2011) 119쪽을 살피면, “사람의 소명은, 주위의 모두를 깨닫고 우주에 훌륭함을 짓는 것이야. 지구를 닮은 것을 다른 은하계에 짓는 거야. 그리고 새 세상 모두에게 지은 훌륭한 창작을, 지구에 더하는 거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란 ‘훌륭한 삶을 짓기’라는 말마디를 되새깁니다. 나부터 스스로 오늘 하루를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고, 이렇게 훌륭하도록 아름답게 누리는 삶을 내 옆지기와 아이들과 이웃과 동무 모두한테 곱게 나눌 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숨결이 된다는 이야기를 되읊습니다.


  예쁘게 나누는 말은 예쁘게 나누는 사랑입니다. 내가 예쁜 말을 보낼 때에 나한테 예쁜 말이 돌아옵니다. 나는 예쁜 말을 보내지 않으면서 나한테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나는 노상 밉거나 궂거나 모진 말을 보내면서 나한테만큼은 예쁜 말이 오기를 바란다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 님이 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양철북,2012) 52쪽을 읽습니다. “진심으로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야 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도,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때도 그 감정은 언제나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단다.” 하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내 삶이어야겠지요. 어깨너머로 기웃거린다든지 겉치레로 꾸민다든지 내 뚜렷한 줏대 없이 휘둘리거나 휩쓸린다면, 나 스스로 하나도 재미없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좋은 봄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여름햇볕을 누립니다. 좋은 가을햇빛을 누립니다. 좋은 겨울해님을 누립니다.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는 네 철은 사람들 누구한테나 기쁜 선물입니다. 따스함과 시원함과 더움과 추움과 넉넉함과 푸름과 빛남과 어두움과 환함을 골고루 누리면서 내가 지을 가장 좋은 내 사랑스러운 삶을 돌아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16권 114쪽을 보면, 종교전쟁을 일으키는 우두머리 한 분이 아들을 옆에 두고 이렇게 얘기를 나눠요.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아, 아. 아름다운 해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려 하면 참으로 예쁠 텐데요. (4345.7.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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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9-08 09:23   좋아요 0 | URL
큰 아이 표정은 언제나 밝아서 참 좋아요

파란놀 2012-09-09 03:46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 모두 늘 잘 웃어서 좋습니다~
 

‘공중’과 ‘하늘’
[말사랑·글꽃·삶빛 28] 아이들과 즐겁게 쓸 말이란

 


  아이들한테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위를 올려다봅니다. 낮에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느끼고, 밤에는 까맣게 어두운 하늘을 느낍니다. 하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폴짝 뛰어올라 감나무 가지를 건드린 데부터 하늘일까요. 아버지 어깨에 올라타고 붙잡는 처마부터 하늘일까요.


  사람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과 개미가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개구리와 풀꽃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이랑 새들이 하늘이라고 느끼는 곳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요.


  나는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는 ‘하늘’이라는 낱말만 썼습니다.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여섯 해를 다니면서 ‘하늘’ 말고 ‘공중’하고 ‘허공’이라는 낱말을 어른들한테서 듣기는 들었으나, 이 낱말, 곧 한자말 ‘공중’이랑 ‘허공’이 하늘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모두 같은 하늘이지만, 굳이 이렇게 저렇게 금을 갈랐을 뿐 아닌가 싶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 세 해를 다니고, 또 세 해를 다닙니다. 이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두툼해지고 가짓수도 늘어납니다. 이제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문학을 가르칩니다. 우리들이 배우는 문학책에는 ‘하늘’이라는 낱말이 거의 안 나타납니다. ‘공중’과 ‘허공’이라는 한자말에 이어 ‘창공’이라는 한자말이 으레 나타납니다. 학교에서 한국문학을 배우며 더 궁금합니다. 왜 문학을 하는 어른들은 ‘하늘’이라는 낱말은 안 쓰고 이런저런 한자말만 자꾸 쓰려고 할까.


  어느 날 내 궁금함을 풀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맨 먼저 ‘하늘’을 찾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하늘’을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으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공중(空中)’을 찾아봅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곳”으로 풀이합니다. ‘허공(虛空)’을 찾아봅니다. “텅 빈 공중”으로 풀이합니다. ‘창공(蒼空)’을 찾아봅니다. “= 창천(蒼天)”으로 풀이합니다. ‘창천(蒼天)’을 찾아봅니다. “맑고 푸른 하늘”로 풀이합니다.


  이제 낱말뜻을 살피며 생각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곳이 ‘공중’인데, “텅 빈 공중”이 ‘허공’이라는군요. ‘공중’이라는 낱말부터 “빈 곳”을 가리키는데 “텅 빈 공중”이란 어떤 데일까요. 이와 같은 말풀이는 말이 되는 말풀이라 할 만할까 알쏭달쏭합니다. ‘창공’은 ‘창천’과 같은 낱말이라 하는데 “맑고 푸른 하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하늘이 맑을 때에는 ‘파란 빛깔’이 눈부십니다. 하늘이 파랗게 눈부실 때에는 ‘맑’습니다. 그러니까, “맑고 푸른 하늘”은 하늘이 아주 맑거나 아주 파랗다는 소리입니다. 그나저나, 하늘빛은 ‘파랑’이지 ‘푸름’이 아니에요. 그런데 국어사전에서는 ‘푸른’ 하늘이라고 적습니다.


  하나하나 간추립니다. 말풀이를 다른 듯 적지만, ‘공중’과 ‘허공’은 같은 낱말입니다. 그리고, 두 낱말은 ‘하늘’을 가리킬 뿐입니다. ‘창공’과 ‘창천’은 ‘파란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 날 나는 다시금 생각합니다. 쉽게 하면 될 말을 왜 어른들은 쉽게 안 할까. 이윽고 또 한 가지 생각합니다. 한자말로 ‘창공’이랑 ‘창천’이라고 적으면서, 왜 한국말로는 ‘파란하늘’이라 안 적을까. 한국말로도 ‘파란하늘’을 한 낱말로 삼아야 올바르지 않을까.


  셀마 라게를뢰프 님이 쓴 《닐스의 신기한 여행》(오즈북스,2006) 1권을 읽다가 44쪽에서 “공중에서 들이마시는 공기가 이토록 신선하고, 좋은 땅 냄새와 소나무 냄새까지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같은 대목을 봅니다. 얼추 서른 해 앞서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 그무렵에는 이런 번역글을 옳게 가누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번역글 첫머리에는 “공중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라 말하고, 번역글 뒤쪽에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이라 말해요. 그런데 이 글에서 ‘공중’과 ‘하늘’은 같은 데를 가리켜요. 같은 데를 가리키는 낱말인데 두 낱말을 섞어서 써요.


  아이들과 즐겁게 쓸 말은 어떤 말일 때에 참으로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요. 어린이가 푸름이가 되고, 또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즐겁게 쓰면서 생각을 북돋우며 꿈을 가꾸도록 돕는 말은 어떤 말일 때에 더없이 즐거우면서 환하게 빛날까요. 시골마을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며 늘 헤아려 봅니다. 두 아이와 날마다 아침하늘과 저녁하늘 올려다보며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나는 ‘하늘’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내 나름대로 ‘아침하늘’이나 ‘새벽하늘’이나 ‘밤하늘’ 같은 낱말을 지어서 씁니다. 밤에는 ‘별하늘’이라고도 하고, 구름이 많이 낀 날은 ‘구름하늘’이라고도 합니다. 동이 틀 무렵에는 ‘붉은하늘’도 되고 ‘노란하늘’도 되며 ‘보라하늘’도 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결에 따라 달라지는 빛깔을 헤아리며 하늘빛을 헤아립니다. 비오는 여름에는 ‘비하늘’이고, 눈오는 겨울에는 ‘눈하늘’이에요. 하늘을 바라보며 논둑을 걷습니다. 하늘을 마주보며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4345.9.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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