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 책읽기

 


  두 아이를 이끌고 저녁마실 나온다. 작은아이는 내 오른손을 잡고, 큰아이는 내 왼손을 잡는다. 마을회관 옆에 서며 달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가득 낀 밤하늘은 달빛을 새롭게 감싼다. 아주 천천히 흐르는 구름은 달빛이 마을마다 예쁘장하게 흩뿌리도록 돕는다. 달을 한참 올려다보고 나서 걷는다. 문득 큰아이가 “저기!” 하고 외친다. 뭐가 있기에 그런가 하고 바라보니 불빛이 조그맣게 반짝인다. 그래, 개똥벌레, 반딧불이로구나. 어쩜, 여기에 개똥벌레가 있구나. 불빛 없는 시골길을 걷는 동안 개똥벌레를 여럿 만난다. 논 옆으로 도랑이 흐르고, 도랑에는 다슬기가 사는가 보다. 개똥벌레한테는 먹이가 있고, 올해부터 마을마다 농약을 아예 안 쓰거나 되도록 적게 쓰기로 한댔으니, 이처럼 저녁에 반짝반짝 빛나는 날갯짓을 볼 수 있구나. 풀벌레 노랫소리 감도는 고즈넉한 마을 곳곳에 개똥벌레가 춤을 춘다. 내 머리 위로, 아이들 머리 위로, 개똥벌레가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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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스무 날 장마
날마다
마을 고을
비를 뿌리다
살짝 멎을 무렵

 

멧봉우리마다
하얀 구름
자그맣게 걸려
하느님 마을처럼
하늘사람 고을처럼

 

어여쁜 새빛
함초롬히 흩뿌렸다

 

비를 안고 찾아오는 구름
빛을 품고 찾아드는 구름

 

빗물은 골짝과 논밭 적시고
바람은 풀과 나무를 간질이고
햇살은 구름 등판을
따사로이 어루만진다.

 


4345.7.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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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흙이 없고
풀이 없으며
나무가 없어,

 

그러니까
숲이 없고
숲이 밀렸고
숲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온 땅바닥에
시멘트 깔고 아스팔트 깔아
높은 건물과 아파트
들어선 터는
여름에 덥다.

 


4345.7.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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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아가며 '즐겁다' 하고 말하는 <도시일기>는 거의 나올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시골에서 살아가며 '즐겁다' 하고 말하는 <시골일기>는 꾸준히 나온다. 참 놀라운 노릇이지만, 사람들 누구나 몸과 마음으로는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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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권경희 지음, 임동순 그림 / 미디어일다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2년 09월 26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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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6) 별리의 1 : 별리의 장소

 

전주는 내게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8월의 햇볕을 만나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16쪽

 

  “아픈 기억(記憶)을”은 “아픈 일을”이나 “아픈 지난날을”이나 “아픈 생각을”로 손볼 수 있습니다. ‘송별(送別)’은 “떠나는 사람을 이별하여 보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송별하는 별리의 장소”처럼 쓴 보기글은 겹말입니다. ‘송별’이나 ‘별리’ 가운데 하나를 덜어야 올바릅니다. ‘장소(場所)’는 ‘곳’으로 다듬고, “8월의 햇볕을”은 “8월 햇볕을”로 다듬으며, “새로운 시작(始作)의 장소이기도”는 “새로운 곳이기도”나 “새롭게 길을 나서는 곳이기도”로 다듬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작’은 어떤 일을 처음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니 ‘새롭다’와 같은 뜻이에요. ‘시작’을 덜어 “새로운 곳”처럼 적으면 단출해요.


  보기글을 보면 ‘별리’라는 낱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낱말이 아니기에 한글로만 적으면 못 알아볼 사람이 많겠지요. 그런데, 묶음표에 한자를 넣는들 잘 알아볼 만할까요. 한글로 적어도 알아보기 어렵다면, 한자를 밝히거나 알려도 알아보기 어려워요.


  국어사전에서 ‘별리’를 찾아보면 “= 이별(離別)”이라고 풀이합니다. 곧, 앞뒤만 바뀐 같은 낱말이에요. ‘이별(離別)’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적자면 ‘헤어지다’인 셈입니다.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 아픈 생각을 떠나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일을 훌훌 털어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지난날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

 

  “이별의 인사”가 아닌 “헤어지는 인사”입니다. “이별의 눈물”이 아닌 “헤어지는 눈물”입니다. 굳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이별하는 인사”나 “이별하는 눈물”처럼 ‘-하는’을 붙여야 올발라요. 그러나, 한국말 ‘헤어지다’가 있는데, 왜 ‘이별’이나 ‘별리’ 같은 바깥말을 들여와서 써야 하나 궁금해요. ‘헤어지다’와 ‘떨어지다’와 ‘멀어지다’와 ‘갈리다’를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쓸 수 있는 마음이 되기를 빌어요. (4345.9.26.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주는 내게 아픈 생각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8월 햇볕을 만나며 새롭게 길을 걷는 곳이기도 하였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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