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3] 풀이름

 


  마을 어르신한테 풀이름을 여쭈면 당신이 아는 풀이름은 이렁저렁 알려주지만, 당신이 모르는 풀이름은 이내 “몰러.” 하고 말씀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이 뜯어서 먹는 풀이름은 웬만해서는 다 압니다. 굳이 안 뜯어서 안 먹는 풀이름은 딱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없이 예쁘구나 싶은 꽃이 돌울타리 따라 죽 피었기에 마을 어르신한테 여쭈어 보면 으레 “몰러. 난 안 심었는데, 바람에 씨가 날아왔서 뿌리내렸나 봐. 꽃이 이쁘니 그냥 뒀지.” 하고 말씀합니다. 전남 고흥 어르신들은 고구마도 그냥 ‘감자’나 ‘감저’라고 말해요. 감자도 감자이고 고구마도 감자인 셈인데, 민들레이건 부추이건 마을마다 이름이 달라요. 마을 깊숙한 두메와 멧골에서는 또 두메와 멧골마다 이름이 다르고요. 어째 이리 이름이 다를까 싶으면서도, 저마다 삶자락이 다르니 저마다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 모습이 달라, 이름도 달리 붙이겠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우리 집 다섯 살 큰아이는 안경 맞추러 ‘안경집’에 가고 신발 사러 ‘신발집’에 가며 자동차는 기름 넣으러 ‘기름집’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와 옆지기는 아이한테 아무 가게이름도 안 가르쳤으나, 아이는 스스로 느낀 대로 말해요. 곧, 풀이름이라 할 때에도 표준말 이름을 달달 외워서 맞출 까닭이 없어요. 저마다 달리 살아가는 내 마을살이에 맞추고 내 보금자리를 헤아리며 ‘내가 느낀 풀이름’ 하나 붙이고 ‘내가 바라보는 꽃이름’ 하나 붙이면 돼요. 학자가 붙인 ‘민들레’ 이름이 아니요, 임금님이 붙인 ‘쑥’ 이름이 아니에요.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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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사람들

 


  나를 취재하고 싶다는 전화를 가끔 받는다. 충청북도 멧골에서 살 적에도 “취재하시는 일은 좋은데, 여기까지 오셔야 하는데요.” 하고 말하면 으레 전화를 뚝 끊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라. 전라남도 시골에서 사는 요즈음도 “취재하시려는 뜻은 고마운데, 예까지 오셔야 해요.” 하고 말하면 슬그머니 전화를 뚝 끊고는 입을 스윽 씻네.


  시골서 살아가는 하루는 조용하니 좋다. 서울서 충청북도조차 멀다고 여기는 서울사람들이, 서울서 전라남도까지 오겠나. 충청북도나 전라남도 아닌 부산이나 광주라면, 또는 대전이나 마산이라면, 또는 안동이나 구례쯤만 되어도 좀 달랐으리라 싶은데, 어찌 되든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다.


  서울사람들은 숲이 얼마나 좋은가를 모른다. 숲에서 안 태어나고 숲에서 안 자랐으며 숲에서 일 안 하기에 숲이 얼마나 좋은가를 모를까. 아마 그러하리라. 언제나 아파트 둘레에서 살고, 언제나 자동차한테 둘러싸여서 살며, 언제나 숱한 신문과 방송과 잡지와 책과 영화와 언론과 연예인과 스포츠와 주식과 뭣뭣에 휩쓸린 채 살아가는 서울사람으로서는, 숲을 숲 그대로 느끼기란 아주 어려우리라 본다.


  나를 취재하고 싶다는 분한테 늘 똑같이 말한다. “휴가라고 생각하며 놀러오셔요. 여러 날 출장 간다고 생각하며 나들이하셔요. 시골집은 작지만 방 하나 비니 여러 날 묵으셔도 돼요. 밥은 제가 차리니 밥값도 안 들어요. 숲이 예쁘고 들이 아름다우며 바다가 멋져요. 밤에는 미리내를 보고, 낮에는 나뭇잎 살랑이는 파랗고 맑은 바람 쐬며 냇물을 마셔요.” 그런데 아직 이런 말에 마음이 이끌리는 서울사람, 그러니까 서울에서 일하는 글쟁이(기자·작가·편집자)는 없는 듯하다. 하기는,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가겠다는 마당인데, 서울사람이 제발로 시골로 찾아오기란 몹시 힘들 만하리라.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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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라서

 


겨울은 추워서 겨울이고
봄은 따스해서 봄이고
나는 나라서 아름답고
숲은 숲이라서 푸릅니다.

 


4345.10.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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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놀이

 


  빵을 콩알처럼 돌돌 뭉쳐서 마룻바닥에 올려놓는다. “콩이야.” 하면서 ‘빵콩’을 만든다. 시골서 살며 언제나 콩을 보는 아이한테는 동글동글 생기면 어쨌든 ‘콩’이라고 말한다. 우리 식구가 시골로 오지 않고 도시에서 내처 살았으면 아이는 동글동글한 녀석을 바라볼 때에 무어라 말했을까. 아무튼, 빵콩을 잔뜩 만든 아이는 마룻바닥에 하나하나 늘어놓다가 주섬주섬 그러모아 꿀꺽 먹는다. 이러면서 빵놀이도 끝.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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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는 마음

 


  두 아이가 닷새째 아픕니다. 아침에 일어날 적에는 조금 나을 듯하더니 저녁에 해가 질 무렵부터 끙끙 앓기를 닷새째입니다. 올해에는 아이들만 아프고 아직 내 몸은 안 아픕니다. 지난해까지 돌아보면, 아이들이 다 나을 즈음부터 내가 아팠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참 용하게 아이들 고뿔이나 재채기가 나한테 조금도 안 옮더니, 아이들이 말끔하게 나은 뒤에는 내가 하루나 이틀 때로는 사흘 즈음 모질게 몸앓이를 하곤 했습니다.


  꼭 내가 아파야 아이들이 낫는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아이들이 나아도 나는 안 아플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지난해까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아플 적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너희가 아픈 꼴을 어떻게 보니. 내가 아파야지. 너희들은 아프지 말거라.’ 그리고, 이 생각 그대로 아이들이 나으면서 내가 아팠습니다.


  올해에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너희는 씩씩하게 일어서라. 튼튼하게 아픔을 털고 일어서라. 개구지게 뛰놀고 신나게 날아올라라.’


  두 아이를 나란히 재우며 틈틈이 글을 씁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한 아이를 재우면 다른 아이가 깨서 칭얼거리는군요.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서 다시 재우면 다른 아이가 깨서 칭얼거려요. 서로 갈마들며 아버지 품에 안기며 쉽니다. 얘들아, 이러면 나는 언제 쉬니? 하기는, 너희 아버지는 ‘쉼’을 생각하지 않아. 너희 아버지도 너희와 똑같이 하루를 온통 누리며 즐기는 사람이라서, 굳이 쉰다거나 따로 일한다거나 생각하지 않아. 얼마든지 안기렴. 너희를 안느라 허벅지가 터질 듯하던데, 아프다며 달라붙는 너희 둘을 열 시간 즈음 안자니 엉덩이까지 방바닥에 눌러붙을 듯한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좋아. 다 좋아. 재미나게 웃자. 방긋 웃자. 개운하게 웃자.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루를 글로 써서, 이 글을 묶어 책을 내놓는단다. 두 아이 아버지 책쓰기란, 시골살림 꾸리는 하루살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삶쓰기란다.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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