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풀씨 반기는 책읽기

 


  억새 풀씨 팔랑팔랑 나부낀다. 이틀에 걸친 인천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시골길에 억새 풀씨가 나를 반긴다. 너희 참으로 곱구나. 너희 참으로 가볍구나. 너희 참으로 환하구나. 다른 곳은 온통 눈밭 되어 새하얀데 우리 고흥은 너희를 비롯한 풀과 나무가 푸르거나 누렇게 빛나면서 숲을 이루는구나. 따스한 고흥은 따스한 사랑 되어 따스한 사람들 가슴에 따스한 이야기로 아로새겨질까. 나도 너희 손길을 받아들여 따스한 말로 따스한 아이들이랑 따스한 보금자리를 일구는 따스한 살림을 아껴야겠다.


  아이들 조잘조잘 노래하며 아버지를 반기는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고 부대끼며 놀면서 밥을 먹인다. 빨래를 걷어서 갠다. 큰아이가 옷가지를 날라 준다. 나는 옷가지를 옷장에 차곡차곡 놓는다. 아이들은 졸린 눈이지만 더 뛰고 더 놀며 더 왁자지껄 웃으려 한다. 그래, 마음껏 더 놀아라. 신나게 놀며 하루를 누려라. 그러다 코코 곯아떨어지면서 새날을 또 맞이해야지.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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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고치기

 


  인천으로 마실을 온 김에 사진기 고치는 곳에 들른다. 형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천천히 골목을 돌아 세 시간에 걸쳐 사진을 찍으며 찾아간다. 내가 쓰는 사진기를 보여주면서 망가진 곳을 고치는 데에 얼마쯤 들는지 여쭌다. 18만 5천 원이 든단다. 나는 고흥 시골집으로 택배로 받아야 하니까 19만 원 드는 셈이다. 내 사진기는 캐논450디. 이 기종을 요즈음 새로 장만하자면 29만∼35만 원쯤 든다. 지난해에 한 번 고치는 데에 15만 원 남짓 썼는데, 또 이만큼 들여야 한단다. 한동안 망설인다. 고치라고 할까. 새로 사는 쪽이 나을까. 내부 청소는 되느냐고 여쭌다. 한 시간쯤 기다리면 된단다. 조금 더 생각한 끝에, 부속 고치자는 생각은 접고, 내부 청소를 맡긴다.


  가까운 피시방에 들러 편지를 읽고 글조각을 매만진다. 세 시간 남짓 무거운 가방 메고 걸었더니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오늘은 고흥집으로 돌아가기 힘들 듯하다. 옆지기가 두 아이와 얼마나 즐거우며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는가 어림해 본다. 내가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옆지기는 바깥마실을 다닌다 할 적에 나는 아이들하고 얼마나 웃고 노래하며 지냈는가 되새겨 본다.


  우리 서로 예쁜 기운 스스로 빚으며 하루하루 즐기자. 아름다이 나눌 꿈을 생각하고, 환하게 피울 꽃을 생각하며, 따사로이 어깨동무할 손길을 생각하자.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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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2

 


별이 내려오고
잎이 내려오고

 

햇살이 드리우고
달빛이 드리우고

 

살랑살랑
바람결에 묻어
풀벌레 간질간질 속삭이는
가느다란 노랫가락

 

곱게 온 숲에 퍼진다.

 


4345.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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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아이들을 떼놓고 시골집을 나서면 마음이 싸하다. 언제나 이 아이들과 복닥복닥 살아가다가,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똑 떨어진 채 지내면 가슴이 참으로 휑하고 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아이들한테 노예 되는 교육을 억지로 심기에 안 보낸다기보다, 이 아이들하고 조금이라도 떨어진 채 지내고 싶지 않아, 어떠한 시설에도 보낼 뜻이 없구나 싶기도 하다.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나 스스로 사랑을 북돋우며, 내 온 꿈과 슬기를 빛내고 싶기에, 늘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어디이든 함께 움직이고 싶은지 모른다.


  그래서, 나 스스로 어디를 찾아간다 할 적에 아무 데나 가고 싶지 않다. 예전부터 그러기도 했는데, 참말 아이들하고 함께 다닐 만한 데가 아니라면 나 스스로 가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른바,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슬기롭게 가르칠 만한 보금자리를 살폈다고 하는데, 맹자 어머니로서도 스스로 아름답고 슬기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을과 삶자리를 찾아 오래도록 곳곳을 돌아보았구나 싶다.


  아이가 밝고 즐겁게 뛰놀 만한 곳은, 어른이 밝고 즐겁게 일할 만한 곳이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어른은 신나게 일한다. 신나게 일하는 어른은 신나게 노는 사람으로 지낸다. 신나게 노는 아이는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란다.


  아이들아, 너희 아버지가 혼자 먼 마실을 나와야 했지만, 아버지인 나 스스로 씩씩하게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갈게. 너희와 너희 어머니 모두 시골집에서 예쁘게 지내렴. 인천에 있는 생협에서든 다른 가게에서든 맛난 먹을거리 싸들고 들어가마.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처럼 아버지가 맛난 밥 차려 주마.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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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8] 가득 넣어요

 


  장인어른 짐차를 얻어타고 돌아다니다가 기름집에 들릅니다. 창문을 열고 기름집 일꾼한테 이야기합니다. “가득 넣어 주셔요.” “네.” 기름집 일꾼을 바라보며 ‘가득’이라 말하면서 아직 내 마음 한켠 조마조마합니다. 설마 이곳 일꾼은 ‘가득’이라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웬만한 기름집마다 ‘만땅’이나 ‘엥꼬’ 같은 일본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 싶지만, 틀림없이 어느 곳에서는 이런 일본말 아니면 듣지 않을 수 있고, 어느 분은 이런 일본말 아니고는 말을 못할 수 있어요. 장인어른은 기름집 일꾼한테 “가득 넣어요.” 하고 말씀하시지만, 차를 댈 적에는 “오라이! 오라이!” 하고만 말해요. “괜찮아요. 됐어요.” 하고 말하면 못 알아들으셔요. 아주 천천히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이 자취를 감추기는 하는데, 이러는 동안 영어가 슬금슬금 기어들어요. 내 동무 가운데 어느 녀석은 기름집에서 “풀!”이라고 말해요. 뭔 소리인가 했더니, 영어 ‘full’이에요. 나랑 내 식구들은 시골에서 지내고 자가용이 없으니, 온 나라 기름집마다 어떤 말이 오가고, 자가용 모는 분들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는지 잘 몰라요. 아마 참 엉터리 같구나 싶은 말마디를 내뱉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왜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한국말로 따사로이 말을 나눌 생각을 못할까요. 왜 우리들은 슬픈 사람이 되면서 슬픈 줄조차 못 느낄까요. 4345.1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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